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詩] 이대흠 : 월간조선

먼 데 섬은 먹색이다
들어가면 꽃섬이다

‘꽃섬’ 전문(全文)이다. 단 두 줄짜리 시다. 글자 수로는 16자다. 이 시를 딱히 대표시라고 보아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내가 가장 즐겨 암송하는 자작시임에는 분명하다. 나는 이 작품을 여러 행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 암송을 하고, 시화(詩畵)로도 만들어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 그림 그리는 이들에게서 이 시를 적은 부채를 여러 개 선물 받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내가 쓴 시 중에서 상당히 비싼 가격에 팔아본 시이기도 하다. 한국시인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가 뭐인가에 뽑혀 50만원이라는 큰돈을 받았으며, 커다란 플래카드에 적힌 채 마사회 건물에 한 달간 걸린 적도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몇몇은 수학적인 계산을 하여 글자 한 자당 3만원 넘게 받았으니, 날도둑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내 詩의 지향점 보여주는 ‘꽃섬’

이 작품을 고른 이유가 있다. 형식이 새롭거나 언어를 운용하는 맛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시의 지향점이 드러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멀리 보이는 섬들은 전부 먹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섬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풀이 있고, 나무가 있고, 새와 나비도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섬은 꽃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사람 또한 그러하다. 의미상 한 줄을 더한다면, ‘먼 데 섬은 먹색이다 / 들어가면 꽃섬이다 // 사람도 그렇다’로 하는 게 내용 이해를 위해서는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시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말이 있다면, 지워버리는 게 좋다. ‘너도 그렇다’거나 ‘사람도 그렇다’거나 ‘당신도 그렇다’ 같은 말은 독자가 알아서 붙이게 놔두는 것이 시를 굴리는 맛이 아니겠는가.

이 시의 처음은 두 줄짜리가 아니었다. 초안을 잡을 때는 열 줄가량 되었고, 열 줄에서 다섯 줄을 빼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다섯 줄이 되었을 때 나는 이 원고를 모 문예지에 발표하였다. 그랬더니 한국시인협회에서 연락이 왔다. 이달의 시로 뽑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원고를 다시 살폈다. 기분은 좋았지만, 여러 번 읽어보니, 무언가가 부족했다. 퇴고가 또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몇 줄을 새로 넣거나, 기존 내용을 바꾸어 써보았다. 그래도 잘 되지 않았다. 한 열흘 그 일에 매달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오히려 몇 줄을 지워버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과감하게 서너 줄을 빼버렸다. 그렇게 한 다음 가까운 사람들에게 읽혔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줄인 원고는 다음과 같았다.

먼 데 섬은 다 먹색이다
들어가면 꽃섬이다

하지만 ‘먹색’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데 있는 섬들은 모두 농담(濃淡)이 있는 ‘먹색’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검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먼 데 섬은 다 검다
들어가면 꽃섬이다’

이렇게 해보니 시가 선명해진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검다’가 더 분명해서 좋다는 의견과 ‘먹색이다’가 더 적확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나는 또 고민했다. ‘먼 데 섬은 다 검다’라고 하니 이미지가 선명해졌지만 ‘검다’라는 말로는 날씨의 변화에 따른 섬의 농담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묽은 먹물 색 같다가도 어떤 날에는 진한 먹색으로 변하는 섬의 색을 ‘검다’라고만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수묵화의 먹색처럼 농도의 차이로 사물을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검다’에서는 유화나 크레파스의 검은색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검은색이더라도 검을 현(玄)의 그 검은색처럼, 여름날 녹음이 짙어가며 검어지는 그 색이라면 마땅하겠는데, ‘검다’라는 말은 선명하기는 하지만, 먼 데 섬의 색을 드러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나는 ‘검다’라는 말 대신에 ‘먹색이다’라는 말을 선택했고, 그 원고를 한국시인협회에 보냈다.

대표 시 ‘꽃섬’의 배경이 된 전남 장흥 앞바다.

