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어”(우징롄)
⊙ 노동 투자에 올인한 경제국가, 결국 수확체감에 빠져 경제침체
⊙ 경제성장률에 목맨 중국 정부는 소비・내수 진작 못해
金起秀
⊙ 55세.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美미주리대 국제정치경제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同 수석연구위원, 국제정치연구실장 역임.
⊙ 저서: 《중국경제 추락에 대비하라》 《국제통화금융체제와 세계경제패권》
《21세기 대한민국 대외전략》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등.
⊙ 노동 투자에 올인한 경제국가, 결국 수확체감에 빠져 경제침체
⊙ 경제성장률에 목맨 중국 정부는 소비・내수 진작 못해
金起秀
⊙ 55세.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美미주리대 국제정치경제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同 수석연구위원, 국제정치연구실장 역임.
⊙ 저서: 《중국경제 추락에 대비하라》 《국제통화금융체제와 세계경제패권》
《21세기 대한민국 대외전략》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등.
“중국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할 경우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우징롄(嗚敬璉) 중국 국무원 학술위원회 부주임)
2012년 11월 8일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보고대회에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20년까지 2010년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2020년은 시진핑(習近平) 차기 국가주석의 임기(2022년)와 거의 일치한다. 지난 2011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540달러. 후 주석의 목표대로라면 2020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약 7.5%의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 중국이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9.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볼 때, 후진타오 주석의 목표는 실현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우징롄 부주임을 비롯, 천즈우(陳志武) 예일대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중국 내외 학자들은 중국 경제에 대해 “지속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세종연구소의 김기수 수석연구위원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기수 수석연구위원(이하 연구위원)은 지난 2012년 8월 출간한 《중국경제 추락에 대비하라》라는 책에서 “중국 경제 문제는 몇% 성장률이냐,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추락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중국과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던 구(舊) 소련, 일본, 한국의 예를 들며 “기초과학 기술 발전 없이 노동력과 자본 투자 위주의 경제 발전 전략은 시간이 지나 이익이 줄면서 부실화되고, 부실을 숨기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며,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속하다 어느 시점에서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경제적 파국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위기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김기수 연구위원을 만나 향후 10년 시진핑 시대의 중국 경제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투자와 수출에 목매는 경제는 결국 추락
—중국 경제가 어느 시점에서 추락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30년간 중국의 경제 발전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발전 전략은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정부가 제조업의 특정 분야에 자원을 동원하고 투입하는 방식입니다.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서 정부가 은행의 목줄을 쥐고 기업에 저리로 대출을 몰아줍니다. 여기에 임금이 낮으니까, 서구 기업에 비해서 물건을 싸게 팔 수 있습니다. 당연히 수출이 잘되죠. 투자와 수출이 늘어나니 경제는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 소련이 1984년까지 약 25년, 일본이 1985년까지 약 30년, 한국이 1990년까지 약 25년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 주저앉았습니다. 중국이 이들 국가의 발전 전략을 따르는 한 결과는 예견돼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의 한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일본은 1987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66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을 넘어 세계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불거졌습니다.
일본이 경제발달을 하면서 낮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농촌의 값싼 잉여인력이 도시에 대규모로 공급됐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농촌의 잉여인력은 당연히 고갈됐고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걸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던 두 버팀목 가운데 낮은 임금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겁니다.”
—다른 하나는 뭡니까.
“이자율입니다. 일본 정부가 1950년대부터 경제성장을 이끌 당시 일본의 저축률은 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서 저축이 몰리니 당연히 예금 공급은 많아졌고, 돈 값에 해당하는 이자율 역시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죠. 예금과 대출금리는 같이 움직이니까 대출금리도 낮아질 수밖에 없죠. 1970년대 미국의 대출금리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을 때 일본의 대출금리는 5% 이하였어요. 당연히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선진국 특히 미국의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일본 기업 경쟁력의 남은 버팀목이 사라집니다. 그 후 일본의 경제는 1985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재정정책, 금융정책, 산업정책 등 백약이 무효 아닙니까?”
