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발제조(태광실업)·정밀화학(휴켐스)·신소재(에어로젤코리아)·서비스레저(정산개발) 등으로
사업 다각화… 해외 근로자 포함 그룹 전체 직원 수 5만명
⊙ 그룹 매출액 올해 1조5000억원… 盧武鉉 정권 말기 대비 두 배 증가
⊙ 인도네시아에 태광실업 제3공장 건설 中, 말레이시아에는 휴켐스 공장 설립 예정
⊙ 국내 직원과 현지 직원 동일한 대우…“현지 수익은 현지에 재투자”
⊙ 오너 장기 不在로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차질
사업 다각화… 해외 근로자 포함 그룹 전체 직원 수 5만명
⊙ 그룹 매출액 올해 1조5000억원… 盧武鉉 정권 말기 대비 두 배 증가
⊙ 인도네시아에 태광실업 제3공장 건설 中, 말레이시아에는 휴켐스 공장 설립 예정
⊙ 국내 직원과 현지 직원 동일한 대우…“현지 수익은 현지에 재투자”
⊙ 오너 장기 不在로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차질
-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
지난 10월 말 주요 일간지에 박연차(朴淵次) 태광그룹 회장이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그룹 계열사인 휴켐스(첨단 화학소재 전문기업)가 정부 주관의 노사(勞使)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자사(自社) 광고에 모델로 등장한 것이다. 2006년 농협으로부터 인수한 휴켐스는 노무현(盧武鉉) 정권 당시 특혜 논란이 일었던 회사다.
광고를 본 독자들은 “이분 요즘 뭐 하나?”에서부터 “이 사람 회사 안 망했나?” “벌써 감옥에서 풀려났나?” “노무현 후원자였는데 사업이 잘되나?”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 노 대통령 후원자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李明博) 정부 첫해인 2008년 12월 뇌물공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신병치료차 형집행정지로 잠시 나왔다가 재수감됐다는 소식이 간혹 보도되곤 했다. 박연차 회장은 작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현 정부와 박연차 회장은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그런데 그의 회사는 어떻게 현 정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까. 오너의 장기 부재(不在)로 그룹 모체(母體)인 태광실업은 경영실적이 어떻게 변했을까.
휴켐스 인수, 특혜 아니라고 재판에서 밝혀져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19층에 위치한 휴켐스 본사를 찾았다. 기자 신분을 밝히자 회사 관계자들은 무척 경계했다. 박 회장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염두에 둔 듯했다. “박연차 회장과 태광실업, 휴켐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잠시 후 최규성 휴켐스 대표, 이병국 경영관리본부장, 박주환 이사 등이 나와 “물어볼 것 있으면 빨리 물어보고 돌아가라”고 했다.
-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노사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2006년 민영화 직전까지 노사분규가 극심했습니다. 그런데 태광그룹으로 인수된 후에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전체 200여 명의 근로자 중에서 희망자에 한해 명예퇴직이 있었지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해마다 임금협상도 원만히 타결됐고, 경영이 안정되면서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지급했어요. 성과급도 대폭 올렸고요. 회사 주가(株價)가 오르면서 자사주를 받았던 직원들은 두 배 이상 추가수입이 생겼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비(非)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정년도 늘어났어요.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 회사 실적은 늘었습니까.
“2006년 인수 당시 회사 매출은 3000억원이었어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도 매출은 계속 늘었고 지난해에는 5700억원이었지요. 올해는 7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계속 늘어나 올 연말 영업이익 700억원을 달성할 겁니다. 2006년 대비 자산 3배, 매출액 2배, 영업이익 3.5배, 시가총액 5배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어요.”
- 휴켐스는 원래 알짜배기 회사 아니었나요.
“회사를 인수할 당시 《화학저널》 《화학신문》 등 전문지에서는 ‘신발 만드는 회사가 물정 모르고 고가(高價)에 매입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연차 회장이 권력의 도움으로 알짜배기 회사를 저가(低價)에 사들였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박 회장까지 문제 삼았습니다. 헐값 논란은 재판 과정에서도 나왔는데, 태광실업이 적정가격 이상을 지불하고 휴켐스를 인수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런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더군요. 특혜를 받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인수 당시의 기업가치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 신발 회사가 사업 내용이 전혀 다른 화학 업체를 인수하니까 의심을 받았던 것이지요.
