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 때 고향 떠난 이후 34년간 한 번도 못 가
⊙ 독재정권에 회의 느껴 反정부 인사 제거 계획 미리 귀띔해 주기도
⊙ 2002年 대통령 관련 첩보 野黨에 제공하고 도망자 돼
⊙ 독재정권에 회의 느껴 反정부 인사 제거 계획 미리 귀띔해 주기도
⊙ 2002年 대통령 관련 첩보 野黨에 제공하고 도망자 돼
- 욤비 토나 씨는 난민 출신으로는 국내 최초로 대학교수가 됐다.
지난 7월 30일,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대학교(총장 김혁종)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욤비 토나 씨를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로 초빙했다고 밝혔다. 욤비 씨는 2002년 자국에서 반(反)정부 인사로 몰려 한국으로 도피했다. 2008년에는 ‘난민(難民)’ 지위를 획득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거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말한다. 난민 인정이 까다로우니 그 난민 출신이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초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세간에 ‘콩고 왕자(王子)’로 알려진 그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은 화제가 됐다. 왕자에서 반정부 인사가 됐고,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서 난민으로 지내던 도중 교수가 된 그의 인생 얘기를 듣기 위해 10월 3일 광주대를 찾았다. 욤비 씨는 연구실에서 강의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와의 의사소통이 걱정됐지만, 유창한 한국말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교수가 된 지 한 달 정도 됐습니다. 강의하는 데 익숙해졌습니까.
“아직 교수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하지만, 수업하는 건 괜찮아요. 교수가 되기 전에도 ‘인권(人權)’ ‘난민’ 등을 주제로 특강을 많이 했어요. 일주일에 3~4번 정도 한 경험이 있으니까 강의하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어요.”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합니까.
“인권, 난민 같은 주제는 서로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니까 토론을 해요.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며, 제가 논평하는 순서로 진행해요.”
—학생들 반응이 좋습니까.
“강의를 두 개 맡았는데 수강 신청이 금방 끝났어요. 학생들 반응도 괜찮은 것 같아서 내년에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 강의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에요.”
—‘콩고 왕자’라는 유명세도 수강신청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진짜 왕자 맞습니까.
“콩고에는 아직 왕들이 있어요. 그들은 그 지역 땅을 갖고 있어요. 주민들은 작물을 수확하면 정부에 내는 세금만큼 왕에게도 내야 해요. 정부에서 파견한 관료도 왕의 협조가 없으면 일을 잘 할 수가 없어요.”
콩고, 2013년 세계 실패 국가 2위 汚名
콩고민주공화국은 중부 아프리카에 있는 곳으로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한때 자이르로 불린 이곳의 인구는 7550만명, 국토 면적은 한반도(22만2482km²)의 10배인 234만4858km²다. 컴퓨터 같은 최신 전자제품을 만들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료인 콜탄과 탄탈을 포함해 금, 주석, 텅스텐이 무려 24조 달러어치나 매장돼 있는 자원 부국(富國)이지만, 국내총생산은 우리의 1.5%에 불과할 정도로 빈국(貧國)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밝힌 콩고민주공화국의 2012년 국내총생산(GDP)은 173억 달러다. 경제뿐 아니라 여타 부문의 상황도 열악하다. 독립 이후 독재, 내전 등이 거듭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는 콩고민주공화국을 ‘세계 실패 국가 2위’로 선정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웃 국가인 콩고공화국과 국명(國名), 민족 구성, 언어 등이 유사하지만,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분할돼 지금은 엄연히 다른 국가다. 편의상 욤비 씨 표현을 빌려 기사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을 콩고로 표기한다.
욤비 씨는 1967년 콩고 반둔두주(州) 빈둥기시(市)의 키토나 마을에서 태어났다. 키토나는 그 지역 말로 ‘토나의 땅’이란 뜻이다. 욤비 씨의 아버지는 이 지역의 왕(우리의 대지주, 족장)이었다. 이런 집안 배경 탓에 욤비 씨의 어린 시절은 풍족했다. 빈둥기 교외 벨기에풍 저택에 살면서 유모와 하인들도 두었다. 그러나 유복한 시절은 13살 때 끝났다. 다음은 욤비 씨의 말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았고, 20살부터는 벨기에 브뤼셀대학에서 의학(醫學)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제게도 공부해야 한다며 13살 때 집에서 500km 떨어진 킨군지에 있는 프랑스 기숙학교로 진학시켰어요. 그 이후 아직 고향에 간 적이 없어요. 이런 얘길 하면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십 년 동안 고향에 못 갔느냐’며 깜짝 놀라요.”
—지금은 그렇다 쳐도 콩고에 있을 때는 왜 고향에 못 갔습니까.
“한국은 길이 좋아요. 차도 다니고, 버스와 기차로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비행기도 얼마든지 탈 수 있어요. 그런데 콩고는 그렇지 않아요. 한국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길도 좋지 않고, 차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요. 차가 있다고 해도 구형이라서 고장이 자주 나니까 먼 길을 갈 수는 없어요. 차를 타고 갔다가 고장 나면 일주일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이제껏 부모님을 만난 적도 없습니까.
“34년 동안 못 만났어요.”
大學 원서 접수하러 徒步로 2달 이동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욤비 씨가 집에 가지 못한 건 그의 아버지가 ‘한 번 집에 오면 학교에 가기 싫을 것이니 아예 올 생각을 하지 마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엄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욤비 씨는 외로웠다. 친구도 없었다. 급우들 대부분이 프랑스계 백인이었다. 피부색이 까만 욤비 씨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민가가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맹수들이 있는 밀림과 초원을 가로질러야 했다. 학교 근처엔 하마가 살고 있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선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욤비 씨는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처럼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실제 전공은 경제학이 됐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수도 킨샤사로 가는 데 두 달이 걸렸어요. 도착해서 킨샤사 국립대에 물어보니까 의대는 이미 모집이 끝났다고 했어요. 그런데 경제학과에 한 자리 남았다고 해서 입학하게 됐어요.”
