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초이(Jay Choi)
⊙ 56세. 美 U.C.버클리 심리학과 졸업. 샌프란시스코대학교 심리학 석사.
⊙ 現 美 샌타클래라 카운티 병원 소속 심리치료사 겸 East-West 카운셀링센터 연구원.
⊙ 56세. 美 U.C.버클리 심리학과 졸업. 샌프란시스코대학교 심리학 석사.
⊙ 現 美 샌타클래라 카운티 병원 소속 심리치료사 겸 East-West 카운셀링센터 연구원.
“자살 소동을 벌인 사람에게 경고 조치를 하고 집으로 그냥 돌려보낸다고요?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높은 자살률로 고민하고 있다지만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대구시에서 개최한 ‘자살방지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타클래라 카운티 병원 소속의 심리치료사 제이 초이(Jay Choi)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살은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기에, 우리나라 식(式)의 자살방지 대처법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난 1979년에 미국으로 떠나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고 샌타클래라 카운티 소속의 심리치료사로 활동 중인 제이 초이 씨의 주요 업무는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심리상태를 살피는 일이다. 미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동양인들의 애로사항이나 결혼, 가족 간에 갈등을 겪는 이들의 심리치료도 겸하지만, 특히 ‘자살 방지’에 관심이 많다.
미국 자살 시도자, 무조건 응급정신병원으로 이송
그의 얘기다.
“미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서 죽겠다고 하면 경찰이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제압합니다. 미국은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경찰이 이 사람을 제압한 후에 수갑을 채워서 카운티 응급정신병원으로 데려갑니다. 여기까지가 경찰의 업무예요. 이후 정신과 의사가 사람의 정신상태를 점검해서 의사가 사인한 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의사가 여전히 자살의 징후가 남아 있다고 판단하면 최대 72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를 정신과적 환자로 보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에서는 옥상에서 밑으로 내려와서 경찰관한테 죄송하다고 하면 경찰이 집으로 돌려보낸답니다. 그런 판단은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신체의 질병 못지않게 심각한 병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명권이 다른 어떤 권리보다 우선한다고 칠 때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는 거죠. 대구에서 선생들을 만나 보니까 학생이 이상해서 부모를 불렀는데, 부모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데려가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학생이 뛰어내려 죽었어요. 그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데려간 부모 책임인가요, 보낸 선생 책임인가요. 그때 이 학생을 입원시켰다면 비극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잠시 가뒀다고 이 학생이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요.
“많은 연구에 의하면 자살에 의한 충동이 있고 이를 시도한 사람을 단 몇 시간이나 2~3일만 구금하면 자살 의욕이 굉장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만일 72시간 이후에도 계속 자살 위험이 있다고 파악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시간 동안 상담치료, 약물치료 등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고, 위험성이 남았다고 판단하면 법원의 허락을 받아 추가로 14일간 구금할 수 있습니다. 이후 보다 강력한 정신과 병원으로 보내지만 이런 예는 극히 드뭅니다.”
—이건 주법(州法) 입니까, 연방법입니까.
