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明博 대통령, 朴正熙 기념관 빨리 지어야
⊙ 2002년 경선 당시 金大中 대통령은 盧武鉉 돕지 않았다
⊙ 김수환 추기경이 병실에서 세례 주고 자신의 세례명 부여
⊙ “집사람이 돈가스집, 비빔밥집 해서 먹고살아”
취재지원 : 李玲朱 月刊朝鮮 인턴기자
⊙ 2002년 경선 당시 金大中 대통령은 盧武鉉 돕지 않았다
⊙ 김수환 추기경이 병실에서 세례 주고 자신의 세례명 부여
⊙ “집사람이 돈가스집, 비빔밥집 해서 먹고살아”
취재지원 : 李玲朱 月刊朝鮮 인턴기자
權魯甲(권노갑·80) 민주당 전 고문(이하 고문)의 피부에 눈길이 갔다. 잡티 하나 없고, 주름도 거의 없다. 피부만 젊은 게 아니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낀 신문은 두 개. 조선일보와 영자신문이었다.
몇 년 전부터 영어 공부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영자 신문을 들고 다닐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는 “영자 신문과 일반 신문을 비교하며, 한국어 문장을 어떻게 영역했는지 보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있는 권노갑 민주당 고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방금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터뷰 시간보다 10여 분 늦은 그는 취재진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대철이와 옥두를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 부렀어”라며 웃었다. 그가 말하는 대철이와 옥두는 鄭大哲(정대철) 전 의원과 金玉斗(김옥두) 전 의원이었다.
―동교동계 사람들을 자주 만나세요?
“에~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지원이도 봤고, 훈평이는 매일 보고 그라요.”
지원이는 朴智元(박지원) 민주당 의원, 훈평이는 ‘동교동 특무상사’라는 李訓平(이훈평) 전 의원을 말한다.
아파트 거실에 앉자마자, 80세의 동교동계 좌장은 7세 위의 ‘어른’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 건강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와이에서 한달음에 날아왔다. 권 고문은 “대통령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李姬鎬(이희호) 여사와 지원이를 만났다”며 “한고비 넘겨서 별문제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제 김대중 대통령께 병문안을 갔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음도 잘 잡수시고. 신문도 비서가 읽어 주면 다 들으시고 그라요.”
―병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겁니까?
“아니요. 요즘은 계속 좋아지고 있어. 이제는 완전히 한고비를 넘겼어요.”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권 고문의 기대 섞인 얘기와 달리,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인 8월 8일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는 갑자기 악화됐다. 주말부터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장이 직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를 챙기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든 언론사에서 병원에 기자들을 급파, 시시각각 김 전 대통령의 병세를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가 가장 나빴던 날은 8월 9일, 일요일이었다. 청와대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할 것에 대비,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외부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김 전 대통령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시각 권노갑 고문, 박지원 의원, 韓和甲(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 이훈평 전 의원 등 동교동계는 병원에서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이날을 고비로, 김대중 대통령은 다소 안정을 찾았다. 8월 11일 오전에는 이희호 여사와 눈을 맞췄고 미음도 넘겼다. 김 전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자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병실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격려했다.
8월 11일 저녁 병원 근처에서 만난 권노갑 고문은 “지난 일요일에 정말 상태가 안 좋아 타계하시는 줄 알았다”며 “이제 정말 한고비 넘겼다”고 했다. 권 전 고문에 따르면, 동교동계는 매일 오전 10시 병원 20층에 있는 카페에 모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를 챙긴다고 했다.
하와이 동서센터에서 영문학 공부
다시 권노갑 고문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언제 미국으로 떠나신 겁니까.
“올 2월 29일 날 떠났어요. 처음에는 미주리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하와이대로 갔어요. 거기서 제게 객원교수 자격을 줘서 현재 동서센터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객원교수라면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학교에서 방을 주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어요.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주로 영문학을 공부해요. 요새는 영어 소설, 정치인들의 자서전 같은 걸 많이 봅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자서전, 존 캐리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자서전을 봤습니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을 완독했어요.”
권 고문의 거실 탁자에는 <미래를 바라보며>라는 영어 서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보기 시작했다”며 반 넘게 읽은 책을 보여줬다.
―2005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때는 한국외대 동시통역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서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했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가 좋아서, 정치하는 내내 영어에서는 손을 떼지 않았어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재야 시절, 가택연금 당하거나 탄압을 당하면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 돌아다니면서 영어로 정치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그랬습니다.”
―정치할 때도 영어 서적을 보셨습니까?
“아, 그럼요. <타임>지도 보고, 다 봤지.”
―하와이대학교에서는 혼자 책만 보십니까.
“주중에 하와이대 영문학과 교수를 1 대 1로 만나서 오후 5시부터 6시반이나 7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주로 그날그날의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서로 공부를 해 와서 토론을 하죠. 한동안은 金正日(김정일)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북한 후계구도는 어떻게 될지에 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토론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의사소통에는 별문제가 없는데, 가끔씩 미국 교수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제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해 줄 때가 있지. 그때는 답답해. 다른 교수들과 상의해서 알려주겠다 이러고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교수들도 있어요. 허허허.”
