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鄭鍾旭 통일준비委 민간부위원장이 말하는 習近平訪韓의 의미 : 월간조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월 3일부터 이틀간 서울을 방문해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정상(頂上)회담을 가졌다. 시진핑의 이번 방한(訪韓)은 역대 중국 국가주석이나 공산당 총서기들이 취임 이후 평양을 먼저 방문하던 관례(慣例)를 깨고 서울을 먼저 방문한 선례(先例)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런 선택을 한 중국의 의도가 커다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구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방문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친척관계’라고 표현한 것처럼 시진핑 주석은 한국에 대한 과감한 미소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의 중국이 던지는 미소는 우리에게 최근 일본 아베(安倍)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와 북한에 대한 접근으로 한일(韓日)관계가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던져진 것이어서 전통적인 한·미·일(韓美日) 공조의 틀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이끄는 중국 지도부가 선택한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시진핑의 방한 이후 앞으로 한국정부가 택해야 할 길은 어떤 길인지에 대해 국립인천대 중국학술원 정종욱(鄭鍾旭) 원장(전 주중한국대사,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을 만나 들어보았다. 정 원장은 지난 7월 15일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1세기 東北亞合縱連橫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서울에 와서 한국민들을 친척이라고 부르며 던진 미소는 환영과 함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국의 과거 역사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구사하던 연횡책(連橫策)이 떠오르면서, 이에 맞서던 합종책(合縱策)도 생각나는 국면입니다. 한국 외교가 선택해야 할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합종책을 만든 소진(蘇秦)은 진나라에 가서 살다가 진에서 쫓겨나자 다른 나라로 다니면서 합종책을 제안해 십 몇 년 동안은 성공을 했지요. 그런 소진의 합종책에 대해 장의(張儀)는 진나라 재상이 되어 연횡책을 만들어서 합종책을 깨 버렸죠. 소진과 장의 두 사람은 같은 스승 아래 공부한 사람이지요. 진은 연횡책으로 6개국의 항복을 받고 천하통일을 하지요.

합종연횡책 이야기는 세력균형이 바뀌고 있는 현재의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세력구도를 논의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자 일본 아베 총리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했죠. 아베의 행동을 두고 합종을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베는 2012년 취임 직후에도 태국, 베트남, 필리핀을 순방했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세력 포진과 짝짓기가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합종이나 연횡 어느 길을 택해서 가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런 현실은 우리 외교에 대해 중요한 도전을 안겨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선 시진핑 방한의 의미부터 짚어 주시죠.

“軍 핫라인 개설 의미 있는 일”

“시진핑 방한은 양국 관계로 볼 때 대단히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다녀온 직후에 중국을 방문했지요. 작년 시진핑-박근혜 회담에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발표했습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는 양국 관계를 결속시키는 효과를 가져다주었고, 이번에는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에 양국 관계를 네 가지 동반자 관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과 중국은 ▲공동발전하는 동반자 ▲지역평화에 기여하는 동반자 ▲아시아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반자 ▲세계 번영을 촉진하는 동반자 관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그런 설명은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정의하고, 미래상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말은 화려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무엇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구체적 합의도 많았습니다.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 정례화, 청와대 안보실장과 양제츠(楊潔箎)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의 소통을 제도화, 정례화하겠다고 했지요. 구체적으로 못을 박은 점이 중요합니다. 외무장관 사이의 회담 정례화에다가, 군(軍) 당국 간에는 핫라인을 개설하기로 했지요

경제문제에서는 중요한 합의 두 가지만 들어 보면 두 나라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연내에 끝내자는 것과, 우리의 원화(貨)와 중국의 위안화를 직거래하자고 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제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FTA 협상은 작년 6월에 높은 단계에서 포괄적 단계로 2단계 협상에 들어간 이래 우리 쪽에서 볼 때 민감한 품목에 대해 회담을 지연시키고 있고, 중국에서 볼 때는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 정보기술(IT)에서 문제가 불거져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죠. 그런데 이번에 양국 정상이 다시 한 번 탄력을 주었기 때문에 협상 진전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해양경계 획정 협상의 의미

한중 양국은 해상경계획정협상을 열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이어도 과학기지를 순찰하는 우리 해양경비정.

