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유언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전업주부였던 李회장은 남편의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李錦淑(이금숙·62) (주)용마엔지니어링 회장을 만나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놀라게 된다. 여성이 진입하기 힘든 도로설계 전문회사의 首長(수장)이라는 것이 그 하나고,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專業(전업)주부였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1993년 설립된 용마엔지니어링의 주력 사업은 도로와 공항, 토목구조, 토질과 기초, 교통, 도시계획, 환경, 측량 등의 설계와 도로공사 현장의 監理(감리)와 기술자문 등 사회간접자본(SOC) 전 분야에 걸쳐 있다. 88올림픽고속도로 담양~성산 구간과 서울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설계, 영동~추풍령 國道(국도)건설공사와 여수~순천 도로건설공사의 감리가 이 회사의 대표적인 실적이다.
연간 매출액은 270억원, 현재 직원은 330명. 대형 시공사들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도로 설계와 감리를 위주로 하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로서는 업계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용마엔지니어링은 1997년 外換(외환)위기와 2002년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他界(타계), 2000년대 중반 최악의 건설불황을 잘 이겨내고 지난해 黑字(흑자)를 냈다. 이금숙 회장은 기자를 만나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한 도로감리를 수주했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작년에 흑자가 났고 올해는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金大中(김대중),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때는 SOC 사업을 많이 줄여 건설업계가 어려웠습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작년 1년은 힘들었지만,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해 건설경기를 부양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올해는 기대가 큽니다.”
―건설경기 부양에 대해 산업의 과거 회귀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미국도 경기가 안 좋아지자 200여 개 고속도로 긴급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많은 나라가 건설경기를 부양해서 고용을 창출합니다. 고용도 창출하지만 건설이 이뤄지는 지역의 경기도 살아나죠.”
이 회장은 OECD 가입국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SOC 투자에서 꼴찌라고 했다. 10여 년 동안 투자를 안 했기 때문이란다.
“국가경쟁력이 2등급 떨어진 것도 거기서 비롯된 겁니다. 건설업이라고 하면 주택과 도로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 전반을 다 포함합니다. 지역에 따라 아파트가 과잉공급된 곳이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도로보급률이 낮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로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게 미관을 고려한 최첨단 도로와 교량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건설을 舊(구)시대적인 것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남편의 죽음
―우리나라는 시공은 강한데 설계는 약하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우리도 얼마든지 수려한 名品(명품)도로를 만들 수 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그동안 못했을 뿐입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의 斜面(사면)이 흉물스러운 것을 보게 됩니다. 산을 완만하게 깎아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그게 안 되다 보니 산사태가 나서 낙석이 생기고 무너지는 거죠. 곳곳에 혐오스러운 구조물들도 있지요. 환경과 아름다움을 따져 만들려면 돈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가드레일도 함석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쓰면 미관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거죠.”
그녀는 중국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걸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낙후된 걸로 알고 있지만 중국은 농촌도로 계획까지 다 세워놨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구별하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빨리 달리는 것을 위주로 한다면, 지방도로는 특성에 따라 경치를 즐기며 달릴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도로는 이미 많이 만들어졌지만, 도로의 유지·관리쪽으로는 보완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관리학과 출신인 이금숙 회장이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전문기업의 CEO가 된 것은 남편의 급작스런 타계 때문이었다. 2002년 6월 22일,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울 때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 李成熙(이성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59세였던 이성희 회장은 한국건설감리협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해 유난히 해외출장이 많았던 데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남편이 세상 떠나고 1주일 후쯤 방송에서 심근경색에 대해 보도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미리 징조가 있었는데 놓쳤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심근경색이 처음에는 체한 것 같은 증세로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남편도 체한 줄 알고 손가락을 따고 그랬죠. 미리 알았더라면 병원에 갔을 텐데….”