“金大中 대통령 덕분에 내가 돋보여”
―하와이에선 식사나 생활은 어떻게 하십니까?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했어요. 방 크기가 얼마만 하냐 하면, 과거 형무소 독방만 해요. 형무소 독방. 방이 작으니까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들어가면 서 있을 자리밖에 없어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 사용이고, 냉장고도 없어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식사는 나가서 사 먹어. 아침에 학교 식당에서 3달러짜리 수프 하나 먹고 낮에는 시내 나가서 한국 식당에서 사 먹어요. 기숙사 생활을 다 견딜 만했는데, 음식 때문에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한 달 만에 한국 식당 많은 곳에 가서 작은 방을 하나 얻었어요. 음식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기숙사 생활할 때 젊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셨겠네요.
“거의 20대, 많아 봐야 30대 초반 학생들과 밥먹고 얘기하고 그랬죠. 미국, 일본, 중국 학생들인데 저에게 ‘한국에서 뭐 했느냐’ 그래서 ‘정치했다’ 하면 깜짝 놀라요. 국회의원 했다고 말해 주면 많이 물어봐요. 근데 이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원로인 분이, 나이도 고령인데 여기까지 와서 공부를 하느냐’면서 놀라워해요. 저는 ‘마음은 지금도 30대 같다. 공부가 너무 재미 있다’ 그러면 또 놀라죠.”
―한국 정치에 대해 물어보지 않던가요.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평생 모셨고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말하면 다들 너무 좋아해요. 미국 학생, 일본 학생, 중국 학생 가릴 것 없이 ‘노벨 평화상’ 얘기를 하며, 어떤 학생들은 ‘존경한다’고 하면서 저를 보는 눈이 달라져요. 김 대통령 덕분에 제가 돋보이는 거죠.”
권노갑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에 입문하기 전, 목포여고에서 3년 동안(1959~61년) 영어교사 생활을 했다. 권 고문은 그의 부모님이 늦은 나이에 본 늦둥이자, 獨子(독자)였다. 일찌감치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 홀로 된 老母(노모)가 걱정이 돼 영어교사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1961년 5월 3일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한 ‘형님’ 김대중을 도와주기 위해 영어선생직을 그만두고 인제까지 따라 갔다.
“제가 그 양반(김 대통령)을 만난 지가 중학교 1학년 때니까, 열네 살 때부터 만난 겁니다. 벌써 66년이 됐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그 양반은 5학년.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 위인데 학교는 4년 선배였어요. 그때부터 형님, 동생으로 지내 온 것이여. 우리 학교 다닐 때, 일제시대니까 일본 사람 90명, 한국 사람 90명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나나 누구 할 것 없이 그 양반을 가장 존경했어. 공부를 제일 잘하고, 뭐든지 돋보였어요. 앞으로 저런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의견이었어. 김 대통령이 자꾸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하니까 제가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그 양반을 도왔죠.”
―동교동에서 함께 생활한 적도 있었죠.
“당시 동교동 김 전 대통령 자택에 그의 모친께서 함께 살았어요. 제가 안동 권씨인데 김 전 대통령 모친이 안동 장씨여서, 저를 아들처럼 대해 줬어요. 어떤 때는 ‘노갑이는 내 방에서 자라’고 해서 한방에서 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김 전 대통령의 자제분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하더군요.
“그럼요. 장남인 金弘一(김홍일) 의원은 제가 중학교 입학식에 데리고 갔어요. 허허허. 그때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이어서 바빴거든. 어렸을 때는 삼촌이라고 불렀어요. 정치적으로는 주군으로 모셨지만, 김 전 대통령과 저는 친형제간이나 다름 없어요. 목상(목포 상고)에 다닐 때는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정거장’型 정치자금 관리
―40년 넘게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박지원 의원이 최측근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 생각 하면 섭섭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아니에요. 그런 아쉬움은 없습니다. 박실장은 워낙 꼼꼼하게 대통령을 잘 모십니다. 제가 도와줘야 할 후배 아닙니까.”
인터뷰 중간에 과일이 나왔다. 권 고문이 과일을 들자, 주방 탁자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일행을 보던 아홉 살 난 강아지 ‘뚜리’가 쪼르르 그에게 와서 안겼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강아지를 안아 올렸다.
―개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주 좋아하지. 얘는 2000년부터 키웠어요. 이제 아홉 살이 됐는데, 백내장이 와서 눈이 안 좋아요. 제가 개를 좋아해서 젊어서부터 여러 종류 많이 길러 봤어요. 셰퍼드, 진돗개, 푸들. 우리 ‘뚜리’는 중국견이에요.”
―어떤 종류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제일 좋은 거는 역시 진돗개죠. 주인한테 순종하고, 어떤 개보다도 자기 가족 보호하려고 하고, 집도 잘 지키고.”
―60년 가까이 정치하면서 5번이나 구속돼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아는데요. 그런데도 지금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젊었을 때부터 제가 상당히 건강합니다. 운동을 잘했어요. 광복 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권투를 했어요. 그 덕을 좀 봤어요. 정치하면서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남을 돕고 배려하면서 그리고 의리를 지키며 살려고 노력했어요.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려 있잖아요.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있으면 언제든지 나눠주었고….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정치하면서도 맘이 편했어요. 내 욕심보다도 후배들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 보면 맘이 항상 편해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禹相虎(우상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관리 형태를 몇 개로 나눠 소개했다. 우 전 의원은 권노갑 고문의 정치자금 관리유형을 ‘정거장’형이라고 했다. 정치자금이 들어오면 자신이 절대로 가지지 않고 후배들과 당에 모두 나눠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유형이라고 덧붙였다.