“아무 계획 없이 휴켐스를 인수한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조사하고 준비했어요. 신발산업은 박 회장의 평생 업(業)이자 앞으로도 계속할 사업입니다. 그러나 회사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어요. 박 회장은 2000년 들어 신발·중화학·서비스 부문으로 회사를 키울 생각이었어요. 2002년부터 서울에 사무실을 내 500~600개의 기업을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종기 등도 검토 대상이었지요.”
“사업은 배운 것 많다고 잘하는 것 아니다”
- 회사 인수가 계획보다 늦어졌다는 겁니까.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뜻하지 않게 박 회장님과 태광실업이 관심 대상이 됐어요. 그래서 인수합병(M&A)을 자제했던 겁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태광그룹의 사업은 상당히 위축됐어요. 정치적으로 엮이면서 부정적으로 묘사됐지요. 허위보도도 많았습니다.”
- 법적 대응을 했어야지요.
“회사 임원들은 박 회장께 강력 대응을 건의했습니다. 당시 박 회장님도 울분에 차 있었지요. 하지만 박 회장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며 참았습니다. 물론 나이키 측에는 사실대로 설명했고 그쪽도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나이키가 어떤 회사입니까. 세계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거대 기업인데 태광실업이 비리 회사라면 사업 파트너로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 휴켐스를 인수할 당시 노조 측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불신 그 자체였습니다.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당시 모(母)회사였던 농협에 극렬히 저항했어요. 여수 공장에 있던 근로자들이 상경(上京)해 농협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지요. 농협 직원들과 몸싸움을 해 부상자까지 발생했습니다. 태광실업이 인수한다고 하니까 ‘인수 직후 곧바로 회사 자금을 빼돌려 휴켐스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직원을 모두 해고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 박연차 회장은 근로자들을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했어요. 고용도 보장하고 이익이 나면 성과급도 대폭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근로자들 사이에 ‘박 회장이 언론에 비친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말이 나왔어요. 박 회장은 임원들에게 ‘직원을 정리하는 대신 신규사업을 통해 근로자들이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근로자들을 모두 안고 갔던 겁니다.”
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은 공장부지 추가 매입과 설비투자를 위해 4000억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회사 규모를 늘리자 휴켐스의 매출은 해마다 껑충 뛰었다. 해외 진출을 모색해 온 휴켐스는 최근 말레이시아 주(州)정부와 화학단지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휴켐스는 말레이시아 빈툴루 산업단지에 암모니아 60만t, 질산 40만t, 초산 20만t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 휴켐스는 아시아 최대(最大) 질산 생산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산의 원료는 암모니아인데 말레이시아에서 암모니아를 직접 생산할 계획이군요.
“말레이시아에 천연가스가 많아요. 암모니아는 천연가스로 만들지요. 박 회장님은 오래 전부터 ‘암모니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업은 배운 게 많다고 잘하는 게 아닙니다. 혜안(慧眼)이 있어야 해요. 박 회장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았던 겁니다. 박 회장은 겉으로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데 사업적 측면에서는 비상한 판단력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신발을 만드시던 분이 뜬금없이 암모니아를 언급하니까 당시 태광실업 임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박연차, 신발산업의 匠人이자 歷史
- 현재 태광실업의 경영상태는 어떤가요.
회사 관계자는 태광실업의 최신 자료를 내놓았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태광실업의 작년 매출액은 5억5000만 달러(韓貨 6500억원)였다. 올해는 6억4000만 달러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3억2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현 정부에서 두 배 늘어났다.
- 박연차 회장도 공석 중인데 회사가 잘되는 이유는 뭡니까.
“오래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를 해 온 덕분입니다. 박 회장은 평소 ‘이 세상에 사양산업은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신발을 신는다’며 회사의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는 국내 신발산업의 장인(匠人)이자 역사(歷史)입니다. 회장님은 직장과 직원들 가정을 위해 각종 복지제도를 만들어 놨습니다. 임직원 중에는 회장님과 30~40년 동안 같이 일해 온 분들이 많아요. 태광실업을 한 번 입사하면 떠나지 않는 착한 회사로 만들어 놓은 거죠.”
