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이 우리 국민에게 가져다준 가장 기쁜 소식으로 ‘야구 금메달’을 꼽는 데 異見(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수영 역도 등 종목에서도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았지만, 9전 全勝(전승)으로 야구 강국 미국과 쿠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야구팀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야구팀은 누구 한 명 빼놓을 것 없이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사람은 ‘믿음의 야구’를 선보인 金卿文(김경문) 감독이 아닐까.
한일전 경기 전 양팀 인사 때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상대 감독에게 인사하는 모습, 부진했던 이승엽을 끝까지 믿고 4번 타자에 기용함으로써 호쾌한 홈런을 치도록 한 용병술, 원칙을 중심으로 한 뚝심 있는 리더십 등을 생생하게 접한 국민은 그에게 ‘국민감독’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다.
올림픽 폐막 이후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두산 베어스의 덕 아웃으로 돌아온 김 감독을 만났다. 잠실야구장 두산 베어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9월 3일 18이닝에 걸쳐 진행된 한화와의 ‘무박 2일’ 승부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다소 피로한 듯한 안색이었으나 표정은 밝았다.
“올림픽 이후 달라진 것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는 팬이 부쩍 많아진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면서 “경기일정이 빡빡해서 솔직히 정신이 없다”며 웃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
―이른바 ‘국민감독’이 되셨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대표팀 감독이 원래 제 자리는 아니었어요. 선배님들이 형편이 안 되다 보니 저한테까지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팀을 맡을 때 얼마나 말들이 많았습니까. 이왕 맡은 거 소신껏 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안 되면 어쩌겠어요. 그땐 깨끗이 물러나면 되죠.”
―김경문식 ‘되고송’이군요. 맡았으면 열심히 하면 되고~성적 나쁘면 책임지면 되고~.
“하하하. 그렇죠. 하지만 대표팀을 이끄는 스트레스라는 게 보통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제가 이승엽을 타선에서 빼지 않은 것도 국민타자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있다가 기대를 온몸에 받고 대표팀에 합류해서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초반 경기에 계속 성적이 좋지 않았죠. 국민들께 좋은 야구를 보여 드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왔는데 자신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선수에게 감독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믿음’밖에 없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큰 경기에 강한 타자라 믿었던’ 게 아닙니까.
“큰 경기니까 잘 칠 거라 기대를 하고 내보낸 것은 아닙니다. 잘 칠지 못 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다만 승엽이가 4번을 지키고 있는 것이 후배들에게 믿음을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배 선수들의 존재감을 지켜 주는 것, 그것 또한 감독이 할 일이죠.”
―금메달 획득이 한국야구의 국제위상 향상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물론이죠. 한국 프로야구가 1982년에 출범했는데, 199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 가 봐도 미국 야구인들은 한국에 프로야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수준이었어요. 2006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한국야구도 쓸 만하구나’ 하는 인식이 생기면서 견제가 들어왔죠. 금메달이 영원한 세계 1위를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야구 선진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올림픽 이야기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많이 밝힌 만큼 간략하게 마무리 짓고, 한국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땄는데, 한국 야구환경도 ‘금메달’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죠(웃음). ‘좋아졌다’는 게 결코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단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국내에 야구 인구(선수, 지도자, 팬 등을 모두 포함한 의미)가 적다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한국 야구 정말 잘하고 있는 셈
―야구 인구가 적어서 한국야구 수준이 낮은 겁니까.
“일본만 해도 고교 야구팀이 4000개가 넘어요. 우리는 60여개에 불과하죠. 이런 숫자의 차이가 있는데 한국 야구가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사실 엷은 선수층에 비하면 한국 야구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국가간 리그 등 장기전을 한다면 당연히 약하겠지만요.”