하지만 이것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다. 실생활에서 먹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독자(讀者)가 읽었을 때 의미 전달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예 먹을 한 번도 갈아보지 않고, 먹물을 써보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인데, 나는 벼루에 물을 붓고 몇 시간 동안 먹을 간 다음, 그 먹물로 농담을 조절하는 그 먹색을 말하고 있으니, 그것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또 고민했다. 이 작품을 재(再)수록하거나 인용할 기회가 많았는데, 어떨 때는 ‘먼 데 섬은 다 먹색이다’라고 했다가, 또 어떨 때는 ‘먼 데 섬은 다 검다’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에 시집에 넣을 때는 ‘먼 데 섬은 다 먹색이다 / 들어가면 꽃섬이다’라고 실었다. ‘검다’와 ‘먹색이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되씹고 되씹어서 ‘먹색이다’를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연시였던 작품의 연갈이를 하였는데, 이 시를 읽을 때는 좀 천천히 호흡을 하고 읽으라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책에 수록하였다고 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먼 데 섬은 다 먹색이다 / 들어가면 꽃섬이다’라고 하였을 때, ‘먼 데 있는 섬은 모두 먹색으로 보인다’라는 의미 전달은 분명한데, 읽다 보면 운율이 자꾸 걸렸다. ‘다’ 자를 빼고 읽으면, 운율은 부드러운데, 또한 너무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1연을 아홉 자로 잡고, 2연을 여덟 자로 썼을 때 약간의 어긋남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일종의 파격 효과를 보인 것이었다. 즉 1연과 2연의 불균형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고, 어색해 보이기도 한 것이었다. 내 호흡의 마디로 책에 실린 ‘꽃섬’을 읽어보면, ‘먼 데 섬은 / 다 / 먹색이다 // 들어가면 / 꽃섬이다’로 읽혔던 것이다.

시집에 이 작품을 넣고 나서 또 4년여가 지났다. 나는 최근 이 작품을 인용할 때, 1연에서 ‘다’ 자를 빼버리고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4년 동안 고민한 결과 ‘다’ 자의 두드러짐이 LP판이 튀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해 보였던 것이다. ‘다’ 자를 지우고 나니, 순해진 점은 있으나, 평범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결함이 덜한 이 모습의 원고를 택한다. 초고를 쓴 지 10년 만의 일이고, 초안을 발표한 지도 7년이 지났으며, 시집에 묶어 넣고도 4년이 지났다.

詩를 짓는 자세

먼 데 있는 섬은 먹색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섬이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하지만 아직도 이 작품은 미완인지 모른다. 아니 미완일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작품에 내가 다시 손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시를 짓는 자세라고 나는 믿는다. 여기 새로운 ‘꽃섬’이 있다. 나는 이렇게 꽃섬을 지어놓고, 거기에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나-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은, 한애와 뿌락데기를 살게 하고,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는’ 어머니를 모셔오고, ‘호계 고모네의 달구장태’를 지어놓는 것이다. 그 세계는 현실을 베꼈으되 단순한 현실 모방이 아니다. 10여 년 전에 내가 썼던, ‘모든 현실은 신화다’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 내가 시로 옮기는 현실은 다분히 신화적이어서, 나는 그것을 ‘신화적 리얼리즘’의 세계라고 한다. 거기에는 ‘물건 값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쓸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는 / 월평 할머니의 경제학이 통하는’ 천원집이 있고, 노선을 바꾸어서 무릎 아픈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셔다 주는 ‘아름다운 위반’을 하는 버스 기사가 있다.

‘기사 양반! 저짝으로 쪼까 돌아서 갑시다 / 어칳게 그란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 쓰잘데기 읎는 소리하지 마쇼 /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드마는… /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 저번챀에도 / 내가 모셔다 드렸는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꽃섬이다. 나는 아무래도 당분간은 내가 발견한 ‘꽃섬’을 다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그 섬은 ‘있는 세계를 바탕으로 한, 있어야 할’ 세계이다. 그리고 ‘끝내는 아름다움이고야 말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詩人이 만난 詩人

“전라도 사투리는 나의 살갗 같은 것”

⊙ 애달프고 흥건한 전라도 사투리에서 남도의 정서가 흠뻑 묻어나는 시인
⊙‌건설노동자·학원강사 하며 세상 떠돌다 24년 만에 歸鄕… 현재 천관문학관 청원경찰

이대흠 시인은 영랑(永郞金允植·1903~1950)과 미당(未堂徐廷柱·1915~2000), 다시 송수권(宋秀權)으로 이어지는 남도 서정의 알짜배기로 평가받는다. 그의 시에는 애달프고 흥건한 전라도 사투리와 억양에서 남도의 한(恨)과 정서가 흠뻑 묻어난다.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로, 광주로, 제주도로 떠돌다 이제 탯줄이 묻힌 장흥에 다시 뿌리를 내린 이대흠 시인을 만나러 천 리 길 장흥으로 찾아갔다. 장흥군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특구로, 노령산맥과 탐진강의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이 고장 출신인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의 문인과 문학을 마케팅 브랜드화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대흠 시인이 있다.

이대흠 시인은 시작(詩作)의 원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시인은 자기만의 사전을 가진 자(者)라는 전제에서 제 시의 에너지는 제가 알고 있고, 제가 운용하는 ‘언어’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전라도 태생이고, 전라도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는 전라도 사투리가 제 시의 에너지원이라 봐야겠지요. 제 시는 전라도라는 지역의 풍토를 바탕에 두고, 나와 내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사람들의 삶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는 나무나 풀이겠지요.”

