임재민-최우석의 유쾌한 직설 ⑨ 親朴 신당설 중심에 섰던 尹相現 새누리당 의원 : 월간조선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승민(劉承旼)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거부권’ 부분만 수용하고, 유 의원은 유임시키기로 했다.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주문에 대해 반은 들어주고 반은 안 들어준 셈이다.

이 직후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신당’ 창당 이야기가 돌았다.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선거에서 잘 선택해 달라”고 이야기한 것을 ‘결국 내년 선거(총선)를 통해 새 사람들로 정치판을 채워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에 당의 한 핵심 참모는 “신당 창당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뜬소문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운 구체적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상현 의원이 극비리에 서울 여의도에 상당한 규모의 사무실을 계약했다. 이곳이 ‘박근혜 신당’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신당의 실무는 윤 의원이 총괄한다.”

과연 사실일까. 맞다면 새누리당의 ‘실질적 주인’을 자처해 온 박 대통령이 분당(分黨)에 뜻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 신당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새누리당 윤상현(尹相現) 의원을 만났다. 그는 대통령의 정무특보도 맡고 있다. 윤 의원에게 만나자마자 ‘박근혜 신당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윤 의원의 인터뷰 스타일을 감안해서다. 그는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평일에는 물론 일요일에도 전화 잘 받고, 민감한 질문에도 대답 잘해 주는 의원’으로 통한다.

“새누리당의 역사성에는 分黨, 新黨 없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 신당 창당설에 대해 “그럴 일 없다”고 했다. 윤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정무특보 위촉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거취 문제로 당·청(黨靑) 간, 계파 간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갈등을 빚으면서 ‘박근혜 신당’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말(2011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인기가 없으니까 비공개 의총에서 친이, 친박이 많이 싸웠습니다. 당시 친이계 핵심 의원들은 ‘이명박 대통령 탈당’을 주장했습니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를 밟고라도 노태우 정부를 만들라고 한 만큼 지금은 MB를 밟고라도 다음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친박이지만 반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다 가져가야 정권 재창출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 친박 핵심들이 만나면 전부 ‘친박 신당’을 하자고 박근혜 대통령께 건의했습니다. 4명이 모이면 3명은 친이계와 갈라서고 친박 신당을 창당하자는 입장이었죠. 그때마다 저는 ‘그건 아니다’고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새누리당의 역사성을 보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신한국당과 ‘꼬마 민주당(1990년 3당 합당 거부세력)’이 합당해 만들어졌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2012년 10월 25일) 자유선진당과 합쳤지요. 저희 당은 계속 역사를 보강하고, 세력을 보완하려 했습니다. 또 이를 통해 세대교체를 이뤄냈지요. 이것이 지금까지 새누리당이 걸어온 길인데, 분당이나 신당이 있을 수 없죠.”

—‘박근혜 신당’을 창당하는 일은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최경환 부총리와 윤 의원이 ‘박근혜 신당’의 전초기지를 만들기 위해 여의도에 큰 규모의 사무실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없어요. 정말 없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당에서 해야 할 역할 있어”

—설령 ‘박근혜 신당’이 만들어지더라도 ‘선수(대권 주자)’가 없어 파괴력이 덜할 것 같습니다.

“내년 총선을 치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지형의 변화가 올 것으로 봅니다. 현 지도부도 총선을 통해 평가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박) 주자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년 총선을 치르면 친박 대권 주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분석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쪽에도 3선급분 중에 (대선에) 나가겠다는 분이 몇 분 계십니다. 이분들이 다음 총선을 거치면 4선 중진이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뜻을 펼치겠지요. 지금의 대권 주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친박 쪽에서 대권에 꿈이 있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몇 분 계세요. 실명은 말씀드릴 수 없고, 충청도에도 있고, 경상도에도 있을 것 같고요.”