박연차 회장의 경영 모토(motto)는 ‘지역사회와 함께, 종업원과 함께 성장’이라고 한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창출이지만 그 이윤을 지역과 근로자들에게 합당하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업원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예를 들죠. 태광실업 본사 샘플라인에 중증(重症) 지적장애 직원이 있습니다. 이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왔는데 근무 기간이 27년이나 됐어요. 동료 직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박 회장께서 조치했던 겁니다. 이분은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올해 ‘근로자의 날’에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태광그룹은 신발제조(태광실업), 정밀화학(휴켐스·일렘), 신소재(에어로젤코리아), 서비스레저(정산개발) 등 네 부문으로 나뉜다. 그룹 전체 매출액은 작년의 경우 1조2000억원이었다. 올해는 1조5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도 목표 수치는 2조3000억원이다. 지방 기업치고는 상당한 액수다.
모기업인 태광실업은 41년 전(1971년) 부산의 작은 신발제조 업체에서 출발했다. 1980~90년대 노동집약산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많은 기업이 도산(倒産)했지만 태광실업은 컴퓨터 설계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 무렵 태광실업은 베트남(현지 法人名 태광비나)과 중국(청도태광)에 진출한다.
박연차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수출을 통한 국익창출 공로를 인정받아 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인과 한국인 차별 안 해
태광실업의 본사는 경남 김해에 있다. 본사(직원 600명)에는 신발 연구개발 부서가 별도로 있다. 생산시설은 베트남 두 곳(총 4만명)과 중국 칭다오(총 1만명)에 있다. 중국 공장은 세계 최고급 운동화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나이키 본사로부터 제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2010년 10월 새로 지은 베트남 목바이 공장은 친(親)환경 공장으로 베트남 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태광실업은 내년 준공을 목표로 인도네시아에 근로자 1만3000명, 생산량 1100만 족 규모의 제3공장도 짓고 있다.
올해는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이다. 양국 외교사(外交史)를 더듬을 때 박연차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베트남에서 ‘한국이 낳은 위대한 기업가’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1994년 베트남 개방 초기,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릴 때 박 회장은 현지 진출을 결정, 현지법인 ‘태광비나’를 세웠다. 초기 투자액은 3500만 달러였다. 당시로는 큰돈이었다. 태광실업의 베트남 진출은 나이키 신발생산 업체 중 최초였다. 태광실업이 성공적으로 현지에 안착하자 10여 개의 나이키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태광실업은 베트남 신발산업의 씨앗이자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였다. 마침내 태광비나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선정한 베트남 200대 기업 중 18위를 차지했다.
박연차 회장은 사업 초기부터 베트남 정관계·군부·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고 한다. 그때 만난 인사들 중에는 응웬 푸 쫑 현(現) 베트남 당서기장이 있고, 쩐 떤 상 국가주석 등은 18년 지기(知己), 응웬 떤 중 총리는 14년 지기다. 베트남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들이 박 회장의 ‘친구’들인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회사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현지화의 핵심은 ‘인간적인 대우’였습니다. 박 회장은 현지인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직원과 똑같이 대했어요.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입혔습니다. 그게 현지인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직원들을 한국에 데려와 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위중(危重)한 직원도 데려와 무료로 치료해 줬어요. 그래서인지 현지 직원들은 박 회장을 부를 때 ‘회장’이라는 직책 대신 베트남어(語) 중에서 상대방을 최고로 높여 부르는 존칭을 이름 뒤에 붙여요.”
현지인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태광비나의 매출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현지인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보답했다. 공장 내에 최고의 운동시설과 최신 의료시설을 마련하는 등 근로자 복지에도 신경을 썼다.
“박 회장께서는 ‘현지에서 번 것은 현지를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현지 사회를 위해 앞장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난구호, 학교, 의료기관, 사회 인프라 구축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특히 2000년에 23만 달러를 들여 건립한 안빈 유치원은 최신식 건물로 400여 명의 유치원생이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을 위해 야간고등학교도 개설·운영하고 있어요. 박 회장은 교육을 100년 대계(大計)로 여겨 베트남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현지 근로자들로 하여금 ‘회사에 헌신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또 다른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국가주석을 비롯해 현지 고위관료, 기관장들이 현지 공장을 자주 방문하는데 이것 역시 종업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고 있지요.”
