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에게는 사회민주주의 외에 代案이 없다
⊙ 민주화 이후 제대로 된 대통령 나오지 못한 것이 비극
安秉直
⊙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회장, 日후쿠이현립대 대학원 특임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역임.
⊙ 現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장, 경기도실학박물관 관장.
⊙ 저서 : 〈한국경제성장사-예비적 고찰〉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 등.
취재지원 : 조은정 月刊朝鮮 인턴기자
⊙ 민주화 이후 제대로 된 대통령 나오지 못한 것이 비극
安秉直
⊙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사학회장, 日후쿠이현립대 대학원 특임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역임.
⊙ 現 사단법인 시대정신 이사장, 경기도실학박물관 관장.
⊙ 저서 : 〈한국경제성장사-예비적 고찰〉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 등.
취재지원 : 조은정 月刊朝鮮 인턴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茶山(다산)유적지에는 다산 丁若鏞(정약용) 선생의 生家(생가)와 무덤, 그리고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이 있다.
10월 23일 다산 생가 앞에 또 하나의 전시시설이 들어선다. 경기도實學(실학)박물관이다. 관장은 安秉直(안병직·73) 서울대 명예교수. 1980년대 중반까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는 좌파경제학자였던 그는 이후 ‘중진자본주의론’을 설파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긍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2004년 이후에는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으로 뉴라이트의 이념적 代父(대부)로 활동해 왔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뉴라이트재단과 자유주의연대를 계승한 ‘사단법인 시대정신(이하 시대정신)’ 이사장으로 있다.
조선 후기 및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천착해 온 그는 대학시절 다산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목민심서〉, 〈다산의 농업경영론〉 등의 논문을 낸, 다산연구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안병직 교수는 “제자인 金文洙(김문수) 경기지사가 도와달라고 해서 관장직을 맡았다”면서 “박물관이 개관할 때까지만 도와주고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안병직 교수와 함께 실학박물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봄 찾아보았던 다산 생가를 가리키며 안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사대부가 저 정도 집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합니까.
“천석지기는 돼야 할 겁니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南人(남인) 가문이었고,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개혁적 실학자 다산이 그런 대지주였단 말입니까.
안병직 교수의 대답은 필자를 놀라게 했다.
“아, 저 집은 다산의 생가가 아니에요. 생가터인 것은 맞지만, 집은 다산유적지 조성하면서 강원도 어딘가에 있던 양반집을 뜯어다 옮긴 거예요.”
“국민통합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합의하자는 것”
2004년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한 후, 申志鎬(신지호ㆍ現 한나라당 의원)씨를 비롯해 趙全赫(조전혁ㆍ현 한나라당 의원)·홍진표·李在敎(이재교ㆍ변호사)·崔弘在(최홍재ㆍ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씨 등 자유주의연대 멤버들은 신문·잡지 기고 등을 통해 左派(좌파) 정권을 비판하고, 자유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성취를 이론적으로 정리해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안병직 교수도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로서 노무현 좌파 정권에 대한 비판에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통 右派(우파) 세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종래의 ‘반공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李明博(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신지호 대표와 조전혁 교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이를 전후해 자유주의연대는 문을 닫고 뉴라이트재단과 합치면서 시대정신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걸었다. 안병직 교수는 작년 11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니, 지금부터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국민통합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 전달에는 ‘보수와 진보의 공생모델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9일 사회민주주의연대(대표 周大煥ㆍ주대환)가 주최한 〈조봉암, 건국의 주역인가 간첩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안병직 교수는 격려사를 했다. 그는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한 사람이 뻔뻔스럽게 이 자리에 나섰다”는 말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자리에 나선 것은 한 가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해 세계사적인 성취를 이룩한 훌륭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左右(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청산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모든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다양한 사상이 우정적 관계 속에서 공존해야 할 때가 됐다. 남은 인생 동안 이 얘기를 하면서 살 생각이다.”