—다른 학교 의대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콩고에는 대학이 4개 있는데 그중 킨샤사 국립대가 가장 좋은 학교예요.”
—인구가 7500만명인데, 대학이 4개밖에 안 된단 말입니까.
“대학에 가려면 부모님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해요. 매우 어렵거든요. 지금도 대학 진학률이 5%가 안 돼요.”
—대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겁니까.
“초·중·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하면 추천서를 받아서 입학하는 거예요.”
—콩고 대학 강의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습니까.
“지금 한국은 보통 한 개 과목에 수강인원이 30~40명인데, 콩고는 2000명쯤 됐어요. 교수 1명이 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마이크가 없어서 주변에 자리 잡은 몇 명만 제대로 수강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자리 경쟁이 매우 심했어요.”
정보기관 요원에 포섭돼 學內 프락치로 활동
1993년 욤비 씨는 26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 그는 항상 돈에 쪼들렸다. 고향에서 인편으로 보내주는 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다. 행상도 하고, 고등학교 임시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했다.
1995년 9월 건강이 나빠져 휴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회계학과 킨종지 교수로부터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욤비 씨는 조교 역할로 생각하고 수락했다. 그런데 킨종지 교수는 욤비 씨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심리학, 암호학 등을 가르쳤을 뿐이다.
욤비 씨는 또 낯선 사람에게 의심을 사지 않고 말을 거는 법, 외모로 사람의 직업이나 나이를 짐작하는 법, 사람의 얼굴 특징을 기억하거나, 모르는 언어로 쓴 문서를 암기하는 법 등을 배웠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킨종지 교수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비밀정보국(ANR·우리의 국정원)의 정보원이 되라는 것이었다. 킨종지는 비밀정보국이 학내에 심은 요원이었던 것이다. 그가 욤비 씨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욤비 씨가 대학을 다닐 1990년대 초중반 콩고 정국(政局)은 혼란스러웠다. 당시 대통령은 모부투 세세 세코였다. 그는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파트리스 루뭄바 총리를 실각시켰다. 1965년에는 두 번째 쿠데타로 총리직을 맡고, 2년 뒤에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모부투는 국명을 자이르로 바꾸고 식민유산을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외국기업 자산을 몰수했다. 이 돈은 모부투와 그의 친족, 측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모부투는 ‘혁명인민운동’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신격화하고 족벌 정치를 펼쳤다. 모부투 정권 40여 년 동안 콩고는 벨기에 식민지 시절보다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모부투 정권에 민주화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모부투는 1991년 야당의 정치활동을 합법화했다. 욤비 씨가 정보원 제안을 받았던 때는 야당들이 대학에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콩고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입당했다.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당시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탈당했지만, 이후에도 학내 야당 지지자들과의 관계는 유지했다. 킨종지 교수는 한때 민주사회진보연합 당원이었고,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욤비 씨를 매력적인 포섭 대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비밀정보국 정보원으로 활동했습니까.
“킨종지 교수가 나를 스파이로 만들었어요.”
—학내 프락치였네요.
“….”
—교수나 학생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 아니었습니까.
“예, 맞아요. 그들의 정치활동을 보고했어요.”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 일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
大學 졸업 후 비밀정보국 요원으로 발탁
욤비 씨는 대학원 공부(심리학 석사)를 하며, 정식으로 비밀정보국 요원이 됐다. 당시 대통령은 1997년 ‘제1차 콩고내전’에서 우간다, 르완다, 앙골라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반군(反軍) 지도자 로랑 카빌라였다.
‘제1차 콩고내전’은 영화 ‘호텔 르완다’로 잘 알려진 ‘르완다내전’의 영향을 받았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2년 이후 르완다에선 소수의 투치족(14%)이 다수의 후투족(85%)을 억압했다. 1973년 후투족 출신 하브자리마나 소장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자 이번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투치족은 난민이 돼 인근 국가로 흩어졌다. 자이르 동부 지역에도 대거 유입됐다.
1990년 10월 투치족 난민들은 ‘르완다 애국전선(RPF)’을 조직하고, 인접해 있는 우간다와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후투족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2년여간의 내전 끝에 두 부족은 평화협정을 맺고 1994년 1월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대통령은 후투족, 총리는 투치족이 맡았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대통령 하브자리마나가 암살당하자, 후투족은 투치족을 학살했다. 이에 투치족 반군은 후투족 정부군을 공격해 수도 키갈리를 점령했다. 내전에서 패한 후투족은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등으로 피신했다.
구(舊) 르완다 정부군과 후투족 난민들은 자이르 동부 지역에도 몰려들었다. 모부투는 이들을 이용해 자이르 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투치족 계열 바랴물랑게족을 공격했다. 로랑이 이끄는 바랴물랑게족은 1996년 10월 콩고·자이르해방민주세력연합(ADFL)을 결성해 자이르 정부군과 싸웠다. 무기는 르완다, 우간다, 앙골라 등으로부터 지원받았다. 1997년 5월 반군은 콩고의 수도 킨샤사를 점령했다.
“대통령 개인 위해 일하는 게 고민이었다”
정보국 요원이 된 욤비 씨는 11살 차이인 넬리와 결혼해 킨샤사 시내 부촌(富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13살 때 고향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맞은 안정된 생활이었다.
—비밀정보국에서 주로 어떤 업무를 맡았습니까.
“첩보, 수사를 주로 했어요. 마지막에는 실행팀에 있었어요.”
—실행팀에선 뭘 하는 겁니까.
