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가가치세 도입했던 金鍾仁前 대통령 경제수석의 쓴소리 : 월간조선

박정희(朴正熙) 정권 말기인 지난 1977년, 정부는 모든 소비에 10%의 세금을 매기는 부가가치세(VAT)를 도입했다. 전두환(全斗煥) 정권 때인 1981년에는 교육재정 확충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확보하겠다고 교육세를 만들었다. 한시적인 목적세였던 교육세는 1990년 개정으로 영구세(永久稅)가 됐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1994년에 다자간(多者間) 무역협정인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됐고, 이에 농어촌특별세가 만들어졌다. 농어촌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농어촌 산업기반 시설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서 만든 목적세였다.

2012년 총선과 대선(大選)을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는 ‘한국판 버핏세’ 논쟁이 한창이다. 소득세 과표 구간과 세율을 조정해 고(高)소득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자는 것이 골자다.

‘한국판 버핏세’로 이름 붙여진 이 세금은 주식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이 미국 금융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 ‘버핏세’의 명칭을 따랐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세율은 1200만원 이하 소득의 경우 세율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8800만원 초과 35%다. 여기에 상위 1개 과표구간을 추가하자는 것인데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네 번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김종인(金鍾仁) 전 수석은 이에 대해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세금은 정치 논리에 따라 필요하면 도입할 수 있는 것”이라며 “세금을 늘리지 않고 복지재원을 어디서 충당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박근혜(朴槿惠) 전(前) 한나라당 대표가 복지를 강조하면서 ‘한국형 버핏세’에서 논의되는 최고세율 구간에 반대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수석은 부가가치세를 처음 도입했던 1977년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재무부 조세제도 심의위원을 맡아 부가가치세 도입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이후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 내무부 지방재정제도심의위원 등을 거치며 세제(稅制) 관련 업무를 했다.

‘누더기세’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김종인 전 수석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논란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이죠. 세금 징수는 정치적인 이슈입니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는 두 기둥입니다. 세금이 필요하면 두 기둥을 조정해야 하는데, 소득세는 조세 저항이 많습니다. 자기가 직접 내야 하니까 그렇죠. 그래서 간접세를 올리는데 우리나라는 간접세에도 저항이 많습니다. 1977년 부가가치세를 처음 도입할 때 세율이 10%였는데, 34년째 똑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필요에 따라서 농어촌부가세, 교육세 등을 만들게 됐습니다. 교육세는 5년 동안 하는 시한부였는데 결국 영구세가 됐고, 농어촌부가세는 알 수가 없습니다. ‘누더기세’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지요. 하지만 왜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정치권에서 매번 감세 정책만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소득세, 법인세를 다 줄이면 정부는 어디서 세수(稅收)를 확보해서 나라 살림을 꾸려 가겠습니까. 결국 세제를 전면 개편하기 전에는 ‘누더기세’라는 말이 없어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가 돈이 없을 때 세금을 더 걷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일환에서 이번에는 몇 억씩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에게서 조금 더 걷자는 얘기가 논의 중인데 나쁠 것이 없습니다.”

―‘한국형 버핏세’가 ‘누더기세’에 한몫을 더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버핏세가 미국에서 나온 배경을 보세요. 1970년대 말까지 미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은 70%였는데 현재 35% 수준입니다. 소득세를 깎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 결과가 뭐였습니까. 국가는 갈수록 가난해졌고, 월가 등 일부 사람들만 부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버핏처럼 돈 있는 사람이 내게서 세금을 더 걷어 가라는 것이 버핏세입니다. ‘한국형 버핏세’는 정확히 말하면 소득세의 한 구간을 더 늘리자는 것입니다. 소득세 한 구간을 더 건드린다고 누더기가 됩니까?”

―‘버핏세’를 도입해서 얻을 수 있는 세수가 1조원 정도뿐이라고 하는데요.

“상징적인 의미가 크죠. 국가가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이에 따라 부자들이 일익을 담당하라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全)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이건희(李健熙) 회장이나 정몽구(鄭夢九) 회장이 워런 버핏처럼 먼저 제안을 했다면 국민들의 찬사를 받았겠지요. 어찌 됐든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도입이 필요합니다. 일반 국민들도 고소득자들이 세금에 대한 부담을 많이 진다는 것을 보면 스스로 존중하는 문화가 생길 수 있겠지요. 재벌 회장들은 체면이 있어 그런지 드러내 놓고 반대하지 못하는데 몇몇 한나라당 의원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우습지요. 포퓰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고, 세금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금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이슈입니다. 정부가 돈이 없으면 세금을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입니다.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세제라는 건 없습니다. 각 나라의 처한 상황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개인의 조세부담률이 3년 전까지 22%대였는데 최근에 19%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재정수요는 늘어나는데, 개인이 세금은 더 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수로 재정수요를 충당할 겁니까? 요즘 정치권에서 복지가 화두입니다. 복지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겁니까. 증세 없이 재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를 강조하면서 소득세 최고 세율 구간에 반대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모순에 빠지는 겁니다.”