―야구 인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겠죠. 언젠가부터 골목에서 글러브 끼고 공 던지는 아이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이들이 경기할 수 있는 야구장? 꿈도 못 꾸죠. 한강시민공원이나 좀 크다 싶은 공원에 가면 축구할 곳은 많은데 야구할 곳은 없어요. 야구하는 데 대단한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축구 골대와 야구 펜스를 이동식으로 만들면 운동장 하나를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함께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아무도 안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잘해도 프로팀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요. 지금보다 더 많은 고교야구팀이 생기면 프로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야구선수들은 어떻게 합니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겠죠. 대학까지는 갈 수 있다고 쳐도, 그 다음에 갈 길이 없는데 어느 부모가 야구를 시키겠어요. 프로구단에 들어가도 빛을 못 보는 선수도 많으니까요.”
김 감독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지금 국내 프로구단이 딱 8개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한 야구선수들이 여기 들어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쟁이에요. 그런데 구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야구를 할 길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야구를 해 온 사람은 야구 안 하면 할 일도 없어요. 야구만 한 애들이 공부를 잘하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야구가 이렇게 인기가 좋은데, 국내에 실업팀과 실업리그가 없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실업리그 반드시 필요
예전에는 은행 등 금융권이나 중견기업들이 실업팀을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야구선수들이 취업해서 야구팀에 속해 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야구만 해 왔던 아이들도 은행원 같은 건실한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부모들도 야구를 시키는 데 큰 부담을 갖지 않겠죠. 하지만 다들 프로구단 입단만 바라고 있고, 입단한다 한들 스타 몇명을 제외하면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에 못 미치는 연봉을 몇년씩 받으면서 선수생활을 해야 하고, 어쩌다 몸이라도 망가지면 그것마저 끝나는 겁니다.”
―실업 리그가 꼭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프로야구가 27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데, 실업야구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들이 야구팀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프로야구단도 적자기업이지 않습니까. 야구단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프로야구 초기에는 야구단을 만드는 기업에 세금이나 부동산 등 혜택을 줬다고 들었어요. 스포츠팀을 만드는 건 국민에게 기쁨을 주는 거지 영리를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언젠가부터 그런 게 완전히 사라졌지요. 사실 요 몇년간 정부의 비우호적인 시선 때문에 스포츠팀 운영에 의욕을 잃는 기업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스포츠팀을 만드는 기업에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줬으면 좋겠어요. 좋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몇십년간 구단을 유지해 온 기업 오너들을 보면 ‘아 그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프로야구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국가대표팀만 인기 있는 축구나 다른 종목과는 비교가 안 되죠. 스포츠신문이나 스포츠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스포츠가 야구밖에 없냐”는 비난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그 열기를 이어 가는 게 어려워요. 국내 프로야구팬은 대부분 성인 남성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여성이나 가족팬이 많아서 어릴 때 가족과 야구를 보며 받았던 감동을 커서도 이어 가려는 야구팬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야구를 여성들이 좋아해야 아이들도 데리고 오고 설명도 해 주고 할 텐데, 사실 서울의 야구장엔 여성관객이 별로 없어요. 여성과 가족 관객의 비중을 높이는 게 프로야구계의 숙제라고 봅니다.”
―그건 롯데 자이언츠가 모범적인 사례죠. 두산은 전통적으로 LG와 함께 ‘세련된 미남 구단’의 이미지 아닙니까. 야구는 몰라도 홍성흔 선수를 보러 가는 여성팬도 많습니다. 선수들을 활용해 女心(여심) 잡기 전략을 한번 써 보시는 것도 좋겠는데요.
“(웃음) 글쎄요. 그것도 좋지만 야구장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국의 야구장을 보면 몇 군데를 빼면 참 열악합니다. 가족이 함께 나와 서너 시간을 보내려면 넓고 쾌적한 공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넓은 공간은커녕 식사나 화장실 같은 기본시설도 완벽하게 못 갖추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여기 잠실구장만 해도 주변에 아이들이 놀 곳이 없어요. 잔디밭도 있고 피크닉 장소도 있고 공 던지고 놀 장소도 있어야죠. 패밀리 레스토랑도 있고 커피 전문점도 있으면 좋고요. 부산 사직구장도 그렇게 사람이 많고 어린이가 많은데 그 주변은 어떻습니까. 먹자골목이 복잡하기만 하잖아요. 서울과 부산 정도로 인구가 많고 야구팬이 많은 도시라면 시민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에서라도 쾌적하고 놀기 좋은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아요. 축구나 농구보다 야구가 인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운동장이나 넓은 공원에는 우선적으로 야구장 시설이 돼 있습니다.”