—내년 총선에 출마해 4선이 되려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늦어도 내년 1월 14일 전에 장관직을 사퇴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현역 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12월이 되면 판가름날 것입니다. 5명(황우여-교육부 장관, 최경환-기획재정부 장관, 유기준-해양수산부 장관, 유일호-국토교통부 장관, 김희정-여성가족부 장관) 다 못 나가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2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각 국무위원은 향후 30년의 성장 토양을 새롭게 만든다는 각오로 개혁과 부패 척결에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해 주기 바란다”며 “모든 개인적인 일정은 내려놓고 국가 경제와 개혁을 위해 매진해 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7월 7일 국무회의에서도 “국무위원들은 개인적 행로가 있을 수 없다”며 “오직 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로 나라 경제와 국민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관 중 누가 나오고, 누가 못 나올 것 같습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최경환(崔炅煥)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떻습니까.

“최 부총리야 당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으니까 나올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력한 이인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대항마를 키우려 하기도 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도 물밑에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지 않나요.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호 의원 키우려 했지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劉承旼 사퇴 주장한 이유

윤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정국(政局)에서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강하게 주장한 인물 중 하나다. 당시 윤 의원은 비박계에서 “윤상현 의원이 ‘유승민 내보내기’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앞장서 유 의원의 원내대표직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유승민 의원 원내대표직 사퇴 촉구는 정무특보로서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판단이었습니까.

“설명하자면 깁니다. 5월 1일이죠.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해 협상을 하는데 야당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이라는 연계조건을 붙였어요. 이에 청와대와 정부는 반대했습니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기하면 2060년까지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윤선 정무수석은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에 ‘그건 절대로 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고 하더군요. 다시 한 번 청와대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은 못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다음날인 5월 2일에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유 의원이 협상하는 사람한테 ‘내가 책임질 테니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여야는 5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을 담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한다고 밝혔지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2065년까지 앞으로 50년간 국민에게 지급할 연금액은 현행보다 664조원 늘어난다. 보건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을 소득의 40%에서 50%로 올려 2100년까지 적자가 안 나게 운영하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6.7%로 당장 배 가까이 올려야 한다”고 했다. 현재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해 2065년까지 앞으로 50년간 국민에게 지급할 예상 연금 지출액은 총 5316조원이다. 만약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총 지출액은 5980조원으로 늘면서 국민 부담은 664조원 늘어난다는 것이다.

윤 의원이 말을 이었다.

유승민의 두 가지 잘못

윤상현 의원은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에 앞장섰다. 2015년 8월 12일 유 의원이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모습.

“5월 3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 결정에 청와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언론도 달콤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은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걷거나,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고요. 어쩔 수 없이 원내지도부도 의총을 열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인상’ 결정을 백지화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의 전제 조건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내걸었는데 우리 원내지도부가 받아들였죠. 국회법 개정안이 무엇입니까. 식물정부 만들겠다는 법 아닙니까. 위헌 소지도 충분하고요. 그런 국회법 개정안과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연계하다니요.”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지난 5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관련 협상 과정에서 세월호진상조사특위의 과장 한 사람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바꾸겠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연금 개편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엉뚱하게 공무원연금 개정안이 흔들린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정안 처리 시한에 쫓기던 여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엉뚱한 이유로 국회법 개정안이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연계됐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이 공무원연금 개정안과 연계된 과정에서 유 의원이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5월 1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로 보류시킨 것을 의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5월 28일 의원총회에서 김재원 의원이 유 의원에게 ‘원내대표님 이거 위헌 가능성이 농후한데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유 의원이 ‘아, 그거 운영위에서 통과될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게 호도(糊塗)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보류가 된 법안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연계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두 번째 잘못은 무엇입니까.

“의원총회에서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해서 처리하는 것에 대해)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한 것입니다.

청와대는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이병기 실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안 해도 되니까 국회법 개정안은 절대 통과시키면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조해진 원내수석 부대표에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 의원은 청와대에서 국회법은 ‘안 했으면 좋겠다’ 정도로만 말했지 공무원연금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더라도 국회법은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유 의원의 이 발언이 언론에 알려지자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이 굉장히 당혹해하더군요.”

“협상력이 약했다”

—위헌 논란을 낳은 국회법 개정안이 29일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 유 의원의 협상력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요. 나름 절충하고, 타협하려고 한 것 아닙니까.