고은 시인은 이대흠 시인에게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라는 성찬을 해주었다. 시대를 뛰어넘어 백석과 대비될 정도로, 전라도 사투리와 삶의 굵직한 안목이 배어 있는 맛깔스러운 언어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언어는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마음이 겉으로 발현되는 최초의 통로이며, 그것을 옮긴 것이 상형문자이다. 마음의 모양대로, 토착의 모양대로, 삶을 빼닮은 대로 생겨 먹은 것이 사투리, 방언이다. 방언이 우리 민족의 근원적 토속을 담은 언어라는 것이 이대흠 시인의 지론이다.

수많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촘촘히 배치

—시인에게 고향은 어떤 이미지이고,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존재는 완전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지요. 그래서 저는 곧 제가 태어난 전라도 장흥 만손리이고, 지금 살고 있는 못골이고, 장흥이고, 전라도고, 한반도인 셈이지요. 그중 내 몸의 거의 전부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고향은, 손톱눈만 한 다랑치도 그냥 놀리지 않는, 악착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어디 다녀올 때면 이바지를 가져와 나눠 먹는 곳이고, 끼니 거르는 집 토방에 보리쌀 한 됫박을 갖다주는 곳이고, 온갖 이해 다툼이 있는 곳이고, 이따금은 바람난 남자나 여자가 있는 곳이고, 그렇게 울퉁불퉁한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살아가는 곳이죠. 산과 강이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듯이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하나의 상징적 공동체이지요.”

—고향 말과 운율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특별한데, 작품을 위한 시인으로서의 전략인지 아니면 타고난 생래적 호흡인지, 궁금합니다.

“자라서 배운 말이 옷 같은 것이라면, 어려서 익힌 모어(母語)는 피부 같은 것이지요. 그리고 음성 상징어의 적절한 배치 및 운율에 대한 관심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지만, 조금 전에 비유를 했듯이 모어, 즉 전라도 사투리는 제게 있어서 피부, 살갗 같은 것이라 벗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시에는 같은 지역의 시인들도 미처 놓쳐버린 걸쭉한 남도 사투리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사투리는 우리 시단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랑의 세련된 사투리와는 질감이 다른 살아 숨 쉬는 표현으로, 소리 내어 시를 읊조리면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하기도 한다. ‘허뿍허뿍, 또륵또륵, 타랑타랑, 씌룽씌룽, 알눈알눈, 과냥과냥, 자응자응, 랑랑랑’ 등 수많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의 시가 더욱 각별한 것은 원형적인 음(音)들의 상징으로 가득 찬 시편 맞은편에 근대의 폭압적 역사와 문명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신화, 문명과 원시 사이에서 다채로운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이 공들여 쌓은 문법을 허물면서 늘 새로운 성채를 건축하기 위해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시가 이대흠의 시 세계이다.

그는 과거에 고향을 떠났다가 지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 그간의 삶의 여정은 어땠을까.

“먹고, 입고, 사는 문제였지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20년 정도 고향에서 살았고, 이후 1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는데, 공장 생활 2년 후에 대학에 들어갔고,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문대를 나왔고, 결혼했고, 전문대 나온 후에도 건설 현장의 노동자로 일했고, 서울 생활 청산하고 광주로 내려와 10년 살았는데, 광주에서는 카페를 3년 정도 했고, 실패했고, 이혼했고, ‘리장닷컴’이라는 사투리 뉴스 사이트를 2년 정도 운영했고, 또 입체 지도 사업을 3년쯤 했고, 그 후 논술학원 2년을 했는데, 광주에서 사업한답시고 손댔던 일은 모두 실패했고, 몸뚱이 하나 남아 제주로 건너가서 4년 살았는데, 입시학원 강사생활 2년쯤 했고, 남은 2년은 다시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했고, 그 후 고향으로 와 여러 가지 강의를 하면서 1년쯤 버티다가, 문학관에 일용직으로 들어가 1년 반쯤 일하다가, 청원경찰이 된 지 1년 반쯤 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잠시 헤맸다.

“한 권이라도 잘 팔리는 게 있다면…”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를 서각한 작품이 그의 방 한편에 놓여 있다.

—소설에 도전했던 이유는 뭔가요.

“기가 막힌 소설을 써서 대박 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시는 아무리 써봐야 2~3년에 한 권이지만, 소설은 산문이라서 1년에 몇 권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중 한 권이라도 잘 팔리는 게 있다면, (번 돈으로) 좋아하는 책 실컷 보고, 좋아하는 글만 쓰며 살고 싶었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이대흠 시인은 1994년 《창작과비평》에 시로 등단하고, 1999년에는 《작가세계》에 소설로 등단했다. 2007년에는 《청앵》이라는 장편소설도 출간했다. 타고난 재주와 욕심 때문에 시와 소설 창작을 함께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지만, 시인의 답변을 듣고 내심 놀랐다. 누구나 감출 법한 세속(世俗)된 욕망을 버젓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소설가와는 달리 세상 어디에도 시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시인은 없다. 시인의 또 다른 운명이기도 하다.