당시 그녀는 ‘순수하게 살림만 하던 여자’였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잠깐 교편을 잡았을 뿐, 그때까지 그녀는 1남 1녀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데 전념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출근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생전에 남편이 집에서 회의를 많이 했어요. 기술자들이 모여서 토론할 때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참 매력 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했지요. 남편이 집에서 회사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걸 다 알아듣고 맞장구칠 정도는 됐었죠. 남편이 저한테 ‘半(반)토목쟁이’라고 했어요.”
남편 死後 출근한 첫날부터 수모 당해
신혼 시절부터 그녀는 남편을 돕다가 저절로 토목 공부를 하게 됐다. 건설기술 관련 전문가였던 남편은 직장에 다니면서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큰 건설사에서 설계를 맡기면 밤을 새워서 일을 했는데 남편이 밤새 설계를 해놓으면 그녀가 A4용지에다 그 내용을 깨끗하게 다시 옮겨 적었다. 1970년 무렵 남편 월급이 4만원이었는데, 하룻밤 아르바이트를 하면 2만원을 벌 수 있었다. 그때 일을 도와주면서 웬만한 토목 용어는 다 익힐 수 있었다.
그녀가 회사를 맡기로 결심한 것은 ‘뭘 좀 알아서’가 아니었다. 여성의 직감으로 ‘낌새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회사에 나오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49齋(재)를 치른 뒤 바로 회사에 출근해 회장에 취임했다. 남편의 주식을 모두 상속 받은 그녀가 용마엔지니어링의 최대株主(주주)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瑕疵(하자)가 없었다.
“첫날부터 수모를 당했어요. 출근을 했는데 사장이 나를 모른 체하고 나가버리는 겁니다. 그 사장은 남편이 영입한 사람이고, 회사에 지분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저를 경계하더군요. ‘이건 아니구나, 흑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당시 아들이 기술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을 유학 보내라’는 얘기도 나왔어요.”
그녀는 출근 첫날부터 남편이 힘들게 창업한 회사를 남의 손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회장에 취임한 뒤 학회나 협회, 학술대회에 가서 경영 관련 전문용어를 못 알아들어 당황한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MOU(양해각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살짝 적어왔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문객과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핵심인력 이탈, 회사 매각설에 시달려
―회사를 맡고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나온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반발을 일으킨 겁니다.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여자 회장이 등장한 게 제가 처음이었어요. 결국 2003년 초에 저를 경계하던 사장이 우리 회사 핵심 기술인력 11명을 데리고 나가버렸어요.”
엔니지어링 회사는 사람이 재산인데 핵심인력이 빠져나가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회사 매각설도 꾸준히 나돌았다. 직원들이 툭하면 “회사 판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회사를 팔아먹으려고 회장 자리에 앉은 것 아니냐’는 루머가 파다했다. 그러자 창업 때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며 하나 둘 사직서를 냈다.
“좋은 회사로 가겠다고 하면 쓰라린 가슴을 안고 보내주었지요. 결국 그 사람들 2~3년 후 다 돌아왔어요. 가출했다가 돌아온 분들에게 ‘이제 평생 같이하자’며 등을 두드리며 맞아들였지요. 회사를 배반하고 떠난 사람들, 인터넷에다 악성루머를 퍼뜨려 회사를 곤경에 빠뜨렸던 사람들 중에서도 다시 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분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내부 동요가 있었지만 이 회장이 회사를 맡은 2002년과 2003년에 수주가 잘돼서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남편이 회사 시스템을 다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큰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부분의 건설사가 30%의 인력을 감축했지만 용마엔지니어링은 임금을 동결하고 다같이 가는 쪽을 택했다.
“모든 게 그렇지만 사람 관리가 가장 힘듭니다. 어느 조직이든 가장 많이 나가는 비용이 인건비잖아요. 처음에는 ‘남편이 사람을 좀 정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남편이 예전에 人爲的(인위적)으로 사람을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이 愛社心(애사심)과 주인의식이 있어서 회사가 잘되고 있습니다. 저도 인위적으로 사람을 자르지 않았어요. 일을 능동적으로 하게 만들었을 때 못 견디고 스스로 떠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재산인 회사
남편이 살아있을 때 290명이었던 직원이 지금 33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우리 회사는 人的(인적)자원이 최대 자산”이라고 말했다.