“첩보팀에서 보고서가 올라오면 수사팀에서 진짜인지 확인해요.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면 실행팀에서 제거하는 거죠. 겉으로는 좋은 집에 살며 평범한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서는 나쁜 일 많이 했어요.”
—사람도 죽였습니까.
“그런 임무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어요. 제가 기독교 신자여서 그건 못했어요. 미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교육했는데, 그쪽은 국가안보를 위한 거지만, 콩고는 그게 아니잖아요.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한다는 게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미리 야당 인사들에게 실행계획을 귀띔해 준 적도 있어요.”
—이중간첩이네요. 그래서 반정부 인사로 몰리게 된 건가요.
“2002년 대통령 관련 비밀첩보를 민주사회진보연합에 건넨 게 드러나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2002년 당시 콩고 대통령은 로랑 카빌라의 아들 조셉 카빌라였다. 로랑은 2001년 그의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욤비 씨에 따르면 로랑은 ‘제1차 콩고내전’ 당시 무력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르완다, 우간다 등에 콩고 동부지역 할양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천연자원의 보고로서 외국에 내주기 아까운 곳이었다. 로랑은 거래를 파기했다.
르완다, 우간다는 콩고 동부에 거주하는 투치족 난민을 움직여 제2차 콩고내전(1998~2003년)을 일으켰다. 투치족 군인 4000여 명은 킨샤사까지 진출했다. 로랑은 탱크를 동원하고,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했다. 그렇게 킨샤사는 지킬 수 있었지만, 내전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5년간 계속된 제2차 콩고내전으로 약 400만명이 사망했다. 로랑은 이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2002年 女裝하고 中國行 비행기로 콩고 탈출
—비밀첩보 내용이 뭡니까.
“반군 지도자에게서 르완다, 우간다 출신 각료들이 로랑이 어긴 영토분할 약속을 이행하려 한다는 내용을 들었어요. 이게 대통령 몰래 일어나는 일이라면 당연히 알려야 하고, 묵인 아래 일어나는 것이라면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게 정보국 요원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통령실에 보고서를 올렸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정보국 팀장들에게 돌리고, ‘민주사회진보연합’에도 1부 줬어요.”
—그때가 언제입니까.
“2002년 6월 29일입니다. 보고서를 올리고 이틀이 지났을 때 정보국 요원들이 저를 체포해 정보국 지하감옥에 가뒀어요. 죄명은 ‘국가기밀 유출’이었습니다. 고문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됐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간수가 저를 불러내더니 밖으로 내보내 줬습니다. 밖에는 제 친구 아돌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가 간수에게 돈을 쓴 거였죠. 우리는 킨샤사 외곽으로 피신한 다음 외국으로 갈 방법을 연구했어요.”
—여권과 비자를 미리 준비한 게 아닐 텐데, 어떻게 한 겁니까.
“친구가 ‘패트릭 루카쿠’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왔습니다. 비자는 유엔 평화유지군(PKO)에 있는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중국(中國)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전국에 수배가 떨어져 공항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여장을 했습니다.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화장도 진하게 했어요. 변장을 마치고 보니까 정말 아줌마처럼 보였어요. 거기다 미리 돈을 써서 출국심사를 안 받도록 해서 힘들지 않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중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한국으로 온 이유는 뭡니까.
“중국은 콩고의 동맹국입니다. 중국에 머물다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비자를 받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때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코리아 대사관’에 가서 물어보니까 초청장만 있으면 며칠 내로 비자가 나온다고 해서 베이징에서 알게 된 콩고공화국 여대생을 통해 한국에 선을 댔어요. 그리고 초청장을 받아 한국으로 오게 된 겁니다.”
—이전에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있었습니까.
“잘 몰랐어요. 콩고는 예전에 북한하고 친했어요. 당연히 코리아 하면 북한이 생각났죠. 남한에 대해 아는 건 문선명과 통일교, 삼성, LG가 전부였어요. 그래서 코리아 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왔을 때 북한에 가는 줄 알았어요. 아내에게도 ‘평양에 가서 연락하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친구들이 마련해 준 은신처로 피신했죠. 그곳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밀림이었는데, 여기서 우리 가족은 2008년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각종 모욕과 구타 경험해
욤비 씨는 중국에서 콩고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비행기 삯과 얼마간의 비상금을 받았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톈진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입국했다. 갈 곳이 없던 욤비 씨는 택시를 타고 외국인이 많이 있다는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에게 서울 시내 풍광은 충격이었다. 상상하던 ‘평양’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천항부터 이태원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많고, 옆으로는 빌딩, 아파트가 계속 있으니까 ‘와, 평양 크다’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노 평양, 디스 이즈 서울’이라고 하는 거예요. 남한과 북한을 착각한 걸 그때 알았죠.”
이태원에서 며칠을 지낸 욤비 씨는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민간단체 ‘이주노동자센터’를 거쳐 출입국관리사무소,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등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으로 숙소와 직장을 얻었다. 원래 난민 신청자 비자(G-1)로는 취업이 불가능하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에 국내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해야만 했다.
욤비 씨의 첫 일터는 지인(知人)이 소개해 준 충무로 인쇄소였다. 종이더미를 트럭에서 내려 창고로 운반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콩고에서 육체노동을 한 적이 없는 욤비 씨는 매일 밤 근육통에 시달렸다. 파스를 온몸에 붙이고 다녔다.
두 달여가 지나자 힘든 일도 익숙해졌다. 적은 금액이나마 월급을 타서 콩고 가족에게 송금하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국 생활이 안정될 때, 욤비 씨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절단기 단추를 무심코 눌렀다. 비명이 들렸다. 동료 한 명이 절단 작업을 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인 것이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욤비씨는 인쇄소 일을 그만뒀다. 기계가 무서웠고, 동료들의 시선도 따가웠던 탓이다.