안병직 교수가 ‘남은 생애’를 걸면서 전념하겠다고 하는 ‘국민통합’, 그가 말하는 국민통합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대한민국뿐입니다. 이제는 그 바탕 위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金九(김구)든지, 건국을 했던 李承晩(이승만)이든지, 경제발전을 했던 朴正熙(박정희)든지,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金大中(김대중)이든지, 정확하게 평가하고 제 위치에 둘 만한 때가 됐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잘되기 위해서 평등을 더 강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유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하지 않고서는 선진화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제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를 하고, 그런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함께 우리의 미래를 구상하자는 것입니다.”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작년 狂牛病(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거짓말로 대중을 선동하고, 경찰에게 죽창을 휘둘러대는 좌파세력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까.
“좌파 내에서 주사파·마르크스주의자는 소수”
―이념갈등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도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판을 깨지 못하게끔 가능한 한 多數(다수)를 결집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국민통합운동입니다. 그래야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물론 민주주의는 우정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적대적 관계에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우정적 관계, 우리는 한 공동체의 동포형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는 형제가 될 수 있지만, 부르주아는 결코 형제가 될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좌파진영 내에서 主流(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흔히 ‘主思派(주사파)’라고 하는 김일성주의자들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른바 PD(민중민주) 계열도 있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추구하는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같은 사람은 좌파진영 내에서 少數(소수)다. 앞에서 말한 조봉암 토론회가 끝난 후 필자가 주대환 대표에게 “하는 일은 잘되어 가느냐”고 묻자 그는 한숨을 쉬며 “누가 관심이나 갖나요”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안병직 교수의 현실 인식은 달랐다.
“오히려 지금은 주사파나 마르크스주의·스탈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는 從北主義(종북주의)니까 같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인데, 어느 정도 이야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스스로 드러내 놓고 자기가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수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좌파’를 실재하는 좌파인 것처럼 상정하고, 그들을 대화 상대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같이 일하려는 것은 ‘관념적 좌파’가 아니에요. 실재하는 세력이죠. 몇몇 좌파 시민단체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연말 쯤에는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만나서 얘기해 보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과거 좌파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私席(사석)에서는 과거를 반성하는 듯하다가도,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인하는 것이 될까 봐 우물쭈물하면서 옛날에 하던 소리를 그대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은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교조 구성원들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스스로 좌파 내 소수임을 인정하더군요.
“앞으로는 바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종북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북한이라는 현실 권력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지금 좌파에게는 사회민주주의 외에는 代案(대안)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좌파가 수년 내에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평등과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들과는 국민통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은 격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격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굉장히 공고한 시스템입니다. 일본·프랑스 등에서는 공산당도 인정하고 있잖아요. 우리의 경우 북한이 있어서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북한이 없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겠죠.”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통합, 내 생각과 같다”
작년 광우병 사태 때는 출범한 지 6개월밖에 안된 合憲(합헌)정부를 ‘독재정권’이라며 타도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금년에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전직 대통령이 “독재자에게 아부 말고 들고일어나야 한다”면서 공공연히 민중봉기를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예를 들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취약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저 사람들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객관적인 근거, 실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우병 사태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체가 없는 선동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 실체가 공허한 주장 때문에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몇 달 동안 도심을 마비시켰습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증거 아닌가요.
“작년 광우병 파동 이후로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잖습니까. 이명박 정권이 튼튼해지면 더 저항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얘기하고, 改閣(개각)에서도 ‘국민통합형 인사’들을 기용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내 생각과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현 정부가 출범한 후 시대정신은 국민통합과 ‘광우병 파동이 왜 거짓인가’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해 왔는데, 그것이 요즘 들어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그를 만나 국민통합을 역설한 적이 있어요.”
老(노)교수의 얼굴에는 일종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권위주의는 주먹으로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때문에 권위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자발적인 통합이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각자 자기 이념을 갖는다고 해도, 우리가 몸담고 사는 공동체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말하는 국민통합의 핵심입니다.
다만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은 진보도 쓰고 보수도 쓰자는 것인데, 이것은 혼란이지, 통합이 아닙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통합원리, 즉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합의, 대한민국 헌법체제에 대한 합의, 대한민국이 정당한 국가였다는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통합위원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교수님의 힘을 필요로 한다면 응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통합운동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위를 준다면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는 국민통합이라야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좌파는 권력을 배분, 우파는 권력을 독점한다”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했을 때 뉴라이트운동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뉴라이트운동 종사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2007년 정권교체’와 ‘장기적인 사상투쟁’을 다짐했다.