무명의 FILA 윤윤수 회장에게 5000만원 그냥 준 적도
박 회장의 성공은 국내외 업체들의 베트남 진출 기반이 됐다. 국내 기업들 중에는 박 회장의 도움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그는 2003년 한국과 베트남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부산-호찌민 직항로를 개설했다. 직항로의 필요성을 느낀 박 회장은 먼저 국내 항공사에 취항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가 경제성을 이유로 제안을 거부하자 베트남항공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쩐 득 르엉 당시 국가주석에게 ‘운항 손실이 있을 경우 태광실업이 전액 보상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베트남항공사의 부산 취항을 건의했다. 마침내 2003년 11월, 주 2회의 비행이 시작됐다. 부산-호찌민을 오가는 사업가들이 늘면서 관광객도 증가했다. 현재 항공기는 매일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도 취항했다. 그는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현재 베트남 소재(所在) 한국 기업이 고용한 근로자 수는 20만명이 넘는다. 박 회장은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과 관광객 증가를 통해 현지인 고용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 같은 박 회장의 공로를 높이 사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 ‘베트남 친선훈장’을 수여했다. 박 회장은 베트남 명예총영사를 세 번이나 연임했다.
박 회장은 캄보디아의 경제개발계획 수립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그는 훈센 총리, 케 킴 양 군(軍)총사령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들과 깊은 신뢰관계를 쌓아 왔다. 현재 태광그룹은 캄보디아 측으로부터 경제발전계획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은 상태다.
태광그룹의 사훈(社訓)은 긍지·목표·실천이다. 어떤 일에든 긍지를 갖고 목표를 향해 실천하면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룬다는 의미다. 박연차 회장이 신발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지은 것으로, 어려웠던 시절 꿈을 향해 노력했던 투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태광그룹 계열사는 이 사훈을 공용(共用)한다.
박연차 회장은 처음 본 사람도 순식간에 자기 편으로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30분 동안 같이 대화하다 보면 박 회장의 팬이 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요. 처음이나 나중이나 사람을 대할 때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30~40년 동안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많아요.”
태광그룹은 ‘기업이익을 지역과 함께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장학사업(155억원), 사회복지사업(95억원), 국내 문화·스포츠·종교 지원사업(31억원) 등 총 281억원을 기부금으로 사회에 내놓았다.
어렵고 복잡한 말 쉽게 하라
그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조건 없이 도와준다고 한다.
“본인이 어릴 때 배를 곯아 봤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잘 압니다. 박 회장은 ‘진짜 도와줘야 한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줘야 한다’고 해요. 이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포장마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편안히 소주 한 잔 건네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윤윤수(尹潤洙) FILA 회장이 사업 무명인 시절 자금난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일절 조건을 달지 않고 5000만원을 덥석 쥐여준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10억원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지요.”
태광그룹에 노사(勞使) 간 대립이 없는 것은 박 회장의 인생 궤적과도 연관이 있다. 태광실업은 과거에도 노동부장관상을 두 차례 받은 적이 있다.
“1980~90년대에 노사분규가 심했을 때도 태광실업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박 회장은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겁니다. 사장과 직원이 아니라,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노사분규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박 회장의 경영원칙입니다.”
박연차 회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김규덕 The How 영성경영연구소 고문 은 “요즘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話頭)인데 박 회장은 사업 초창기부터 경제민주화를 직접 실천해 왔다”고 했다.
“그는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인생을 살면서,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가진 자가 먼저 베푸는 것은 사회적 의무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복잡한 말을 싫어해요. 어려운 말을 쉽게 하라고 합니다. 가식(假飾)이 아닌 진실을 원하는 것이지요. 박 회장은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절대 의심하지 않아요. 이 같은 경험을 자식들에게도 들려줘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라’ ‘밑바닥은 내가 다져 놨으니 너희들은 그걸 기반으로 큰 성(城)을 쌓아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 어머니도 사랑한다.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지요.”
태광그룹은 2008년부터 신(新)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전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400M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이 사업은 건설비만 45억 달러다. 25년간 전기를 생산·판매한 후 양도하는 방식이다. 현재 베트남 정부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며 주요 계약을 놓고 협상 중이다. 이 사업이 성사되면 국내 발전 플랜트 관련 수출액이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법은 법, 안타까운 현실
그러나 박 회장의 부재(不在)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많다고 한다. 사업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주(主)계약체결·재원조달을 위해 박 회장의 현지 방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중요 결정 사항을 우편으로 보내고 면회할 때 재가를 받는 형식으로 회사 일을 처리합니다. 회장께서는 ‘현장 중심으로 책임경영을 하라’고 강조해요. 그러나 면회 시간이 제한돼 있어 자세한 의견을 나눌 수 없어요. 특히 베트남 화력발전소 사업을 위해 박 회장님이 반드시 현지에 가야 해요. 이게 안되니까 계속 지연되고 있어요. 손실이 적지 않아요.”