“언론인들도 많이 지적하셨지만, 역대 원내지도부 중 협상력이 가장 약했습니다. 우리 때(최경환 원내대표-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2013년 5월~2014년 5월)는 그렇게 협상 안 했습니다.”

—이번 건(件) 말고 다른 사례가 있습니까.

“아시아문화전당특별법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아시아문화전당특별법 통과 보고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 야당 중점 법안이었지요. 당시 원내대표였던 이완구 의원은 이 법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법으로 꼽은 관광진흥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연계해서 같이 통과시키려고 5개월을 묵혀뒀습니다.

그런데 유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아시아문화전당특별법을 영유아보육법(CCTV법)과 연계해 통과시켜 줬습니다. 영유아보육법은 당연히 여야가 처리해야 할 법이었습니다. 그런 법안과 야당의 중점 법안을 연결하는 것을 보면서 협상력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 의원의 협상력이 약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원칙 없는 절충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 의원도 있던데요.

“솔직히 원내대표의 협상은 새누리당 전체의 협상이지, 개인의 협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본인의 가치나 철학은 잠시 뒤로했어야 했는데….”

유 의원이 중도·개혁적 이미지를 구축하려다 보니 야당과의 협상을 제대로 맺고 끊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유 의원은 2007년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기초한 사람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것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였다. 그는 당시 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 참모였다. 그랬던 유 의원이 왜 갑자기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고, 중도 강화를 주장하게 됐을까.

“유승민, 우리보다 좀 더 왼쪽”

윤 의원의 이야기다.

“원래 유 전 원내대표는 우리보다 좀 더 왼쪽으로 가 있습니다. 2011년도 6월 당 대표 경선에 나갔을 때 주장한 발언, 2015년 4월 임시국회 대표연설 내용을 보면 유 전 원내대표의 이념적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6월 유 의원은 지도부 경선에 출마해 2위를 기록, 최고위원이 됐다. 당시 출마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재벌기업은 수십조 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죽어가고 있다.”

2015년 4월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했다.

—친박 한선교(韓善敎) 의원은 친박계 인사들이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할 당시 “한 10여 명만의 ‘우리만이 진짜 친박’이라는 배타심이 지금의 오그라든 친박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동의하십니까.

“한 의원과는 워낙 친한 사이예요. 형 동생 하는 사이죠. 저는 정말 비(非) 배타적인 사람이거든요. 누구보다 화끈하고 오픈된 사람인데…, 친이계 의원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여쭤보세요. 그런데 배타적이라고 하니 정말 서운하더군요. 그 글이 올라오고 얼마 안 돼서 한 의원을 만났어요. 저를 보자마자 ‘상현아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다른 사람이었으면 내가 먼저 박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끝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한 의원에게까지 몇몇 친박계 인사가 배타적으로 보였다면 반성할 점도 있더라고요. 한 의원이 생각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한 의원은 지난 7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친박의 추억’이란 글을 통해 몇몇 친박 핵심의 배타성을 지적했다.

박근혜와 유승민의 결별 이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 대통령 캠프의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는 등 친박 핵심이었던 유 의원이 2012년 대선 때는 ‘멀 박(멀어진 친박근혜)’으로 불렸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어느 때가 시발(始發)이라고 보냐면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한 사안이죠. 이에 대해 유 의원이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정체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지요. 이때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유 의원의 생각 차이가 벌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경선, 대선 때 ‘유승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까. 2007년도에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라 빈자리가 느껴졌을 것 같은데요.

“제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주자 경선 전에 박근혜 대통령께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유승민 의원 저렇게 두면 안 된다고요.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고요. 대통령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승민 의원에게 여러 번 찾아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선배님 제가 이야기해 놨으니 박근혜 대표님과 한번 티타임을 가져보세요’라고요. 그런데도 안 찾아가는 겁니다. ‘도대체 왜 안 찾아가시느냐’고 물어보니까 유 의원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저는 박근혜 후보가 직접 부르지 않으면 안 갑니다.’”

