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100억원 세금폭탄 맞은 최원석 前 동아그룹 회장의 끝나지 않은 싸움 : 월간조선

최원석(崔元碩) 전 동아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법인 공산학원이 올해 초 세무당국으로부터 100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하라는 세금폭탄을 맞았다. 공산학원은 1977년 동아그룹이 세운 학교법인으로,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대전 소재)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경기도 안성 소재)를 운영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09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증언했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최 회장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들이 그에게 있었다. 올해 초 증여세 100억원을 부과받은 데 앞서, 작년 여름 물놀이를 갔던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전에는 국세를 체납했다며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출금조치가 부당하다며 2년6개월간 법정 투쟁 끝에 승소했다. 그러나 상처뿐인 싸움이었다. 골프 회원권을 둘러싼 세금 탈루 혐의도 받았다가 무혐의 처분됐다.

대전MBC 주식 증여세 부과 개요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2년 8월, 최원석 회장은 대전MBC 주식 9만8000주(비상장·지분율 49%·추정가액 약 165억원)를 공산학원에 출연했다. 그러자 예금보험공사는 최 회장의 대전MBC 주식 출연을 ‘사해(詐害)행위’로 판단, 법적조치를 취했다. 쉽게 말해 동아건설이 대한종금에 진 빚 180억원을 최 회장이 갚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재산을 엉뚱한 곳(학교법인)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법원은 대한종금이 낸 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각 받아들였고 재판이 진행되는 4년 동안 압류하고 있다가 2008년 5월 경매처분했다.

관할 세무서인 평택세무서는 2002년 최 회장으로부터 대전MBC 주식(지분 49%)을 출연받은 공산학원에 올해 초 증여세 97억6640만원을 내라고 처분했다. 증여세는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가산금이 붙어 17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평택세무서는 지난 4월 학교법인 소유의 부동산을 압류조치했다.

아들 잃은 후 건강 급속히 악화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공산학원은 올해 초 세무당국으로부터 100억원의 증여세를 납부하라는 세금폭탄을 맞았다. 공산학원은 동아방송예술대와 동아마이스터고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최 회장은 학생들과 자주 어울리곤 했다.

작년 여름 아들 사망 소식에 그를 만났지만 그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학교법인이 증여세를 부과받자 “김대중 정부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 더 이상 나로 인해 학교법인까지 어렵게 할 수는 없다”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는 “동아그룹 해체 전말과 관련해 2009년 《월간조선》과 인터뷰할 때는 밝히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도 밝히겠다”고 했다.

작년 여름, 아들이 물놀이를 하다 사고를 당한 직후 최 회장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주변에서는 “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뇨 등 여러 지병을 앓고 있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걷지도 못했다. 그러던 작년 겨울 초입 어느 날, 자식을 먼저 보낸데다 선대(先代) 회장이 물려준 기업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불명예를 안고 세상을 마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병원 치료에 적극 임했고 고강도 식이요법도 취했다. 최근 들어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 대면(對面) 인터뷰와 몇 번의 전화 취재로 이뤄졌다. 인터뷰에는 최 회장의 3남 최용혁씨가 배석했다. 용혁씨는 2006년부터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2008년 귀국했다. 이후 몇몇 금융기관에서 있다가 올해 2월 공산학원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최용혁 이사는 부친의 답변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동아방송예술대는 어떤 학교입니까.

“1997년에 설립한 전문대학입니다. 방송, 예술 분야의 전문인력을 키우려고 세웠지요. 시설과 교육 내용이 좋다 보니 매년 경쟁률이 최고입니다. 2014년도 수시입학 경쟁률이 200대 1이나 됐어요.”

—공산학원이 동아마이스터고(舊 대전동아공고)를 세운 건 훨씬 이전이죠.

“공산학원 설립 이듬해인 1978년에 문을 열었어요. 개교 초기 전교생이 1500여 명에 달했는데 수업료 무료에다, 전교생이 저렴한 비용에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공산학원은 설립 때부터 동아건설과 대한통운 주식 각각 20만 주씩 총 40만 주를 보유한 부자(富者) 법인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이익금으로 학교재정을 뒷받침해 왔다. 덕분에 동아마이스터고는 개교 때부터 1996년까지 19년간 정부의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학교를 운영, 전국에서 재정자립형 사립학교로 손꼽힐 정도였다. 동아그룹이 해체되기 전 공산학원은 동아그룹의 주력기업 대한통운의 지분 6%(87만 주)를 보유한 대한통운 2대 주주였고, 그 외 동아건설 지분 3%, 동아TV 지분 20% 등 동아그룹의 계열사 주식을 상당수 보유한 대주주였다.