—중국도 한국, 일본의 경제 발전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거의 비슷합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 토지, 노동, 기술이 적절히 배합돼야 합니다. 알다시피 1978년 개혁개방 직후 중국은 토지와 노동은 풍부했지만 자본과 기술이 없었어요. 당연히 외부의 자본, 즉 투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경제학에서 간단하지만 전체를 보여주는 등식이 하나 있습니다. 총생산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무역수지)의 총합이라는 거죠. 개혁개방 당시 중국 국민의 국민소득은 세계 최하위였으니 국내소비를 기대할 수는 없었죠. 정부가 가난하니 정부지출도 부실했습니다. 결국 투자를 증진시키고 수출을 많이 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자율과 임금도 계속 억눌러 왔습니다.”
국민들 돈 짜내 대출하는 것의 한계
—중국은 어떻게 이자율을 낮추고 있습니까.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노후대책은 아예 없습니다. 증시는 물론이고 다른 금융상품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그저 은행 예금에만 의존합니다(2009년 중국 국유은행과 민간은행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중국 전체 금융자산의 94%, 증권회사는 1.9%, 보험사는 4.1%). 이러한 중국의 정책은 자본부족을 해결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었어요. 중국의 지난해 저축률이 현재 GDP 대비 52%입니다. 1988년 정점에 이른 한국의 저축률이 37%였다는 걸 보면 얼마나 엄청난 수치입니까. 현재 중국의 보통예금 이자율과 1년 정기예금 이자율이 각각 0.72%와 1.98%입니다. 경제성장은 10% 가까이 했는데 예금 이자율이 평균 1.5%라는 건 결국 국민들의 돈을 쥐어 짜내서 모았다는 거죠.”
—중국은행들은 그 많은 예금을 어디에다 쓰는 겁니까.
“국유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은행 전체 대출의 70%를 국유기업이 차지했습니다. 민간에는 단지 30%만 돌아갔어요.”
—중국의 낮은 임금 메리트는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닙니까.
“중국도 한국, 일본처럼 농촌의 잉여노동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낮췄습니다. 그게 바로 중국의 농민공입니다. 이들이 약 2억5000만명 정도 됩니다. 중국은 후커우제(戶口制)가 있어 정부 허락 없이는 사실 자기 호구에서 이주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값싼 노동력을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서 묵인을 했지요. 농민 한 명이 호구가 없는 베이징으로 이주하면 아무런 사회보장혜택도 누릴 수 없습니다. 불법이니까요. 그러니 국가나 기업이 임금 외에 다른 비용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현재 농촌에 약 6억명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계속해서 도시로 온다면 기존의 도심 하층민,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습니다. 따라서 6억명의 농촌 인구 가운데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기술 없는 성장은 수확체감의 함정에 걸려
—이자율과 임금이 오르면 어떤 나라도 경제 발전이 더디게 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경제 발전을 했던 나라들의 경제 발전은 더디게 되죠. 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등은 거꾸러지게 됩니다.”
—그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뭔가요.
“과학 기술력의 차이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도 메이지 유신 때부터 서구의 과학기술과 생산기술을 모방해서 따라잡았어요. 전문용어로는 추격(catch-up) 성장이라고 합니다. 이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습득 또는 체화 능력이에요. 즉 남의 기술을 구매하거나, 어렵더라도 이 기술을 역추적하여 스스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관건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사들일 기술이 없거나 역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없어 경제성장이 ‘확’ 꺾이는 겁니다. 한국, 타이완, 일본 등이 이런 한계에 봉착한 겁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기술과 생산성 발전이 더딘 투자기반형 성장은 결국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투입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투입의 단순 증가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1인당 GDP 3만 달러 선에서 기업의 이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를 만회할 혁신기술이 없다 보니 이익률을 맞추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익이 나지 않으니 부실이 쌓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대출을 했습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다 기업, 은행이 동반 부실화돼서 20년간의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한 상태였군요.
“맞습니다. 한국도 1980년대 후반까지 값싼 임금, 저렴한 이자율의 대출을 무기 삼아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을 지나면서 수확체감으로 인해 수익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차입이었죠. 이익이 줄어들자 생산성 향상 방식 즉 기술발전이 아닌 자본에 대한 투자로 성장을 끌어올리려고 한 거죠. 기존 사업에서 돈이 안 되니,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손실이 나고 또 돈을 빌려 다른 곳에 투자를 한 겁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 30대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500%에 이른 근본 원인은 재벌의 탐욕이 아닌,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이었어요.”