—박 대통령이 서운하셨겠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직접 가셨어요. 2012년 9월 25일 유 의원의 빙모상 조문차 서울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유 의원에게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직을 제안한 것이지요. 유 의원이 좋아했습니다. 흔쾌히 승낙했고요. 그런데 며칠 뒤에 사퇴했습니다. 이후 박 대통령께서 권영세 종합실장에게 ‘유 의원에게 메시지 담당’ 임무를 주라고 했고, 권 실장이 유 의원에게 부탁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因緣

2010년 7월 28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윤상현 의원의 결혼식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후보 수행단장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사석에서는 ‘누나’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진 (윤 의원은 자신이 아니라 한선교 의원이라고 해명) 친박 실세 중의 실세이다. 그는 박 대통령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윤 의원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이라고 했다.

“2002년에 경기도 하남 재보궐 선거에 나가려고 했어요. 그때 제가 공천 1위였는데 공천을 못 받고, 3위가 받았어요. 공천에서 떨어지고 이회창 후보가 청년특보를 시켜주셨어요. 그 시기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과 강남의 어느 호텔 주차장에선가 마주쳤어요. 그때는 완전 비주류였지요. 대통령께서 ‘우리 윤 박사 공천 못 받아서 안 됐다. 내가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해주지는 못하고’ 하면서 위로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점심을 사주셨어요. 그때 제가 영어로 쓴 책도 드리고, 동북아 국제정치를 영어로 강의한 비디오테이프도 드렸어요. 이때부터 인연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무나 역할을 주면 눈치 보지 않고 올인하는 스타일입니다. 진돗개처럼 끝까지 물어뜯지요. 대통령께서도 ‘진돗개 정신’을 강조하시지 않습니까. 지난 대선 때 수행단장 활동을 할 때는 새벽 2시30분에 일어났어요. 거의 자지 않고 일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좀 알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체력이 좋은가 봅니다.

“되게 좋습니다. 배드민턴 선수들과 한 시간 동안 같이 뛰어도 꿀리지 않습니다.(웃음)”

—박 대통령의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박 대통령이 회의 석상에서 불편한 얘기를 한 사람을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 생긴 말)는 무섭기로 소문났지 않습니까. 혹시 맞아본 적 있습니까.

“제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을 반대했습니다. 때가 2012년 7월이었는데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이 문제가 상당히 민감했었습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는데 당시 원내대표였던 이한구 의원이 당시 여권의 유력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한테 ‘윤상현이가 망쳐놨다’고 보고를 한 모양이더군요.

부결 결정이 나고 사흘째 되는 날 전화를 드렸어요. 제가 체포동의안 부결에 앞장선 이유를 설명드려야 했으니까요. 그랬더니 박근혜 대통령께서 ‘아니 우리 일 잘하는 윤 의원이 왜 그렇게 하셨어요, 다음번에는 상의하고 하시죠’라며 넘어가시더라고요. 죄송해서 경선 캠프 ‘공보단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수행단장시켜 주시더군요.”

“박 대통령, 일 잘하는 사람 조용히 챙겨줘”

—박 대통령께서 특별히 관대한 것 같은데, 박 대통령 주변에는 떠나는 측근들이 유독 많잖아요. 왜 그런 것 같습니까.

“대통령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대통령 기대에 못 미쳐 떠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런데 박 대통령의 가치는 신의와 보은입니다. 저의 가치이기도 한데요. 신의 지키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보은해 주십니다. 과거 정치인처럼 ‘너 일 잘해 내가 챙겨줄게’ 이런 말은 전혀 하지 않지만 일 잘하는 사람은 아주 조용히 챙겨주십니다. 그렇다 보니 일반 사람은 잘 몰라요. 곧바로 찾지 않으면 ‘왜 나만 안 챙겨주지’라고 서운해하지요.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됩니다.”

—《시사저널》이 정치평론가와 정치부 기자 100명을 대상으로 ‘여권 권력 지도’를 살펴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7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정치평론가 20명과 정치부 기자 80명을 대상으로 조사)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이 실세 1위로 나타났습니다. 의원님은 10위던데요.