하지만 자유주의연대는 2007년 大選(대선)을 전후해서 대표의 정치권 진출과 함께 와해됐다. 뉴라이트운동의 다른 한 축이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금년 4월 김진홍 상임의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세력과 활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운동의 맥이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안병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좌파운동은 운동을 해서 정권을 잡으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배분하는 반면, 우파는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것이 우파운동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권력을 나눠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파 시민단체들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건국 60주년기념사업을 하고 난 후 기념재단을 만들어 운영권을 우파단체에게 넘기는 식으로 그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잖아요.
지금 우파 시민단체에서는 개인적으로 희생해서 돈을 모아 써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 운동이 되겠습니까.”
―뉴라이트운동에 대해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뉴라이트운동은 건국과 근대화의 역사가 성공한 역사라는 것을 입증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뉴라이트운동은 보수세력이 다시 집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성공한 역사라면,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에게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경륜이라는 면에서는 역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은 관리 능력이 탁월했다고 봅니다. 사실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한국경제는 정말 위기였는데, 철권정치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능력은 없지만 굉장히 순수하고 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능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1997년 外換(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확 바꾸어 버렸어요. 다만 노벨평화상을 타려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어요. 그가 햇볕정책을 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애정 때문도 아니었어요.
결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제대로 한 사람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제대로 된 대통령이 나오지 못한 것이 비극이죠.”
―보수진영이 2012년에 다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정치는 세력통합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再(재)분배해야 합니다. 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리를, 명예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명예를 줘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실학이란 무엇인가
―실학 실학 하는데, 실학이란 무엇입니까.
“실학은 窮經致用(궁경치용)입니다. 궁경이란 ‘경서를 궁구하다. 근본까지 연구하다’는 뜻이고, ‘치용’은 ‘획득된 진리를 가지고, 현실에 적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서 古典(고전)연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학이란 서양 14세기 문예부흥에 맞먹는 학풍이었습니다. 이런 학풍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있었습니다.”
안병직 교수는 “실학은 15세기 이래 西勢東漸(서세동점)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온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조총이 전파됐고, 오다 노부나가가 이 조총으로 일본 천하통일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여세를 몰아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明(명)이 망하고 淸(청)이 일어섰습니다.
왜란과 호란으로 황폐해진 조선은 재건책을 모색하면서 大同法(대동법·여러가지 공물을 쌀로 통일해 납부하도록 하는 납세제도)을 도입하고, 鑄錢(주전)사업을 하는 한편, 均役法(균역법·군역을 치르는 대신 납부하던 군포를 줄여주는 납세제도)을 실시합니다.
서세동점과 兩亂(양란) 이후 조선 내부의 경제·사회적 변화는 실학이 성립하는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실학이 당시 집권층에 의해 치국의 방책으로 채용됐다면, 내재적 근대화가 가능했을까요.
“당시 동아시아 내에서 자본주의 萌芽(맹아), 즉 근대적 요소가 발견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실학적인 요소를 현실에 채용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도쿠가와 막부라는 정치체제가 가로막는 바람에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로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로 나가는 것은 페리함대의 來侵(내침)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였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안병직 교수는 “역사의 動因(동인)이 안에서부터 나와야 하며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결국 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외국으로부터 발전 동력을 흡수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실학자들이 제시했던 井田制(정전제) 등을 보면, 古來(고래)의 유교경전에 바탕을 둔 이상적 토지제도이지, 당시 농업발전에 부응하거나 자본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지제도는 아니었습니다. 과연 실학은 얼마나 근대적인 것입니까.
“당시 농민의 토지소유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주제도 발전하게 됐죠. 당시 실학자들이 연구한 정전법이나 균전법, 한전법 등의 목표는 ‘어떻게 중간착취자인 지주제를 없애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산의 정전법의 핵심은 토지에 대한 국가의 법률적인 所有(소유)와 농민들의 사실상 占有(점유)를 제도화하자는 것입니다. 다산의 정전법의 핵심은 ‘體國經野(체국경야)’입니다. 체국은 도로와 수로를 전국적으로 구축하고, 도로를 통해 도시와 농촌,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자는 것입니다. ‘경야’는 정전을 기반으로 해서 전국의 토지를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 세금을 거두는 표준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산사상에 ‘경야’가 있는 것은 알아도 ‘체국’이 있는 줄은 모릅니다.”