투자가 GDP 대비 40% 이상인 국가는 없어
—중국도 한국, 일본과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겁니까.
“한국, 일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죠. 앞서 말한 것처럼, 한 국가의 총생산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무역수지)의 총합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위의 등식에서 중국의 소비는 약 32%, 투자는 약 52%였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투자가 GDP 대비 40% 이상인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의 GDP 대비 소비 비율은 50%가 넘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투입, 즉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무리한 투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리한 투자란 어떤 겁니까.
“여기서 투자는 기계, 설비, 주택 혹은 도로, 항만 등 고정자산(fixed capital)에 대한 자금의 투입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런 투자가 효율적인가입니다. 랑셍핑(郞成平) 홍콩중문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GDP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 소비입니다. 2008년 GDP의 35%를 차지했던 소비가 2009년에는 29%로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철근, 콘크리트 소비의 경우, 2008년 총투자 대비 57%에서 2009년 67%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부를 쌓거나 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원을 중국 스스로가 철근, 콘크리트로 맞교환하고 있다는 겁니다.
필요 없는 인프라 건설에 투입할 자금을 서민에게 배분하고 제대로 된 기업을 키우는 데 써야 합니다. 기업이 많은 수익을 얻으면 임금이 올라가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현재 중국의 상황은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속해서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어요. 자원의 왜곡으로 경제성장률이라는 수치만 끌어올리고 있는 거죠.”
부실 폭탄
김기수 연구위원이 그의 저서에서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노동자 총소득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51.4%였으나 2007년에는 39.7%로 떨어졌다. 수도 베이징 시민들의 소득도 마찬가지다. 2011년 베이징의 1인당 GDP는 1만2450달러. 하지만 1인당 가처분 소득(개인소득 중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은 5100달러다. 중국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비슷하다. 개인 가처분 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2년 68.6%였지만 2007년에는 52.3%로 낮아졌다. 김 연구위원은 “이 수치는 중국 정부의 투자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효율적인 투자는 결국 부실채권이라는 폭탄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의 얘기다.
“1998년 중국 인민은행이 처음으로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를 발표했습니다.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의 결단 덕분이었죠. 그는 공개하기는 너무 아프지만 일찍 상처를 도려내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때 공개한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전체 대출액의 40%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국유은행 대출의 95%가 국유기업에 흘러갔습니다. 이 얘기는 국유기업의 이익률이 그만큼 형편없이 낮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익률이 떨어지는 국유기업에 계속 돈을 빌려주고 그 국유기업은 계속해서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겁니다. 한국,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거죠.”
—2012년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부실채권 문제를 잘 해결한 것 아닌가요.
“단순히 생각할 때, 이게 사실이 되려면 중국의 국유기업 수익률이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높아져야 합니다. 이걸 입증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어요. 중국 부실채권 문제 전문가인 미국 재무부 출신 브래드 셋서(Brad Setser) 박사는 2005년 중국 부실채권 규모가 중국 전체 GDP의 약 57%라고 분석했어요.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 키니코스 짐 채노스(Jim Chanos) 회장도 최근 ‘중국은행 대출의 40%가 여전히 부실화 상태’라고 봤습니다.”
—은행의 부실이 이어지면 어떤 상태가 되는 겁니까.
“은행이 감당할 수 없으면 결국 중앙은행이 더 많은 지원을 해야겠죠. 하지만 영원히 지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은 은행 자체가 금융체제의 전부인 만큼 모든 금융위험이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은행이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경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겁니다.”
경제성장률에 목매는 공산당
—중국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왜곡된 투자 때문이라면 소비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습니까.
“중국 경제를 분석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절대로 내수, 소비 중심의 경제체제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소비를 늘리는 방법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면 됩니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첫째 세금을 감면하면 소득이 올라갑니다. 이게 바로 재정정책인데 미국 정부가 레이건 때부터 세금 감면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죠. 그런데 중국은 못합니다. 세금을 줄인다고 해서 바로 소비가 늘지 않아요. 시간적인 갭이 상당히 생기는데 그 기간 동안 정부의 수입은 줄어듭니다. 정부 수입이 줄어들면 투자를 줄여야 해요. 투자를 줄이면 경제성장이 바로 꺾입니다.”