그는 인쇄소에서 같이 일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동생의 소개로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에 있는 사료공장으로 이직했다. 여기서 욤비 씨는 흑인(黑人)이라는 이유로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공장에선 당연히 한국 사람이 왕이에요. 그다음은 조선족, 그다음은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아시아인들이에요. 가장 밑은 아프리카 사람이에요.”
—공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제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어요. ‘깜둥이’ ‘원숭이’ ‘고릴라 새끼’라고 했어요. 때리기도 했고요. 한국어가 서툴러서 사장님한테도 많이 혼났어요. 작업 지시를 하면서 가르쳐 주는데 너무 빨리 말하니까 잘 못 알아듣잖아요. 그래서 순서를 착각했더니 ‘야, 뭐 하는 거야. 이 ×× 새끼야!’라면서 때렸어요.”
신청 6년 만에 難民 인정받아
그러나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월급이 150만원이나 됐다.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욤비 씨는 사료공장에서 햇수로 3년간 일했다. 이곳을 나와 직물공장에서도 일했다. 또 ‘개공장’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개공장이 뭡니까.
“개 키우는 곳 있잖아요. 먹는 개도 있고,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개도 있고. 개가 힘이 빠지면 다른 곳으로 보내는데 그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한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2002년부터 2007년까지입니다. 2007년 5월부터는 난민 지원단체 ‘피난처’에서 일했어요. 일주일에 세 번 출근했는데, 월급은 50만원이었어요. 이걸 전부 송금하고 나면 가진 게 없어 어려웠지만, 시간이 많이 남는 게 좋았습니다.”
—무슨 활동을 했습니까.
“거리 홍보도 하고, 특강도 다니면서 난민 인권 문제를 알렸습니다.”
—남는 시간에 뭘 했나요.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난민 관련 강연에 참석했고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인데, 콩고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해외 콩고인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한 방송이었어요. 또 성공회대 아시아 비(非)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에 등록해 공부했습니다.”
2008년 2월 욤비 씨는 ▲난민신청 ▲면담 ▲조사 ▲심사 ▲이의신청 ▲행정소송 등의 과정을 거쳐 6년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건강보험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가장 기쁜 건 콩고에 있는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2008년 6월 이들은 한국에 들어왔다.
6년 동안 욤비 씨의 가족은 킨샤사 외곽 밀림 지대의 오두막에 숨어 살았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해 왔던 셈이다. 콩고를 떠날 당시 6살, 5살이었던 아들들은 소년이 돼 있었다. 욤비 씨는 생후 8개월 때 헤어진 딸이 자신을 어색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6년 만에 재회한 욤비 씨 가족은 인천의 한 교회에서 제공한 단칸방에서 지냈다.
생활고 겪을 때 교수직 제안 받고 놀라
욤비 씨는 교수가 되기 직전까지 인천의 한 치과병원에서 주차관리를 했다. 가족 생계 문제 등으로 ‘피난처’를 그만뒀을 때, 그의 사연을 접한 한 미국인이 소개해 준 일자리였다. 월급은 150만원이었다. 이 돈으로 다섯 식구가 한 달을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넷째 아스트리드가 태어나 생활비는 더욱 많이 들었다. 막내는 아직 무국적자라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료비 부담이 심했다.
그러던 도중 욤비 씨는 광주대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 광주대는 “김혁종(金革種) 총장이 욤비 씨가 난민으로 살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을 방송으로 접하고 교수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교수 제안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았습니까.
“콩고에 있을 때부터 교수 아니면 변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콩고도 아니고 한국에서 외국인, 특히 난민이 교수가 된다는 건 꿈도 못 꿨죠.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래서 광주대 전화를 받고선 깜짝 놀랐어요. 내가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있다니까.”
—제안을 받자마자 수락했습니까.
“방송 나가고 전화 많이 왔어요. ‘같이 밥 먹자’ ‘한 번 만나자’ ‘같이 사업하자’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다 거절했어요. 광주대 전화도 마찬가지예요. 세 번 왔는데, 놀랍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송사를 통해 또 연락을 하니까 교수들과 만났어요. 얘길 들어 보니 진지한 것 같아서 이력서를 보냈어요. 며칠 뒤에 학교에서 면접을 보고, 그날 합격 연락을 받았어요.
광주대는 난민구호단체나 인권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국내 대학에서 인권 관련 특강을 한 욤비 씨의 경력을 높이 샀다고 한다. 이어지는 욤비 씨와의 문답이다.
—가족들은 아직 인천에 있습니까.
“아니요. 이 근처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어요. 학교에서 집도 마련해 줬어요.”
—한국에서 교수도 하는데, 콩고에 가고 싶습니까.
“정말 가고 싶어요.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면 갈 거예요. 꼭 가고 싶어요.”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되기 전까진 못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거예요. 조금이나마 콩고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요. 방송을 통해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리고 있어요. 한국은 원래 우리처럼 식민지였고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3번째 경제강국이 됐잖아요. 한국인들이 어떻게 부자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요.”
韓國人이 고쳐야 할 점
—실제 한국은 1960년대엔 콩고보다 못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한국은 교육을 많이 해요. 외국의 도움도 있었고, 좋은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어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리더십은 진짜 경제 리더십이에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비전을 말하면서 계속 밀어붙였어요. 그가 이기적인 리더였다면 한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일 거예요. 그런데 그 가족들 돈 별로 없잖아요. 아프리카는 대통령들이 다 부자예요. 북한도 그렇고요. 지도층은 잘사는데, 주민들은 배고프잖아요. 다 이기적인 리더십이에요. 아프리카든, 북한이든 박정희 스타일이 필요해요.”
—한국인들에게 섭섭한 점은 없습니까.