국세청의 입장

국세청은 공산학원이 지난 4월 감사원에 증여세 심사청구를 한 데 대해 “증여세 부과는 정당하다”며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감사원에 서면으로 제출했다. 아래는 국세청의 입장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가. 최원석은 공산학원에 주식을 출연할 당시 대전문화방송(주)의 주식 49% 지분을 소유한 자로 소액주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원석과 대전문화방송은 특수관계자로 청구인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단서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7조 및 68조에 따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 부과제척기간을 1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과세 당시 증여세 부과제척기간이 지나지 않았다. 또 청구인이 주장하는 소멸시효는 국세 부과가 이뤄진 후 시작되는 것으로 소멸시효는 계속 진행 중이다.

다. 증여세 과세의 기초가 된 자료는 공산학원의 증여 혐의가 확인된 자료이다. 이는 국세기본법과 시행령의 개별 조항(세무조사를 다시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 각종 과세자료의 처리를 위한 재조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복조사가 아니다.

라. 출연한 주식이 출연자의 채무에 충당되었다 하더라도 당초 출연재산에 대한 공익법인의 납세의무는 소멸되지 아니한다.>

2007년 이미 서울지방국세청이 문제없다고 처분

—2002년 공산학원에 대전MBC 주식을 출연한 것을 두고 올해 초 관할 세무서인 평택세무서가 학교법인에 100억원의 증여세를 내라고 했습니다.

“공산학원이 내가 출연한 주식을 실제로 갖고 있던 기간은 20일에 불과해요. 학교법인으로서 수익을 얻은 게 없었지요. 그런데 1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학교법인더러 주식을 증여받았으니 100억원의 세금을 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동아건설이 파산처리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문제는 안 생겼을 겁니다. 대전MBC 주식을 빼앗긴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세금까지 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대전MBC 주식을 왜 공산학원에 출연했습니까.

최 회장은 대전MBC를 인수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했다.

“1972년에 대전MBC를 인수했습니다. 동아그룹은 오래전부터 방송 미디어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었죠. 1980년 11월, 당시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언론사를 통폐합하자 갖고 있던 지분 51%를 문화방송 본사에 팔았고, 나머지 지분 49%는 그대로 보유했어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 출범 3개월째 되던 1998년 5월,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던 탓인지 당시 동아건설의 주거래 은행인 서울은행으로 하여금 내가 갖고 있던 동아그룹 주식 전부를 내놓게 했습니다. 나를 향해 검찰수사도 곧바로 시작됐어요. IMF 직후 국난 극복이라는 명목하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던 거지요. 어쩔 수 없이 나는 모든 계열사 주식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전MBC 주식은 그대로 갖고 있었어요. 대전MBC는 그룹 계열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식을 내놓을 이유가 없었던 거죠. 동아방송예술대 개교를 준비하면서 대전MBC 주식을 법인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약속을 지키려고 공산학원에 출연한 겁니다.”

인터뷰에 배석한 최용혁 이사는 세무당국의 증여세 부과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미 2007년에 서울지방국세청이 주식 출연행위에 대해 증여세 해당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 결과 ‘무혐의’로 종결처리됐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다시 세금을 부과한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공산학원은 기업이 아닙니다. 대전MBC와 특수관계도 아니지요. 따라서 관련 법에 따라 증여세 부과는 부당합니다.”

최원석 회장은 “억장이 무너질 일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참고 살아왔다. 그런데 분신 같은 학교법인에 세금 100억원을 내라고 하는 것은 ‘학교 문을 닫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끊이지 않는 사건들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은 37억 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공사를 수주, 완공했다. 그러나 62억 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를 하는 도중 동아그룹은 해체됐다.

최 회장이 국가에 대해 억울해 하는 것은 또 있다. 2011년 당시 법무부가 최 회장이 양도소득세 6억여 원을 체납했다는 이유로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이다. 양도소득세가 최 회장에게 부과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98년 5월 최 회장이 동아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직후인 5월 21일, 당시 서울은행은 최 회장 소유 36개 부동산에 대해 20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동아건설이 파산선고를 받은 직후에는 근저당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모두 양도했다. 자산관리공사는 2001년 12월부터 경매를 통해 최 회장의 전(全) 재산을 처분했는데 이 과정에서 세무당국은 부동산 원소유주였던 최 회장에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즉 정부 당국이 개인 재산을 처분하고서 양도소득세는 원주인에게 내라는 것이었다.