“鄭東泳 의원 용서했다”
―원로 정치인들 가운데 후배들이 자주 찾아가는 분은 권노갑 고문을 포함해 몇 명 안된다고 하더군요.
“잘 베풀어서 그런지 후배들이 많이 따르고 자주 찾아와요. 나이 먹으면서 후배들이 연락 오고 찾아오는 게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어요.”
―지난 2000년에 민주당 내 정풍 운동으로 까마득한 후배인 鄭東泳(정동영) 의원에게 밀려났습니다. 당시 권 고문이 정 의원을 아껴서 공천까지 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正風(정풍) 운동’ 얘기가 나오자, 소파에서 허리를 떼며 안색을 바꿨다.
“기자들이 그걸 ‘정풍’이라는데 정풍이 아닙니다. 月刊朝鮮이 그 내막을 자세히 썼습니다. 나중에 내가 정동영 의원의 ‘바른 정치모임’에 후원금을 주고, 사무실도 열어 준 후원자였어요.”
―하지만 정동영 의원이 권 고문을 섭섭하게 한 건 사실 아닙니까.
“많이 섭섭했어. 근데 내가 다 용서했지.”
―최근에 연락을 했습니까.
“정동영 의원이 자주 연락해요. 최근에 하와이로 전화 왔더라고. 지난 재·보궐 선거 직전에 ‘전주에서 출마한다’고 해서 ‘잘해라. 꼭 이번에 당선돼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그랬어요. 당선되자마자 또 전화 왔어요. 그래서 ‘축하한다’ 그랬지.”
엊그제 전화와서 ‘식사하자’고 그랬는데 ‘내가 바빠서 다음에 하자’고 했지. 이제 저한테 잘해요.
권 고문은 “정동영 의원이 하루빨리 민주당에 복당해야 한다”며 “정 의원 복당에 반대하는 민주당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다시 건강 관리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마음가짐 말고, 섭생법 같은 건 없으세요? .
“특별한 건 없고 좋은 거 많이 먹어요. 젊었을 때는 비프 스테이크, 전복, 장어 같은 거 잘 먹었어요. 그러다 몸이 비대해져서 그때부터는 과일을 많이 먹고 과식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국회의원 때는 등산을 많이 했는데 나이 들어서는 걷기로 돌아섰지.”
―하와이에서도 많이 걷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20분 걸려요. 아침에 나갈 때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가방 메고, 운동화 신고 그렇게 1시간20분을 걸어 다녀요.”
―술 담배는 전혀 안 하세요.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고, 젊었을 때는 술을 자주 했지만, 요새는 술을 거의 안 마셔. 술, 담배 안해서 피부가 이렇게 좋은가 봐.”
정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
―골프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골프는 주말만 쳐요. 주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시간 빼고 공부만 해요. 학교 갔다 집에 와서는 그날 들은 거, 배운 거 노트에 기입하고 외워요. 그런 다음에 9시쯤 한국 뉴스 보고, 9시반쯤에 자요. 하와이 시간으로 9시에 한국 아침뉴스를 틀어 주거든요.”
―여야 관계가 계속 꼬이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십니까.
“현재 내 심정은 현실정치에 대해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조언도 잘 안 해요.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요.”
―민주당이 자꾸 장외투쟁이나 원외정치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민주당 할 때, 당시 李基澤(이기택)씨가 대표였어요. 그때 제가 12·12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함께 있었죠. 여당이 12·12사태 조사에 소극적이어서 제대로 조사를 못했어요. 그 당시 이기택 대표를 포함해 몇몇 최고위원들이 원외로 나가서 투쟁을 하자고 할 때 저는 반대했어요. ‘어려움이 있어도 원내에서 여야 간에 의견을 조정하면서 해결해 나가자’고 주장했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 얘기에 찬성했습니다.”
―민주당이 원외투쟁을 그만둬야 한다고 보시나요.
“필요한 때는 강력하게 해야죠. 다만 원내외 병행투쟁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그런 시각을 한 번 참작했으면’ 하는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에 그런 얘기를 해 주셨습니까.
“안 했어요. 송영길 최고위원과 며칠 전에 점심을 했고, 정세균 대표도 만났지만 말은 안 했어요.”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정권의 386의원들에게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세균 대표는 원래 성격이 온건하고 부드러워요. 그런데 지금 대표로 있다 보니, 당내 강경파들에게 끌려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과격하지 않고, 똑똑한 사람이라 앞으로 잘할 거예요.”
“李明博 대통령이 왜 朴槿惠 끌어안지 못하는지…”
―민주당 386 의원들이 정권을 놓친 것 때문에 투쟁 위주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정권을 놓친 게 아니라, 국민들이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겁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500만 표라는 차로 승리한 건 李承晩(이승만) 박사 이후 처음일 겁니다. 그것이 대세였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어요.”