몇년 내 관객 1000만명 돌파할 것
―역시 모든 야구인의 염원인 돔 구장이 필요하겠군요.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특히 서울과 부산 정도로 야구팬들이 열성인 도시라면 당연히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텐데요.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지만 야구만 하는 게 아니고 위락시설이나 공연시설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게 돔 구장인데 왜 그렇게 안 만들어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현재 국내 야구장은 어떤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서울이나 부산, 인천 등의 야구장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구장엔 가면 정말 선수들이 몸을 사릴 정도로 형편없는 곳들이 있어요. 주자가 다급한 상황인데도 슬라이딩을 하기 망설여질 정도입니다. 부상당하기 쉽거든요. 뛰어도 속도도 안 나요. 이러니 신나는 야구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 감독은 “지방의 몇몇 구장은 아마추어 야구나 고교 야구 하라고 내어 주고 새 구장 좀 지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열악한 구장 환경을 볼 때면 우리야 어쩌다 가서 경기를 하니까 그렇다 쳐도 그런 곳을 홈 구장으로 쓰고 있는 구단은 어떤 심정일까 싶어요. 어떤 구장에서는 제가 덕 아웃에 있는데 타자가 친 공이 날아가는 게 보이질 않아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VIP석에서도 공이 잘 안 보인다더군요. 이게 프로야구 구장입니까.”
―외국의 야구장도 많이 돌아보셨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야 말해서 뭘 하겠어요. 쾌적한 건 물론이고, 즐길 거리도 많습니다. 구단 입장에서도 그게 훨씬 좋죠.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1인당 야구 입장료가 10달러면 구장 안에 들어와서 한 가족이 쓰는 돈이 최소 100달러입니다. 밥 먹어야죠, 아이들 줄 기념품 사야죠, 음료수 마셔야죠, 오락시설 활용해야죠, 이런 게 야구장의 재미입니다. 가족들이 저녁에 피크닉삼아 나오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 구장에서는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경기만 봐야 되는 겁니다. 구단으로서도 입장료만 받으니 흑자가 나려야 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 수가 500만명을 넘어설 텐데, 더 많아질 거라 보십니까.
“몇년 내에 1000만명까지 간다고 봅니다. 이번 금메달이 기폭제가 되겠죠. 지금 야구열기가 뜨거운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연봉 삼사천만원’의 현실
―‘무박 2일’ 게임을 하고 나니 ‘다음날 나갈 투수가 없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건 아닙니까.
“우리 때보다 훨씬 힘들긴 해요(김 감독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다). 구단도 많아지고 경기 수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자기관리를 잘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잘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도 열심히 하더군요. 구단 수가 늘고 경쟁이 심하니 힘들어지는 건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선수시절 얘기 좀 들려 주시죠.
“우리 때(김 감독이 선수생활을 했던 1980년대)는 야구선수들이 연봉도 높고 국민의 사랑도 받고 여러 가지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었죠. 연봉 외에도 보너스, 광고촬영, 사인회 등으로 부수입이 많았고 며칠마다 용돈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또 두산(당시 OB)의 인기는 대전(당시 연고지)과 서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에서 선풍적이었어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죠. 선수들끼리 단합한다는 명목으로 술도 많이 마시고, 그야말로 ‘즐겁게’ 야구를 하는 선배와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선수들은 그보다 힘든 환경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조금은 미안하기도 해요.”