“현장경험을 갖춘 각 분야별 기술사와 기사, 산업기사, 감리전문가 등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요. 일부 사무직을 제외한 전 직원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낸 아이디어로 기술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떠난 지 7년이 되었지만 이 회장은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고 한다.
“처음에 마음을 못 잡아서 매일 발톱 빠질 정도로 걸었어요. 20㎞씩 걸었으니까요. 잠깐 앓다가 아이들에게 유언이라도 하고 갔으면 덜 아쉬웠을 거예요. 아침에 나간 사람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그 충격이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함께 32년6개월을 살았는데, 떠나시고 나니 못해준 것만 생각나요. 더 잘해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그녀는 회사 일을 하면서 남편을 더욱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기업은 나라의 재산”
“남편이 ‘참 잘살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깨달았어요. 남편이 이 업계에서 40년을 일했으니 웬만한 분과 다 친분이 있지요. 남편은 돈 버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신기술을 개발하면 업계 전체가 共有(공유)할 수 있도록 했지요. 협회에서 일을 맡아 업계에 공헌도 했지요. 제가 어디를 가든 다들 남편을 기억하면서 저한테 잘해주십니다. 남편이 생전에 뿌린 씨앗 덕분에 제가 혜택을 많이 입고 있어요.”
이 회장은 올 3월 한양대 글로벌전문경영대학원 MBA 과정에 입학했다. 사업에 입문한 이후 서울대 공대 최고산업전략 과정, 경원대 부설 産學政(산학정) 정책과정, 세계경영연구원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수료했지만, 이번에는 정식 석사학위에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 CEO라는 자리는 마냥 편한 자리가 아니다. 이 회장은 “인건비만 한 달에 15억원이 지출된다. 늘 자금 걱정을 하면서 산다”면서 “일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아 일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금숙 회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늘 남편의 포부를 떠올린다고 했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회사 키워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어요. 예전에 남편한테 ‘남 좋은 일 시키려고 그러냐’고 했는데, 저도 이 회사를 개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회사가 주식회사지만 모든 기업은 나라의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열심히 해서 회사를 키우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요.”⊙
사진 : 이태훈
1993년 설립된 용마엔지니어링의 주력 사업은 도로와 공항, 토목구조, 토질과 기초, 교통, 도시계획, 환경, 측량 등의 설계와 도로공사 현장의 監理(감리)와 기술자문 등 사회간접자본(SOC) 전 분야에 걸쳐 있다. 88올림픽고속도로 담양~성산 구간과 서울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설계, 영동~추풍령 國道(국도)건설공사와 여수~순천 도로건설공사의 감리가 이 회사의 대표적인 실적이다.
연간 매출액은 270억원, 현재 직원은 330명. 대형 시공사들에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도로 설계와 감리를 위주로 하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로서는 업계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용마엔지니어링은 1997년 外換(외환)위기와 2002년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他界(타계), 2000년대 중반 최악의 건설불황을 잘 이겨내고 지난해 黑字(흑자)를 냈다. 이금숙 회장은 기자를 만나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한 도로감리를 수주했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작년에 흑자가 났고 올해는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金大中(김대중),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때는 SOC 사업을 많이 줄여 건설업계가 어려웠습니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작년 1년은 힘들었지만,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해 건설경기를 부양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올해는 기대가 큽니다.”
―건설경기 부양에 대해 산업의 과거 회귀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미국도 경기가 안 좋아지자 200여 개 고속도로 긴급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많은 나라가 건설경기를 부양해서 고용을 창출합니다. 고용도 창출하지만 건설이 이뤄지는 지역의 경기도 살아나죠.”
이 회장은 OECD 가입국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SOC 투자에서 꼴찌라고 했다. 10여 년 동안 투자를 안 했기 때문이란다.