이후 당국은 매년 최 회장에게 양도소득세를 납부하라고 독촉했고 마침내 2011년 법무부가 국세 체납을 이유로 최 회장에게 출국금지처분을 내렸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최 회장은 정부를 상대로 출국금지 취소소송을 냈고 2년6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승소했다.

“김대중 정부 때 부과받은 양도소득세는 낼 돈도 없지만 낼 수도 없습니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그룹 해체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꼴 아닙니까. 세금 체납을 이유로 10년이 지난 2011년 갑자기 출국금지까지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해외에 나갈 일도 없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마침내 재판부는 내가 세금을 체납한 데 대해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했지요.”

최 회장은 고액체납자 사건이 터질 때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함께 거론된다. 사정을 잘 모르는 기자들은 최 회장이 수백억~수천억 원을 체납했다고 보도하곤 했다. 그런데 최 회장이 체납한 정확한 액수는 6억6600만원이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에 따라 2010년부터 7억원 이상 체납한 고액·상습체납자 1695명의 명단을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체납액이 가장 많은 이는 김우중 전 회장이다. 그는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두 번째로 많은 정태수 전 회장은 2225억원의 국세를 체납하고 있다. 최 회장은 7억원 이상 체납자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국은 그를 ‘고액체납자 12명’에 포함시켜 특별관리하고 출국금지조치까지 취했다가 패소했다.

최 회장은 이런 일도 겪었다. 이른바 미국 골프장 회원권 매각에 따른 증여세 탈루 의혹이다.

“1997년 동아그룹 회장으로 있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한 골프장의 회원권을 샀던 적이 있어요. 그 당시 7만5000달러(약 8000만원)에 구입했지요. 동아그룹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미국에 살고 있는 전 부인(장은영)의 친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전처(前妻)에게 줬습니다. 그런데 이혼하는 과정에서 전처가 회원권을 되돌려줬어요. 미국에 골프를 치러 갈 처지가 못 돼 1억여 원에 처분했는데 이에 대해 국세청이 나와 아들을 증여세 탈루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겁니다. 그 일로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어요. 국가가 나를 왜 그렇게, 끊임없이 힘들게 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동아그룹 해체, 국가 차원의 조사 이뤄져야

양도소득세 부과, 국세 체납에 따른 출국금지조치, 골프 회원권 증여세 탈루 의혹, 공산학원 100억원 규모 증여세 부과 등 1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정부당국 조치의 시발점을 찾아가 보면 이 모든 게 동아그룹 해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 회장은 “나의 모든 불운(不運)은 김대중 정부가 자행한 동아그룹 해체에서 시작됐는데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동아그룹 해체는 아주 나쁜 전례를 남긴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동아그룹 해체의 전모(全貌)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그룹의 주력기업인 동아건설은 1970년대 초반부터 해외건설을 통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사태를 틈타 동아건설과 사실상 ‘한몸’이었던 대한통운을 매각해 이득을 챙기려는 검은 정치세력에 의해 동아건설은 파괴됐어요. 반세기에 걸쳐 피땀으로 이룩한 기업을 강탈하고 말살시킨 과거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아건설은 1945년 최원석 회장의 부친인 최준문(崔竣文) 회장이 대전에서 설립한 충남토건사를 모체(母體)로 출발했다. 1950년대 대천방조제 공사, 1960년대 동진강 간척사업 등 주로 간척공사와 농업토목공사를 진행하며 사세(社勢)가 확장됐다. 1968년 경영부실에 허덕이던 국영기업 대한통운을 인수해 5년 만에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 건설·운송 양대 체제로 그룹 골격이 갖춰졌다. 동아그룹은 1970년대 동아건설의 중동 진출 성공과 대한통운의 발전에 힘입어 사세가 급신장했고, 1987년 종업원 3만여 명의 기업군으로 발전했다.

동아그룹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1977년 공산학원을 설립해 대전동아공고를 세웠고, 1983년에는 서울 원효대교를 건설해 국가에 헌납했다. 1996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도 세웠다.

1983년에는 37억 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공사를 수주했고, 1990년 62억 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를 수주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 토목공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97년 말 재계 10위였던 동아그룹은 자산총계 상위 100대 기업 중 동아건설 16위·대한통운 84위, 부가가치 순위는 동아건설 17위·대한통운 21위였다.