박연차 회장은 불법을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1년 가량 남은 형기(刑期)도 성실히 채워야 한다. 신병치료를 이유로 외부에 자주 드나들면서 언론의 비난도 받았다. 취재 결과, 그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심근경색 등 심장, 혈관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었다.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의 경우, 국내 발전 플랜트 기술을 대거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익 차원에서 박 회장에게 일정 역할을 맡기는 방안은 없을까.⊙
광고를 본 독자들은 “이분 요즘 뭐 하나?”에서부터 “이 사람 회사 안 망했나?” “벌써 감옥에서 풀려났나?” “노무현 후원자였는데 사업이 잘되나?”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정권 당시 노 대통령 후원자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李明博) 정부 첫해인 2008년 12월 뇌물공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신병치료차 형집행정지로 잠시 나왔다가 재수감됐다는 소식이 간혹 보도되곤 했다. 박연차 회장은 작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현 정부와 박연차 회장은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그런데 그의 회사는 어떻게 현 정부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까. 오너의 장기 부재(不在)로 그룹 모체(母體)인 태광실업은 경영실적이 어떻게 변했을까.
휴켐스 인수, 특혜 아니라고 재판에서 밝혀져
서울 중구 충무로 극동빌딩 19층에 위치한 휴켐스 본사를 찾았다. 기자 신분을 밝히자 회사 관계자들은 무척 경계했다. 박 회장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염두에 둔 듯했다. “박연차 회장과 태광실업, 휴켐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취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잠시 후 최규성 휴켐스 대표, 이병국 경영관리본부장, 박주환 이사 등이 나와 “물어볼 것 있으면 빨리 물어보고 돌아가라”고 했다.
-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노사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2006년 민영화 직전까지 노사분규가 극심했습니다. 그런데 태광그룹으로 인수된 후에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전체 200여 명의 근로자 중에서 희망자에 한해 명예퇴직이 있었지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해마다 임금협상도 원만히 타결됐고, 경영이 안정되면서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지급했어요. 성과급도 대폭 올렸고요. 회사 주가(株價)가 오르면서 자사주를 받았던 직원들은 두 배 이상 추가수입이 생겼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비(非)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정년도 늘어났어요.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 회사 실적은 늘었습니까.
“2006년 인수 당시 회사 매출은 3000억원이었어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도 매출은 계속 늘었고 지난해에는 5700억원이었지요. 올해는 7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계속 늘어나 올 연말 영업이익 700억원을 달성할 겁니다. 2006년 대비 자산 3배, 매출액 2배, 영업이익 3.5배, 시가총액 5배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어요.”
- 휴켐스는 원래 알짜배기 회사 아니었나요.
“회사를 인수할 당시 《화학저널》 《화학신문》 등 전문지에서는 ‘신발 만드는 회사가 물정 모르고 고가(高價)에 매입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연차 회장이 권력의 도움으로 알짜배기 회사를 저가(低價)에 사들였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박 회장까지 문제 삼았습니다. 헐값 논란은 재판 과정에서도 나왔는데, 태광실업이 적정가격 이상을 지불하고 휴켐스를 인수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런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더군요. 특혜를 받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인수 당시의 기업가치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가격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 신발 회사가 사업 내용이 전혀 다른 화학 업체를 인수하니까 의심을 받았던 것이지요.
“아무 계획 없이 휴켐스를 인수한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조사하고 준비했어요. 신발산업은 박 회장의 평생 업(業)이자 앞으로도 계속할 사업입니다. 그러나 회사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어요. 박 회장은 2000년 들어 신발·중화학·서비스 부문으로 회사를 키울 생각이었어요. 2002년부터 서울에 사무실을 내 500~600개의 기업을 분석하기 시작했어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종기 등도 검토 대상이었지요.”
“사업은 배운 것 많다고 잘하는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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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여수 산업단지 내에 있는 휴켐스. 태광그룹이 2006년 인수한 후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해 올해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뜻하지 않게 박 회장님과 태광실업이 관심 대상이 됐어요. 그래서 인수합병(M&A)을 자제했던 겁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태광그룹의 사업은 상당히 위축됐어요. 정치적으로 엮이면서 부정적으로 묘사됐지요. 허위보도도 많았습니다.”
