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김정일이 나오느냐, 아니냐를 전혀 몰랐어요. 저쪽의 스케줄도 모른 채 그냥 간 거예요. 전혀 몰랐는데 비행장에 가니까 김정일이 나왔더라고요. 그러더니 김 대통령 승용차 옆에 김정일이 딱 타더라고요. 그런 것 하나하나 전혀 예측 불가능한 짓을 하더군요”
⊙ 金泳三… 담백하고 결단력 있어, 金大中… 인내와 끈질긴 노력 평가해 줘야, 金鍾泌…
교양 풍부하고 인간성 좋아
⊙ DJP연합 때 합의서에 실무자인 韓光玉과 金龍煥이 먼저 서명 후 양당 총재에게 추인
⊙ DJ는 내각제에 호감 갖고 있었다
⊙ 국민경선제로 盧武鉉씨가 득을 본 건 사실
韓光玉
⊙ 1942년 전북 전주시 출생.
⊙ 전주북중학교·중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영문과 3년 중퇴.
⊙ 11, 13, 14, 15대 국회의원. 민추협 대변인. 평화민주당 총재비서실장. 국회노동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부총재.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DJP)추진위원회 위원장.
제1기 노사정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초대 상임의장.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現민주당 상임고문·사단법인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 저서 <곧은길에 미래가 있다> 등.
⊙ 金泳三… 담백하고 결단력 있어, 金大中… 인내와 끈질긴 노력 평가해 줘야, 金鍾泌…
교양 풍부하고 인간성 좋아
⊙ DJP연합 때 합의서에 실무자인 韓光玉과 金龍煥이 먼저 서명 후 양당 총재에게 추인
⊙ DJ는 내각제에 호감 갖고 있었다
⊙ 국민경선제로 盧武鉉씨가 득을 본 건 사실
韓光玉
⊙ 1942년 전북 전주시 출생.
⊙ 전주북중학교·중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영문과 3년 중퇴.
⊙ 11, 13, 14, 15대 국회의원. 민추협 대변인. 평화민주당 총재비서실장. 국회노동위원장.
민주당 사무총장·부총재.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DJP)추진위원회 위원장.
제1기 노사정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초대 상임의장.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現민주당 상임고문·사단법인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
⊙ 저서 <곧은길에 미래가 있다> 등.
韓光玉(한광옥) 前 민주당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0년대 중반 兩金(양김·김영삼, 김대중)씨가 공동의장으로 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대변인을 지냈고, 이후에는 평민당 金大中(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국회노동위원장, 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국민회의 부총재, 제1기 노사정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초대 상임의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전 그는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협상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이끌어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랬던 그가 對北(대북)비밀송금 사건, 나라종금 사건 등에 휘말려 盧武鉉(노무현) 정권 내내 정치권을 떠나 있어야 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8월 복권될 때까지 근 6년여 동안 정치 현장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현재 직책은 민주당 상임고문.
당의 前(전) 대표이자 4選(선) 국회의원 경력을 가진 그는 지난 4·29 전주 완산갑 국회의원 再(재)선거 민주당 공천 경선에서 낙마했다. 조직력을 필요로 하는 민주당의 경선 방식은 정치 현장을 떠나 있었던 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경선에서 한 전 대표가 낙마하자 주변에서는 그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경선 결과에 승복했다. 민주당의 경선제 도입은 한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때 만든 제도다.
지난 5월 25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미래연구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 전 대표는 정치 복귀 후 겪은 경선에 대한 소회와 자신이 겪은 김대중·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 金鍾泌(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이른바 3金(김)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한 전 대표는 민추협 대변인으로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동시에 모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측을 오가며 DJP연합을 성사시켰다. 3김을 고루 경험한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불공정한 당내 경선
―당 대표까지 지낸 분으로서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나섰는데요.
“사실 나는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고향인 전주에서 출마하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주위에서 공백기가 많으니까 지금 자리가 나왔을 때 출마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강력하게 권유를 하더라고.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는데 후배들과 경선을 한다는 게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더라고요.”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를 지낸 경력 때문에 내심으로는 전략공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인간인데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당내 사정이 있는 거죠. 처음에 친구들이 ‘무슨 후배하고 경선하느냐’고도 그랬죠.”
―그런데도 경선에 참여한 이유는 뭡니까.
“고민 끝에 ‘정치란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때로는 선배가 후배들과 경선도 할 수 있는 거다, 이것을 내가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항상 선배라고 해서 후배들과 경선도 안 하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안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 가지, 경선을 채택한 최초의 대표로서 명분상 거부할 수가 없더라고요.”
당 대표 시절 국민경선제 도입
―어쨌든 경선에서 졌는데 후회는 없습니까.
“후회라기보다는 경선제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이번에 경험한 경선은, 당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이건 공정한 경선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내가 그런 것을 일일이 밖에 내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경선에서 탈락한 후 승복은 아니지만 받아들인다는 결단을 내리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선거 결과는 아시다시피 우리 민주당이 졌습니다.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밤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자꾸 뭐라고 하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경선을 공정하게 했다면 내가 절대 안 졌다고 봐요.”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지구당 사람들끼리 집안 잔치하는 거예요. 나처럼 외부에서 끼어들려고 하면 자리가 없는 거예요. 조직 관리를 해 온 사람이 유리한 거죠.”
―그런 일을 겪으면서 국민경선제 도입한 것 후회하지 않았습니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운영이 잘못되면 안된다고 느꼈죠. 내가 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지구당까지 하자고 한 게 아니었어요. 대통령 후보, 당 대표, 광역단체장까지만 하자고 한 거였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구당까지 확산을 해놔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지구당까지 경선하면 경선에서 진 쪽은 협조를 안 한다고요.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전주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들 보세요. 한 사람도 민주당 공천자를 안 밀어줬어요. 제도라는 게 한번 펼쳐놓으면 다시 오므리기 어려워요. 이제는 제도개선을 해야 해요.”