―뭐가 아쉽습니까.
“아니, 왜 미국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朴槿惠(박근혜)씨를 끌어안지 못해요. 그러면 당내 親李(친이)-親朴(친박) 갈등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거야. 여당이 화합해야 나라 일이 잘될 텐데, 여당이 저래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친이 쪽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해서 실질적인 2인자로 만들면 대통령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2인자를 만든다고 해서 원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어디로 갑니까?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DJP연합으로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당시 JP가 실질적인 2인자였고, 정권의 공동 운영자였어요. 그래서 내각 구성할 때 자민련 쪽에서 경제 등 알짜배기를 모두 가져가고 우리는 국방, 외교, 체육 이런 쪽만 맡았죠. 김대중 대통령은 JP 쪽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 권한이 줄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 할 거 아닌데, 왜 5년 후를 생각해서 박근혜씨를 견제합니까.”
권노갑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뿐만 아니라,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저를 불러서 사회 화합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를 만들자고 했어요. 자신과 제가 가장 핍박을 많이 받았으니, 자신이 명예회장을 할 테니 저더러 부회장을 하라고 했어요. 박 대통령이 독재를 했지만 나라를 위해 공헌을 많이 한 분이고, 또 용서와 화해 차원에서 기꺼이 수락했죠.
박근혜 의원도 김대중 대통령의 뜻에 공감해서 부회장이 됐어요. 당시 저희가 용산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비를 만들려다 여의치 않아서 상암동에 만들었어요. 청와대에서 수차례 회의를 하고 기념사업회에서도 회의를 많이 했어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서 중단됐는데, 이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으니 빨리 마무리해야죠.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다르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요. 저희는 중도우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도좌파예요. 우리는 서민,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려고는 했지만, 시장경제체제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니에요.”
“노무현은 우리랑 생각이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와줬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당시 1위였던 李仁濟(이인제)씨가 자신이 후보가 안될 것 같으니 그런 모함을 한 거죠. 그 때문에 제가 이인제와 아주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사실 저는 그때 이인제를 돕고 있었거든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씨를 제치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대통령이 광주 경선에 여러 경로로 개입해서 노 전 대통령이 이길 수 있었다는 게 정설 아닙니까.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야. 이 양반(김 전 대통령)은 전혀 손을 안 댔어요. 과거 정계 은퇴하고 영국에 가 계실 때, 이기택씨가 민주당 대표가 되도록 제게 ‘도우라’고 했어요. 하지만 2002년 경선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당시 민주당 경선은 여론조사를 포함시킨 국민참여 경선이었잖습니까. 이를 통과시킨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도와준 거 아닙니까.
“국민참여 경선은 동교동계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어요. 당시 재야 쪽에서 국민참여 경선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제 측근 중에 유일하게 노 전 대통령 캠프에 갔던 金太郞(김태랑) 전 최고위원이 제게 전화를 했어요. 국민참여 경선 얘기를 하기에, 당내에서 다수가 인정하는 것 같아 반대하지 않았죠. 그뿐입니다.”
권노갑 고문은 “내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불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권 고문은 자신의 서재에 사진을 찾으러 갔다. 작은 서재에는 영어 서적이 빼곡했다. 책상 앞에는 권 고문이 金壽煥(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제가 김수환 추기경님 덕분에 천주교 신자가 됐습니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3년 제가 옥살이를 하고 있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잠시 병원에 나와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정의의 하나님은 없다’ 뭐 이런 식의 신을 부정하는 편지였어요. 그랬더니 며칠 뒤에 병원으로 김수환 추기경님이 직접 오셨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병실에서 세례 줘
권 고문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병원에 올 때 성경, 성수, 촛불, 묵주를 모두 가져왔다. 김 추기경은 내지에 ‘권노갑’이라고 쓴 성경책을 권 고문에게 줬다. 이후 성경책을 펼쳐서 강론을 한 후, 권 고문에게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줬다. 권 고문은 “6개월 이상 교리 공부를 해야 세례를 주는데, ‘神(신)이 없다’고 부정하는 내 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그냥 세례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례를 받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추기경님이 세례를 해 주고 스테파노라고 명명해 줬다’고 자랑하자, 김 전 대통령은 ‘추기경님이 자신의 세례명을 줬네. 참으로 기쁜 날이네’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사모님도 함께 성당에 다니시나요.
“제 처는 교회에 다닙니다. 지금 저와 함께 하와이에 있는데, 하와이에서는 제가 교회와 절에 다닙니다. 교회는 제 집사람 따라서 다니고, 제가 동국대 출신이고 4년 동안 총동문회장을 해서 절에도 가끔 가요.”
―정치 오래 하는 동안 사모님께 미안한 점이 많았겠습니다.
“고생 많이 했지. 제 집사람이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돈가스집을 하고, 대치동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비빔밥집을 운영해요. 오랫동안 거기서 생활비 나와서 살았죠. 젊어서부터 하도 아끼고 살아서 하와이 와서도 1시간 넘게 버스 타고 다녀요. 더울 때면 택시도 탈 만한데 꼭 버스를 타.”
―언제 다시 하와이로 떠나세요.