- 법적 대응을 했어야지요.
“회사 임원들은 박 회장께 강력 대응을 건의했습니다. 당시 박 회장님도 울분에 차 있었지요. 하지만 박 회장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며 참았습니다. 물론 나이키 측에는 사실대로 설명했고 그쪽도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나이키가 어떤 회사입니까. 세계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거대 기업인데 태광실업이 비리 회사라면 사업 파트너로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 휴켐스를 인수할 당시 노조 측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불신 그 자체였습니다. ‘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당시 모(母)회사였던 농협에 극렬히 저항했어요. 여수 공장에 있던 근로자들이 상경(上京)해 농협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지요. 농협 직원들과 몸싸움을 해 부상자까지 발생했습니다. 태광실업이 인수한다고 하니까 ‘인수 직후 곧바로 회사 자금을 빼돌려 휴켐스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났어요. ‘직원을 모두 해고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 박연차 회장은 근로자들을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했어요. 고용도 보장하고 이익이 나면 성과급도 대폭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근로자들 사이에 ‘박 회장이 언론에 비친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말이 나왔어요. 박 회장은 임원들에게 ‘직원을 정리하는 대신 신규사업을 통해 근로자들이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근로자들을 모두 안고 갔던 겁니다.”
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은 공장부지 추가 매입과 설비투자를 위해 4000억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회사 규모를 늘리자 휴켐스의 매출은 해마다 껑충 뛰었다. 해외 진출을 모색해 온 휴켐스는 최근 말레이시아 주(州)정부와 화학단지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휴켐스는 말레이시아 빈툴루 산업단지에 암모니아 60만t, 질산 40만t, 초산 20만t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 휴켐스는 아시아 최대(最大) 질산 생산 업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질산의 원료는 암모니아인데 말레이시아에서 암모니아를 직접 생산할 계획이군요.
“말레이시아에 천연가스가 많아요. 암모니아는 천연가스로 만들지요. 박 회장님은 오래 전부터 ‘암모니아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업은 배운 게 많다고 잘하는 게 아닙니다. 혜안(慧眼)이 있어야 해요. 박 회장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았던 겁니다. 박 회장은 겉으로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데 사업적 측면에서는 비상한 판단력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요. 신발을 만드시던 분이 뜬금없이 암모니아를 언급하니까 당시 태광실업 임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박연차, 신발산업의 匠人이자 歷史
- 현재 태광실업의 경영상태는 어떤가요.
회사 관계자는 태광실업의 최신 자료를 내놓았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태광실업의 작년 매출액은 5억5000만 달러(韓貨 6500억원)였다. 올해는 6억4000만 달러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3억2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현 정부에서 두 배 늘어났다.
- 박연차 회장도 공석 중인데 회사가 잘되는 이유는 뭡니까.
“오래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를 해 온 덕분입니다. 박 회장은 평소 ‘이 세상에 사양산업은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신발을 신는다’며 회사의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는 국내 신발산업의 장인(匠人)이자 역사(歷史)입니다. 회장님은 직장과 직원들 가정을 위해 각종 복지제도를 만들어 놨습니다. 임직원 중에는 회장님과 30~40년 동안 같이 일해 온 분들이 많아요. 태광실업을 한 번 입사하면 떠나지 않는 착한 회사로 만들어 놓은 거죠.”
박연차 회장의 경영 모토(motto)는 ‘지역사회와 함께, 종업원과 함께 성장’이라고 한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창출이지만 그 이윤을 지역과 근로자들에게 합당하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업원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예를 들죠. 태광실업 본사 샘플라인에 중증(重症) 지적장애 직원이 있습니다. 이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들어왔는데 근무 기간이 27년이나 됐어요. 동료 직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박 회장께서 조치했던 겁니다. 이분은 중증 장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올해 ‘근로자의 날’에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습니다.”
태광그룹은 신발제조(태광실업), 정밀화학(휴켐스·일렘), 신소재(에어로젤코리아), 서비스레저(정산개발) 등 네 부문으로 나뉜다. 그룹 전체 매출액은 작년의 경우 1조2000억원이었다. 올해는 1조5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도 목표 수치는 2조3000억원이다. 지방 기업치고는 상당한 액수다.