“과거에는 저한테 실세 3인방이라고 하더니 10위로 추락을 했네요(웃음). 솔직히 이 여론조사 결과는 청와대 내부시스템을 잘 모르는 분들이 설문에 응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그냥 심부름꾼이에요. 실세가 아니라.”

—그렇다면 의원님은 실세입니까.

“저는 실무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통령의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무자지요. 실세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실세가 실질적인 정치세력이라는 뜻인데 참 허(虛)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윤상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사이의 틈이 벌어진 것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을 너무 와일드하게 모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4년 6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제325회 국회 본회의에서 김 대표와 윤 의원이 논의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맺은 지난 10년간 인연(因緣)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동지적 관계에서 출발했지만 두 사람은 한때 서로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 승리를 합작했지만, 아직도 관계는 가깝지 않다. 박 대통령은 현재권력, 김 대표는 미래권력이라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여권(與圈)에선 “두 사람이 이끌어갈 향후 당·청 관계도 ‘긴장’과 ‘협력’이 공존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친박계는 여론조사 1위의 김무성(金武星) 대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당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성공의 반, 아니 51%는 정권 재창출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묻고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합니다.”

—청와대에서는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도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김 대표께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답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느낌으로는 알 것 같아요. 과거의 패턴을 읽어보면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결국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뢰가 쉽게 회복되겠습니까.

“제가 김 대표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대통령을 너무 와일드하게 모시면 안 된다’고요.”

링컨과 칭기즈칸

윤 의원이 ‘21세기 글로벌 리더의 조건’을 주제로 강연할 때면 어김없이 칭기즈칸과 링컨이 등장한다. 그는 칭기즈칸과 링컨이 보여준 리더십이 ‘21세기 글로벌 리더의 조건’이라고 본다.

“칭기즈칸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아들로 인정하는 리더십(칭기즈칸은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이 주변 부족에게 끌려가 그 부족장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그를 아들로 인정하고 키웠다)을,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정적인 에드윈 스탠턴(Edwin Stanton)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에드윈 스탠턴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고릴라를 보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스프링필드(링컨의 고향)에 가면 고릴라가 있습니다’라며 링컨을 조롱하고 비난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리더십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데 솔직히 국내 정치는 이런 리더십을 보일 수 있는 토양이 안 돼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야당 의원에게 외국 같이 가자고 하면 무조건 보이콧부터 합니다. 같이 가게 되면 ‘사쿠라(さくら·여당과 야합하는 야당 정치인을 이른다) 소리를 들으니까요.”

—인터뷰 시작 전 받은 의원님 명함을 보니까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더군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정즉인(政卽人)이지요. ‘정치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정치’라는 의미로 조선 후기 무역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상도(商道)〉에서 말하는 ‘상즉인(商卽人)’, 즉 ‘장사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장사’라는 말을 치환한 것입니다.

우리 정치는 그동안 서구 정치문화의 영향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인간’을 먼저 생각해 왔습니다. 정치의 맨 앞자리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 국가와 개인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 설정 문제가 먼저 자리 잡았지요. 그러다 보니 정치의 역할이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 말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나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의 ‘타인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지배’ 같은 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요구는 그러한 기계적·기술적 역할이 아니라 의(義)와 덕(德)을 추구하고 용서와 은혜의 거듭남을 통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해관계만을 좇지 않고 사람을 살피고 휴머니티를 근본으로 삼는 정치가 ‘정도’지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 번호를 명함에 공개한 것입니다.”

여야를 통틀어 대부분의 의원은 명함에 휴대폰 번호를 표기하지 않는다.

—민원 전화가 상당히 많이 걸려올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역구 주민들은 좋아하죠.

“지역구 주민들께서 제 별명을 ‘구(區)의원들의 회장’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민원을 많이 받아서 구의원들에게 토스(Toss)해 민원을 해결해 준다는 뜻으로 지어주신 별명입니다. 뿌듯하죠.”

윤 의원의 별명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스터 씽씽’ ‘노인회관 단골손님’이라고도 불린다. 모두 지역구를 정말 자주 돌아다녀서 주민들로부터 받은 훈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