“대통령께서 일반 병실로 가시면 바로 떠나요. 9월 말쯤 돌아올 생각이에요.”
―그때 다시 정치권에 복귀하십니까.
“내가 뭘, 아직 복권도 안됐는데. 이제 공부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어려운 문장 하나 잘 풀고 났을 때 희열, 모르는 거 알게 됐을 때 기쁨이 너무 좋아요. 나이 먹을수록 살아 있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해요.”⊙
몇 년 전부터 영어 공부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영자 신문을 들고 다닐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는 “영자 신문과 일반 신문을 비교하며, 한국어 문장을 어떻게 영역했는지 보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있는 권노갑 민주당 고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방금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터뷰 시간보다 10여 분 늦은 그는 취재진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대철이와 옥두를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 부렀어”라며 웃었다. 그가 말하는 대철이와 옥두는 鄭大哲(정대철) 전 의원과 金玉斗(김옥두) 전 의원이었다.
―동교동계 사람들을 자주 만나세요?
“에~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지원이도 봤고, 훈평이는 매일 보고 그라요.”
지원이는 朴智元(박지원) 민주당 의원, 훈평이는 ‘동교동 특무상사’라는 李訓平(이훈평) 전 의원을 말한다.
아파트 거실에 앉자마자, 80세의 동교동계 좌장은 7세 위의 ‘어른’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 건강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와이에서 한달음에 날아왔다. 권 고문은 “대통령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李姬鎬(이희호) 여사와 지원이를 만났다”며 “한고비 넘겨서 별문제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제 김대중 대통령께 병문안을 갔는데 아주 좋았어요. 미음도 잘 잡수시고. 신문도 비서가 읽어 주면 다 들으시고 그라요.”
―병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겁니까?
“아니요. 요즘은 계속 좋아지고 있어. 이제는 완전히 한고비를 넘겼어요.”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권 고문의 기대 섞인 얘기와 달리,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인 8월 8일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는 갑자기 악화됐다. 주말부터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장이 직접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를 챙기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모든 언론사에서 병원에 기자들을 급파, 시시각각 김 전 대통령의 병세를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가 가장 나빴던 날은 8월 9일, 일요일이었다. 청와대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할 것에 대비,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의 외부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김 전 대통령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시각 권노갑 고문, 박지원 의원, 韓和甲(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 이훈평 전 의원 등 동교동계는 병원에서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이날을 고비로, 김대중 대통령은 다소 안정을 찾았다. 8월 11일 오전에는 이희호 여사와 눈을 맞췄고 미음도 넘겼다. 김 전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자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병실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격려했다.
8월 11일 저녁 병원 근처에서 만난 권노갑 고문은 “지난 일요일에 정말 상태가 안 좋아 타계하시는 줄 알았다”며 “이제 정말 한고비 넘겼다”고 했다. 권 전 고문에 따르면, 동교동계는 매일 오전 10시 병원 20층에 있는 카페에 모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태를 챙긴다고 했다.
하와이 동서센터에서 영문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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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영어노트를 보여주는 권노갑 고문. |
―언제 미국으로 떠나신 겁니까.
“올 2월 29일 날 떠났어요. 처음에는 미주리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하와이대로 갔어요. 거기서 제게 객원교수 자격을 줘서 현재 동서센터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객원교수라면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학교에서 방을 주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어요.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는 주로 영문학을 공부해요. 요새는 영어 소설, 정치인들의 자서전 같은 걸 많이 봅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자서전, 존 캐리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자서전을 봤습니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을 완독했어요.”
권 고문의 거실 탁자에는 <미래를 바라보며>라는 영어 서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보기 시작했다”며 반 넘게 읽은 책을 보여줬다.
―2005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때는 한국외대 동시통역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서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했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가 좋아서, 정치하는 내내 영어에서는 손을 떼지 않았어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재야 시절, 가택연금 당하거나 탄압을 당하면 미국 영국 독일 대사관 돌아다니면서 영어로 정치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그랬습니다.”
―정치할 때도 영어 서적을 보셨습니까?
“아, 그럼요. <타임>지도 보고, 다 봤지.”
―하와이대학교에서는 혼자 책만 보십니까.
“주중에 하와이대 영문학과 교수를 1 대 1로 만나서 오후 5시부터 6시반이나 7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주로 그날그날의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서로 공부를 해 와서 토론을 하죠. 한동안은 金正日(김정일)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북한 후계구도는 어떻게 될지에 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토론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의사소통에는 별문제가 없는데, 가끔씩 미국 교수들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제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해 줄 때가 있지. 그때는 답답해. 다른 교수들과 상의해서 알려주겠다 이러고는 얼렁뚱땅 넘어가는 교수들도 있어요. 허허허.”
“金大中 대통령 덕분에 내가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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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1월 21일 도쿄에서의 납치사건 이후 법원에 출두한 김대중 전 대통령. 그 옆으로 권노갑 고문, 김옥두 전 의원의 얼굴도 보인다. |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했어요. 방 크기가 얼마만 하냐 하면, 과거 형무소 독방만 해요. 형무소 독방. 방이 작으니까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들어가면 서 있을 자리밖에 없어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 사용이고, 냉장고도 없어요.”