동아건설은 창립 이후 3800건의 국내 공사를 진행했고, 1972년 해외에 진출한 후 130건의 해외 공사를 수행했다. 최원석 회장이 회사를 떠나기 직전인 1997년에는 미국 《ENR(Engineering News Report)》지(誌)가 선정한 세계 100대 건설사 중 42위에 오르기도 했다.

동아그룹은 최원석 회장이 물러난 1998년 5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됐다. 2000년 6월부터 대한통운 매각을 둘러싸고 대한통운 경영자와 채권단 간 경영권 인수다툼이 발생했는데 인수협상이 결렬되자 뜻밖에도 동아건설 워크아웃이 중단됐다. 2000년 11월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 부도처리 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5월 동아건설이 파산선고를 받아 동아그룹은 완전히 사라졌다.

동아건설 정상화시킨다는 이유로 全 재산 몰수

—발단이야 어쨌든 최 회장 스스로 동아그룹 경영권을 포기하고 재산을 내놓은 게 아닌가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당시 동아건설 주거래 은행이었던 서울은행장이 다짜고짜 내게 ‘동아그룹 계열사 전체 주식과 전 재산을 다 내놓고 경영권을 포기하고 물러나라. 동아는 우리가 살려내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최 회장 당신에게는 대한통운 자회사 2개(대한통운협진, 국제운송)를 생계 차원에서 넘겨주겠다’고 했어요. 당시 정권의 입김이 들어간 거였어요. 주거래 은행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선친이 설립한 동아그룹 전체가 날아갈 판이었기에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어요. 기업은 기존 대출이 연장이 되지 않고 신규 대출까지 막히면 우량기업도 망할 수밖에 없어요. 당시 IMF로 인해 동아그룹을 포함한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었어요. 권력을 잡은 세력이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을 회수하게 하면 꼼짝 못하고 당해요.”

—그렇다면 경영권만 포기하지 왜 개인재산까지 내놨습니까.

“경영권은 물론 재산까지 내놓으라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너무나 놀라 소름이 끼쳤어요. 얼마나 무서운 계획이 있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아주 무서웠습니다. 물론 당시 서울은행장이 ‘최 회장이 현직에 있으면 지원해 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고, 매립지(김포매립지)도 최 회장이 있는 상태에서는 용도변경을 할 수가 없다. 특혜시비가 붙는다. 은행에 모든 것을 맡기면 잘 처리하겠다’는 얘기도 했지요. 나 때문에 동아그룹 전체가 날아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것만은 막아야 된다는 생각에 그들의 요구대로 모든 재산을 내놓고 물러난 거예요.”

—서울은행장이 주겠다던 두 회사는 받았습니까.

“새빨간 거짓말이었지요. 문중(門中) 선산까지 다 빼앗아갔잖아요.”

—지금의 인천 청라지구 땅도 원래는 동아건설 소유였는데 이건 어떻게 뺏겼나요.

“1997년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김포매립지 개발을 공약했어요. 새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98년 4월, 나는 김포매립지 개발 외자(外資) 유치를 위해 프라이스워터하우스(다국적 회계법인)와 40억 달러 규모의 외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입장을 바꿨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식량안보에 직결된 우량농지 보존을 위해 힘쓰겠다. 주곡 자급 문제는 모든 정책에 우선돼 추진돼야 한다’며 김포매립지 개발에 반대했던 겁니다. 김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한 달도 안 돼, 나는 동아그룹 경영권과 개인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됐어요. 한 달 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지요.”

김대중 정부가 동아건설의 김포매립지 용도변경 신청을 불허한 지 4년 뒤인 2002년 7월, 정부는 “김포매립지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다. 김포매립지는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인천청라지구 개발’이라는 간판을 달고 평당 814만원에 분양됐다. 380만 평에 달하는 김포매립지의 전체 자산가치는 30조원에 달했다.

1999년 동아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정부가 동아건설로부터 김포매립지를 매입한 가격은 6300여억 원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용도변경을 통해 정부가 수십 배의 땅장사를 한 셈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한통운 매각 착수”

동아그룹의 주력기업은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었다. IMF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던 동아건설과 달리 대한통운은 그야말로 알짜기업이었다. 최 회장은 “DJ 정부가 대한통운을 정권 내내 집요하게 매각하려 했는데 여기에 동아그룹 해체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대한통운 매각 과정은 어떻게 진행된 것일까. 당시 언론 기사를 통해 유심히 살펴봤다.