―2002년 大選(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경선제는 당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한 제도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천만의 말씀. 그건 아니에요. 내가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데 석 달 걸렸어요. 이 제도 도입을 의논할 때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生佛(생불)이라고 그랬습니다. 주위에서 자기 입장에 따라 거센 비난이 있었어요. 그 정도로 내가 참고 인내하면서, 타협하고 설득하면서 만든 건데 그걸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겠어요? 당시 후보자가 한두 사람도 아닌데요. 회의를 하면 어떤 사람은 나 보고 ‘무능하다, 결단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빨리 결정을 못 내린다는 거였죠. 결국 만장일치로 그 제도를 만든 거예요. 그 제도로 인해 노무현씨가 득을 본 건 사실입니다. 당시 나는 몰랐는데 그분의 밑바닥 조직이 단단했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득은 봤는데, 노무현씨 때문에 내가 국민경선제를 한 것은 아니에요.”
鄭東泳 복당에 찬성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유력시되던 李會昌(이회창) 총재를 꺾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한 제도였군요.
“그렇습니다. 처음에 당대표가 돼 가지고 보니까 당 분위기가 이회창씨가 거의 대통령이 되는 걸로 보고 포기하고 있더라고요. 내 생각에는 중산층 이상은 선거운동 대상이 아닙니다. 선거운동 대상이 아닌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죠. 그 사람들은 이미 선택이 정해져 있거든요. 선거는 중산층 이하를 상대해야 해요. 그래서 중산층 이하를 동원하는 것은 국민경선제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국민경선제 아니면 이회창씨를 꺾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 상태로 가만두면 이회창씨가 되는 거였어요.”
―결과적으로 한 대표 아이디어가 좋았군요.
“최종적으로 내가 결단한 거죠. 그게 아니면 대통령 선거가 안되겠더라고요.”
―4·29 재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호남 참패입니다.”
―丁世均(정세균) 대표 측은 승리라고 선언했는데요.
“수도권에서 이겼으니까 승리라고 하는데, 호남을 다 잃은 것을 포함해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안방에서 패했잖아요. 공천을 잘했으면 다 이길 수 있었잖아요.”
―민주당은 386 의원과 다른 의원들과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386이 자기들만 개혁적이고 당을 이끌어나가는 데 적합한 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우리가 민주화운동할 때는 자기들보다 훨씬 젊을 때 했어요. 우리는 감옥도 가면서 민주주의를 일군 사람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배들을 존중해 가면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했어요. 정치를 하더라도 도덕과 윤리가 있는 거예요. 생각이 다르더라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정치예요. 老壯靑(노·장·청) 3계층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합의가 시행될 때 힘이 있는 거예요. 정치를 협소화시키면 안돼요. 크게 만들어야죠. 더군다나 집권하려면 집권당보다 1.5배 이상의 힘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집권이 가능해요. 그런데 왜 자기들 주장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민주당의 화학적 결합을 말씀하시는데 그 결합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정치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상대를 무시하면 그 순간부터 독선이 나오고 독재가 되는 거예요.”
―鄭東泳(정동영) 의원 복당에는 찬성하십니까.
“찬성합니다. 탈당해서 나간 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집권을 위해서는 그런 사람도 필요하고 여러 사람 다 필요하다고 봐요.”
―정세균 대표는 반대하는데요.
“인간이니까 앙금이 다 있겠지. 시간을 두고 풀어가면 되죠.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다 보면 풀어지겠죠. 못 풀 게 뭐가 있어요. 같은 당을 했던 사람들인데.”
盧武鉉과 애증의 관계
―야권에서 現(현) 정부에 대해 “5공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5공 회귀라는 말은 독재라는 의미인데, 정치를 외면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의도 정치를 외면한다? 국회가 사실 거추장스럽죠. 민주주의가 원래 거추장스러운 제도거든요. 그러나 그 이상 최상의 제도가 없으니까 하는 거라고요. 그걸 인정해야 해요. 미국 같은 경우도 원내에서 법 하나 통과시키려고 대통령이 얼마나 의원들을 설득하고 그럽니까. 그런 거는 본받아야 해요. 미국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 그러나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자세로 국정에 임해줘야 해요. 그래야 여의도 정치가 살아나는 거예요. 여의도 정치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걸 외면하니까 이쪽에서 보면 독재로 보이는 거예요. 이 정부는 行政(행정)밖에 없잖아요. 정치보다는 행정 위주로 한단 말이죠. 효율성 위주로 하려고 하고요. 그런 것이 독재하고 통하는 거죠.”
한광옥 전 대표는 인터뷰 전날 봉하마을로 노무현 대통령 조문을 다녀왔다고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죽으면서까지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승부사 기질 발휘한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그분이 그렇게 안 죽었으면 국민들한테 참 치사하다는 등 별 욕 다 들었을 거예요. 사람으로서 쌓아놓은 거 다 없어지는 거죠. 그런데 승부사 기질로 죽은 거예요. 죽음으로써 노무현이가 산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이 왜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보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부인, 자식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니까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겠죠. 그분 성격을 내가 알지만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이분이 자살할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한테는 충격이 더 컸죠. 조문 가서 보니까 그분과 나의 이전의 애증관계, 그런 것은 없어지더라고요. 죽음이란 숫자로 말하면 제로거든요. 2곱하기 제로 해도 제로고, 100억 곱하기 제로 해도 제로란 말이죠.”
―그래도 그동안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5년 이상 시달렸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 사람이 아니죠.”
對北 송금액수 얼마인지 모른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 기소돼 무죄를 받았는데 우리 정부가 북한에 보낸 송금액은 정확히 얼마입니까.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 관리를 지낸 분 증언에 따르면 5억 달러가 아니라 6억 달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돈의 액수는 내가 잘 모르는 게, 남북 정상회담이 한창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비서실장으로 갔어요. 그때 아마 金重權(김중권)씨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朴智元(박지원)씨와 林東源(임동원)씨 선에서 움직였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김중권씨도 잘 모를 것 같아요. 아주 극비리에 추진했으니까요. 때문에 나는 돈 관계는 알 수가 없었어요.”
―2000년 6·15 남북 頂上(정상)회담 때 비서실장 자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하셨죠?