실학자들의 사상은 나름 상당한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얘기겠다. 하지만 결국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안 교수는 자연과학적 인식의 유무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일본의 경우 나가사키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연과학적 기초가 있었던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그러한 차이 때문에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있자마자 문명개화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10월 23일 다산 생가 앞에 또 하나의 전시시설이 들어선다. 경기도實學(실학)박물관이다. 관장은 安秉直(안병직·73) 서울대 명예교수. 1980년대 중반까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는 좌파경제학자였던 그는 이후 ‘중진자본주의론’을 설파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긍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2004년 이후에는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으로 뉴라이트의 이념적 代父(대부)로 활동해 왔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뉴라이트재단과 자유주의연대를 계승한 ‘사단법인 시대정신(이하 시대정신)’ 이사장으로 있다.
조선 후기 및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천착해 온 그는 대학시절 다산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목민심서〉, 〈다산의 농업경영론〉 등의 논문을 낸, 다산연구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안병직 교수는 “제자인 金文洙(김문수) 경기지사가 도와달라고 해서 관장직을 맡았다”면서 “박물관이 개관할 때까지만 도와주고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안병직 교수와 함께 실학박물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봄 찾아보았던 다산 생가를 가리키며 안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사대부가 저 정도 집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합니까.
“천석지기는 돼야 할 겁니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南人(남인) 가문이었고,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개혁적 실학자 다산이 그런 대지주였단 말입니까.
안병직 교수의 대답은 필자를 놀라게 했다.
“아, 저 집은 다산의 생가가 아니에요. 생가터인 것은 맞지만, 집은 다산유적지 조성하면서 강원도 어딘가에 있던 양반집을 뜯어다 옮긴 거예요.”
“국민통합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합의하자는 것”
2004년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한 후, 申志鎬(신지호ㆍ現 한나라당 의원)씨를 비롯해 趙全赫(조전혁ㆍ현 한나라당 의원)·홍진표·李在敎(이재교ㆍ변호사)·崔弘在(최홍재ㆍ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씨 등 자유주의연대 멤버들은 신문·잡지 기고 등을 통해 左派(좌파) 정권을 비판하고, 자유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대한민국의 성취를 이론적으로 정리해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안병직 교수도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로서 노무현 좌파 정권에 대한 비판에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통 右派(우파) 세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고, 종래의 ‘반공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李明博(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신지호 대표와 조전혁 교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이를 전후해 자유주의연대는 문을 닫고 뉴라이트재단과 합치면서 시대정신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걸었다. 안병직 교수는 작년 11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니, 지금부터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국민통합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 전달에는 ‘보수와 진보의 공생모델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9일 사회민주주의연대(대표 周大煥ㆍ주대환)가 주최한 〈조봉암, 건국의 주역인가 간첩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안병직 교수는 격려사를 했다. 그는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한 사람이 뻔뻔스럽게 이 자리에 나섰다”는 말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자리에 나선 것은 한 가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해 세계사적인 성취를 이룩한 훌륭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左右(좌우)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청산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모든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다양한 사상이 우정적 관계 속에서 공존해야 할 때가 됐다. 남은 인생 동안 이 얘기를 하면서 살 생각이다.”
안병직 교수가 ‘남은 생애’를 걸면서 전념하겠다고 하는 ‘국민통합’, 그가 말하는 국민통합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대한민국뿐입니다. 이제는 그 바탕 위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金九(김구)든지, 건국을 했던 李承晩(이승만)이든지, 경제발전을 했던 朴正熙(박정희)든지,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金大中(김대중)이든지, 정확하게 평가하고 제 위치에 둘 만한 때가 됐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잘되기 위해서 평등을 더 강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유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하지 않고서는 선진화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제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를 하고, 그런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함께 우리의 미래를 구상하자는 것입니다.”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작년 狂牛病(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거짓말로 대중을 선동하고, 경찰에게 죽창을 휘둘러대는 좌파세력과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가능할까.