―지금도 고액연봉자가 많은데요. 프로야구 선수들은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번에 금메달 딴 우리(두산) 선수들, 고영민이나 이종욱은 지금 전성기입니다. 이종욱 연봉이 이제 1억원 좀 넘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10년을 전성기로 뛸 수 있겠어요? 2~3년이면 전성기는 갑니다. 앞으로 잘할 수 있는 햇수는 5~6년에 불과할 거예요. 그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합니까. FA(자유계약) 선수들이나 연봉이 좀 괜찮지 나머지는 더 올려줘야 된다고 봅니다.”
―구단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인겁니까.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야구배트가 하나에 5만~10만원입니다. 연습이나 경기하다 부러지면 자기 돈으로 사야 돼요. 연봉 3000만~4000만원 받아서 그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연봉을 현실화시켜야죠.”
쿠바와 연습경기 덕에 우승 가능
―이제 한국야구도 세계 톱 수준이니 세계 야구와 겨루는 기회가 많아지겠군요.
“친선게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야구 선진국과 연습경기를 가졌던 것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쿠바와 두 차례 연습경기를 했는데, 이 연습경기가 없었으면 아마 올림픽에서 우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첫 연습경기에서는 졌지만, 두 번째는 쿠바의 마운드를 쉴 새 없이 두들기며 크게 이겼어요. 우리는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가졌고, 쿠바도 ‘한국 야구가 매섭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더군요. 올림픽에서 처음 쿠바와 맞붙었다면 우리 선수들이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반면 일본은 우리와 연습경기 하기를 꺼립니다. 전력이 노출되거든요. 연습경기는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는 거죠. 히딩크 감독도 2002년 월드컵에 앞서 승패와 전력에 상관없이 훌륭한 팀을 초빙해 와서 다양한 연습경기를 가졌잖아요. 이런 환경이 조성돼야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해외 유수의 팀과 연습경기를 하려면 어떤 조건이 있는 거죠? 돈이 문제입니까?
“돈도 문제지만, 관련된 ‘어른’들의 마인드와 야구장의 여건 등 여러 가지가 문제가 되죠. 사실 이번 올림픽에서는 KBO(한국야구협회)와 대한체육회 등 야구ㆍ체육 관련 단체들이 많이 힘을 써 주셔서 쿠바 팀과의 연습경기가 성사됐습니다. 해외 유명 팀이 돈만 많이 준다고 오는 게 아니거든요. 외교력도 중요하고 인맥도 중요하고 한국 야구의 위상도 중요합니다.
또 중요한 게 야구장의 시설문제인데, 이 점은 사실 좀 창피하다 싶을 정도였어요. 야구 선진국은 구장도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 구장을 보고 몸값 높은 선수들을 이런 구장에서 경기시킬 순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팀도 있었어요. 이제 우리도 돔 구장도 만들고 기존 야구장도 최신식으로 보수해서 해외 유명 팀들이 국내 팬들에게 수준 높은 야구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KBO나 체육회 등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십니까.
“서로 더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은 ‘금메달 따더니 버릇없어졌다’는 얘기가 들려서(웃음) 말을 조심하는 편입니다.”
―야구에는 축구의 鄭夢準(정몽준) 의원 같은 ‘파워맨’이 없어서 발전이 더디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하긴 그런 점도 있지요. 높은 분들 중 야구 좋아하는 분은 많은 것 같은데 왜 나서는 분은 없을까 궁금해요.”
스포츠 신문 사양길
―야구와 언론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요즘 스포츠신문업계가 기울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옛날에는 스포츠신문 편집국에 야구1부와 야구2부가 있을 정도로 야구가 인기가 많고 스포츠 언론을 이끄는 역할을 해 왔잖아요. 이제는 스포츠신문 기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친했던 기자들이 하나둘 업계를 떠나고 있어서 아쉬워요. ‘야구 인기가 높아야 스포츠신문도 잘될 텐데’라는 죄책감 비슷한 것도 드네요.”