“주 법인데, 거의 모든 주가 비슷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조사를 해 보니 유럽의 여러 나라는 자살을 바라볼 때, 그 순간만큼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비슷하게 조치합니다. 우리나라도 형태는 다르지만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병원의 통합 시스템, 수준 높은 의료진으로 볼 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이런 규칙을 정하고, 경찰이 매뉴얼을 만들어 몇 번 훈련만 하면 미국, 유럽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쉽게 자살할 환경을 없애야
물론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여러 규칙들에 있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다. 가령 동부의 일부 주에서는 운전자가 일정 스피드 이상으로 과속하거나, 노상방뇨를 하면 그 자리에서 구속한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볼 때 미국에서 바라보는 ‘자살 시도’에 대한 생각과 우리나라에서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제이 초이 씨는 “한국에는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고, 예방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해야겠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주 작은 것 중 하나로 우리나라 아파트나 높은 빌딩의 창문 열리는 각도를 제한해야 합니다. 올라갈수록 각도를 줄여서 빌딩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자살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쓰면 끝이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시작이라고 하는 겁니다. 미국은 흔히 말하는 문제아 10대가 있으면 총이나 위험 물건들을 전부 수거합니다. 자살을 하려는 10대가 과연 집에 총이 없다고 안 하느냐,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겁니다. 물론 의지가 있다면 주위의 환경이 어떻든 결국 하고야 말겠죠. 하지만 적어도 손쉽게 자살을 할 수 있는 상황만큼은 최소한 없애 주자는 겁니다.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옥상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하고, 고층 건물 창문에 규제를 둬 뛰어내릴 수 있는 여건을 없애야죠. 또 학생들이 초·중·고 시절에 ‘스트레스 관리’, ‘분노 관리’를 할 수 있는 교육을 받도록 정책적으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스트레스나 분노가 관리법을 배운다고 극복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는 누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으면 ‘야, 한잔하자. 다 털어버려’라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 자체를 심도 깊게 받아들이지 않지요. ‘너만 스트레스 심하냐, 나도 심하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화가 나도 주변에 ‘내가 화났다’고 말하는 대신에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대화를 중단해 버리거나 하는 식의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부 다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우리보다 자유롭습니다. 가령 ‘내가 지금 너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거나 ‘내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 대신에 구체적으로 말로 하는 편이죠.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 역시 ‘스트레스가 심하구나. 그럼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좀 쉴래?’, ‘아는 테라피스트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볼래?’라는 식으로 너의 스트레스가 나와도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분노를 겉으로 표출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것의 심각성을 인식함으로써 차차 관리법을 배워 나간다고 봅니다.”
—우리랑은 문화가 좀 다른 건데요.
“미국이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꼽히는 상황에서,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심각성을 미국이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나를 얘기하는 겁니다.”
상담치료사, 3000시간 인턴십해야 자격증 받아
사실 여기에는 미국과 우리의 ‘심리치료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도 한몫을 한다. 제이 초이 씨의 공식적인 직함은 심리테라피스트, 영어로는 Licenced Psychotherapist다. 제이 초이 씨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의사와 심리치료사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정신과 의사가 심리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의사는 처방만 하고 처방 이전의 모든 내용은 허가받은 심리테라피스트들이 도맡는다.
상담치료사의 자격증은 미국 주 정부에서 관장하는데, 그 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코스를 이수해야 하고, 일대일 카운셀링, 그룹 카운셀링 등 3000시간의 인턴십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일부 히피그룹에서 자기들끼리 카운셀링을 하기도 하지만, 공인된 것은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들뿐이다. 제이 초이 씨의 경우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3000시간 인턴십을 이수해 ‘공인된 라이선스’를 받을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미국에서는 누가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하면 ‘너 테라피 받아 볼래?’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열나니까 타이레놀 먹자’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심리치료의 영역이 그만큼 일반인에게 많이 오픈돼 있고, 손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일 겁니다. 큰 기업에서는 임원들을 주기적으로 ‘멘털헬스(mental health)’ 카운셀링을 받도록 합니다. 미국 보험에 한방치료는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멘털헬스’는 포함돼 있습니다. 가령 1년에 5회, 10회까지 보험에서 커버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찮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테라피스트에 따라 다르지만 한 시간당 평균 100~150달러를 받습니다.”
—정신건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당장 그 비용을 지불하기는 너무 부담되지 않습니까.
“비용이 걱정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국은 비영리단체에서 원하는 비용을 내고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비영리단체 출신이고, 대부분의 전문 상담사들이 이곳에서 3000시간의 인턴십을 하는 겁니다. 환자들에게 내고 싶은 만큼 내라고 합니다. 한 시간에 5달러를 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지요.”
—비영리단체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려면 오래 걸리는 건 아닙니까.
“대부분 예약한 지 일주일 안에 모두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정신건강을 신체건강 못지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또 시간상의 문제로 정신상담을 못 받지 않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비영리단체이면 상담사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정신적으로 힘들 때 친한 친구에게 상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친한 친구가 있어서 속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하지만 그들은 전문가예요. 한국에서는 ‘라이선스’가 통합적이지 않다 보니 자격증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국은 ‘라이선스’라는 것이 주 정부가 전문성을 부여했다는 차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가령 저희 같은 심리치료사의 경우는 학부 또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해야 하고, 또 수년의 인턴을 이수하고 시험을 본 이후에야 라이선스가 주어집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심리치료사의 연령이 높고, 젊어 봐야 30대죠.”