“6월 13일에 김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에 가서 2박3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당시 북쪽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金日成(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를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북측에서) 금수산 참배를 대통령에게 요구했죠. 그렇다고 거기에 응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은 그 문제가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 평양에 갈 때까지도 해결이 안됐어요. 그게 걸림돌이었죠. 그때 내가 임동원씨에게 ‘이건 안된다. 한 국가의 대통령 입장에서 어떻게 참배를 하느냐, 그것이 걸림돌이 돼서 남북정상회담이 깨지면 안되니까 대통령 대신 비서실장이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북한 측에 전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대통령이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를 해선 안된다는 것을 내가 강하게 얘기했죠.”
―그러면 비서실장으로서 금수산 참배를 하신 겁니까.
“안 갔죠.”
―박지원 의원은 ‘나와 한광옥 실장이 대신 참배하겠다’고 했다던데요.
“박지원씨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임동원씨에게 정식으로 얘기했어요. 내 카드를 내라고요.”
金大中, 金正日 승용차 동승 때 당황
―임동원 원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대표께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임 원장에 대해 국보법 위반으로 조사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까? 당시 국정원 김은성 차장이 그런 소문과 관련해서 한 대표께 해명을 했다고 하던데요.
“그런 이야기와 관련돼 김은성 차장한테 설명을 들은 것은 맞아요. 왜냐하면 그런 말이 들리니까 비서실장으로서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임 원장에 대한 그런 보고들이 많이 있었습니까.
“내가 듣기로는 김은성씨 건 한 건이었어요.”
―2000년 6월 13일 대통령 모시고 평양에 도착했을 때 숨겨진 비화는 없습니까.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김정일이 나오느냐, 아니냐를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저쪽의 스케줄도 모른 채 그냥 간 거예요.”
―그런 건 외교 관례상 결례 아닙니까.
“큰 결례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종종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건 내가 잘 모르겠어요. 전혀 몰랐는데 비행장에 도착하니까 김정일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김 대통령 승용차 옆좌석에 김정일이 딱 타더라고요. 그런 것 하나하나 전혀 예측 불가능한 짓을 하더군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은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승용차로 40여 분간 동승했다.
―김 대통령과 김정일이 예정에도 없이 한 차에 탄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 아닙니까. 당황 안 하셨습니까.
“당황은 했지만, 우리 경호팀도 있었으니까요.”
―김 대통령은 당황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몰라요. 대통령께서도 갑자기 그러니까 많이 놀랄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요. 워낙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니까.”
―나중에라도 그때의 소회를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국민들 가운데는 김 대통령과 김정일이 승용차에 동승한 40분간 밀담을 나누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그렇게들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두 분이 이야기한 걸 알 수가 있나요.”
―김 대통령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 하십니까.
“안 하죠. 그 양반 생각에는 국가대표끼리 한 이야기를 비서한테 하는 것도 문제라고 봤겠죠.”
金龍煥과 DJP연합 문서에 서명
―김 대통령 비망록이라도 나와야 그 내용을 알겠군요.
“그렇습니다.”
―한 전 대표께서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을 가능케 한 DJP연합을 이끌어낸 주인공인데, 추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어떤 겁니까.
“사실 그때 DJP 연합이 성사될 거라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참 어려웠어요. 자민련 의원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도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자기도 대통령 선거 운동하면서 자기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후보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당의 이익도 있고 자기 이익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협상하기가 어려웠죠.”
―내각제 개헌 등 자민련의 요구가 많았죠?
“우리는 양보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자민련은 양보를 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었죠. 자민련에서는 金龍煥(김용환) 선배가 그 일을 맡아서 저와 자주 만났습니다. 정부 쪽에서 알면 안되니까 아주 극비리에 만났어요.”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처음에는 합의가 잘 안됐어요. 1997년 10월 25일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내가 힐튼호텔에서 김용환씨를 만났어요. 내가 ‘김 선배님, 언제까지 단일화를 할 겁니까. 12월 18일이 선거인데, 대통령 선거 끝나고 단일화를 할까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선배 하고 나 하고 쓴 합의서를 토대로 해서 우리가 먼저 사인을 하고, 서로 총재에게 들이밀어서 안되면 치웁시다’ 이런 제안을 했어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랬죠. 그래서 그동안에 우리 둘이 쓴 합의문에 김대중, 김종필, 한광옥, 김용환의 이름을 써놓고 합의문에 김용환 선배와 내가 먼저 사인을 해 버린 거예요. 두 분의 서명란은 빈 칸으로 해놓고요. 사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총재 허락도 없이 합의문에 사인한 일요?
“네. 좋게 얘기하면 결단을 한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불경죄를 저지른 거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왔다갔다 하다가는 도저히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김용환 선배가 성사가 됐을 경우를 전제로 두 가지 조건을 붙였어요. 첫째는 그해 10월 30일인가에 김종필씨가 자민련 대통령 후보로서 대전 MBC에서 후보 연설이 예정돼 있었어요. 그 후보 연설할 때까지 발표 안 하는 걸로 하자는 거예요. 그 이유는 자기 고향에 가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가 김대중씨를 지지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양이 좋다는 거였죠. 그래서 나도 좋다고 했어요. 내 별명이 ‘자크’(지퍼)일 정도로 나도 보안 지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요.”
‘청구동 극비회동’ 언론에 새 나가
―두 번째 조건은 뭡니까.
“‘내일 사람 없을 때 당신 하고 김대중씨가 김종필 총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건 당연한 거니까 ‘좋다’고 하고 헤어졌죠.”
―김대중 후보를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다음날 아침에 김대중 총재한테 갔어요. 합의안을 내밀면서 ‘이 이상은 더 안됩니다’라고 했죠. 김 총재가 합의문을 한참 읽더니 그냥 ‘할 수 없군’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우리가 양보를 많이 했잖아요. 김용환 선배도 김종필 총재의 서명을 받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김대중 총재에게 ‘오늘 늦게 청구동에 감사인사를 하러 가셔야 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날 밤 10시쯤인가 이 어른을 모시고 청구동 김종필 총재 자택으로 갔어요. 처음에는 나, 김용환 선배 등 4명이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죠. 한 분은 양보를 받고 한 분은 조건이 충족돼서 양보하고 했으니 서로 기분이 좋았던 거예요.”