—이자율을 올리면 이자 수입이 늘어날 테니 소비가 늘지 않겠습니까.
“예금 이자율을 올리면 소비는 늘겠죠. 하지만 대출 이자율도 높아집니다. 그럼 중국 국유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가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현재도 허덕이는데 이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개인에게 대출을 늘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요.
“그러면 국유기업에 돌아갈 대출이 줄어요. 지금도 빚으로 낮은 이익률을 만회하고 있는데 대출이 줄면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국유기업의 투자가 줄어요. 그러면 바로 경제성장이 꺾입니다. 게다가 중국인들이 예금을 줄이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집니다. 중국은 2012년 초 기준으로 3조2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습니다. 여기에 매년 무역흑자로 엄청난 규모의 외환이 쌓여요. 외환이 들어오면 이를 위안화로 바꾸기 때문에 통화팽창이 일어납니다. 이게 인플레이션이에요. 따라서 통화팽창을 막아야 합니다. 중앙은행은 과잉통화를 흡수, 중화시켜야 하는데 이 작업을 불태화 간섭(sterilizing intervention)이라고 합니다.
불태화 간섭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외환보유고만큼 채권을 시중에 팔아 과잉통화를 중앙은행이 흡수합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은행이 예금 인출에 대비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불준비금을 올려서 시중에 있는 통화를 흡수해요. 그런데 중국은 이 방법을 써도 과잉통화의 82%밖에 흡수하지 못합니다. 인플레 위험이 상존하는 거죠. 한국의 경우는 99%가 흡수돼서 통화팽창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아요.
아무튼 이렇게 불태화 간섭을 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의 예금을 중앙은행이 지불준비금으로 끌어와야 하는 겁니다. 만약 시중은행의 예금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이 부족해집니다. 따라서 예금이 줄어들게 할 수 없습니다.”
—외환보유고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겁난다면, 수출을 줄이면 되지 않습니까.
“수출을 줄이면 경제성장률이 꺾이게 됩니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꺾이는 걸 두려워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는 매년 대학 졸업생이 650만명, 일반 취업희망자 650만명 등 모두 1300만명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는 매년 8%의 경제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실업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동요가 극심해질 겁니다. 중국 공안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18만 건의 시위와 폭동이 있었습니다. 만약 실업문제가 불거지면 중국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겁니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어느 시점에 가면 정치제도가 경제성장 이끈다
—어느 나라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만약 정치권이 잘못하면,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거나 국회의원을 바꾸면서 정치적인 불만을 자체로 해소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예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참을 때까지 참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파국이 오는 겁니다. 중국 공산당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는 겁니다.”
—결국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공산당 독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입니까.
“궁극적으로 민주화만이 답입니다. 이는 단지 국민의 자유, 평등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닙니다. 얼마 전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버드대 정치학과 제임스 로빈스가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400년간 전 세계 국가들을 비교한 결과,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어느 특정시점까지는 정치제도와 관계없이 경제성장이 일어나지만, 그 시점을 넘어서면 정치제도가 경제성장을 이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중국이 그 시점이라는 건가요.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 수뇌부들이 인정한 겁니다. 2007년 후진타오 주석이 ‘허셰(和諧·조화)’ 사회를 주장했습니다. 허셰 사회가 뭡니까. 빈부격차를 없애고 소득분배 사회를 이루겠다는 겁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몇 해 전부터 계속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인식을 갖는 건, 국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겠다는 선(善)의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저서처럼, 정치적인 민주화가 없으면 경제성장 또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민주화 시작했어야
—중국의 민주화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역사적으로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인 투쟁, 전쟁을 통해 빼앗기거나 쟁취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의 해결방식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당시 자오쯔양(趙紫陽)으로 대표되는 온건파들은 시위대가 요구한 부패와 민주체제의 확립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오쯔양은 당시 전체 40% 정도에 머물고 있던 시장경제 비율을 촉진시키고 민주화를 통해 권력이 축소되고 경제의 모순이 사라지면 시장의 혼란과 부패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봤던 거죠.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이에 반대하면서 수포로 돌아간 거죠. 이때 점진적인 민주화 정책을 시작했으면 공산당의 권력이 자연스럽게 축소되면서 상당부분 민주화됐을 겁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자오쯔양이 일찍부터 ‘권력을 민간에 이양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한 건 비교정치의 핵심에 해당되는 말”이라며 “중국 정부가 자오쯔양의 말을 실천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8일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됐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보고대회에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20년까지 2010년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2020년은 시진핑(習近平) 차기 국가주석의 임기(2022년)와 거의 일치한다. 지난 2011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540달러. 후 주석의 목표대로라면 2020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약 7.5%의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 중국이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9.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볼 때, 후진타오 주석의 목표는 실현 가능할 듯하다.