―고소득자 중 직장인만 해당되고, 일부 소득을 숨기는 자영업자들은 앞으로도 세금을 덜 내지 않겠습니까.

“소득을 감추는 사람들이 참 문제인데, 그래도 최근에는 그 사람들에 대한 소득을 많이 파악했다고 봅니다. 일부 개업의에 문제가 있지만 일반적인 의사, 변호사들의 수입은 알려져 있습니다. 세금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세금이 하나만 있으면 제일 좋지요. 하지만 세수의 확보 차원에서 다양한 세금이 존재하는 겁니다. 소득세만 부과하면 안 내는 사람이 많으니,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고, 또 다른 세금을 도입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조세정책, 한 게 없어 점수 매길 수 없어

‘한국형 버핏세’에 대해 절대 찬성 의사를 비친 김종인 전 수석은 부가가치세를 처음 도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부가가치세의 최초 세율은 13%였는데 국민의 저항에 밀려 10%가 됐다”며 말을 이어 갔다.

“일부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부가가치세 때문에 망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들의 조세저항 때문에 부마사태가 일어나고, 결국 정치저항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부가가치세를 애시당초 13%로 하려다가 10%로 한 것도 국민 반발이 너무 심해서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유독 조세저항이 강한 측면이 있습니다. 세금에 대한 인식의 차이겠지요. 가령 독일은 지난 1967년에 부가가치세를 도입했을 때 세율이 10%였는데 현재 19%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 번에 세율을 4% 인상했지만,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거세지 않았습니다. 독일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1~22% 수준입니다. 과거 빌 게이츠가 자기 재단을 세워서 세계의 부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했을 때 독일 부자들이 ‘국가에 이미 세금을 내기 때문에 당신에게까지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세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 역사적인 부산물로 봐야 합니다. 이번 ‘버핏세’의 경우는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몇 억씩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만큼 반대의 명분이 전혀 없죠.”

―박재완(朴宰完) 기획재정부 장관은 ‘버핏세’에 대해 반대 의견을 보였습니다만.

“세금이 뭔지 아예 모르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감세 정책이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요. ‘버핏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센스가 아예 없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세제라는 건 없어요. 선거철마다 ‘감세(減稅)’ 얘기를 들고 나오는데 그렇게 하면 재정수요를 충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세제를 정상적으로 개편하고 세수의 효율을 향상시킨다는 소리는 없고, 항상 세금을 줄여 준다는 얘기뿐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조세 정책을 역대 정권과 비교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무슨 점수를 매깁니까. 감세의 효과가 뭐였습니까. 거시 지표는 노무현(盧武鉉) 때보다 못하지요. 기업투자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소득세, 법인세를 내려 봐야 경제적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괜히 그런 정책으로 세수만 줄여 놨습니다.”

세금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못 시킨다

김종인 전 수석은 최근에 있었던 ‘양도세 폐지’와 관련해서는 매 정권마다 일어나는 고질적 병폐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양도세 부과와 폐지는 한국 정부에 늘 있는 아주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매 정부마다 반복해요. 아파트 거래가 안된다고 양도세를 폐지했다가, 또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서 투기가 되면 양도세를 부과하는 식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을 반복해야 합니까. 관료들이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세금을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쓴다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 국가는 희망도 없습니다. 더구나 부동산 가격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경제 정책을 수립하려는 행위는 한심한 겁니다.”

‘세금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김종인 전 수석은 ‘1973년의 일을 참고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1973년 정기국회에서 소득세 면세 기준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부에서는 1만6000원을 면세 기준으로 하자 했고, 한쪽은 1만8000원을 주장했습니다. 국회에서 난장판 논쟁을 한 끝에 소득세 면세점을 1만8000원으로 올렸습니다. 이후 제1차 오일쇼크가 나고 사회적으로, 또 박정희 정권에 정치적으로 긴장감이 돌면서 1974년 1월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해 예산안을 확립하기 직전이었을 때, 재정에 대한 긴급명령을 발동했습니다. 소득세 면세점을 종전의 1만8000원에서 5만원으로 올렸습니다. 순식간에 소득세 납세자의 85%가 없어졌습니다. 그게 과연 가능합니까. 세금이라는 건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 이외에 경제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잖습니까.

“물론 다른 것도 고려의 대상이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강력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버핏세’ 도입을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 때문이죠. 단순하게 소득세의 구간 하나를 늘리는 것이라고 봐야지, 그것을 두고 여러가지 시각이나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감세가 능사는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재정 기능이 변해야 하지만, 국민들이 감세를 무조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