교도소에 상담치료사 24시간 상주
제이 초이 씨는 삼촌인 최중섭씨의 영향으로 심리치료사의 길을 걷게 됐다. 삼촌 최중섭씨는 6·25 전쟁 이후에 곧장 한국을 떠나, 1960년대에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구사하는 동양권 1세대였다. 당시 어려움을 겪던 동양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리치료사가 됐고, 조카인 제이 초이 역시 삼촌의 뒤를 이어 이 길을 걷게 됐다. 그의 하루 일과는 샌타클래라 주 관할인 교도소에 매일 출근해 하루 평균 여덟 명의 수감자를 면담하는 일이다.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총 3500명 정도를 수용한 큰 규모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던 살인자부터 경범죄자들까지 모두 뒤섞여 있다. 그의 일상 얘기를 들으면서, 미국 교도소의 생활을 살짝 엿봤다.
제이 초이 씨의 얘기다.
“처음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낍니다. 전화도 못하죠,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도 없지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교도소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쉽게 적응하고, 초범들은 적응하지 못해 최악의 상황을 많이 떠올립니다.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이들을 위해서 심리치료를 항시 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먼저 요청하거나 치료사들이 상황을 봐서 파악하는데, 위급할 경우에는 한 시간 내에, 늦어도 24시간 내에 상담이 돼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중범죄인들을 만나면 상담치료사들의 안전이 보장되나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웃음).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손, 허리, 발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는 의자까지 묶은 다음에 치료사들이 입장합니다. 철장 몇 개 통과해서요. 샌타클래라 교도소 내 수감자의 80%는 히스패닉입니다. 이 지역에 사는 동양인은 전체 인구의 30%이지만, 실제로 수감된 사람은 극히 적죠.”
—수감자들에게까지 상담치료를 해 주는 것은 우리 식으로 보면 오버인데요.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간호사와 심리치료사가 24시간 상주합니다. 치료사 3명이 통상 교대로 24시간 대기하죠. 우리나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받기도 어려운데, 미국은 교도소에서까지 받느냐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보입니다. 미국은 ‘멘털헬스’가 재소자들조차 받아야 할,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응급치료와 마찬가지로 상담사를 24시간 상주시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신체건강에 못지않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오욕을 이제는 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구시에서 개최한 ‘자살방지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찾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타클래라 카운티 병원 소속의 심리치료사 제이 초이(Jay Choi)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살은 충분히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기에, 우리나라 식(式)의 자살방지 대처법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난 1979년에 미국으로 떠나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고 샌타클래라 카운티 소속의 심리치료사로 활동 중인 제이 초이 씨의 주요 업무는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의 심리상태를 살피는 일이다. 미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동양인들의 애로사항이나 결혼, 가족 간에 갈등을 겪는 이들의 심리치료도 겸하지만, 특히 ‘자살 방지’에 관심이 많다.
미국 자살 시도자, 무조건 응급정신병원으로 이송
그의 얘기다.
“미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서 죽겠다고 하면 경찰이 제일 먼저 그 사람을 제압합니다. 미국은 총기를 소지할 수 있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경찰이 이 사람을 제압한 후에 수갑을 채워서 카운티 응급정신병원으로 데려갑니다. 여기까지가 경찰의 업무예요. 이후 정신과 의사가 사람의 정신상태를 점검해서 의사가 사인한 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의사가 여전히 자살의 징후가 남아 있다고 판단하면 최대 72시간까지 구금할 수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를 정신과적 환자로 보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에서는 옥상에서 밑으로 내려와서 경찰관한테 죄송하다고 하면 경찰이 집으로 돌려보낸답니다. 그런 판단은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신체의 질병 못지않게 심각한 병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명권이 다른 어떤 권리보다 우선한다고 칠 때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는 거죠. 대구에서 선생들을 만나 보니까 학생이 이상해서 부모를 불렀는데, 부모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데려가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학생이 뛰어내려 죽었어요. 그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데려간 부모 책임인가요, 보낸 선생 책임인가요. 그때 이 학생을 입원시켰다면 비극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잠시 가뒀다고 이 학생이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요.