그러나 우징롄 부주임을 비롯, 천즈우(陳志武) 예일대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중국 내외 학자들은 중국 경제에 대해 “지속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세종연구소의 김기수 수석연구위원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기수 수석연구위원(이하 연구위원)은 지난 2012년 8월 출간한 《중국경제 추락에 대비하라》라는 책에서 “중국 경제 문제는 몇% 성장률이냐,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추락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중국과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던 구(舊) 소련, 일본, 한국의 예를 들며 “기초과학 기술 발전 없이 노동력과 자본 투자 위주의 경제 발전 전략은 시간이 지나 이익이 줄면서 부실화되고, 부실을 숨기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며,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속하다 어느 시점에서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경제적 파국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위기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세종연구소에서 김기수 연구위원을 만나 향후 10년 시진핑 시대의 중국 경제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투자와 수출에 목매는 경제는 결국 추락
—중국 경제가 어느 시점에서 추락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30년간 중국의 경제 발전은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발전 전략은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정부가 제조업의 특정 분야에 자원을 동원하고 투입하는 방식입니다.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서 정부가 은행의 목줄을 쥐고 기업에 저리로 대출을 몰아줍니다. 여기에 임금이 낮으니까, 서구 기업에 비해서 물건을 싸게 팔 수 있습니다. 당연히 수출이 잘되죠. 투자와 수출이 늘어나니 경제는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 소련이 1984년까지 약 25년, 일본이 1985년까지 약 30년, 한국이 1990년까지 약 25년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모두 주저앉았습니다. 중국이 이들 국가의 발전 전략을 따르는 한 결과는 예견돼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발전 전략의 한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일본은 1987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66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을 넘어 세계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불거졌습니다.
일본이 경제발달을 하면서 낮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농촌의 값싼 잉여인력이 도시에 대규모로 공급됐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농촌의 잉여인력은 당연히 고갈됐고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걸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던 두 버팀목 가운데 낮은 임금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겁니다.”
—다른 하나는 뭡니까.
“이자율입니다. 일본 정부가 1950년대부터 경제성장을 이끌 당시 일본의 저축률은 서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서 저축이 몰리니 당연히 예금 공급은 많아졌고, 돈 값에 해당하는 이자율 역시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죠. 예금과 대출금리는 같이 움직이니까 대출금리도 낮아질 수밖에 없죠. 1970년대 미국의 대출금리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을 때 일본의 대출금리는 5% 이하였어요. 당연히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선진국 특히 미국의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일본 기업 경쟁력의 남은 버팀목이 사라집니다. 그 후 일본의 경제는 1985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재정정책, 금융정책, 산업정책 등 백약이 무효 아닙니까?”
—중국도 한국, 일본의 경제 발전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거의 비슷합니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본, 토지, 노동, 기술이 적절히 배합돼야 합니다. 알다시피 1978년 개혁개방 직후 중국은 토지와 노동은 풍부했지만 자본과 기술이 없었어요. 당연히 외부의 자본, 즉 투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경제학에서 간단하지만 전체를 보여주는 등식이 하나 있습니다. 총생산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무역수지)의 총합이라는 거죠. 개혁개방 당시 중국 국민의 국민소득은 세계 최하위였으니 국내소비를 기대할 수는 없었죠. 정부가 가난하니 정부지출도 부실했습니다. 결국 투자를 증진시키고 수출을 많이 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자율과 임금도 계속 억눌러 왔습니다.”