―10월 30일까지 보안은 잘 지켜졌습니까.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심야 회동 소식이 다음날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 대문짝만하게 났어요. 넷이 함께 있다가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라’고 하고 김용환 선배와 나는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조선일보 자민련 출입 기자가 온 거예요. 김용환 선배가 잘 말해서 돌려보냈다기에 나는 ‘김 선배님이 책임지고 그런 일(보도)이 없도록 해야 된다’고 하고 나왔죠. 설마 다음날 기사가 나오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랬는데 아침에 보니까 DJP회동 소식이 조선일보 하고 한국일보에 톱으로 나온 거예요.”
―한국일보는 어떻게 안 겁니까.
“그때 김종필 총재 집 앞에 경찰초소가 있었어요. 초소에서 경찰서에 보고를 했고, 그걸 한국일보 경찰 취재기자가 안 거예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해 11월 3일에 정식으로 양당 대표가 DJP연합에 사인을 했죠.”
DJP연합이 없었다면
―DJP연합이 알려진 초기에는 당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졌는데요.
“그랬어요.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만 DJP 회동 사실이 보도된 후 나머지 신문들은 물먹었다고 담당기자를 바꾸면서 우리 DJP연합의 가치를 평가절하시켰어요. 아주 엉망이었죠. 우리 후보의 인기 떨어진 고통을 내가 다 받았죠. 당무회의 같은 데서 내가 열변을 많이 토했어요. ‘여하간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미안하게 됐는데, 내가 볼 적에는 DJP연합 아니고는 우리가 승리하기 어렵다. 그리고 JP의 표가 5%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100을 받아야 당선된다고 할 때 우리가 지금 99를 얻었다면 1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1은 그냥 1이 아니고 가치로 봐서는 100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민련이 꼭 필요한 거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양보도 하고 그런 것 아니냐’고 열변을 토했죠.”
―DJP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나중에 자민련의 지지를 못 받았으면 우리가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39만 표 차로 이겼는데, 그때 충청도에서 우리가 이긴 표가 41만 표였어요. 충청도에서 이긴 표만큼 우리가 이긴 거예요. 그제야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한 부총재가 그때 DJP연합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DJP연합의 최초 제안자는 누굽니까.
“제안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DJP연합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께서 나 하고 김용환씨를 접촉시킨 거예요. 협상 기간은 한 1년 걸렸어요.”
―김대중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각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나도 ‘저 어른이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 보니까, 김대중 총재가 내각제를 받자고 그러더라고요.”
―내각제 개헌 생각도 갖고 있었던 거네요.
“분명히 있었어요. 내각제 개헌에 대한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으면 DJP연합은 안됐죠.”
―그런데 왜 집권 후에 생각이 바뀐 겁니까.
“내각제 제도 자체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시지는 않았어요. 끝까지 안된다고 그러면 내가 아무리 협상을 잘한다 해도 되겠어요? 내각제가 합의의 기본인데.”
―어떤 상황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까.
“나는 김 대통령이 내각제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었던 걸로 보지는 않아요.”
개헌은 임기 초에 해야
―결국 DJP가 결별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제일 큰 원인은 내각제가 안된 거죠. 자민련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계속 주장했지만 문제는 우리의 의석수가 부족했어요. 상대방이 응해 주지 않으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죠. 자민련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들어 보니 ‘적극적으로 내각제를 시도했어야 된다. 그 노력도 안 하지 않았느냐’ 그거였어요.”
―내각제 개헌을 위해 열성적이지 않았다는 불신이 결국 결별하게 만든 거네요.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죠.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개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고요. 대신 장관들 추천권도 주었어요. 나는 정치라고 하는 것은 약속인데 적극적으로 시도는 해 주었어야 신뢰가 있었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國政(국정)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분으로서 개헌을 한다면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요.
“개헌을 정권 후반기에 하려고들 하는데 그건 안돼요. 제 경험상 그건 안 하자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정권 출범 전반기에 해야 돼요. 임기 말에 가면 벌여놓은 것 정리하고 그러기도 바빠요. 개헌하려면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임기 말에는 개헌이 어려워요.”
―DJP 결별 후에도 JP는 자주 만나십니까.
“그 전에는 가끔 만났어요. 함께 골프도 하고 했죠. 나 하고야 감정 없으니까요. 그분은 책도 많이 읽고 교양이 풍부해서 대화하면 상당히 배울 게 많아요. 인간성이 좋아요.”
―결별 후 DJ와 JP는 서로 만난 적이 있습니까.
“따로 만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퇴임 후로도요?
“내 기억에는 없네요.”
DJ, YS를 동시에 모신 유일한 대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주 보십니까.
“세배 때 뵙죠.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두어 번, 당 대표 때 한 번 상도동 자택에 간 적이 있어요. 나는 YS하고 DJ를 화해시키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민추협 대변인을 했기 때문이죠. 양 김씨를 함께 모셔본 대변인은 대한민국에 나 하납니다. 민추협 이후 두 분이 갈라졌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의 개성을 내가 너무 잘 알아요. 서로가 상호보완이 되면 아주 이상적인 지도자가 나와요. 다 훌륭하시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죠. 나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두 분의 화해가 안돼서 안타깝죠.”
―두 사람은 태생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인가요.
“성격의 차이라는 게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니까…. 하여간 두 어른들이니까 내가 얘기를 잘 못하겠네요.”
―그렇다면 두 분의 장점을 하나씩 들어 주시죠.
“우선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은 인내하고 끈질긴 노력을 한다는 것은 평가를 해 줘야죠. YS는 담백하고 결단력이 강합니다.”
―항간에는 쟁점을 놓고 대립할 때 두 분이 단독 회동을 하면 김영삼 대통령이 이긴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까.
“(웃음) 아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YS는 워낙 고집이 세고 결단력이 있고, DJ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가는 것이 있잖아요.”
―남들이 볼 때는 YS보다 DJ가 더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라고 보는 데 외부에는 왜 그렇게 비칠까요?