모기업인 태광실업은 41년 전(1971년) 부산의 작은 신발제조 업체에서 출발했다. 1980~90년대 노동집약산업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많은 기업이 도산(倒産)했지만 태광실업은 컴퓨터 설계 시스템을 조기에 도입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 무렵 태광실업은 베트남(현지 法人名 태광비나)과 중국(청도태광)에 진출한다.
박연차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수출을 통한 국익창출 공로를 인정받아 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베트남인과 한국인 차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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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김해에 위치한 태광실업 본사. 올해 매출은 해외 법인을 포함해 약 6억4000만 달러다. |
태광실업은 내년 준공을 목표로 인도네시아에 근로자 1만3000명, 생산량 1100만 족 규모의 제3공장도 짓고 있다.
올해는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이다. 양국 외교사(外交史)를 더듬을 때 박연차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베트남에서 ‘한국이 낳은 위대한 기업가’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1994년 베트남 개방 초기,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릴 때 박 회장은 현지 진출을 결정, 현지법인 ‘태광비나’를 세웠다. 초기 투자액은 3500만 달러였다. 당시로는 큰돈이었다. 태광실업의 베트남 진출은 나이키 신발생산 업체 중 최초였다. 태광실업이 성공적으로 현지에 안착하자 10여 개의 나이키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태광실업은 베트남 신발산업의 씨앗이자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였다. 마침내 태광비나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선정한 베트남 200대 기업 중 18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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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광실업은 베트남 두 곳에 현지 공장을 뒀다. 현지 근로자 수는 4만여명. 태광실업은 베트남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
베트남에서의 성공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회사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현지화의 핵심은 ‘인간적인 대우’였습니다. 박 회장은 현지인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직원과 똑같이 대했어요.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입혔습니다. 그게 현지인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직원들을 한국에 데려와 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위중(危重)한 직원도 데려와 무료로 치료해 줬어요. 그래서인지 현지 직원들은 박 회장을 부를 때 ‘회장’이라는 직책 대신 베트남어(語) 중에서 상대방을 최고로 높여 부르는 존칭을 이름 뒤에 붙여요.”
현지인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태광비나의 매출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현지인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보답했다. 공장 내에 최고의 운동시설과 최신 의료시설을 마련하는 등 근로자 복지에도 신경을 썼다.
“박 회장께서는 ‘현지에서 번 것은 현지를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현지 사회를 위해 앞장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난구호, 학교, 의료기관, 사회 인프라 구축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특히 2000년에 23만 달러를 들여 건립한 안빈 유치원은 최신식 건물로 400여 명의 유치원생이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을 위해 야간고등학교도 개설·운영하고 있어요. 박 회장은 교육을 100년 대계(大計)로 여겨 베트남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현지 근로자들로 하여금 ‘회사에 헌신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또 다른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국가주석을 비롯해 현지 고위관료, 기관장들이 현지 공장을 자주 방문하는데 이것 역시 종업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고 있지요.”
무명의 FILA 윤윤수 회장에게 5000만원 그냥 준 적도
박 회장의 성공은 국내외 업체들의 베트남 진출 기반이 됐다. 국내 기업들 중에는 박 회장의 도움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그는 2003년 한국과 베트남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부산-호찌민 직항로를 개설했다. 직항로의 필요성을 느낀 박 회장은 먼저 국내 항공사에 취항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내 항공사가 경제성을 이유로 제안을 거부하자 베트남항공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쩐 득 르엉 당시 국가주석에게 ‘운항 손실이 있을 경우 태광실업이 전액 보상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베트남항공사의 부산 취항을 건의했다. 마침내 2003년 11월, 주 2회의 비행이 시작됐다. 부산-호찌민을 오가는 사업가들이 늘면서 관광객도 증가했다. 현재 항공기는 매일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도 취항했다. 그는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현재 베트남 소재(所在) 한국 기업이 고용한 근로자 수는 20만명이 넘는다. 박 회장은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과 관광객 증가를 통해 현지인 고용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 같은 박 회장의 공로를 높이 사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 ‘베트남 친선훈장’을 수여했다. 박 회장은 베트남 명예총영사를 세 번이나 연임했다.
박 회장은 캄보디아의 경제개발계획 수립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그는 훈센 총리, 케 킴 양 군(軍)총사령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들과 깊은 신뢰관계를 쌓아 왔다. 현재 태광그룹은 캄보디아 측으로부터 경제발전계획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은 상태다.