국민들 돈 짜내 대출하는 것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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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완공된 항저우대교. 중국은 성장의 상당부분을 토건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노후대책은 아예 없습니다. 증시는 물론이고 다른 금융상품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도 그저 은행 예금에만 의존합니다(2009년 중국 국유은행과 민간은행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중국 전체 금융자산의 94%, 증권회사는 1.9%, 보험사는 4.1%). 이러한 중국의 정책은 자본부족을 해결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었어요. 중국의 지난해 저축률이 현재 GDP 대비 52%입니다. 1988년 정점에 이른 한국의 저축률이 37%였다는 걸 보면 얼마나 엄청난 수치입니까. 현재 중국의 보통예금 이자율과 1년 정기예금 이자율이 각각 0.72%와 1.98%입니다. 경제성장은 10% 가까이 했는데 예금 이자율이 평균 1.5%라는 건 결국 국민들의 돈을 쥐어 짜내서 모았다는 거죠.”
—중국은행들은 그 많은 예금을 어디에다 쓰는 겁니까.
“국유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은행 전체 대출의 70%를 국유기업이 차지했습니다. 민간에는 단지 30%만 돌아갔어요.”
—중국의 낮은 임금 메리트는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닙니까.
“중국도 한국, 일본처럼 농촌의 잉여노동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낮췄습니다. 그게 바로 중국의 농민공입니다. 이들이 약 2억5000만명 정도 됩니다. 중국은 후커우제(戶口制)가 있어 정부 허락 없이는 사실 자기 호구에서 이주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값싼 노동력을 도시에 공급하기 위해서 묵인을 했지요. 농민 한 명이 호구가 없는 베이징으로 이주하면 아무런 사회보장혜택도 누릴 수 없습니다. 불법이니까요. 그러니 국가나 기업이 임금 외에 다른 비용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현재 농촌에 약 6억명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계속해서 도시로 온다면 기존의 도심 하층민,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습니다. 따라서 6억명의 농촌 인구 가운데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기술 없는 성장은 수확체감의 함정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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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한국공장에서 일하는 중국 여공들. 중국의 저임(低賃) 메리트는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
“맞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경제 발전을 했던 나라들의 경제 발전은 더디게 되죠. 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등은 거꾸러지게 됩니다.”
—그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뭔가요.
“과학 기술력의 차이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도 메이지 유신 때부터 서구의 과학기술과 생산기술을 모방해서 따라잡았어요. 전문용어로는 추격(catch-up) 성장이라고 합니다. 이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습득 또는 체화 능력이에요. 즉 남의 기술을 구매하거나, 어렵더라도 이 기술을 역추적하여 스스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관건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사들일 기술이 없거나 역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없어 경제성장이 ‘확’ 꺾이는 겁니다. 한국, 타이완, 일본 등이 이런 한계에 봉착한 겁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기술과 생산성 발전이 더딘 투자기반형 성장은 결국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투입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투입의 단순 증가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1인당 GDP 3만 달러 선에서 기업의 이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이를 만회할 혁신기술이 없다 보니 이익률을 맞추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익이 나지 않으니 부실이 쌓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대출을 했습니다.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다 기업, 은행이 동반 부실화돼서 20년간의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직전과 비슷한 상태였군요.
“맞습니다. 한국도 1980년대 후반까지 값싼 임금, 저렴한 이자율의 대출을 무기 삼아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을 지나면서 수확체감으로 인해 수익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이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차입이었죠. 이익이 줄어들자 생산성 향상 방식 즉 기술발전이 아닌 자본에 대한 투자로 성장을 끌어올리려고 한 거죠. 기존 사업에서 돈이 안 되니,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손실이 나고 또 돈을 빌려 다른 곳에 투자를 한 겁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 30대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500%에 이른 근본 원인은 재벌의 탐욕이 아닌,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이었어요.”
투자가 GDP 대비 40% 이상인 국가는 없어
—중국도 한국, 일본과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겁니까.
“한국, 일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죠. 앞서 말한 것처럼, 한 국가의 총생산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무역수지)의 총합입니다. 2010년 기준으로 위의 등식에서 중국의 소비는 약 32%, 투자는 약 52%였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투자가 GDP 대비 40% 이상인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의 GDP 대비 소비 비율은 50%가 넘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투입, 즉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무리한 투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리한 투자란 어떤 겁니까.