―그럼 식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식사는 나가서 사 먹어. 아침에 학교 식당에서 3달러짜리 수프 하나 먹고 낮에는 시내 나가서 한국 식당에서 사 먹어요. 기숙사 생활을 다 견딜 만했는데, 음식 때문에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한 달 만에 한국 식당 많은 곳에 가서 작은 방을 하나 얻었어요. 음식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기숙사 생활할 때 젊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셨겠네요.
“거의 20대, 많아 봐야 30대 초반 학생들과 밥먹고 얘기하고 그랬죠. 미국, 일본, 중국 학생들인데 저에게 ‘한국에서 뭐 했느냐’ 그래서 ‘정치했다’ 하면 깜짝 놀라요. 국회의원 했다고 말해 주면 많이 물어봐요. 근데 이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원로인 분이, 나이도 고령인데 여기까지 와서 공부를 하느냐’면서 놀라워해요. 저는 ‘마음은 지금도 30대 같다. 공부가 너무 재미 있다’ 그러면 또 놀라죠.”
―한국 정치에 대해 물어보지 않던가요.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평생 모셨고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말하면 다들 너무 좋아해요. 미국 학생, 일본 학생, 중국 학생 가릴 것 없이 ‘노벨 평화상’ 얘기를 하며, 어떤 학생들은 ‘존경한다’고 하면서 저를 보는 눈이 달라져요. 김 대통령 덕분에 제가 돋보이는 거죠.”
권노갑 고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에 입문하기 전, 목포여고에서 3년 동안(1959~61년) 영어교사 생활을 했다. 권 고문은 그의 부모님이 늦은 나이에 본 늦둥이자, 獨子(독자)였다. 일찌감치 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당시 홀로 된 老母(노모)가 걱정이 돼 영어교사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서울에 올라와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1961년 5월 3일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한 ‘형님’ 김대중을 도와주기 위해 영어선생직을 그만두고 인제까지 따라 갔다.
“제가 그 양반(김 대통령)을 만난 지가 중학교 1학년 때니까, 열네 살 때부터 만난 겁니다. 벌써 66년이 됐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그 양반은 5학년.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 위인데 학교는 4년 선배였어요. 그때부터 형님, 동생으로 지내 온 것이여. 우리 학교 다닐 때, 일제시대니까 일본 사람 90명, 한국 사람 90명이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나나 누구 할 것 없이 그 양반을 가장 존경했어. 공부를 제일 잘하고, 뭐든지 돋보였어요. 앞으로 저런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의견이었어. 김 대통령이 자꾸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고 하니까 제가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그 양반을 도왔죠.”
―동교동에서 함께 생활한 적도 있었죠.
“당시 동교동 김 전 대통령 자택에 그의 모친께서 함께 살았어요. 제가 안동 권씨인데 김 전 대통령 모친이 안동 장씨여서, 저를 아들처럼 대해 줬어요. 어떤 때는 ‘노갑이는 내 방에서 자라’고 해서 한방에서 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김 전 대통령의 자제분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하더군요.
“그럼요. 장남인 金弘一(김홍일) 의원은 제가 중학교 입학식에 데리고 갔어요. 허허허. 그때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이어서 바빴거든. 어렸을 때는 삼촌이라고 불렀어요. 정치적으로는 주군으로 모셨지만, 김 전 대통령과 저는 친형제간이나 다름 없어요. 목상(목포 상고)에 다닐 때는 ‘형님’이라고 불렀어요.”
‘정거장’型 정치자금 관리
―40년 넘게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박지원 의원이 최측근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 생각 하면 섭섭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아니에요. 그런 아쉬움은 없습니다. 박실장은 워낙 꼼꼼하게 대통령을 잘 모십니다. 제가 도와줘야 할 후배 아닙니까.”
인터뷰 중간에 과일이 나왔다. 권 고문이 과일을 들자, 주방 탁자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 일행을 보던 아홉 살 난 강아지 ‘뚜리’가 쪼르르 그에게 와서 안겼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강아지를 안아 올렸다.
―개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주 좋아하지. 얘는 2000년부터 키웠어요. 이제 아홉 살이 됐는데, 백내장이 와서 눈이 안 좋아요. 제가 개를 좋아해서 젊어서부터 여러 종류 많이 길러 봤어요. 셰퍼드, 진돗개, 푸들. 우리 ‘뚜리’는 중국견이에요.”
―어떤 종류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제일 좋은 거는 역시 진돗개죠. 주인한테 순종하고, 어떤 개보다도 자기 가족 보호하려고 하고, 집도 잘 지키고.”
―60년 가까이 정치하면서 5번이나 구속돼 힘든 시간을 보낸 걸로 아는데요. 그런데도 지금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젊었을 때부터 제가 상당히 건강합니다. 운동을 잘했어요. 광복 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권투를 했어요. 그 덕을 좀 봤어요. 정치하면서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남을 돕고 배려하면서 그리고 의리를 지키며 살려고 노력했어요.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려 있잖아요.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있으면 언제든지 나눠주었고….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정치하면서도 맘이 편했어요. 내 욕심보다도 후배들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 보면 맘이 항상 편해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禹相虎(우상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관리 형태를 몇 개로 나눠 소개했다. 우 전 의원은 권노갑 고문의 정치자금 관리유형을 ‘정거장’형이라고 했다. 정치자금이 들어오면 자신이 절대로 가지지 않고 후배들과 당에 모두 나눠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유형이라고 덧붙였다.