“많은 연구에 의하면 자살에 의한 충동이 있고 이를 시도한 사람을 단 몇 시간이나 2~3일만 구금하면 자살 의욕이 굉장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만일 72시간 이후에도 계속 자살 위험이 있다고 파악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시간 동안 상담치료, 약물치료 등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고, 위험성이 남았다고 판단하면 법원의 허락을 받아 추가로 14일간 구금할 수 있습니다. 이후 보다 강력한 정신과 병원으로 보내지만 이런 예는 극히 드뭅니다.”
—이건 주법(州法) 입니까, 연방법입니까.
“주 법인데, 거의 모든 주가 비슷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조사를 해 보니 유럽의 여러 나라는 자살을 바라볼 때, 그 순간만큼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비슷하게 조치합니다. 우리나라도 형태는 다르지만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병원의 통합 시스템, 수준 높은 의료진으로 볼 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이런 규칙을 정하고, 경찰이 매뉴얼을 만들어 몇 번 훈련만 하면 미국, 유럽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쉽게 자살할 환경을 없애야
물론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여러 규칙들에 있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국가다. 가령 동부의 일부 주에서는 운전자가 일정 스피드 이상으로 과속하거나, 노상방뇨를 하면 그 자리에서 구속한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볼 때 미국에서 바라보는 ‘자살 시도’에 대한 생각과 우리나라에서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제이 초이 씨는 “한국에는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고, 예방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해야겠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면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주 작은 것 중 하나로 우리나라 아파트나 높은 빌딩의 창문 열리는 각도를 제한해야 합니다. 올라갈수록 각도를 줄여서 빌딩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자살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일일이 신경쓰면 끝이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시작이라고 하는 겁니다. 미국은 흔히 말하는 문제아 10대가 있으면 총이나 위험 물건들을 전부 수거합니다. 자살을 하려는 10대가 과연 집에 총이 없다고 안 하느냐,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겁니다. 물론 의지가 있다면 주위의 환경이 어떻든 결국 하고야 말겠죠. 하지만 적어도 손쉽게 자살을 할 수 있는 상황만큼은 최소한 없애 주자는 겁니다.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옥상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하고, 고층 건물 창문에 규제를 둬 뛰어내릴 수 있는 여건을 없애야죠. 또 학생들이 초·중·고 시절에 ‘스트레스 관리’, ‘분노 관리’를 할 수 있는 교육을 받도록 정책적으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스트레스나 분노가 관리법을 배운다고 극복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는 누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으면 ‘야, 한잔하자. 다 털어버려’라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스트레스라는 단어 자체를 심도 깊게 받아들이지 않지요. ‘너만 스트레스 심하냐, 나도 심하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화가 나도 주변에 ‘내가 화났다’고 말하는 대신에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대화를 중단해 버리거나 하는 식의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부 다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우리보다 자유롭습니다. 가령 ‘내가 지금 너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거나 ‘내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 대신에 구체적으로 말로 하는 편이죠.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 역시 ‘스트레스가 심하구나. 그럼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좀 쉴래?’, ‘아는 테라피스트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볼래?’라는 식으로 너의 스트레스가 나와도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분노를 겉으로 표출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것의 심각성을 인식함으로써 차차 관리법을 배워 나간다고 봅니다.”
—우리랑은 문화가 좀 다른 건데요.
“미국이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꼽히는 상황에서,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대한 심각성을 미국이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나를 얘기하는 겁니다.”
상담치료사, 3000시간 인턴십해야 자격증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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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의사와 심리치료사의 영역이 구별되어 있으며, 일반인들이 심리치료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있다. 미국의 상담치료 모습. |
우리나라는 정신과 의사가 심리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의사는 처방만 하고 처방 이전의 모든 내용은 허가받은 심리테라피스트들이 도맡는다.