—해양경계 획정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더군요.

“그것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해양경계 획정은 이어도 문제, 중국 어선들의 서해안 불법조업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이어도는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데, 중국 측 제의로 해양경계 획정에 대한 협의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는 센카쿠 문제를 놓고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가 있는 상황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를 생각한다면 해양문제에서 중국이 뭔가 돌파구를 뚫어야 합니다. 이번에 한국과 중국 사이에 해양경계 협상이 잘되게 되면, 아시아 전체가 공동으로 안고 있는 영해(領海)문제에서 우리가 모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 원장은 “양국 정상 간 교류에서 중요한 점은 전략적 신뢰를 강화시켰다는 점, 작년 6월의 ‘신심지려(信心之旅)’라는 레토릭 차원의 신뢰를 이번에는 친척집 방문이라는 차원으로 구체화시켰다는 점도 의미 있다”면서 “시진핑이 앞으로 7년 이상 통치권을 행사할 것이고, 우리는 3년 반 정도 남아 있는데, 군사·경제·정치적으로 꽤 중요한 시기에 정상 간 신뢰가 구축되고, 소통의 기제가 제도화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크 월(Marc Wall)이라는 미(美) 와이오밍 대학의 방문학자가 7월 8일 온라인에 ‘그레이트 유라시안 리밸런싱 액트(Great Eurasian Rebalancing Act·유라시아의 세력재편 행동)’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마크 월은 2013년부터 2년간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의 외교정책 고문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글은 시진핑 방한을 미국 쪽에서 보면 ‘그레이트 유라시안 리밸런싱 액트’, 다시 말해 러시아와 중국이 팽창주의적 야망(expansionist ambition)을 드러낸 것이라는 겁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같은 ‘니어 어브로드(near abroad·가까운 지역)’에서, 중국은 ‘니어 시즈(near seas·근해)에서 팽창주의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크 월의 논리를 시진핑의 방한에 적용하면, 중국이 한국에서 ‘니어 시즈’에 대한 팽창주의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미국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2011년도에 힐러리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을 하면서 밝힌 아시아 재(再)균형 정책, 다시 말해서 ‘피벗 아시아(Pivot Asia)’ 정책은 사실상 미국이 오바마 정부 들어와서 중국을 견제하는 봉쇄전략을 구체화시킨 거라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마크 월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최근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베의 일본이 오바마의 중국 구상을 악용(惡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베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중국과의 역사수정주의와 집단자위권 문제에서 상당히 도전적 정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회귀주의가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로 나타나는가 하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좀 더 군사화·적극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점이 우리한테도 어려운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은 세력轉移 시기”

중국은 120년 전 청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동아시아서의 패권을 상실했다. 사진은 청일 양국 해전 모습을 그린 일본 화가의 그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 등에 의견이 오간 것은요.

“시진핑 출국 한 시간 전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시진핑 방한 첫째 날에는 일본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는데, 이틀째 점심을 하며 일본문제 논의를 많이 했다고 하네요. 이 사실을 둘째 날에 발표한 것은 중국의 외교적 전략에 말려든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크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지금이 세력전이(轉移)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覇權)과 중국의 부상(浮上)이 구체화된 G2시대, 미·중(美中) 양극(兩極)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패권적 세력이 중국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금년은 청일전쟁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기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금년이 갑오(甲午)전쟁(청일전쟁) 120년인데, 제2차 갑오전쟁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죠. 1894년 청일전쟁은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 화이(華夷)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소위 ‘대동아공영’ 질서로 바뀌었다가, 미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그게 2013년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죠. 냉전시기를 포함해서 미국의 패권시기에서 이제는 미·중 사이에 서로 패권을 다투는 그런 합종연횡의 시기가 다시 왔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美中관계는 과거 美蘇관계와 달라”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이 고민입니다.