현재 페넌트레이스 2위를 지키고 있는 두산 김 감독은 “올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취임 후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2005, 2007)이나 2위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가 두산과의 계약 마지막 해인데, 이번에야말로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고 싶어요.”.●
한일전 경기 전 양팀 인사 때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상대 감독에게 인사하는 모습, 부진했던 이승엽을 끝까지 믿고 4번 타자에 기용함으로써 호쾌한 홈런을 치도록 한 용병술, 원칙을 중심으로 한 뚝심 있는 리더십 등을 생생하게 접한 국민은 그에게 ‘국민감독’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다.
올림픽 폐막 이후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두산 베어스의 덕 아웃으로 돌아온 김 감독을 만났다. 잠실야구장 두산 베어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9월 3일 18이닝에 걸쳐 진행된 한화와의 ‘무박 2일’ 승부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다소 피로한 듯한 안색이었으나 표정은 밝았다.
“올림픽 이후 달라진 것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는 팬이 부쩍 많아진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면서 “경기일정이 빡빡해서 솔직히 정신이 없다”며 웃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
―이른바 ‘국민감독’이 되셨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대표팀 감독이 원래 제 자리는 아니었어요. 선배님들이 형편이 안 되다 보니 저한테까지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팀을 맡을 때 얼마나 말들이 많았습니까. 이왕 맡은 거 소신껏 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안 되면 어쩌겠어요. 그땐 깨끗이 물러나면 되죠.”
―김경문식 ‘되고송’이군요. 맡았으면 열심히 하면 되고~성적 나쁘면 책임지면 되고~.
“하하하. 그렇죠. 하지만 대표팀을 이끄는 스트레스라는 게 보통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제가 이승엽을 타선에서 빼지 않은 것도 국민타자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있다가 기대를 온몸에 받고 대표팀에 합류해서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초반 경기에 계속 성적이 좋지 않았죠. 국민들께 좋은 야구를 보여 드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왔는데 자신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선수에게 감독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믿음’밖에 없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큰 경기에 강한 타자라 믿었던’ 게 아닙니까.
“큰 경기니까 잘 칠 거라 기대를 하고 내보낸 것은 아닙니다. 잘 칠지 못 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다만 승엽이가 4번을 지키고 있는 것이 후배들에게 믿음을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배 선수들의 존재감을 지켜 주는 것, 그것 또한 감독이 할 일이죠.”
―금메달 획득이 한국야구의 국제위상 향상에 큰 도움이 되겠지요.
“물론이죠. 한국 프로야구가 1982년에 출범했는데, 1990년대 중후반에 미국에 가 봐도 미국 야구인들은 한국에 프로야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수준이었어요. 2006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한국야구도 쓸 만하구나’ 하는 인식이 생기면서 견제가 들어왔죠. 금메달이 영원한 세계 1위를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야구 선진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봅니다.”
올림픽 이야기는 다른 인터뷰에서도 많이 밝힌 만큼 간략하게 마무리 짓고, 한국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땄는데, 한국 야구환경도 ‘금메달’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죠(웃음). ‘좋아졌다’는 게 결코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단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국내에 야구 인구(선수, 지도자, 팬 등을 모두 포함한 의미)가 적다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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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이 우승 후 김경문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
한국 야구 정말 잘하고 있는 셈
―야구 인구가 적어서 한국야구 수준이 낮은 겁니까.
“일본만 해도 고교 야구팀이 4000개가 넘어요. 우리는 60여개에 불과하죠. 이런 숫자의 차이가 있는데 한국 야구가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사실 엷은 선수층에 비하면 한국 야구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국가간 리그 등 장기전을 한다면 당연히 약하겠지만요.”
―야구 인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릴 때부터 야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겠죠. 언젠가부터 골목에서 글러브 끼고 공 던지는 아이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이들이 경기할 수 있는 야구장? 꿈도 못 꾸죠. 한강시민공원이나 좀 크다 싶은 공원에 가면 축구할 곳은 많은데 야구할 곳은 없어요. 야구하는 데 대단한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축구 골대와 야구 펜스를 이동식으로 만들면 운동장 하나를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함께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아무도 안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잘해도 프로팀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요. 지금보다 더 많은 고교야구팀이 생기면 프로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야구선수들은 어떻게 합니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겠죠. 대학까지는 갈 수 있다고 쳐도, 그 다음에 갈 길이 없는데 어느 부모가 야구를 시키겠어요. 프로구단에 들어가도 빛을 못 보는 선수도 많으니까요.”