“한국 사람들이 고쳐 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피부색 가지고 차별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미국 사람, 유럽 사람들은 존중하는데,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으로 안 봐요. 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자리에 안 앉아요. 제가 앉으면 옆에 자리가 비었는데도 사람들이 앉질 않아요. 자리가 비어서 앉을 때도 옆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피해요.”
—한국의 장점은 뭡니까.
“한국 사람들은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을 존경해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요. 항상 우리나라라고 하잖아요. 일본이 독도 얘기하면 다 일어나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배워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빨리빨리 해결하고. 콩고는 그런 게 없어요. 한국 스타일을 심어야 해요. 콩고에 돌아가 이런 것들을 알리고 싶어요.”
—콩고에 돌아간다면 뭘 할 계획입니까.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도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어요. 콩고가 발전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거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말한다. 난민 인정이 까다로우니 그 난민 출신이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초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세간에 ‘콩고 왕자(王子)’로 알려진 그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은 화제가 됐다. 왕자에서 반정부 인사가 됐고,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서 난민으로 지내던 도중 교수가 된 그의 인생 얘기를 듣기 위해 10월 3일 광주대를 찾았다. 욤비 씨는 연구실에서 강의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와의 의사소통이 걱정됐지만, 유창한 한국말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교수가 된 지 한 달 정도 됐습니다. 강의하는 데 익숙해졌습니까.
“아직 교수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하지만, 수업하는 건 괜찮아요. 교수가 되기 전에도 ‘인권(人權)’ ‘난민’ 등을 주제로 특강을 많이 했어요. 일주일에 3~4번 정도 한 경험이 있으니까 강의하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어요.”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합니까.
“인권, 난민 같은 주제는 서로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니까 토론을 해요.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하며, 제가 논평하는 순서로 진행해요.”
—학생들 반응이 좋습니까.
“강의를 두 개 맡았는데 수강 신청이 금방 끝났어요. 학생들 반응도 괜찮은 것 같아서 내년에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 강의를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에요.”
—‘콩고 왕자’라는 유명세도 수강신청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진짜 왕자 맞습니까.
“콩고에는 아직 왕들이 있어요. 그들은 그 지역 땅을 갖고 있어요. 주민들은 작물을 수확하면 정부에 내는 세금만큼 왕에게도 내야 해요. 정부에서 파견한 관료도 왕의 협조가 없으면 일을 잘 할 수가 없어요.”
콩고, 2013년 세계 실패 국가 2위 汚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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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킨샤사 전경. 콩고민주공화국의 인구는 7550만명으로 남북한 합계와 비슷하다. 국토 면적은 22만2482km²로 한반도의 10배에 달한다. |
국제통화기금(IMF)이 밝힌 콩고민주공화국의 2012년 국내총생산(GDP)은 173억 달러다. 경제뿐 아니라 여타 부문의 상황도 열악하다. 독립 이후 독재, 내전 등이 거듭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 외교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는 콩고민주공화국을 ‘세계 실패 국가 2위’로 선정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이웃 국가인 콩고공화국과 국명(國名), 민족 구성, 언어 등이 유사하지만,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분할돼 지금은 엄연히 다른 국가다. 편의상 욤비 씨 표현을 빌려 기사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을 콩고로 표기한다.
욤비 씨는 1967년 콩고 반둔두주(州) 빈둥기시(市)의 키토나 마을에서 태어났다. 키토나는 그 지역 말로 ‘토나의 땅’이란 뜻이다. 욤비 씨의 아버지는 이 지역의 왕(우리의 대지주, 족장)이었다. 이런 집안 배경 탓에 욤비 씨의 어린 시절은 풍족했다. 빈둥기 교외 벨기에풍 저택에 살면서 유모와 하인들도 두었다. 그러나 유복한 시절은 13살 때 끝났다. 다음은 욤비 씨의 말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았고, 20살부터는 벨기에 브뤼셀대학에서 의학(醫學)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제게도 공부해야 한다며 13살 때 집에서 500km 떨어진 킨군지에 있는 프랑스 기숙학교로 진학시켰어요. 그 이후 아직 고향에 간 적이 없어요. 이런 얘길 하면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수십 년 동안 고향에 못 갔느냐’며 깜짝 놀라요.”
—지금은 그렇다 쳐도 콩고에 있을 때는 왜 고향에 못 갔습니까.
“한국은 길이 좋아요. 차도 다니고, 버스와 기차로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비행기도 얼마든지 탈 수 있어요. 그런데 콩고는 그렇지 않아요. 한국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길도 좋지 않고, 차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요. 차가 있다고 해도 구형이라서 고장이 자주 나니까 먼 길을 갈 수는 없어요. 차를 타고 갔다가 고장 나면 일주일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이제껏 부모님을 만난 적도 없습니까.
“34년 동안 못 만났어요.”
大學 원서 접수하러 徒步로 2달 이동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욤비 씨가 집에 가지 못한 건 그의 아버지가 ‘한 번 집에 오면 학교에 가기 싫을 것이니 아예 올 생각을 하지 마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엄격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욤비 씨는 외로웠다. 친구도 없었다. 급우들 대부분이 프랑스계 백인이었다. 피부색이 까만 욤비 씨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민가가 있는 마을까지 가려면 맹수들이 있는 밀림과 초원을 가로질러야 했다. 학교 근처엔 하마가 살고 있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선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욤비 씨는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처럼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실제 전공은 경제학이 됐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수도 킨샤사로 가는 데 두 달이 걸렸어요. 도착해서 킨샤사 국립대에 물어보니까 의대는 이미 모집이 끝났다고 했어요. 그런데 경제학과에 한 자리 남았다고 해서 입학하게 됐어요.”