“여기서 투자는 기계, 설비, 주택 혹은 도로, 항만 등 고정자산(fixed capital)에 대한 자금의 투입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런 투자가 효율적인가입니다. 랑셍핑(郞成平) 홍콩중문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GDP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 소비입니다. 2008년 GDP의 35%를 차지했던 소비가 2009년에는 29%로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철근, 콘크리트 소비의 경우, 2008년 총투자 대비 57%에서 2009년 67%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부를 쌓거나 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원을 중국 스스로가 철근, 콘크리트로 맞교환하고 있다는 겁니다.
필요 없는 인프라 건설에 투입할 자금을 서민에게 배분하고 제대로 된 기업을 키우는 데 써야 합니다. 기업이 많은 수익을 얻으면 임금이 올라가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현재 중국의 상황은 비효율적인 투자를 지속해서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어요. 자원의 왜곡으로 경제성장률이라는 수치만 끌어올리고 있는 거죠.”
부실 폭탄
김기수 연구위원이 그의 저서에서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노동자 총소득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51.4%였으나 2007년에는 39.7%로 떨어졌다. 수도 베이징 시민들의 소득도 마찬가지다. 2011년 베이징의 1인당 GDP는 1만2450달러. 하지만 1인당 가처분 소득(개인소득 중 소비·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은 5100달러다. 중국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비슷하다. 개인 가처분 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2년 68.6%였지만 2007년에는 52.3%로 낮아졌다. 김 연구위원은 “이 수치는 중국 정부의 투자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효율적인 투자는 결국 부실채권이라는 폭탄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의 얘기다.
“1998년 중국 인민은행이 처음으로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를 발표했습니다.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의 결단 덕분이었죠. 그는 공개하기는 너무 아프지만 일찍 상처를 도려내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때 공개한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전체 대출액의 40%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국유은행 대출의 95%가 국유기업에 흘러갔습니다. 이 얘기는 국유기업의 이익률이 그만큼 형편없이 낮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익률이 떨어지는 국유기업에 계속 돈을 빌려주고 그 국유기업은 계속해서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겁니다. 한국,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거죠.”
—2012년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부실채권 문제를 잘 해결한 것 아닌가요.
“단순히 생각할 때, 이게 사실이 되려면 중국의 국유기업 수익률이 지난 10년 동안 엄청나게 높아져야 합니다. 이걸 입증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어요. 중국 부실채권 문제 전문가인 미국 재무부 출신 브래드 셋서(Brad Setser) 박사는 2005년 중국 부실채권 규모가 중국 전체 GDP의 약 57%라고 분석했어요.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 키니코스 짐 채노스(Jim Chanos) 회장도 최근 ‘중국은행 대출의 40%가 여전히 부실화 상태’라고 봤습니다.”
—은행의 부실이 이어지면 어떤 상태가 되는 겁니까.
“은행이 감당할 수 없으면 결국 중앙은행이 더 많은 지원을 해야겠죠. 하지만 영원히 지원할 수는 없는 겁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은 은행 자체가 금융체제의 전부인 만큼 모든 금융위험이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집중될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은행이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경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겁니다.”
경제성장률에 목매는 공산당
—중국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왜곡된 투자 때문이라면 소비를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습니까.
“중국 경제를 분석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절대로 내수, 소비 중심의 경제체제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소비를 늘리는 방법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면 됩니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첫째 세금을 감면하면 소득이 올라갑니다. 이게 바로 재정정책인데 미국 정부가 레이건 때부터 세금 감면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죠. 그런데 중국은 못합니다. 세금을 줄인다고 해서 바로 소비가 늘지 않아요. 시간적인 갭이 상당히 생기는데 그 기간 동안 정부의 수입은 줄어듭니다. 정부 수입이 줄어들면 투자를 줄여야 해요. 투자를 줄이면 경제성장이 바로 꺾입니다.”
—이자율을 올리면 이자 수입이 늘어날 테니 소비가 늘지 않겠습니까.
“예금 이자율을 올리면 소비는 늘겠죠. 하지만 대출 이자율도 높아집니다. 그럼 중국 국유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가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현재도 허덕이는데 이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개인에게 대출을 늘리는 방법도 있을 텐데요.