“협상이라는 것이 꼭 논리와 설득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화를 하나 들려줄게요. 내가 민추협 대변인 할 때인 1987년에 全斗煥(전두환)씨가 개헌을 않겠다는 4·13호헌조치를 했어요. 그때 전국민 반대서명운동을 하는데, 1000만인 서명운동을 할 거냐, 100만인 서명운동을 할 거냐, 하는 문제가 양 김씨 사이에 쟁점이 됐어요. 김대중 당시 의장은 ‘우리 능력으로는 신민당과 합쳐도 100만인 이상을 만들기 어렵다’고 주장했죠. 사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합리적인 이야기죠. 그런데 김영삼 의장은 ‘어렵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운동인데 1000만 서명운동을 해야 호소력도 있고 상징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죠. 나중에 김대중 의장이 ‘이거 정말 어려운데 막말로 확인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서명 명단) 보자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시니까 김영삼 의장이, ‘누가 보자고 합니까. 100만이나 1000만이나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지’ 이렇게 주장해서 결국은 1000만 서명으로 갔어요.”
―두 분의 스타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그렇지? 그렇다고요(웃음). ⊙
사진 : 이태훈
김대중 정부 출범 전 그는 새정치국민회의 범야권 대통령 후보 단일화협상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이끌어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랬던 그가 對北(대북)비밀송금 사건, 나라종금 사건 등에 휘말려 盧武鉉(노무현) 정권 내내 정치권을 떠나 있어야 했다. 李明博(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8월 복권될 때까지 근 6년여 동안 정치 현장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현재 직책은 민주당 상임고문.
당의 前(전) 대표이자 4選(선) 국회의원 경력을 가진 그는 지난 4·29 전주 완산갑 국회의원 再(재)선거 민주당 공천 경선에서 낙마했다. 조직력을 필요로 하는 민주당의 경선 방식은 정치 현장을 떠나 있었던 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경선에서 한 전 대표가 낙마하자 주변에서는 그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경선 결과에 승복했다. 민주당의 경선제 도입은 한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있을 때 만든 제도다.
지난 5월 25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미래연구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 전 대표는 정치 복귀 후 겪은 경선에 대한 소회와 자신이 겪은 김대중·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 金鍾泌(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이른바 3金(김)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한 전 대표는 민추협 대변인으로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동시에 모셨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측을 오가며 DJP연합을 성사시켰다. 3김을 고루 경험한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불공정한 당내 경선
―당 대표까지 지낸 분으로서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나섰는데요.“사실 나는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고향인 전주에서 출마하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주위에서 공백기가 많으니까 지금 자리가 나왔을 때 출마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강력하게 권유를 하더라고.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는데 후배들과 경선을 한다는 게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더라고요.”
―대통령 비서실장, 당 대표를 지낸 경력 때문에 내심으로는 전략공천을 기대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인간인데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당내 사정이 있는 거죠. 처음에 친구들이 ‘무슨 후배하고 경선하느냐’고도 그랬죠.”
―그런데도 경선에 참여한 이유는 뭡니까.
“고민 끝에 ‘정치란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때로는 선배가 후배들과 경선도 할 수 있는 거다, 이것을 내가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항상 선배라고 해서 후배들과 경선도 안 하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안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 가지, 경선을 채택한 최초의 대표로서 명분상 거부할 수가 없더라고요.”
당 대표 시절 국민경선제 도입
―어쨌든 경선에서 졌는데 후회는 없습니까.
“후회라기보다는 경선제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이번에 경험한 경선은, 당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이건 공정한 경선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내가 그런 것을 일일이 밖에 내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경선에서 탈락한 후 승복은 아니지만 받아들인다는 결단을 내리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선거 결과는 아시다시피 우리 민주당이 졌습니다.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밤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자꾸 뭐라고 하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경선을 공정하게 했다면 내가 절대 안 졌다고 봐요.”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지구당 사람들끼리 집안 잔치하는 거예요. 나처럼 외부에서 끼어들려고 하면 자리가 없는 거예요. 조직 관리를 해 온 사람이 유리한 거죠.”
―그런 일을 겪으면서 국민경선제 도입한 것 후회하지 않았습니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운영이 잘못되면 안된다고 느꼈죠. 내가 경선제를 도입한 것은 지구당까지 하자고 한 게 아니었어요. 대통령 후보, 당 대표, 광역단체장까지만 하자고 한 거였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구당까지 확산을 해놔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지구당까지 경선하면 경선에서 진 쪽은 협조를 안 한다고요.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전주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들 보세요. 한 사람도 민주당 공천자를 안 밀어줬어요. 제도라는 게 한번 펼쳐놓으면 다시 오므리기 어려워요. 이제는 제도개선을 해야 해요.”
―2002년 大選(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경선제는 당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한 제도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천만의 말씀. 그건 아니에요. 내가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는 데 석 달 걸렸어요. 이 제도 도입을 의논할 때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生佛(생불)이라고 그랬습니다. 주위에서 자기 입장에 따라 거센 비난이 있었어요. 그 정도로 내가 참고 인내하면서, 타협하고 설득하면서 만든 건데 그걸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겠어요? 당시 후보자가 한두 사람도 아닌데요. 회의를 하면 어떤 사람은 나 보고 ‘무능하다, 결단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빨리 결정을 못 내린다는 거였죠. 결국 만장일치로 그 제도를 만든 거예요. 그 제도로 인해 노무현씨가 득을 본 건 사실입니다. 당시 나는 몰랐는데 그분의 밑바닥 조직이 단단했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득은 봤는데, 노무현씨 때문에 내가 국민경선제를 한 것은 아니에요.”
鄭東泳 복당에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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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4월 3일 민주당 최고위원 출마 선언과 함께 대표직을 사퇴한 한광옥 전 대표(가운데)가 김영배 총재대행(오른쪽), 안동선 고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
“그렇습니다. 처음에 당대표가 돼 가지고 보니까 당 분위기가 이회창씨가 거의 대통령이 되는 걸로 보고 포기하고 있더라고요. 내 생각에는 중산층 이상은 선거운동 대상이 아닙니다. 선거운동 대상이 아닌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죠. 그 사람들은 이미 선택이 정해져 있거든요. 선거는 중산층 이하를 상대해야 해요. 그래서 중산층 이하를 동원하는 것은 국민경선제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국민경선제 아니면 이회창씨를 꺾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 상태로 가만두면 이회창씨가 되는 거였어요.”