“鄭東泳 의원 용서했다”
―원로 정치인들 가운데 후배들이 자주 찾아가는 분은 권노갑 고문을 포함해 몇 명 안된다고 하더군요.
“잘 베풀어서 그런지 후배들이 많이 따르고 자주 찾아와요. 나이 먹으면서 후배들이 연락 오고 찾아오는 게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어요.”
―지난 2000년에 민주당 내 정풍 운동으로 까마득한 후배인 鄭東泳(정동영) 의원에게 밀려났습니다. 당시 권 고문이 정 의원을 아껴서 공천까지 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正風(정풍) 운동’ 얘기가 나오자, 소파에서 허리를 떼며 안색을 바꿨다.
“기자들이 그걸 ‘정풍’이라는데 정풍이 아닙니다. 月刊朝鮮이 그 내막을 자세히 썼습니다. 나중에 내가 정동영 의원의 ‘바른 정치모임’에 후원금을 주고, 사무실도 열어 준 후원자였어요.”
―하지만 정동영 의원이 권 고문을 섭섭하게 한 건 사실 아닙니까.
“많이 섭섭했어. 근데 내가 다 용서했지.”
―최근에 연락을 했습니까.
“정동영 의원이 자주 연락해요. 최근에 하와이로 전화 왔더라고. 지난 재·보궐 선거 직전에 ‘전주에서 출마한다’고 해서 ‘잘해라. 꼭 이번에 당선돼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그랬어요. 당선되자마자 또 전화 왔어요. 그래서 ‘축하한다’ 그랬지.”
엊그제 전화와서 ‘식사하자’고 그랬는데 ‘내가 바빠서 다음에 하자’고 했지. 이제 저한테 잘해요.
권 고문은 “정동영 의원이 하루빨리 민주당에 복당해야 한다”며 “정 의원 복당에 반대하는 민주당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다시 건강 관리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마음가짐 말고, 섭생법 같은 건 없으세요? .
“특별한 건 없고 좋은 거 많이 먹어요. 젊었을 때는 비프 스테이크, 전복, 장어 같은 거 잘 먹었어요. 그러다 몸이 비대해져서 그때부터는 과일을 많이 먹고 과식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국회의원 때는 등산을 많이 했는데 나이 들어서는 걷기로 돌아섰지.”
―하와이에서도 많이 걷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20분 걸려요. 아침에 나갈 때 모자 쓰고, 선글라스 끼고, 가방 메고, 운동화 신고 그렇게 1시간20분을 걸어 다녀요.”
―술 담배는 전혀 안 하세요.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고, 젊었을 때는 술을 자주 했지만, 요새는 술을 거의 안 마셔. 술, 담배 안해서 피부가 이렇게 좋은가 봐.”
정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
―골프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골프는 주말만 쳐요. 주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시간 빼고 공부만 해요. 학교 갔다 집에 와서는 그날 들은 거, 배운 거 노트에 기입하고 외워요. 그런 다음에 9시쯤 한국 뉴스 보고, 9시반쯤에 자요. 하와이 시간으로 9시에 한국 아침뉴스를 틀어 주거든요.”
―여야 관계가 계속 꼬이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십니까.
“현재 내 심정은 현실정치에 대해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조언도 잘 안 해요.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 않아요.”
―민주당이 자꾸 장외투쟁이나 원외정치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민주당 할 때, 당시 李基澤(이기택)씨가 대표였어요. 그때 제가 12·12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함께 있었죠. 여당이 12·12사태 조사에 소극적이어서 제대로 조사를 못했어요. 그 당시 이기택 대표를 포함해 몇몇 최고위원들이 원외로 나가서 투쟁을 하자고 할 때 저는 반대했어요. ‘어려움이 있어도 원내에서 여야 간에 의견을 조정하면서 해결해 나가자’고 주장했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 얘기에 찬성했습니다.”
―민주당이 원외투쟁을 그만둬야 한다고 보시나요.
“필요한 때는 강력하게 해야죠. 다만 원내외 병행투쟁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그런 시각을 한 번 참작했으면’ 하는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에 그런 얘기를 해 주셨습니까.
“안 했어요. 송영길 최고위원과 며칠 전에 점심을 했고, 정세균 대표도 만났지만 말은 안 했어요.”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정권의 386의원들에게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세균 대표는 원래 성격이 온건하고 부드러워요. 그런데 지금 대표로 있다 보니, 당내 강경파들에게 끌려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과격하지 않고, 똑똑한 사람이라 앞으로 잘할 거예요.”
“李明博 대통령이 왜 朴槿惠 끌어안지 못하는지…”
―민주당 386 의원들이 정권을 놓친 것 때문에 투쟁 위주로 나가는 것 아닙니까.
“정권을 놓친 게 아니라, 국민들이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겁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500만 표라는 차로 승리한 건 李承晩(이승만) 박사 이후 처음일 겁니다. 그것이 대세였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어요.”
―뭐가 아쉽습니까.