김 감독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지금 국내 프로구단이 딱 8개입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한 야구선수들이 여기 들어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쟁이에요. 그런데 구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야구를 할 길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속 야구를 해 온 사람은 야구 안 하면 할 일도 없어요. 야구만 한 애들이 공부를 잘하겠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야구가 이렇게 인기가 좋은데, 국내에 실업팀과 실업리그가 없다는 게 이상한 겁니다.
실업리그 반드시 필요
예전에는 은행 등 금융권이나 중견기업들이 실업팀을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야구선수들이 취업해서 야구팀에 속해 운동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야구만 해 왔던 아이들도 은행원 같은 건실한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부모들도 야구를 시키는 데 큰 부담을 갖지 않겠죠. 하지만 다들 프로구단 입단만 바라고 있고, 입단한다 한들 스타 몇명을 제외하면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에 못 미치는 연봉을 몇년씩 받으면서 선수생활을 해야 하고, 어쩌다 몸이라도 망가지면 그것마저 끝나는 겁니다.”
―실업 리그가 꼭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프로야구가 27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데, 실업야구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들이 야구팀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프로야구단도 적자기업이지 않습니까. 야구단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프로야구 초기에는 야구단을 만드는 기업에 세금이나 부동산 등 혜택을 줬다고 들었어요. 스포츠팀을 만드는 건 국민에게 기쁨을 주는 거지 영리를 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언젠가부터 그런 게 완전히 사라졌지요. 사실 요 몇년간 정부의 비우호적인 시선 때문에 스포츠팀 운영에 의욕을 잃는 기업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스포츠팀을 만드는 기업에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줬으면 좋겠어요. 좋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몇십년간 구단을 유지해 온 기업 오너들을 보면 ‘아 그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프로야구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국가대표팀만 인기 있는 축구나 다른 종목과는 비교가 안 되죠. 스포츠신문이나 스포츠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스포츠가 야구밖에 없냐”는 비난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그 열기를 이어 가는 게 어려워요. 국내 프로야구팬은 대부분 성인 남성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여성이나 가족팬이 많아서 어릴 때 가족과 야구를 보며 받았던 감동을 커서도 이어 가려는 야구팬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야구를 여성들이 좋아해야 아이들도 데리고 오고 설명도 해 주고 할 텐데, 사실 서울의 야구장엔 여성관객이 별로 없어요. 여성과 가족 관객의 비중을 높이는 게 프로야구계의 숙제라고 봅니다.”
―그건 롯데 자이언츠가 모범적인 사례죠. 두산은 전통적으로 LG와 함께 ‘세련된 미남 구단’의 이미지 아닙니까. 야구는 몰라도 홍성흔 선수를 보러 가는 여성팬도 많습니다. 선수들을 활용해 女心(여심) 잡기 전략을 한번 써 보시는 것도 좋겠는데요.
“(웃음) 글쎄요. 그것도 좋지만 야구장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국의 야구장을 보면 몇 군데를 빼면 참 열악합니다. 가족이 함께 나와 서너 시간을 보내려면 넓고 쾌적한 공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넓은 공간은커녕 식사나 화장실 같은 기본시설도 완벽하게 못 갖추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여기 잠실구장만 해도 주변에 아이들이 놀 곳이 없어요. 잔디밭도 있고 피크닉 장소도 있고 공 던지고 놀 장소도 있어야죠. 패밀리 레스토랑도 있고 커피 전문점도 있으면 좋고요. 부산 사직구장도 그렇게 사람이 많고 어린이가 많은데 그 주변은 어떻습니까. 먹자골목이 복잡하기만 하잖아요. 서울과 부산 정도로 인구가 많고 야구팬이 많은 도시라면 시민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에서라도 쾌적하고 놀기 좋은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아요. 축구나 농구보다 야구가 인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운동장이나 넓은 공원에는 우선적으로 야구장 시설이 돼 있습니다.”