―결과적으로 한 대표 아이디어가 좋았군요.
“최종적으로 내가 결단한 거죠. 그게 아니면 대통령 선거가 안되겠더라고요.”
―4·29 재선거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호남 참패입니다.”
―丁世均(정세균) 대표 측은 승리라고 선언했는데요.
“수도권에서 이겼으니까 승리라고 하는데, 호남을 다 잃은 것을 포함해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안방에서 패했잖아요. 공천을 잘했으면 다 이길 수 있었잖아요.”
―민주당은 386 의원과 다른 의원들과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386이 자기들만 개혁적이고 당을 이끌어나가는 데 적합한 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우리가 민주화운동할 때는 자기들보다 훨씬 젊을 때 했어요. 우리는 감옥도 가면서 민주주의를 일군 사람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배들을 존중해 가면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했어요. 정치를 하더라도 도덕과 윤리가 있는 거예요. 생각이 다르더라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정치예요. 老壯靑(노·장·청) 3계층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합의가 시행될 때 힘이 있는 거예요. 정치를 협소화시키면 안돼요. 크게 만들어야죠. 더군다나 집권하려면 집권당보다 1.5배 이상의 힘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집권이 가능해요. 그런데 왜 자기들 주장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민주당의 화학적 결합을 말씀하시는데 그 결합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정치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겁니다. 상대를 무시하면 그 순간부터 독선이 나오고 독재가 되는 거예요.”
―鄭東泳(정동영) 의원 복당에는 찬성하십니까.
“찬성합니다. 탈당해서 나간 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집권을 위해서는 그런 사람도 필요하고 여러 사람 다 필요하다고 봐요.”
―정세균 대표는 반대하는데요.
“인간이니까 앙금이 다 있겠지. 시간을 두고 풀어가면 되죠.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다 보면 풀어지겠죠. 못 풀 게 뭐가 있어요. 같은 당을 했던 사람들인데.”
盧武鉉과 애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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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대표 시절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한광옥 전 대표(왼쪽 두번째). |
“5공 회귀라는 말은 독재라는 의미인데, 정치를 외면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의도 정치를 외면한다? 국회가 사실 거추장스럽죠. 민주주의가 원래 거추장스러운 제도거든요. 그러나 그 이상 최상의 제도가 없으니까 하는 거라고요. 그걸 인정해야 해요. 미국 같은 경우도 원내에서 법 하나 통과시키려고 대통령이 얼마나 의원들을 설득하고 그럽니까. 그런 거는 본받아야 해요. 미국 대통령이 힘이 없어서 그러나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자세로 국정에 임해줘야 해요. 그래야 여의도 정치가 살아나는 거예요. 여의도 정치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걸 외면하니까 이쪽에서 보면 독재로 보이는 거예요. 이 정부는 行政(행정)밖에 없잖아요. 정치보다는 행정 위주로 한단 말이죠. 효율성 위주로 하려고 하고요. 그런 것이 독재하고 통하는 거죠.”
한광옥 전 대표는 인터뷰 전날 봉하마을로 노무현 대통령 조문을 다녀왔다고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죽으면서까지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승부사 기질 발휘한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그분이 그렇게 안 죽었으면 국민들한테 참 치사하다는 등 별 욕 다 들었을 거예요. 사람으로서 쌓아놓은 거 다 없어지는 거죠. 그런데 승부사 기질로 죽은 거예요. 죽음으로써 노무현이가 산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이 왜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보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부인, 자식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니까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겠죠. 그분 성격을 내가 알지만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이분이 자살할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한테는 충격이 더 컸죠. 조문 가서 보니까 그분과 나의 이전의 애증관계, 그런 것은 없어지더라고요. 죽음이란 숫자로 말하면 제로거든요. 2곱하기 제로 해도 제로고, 100억 곱하기 제로 해도 제로란 말이죠.”
―그래도 그동안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5년 이상 시달렸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 사람이 아니죠.”
對北 송금액수 얼마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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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씨를 예방한 한 전 대표. |
“돈의 액수는 내가 잘 모르는 게, 남북 정상회담이 한창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비서실장으로 갔어요. 그때 아마 金重權(김중권)씨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朴智元(박지원)씨와 林東源(임동원)씨 선에서 움직였을 거예요. 내 생각에는 김중권씨도 잘 모를 것 같아요. 아주 극비리에 추진했으니까요. 때문에 나는 돈 관계는 알 수가 없었어요.”
―2000년 6·15 남북 頂上(정상)회담 때 비서실장 자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하셨죠?
“6월 13일에 김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에 가서 2박3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당시 북쪽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金日成(김일성) 시신이 있는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를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북측에서) 금수산 참배를 대통령에게 요구했죠. 그렇다고 거기에 응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은 그 문제가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 평양에 갈 때까지도 해결이 안됐어요. 그게 걸림돌이었죠. 그때 내가 임동원씨에게 ‘이건 안된다. 한 국가의 대통령 입장에서 어떻게 참배를 하느냐, 그것이 걸림돌이 돼서 남북정상회담이 깨지면 안되니까 대통령 대신 비서실장이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북한 측에 전해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대통령이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를 해선 안된다는 것을 내가 강하게 얘기했죠.”
―그러면 비서실장으로서 금수산 참배를 하신 겁니까.
“안 갔죠.”
―박지원 의원은 ‘나와 한광옥 실장이 대신 참배하겠다’고 했다던데요.
“박지원씨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임동원씨에게 정식으로 얘기했어요. 내 카드를 내라고요.”
金大中, 金正日 승용차 동승 때 당황
―임동원 원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대표께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임 원장에 대해 국보법 위반으로 조사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까? 당시 국정원 김은성 차장이 그런 소문과 관련해서 한 대표께 해명을 했다고 하던데요.
“그런 이야기와 관련돼 김은성 차장한테 설명을 들은 것은 맞아요. 왜냐하면 그런 말이 들리니까 비서실장으로서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임 원장에 대한 그런 보고들이 많이 있었습니까.