1998년 5월 최 회장이 동아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직후 정부는 건설부장관을 지낸 고병우씨를 동아그룹 회장에 선임했다. 고 회장은 1998년 6월 5일 동아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대한통운을 매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기업 구조조정은 그룹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모(母) 기업이 살 수만 있다면 대한통운 등 이익을 내는 기업을 굳이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세계일보》 1998년 6월 6일자).

고 회장은 취임 3일 뒤에는 서울은행을 방문해 “채권금융단이 자금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며 동아그룹 살리기에 의욕을 보였다(《한국일보》 1998년 6월 11일자).

그런데 일주일 뒤 고 회장은 기존 입장을 번복한다. 그는 취임 11일째인 1998년 6월 16일 “건설업체가 물류업체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다. 대한통운을 매각하기 위해 4~5개 외국업체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동아일보》 1998년 6월 17일). 3개월 뒤에는 “대한통운을 1조5100억원에 동아건설과 합병한 후 매각하겠다. 대한통운 매입의향서를 제출받은 2개 국내업체와 4개 외국업체의 매입조건을 검토한 뒤 내년(1999년)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하겠다”고 했다(《동아일보》 1998년 9월 16일).

고병우씨는 왜 갑자기 자신의 뜻을 바꿨을까.

그는 2003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때 대한통운 매각의 원점(原點)을 밝힌다. 그는 “대한통운 같은 좋은 회사를 팔아서 동아건설을 살리는 것이 IMF 구조조정의 모형이라고 말씀하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에 따라 동아그룹 구조조정에 착수했다”고 진술했다. 대한통운을 매각하라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과 달리 당시로서는 대한통운은 팔릴 형편이 못 됐다. 리비아 공사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대한통운을 판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아무튼 대한통운 매각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런데 갑자기 동아건설과 합병 후 매각하겠다는 새로운 방안이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기업매각이란 회사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는 지분을 넘기는 것을 말하는데, 당시 서울은행이 최 회장에게서 받은 대한통운의 지분은 8%에 불과했다.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는 지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대한통운을 곧바로 매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당시 대한통운은 동아건설에 대해 7000억원 상당의 지급보증 문제도 걸려 있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대한통운을 매각할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묘책이 대한통운을 동아건설과 합병한 후 물류·운송 부문을 분리해 매각하는 방안이었다. 이런 방안을 짜내는 동안 1999년 한 해가 흘러갔다.

경영권 인수 문제로 대한통운과 동아건설 동반 부도

대한통운 매각을 통해 검은 돈을 마련하려 했던 세력들이 동아건설을 고의로 부도냈다가 여의치 않자 부도, 파산 책임을 최 회장에게 물렸다는 게 최 회장의 주장이다. 사진은 부산항 대한통운 테이너터미널.

2000년 들어 정권의 뜻을 읽은 서울은행이 해결사로 나섰다. 서울은행은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에 지급보증한 채무 7000억원 가운데 5500억원을 탕감해 주는 대신 남은 1500억원을 대한통운 주식 3000만 주로 출자전환시켜 경영권 지분 49.4%(6440만 주 중 3180만 주)를 확보하려 했다.

그런데 대한통운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당시 서울은행을 움직였던 정권 핵심축과는 별도의 또 다른, 강력한 축이 대한통운의 경영진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대한통운을 놓고 DJ 정부의 두 세력이 패권다툼을 벌인 것이다.

그 무렵 대한통운 경영진은 자본금 1000억원(2000만 주)을 증자하면서 주식 400만 주를 우리사주에 배정했다. 이로 인해 우리사주는 대한통운의 최대주주가 됐다. 서울은행이 대한통운을 매각하기 힘들어진 상황에 몰린 것이다.

당시 대한통운 노조는 경영진과 보조를 맞췄다. 2000년 7월 3일 대한통운 노조는 “서울은행의 대한통운 경영권 장악 및 매각 음모를 결사 반대한다. 3000만 주의 출자전환(46.6%) 후 경영권 장악 및 매각으로 프리미엄까지 1조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챙기겠다는 음흉한 저의가 숨어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다.