“좌파 내에서 주사파·마르크스주의자는 소수”
―이념갈등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그게 가능할까요.“그래서 그런 사람들도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판을 깨지 못하게끔 가능한 한 多數(다수)를 결집하자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국민통합운동입니다. 그래야 지금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물론 민주주의는 우정적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적대적 관계에서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우정적 관계, 우리는 한 공동체의 동포형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는 형제가 될 수 있지만, 부르주아는 결코 형제가 될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좌파진영 내에서 主流(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흔히 ‘主思派(주사파)’라고 하는 김일성주의자들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른바 PD(민중민주) 계열도 있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추구하는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같은 사람은 좌파진영 내에서 少數(소수)다. 앞에서 말한 조봉암 토론회가 끝난 후 필자가 주대환 대표에게 “하는 일은 잘되어 가느냐”고 묻자 그는 한숨을 쉬며 “누가 관심이나 갖나요”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안병직 교수의 현실 인식은 달랐다.
“오히려 지금은 주사파나 마르크스주의·스탈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는 從北主義(종북주의)니까 같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인데, 어느 정도 이야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스스로 드러내 놓고 자기가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수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좌파’를 실재하는 좌파인 것처럼 상정하고, 그들을 대화 상대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같이 일하려는 것은 ‘관념적 좌파’가 아니에요. 실재하는 세력이죠. 몇몇 좌파 시민단체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연말 쯤에는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만나서 얘기해 보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과거 좌파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私席(사석)에서는 과거를 반성하는 듯하다가도,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인하는 것이 될까 봐 우물쭈물하면서 옛날에 하던 소리를 그대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요즘은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교조 구성원들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스스로 좌파 내 소수임을 인정하더군요.
“앞으로는 바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종북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북한이라는 현실 권력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지금 좌파에게는 사회민주주의 외에는 代案(대안)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좌파가 수년 내에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평등과 복지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들과는 국민통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은 격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격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굉장히 공고한 시스템입니다. 일본·프랑스 등에서는 공산당도 인정하고 있잖아요. 우리의 경우 북한이 있어서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북한이 없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겠죠.”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 통합, 내 생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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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0월 20일 시대정신은‘국민통합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
이런 예를 들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취약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저 사람들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객관적인 근거, 실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우병 사태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체가 없는 선동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 실체가 공허한 주장 때문에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몇 달 동안 도심을 마비시켰습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증거 아닌가요.
“작년 광우병 파동 이후로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잖습니까. 이명박 정권이 튼튼해지면 더 저항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얘기하고, 改閣(개각)에서도 ‘국민통합형 인사’들을 기용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내 생각과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현 정부가 출범한 후 시대정신은 국민통합과 ‘광우병 파동이 왜 거짓인가’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해 왔는데, 그것이 요즘 들어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그를 만나 국민통합을 역설한 적이 있어요.”
老(노)교수의 얼굴에는 일종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권위주의는 주먹으로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때문에 권위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자발적인 통합이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각자 자기 이념을 갖는다고 해도, 우리가 몸담고 사는 공동체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내가 말하는 국민통합의 핵심입니다.
다만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은 진보도 쓰고 보수도 쓰자는 것인데, 이것은 혼란이지, 통합이 아닙니다. 통합을 위해서는 통합원리, 즉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합의, 대한민국 헌법체제에 대한 합의, 대한민국이 정당한 국가였다는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통합위원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교수님의 힘을 필요로 한다면 응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통합운동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위를 준다면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하는 국민통합이라야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좌파는 권력을 배분, 우파는 권력을 독점한다”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했을 때 뉴라이트운동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뉴라이트운동 종사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2007년 정권교체’와 ‘장기적인 사상투쟁’을 다짐했다.
하지만 자유주의연대는 2007년 大選(대선)을 전후해서 대표의 정치권 진출과 함께 와해됐다. 뉴라이트운동의 다른 한 축이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금년 4월 김진홍 상임의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세력과 활동력이 크게 약화됐다. 운동의 맥이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안병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좌파운동은 운동을 해서 정권을 잡으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배분하는 반면, 우파는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것이 우파운동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권력을 나눠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파 시민단체들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건국 60주년기념사업을 하고 난 후 기념재단을 만들어 운영권을 우파단체에게 넘기는 식으로 그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잖아요.