“내가 듣기로는 김은성씨 건 한 건이었어요.”
―2000년 6월 13일 대통령 모시고 평양에 도착했을 때 숨겨진 비화는 없습니까.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김정일이 나오느냐, 아니냐를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저쪽의 스케줄도 모른 채 그냥 간 거예요.”
―그런 건 외교 관례상 결례 아닙니까.
“큰 결례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종종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건 내가 잘 모르겠어요. 전혀 몰랐는데 비행장에 도착하니까 김정일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김 대통령 승용차 옆좌석에 김정일이 딱 타더라고요. 그런 것 하나하나 전혀 예측 불가능한 짓을 하더군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은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승용차로 40여 분간 동승했다.
―김 대통령과 김정일이 예정에도 없이 한 차에 탄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 아닙니까. 당황 안 하셨습니까.
“당황은 했지만, 우리 경호팀도 있었으니까요.”
―김 대통령은 당황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몰라요. 대통령께서도 갑자기 그러니까 많이 놀랄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요. 워낙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니까.”
―나중에라도 그때의 소회를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국민들 가운데는 김 대통령과 김정일이 승용차에 동승한 40분간 밀담을 나누었다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그렇게들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두 분이 이야기한 걸 알 수가 있나요.”
―김 대통령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 하십니까.
“안 하죠. 그 양반 생각에는 국가대표끼리 한 이야기를 비서한테 하는 것도 문제라고 봤겠죠.”
金龍煥과 DJP연합 문서에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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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실장 시절인 2000년 5월 9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담을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현관에서 접견하고 있는 한 전 대표. |
“그렇습니다.”
―한 전 대표께서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을 가능케 한 DJP연합을 이끌어낸 주인공인데, 추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어떤 겁니까.
“사실 그때 DJP 연합이 성사될 거라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참 어려웠어요. 자민련 의원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도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자기도 대통령 선거 운동하면서 자기 선거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 후보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당의 이익도 있고 자기 이익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협상하기가 어려웠죠.”
―내각제 개헌 등 자민련의 요구가 많았죠?
“우리는 양보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자민련은 양보를 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었죠. 자민련에서는 金龍煥(김용환) 선배가 그 일을 맡아서 저와 자주 만났습니다. 정부 쪽에서 알면 안되니까 아주 극비리에 만났어요.”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처음에는 합의가 잘 안됐어요. 1997년 10월 25일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내가 힐튼호텔에서 김용환씨를 만났어요. 내가 ‘김 선배님, 언제까지 단일화를 할 겁니까. 12월 18일이 선거인데, 대통령 선거 끝나고 단일화를 할까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선배 하고 나 하고 쓴 합의서를 토대로 해서 우리가 먼저 사인을 하고, 서로 총재에게 들이밀어서 안되면 치웁시다’ 이런 제안을 했어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랬죠. 그래서 그동안에 우리 둘이 쓴 합의문에 김대중, 김종필, 한광옥, 김용환의 이름을 써놓고 합의문에 김용환 선배와 내가 먼저 사인을 해 버린 거예요. 두 분의 서명란은 빈 칸으로 해놓고요. 사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총재 허락도 없이 합의문에 사인한 일요?
“네. 좋게 얘기하면 결단을 한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불경죄를 저지른 거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왔다갔다 하다가는 도저히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김용환 선배가 성사가 됐을 경우를 전제로 두 가지 조건을 붙였어요. 첫째는 그해 10월 30일인가에 김종필씨가 자민련 대통령 후보로서 대전 MBC에서 후보 연설이 예정돼 있었어요. 그 후보 연설할 때까지 발표 안 하는 걸로 하자는 거예요. 그 이유는 자기 고향에 가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내가 김대중씨를 지지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모양이 좋다는 거였죠. 그래서 나도 좋다고 했어요. 내 별명이 ‘자크’(지퍼)일 정도로 나도 보안 지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요.”
‘청구동 극비회동’ 언론에 새 나가
―두 번째 조건은 뭡니까.
“‘내일 사람 없을 때 당신 하고 김대중씨가 김종필 총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건 당연한 거니까 ‘좋다’고 하고 헤어졌죠.”
―김대중 후보를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다음날 아침에 김대중 총재한테 갔어요. 합의안을 내밀면서 ‘이 이상은 더 안됩니다’라고 했죠. 김 총재가 합의문을 한참 읽더니 그냥 ‘할 수 없군’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우리가 양보를 많이 했잖아요. 김용환 선배도 김종필 총재의 서명을 받았다고 그래요. 그래서 김대중 총재에게 ‘오늘 늦게 청구동에 감사인사를 하러 가셔야 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날 밤 10시쯤인가 이 어른을 모시고 청구동 김종필 총재 자택으로 갔어요. 처음에는 나, 김용환 선배 등 4명이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죠. 한 분은 양보를 받고 한 분은 조건이 충족돼서 양보하고 했으니 서로 기분이 좋았던 거예요.”
―10월 30일까지 보안은 잘 지켜졌습니까.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의 심야 회동 소식이 다음날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 대문짝만하게 났어요. 넷이 함께 있다가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시라’고 하고 김용환 선배와 나는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조선일보 자민련 출입 기자가 온 거예요. 김용환 선배가 잘 말해서 돌려보냈다기에 나는 ‘김 선배님이 책임지고 그런 일(보도)이 없도록 해야 된다’고 하고 나왔죠. 설마 다음날 기사가 나오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랬는데 아침에 보니까 DJP회동 소식이 조선일보 하고 한국일보에 톱으로 나온 거예요.”
―한국일보는 어떻게 안 겁니까.
“그때 김종필 총재 집 앞에 경찰초소가 있었어요. 초소에서 경찰서에 보고를 했고, 그걸 한국일보 경찰 취재기자가 안 거예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해 11월 3일에 정식으로 양당 대표가 DJP연합에 사인을 했죠.”