“국가경쟁력이 2등급 떨어진 것도 거기서 비롯된 겁니다. 건설업이라고 하면 주택과 도로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 전반을 다 포함합니다. 지역에 따라 아파트가 과잉공급된 곳이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도로보급률이 낮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로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게 미관을 고려한 최첨단 도로와 교량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건설을 舊(구)시대적인 것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남편의 죽음
―우리나라는 시공은 강한데 설계는 약하다는 평가가 있더군요.“우리도 얼마든지 수려한 名品(명품)도로를 만들 수 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그동안 못했을 뿐입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의 斜面(사면)이 흉물스러운 것을 보게 됩니다. 산을 완만하게 깎아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그게 안 되다 보니 산사태가 나서 낙석이 생기고 무너지는 거죠. 곳곳에 혐오스러운 구조물들도 있지요. 환경과 아름다움을 따져 만들려면 돈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가드레일도 함석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쓰면 미관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거죠.”
그녀는 중국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가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걸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낙후된 걸로 알고 있지만 중국은 농촌도로 계획까지 다 세워놨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구별하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빨리 달리는 것을 위주로 한다면, 지방도로는 특성에 따라 경치를 즐기며 달릴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도로는 이미 많이 만들어졌지만, 도로의 유지·관리쪽으로는 보완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관리학과 출신인 이금숙 회장이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전문기업의 CEO가 된 것은 남편의 급작스런 타계 때문이었다. 2002년 6월 22일, 월드컵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울 때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 李成熙(이성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59세였던 이성희 회장은 한국건설감리협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해 유난히 해외출장이 많았던 데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남편이 세상 떠나고 1주일 후쯤 방송에서 심근경색에 대해 보도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미리 징조가 있었는데 놓쳤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심근경색이 처음에는 체한 것 같은 증세로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남편도 체한 줄 알고 손가락을 따고 그랬죠. 미리 알았더라면 병원에 갔을 텐데….”
당시 그녀는 ‘순수하게 살림만 하던 여자’였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잠깐 교편을 잡았을 뿐, 그때까지 그녀는 1남 1녀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데 전념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출근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생전에 남편이 집에서 회의를 많이 했어요. 기술자들이 모여서 토론할 때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참 매력 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했지요. 남편이 집에서 회사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걸 다 알아듣고 맞장구칠 정도는 됐었죠. 남편이 저한테 ‘半(반)토목쟁이’라고 했어요.”
남편 死後 출근한 첫날부터 수모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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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錦淑 회장과 용마엔지니어링 창업자인 故 李成熙 회장. |
그녀가 회사를 맡기로 결심한 것은 ‘뭘 좀 알아서’가 아니었다. 여성의 직감으로 ‘낌새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 회사에 나오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49齋(재)를 치른 뒤 바로 회사에 출근해 회장에 취임했다. 남편의 주식을 모두 상속 받은 그녀가 용마엔지니어링의 최대株主(주주)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瑕疵(하자)가 없었다.
“첫날부터 수모를 당했어요. 출근을 했는데 사장이 나를 모른 체하고 나가버리는 겁니다. 그 사장은 남편이 영입한 사람이고, 회사에 지분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저를 경계하더군요. ‘이건 아니구나, 흑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당시 아들이 기술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들을 유학 보내라’는 얘기도 나왔어요.”
그녀는 출근 첫날부터 남편이 힘들게 창업한 회사를 남의 손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회장에 취임한 뒤 학회나 협회, 학술대회에 가서 경영 관련 전문용어를 못 알아들어 당황한 때도 있었다. 몇 년 전 MOU(양해각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 살짝 적어왔다가 집에 와서 찾아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문객과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핵심인력 이탈, 회사 매각설에 시달려
―회사를 맡고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나온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반발을 일으킨 겁니다.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여자 회장이 등장한 게 제가 처음이었어요. 결국 2003년 초에 저를 경계하던 사장이 우리 회사 핵심 기술인력 11명을 데리고 나가버렸어요.”