상담치료사의 자격증은 미국 주 정부에서 관장하는데, 그 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코스를 이수해야 하고, 일대일 카운셀링, 그룹 카운셀링 등 3000시간의 인턴십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일부 히피그룹에서 자기들끼리 카운셀링을 하기도 하지만, 공인된 것은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들뿐이다. 제이 초이 씨의 경우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3000시간 인턴십을 이수해 ‘공인된 라이선스’를 받을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미국에서는 누가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하면 ‘너 테라피 받아 볼래?’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열나니까 타이레놀 먹자’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심리치료의 영역이 그만큼 일반인에게 많이 오픈돼 있고, 손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일 겁니다. 큰 기업에서는 임원들을 주기적으로 ‘멘털헬스(mental health)’ 카운셀링을 받도록 합니다. 미국 보험에 한방치료는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멘털헬스’는 포함돼 있습니다. 가령 1년에 5회, 10회까지 보험에서 커버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찮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테라피스트에 따라 다르지만 한 시간당 평균 100~150달러를 받습니다.”
—정신건강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당장 그 비용을 지불하기는 너무 부담되지 않습니까.
“비용이 걱정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국은 비영리단체에서 원하는 비용을 내고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비영리단체 출신이고, 대부분의 전문 상담사들이 이곳에서 3000시간의 인턴십을 하는 겁니다. 환자들에게 내고 싶은 만큼 내라고 합니다. 한 시간에 5달러를 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지요.”
—비영리단체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려면 오래 걸리는 건 아닙니까.
“대부분 예약한 지 일주일 안에 모두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정신건강을 신체건강 못지않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또 시간상의 문제로 정신상담을 못 받지 않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비영리단체이면 상담사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정신적으로 힘들 때 친한 친구에게 상담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친한 친구가 있어서 속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없지요. 하지만 그들은 전문가예요. 한국에서는 ‘라이선스’가 통합적이지 않다 보니 자격증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국은 ‘라이선스’라는 것이 주 정부가 전문성을 부여했다는 차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가령 저희 같은 심리치료사의 경우는 학부 또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해야 하고, 또 수년의 인턴을 이수하고 시험을 본 이후에야 라이선스가 주어집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심리치료사의 연령이 높고, 젊어 봐야 30대죠.”
교도소에 상담치료사 24시간 상주
제이 초이 씨는 삼촌인 최중섭씨의 영향으로 심리치료사의 길을 걷게 됐다. 삼촌 최중섭씨는 6·25 전쟁 이후에 곧장 한국을 떠나, 1960년대에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구사하는 동양권 1세대였다. 당시 어려움을 겪던 동양인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리치료사가 됐고, 조카인 제이 초이 역시 삼촌의 뒤를 이어 이 길을 걷게 됐다. 그의 하루 일과는 샌타클래라 주 관할인 교도소에 매일 출근해 하루 평균 여덟 명의 수감자를 면담하는 일이다.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총 3500명 정도를 수용한 큰 규모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렸던 살인자부터 경범죄자들까지 모두 뒤섞여 있다. 그의 일상 얘기를 들으면서, 미국 교도소의 생활을 살짝 엿봤다.
제이 초이 씨의 얘기다.
“처음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자살 충동을 많이 느낍니다. 전화도 못하죠,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도 없지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교도소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쉽게 적응하고, 초범들은 적응하지 못해 최악의 상황을 많이 떠올립니다.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이들을 위해서 심리치료를 항시 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먼저 요청하거나 치료사들이 상황을 봐서 파악하는데, 위급할 경우에는 한 시간 내에, 늦어도 24시간 내에 상담이 돼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중범죄인들을 만나면 상담치료사들의 안전이 보장되나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웃음). 영화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손, 허리, 발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는 의자까지 묶은 다음에 치료사들이 입장합니다. 철장 몇 개 통과해서요. 샌타클래라 교도소 내 수감자의 80%는 히스패닉입니다. 이 지역에 사는 동양인은 전체 인구의 30%이지만, 실제로 수감된 사람은 극히 적죠.”
—수감자들에게까지 상담치료를 해 주는 것은 우리 식으로 보면 오버인데요.
“샌타클래라 교도소는 간호사와 심리치료사가 24시간 상주합니다. 치료사 3명이 통상 교대로 24시간 대기하죠. 우리나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받기도 어려운데, 미국은 교도소에서까지 받느냐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보입니다. 미국은 ‘멘털헬스’가 재소자들조차 받아야 할,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응급치료와 마찬가지로 상담사를 24시간 상주시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신체건강에 못지않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오욕을 이제는 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