결국 서울은행은 2000년 10월 말 동아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을 돌연 중단하고 동아건설을 부도처리한다. 동아건설이 부도나자 동아건설에 지급보증을 했던 대한통운도 동반 부도났다. 두 회사는 2000년 11월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법원은 법정관리 개시결정을 내린 지 불과 2개월여 만인 2001년 2월 8일, “동아건설은 청산하고 대한통운은 M&A로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한다. 3개월 후인 2001년 5월 마침내 동아건설은 파산선고를 받았다. 한 달 뒤 6월 12일, 대한통운 관계인집회에서 대한통운 보유 자사주 125만 주는 소각하고, 3315만 주는 6대 1의 비율로 감자(減資)하는 결정이 났다. 동시에 금융기관 정리채권 중 2713억원을 출자전환함으로써 서울은행 등은 마침내 대한통운 지분 60% 이상을 확보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통운을 매각하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대한통운은 2001년 6월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 인가를 받은 후 같은 해 10월 12일, 줄리어스캐피탈(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을 매각주간사로 선정했다. 그런데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 맡고 있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복병으로 등장한다. 대한통운 매각작업을 지휘하고 있던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는 마침내 2002년 7월 12일 “현재 진행 중인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매각을 추진할 경우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돼 매각작업을 중단키로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법원과 매각주간사는 대수로 공사 중단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등 여러 방안을 추진했지만 마땅한 인수기업을 찾지 못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던 대한통운 매각은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어갔다.

리비아 리스크 문제로 대한통운 매각 중단돼

1998년 5월 동아그룹 오너 최원석 회장을 경영에서 퇴임시킨 직후인 같은 해 6월부터 대한통운 매각에 착수, 2002년 7월 리비아 리스크 문제로 대한통운 매각이 전면 중단되기까지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한통운은 2004년 12월 동아건설이 맡았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인수한 후 2005년 12월에서야 리비아 정부로부터 예비완공증명서(PAC·Preliminary Acceptance Certificate)를 받게 된다. 대한통운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대한 하자보수 의무가 해소된 2008년 1월, 공개경쟁 입찰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됐다. 최종 매각까지 10여 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금호는 대한통운을 인수한 지 3년 만에 CJ에 매각했다. 2008년 1월 새해 첫 주에 발간된 한 주간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연초부터 대한통운의 매각일정과 새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에 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10곳 중 수년간 변함없이 대한통운 인수 의사와 자신감을 공공연히 밝혀온 유일한 곳이다. 법정관리기업인 대한통운의 새 주인은 이달 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다음달 최종계약이 맺어진다. 일부에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강력한 인수의지 표명을 정치적 논리에서 바라보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대한통운 인수의지는 미스터리란 시각도 나온다. 과거 10년간 특혜의혹 속에 급성장해 온 금호아시아나가 노무현 정권에서 마지막으로 인수할 수 있는 것이 대한통운이란 관측에서다. ‘대우건설 인수로 진을 뺀 금호아시아나가 수조 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어떻게 끌어댈 수 있을 것이냐’에도 관심이 모인다. 2002년 취임 뒤 그룹의 외형성장을 주도해 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그는 대한통운 인수와 관련, 수년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지’와 ‘자신감’을 비쳐왔다. 다른 희망 기업들이 비교적 관심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의향을 보여온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대한통운 인수에 적극 관심을 보여왔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금호그룹이 2000년 2월, 동아그룹의 계열사였던 동아생명을 단돈 1000원에 매입한 점이다. 《월간조선》은 2009년 12월호를 통해 이 사실을 보도했다.

<최 회장이 물러난 지 두 달 만에 동아증권은 당시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기술투자에 21억원에 넘어갔다. 당시 동아증권을 인수했던 김형진(金亨珍)씨는 5개월 만에 500억원을 벌었다고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동아그룹의 헐값 매각은 계속됐다. 부천 동아시티백화점은 476억원(당시 시가 1200억원), 호주 골드코스트골프장 및 주택단지는 190억원(투입금액 960억원), 공시지가 1조원이었던 김포매립지(1256만m2)는 6300억원 등에 ‘땡처리’됐다.

동아그룹 계열사 매각의 하이라이트는 2000년 2월 금호그룹에 매각된 ‘동아생명’이었다. 최근 《월간조선》이 입수한 ‘동아생명 인수에 관한 계약서’에 따르면, 1999년 연말 동아생명에 공적자금 1조1000억원이 투입되고 두 달 후인 2000년 2월 18일 단돈 1000원에 매각됐다. 양 당사자가 체결한 계약서에는 관련 내용 공개 금지 조항도 들어 있었다. 계약서 14조에는 ‘각 당사자는 상대방과 사전 협의 없이 본 계약서의 존재와 내용을 공중(公衆)에 공개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공적자금 1조원 이상이 투입된 회사를 단돈 1000원에 사들인 금호그룹. 대한통운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한통운을 4조원에 매입했다. 만약 1999~2000년에 어떤 기업이 1조5000억원에 대한통운을 인수했다면 아마도 큰 이득을 봤을 것이다.