—이대흠 시인을 일컬어 ‘지역 문예일꾼’이라고도 합니다. 장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장흥의 문학특구 지정에 제가 힘을 보탠 것은 없고요. 전국문학인대회를 할 때 도와준 적은 있지요. 그것 하면서 마음고생 많았고, 오해도 많이 받았지요. 지금은 전혀 관여하지 않아요. 전국문학인대회는 이름까지 바꾸어서 다른 사람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고요. 다만 문예일꾼으로서의 역할은 조금 한다고 봐야겠지요. 천관문학관에서 하는 일이 이것저것 많아요. 제 명함에 찍힌 직책이 ‘관장’이지만 실제 직위는 청원경찰입니다. 관장 명함을 파서 가지고 다니라 해서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청원경찰로서 많은 행사를 주관하고, 기획하고 그러니, 어떻게 보면 조금 특이한 청원경찰이죠.”

시인은 “지역민들과 예술을 가지고 잘 놀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제가 기획한 일들은 일단 새로워야 해요. 남의 것 베끼는 것은 안 돼요. ‘달구지 콘서트’ ‘시골버스 타고 떠나는 문학 기행’ ‘상상력 소풍’ ‘문학의 섬’ ‘영화 보는 화요일 사람들’ ‘수요일의 런치 무비’ ‘나만의 자서전 쓰기’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달구지 콘서트’만 간단히 설명해 볼게요. 저는 기획사에 돈만 주면 부를 수 있는 가수나 연예인을 내세우는 행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콘서트를 하는 것이죠. 동화작가를 불러 자신이 쓴 동화를 직접 읽게 하거나, 판소리꾼을 불러서 탐진강변 잔디밭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다 놀게 만들고, 짚 공예품을 잘 만드는 동네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관객과 함께 망태를 만들며 노는 그런 방식이죠. 작년에 24회를 했고, 올해도 한 달에 한 번씩 해요. 다른 프로그램도 좀 특별하지요. 문학 작품이건 행사 기획이건, 창의성이 매우 중요해요. 물론 이런 일이 재미는 있지만 때론 힘들기도 해요.”

技法이 아닌 思惟의 깊이

고향의 삶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되새겨야 할 가치라고 말하는 시인의 눈에서 외갓집 뒤꼍의 황소 눈을 떠올렸다. 나(오른쪽)는 이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시인이 자신을 청원경찰이라고 하기에 처음에는 시인 특유의 은유적 표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농이 아님을 알고는 잠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시인은 ‘청원경찰’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청원경찰의 본업에 충실하신 분들에게 누가 되는 게 아닌지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직원 두 명의 문학관에서 하는 일치고는 너무 많아 보였지만, 고향에서 제 일을 찾아 열심으로 하는 시인의 모습에는 더 큰 흥이 그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음을 느꼈다. 문명과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뿌리인 고향으로 돌아와, 스스로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삶 역시 시인의 몫이다.

—출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큰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기도 하고요. 원고는 두 권 분량쯤 있는데, 아직 정리를 못했어요. 틈내서 ‘집’ 모양을 그려 보아야 시집으로 보낼 것인데, 집 짓는답시고 목재만 잔뜩 구입해 놓은 사람처럼 손 못 대고 있네요. 머릿속으로는 ‘탐진강’ 연작 중심의 시집 한 권과 다른 원고들을 분리해서 두 권으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대흠 시인은 올해로 등단 20년을 넘겼다. 그는 시의 본령은 기법(技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思惟)의 깊이에 있다고 말하면서, 시인을 제사장에 비유했다. 어찌 인간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시가 한 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지겠느냐며, 아직껏 시라는 걸 쓰면서 자신은,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시들을, 자기 혼자 썼다고 믿지 않는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빌려 쓴 것이고, 그 누군가란, 영혼이 있다고 믿는 온갖 동물이나 식물들 그리고 작은 돌멩이들, 내 안에 든 무수한 죽음들이며, 자신은 그들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에 자신의 이름을 달 뿐이라고 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따스한 삶을 위해 이대흠 시인이 천착하는 가치는 바로 고향의 정서(情緖)다. 가난하지만 서로 참견하고 손잡아주고,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갔던 고향의 삶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되새겨야 할 가치라고 시인은 에둘러 말했다. 크지 않은 키에 뚝심 좋게 생긴 시인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외갓집 뒤꼍의 황소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인터뷰하는 내내 들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자리를 나섰다.⊙

<김병호 시인·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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