몇년 내 관객 1000만명 돌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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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문 감독이 올림픽 직후인 지난 8월 29일 잠실에서 열린 경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특히 서울과 부산 정도로 야구팬들이 열성인 도시라면 당연히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텐데요.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지만 야구만 하는 게 아니고 위락시설이나 공연시설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게 돔 구장인데 왜 그렇게 안 만들어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현재 국내 야구장은 어떤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서울이나 부산, 인천 등의 야구장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구장엔 가면 정말 선수들이 몸을 사릴 정도로 형편없는 곳들이 있어요. 주자가 다급한 상황인데도 슬라이딩을 하기 망설여질 정도입니다. 부상당하기 쉽거든요. 뛰어도 속도도 안 나요. 이러니 신나는 야구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 감독은 “지방의 몇몇 구장은 아마추어 야구나 고교 야구 하라고 내어 주고 새 구장 좀 지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열악한 구장 환경을 볼 때면 우리야 어쩌다 가서 경기를 하니까 그렇다 쳐도 그런 곳을 홈 구장으로 쓰고 있는 구단은 어떤 심정일까 싶어요. 어떤 구장에서는 제가 덕 아웃에 있는데 타자가 친 공이 날아가는 게 보이질 않아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VIP석에서도 공이 잘 안 보인다더군요. 이게 프로야구 구장입니까.”
―외국의 야구장도 많이 돌아보셨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야 말해서 뭘 하겠어요. 쾌적한 건 물론이고, 즐길 거리도 많습니다. 구단 입장에서도 그게 훨씬 좋죠.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1인당 야구 입장료가 10달러면 구장 안에 들어와서 한 가족이 쓰는 돈이 최소 100달러입니다. 밥 먹어야죠, 아이들 줄 기념품 사야죠, 음료수 마셔야죠, 오락시설 활용해야죠, 이런 게 야구장의 재미입니다. 가족들이 저녁에 피크닉삼아 나오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 구장에서는 돈을 쓰고 싶어도 쓸 데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경기만 봐야 되는 겁니다. 구단으로서도 입장료만 받으니 흑자가 나려야 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 수가 500만명을 넘어설 텐데, 더 많아질 거라 보십니까.
“몇년 내에 1000만명까지 간다고 봅니다. 이번 금메달이 기폭제가 되겠죠. 지금 야구열기가 뜨거운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연봉 삼사천만원’의 현실
―‘무박 2일’ 게임을 하고 나니 ‘다음날 나갈 투수가 없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이 혹사당하는 건 아닙니까.
“우리 때보다 훨씬 힘들긴 해요(김 감독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다). 구단도 많아지고 경기 수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자기관리를 잘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잘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습도 열심히 하더군요. 구단 수가 늘고 경쟁이 심하니 힘들어지는 건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선수시절 얘기 좀 들려 주시죠.
“우리 때(김 감독이 선수생활을 했던 1980년대)는 야구선수들이 연봉도 높고 국민의 사랑도 받고 여러 가지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었죠. 연봉 외에도 보너스, 광고촬영, 사인회 등으로 부수입이 많았고 며칠마다 용돈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또 두산(당시 OB)의 인기는 대전(당시 연고지)과 서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전국에서 선풍적이었어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죠. 선수들끼리 단합한다는 명목으로 술도 많이 마시고, 그야말로 ‘즐겁게’ 야구를 하는 선배와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선수들은 그보다 힘든 환경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서 조금은 미안하기도 해요.”