—다른 학교 의대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콩고에는 대학이 4개 있는데 그중 킨샤사 국립대가 가장 좋은 학교예요.”
—인구가 7500만명인데, 대학이 4개밖에 안 된단 말입니까.
“대학에 가려면 부모님들이 기도를 많이 해야 해요. 매우 어렵거든요. 지금도 대학 진학률이 5%가 안 돼요.”
—대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겁니까.
“초·중·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하면 추천서를 받아서 입학하는 거예요.”
—콩고 대학 강의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습니까.
“지금 한국은 보통 한 개 과목에 수강인원이 30~40명인데, 콩고는 2000명쯤 됐어요. 교수 1명이 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마이크가 없어서 주변에 자리 잡은 몇 명만 제대로 수강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자리 경쟁이 매우 심했어요.”
정보기관 요원에 포섭돼 學內 프락치로 활동
1993년 욤비 씨는 26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 그는 항상 돈에 쪼들렸다. 고향에서 인편으로 보내주는 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다. 행상도 하고, 고등학교 임시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했다.
1995년 9월 건강이 나빠져 휴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회계학과 킨종지 교수로부터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욤비 씨는 조교 역할로 생각하고 수락했다. 그런데 킨종지 교수는 욤비 씨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심리학, 암호학 등을 가르쳤을 뿐이다.
욤비 씨는 또 낯선 사람에게 의심을 사지 않고 말을 거는 법, 외모로 사람의 직업이나 나이를 짐작하는 법, 사람의 얼굴 특징을 기억하거나, 모르는 언어로 쓴 문서를 암기하는 법 등을 배웠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킨종지 교수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비밀정보국(ANR·우리의 국정원)의 정보원이 되라는 것이었다. 킨종지는 비밀정보국이 학내에 심은 요원이었던 것이다. 그가 욤비 씨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욤비 씨가 대학을 다닐 1990년대 초중반 콩고 정국(政局)은 혼란스러웠다. 당시 대통령은 모부투 세세 세코였다. 그는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파트리스 루뭄바 총리를 실각시켰다. 1965년에는 두 번째 쿠데타로 총리직을 맡고, 2년 뒤에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모부투는 국명을 자이르로 바꾸고 식민유산을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외국기업 자산을 몰수했다. 이 돈은 모부투와 그의 친족, 측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모부투는 ‘혁명인민운동’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신격화하고 족벌 정치를 펼쳤다. 모부투 정권 40여 년 동안 콩고는 벨기에 식민지 시절보다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모부투 정권에 민주화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모부투는 1991년 야당의 정치활동을 합법화했다. 욤비 씨가 정보원 제안을 받았던 때는 야당들이 대학에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콩고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입당했다.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단 당시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탈당했지만, 이후에도 학내 야당 지지자들과의 관계는 유지했다. 킨종지 교수는 한때 민주사회진보연합 당원이었고,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욤비 씨를 매력적인 포섭 대상으로 여긴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비밀정보국 정보원으로 활동했습니까.
“킨종지 교수가 나를 스파이로 만들었어요.”
—학내 프락치였네요.
“….”
—교수나 학생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 아니었습니까.
“예, 맞아요. 그들의 정치활동을 보고했어요.”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 일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어요.”
大學 졸업 후 비밀정보국 요원으로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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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40여년간 독재 정치를 편 모부투 세세 세코. |
‘제1차 콩고내전’은 영화 ‘호텔 르완다’로 잘 알려진 ‘르완다내전’의 영향을 받았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2년 이후 르완다에선 소수의 투치족(14%)이 다수의 후투족(85%)을 억압했다. 1973년 후투족 출신 하브자리마나 소장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자 이번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투치족은 난민이 돼 인근 국가로 흩어졌다. 자이르 동부 지역에도 대거 유입됐다.
1990년 10월 투치족 난민들은 ‘르완다 애국전선(RPF)’을 조직하고, 인접해 있는 우간다와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후투족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2년여간의 내전 끝에 두 부족은 평화협정을 맺고 1994년 1월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대통령은 후투족, 총리는 투치족이 맡았다. 그런데 같은 해 4월 대통령 하브자리마나가 암살당하자, 후투족은 투치족을 학살했다. 이에 투치족 반군은 후투족 정부군을 공격해 수도 키갈리를 점령했다. 내전에서 패한 후투족은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등으로 피신했다.
구(舊) 르완다 정부군과 후투족 난민들은 자이르 동부 지역에도 몰려들었다. 모부투는 이들을 이용해 자이르 동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투치족 계열 바랴물랑게족을 공격했다. 로랑이 이끄는 바랴물랑게족은 1996년 10월 콩고·자이르해방민주세력연합(ADFL)을 결성해 자이르 정부군과 싸웠다. 무기는 르완다, 우간다, 앙골라 등으로부터 지원받았다. 1997년 5월 반군은 콩고의 수도 킨샤사를 점령했다.
“대통령 개인 위해 일하는 게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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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르완다 내전이 인종학살로 번지자 자이르 동부로 피난한 후투족 난민들. |
—비밀정보국에서 주로 어떤 업무를 맡았습니까.
“첩보, 수사를 주로 했어요. 마지막에는 실행팀에 있었어요.”
—실행팀에선 뭘 하는 겁니까.
“첩보팀에서 보고서가 올라오면 수사팀에서 진짜인지 확인해요.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면 실행팀에서 제거하는 거죠. 겉으로는 좋은 집에 살며 평범한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서는 나쁜 일 많이 했어요.”
—사람도 죽였습니까.
“그런 임무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어요. 제가 기독교 신자여서 그건 못했어요. 미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교육했는데, 그쪽은 국가안보를 위한 거지만, 콩고는 그게 아니잖아요.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한다는 게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미리 야당 인사들에게 실행계획을 귀띔해 준 적도 있어요.”