“사실관계 모른 게 아니라면 국민 속이려 한 것”

1998년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항간에는 권력 핵심부에 접근한 ‘IMF 3인방’이 회자됐다. 이들은 금융지식과 외국인 인맥, 친화력을 무기로 IMF와 금융위기의 개념조차 낯설었던 정권 핵심인사들에게 IMF 위기극복에 대해 조언했다고 한다. IMF사태 직후 정부가 취한 부실기업정리, 기업구조조정, 기업의 인수합병, 부실채권정리, 공적자금투입 등 정책과 집행에 깊이 관여하면서 고위 관료들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IMF 당시 M&A 시장의 최대어(最大魚)는 대한통운이었다. 대한통운이 이들의 공략대상이 됐을 것이란 추론은 쉽게 할 수 있다.

1998년 6월 정부에 의해 동아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병우씨는 당초 대한통운 매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그는 2003년 검찰조사를 받으며 “대한통운 매각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 털어놨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대한통운은 리비아 공사 등 외부적 요인으로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원석 회장의 말이다.

“나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내가 갖고 있던 대한통운 지분만 뺏으면 대한통운 매각이 금방이라도 성사될 줄 알았던 거죠. 내가 동아그룹을 떠난 지 한 달도 안 돼 대한통운 매각을 발표하며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 겁니다. 대한통운은 지배구조상 서울은행이 매각할 수 있는 그런 기업이 아니었어요. 리비아 공사 건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그런데 당시 정부는 리비아 공사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쉽게 매각할 수 없었던 대한통운을 DJ 정부가 팔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8년간 근무하다 2001년 동아건설이 파산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떠나야 했던 송연호(宋連鎬) 동아건우회 사무총장의 말을 들어보자. 송 총장은 회사를 떠난 후 지금까지 동아건설 파산의 진실을 추적해 왔다.

—고병우씨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통운을 팔아서 동아건설을 살리는 게 IMF 구조조정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은 공사금액이 100억 달러(韓貨 12조원)에 달하는 리비아 공사에 관련해 연대책임을 갖고 있던 공동계약자였습니다. 대수로 공사 도중에 대한통운을 매각할 경우,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은 더 이상 리비아 공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럴 경우 20억 달러(2조4000억원) 상당의 배상금을 리비아 측에 지급해야 했어요. 당시 대한통운을 1조5000억원에 팔아서 그 돈으로 동아건설을 회생시킨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입니다. 대통령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몰랐거나 아니면 동아그룹과 국민을 속이려 한 것에 불과합니다.”

—매각 얘기가 나왔을 때 실제로 리비아 측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까.

“물론입니다. 2001년 2월 법원이 동아건설에 대한 청산 방침을 전격 발표하자 리비아 발주처는 13억 달러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내야 한다며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관할법원(서울중앙지법)에 신고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대한통운을 수년 동안 매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국민들은 지금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대한통운, 최원석으로부터 강탈해 간 臟物”

—대한통운을 매각하면 리비아 측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동아그룹 주거래 은행이었던 서울은행은 알지 못했을까요.

“몰랐을 리 없어요. 서울은행은 1980년대 초부터 2001년까지 20년간 동아건설의 주거래 은행이었습니다.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의 리비아 대수로 1, 2차 공사의 공동계약 및 연대보증책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던 금융기관입니다. 더구나 서울은행은 1998년부터 리비아 현장에 은행직원을 상주시켰습니다. 13억 달러 상당의 손해배상금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견됐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3월 당시 법원이 동아건설에 대해 법정관리 폐지결정을 내렸을 때 서울은행 등이 법원의 결정에 항고를 하지 않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매각 지시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요. 당시 서울은행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합니다.”

—오랫동안 동아건설 파산, 동아그룹 해체 과정을 추적해 왔는데 이 사건의 핵심은 뭐라고 봅니까.

“국가권력이 해외에서 일하던 자기 나라의 기업을 고의로 망가뜨린 행위는 매국(賣國)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알짜기업 대한통운을 매각해 검은 돈을 챙기려던 권력이 동아건설 부도·파산 과정을 통해 대한통운을 매각하려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되자 부도·파산의 책임을 그룹 오너와 전(前) 경영진에게 뒤집어씌운 기업파괴사건임이 분명합니다.”