“지역적으로 합종연횡적 구조에 놓여 있고, 풍랑 속에 한국 외교가 가야 할 길이 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3차 내지 4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고, 고도의 전략(戰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일각에서는 한중관계가 강화되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성숙되면, 그것이 한·미·일 협력관계를 기본적으로 흔드는 전략적으로 엄청난 실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지금의 상황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최근 미국과 중국 관계는 과거의 미국과 소련 관계와는 많이 다릅니다. 미국과 중국은 깊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빠져나가는 측이 손해인 전략적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관계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과 관계를 강화한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에 대해 ‘한국이 중국 진영으로 몰입한다’는 그런 인식을 하기는 힘든 구조입니다.

7월 초 베이징(北京)에서는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열렸습니다. 베이징에서 미국과 중국의 외교담당 양제츠 국무위원과 경제담당 부총리 왕양(汪洋)과 대화를 했습니다. 여기서 보듯 미·중 사이에는 소통채널이 많습니다. 소통채널이 많다는 점이 문제가 많이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미·중 관계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나, 일본과 청나라와의 관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태평양 세기’ 연설과 東北亞

—2011년 11월 10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하와이 이스트웨스트센터에서 ‘미국의 태평양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라는 연설을 하면서 “태평양 서쪽에 강력한 시장 시스템이 작동하는 지역을 건설할 것이며, 이 작업을 우리 미국의 전통적인 친구 다섯, 일본, 한국, 필리핀, 타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5개국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베의 일본과 필리핀 등이 이때부터 중국과 갈등구조를 만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 한국만 힐러리 연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국이 합종에 해당하는 선(線)을 그은 것인데 한국만 합종에서 이탈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가고 있으니까 중국이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요.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는 필리핀·타일랜드하고는 다르지요, 호주하고도 다르고.

우리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인 동시에 한미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만큼 중국과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진 나라는 앞에 말한 네 개 국가 가운데에는 없습니다. 일본도 중국과 경제교류를 깊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문제는 일본의 최근 역사수정주의, 집단자위권 강화 그런 정책을 미국이 환영하고 있는 거냐 하는 점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 문제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 때문에 동아시아가 미국이 원하지 않는 구도 속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 아베 정부는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변화를 시도하고, 일본이 추가적으로 실시했던 제재를 풀어 주고 있습니다. 조총련 송금(送金), 선박 왕래, 인적 교류 등 큰 의미를 북한에 던져줄 수 있습니다. 더 관계가 진전되어 아베가 과거 고이즈미처럼 평양에 간다거나 그렇게 하면 미국이 추진해 왔던 프레임 워크, 그중 하나가 북한 핵문제가 되겠는데, 그런 구도가 깨질 수가 있다는 거죠. 워싱턴에서 나오는 아베에 대한 부정적 코멘트에 주목해야 할 겁니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미국의 아시아 피벗에서 앞서 말한 다섯 개의 축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중국과의 갈등이 군사적인 봉쇄정책까지 포함한다고 하면, 우리가 거기에 낄 수 없는 것이지요.

합종이라는 것이 다섯 개 국가가 중국을 옥죄는 정책이라고 보는 것엔 문제가 있습니다. 피벗 아시아 정책은 처음에는 회귀, 리턴(return)이라고 해석됐습니다만, 미국은 ‘리턴(회귀)이 아니라 재균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힐러리가 됐든, 지금의 라이스 안보보좌관이든, 케리이든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봉쇄와 충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키신저보다 앞선 시기에 냉전 초기의 미·소 관계를 개념화한 미국 학자 가운데는 미·소 관계를 충돌하면서도 협력하는 ‘컬라이딩 앤드 컨텐딩(colliding and contending·충돌과 접촉)’ 관계라고 규정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미·중 관계는 그에 비하면 훨씬 더 컨텐딩, 갈등 경쟁하는 측면보다는 협조하는 관계라고 보아야 합니다.”