태광그룹의 사훈(社訓)은 긍지·목표·실천이다. 어떤 일에든 긍지를 갖고 목표를 향해 실천하면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룬다는 의미다. 박연차 회장이 신발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지은 것으로, 어려웠던 시절 꿈을 향해 노력했던 투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태광그룹 계열사는 이 사훈을 공용(共用)한다.
박연차 회장은 처음 본 사람도 순식간에 자기 편으로 만드는 특유의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30분 동안 같이 대화하다 보면 박 회장의 팬이 됩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요. 처음이나 나중이나 사람을 대할 때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30~40년 동안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많아요.”
태광그룹은 ‘기업이익을 지역과 함께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장학사업(155억원), 사회복지사업(95억원), 국내 문화·스포츠·종교 지원사업(31억원) 등 총 281억원을 기부금으로 사회에 내놓았다.
어렵고 복잡한 말 쉽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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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광그룹이 추진 중인 베트남 화력발전소 조감도. 이 사업이 성사되면 국내 발전 플랜트 관련 수출액이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본인이 어릴 때 배를 곯아 봤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잘 압니다. 박 회장은 ‘진짜 도와줘야 한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줘야 한다’고 해요. 이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포장마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편안히 소주 한 잔 건네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윤윤수(尹潤洙) FILA 회장이 사업 무명인 시절 자금난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일절 조건을 달지 않고 5000만원을 덥석 쥐여준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10억원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지요.”
태광그룹에 노사(勞使) 간 대립이 없는 것은 박 회장의 인생 궤적과도 연관이 있다. 태광실업은 과거에도 노동부장관상을 두 차례 받은 적이 있다.
“1980~90년대에 노사분규가 심했을 때도 태광실업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박 회장은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겁니다. 사장과 직원이 아니라,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노사분규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일어난다고 봤습니다.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박 회장의 경영원칙입니다.”
박연차 회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김규덕 The How 영성경영연구소 고문 은 “요즘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화두(話頭)인데 박 회장은 사업 초창기부터 경제민주화를 직접 실천해 왔다”고 했다.
“그는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인생을 살면서,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가진 자가 먼저 베푸는 것은 사회적 의무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복잡한 말을 싫어해요. 어려운 말을 쉽게 하라고 합니다. 가식(假飾)이 아닌 진실을 원하는 것이지요. 박 회장은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절대 의심하지 않아요. 이 같은 경험을 자식들에게도 들려줘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라’ ‘밑바닥은 내가 다져 놨으니 너희들은 그걸 기반으로 큰 성(城)을 쌓아라’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너희 어머니도 사랑한다.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지요.”
태광그룹은 2008년부터 신(新)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전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400M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이 사업은 건설비만 45억 달러다. 25년간 전기를 생산·판매한 후 양도하는 방식이다. 현재 베트남 정부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며 주요 계약을 놓고 협상 중이다. 이 사업이 성사되면 국내 발전 플랜트 관련 수출액이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982년 : 제19회 수출의 날 석탑산업훈장 수훈 •1984년 : 노동부장관 표창 수상 •1988년 : 제25회 무역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1989년 : 제26회 무역의 날 1억 달러 수출탑 수상 •1997년 : 제34회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훈 •2000년 : 캄보디아 총리 포상 •2001년 : 제35회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2003년 : 베트남 친선훈장 수훈 •2008년 : 캄보디아 공로훈장 수훈 |
법은 법, 안타까운 현실
그러나 박 회장의 부재(不在)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많다고 한다. 사업의 성패(成敗)를 좌우할 주(主)계약체결·재원조달을 위해 박 회장의 현지 방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중요 결정 사항을 우편으로 보내고 면회할 때 재가를 받는 형식으로 회사 일을 처리합니다. 회장께서는 ‘현장 중심으로 책임경영을 하라’고 강조해요. 그러나 면회 시간이 제한돼 있어 자세한 의견을 나눌 수 없어요. 특히 베트남 화력발전소 사업을 위해 박 회장님이 반드시 현지에 가야 해요. 이게 안되니까 계속 지연되고 있어요. 손실이 적지 않아요.”
박연차 회장은 불법을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1년 가량 남은 형기(刑期)도 성실히 채워야 한다. 신병치료를 이유로 외부에 자주 드나들면서 언론의 비난도 받았다. 취재 결과, 그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심근경색 등 심장, 혈관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었다.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의 경우, 국내 발전 플랜트 기술을 대거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익 차원에서 박 회장에게 일정 역할을 맡기는 방안은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