동아그룹 오너였던 최원석 회장은 동아건설 파산과 대한통운 매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통운, 그거 동아그룹에서 훔쳐간 장물(臟物)입니다. 대한통운을 빼앗은 후 동아건설 살리는 데는 쓰지 않고, 도리어 동아건설을 죽이는 데 이용했으니 장물이 아니고 뭐겠소. 동아건설을 정상화 못 시켰으니 대한통운은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동아건설 파산 책임 뒤집어쓴 후 각종 민·형사 재판에 휘말려

최 회장은 1998년 5월 회사에서 물러난 직후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수억 달러 규모의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에게 온갖 혐의가 더해졌다. 해외 비자금 및 자금 해외도피 혐의, 재산 해외은닉 혐의, 동아건설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혐의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1998년 7월 초부터 1999년 12월 말까지 1년6개월간 최 회장 주변을 집중 조사했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1999년 12월 29일 수사를 종결했다.

그는 2002년 들어 금융감독위원회 공적자금합동수사반에서 다시 조사를 받았다. 동아그룹 회장을 지낸 고병우씨는 “IMF 공적자금 탕진과 동아건설은 전혀 무관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럼에도 당시 예금보험공사는 우리은행 등 8개 금융사 측에 최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지시했다. 또 대한종금 관재인에게는 최 회장의 대전MBC 주식 출연한 행위에 대해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대한통운 매각이 뜻대로 안 되자 동아건설 부도·파산의 책임을 그룹 오너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게 최 회장의 입장이다.

동아건설 퇴직 임직원의 목소리

동아건설에서 한솥밥을 먹던 임직원들의 모임 ‘동아건우회(東亞建友會)’의 강우명 회장은 “동아그룹의 공중분해 및 동아건설 파산 처리는 국가권력이 국민의 공적자금을 이용해 기업을 부정한 방법으로 사냥하고 파괴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IMF사태 당시, 30조원 상당에 이르는 김포매립지 등 우량자산을 보유했던 동아건설은 유동성 위기에 몰려 공중분해 된 데 반해, 현대건설은 2000년 한 해에만 3조원의 부실을 털어내며 자본이 잠식됐음에도 채권단이 차입금의 60%를 출자전환(2조1381억원)해 주고 7500억원의 전환사채도 보증해 줬다. 또 17조원의 자본잠식(1999년)이 발생한 대우(대우건설+대우인터내셔날)에 대해서는 9조5000억원의 부채탕감과 1조원 이상 출자전환을 해줬다”며 “당시 동아건설의 경쟁사였던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현재 정상적으로 기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동아건설 부도 및 파산에 대한 책임을 최원석 회장과 동아건설 경영자들에게 전부 뒤집어씌우는 바람에 지난 10년간 수많은 민·형사 재판에 휘말려 신체적·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강 회장은 주장했다.

그는 또 “리비아 등 해외에서 열심히 공사하던 국내 기업을 고의로 망가트린 행위의 옳고 그름은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집안 풍비박산 내고 회사 해체한 이유가 뭔지 묻고 싶어”

한편, 예금보험공사의 지시에 따라, 우리은행 등 8개 금융기관은 2003년 최 회장을 상대로 16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 회장은 이 소송에서 져 ‘패소판결금’ 160억원과 지금까지 내지 못한 이자 340억원 등 총 500억원을 물어야 할 처지가 됐다.

최 회장의 말이다.

“내가 물러날 당시 동아건설은 자산(資産)이 부채보다 월등히 많았고 자산가치 30조원에 달하는 김포매립지까지 보유했었어요. 그런 동아건설은 물론이고 내 집과 문중 선산까지 몰수해 간 것도 모자라 사기대출 혐의를 내게 뒤집어씌워 500억원을 물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디에다 호소해야 합니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첫 번째 손본 기업이 동아그룹입니다. 검찰은 그때 내가 비자금을 수억 달러 조성했다며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까. 동아그룹을 살리겠다고 전문경영인을 앉혀놓고는 오히려 그룹을 산산조각냈습니다. 그래 놓고는 지금에 와서 증여세 100억원을 내라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부가 동아그룹 해체와 동아건설 부도, 대한통운 매각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정확히 조사를 해주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이미 고인(故人)이 됐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하고 싶은 말은.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회사를 해체시킨 이유가 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무렵 항간에 나를 둘러싼 여자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게 그리도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나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여자 문제는 핑계일 뿐입니다. 오래전에 대한통운 노조가 밝힌 것처럼 회사를 매각해서 1조원 이상의 부당이익을 챙기겠다는 저의(底意)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에게 “많이 억울한가”라고 다시 물었다.

“검찰수사를 받다가 고인(故人)이 된 분도 있고,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직도 해외에 숨어 있는 분도 계시고…. 그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