DJP연합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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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권 비서실장 후임으로 발탁된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1999년 11월 24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후 김대중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다 |
“그랬어요.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에만 DJP 회동 사실이 보도된 후 나머지 신문들은 물먹었다고 담당기자를 바꾸면서 우리 DJP연합의 가치를 평가절하시켰어요. 아주 엉망이었죠. 우리 후보의 인기 떨어진 고통을 내가 다 받았죠. 당무회의 같은 데서 내가 열변을 많이 토했어요. ‘여하간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미안하게 됐는데, 내가 볼 적에는 DJP연합 아니고는 우리가 승리하기 어렵다. 그리고 JP의 표가 5%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100을 받아야 당선된다고 할 때 우리가 지금 99를 얻었다면 1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1은 그냥 1이 아니고 가치로 봐서는 100이라는 거다. 그러니 자민련이 꼭 필요한 거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양보도 하고 그런 것 아니냐’고 열변을 토했죠.”
―DJP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나중에 자민련의 지지를 못 받았으면 우리가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39만 표 차로 이겼는데, 그때 충청도에서 우리가 이긴 표가 41만 표였어요. 충청도에서 이긴 표만큼 우리가 이긴 거예요. 그제야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한 부총재가 그때 DJP연합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DJP연합의 최초 제안자는 누굽니까.
“제안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DJP연합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께서 나 하고 김용환씨를 접촉시킨 거예요. 협상 기간은 한 1년 걸렸어요.”
―김대중 대통령 입장에서는 내각제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나도 ‘저 어른이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해 보니까, 김대중 총재가 내각제를 받자고 그러더라고요.”
―내각제 개헌 생각도 갖고 있었던 거네요.
“분명히 있었어요. 내각제 개헌에 대한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으면 DJP연합은 안됐죠.”
―그런데 왜 집권 후에 생각이 바뀐 겁니까.
“내각제 제도 자체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시지는 않았어요. 끝까지 안된다고 그러면 내가 아무리 협상을 잘한다 해도 되겠어요? 내각제가 합의의 기본인데.”
―어떤 상황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까.
“나는 김 대통령이 내각제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었던 걸로 보지는 않아요.”
개헌은 임기 초에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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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국민회의와 자민련 당직자들을 초청,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김 전 총재 왼쪽이 한 전 대표다. |
“당연히 제일 큰 원인은 내각제가 안된 거죠. 자민련에서는 내각제 개헌을 계속 주장했지만 문제는 우리의 의석수가 부족했어요. 상대방이 응해 주지 않으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죠. 자민련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들어 보니 ‘적극적으로 내각제를 시도했어야 된다. 그 노력도 안 하지 않았느냐’ 그거였어요.”
―내각제 개헌을 위해 열성적이지 않았다는 불신이 결국 결별하게 만든 거네요.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죠.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개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고요. 대신 장관들 추천권도 주었어요. 나는 정치라고 하는 것은 약속인데 적극적으로 시도는 해 주었어야 신뢰가 있었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國政(국정)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분으로서 개헌을 한다면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요.
“개헌을 정권 후반기에 하려고들 하는데 그건 안돼요. 제 경험상 그건 안 하자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정권 출범 전반기에 해야 돼요. 임기 말에 가면 벌여놓은 것 정리하고 그러기도 바빠요. 개헌하려면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임기 말에는 개헌이 어려워요.”
―DJP 결별 후에도 JP는 자주 만나십니까.
“그 전에는 가끔 만났어요. 함께 골프도 하고 했죠. 나 하고야 감정 없으니까요. 그분은 책도 많이 읽고 교양이 풍부해서 대화하면 상당히 배울 게 많아요. 인간성이 좋아요.”
―결별 후 DJ와 JP는 서로 만난 적이 있습니까.
“따로 만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퇴임 후로도요?
“내 기억에는 없네요.”
DJ, YS를 동시에 모신 유일한 대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주 보십니까.
“세배 때 뵙죠. 내가 청와대 있을 때 두어 번, 당 대표 때 한 번 상도동 자택에 간 적이 있어요. 나는 YS하고 DJ를 화해시키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민추협 대변인을 했기 때문이죠. 양 김씨를 함께 모셔본 대변인은 대한민국에 나 하납니다. 민추협 이후 두 분이 갈라졌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의 개성을 내가 너무 잘 알아요. 서로가 상호보완이 되면 아주 이상적인 지도자가 나와요. 다 훌륭하시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죠. 나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두 분의 화해가 안돼서 안타깝죠.”
―두 사람은 태생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인가요.
“성격의 차이라는 게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니까…. 하여간 두 어른들이니까 내가 얘기를 잘 못하겠네요.”
―그렇다면 두 분의 장점을 하나씩 들어 주시죠.
“우선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은 인내하고 끈질긴 노력을 한다는 것은 평가를 해 줘야죠. YS는 담백하고 결단력이 강합니다.”
―항간에는 쟁점을 놓고 대립할 때 두 분이 단독 회동을 하면 김영삼 대통령이 이긴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까.
“(웃음) 아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YS는 워낙 고집이 세고 결단력이 있고, DJ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가는 것이 있잖아요.”
―남들이 볼 때는 YS보다 DJ가 더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라고 보는 데 외부에는 왜 그렇게 비칠까요?
“협상이라는 것이 꼭 논리와 설득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화를 하나 들려줄게요. 내가 민추협 대변인 할 때인 1987년에 全斗煥(전두환)씨가 개헌을 않겠다는 4·13호헌조치를 했어요. 그때 전국민 반대서명운동을 하는데, 1000만인 서명운동을 할 거냐, 100만인 서명운동을 할 거냐, 하는 문제가 양 김씨 사이에 쟁점이 됐어요. 김대중 당시 의장은 ‘우리 능력으로는 신민당과 합쳐도 100만인 이상을 만들기 어렵다’고 주장했죠. 사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합리적인 이야기죠. 그런데 김영삼 의장은 ‘어렵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운동인데 1000만 서명운동을 해야 호소력도 있고 상징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죠. 나중에 김대중 의장이 ‘이거 정말 어려운데 막말로 확인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서명 명단) 보자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시니까 김영삼 의장이, ‘누가 보자고 합니까. 100만이나 1000만이나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지’ 이렇게 주장해서 결국은 1000만 서명으로 갔어요.”
―두 분의 스타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그렇지? 그렇다고요(웃음). ⊙
사진 : 이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