“아니, 왜 미국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朴槿惠(박근혜)씨를 끌어안지 못해요. 그러면 당내 親李(친이)-親朴(친박) 갈등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거야. 여당이 화합해야 나라 일이 잘될 텐데, 여당이 저래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친이 쪽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해서 실질적인 2인자로 만들면 대통령의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2인자를 만든다고 해서 원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어디로 갑니까?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DJP연합으로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당시 JP가 실질적인 2인자였고, 정권의 공동 운영자였어요. 그래서 내각 구성할 때 자민련 쪽에서 경제 등 알짜배기를 모두 가져가고 우리는 국방, 외교, 체육 이런 쪽만 맡았죠. 김대중 대통령은 JP 쪽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 권한이 줄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 할 거 아닌데, 왜 5년 후를 생각해서 박근혜씨를 견제합니까.”
권노갑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뿐만 아니라,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저를 불러서 사회 화합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를 만들자고 했어요. 자신과 제가 가장 핍박을 많이 받았으니, 자신이 명예회장을 할 테니 저더러 부회장을 하라고 했어요. 박 대통령이 독재를 했지만 나라를 위해 공헌을 많이 한 분이고, 또 용서와 화해 차원에서 기꺼이 수락했죠.
박근혜 의원도 김대중 대통령의 뜻에 공감해서 부회장이 됐어요. 당시 저희가 용산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비를 만들려다 여의치 않아서 상암동에 만들었어요. 청와대에서 수차례 회의를 하고 기념사업회에서도 회의를 많이 했어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서 중단됐는데, 이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으니 빨리 마무리해야죠. 노무현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다르잖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요. 저희는 중도우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도좌파예요. 우리는 서민,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려고는 했지만, 시장경제체제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니에요.”
“노무현은 우리랑 생각이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와줬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당시 1위였던 李仁濟(이인제)씨가 자신이 후보가 안될 것 같으니 그런 모함을 한 거죠. 그 때문에 제가 이인제와 아주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사실 저는 그때 이인제를 돕고 있었거든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인제씨를 제치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대통령이 광주 경선에 여러 경로로 개입해서 노 전 대통령이 이길 수 있었다는 게 정설 아닙니까.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야. 이 양반(김 전 대통령)은 전혀 손을 안 댔어요. 과거 정계 은퇴하고 영국에 가 계실 때, 이기택씨가 민주당 대표가 되도록 제게 ‘도우라’고 했어요. 하지만 2002년 경선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어.
―당시 민주당 경선은 여론조사를 포함시킨 국민참여 경선이었잖습니까. 이를 통과시킨 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도와준 거 아닙니까.
“국민참여 경선은 동교동계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어요. 당시 재야 쪽에서 국민참여 경선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제 측근 중에 유일하게 노 전 대통령 캠프에 갔던 金太郞(김태랑) 전 최고위원이 제게 전화를 했어요. 국민참여 경선 얘기를 하기에, 당내에서 다수가 인정하는 것 같아 반대하지 않았죠. 그뿐입니다.”
권노갑 고문은 “내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불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권 고문은 자신의 서재에 사진을 찾으러 갔다. 작은 서재에는 영어 서적이 빼곡했다. 책상 앞에는 권 고문이 金壽煥(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제가 김수환 추기경님 덕분에 천주교 신자가 됐습니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3년 제가 옥살이를 하고 있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잠시 병원에 나와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정의의 하나님은 없다’ 뭐 이런 식의 신을 부정하는 편지였어요. 그랬더니 며칠 뒤에 병원으로 김수환 추기경님이 직접 오셨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병실에서 세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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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김수환 추기경의 사제관에서 자리를 함께한 권노갑 고문. 권 고문은 2003년 김수환 추기경에게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
그는 세례를 받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추기경님이 세례를 해 주고 스테파노라고 명명해 줬다’고 자랑하자, 김 전 대통령은 ‘추기경님이 자신의 세례명을 줬네. 참으로 기쁜 날이네’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사모님도 함께 성당에 다니시나요.
“제 처는 교회에 다닙니다. 지금 저와 함께 하와이에 있는데, 하와이에서는 제가 교회와 절에 다닙니다. 교회는 제 집사람 따라서 다니고, 제가 동국대 출신이고 4년 동안 총동문회장을 해서 절에도 가끔 가요.”
―정치 오래 하는 동안 사모님께 미안한 점이 많았겠습니다.
“고생 많이 했지. 제 집사람이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돈가스집을 하고, 대치동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비빔밥집을 운영해요. 오랫동안 거기서 생활비 나와서 살았죠. 젊어서부터 하도 아끼고 살아서 하와이 와서도 1시간 넘게 버스 타고 다녀요. 더울 때면 택시도 탈 만한데 꼭 버스를 타.”
―언제 다시 하와이로 떠나세요.
“대통령께서 일반 병실로 가시면 바로 떠나요. 9월 말쯤 돌아올 생각이에요.”
―그때 다시 정치권에 복귀하십니까.
“내가 뭘, 아직 복권도 안됐는데. 이제 공부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어려운 문장 하나 잘 풀고 났을 때 희열, 모르는 거 알게 됐을 때 기쁨이 너무 좋아요. 나이 먹을수록 살아 있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