엔니지어링 회사는 사람이 재산인데 핵심인력이 빠져나가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회사 매각설도 꾸준히 나돌았다. 직원들이 툭하면 “회사 판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회사를 팔아먹으려고 회장 자리에 앉은 것 아니냐’는 루머가 파다했다. 그러자 창업 때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며 하나 둘 사직서를 냈다.
“좋은 회사로 가겠다고 하면 쓰라린 가슴을 안고 보내주었지요. 결국 그 사람들 2~3년 후 다 돌아왔어요. 가출했다가 돌아온 분들에게 ‘이제 평생 같이하자’며 등을 두드리며 맞아들였지요. 회사를 배반하고 떠난 사람들, 인터넷에다 악성루머를 퍼뜨려 회사를 곤경에 빠뜨렸던 사람들 중에서도 다시 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분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내부 동요가 있었지만 이 회장이 회사를 맡은 2002년과 2003년에 수주가 잘돼서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남편이 회사 시스템을 다 갖춘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큰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부분의 건설사가 30%의 인력을 감축했지만 용마엔지니어링은 임금을 동결하고 다같이 가는 쪽을 택했다.
“모든 게 그렇지만 사람 관리가 가장 힘듭니다. 어느 조직이든 가장 많이 나가는 비용이 인건비잖아요. 처음에는 ‘남편이 사람을 좀 정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남편이 예전에 人爲的(인위적)으로 사람을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이 愛社心(애사심)과 주인의식이 있어서 회사가 잘되고 있습니다. 저도 인위적으로 사람을 자르지 않았어요. 일을 능동적으로 하게 만들었을 때 못 견디고 스스로 떠난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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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숙 회장은 남편의 뒤를 이어 대외활동에도 열심이다. 한국건설감리협회의 새 CI공포식에 참석한 李회장. |
사람이 재산인 회사
남편이 살아있을 때 290명이었던 직원이 지금 33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우리 회사는 人的(인적)자원이 최대 자산”이라고 말했다.
“현장경험을 갖춘 각 분야별 기술사와 기사, 산업기사, 감리전문가 등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요. 일부 사무직을 제외한 전 직원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낸 아이디어로 기술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떠난 지 7년이 되었지만 이 회장은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고 한다.
“처음에 마음을 못 잡아서 매일 발톱 빠질 정도로 걸었어요. 20㎞씩 걸었으니까요. 잠깐 앓다가 아이들에게 유언이라도 하고 갔으면 덜 아쉬웠을 거예요. 아침에 나간 사람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그 충격이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함께 32년6개월을 살았는데, 떠나시고 나니 못해준 것만 생각나요. 더 잘해드릴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그녀는 회사 일을 하면서 남편을 더욱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기업은 나라의 재산”
“남편이 ‘참 잘살다 돌아가셨다’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깨달았어요. 남편이 이 업계에서 40년을 일했으니 웬만한 분과 다 친분이 있지요. 남편은 돈 버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신기술을 개발하면 업계 전체가 共有(공유)할 수 있도록 했지요. 협회에서 일을 맡아 업계에 공헌도 했지요. 제가 어디를 가든 다들 남편을 기억하면서 저한테 잘해주십니다. 남편이 생전에 뿌린 씨앗 덕분에 제가 혜택을 많이 입고 있어요.”
이 회장은 올 3월 한양대 글로벌전문경영대학원 MBA 과정에 입학했다. 사업에 입문한 이후 서울대 공대 최고산업전략 과정, 경원대 부설 産學政(산학정) 정책과정, 세계경영연구원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수료했지만, 이번에는 정식 석사학위에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 CEO라는 자리는 마냥 편한 자리가 아니다. 이 회장은 “인건비만 한 달에 15억원이 지출된다. 늘 자금 걱정을 하면서 산다”면서 “일도 많고 고민할 것도 많아 일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금숙 회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늘 남편의 포부를 떠올린다고 했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회사 키워서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어요. 예전에 남편한테 ‘남 좋은 일 시키려고 그러냐’고 했는데, 저도 이 회사를 개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회사가 주식회사지만 모든 기업은 나라의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열심히 해서 회사를 키우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요.”⊙
사진 : 이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