―지금도 고액연봉자가 많은데요. 프로야구 선수들은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번에 금메달 딴 우리(두산) 선수들, 고영민이나 이종욱은 지금 전성기입니다. 이종욱 연봉이 이제 1억원 좀 넘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10년을 전성기로 뛸 수 있겠어요? 2~3년이면 전성기는 갑니다. 앞으로 잘할 수 있는 햇수는 5~6년에 불과할 거예요. 그러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합니까. FA(자유계약) 선수들이나 연봉이 좀 괜찮지 나머지는 더 올려줘야 된다고 봅니다.”
―구단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인겁니까.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야구배트가 하나에 5만~10만원입니다. 연습이나 경기하다 부러지면 자기 돈으로 사야 돼요. 연봉 3000만~4000만원 받아서 그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연봉을 현실화시켜야죠.”
쿠바와 연습경기 덕에 우승 가능
―이제 한국야구도 세계 톱 수준이니 세계 야구와 겨루는 기회가 많아지겠군요.“친선게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야구 선진국과 연습경기를 가졌던 것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쿠바와 두 차례 연습경기를 했는데, 이 연습경기가 없었으면 아마 올림픽에서 우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첫 연습경기에서는 졌지만, 두 번째는 쿠바의 마운드를 쉴 새 없이 두들기며 크게 이겼어요. 우리는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가졌고, 쿠바도 ‘한국 야구가 매섭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더군요. 올림픽에서 처음 쿠바와 맞붙었다면 우리 선수들이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반면 일본은 우리와 연습경기 하기를 꺼립니다. 전력이 노출되거든요. 연습경기는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는 거죠. 히딩크 감독도 2002년 월드컵에 앞서 승패와 전력에 상관없이 훌륭한 팀을 초빙해 와서 다양한 연습경기를 가졌잖아요. 이런 환경이 조성돼야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해외 유수의 팀과 연습경기를 하려면 어떤 조건이 있는 거죠? 돈이 문제입니까?
“돈도 문제지만, 관련된 ‘어른’들의 마인드와 야구장의 여건 등 여러 가지가 문제가 되죠. 사실 이번 올림픽에서는 KBO(한국야구협회)와 대한체육회 등 야구ㆍ체육 관련 단체들이 많이 힘을 써 주셔서 쿠바 팀과의 연습경기가 성사됐습니다. 해외 유명 팀이 돈만 많이 준다고 오는 게 아니거든요. 외교력도 중요하고 인맥도 중요하고 한국 야구의 위상도 중요합니다.
또 중요한 게 야구장의 시설문제인데, 이 점은 사실 좀 창피하다 싶을 정도였어요. 야구 선진국은 구장도 얼마나 훌륭합니까. 우리 구장을 보고 몸값 높은 선수들을 이런 구장에서 경기시킬 순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팀도 있었어요. 이제 우리도 돔 구장도 만들고 기존 야구장도 최신식으로 보수해서 해외 유명 팀들이 국내 팬들에게 수준 높은 야구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KBO나 체육회 등과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십니까.
“서로 더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은 ‘금메달 따더니 버릇없어졌다’는 얘기가 들려서(웃음) 말을 조심하는 편입니다.”
―야구에는 축구의 鄭夢準(정몽준) 의원 같은 ‘파워맨’이 없어서 발전이 더디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하긴 그런 점도 있지요. 높은 분들 중 야구 좋아하는 분은 많은 것 같은데 왜 나서는 분은 없을까 궁금해요.”
스포츠 신문 사양길
―야구와 언론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요즘 스포츠신문업계가 기울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옛날에는 스포츠신문 편집국에 야구1부와 야구2부가 있을 정도로 야구가 인기가 많고 스포츠 언론을 이끄는 역할을 해 왔잖아요. 이제는 스포츠신문 기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친했던 기자들이 하나둘 업계를 떠나고 있어서 아쉬워요. ‘야구 인기가 높아야 스포츠신문도 잘될 텐데’라는 죄책감 비슷한 것도 드네요.”
현재 페넌트레이스 2위를 지키고 있는 두산 김 감독은 “올해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취임 후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2005, 2007)이나 2위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가 두산과의 계약 마지막 해인데, 이번에야말로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