“그러면 국유기업에 돌아갈 대출이 줄어요. 지금도 빚으로 낮은 이익률을 만회하고 있는데 대출이 줄면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국유기업의 투자가 줄어요. 그러면 바로 경제성장이 꺾입니다. 게다가 중국인들이 예금을 줄이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인플레이션 문제가 불거집니다. 중국은 2012년 초 기준으로 3조2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습니다. 여기에 매년 무역흑자로 엄청난 규모의 외환이 쌓여요. 외환이 들어오면 이를 위안화로 바꾸기 때문에 통화팽창이 일어납니다. 이게 인플레이션이에요. 따라서 통화팽창을 막아야 합니다. 중앙은행은 과잉통화를 흡수, 중화시켜야 하는데 이 작업을 불태화 간섭(sterilizing intervention)이라고 합니다.
불태화 간섭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외환보유고만큼 채권을 시중에 팔아 과잉통화를 중앙은행이 흡수합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은행이 예금 인출에 대비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불준비금을 올려서 시중에 있는 통화를 흡수해요. 그런데 중국은 이 방법을 써도 과잉통화의 82%밖에 흡수하지 못합니다. 인플레 위험이 상존하는 거죠. 한국의 경우는 99%가 흡수돼서 통화팽창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아요.
아무튼 이렇게 불태화 간섭을 하기 위해서는 시중은행의 예금을 중앙은행이 지불준비금으로 끌어와야 하는 겁니다. 만약 시중은행의 예금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이 부족해집니다. 따라서 예금이 줄어들게 할 수 없습니다.”
—외환보유고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겁난다면, 수출을 줄이면 되지 않습니까.
“수출을 줄이면 경제성장률이 꺾이게 됩니다.”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꺾이는 걸 두려워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에서는 매년 대학 졸업생이 650만명, 일반 취업희망자 650만명 등 모두 1300만명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는 매년 8%의 경제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실업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 동요가 극심해질 겁니다. 중국 공안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18만 건의 시위와 폭동이 있었습니다. 만약 실업문제가 불거지면 중국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겁니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어느 시점에 가면 정치제도가 경제성장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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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 |
“우리나라나 일본은 만약 정치권이 잘못하면,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거나 국회의원을 바꾸면서 정치적인 불만을 자체로 해소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예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참을 때까지 참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파국이 오는 겁니다. 중국 공산당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는 겁니다.”
—결국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공산당 독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입니까.
“궁극적으로 민주화만이 답입니다. 이는 단지 국민의 자유, 평등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닙니다. 얼마 전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버드대 정치학과 제임스 로빈스가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들은 지난 400년간 전 세계 국가들을 비교한 결과,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어느 특정시점까지는 정치제도와 관계없이 경제성장이 일어나지만, 그 시점을 넘어서면 정치제도가 경제성장을 이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중국이 그 시점이라는 건가요.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 수뇌부들이 인정한 겁니다. 2007년 후진타오 주석이 ‘허셰(和諧·조화)’ 사회를 주장했습니다. 허셰 사회가 뭡니까. 빈부격차를 없애고 소득분배 사회를 이루겠다는 겁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몇 해 전부터 계속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이런 인식을 갖는 건, 국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겠다는 선(善)의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저서처럼, 정치적인 민주화가 없으면 경제성장 또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민주화 시작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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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시위학생들 앞에서 자제를 호소하는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 중국은 이때 정치개혁에 들어갔어야 했다. |
“역사적으로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인 투쟁, 전쟁을 통해 빼앗기거나 쟁취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의 해결방식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당시 자오쯔양(趙紫陽)으로 대표되는 온건파들은 시위대가 요구한 부패와 민주체제의 확립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오쯔양은 당시 전체 40% 정도에 머물고 있던 시장경제 비율을 촉진시키고 민주화를 통해 권력이 축소되고 경제의 모순이 사라지면 시장의 혼란과 부패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봤던 거죠.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이에 반대하면서 수포로 돌아간 거죠. 이때 점진적인 민주화 정책을 시작했으면 공산당의 권력이 자연스럽게 축소되면서 상당부분 민주화됐을 겁니다.”
김기수 연구위원은 “자오쯔양이 일찍부터 ‘권력을 민간에 이양해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한 건 비교정치의 핵심에 해당되는 말”이라며 “중국 정부가 자오쯔양의 말을 실천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