지금 우파 시민단체에서는 개인적으로 희생해서 돈을 모아 써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 운동이 되겠습니까.”
―뉴라이트운동에 대해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뉴라이트운동은 건국과 근대화의 역사가 성공한 역사라는 것을 입증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뉴라이트운동은 보수세력이 다시 집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성공한 역사라면,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에게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경륜이라는 면에서는 역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은 관리 능력이 탁월했다고 봅니다. 사실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한국경제는 정말 위기였는데, 철권정치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능력은 없지만 굉장히 순수하고 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능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1997년 外換(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를 확 바꾸어 버렸어요. 다만 노벨평화상을 타려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어요. 그가 햇볕정책을 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애정 때문도 아니었어요.
결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제대로 한 사람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제대로 된 대통령이 나오지 못한 것이 비극이죠.”
―보수진영이 2012년에 다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정치는 세력통합이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再(재)분배해야 합니다. 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리를, 명예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명예를 줘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의식이 부족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실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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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박물관 앞에서 실학에 대해 설명하는 안병직 교수. |
“실학은 窮經致用(궁경치용)입니다. 궁경이란 ‘경서를 궁구하다. 근본까지 연구하다’는 뜻이고, ‘치용’은 ‘획득된 진리를 가지고, 현실에 적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서 古典(고전)연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학이란 서양 14세기 문예부흥에 맞먹는 학풍이었습니다. 이런 학풍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있었습니다.”
안병직 교수는 “실학은 15세기 이래 西勢東漸(서세동점)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온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조총이 전파됐고, 오다 노부나가가 이 조총으로 일본 천하통일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여세를 몰아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明(명)이 망하고 淸(청)이 일어섰습니다.
왜란과 호란으로 황폐해진 조선은 재건책을 모색하면서 大同法(대동법·여러가지 공물을 쌀로 통일해 납부하도록 하는 납세제도)을 도입하고, 鑄錢(주전)사업을 하는 한편, 均役法(균역법·군역을 치르는 대신 납부하던 군포를 줄여주는 납세제도)을 실시합니다.
서세동점과 兩亂(양란) 이후 조선 내부의 경제·사회적 변화는 실학이 성립하는 역사적 배경이 됩니다.”
―실학이 당시 집권층에 의해 치국의 방책으로 채용됐다면, 내재적 근대화가 가능했을까요.
“당시 동아시아 내에서 자본주의 萌芽(맹아), 즉 근대적 요소가 발견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실학적인 요소를 현실에 채용해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도쿠가와 막부라는 정치체제가 가로막는 바람에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로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로 나가는 것은 페리함대의 來侵(내침)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였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안병직 교수는 “역사의 動因(동인)이 안에서부터 나와야 하며 밖에서 들어오는 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이라면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결국 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외국으로부터 발전 동력을 흡수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실학자들이 제시했던 井田制(정전제) 등을 보면, 古來(고래)의 유교경전에 바탕을 둔 이상적 토지제도이지, 당시 농업발전에 부응하거나 자본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지제도는 아니었습니다. 과연 실학은 얼마나 근대적인 것입니까.
“당시 농민의 토지소유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주제도 발전하게 됐죠. 당시 실학자들이 연구한 정전법이나 균전법, 한전법 등의 목표는 ‘어떻게 중간착취자인 지주제를 없애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산의 정전법의 핵심은 토지에 대한 국가의 법률적인 所有(소유)와 농민들의 사실상 占有(점유)를 제도화하자는 것입니다. 다산의 정전법의 핵심은 ‘體國經野(체국경야)’입니다. 체국은 도로와 수로를 전국적으로 구축하고, 도로를 통해 도시와 농촌,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자는 것입니다. ‘경야’는 정전을 기반으로 해서 전국의 토지를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 세금을 거두는 표준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산사상에 ‘경야’가 있는 것은 알아도 ‘체국’이 있는 줄은 모릅니다.”
실학자들의 사상은 나름 상당한 근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얘기겠다. 하지만 결국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안 교수는 자연과학적 인식의 유무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일본의 경우 나가사키를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연과학적 기초가 있었던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했고, 그러한 차이 때문에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있자마자 문명개화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