“中, 전쟁 원치 않아”

—세력전이 과정에서 미·중 관계가 그렇게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미·중 간에는 전략적 신뢰관계가 결여되어 있고, 중국의 부상에 대해 중국정부가 주변국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측면은 있습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나 시진핑도 ‘과거 포르투갈·영국·스페인 등 패권국 사이에서 열다섯 번의 세력전이가 있었는데 열한 번의 세력전이가 전쟁으로 귀결됐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말하는 포인트는 중국의 부상은 전쟁으로 끝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미국을 대체(代替)하는 패권국가로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중국의 구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때 한중수교를 하고 이후 8년간은 평양과 베이징 사이에 고위층 교류가 일절 없었습니다. 그런 관계를 장쩌민의 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가 뒤집어 놓았습니다. 후진타오 말기인 2010년에는 김정일이 한 해에 세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시진핑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평양 일변도에서 서울 일변도로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걸까요. 중국의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중국의 대북(對北)정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과거 장쩌민 총서기를 표현하면서 코어(core·핵심)라는 말을 많이 썼고, 후진타오 총서기의 경우 ‘당 총서기’라는 표현만 사용했습니다. 후진타오의 경우에는 장악력이 약했던 거죠.

그러나 지금 시진핑은 장쩌민보다도 외교정책에 대한 장악력이 강해진 게 아니냐고 보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중국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몇 가지 중요 결정이 이루어졌죠. 개혁개방을 심화하는 가운데 외교안보 면에서는 국가안전위원회 영도소조(領導小組)를 비롯한 서너 개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국가안전위원회는 대외 안전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안전까지 총괄하는 기구입니다. 이 국가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시진핑, 부위원장은 리커창(李克强) 등이 맡았고,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이 들어갔습니다.

시진핑의 외교 브레인인 왕후닝(王滬寧)과 리잔수(栗戰書) 두 정치국원은 막강한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정책을 이행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장쩌민보다는 파워가 센 것으로 보입니다.”

다이빙궈와 양제츠

지난 7월 4일 시진핑 주석 내외는 박근혜 대통령의 안내로 한국가구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중국과 북한 관계는 어떻게 되어 가는 걸까요.

“후진타오 때는 다이빙궈(戴秉國)라는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북한에서 환영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다이빙궈는 북·중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이빙궈는 러시아 전공으로 당 대외연락부장 출신이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국무원 소속인 외교부보다는 당 대외연락부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다이빙궈의 후임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양제츠는 미국대사 등을 지낸 미국통입니다. 그래서 양제츠가 북한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이빙궈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누구인가의 차원을 넘어, 북·중 관계가 구조적으로 후진타오 시대나 장쩌민 시대와는 달라졌다고 봅니다. 시진핑 취임 후 전략적 이해관계가 후진타오 시절과는 다르게 바뀌었고, 중국이 기본적으로 북한을 완충지대로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유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중 관계의 유전자(DNA)가 바뀐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섭스턴스(substance·기초)가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은 남한을 더 중요한 상대로 여기는 시대로 바뀐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낙관한 걸까요?”

—어느 라디오 시사해설자가 시진핑 방한 해설을 하면서 ‘시진핑이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이 평양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중국으로서는 북한은 이미 내 것이었고, 이제부터는 남한도 내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발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크 월도 러시아와 중국이 전통적인 팽창주의적 야심을 드러내 자신들의 이웃을 놀라게 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에 도전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주변국을 흔들어 놓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도 흔들어 보고 말입니다.