—이중간첩이네요. 그래서 반정부 인사로 몰리게 된 건가요.
“2002년 대통령 관련 비밀첩보를 민주사회진보연합에 건넨 게 드러나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요.”
2002년 당시 콩고 대통령은 로랑 카빌라의 아들 조셉 카빌라였다. 로랑은 2001년 그의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욤비 씨에 따르면 로랑은 ‘제1차 콩고내전’ 당시 무력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르완다, 우간다 등에 콩고 동부지역 할양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천연자원의 보고로서 외국에 내주기 아까운 곳이었다. 로랑은 거래를 파기했다.
르완다, 우간다는 콩고 동부에 거주하는 투치족 난민을 움직여 제2차 콩고내전(1998~2003년)을 일으켰다. 투치족 군인 4000여 명은 킨샤사까지 진출했다. 로랑은 탱크를 동원하고,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했다. 그렇게 킨샤사는 지킬 수 있었지만, 내전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5년간 계속된 제2차 콩고내전으로 약 400만명이 사망했다. 로랑은 이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2002年 女裝하고 中國行 비행기로 콩고 탈출
—비밀첩보 내용이 뭡니까.
“반군 지도자에게서 르완다, 우간다 출신 각료들이 로랑이 어긴 영토분할 약속을 이행하려 한다는 내용을 들었어요. 이게 대통령 몰래 일어나는 일이라면 당연히 알려야 하고, 묵인 아래 일어나는 것이라면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게 정보국 요원의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통령실에 보고서를 올렸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정보국 팀장들에게 돌리고, ‘민주사회진보연합’에도 1부 줬어요.”
—그때가 언제입니까.
“2002년 6월 29일입니다. 보고서를 올리고 이틀이 지났을 때 정보국 요원들이 저를 체포해 정보국 지하감옥에 가뒀어요. 죄명은 ‘국가기밀 유출’이었습니다. 고문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됐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간수가 저를 불러내더니 밖으로 내보내 줬습니다. 밖에는 제 친구 아돌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가 간수에게 돈을 쓴 거였죠. 우리는 킨샤사 외곽으로 피신한 다음 외국으로 갈 방법을 연구했어요.”
—여권과 비자를 미리 준비한 게 아닐 텐데, 어떻게 한 겁니까.
“친구가 ‘패트릭 루카쿠’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왔습니다. 비자는 유엔 평화유지군(PKO)에 있는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중국(中國)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전국에 수배가 떨어져 공항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여장을 했습니다.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화장도 진하게 했어요. 변장을 마치고 보니까 정말 아줌마처럼 보였어요. 거기다 미리 돈을 써서 출국심사를 안 받도록 해서 힘들지 않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중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한국으로 온 이유는 뭡니까.
“중국은 콩고의 동맹국입니다. 중국에 머물다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 나라 대사관을 찾아다니며 비자를 받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때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코리아 대사관’에 가서 물어보니까 초청장만 있으면 며칠 내로 비자가 나온다고 해서 베이징에서 알게 된 콩고공화국 여대생을 통해 한국에 선을 댔어요. 그리고 초청장을 받아 한국으로 오게 된 겁니다.”
—이전에 한국이란 나라를 알고 있었습니까.
“잘 몰랐어요. 콩고는 예전에 북한하고 친했어요. 당연히 코리아 하면 북한이 생각났죠. 남한에 대해 아는 건 문선명과 통일교, 삼성, LG가 전부였어요. 그래서 코리아 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왔을 때 북한에 가는 줄 알았어요. 아내에게도 ‘평양에 가서 연락하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친구들이 마련해 준 은신처로 피신했죠. 그곳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밀림이었는데, 여기서 우리 가족은 2008년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각종 모욕과 구타 경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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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부투가 신병치료차 스위스에 간 사이 투치족 반군을 이끌고 수도 킨샤사에 무혈입성한 로랑 카빌라.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2001년 경호원에게 암살당했다. |
“인천항부터 이태원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많고, 옆으로는 빌딩, 아파트가 계속 있으니까 ‘와, 평양 크다’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노 평양, 디스 이즈 서울’이라고 하는 거예요. 남한과 북한을 착각한 걸 그때 알았죠.”
이태원에서 며칠을 지낸 욤비 씨는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민간단체 ‘이주노동자센터’를 거쳐 출입국관리사무소,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등을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으로 숙소와 직장을 얻었다. 원래 난민 신청자 비자(G-1)로는 취업이 불가능하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에 국내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해야만 했다.
욤비 씨의 첫 일터는 지인(知人)이 소개해 준 충무로 인쇄소였다. 종이더미를 트럭에서 내려 창고로 운반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콩고에서 육체노동을 한 적이 없는 욤비 씨는 매일 밤 근육통에 시달렸다. 파스를 온몸에 붙이고 다녔다.
두 달여가 지나자 힘든 일도 익숙해졌다. 적은 금액이나마 월급을 타서 콩고 가족에게 송금하는 데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국 생활이 안정될 때, 욤비 씨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절단기 단추를 무심코 눌렀다. 비명이 들렸다. 동료 한 명이 절단 작업을 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인 것이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욤비씨는 인쇄소 일을 그만뒀다. 기계가 무서웠고, 동료들의 시선도 따가웠던 탓이다.
그는 인쇄소에서 같이 일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동생의 소개로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에 있는 사료공장으로 이직했다. 여기서 욤비 씨는 흑인(黑人)이라는 이유로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한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공장에선 당연히 한국 사람이 왕이에요. 그다음은 조선족, 그다음은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아시아인들이에요. 가장 밑은 아프리카 사람이에요.”