“中, 北의 시장경제화 원해”

“그런 시각은 냉전주의적(冷戰主義的)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중국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장성택 숙청 사건 이후에 북·중 간에는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많이 걱정하고 있더군요. 그런 판국에서 아베가 북한에 접근해서 잘못된 신호를 보내면 그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은 중국의 것이다’라는 시각은 한반도의 복잡성, 북·중 관계의 복잡성을 홀시(忽視)한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전략은, 북한에서 계획경제보다는 시장경제의 영역을 확대해야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과정에서 계획과 시장경제가 함께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소련은 계획이 무너지고 바로 시장체제로 이행하면서 정치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중국은 시장부문이 커지면서 계획경제도 유지했습니다.

중국은 북한도 체제안정을 위해, 국가가 배급능력이 없으니까 계획부분과 시장부분을 공존시키면서 북한 체제가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시진핑 방한을 앞두고 동해안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더니, 이어서 스커드 미사일을 서해안 기지에서 발사해서 동해안으로 날렸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베이징 특파원으로 베이징에 있을 때 북한이 서해안 기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중국 정부가 크게 긴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이 서해안 기지에서 미사일을 쏘는 행위는 바로 시진핑 방한에 대해 북한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진핑의 방한이 북한으로 볼 때는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겠지요. 1990년 8월 한중수교(修交)때 첸치천(錢其琛) 당시 외교부장이 장쩌민 국가주석의 지시로 수교 한 달 전에 평양을 방문해서 한중수교 사실을 김일성에게 통보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한국과 수교하지만 북·중 전통우의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중국이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느끼는 것도 그런 비슷한 수준이 아니겠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뺨 맞고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잖습니까. 북한이 뚱딴지 같은 도발행위를 하면서, 도발행위가 오히려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양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긴장관계가 계속될까요.

“시진핑이 금방은 아니겠지만, 좀 더 북한을 끌어안으려는 정책을 펼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북한도 현재는 워낙 양보를 안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위층 간의 교류를 서서히 열어 가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시진핑이 방한하니까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미국은 한·미·일 합참의장회의를 소집에서 은근히 한·미·일 공조를 과시했습니다. 대일(對日)정책을 비롯해서 우리 외교나 대북(對北)정책에서 펜스 멘딩, 즉 담장 수리를 해야 할 필요는 없을까요.

“아베가 역사수정주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만 골라서 하기는 하지만, 일본에는 아베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은 다양한 복합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베만 보지 말고 일본 내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 그런 목소리와는 계속 교류를 하고 실무 차원의 일본 접촉은 계속해야 하겠지요.

역사를 보면 전략구도가 바뀌어 역사가 바뀌는 일이 많지만, 조그마한 가지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해서 줄기가 바뀌는 그런 예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우언라이(周恩來)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우언라이의 몫은 마오쩌둥 밑에서 커다란 전략적인 구도를 바꾸지는 못해도, 마오가 큰 틀을 짜면 세세한 부분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남북관계는 좀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6자회담이라든지 기존의 전략대화의 틀을 가동시키는 데 협력하는 것이 시진핑 한국방문 이후에 우리 외교가 해야 할 작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학술원, 온라인연구소도 만들겠다”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개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인천대학교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중국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인천대는 그동안 동북아 통상대학 등에서 중국 연구를 해 왔습니다만,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중국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에 따라 중국학술원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중국문제에 관한 종합연구소가 없었습니다. 중국이 우리에 대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중국연구를 총괄하는 연구소가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번에 중국학술원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한국 내 중국연구는 조각조각 분절화(分節化・fragmented)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대 중국학술원은 지난 10년간 인천대가 수행해 온 연구를 발전적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인천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항구도시이며, 최초의 개항지입니다. 이런 역사적 측면을 중국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화교(華僑), 특히 우리나라에 사는 화교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인천시와 중국의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우호관계를 활용하면서 화교박물관도 세울 계획입니다. 미국 서해안에 있는 스탠퍼드대학교 부설 후버연구소가 만들고 있는 중국연구 웹사이트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 같은 온라인 연구소도 개설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