—공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제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어요. ‘깜둥이’ ‘원숭이’ ‘고릴라 새끼’라고 했어요. 때리기도 했고요. 한국어가 서툴러서 사장님한테도 많이 혼났어요. 작업 지시를 하면서 가르쳐 주는데 너무 빨리 말하니까 잘 못 알아듣잖아요. 그래서 순서를 착각했더니 ‘야, 뭐 하는 거야. 이 ×× 새끼야!’라면서 때렸어요.”
신청 6년 만에 難民 인정받아
그러나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월급이 150만원이나 됐다.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욤비 씨는 사료공장에서 햇수로 3년간 일했다. 이곳을 나와 직물공장에서도 일했다. 또 ‘개공장’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개공장이 뭡니까.
“개 키우는 곳 있잖아요. 먹는 개도 있고, 집에서 키울 수 있는 개도 있고. 개가 힘이 빠지면 다른 곳으로 보내는데 그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한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2002년부터 2007년까지입니다. 2007년 5월부터는 난민 지원단체 ‘피난처’에서 일했어요. 일주일에 세 번 출근했는데, 월급은 50만원이었어요. 이걸 전부 송금하고 나면 가진 게 없어 어려웠지만, 시간이 많이 남는 게 좋았습니다.”
—무슨 활동을 했습니까.
“거리 홍보도 하고, 특강도 다니면서 난민 인권 문제를 알렸습니다.”
—남는 시간에 뭘 했나요.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난민 관련 강연에 참석했고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인데, 콩고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해외 콩고인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한 방송이었어요. 또 성공회대 아시아 비(非)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에 등록해 공부했습니다.”
2008년 2월 욤비 씨는 ▲난민신청 ▲면담 ▲조사 ▲심사 ▲이의신청 ▲행정소송 등의 과정을 거쳐 6년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합법적으로 일하고, 건강보험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가장 기쁜 건 콩고에 있는 가족들을 초청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2008년 6월 이들은 한국에 들어왔다.
6년 동안 욤비 씨의 가족은 킨샤사 외곽 밀림 지대의 오두막에 숨어 살았다.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해 왔던 셈이다. 콩고를 떠날 당시 6살, 5살이었던 아들들은 소년이 돼 있었다. 욤비 씨는 생후 8개월 때 헤어진 딸이 자신을 어색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6년 만에 재회한 욤비 씨 가족은 인천의 한 교회에서 제공한 단칸방에서 지냈다.
생활고 겪을 때 교수직 제안 받고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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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7월 콩고민주공화국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킨샤사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조셉 카빌라 콩고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
그러던 도중 욤비 씨는 광주대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 광주대는 “김혁종(金革種) 총장이 욤비 씨가 난민으로 살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을 방송으로 접하고 교수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교수 제안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았습니까.
“콩고에 있을 때부터 교수 아니면 변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콩고도 아니고 한국에서 외국인, 특히 난민이 교수가 된다는 건 꿈도 못 꿨죠.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래서 광주대 전화를 받고선 깜짝 놀랐어요. 내가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있다니까.”
—제안을 받자마자 수락했습니까.
“방송 나가고 전화 많이 왔어요. ‘같이 밥 먹자’ ‘한 번 만나자’ ‘같이 사업하자’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다 거절했어요. 광주대 전화도 마찬가지예요. 세 번 왔는데, 놀랍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송사를 통해 또 연락을 하니까 교수들과 만났어요. 얘길 들어 보니 진지한 것 같아서 이력서를 보냈어요. 며칠 뒤에 학교에서 면접을 보고, 그날 합격 연락을 받았어요.
광주대는 난민구호단체나 인권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국내 대학에서 인권 관련 특강을 한 욤비 씨의 경력을 높이 샀다고 한다. 이어지는 욤비 씨와의 문답이다.
—가족들은 아직 인천에 있습니까.
“아니요. 이 근처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어요. 학교에서 집도 마련해 줬어요.”
—한국에서 교수도 하는데, 콩고에 가고 싶습니까.
“정말 가고 싶어요.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면 갈 거예요. 꼭 가고 싶어요.”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되기 전까진 못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거예요. 조금이나마 콩고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요. 방송을 통해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알리고 있어요. 한국은 원래 우리처럼 식민지였고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13번째 경제강국이 됐잖아요. 한국인들이 어떻게 부자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요.”
韓國人이 고쳐야 할 점
—실제 한국은 1960년대엔 콩고보다 못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한국은 교육을 많이 해요. 외국의 도움도 있었고, 좋은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어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리더십은 진짜 경제 리더십이에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비전을 말하면서 계속 밀어붙였어요. 그가 이기적인 리더였다면 한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일 거예요. 그런데 그 가족들 돈 별로 없잖아요. 아프리카는 대통령들이 다 부자예요. 북한도 그렇고요. 지도층은 잘사는데, 주민들은 배고프잖아요. 다 이기적인 리더십이에요. 아프리카든, 북한이든 박정희 스타일이 필요해요.”
—한국인들에게 섭섭한 점은 없습니까.
“한국 사람들이 고쳐 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피부색 가지고 차별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미국 사람, 유럽 사람들은 존중하는데, 아프리카 사람은 사람으로 안 봐요. 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자리에 안 앉아요. 제가 앉으면 옆에 자리가 비었는데도 사람들이 앉질 않아요. 자리가 비어서 앉을 때도 옆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피해요.”
—한국의 장점은 뭡니까.
“한국 사람들은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을 존경해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요. 항상 우리나라라고 하잖아요. 일본이 독도 얘기하면 다 일어나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배워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빨리빨리 해결하고. 콩고는 그런 게 없어요. 한국 스타일을 심어야 해요. 콩고에 돌아가 이런 것들을 알리고 싶어요.”
—콩고에 돌아간다면 뭘 할 계획입니까.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도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어요. 콩고가 발전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