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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이 말하는 사우디와 중동 정세

“중동,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도 ‘데탕트’ 거스를 수 없을 것”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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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살만의 개혁… ‘계몽 군주’여서가 아니라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것”
⊙ “사우디 왕가, 내분에 대한 두려움 커서 빈 살만 체제 안정적”
⊙ “빈 살만, 자신을 향한 비판은 사우디 젊은 세대의 미래를 막는 것이라고 공표”
⊙ “美에 대한 사우디의 배신감이 외교 다변화·親中 행보로 이어져”
⊙ “英 프리미어리그 구단 인수, 자긍심을 갖기 원하는 젊은 세대 요구 반영한 결과”
⊙ “韓, 사우디 입장서 부담 없고 매력적인 국가”

張志向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 졸업, 同 대학원 정치학 석사(중동 지역학과),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 정치학 박사 /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아산서원 교수 역임. 現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산업통상자원부·법무부·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문위원 / 저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신(新) 중동 붐’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對) 중동 ‘세일즈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21~26일 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순방하며 건설 및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서 202억 달러(한화 약 27조원) 규모의 계약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정치와 경제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지만, 중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여전히 낮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8%가 중동을 ‘에너지 자원 부국(富國)’과 연관 지었다. 이어 ‘이슬람 문화’(21%), ‘IS 등 테러’(13.9%), ‘독재와 종파 갈등 등 정치적 혼란’(6%)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국익(國益)에 중동이 중요한가’라는 물음에는 80.3%가 ‘그렇다’고 답했다.
 
 
  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요구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0월 24일 사우디 리야드 영빈관에서 회담했다. 사진=뉴시스
  중동 정치 전문가인 장지향(張志向)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다 입체적인 관점으로 이 지역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0월 31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장지향 박사와 만나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중동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와하비즘(Wahhabism·아랍인들이 쿠란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슬람교 수니파 안의 원리주의적 운동-편집자 주)에 기초한 보수 이슬람 국가였던 사우디가 최근 국내외 정치·경제에 있어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지금의 중동을 설명하는 단어를 꼽자면, ‘변화’ ‘변혁’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추동 세력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인 왕정(王政) 국가’이고요.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이 소위 ‘계몽 군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젊은 세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권력을 지키겠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사우디는 인구의 75%가량이 35세 이하로 이루어진 젊은 국가입니다. 이 세대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들은 옆 나라인 UAE만 가도 영화도 보고, 콘서트도 즐길 수 있는데 정작 자기 나라에선 그걸 하지 못하니 많이 답답해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요구가 점차 커졌습니다. 때마침 빈 살만이라고 하는 지도자가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빈 살만은 공개 석상에서 늘 ‘개혁은 사우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세대 역시 이런 변화를 체감하게 되니 빈 살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지요. 즉 젊은 세대와 빈 살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협상 재개할 것”
 
  ― 최근 펴낸 《최소한의 중동 수업》에서 중동에 ‘데탕트(détente·‘긴장 완화’를 뜻하는 프랑스어)’가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내자마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번 전쟁에 대해 아브라함 협정(2020), 아랍-이스라엘 수교 등 그간 진행되어온 중동의 평화 노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깜짝 놀랐습니다. 책에 분명히 화두는 변화·변혁·실용주의라고 썼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도 중동의 데탕트 추구 노선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전례 없는 사상자를 냈고, 지금은 지상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동은 전 세계의 화약고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무력 사태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끝나면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수교를 위한 협상을 재개할 것입니다. 결국 큰 틀에서 중동은 ‘데탕트 시대’를 거스를 순 없을 것입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최근 속도를 내고 있던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막기 위해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2020년 UAE·바레인, 2021년 모로코·수단과 수교한 이후 최근엔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수교협상을 벌여왔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9월 20일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에 대해 “날마다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거래”라고 밝혔다. 두 국가의 수교가 성사되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의 대의’가 무너져 하마스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컸다.
 
 
  “7000명에 달하는 왕자들이 불만 세력 될 수도”
 
  ― 지금의 빈 살만 체제는 안정적이라고 봅니까.
 
  “네.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것을 빈 살만이 상당 부분 들어줬습니다. 빈 살만은 변화를 원하는 젊은 층의 목소리가 불만으로 바뀌기 전에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우디 내 불만 세력이 조직된다면 그것은 젊은 세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른 곳이라면요?
 
  “약 7000명에 달하는 사우디의 공식 왕자들이지요. 이 중에서도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력 멤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빈 살만의 개혁에 대해 ‘너무 빠르다’고 비판해왔습니다. 빈 살만의 개혁을 분명히 탐탁지 않게 보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우디 왕가는 기본적으로 내분(內紛)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975년 사우디 국민에게 인기가 많았던 3대 국왕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자신의 조카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왕실 멤버들 사이에선 ‘절대 내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빈 살만 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제3대 국왕인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는 사우디를 중동-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으로 발돋움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노예 제도를 폐지했고, 여성 교육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또한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을 주도하며 사우디를 부국으로 만들었다. 막대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복지 정책을 펼쳐 서민층의 인기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1975년 평소 정신이상이 있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이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 과거 이란 팔레비 정권은 급격한 서구화 정책인 ‘백색 혁명(1961~1978년)’을 추진했다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전통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사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사우디는 와하비즘에 기초해 세워진 국가입니다. 사우디의 변화를 보면, 와하비즘이 익숙한 사우디 내 보수 세력이 반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반발이 없었습니다. 살만 국왕이 아들 빈 살만을 후계자로 지목한 배경 중 하나로 와하비 세력을 잘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빈 살만은 왕실 유력 멤버들과는 출신 배경이 다릅니다. 사우디 왕세자들 대다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한 ‘유학파’입니다. 반면, 빈 살만은 사우디에서만 공부했습니다. 킹사우드대학에서 이슬람법을 전공했지요. 빈 살만은 늘 ‘나는 사우디의 이슬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슬람은 폐쇄적이거나 강압적인 종교가 아니다’고 말합니다. 또 와하비즘의 이슬람 해석이 크게 왜곡됐고 사우디의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지요. 만약 서구에서 공부한 왕세자가 후계자가 됐을 경우, 와하비 세력은 반발했을 겁니다. 와하비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 감히 사우디를 다스린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우디의 젊은 세대는 와하비즘이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못 보고, 콘서트도 못 즐기고, 여자 혼자 외출도 못 하는 사회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빈 살만 자신도 자신을 향한 비판은 사우디 젊은 세대의 미래를 막는 것이라고 공표했습니다.”
 
 
  “사우디, 美에 배신감 클 것”
 
지난 2022년 7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 제다의 알 살람 왕궁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빈 살만에게 사우디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책임론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P/뉴시스
  ― 최근 사우디의 행보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밀착해온 것과 많이 달라진 듯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원유 증산 요청을 거절했고,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지요. 또 중국과의 교류·협력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자신감이 아니라 배신감이 맞을 것 같습니다.”
 
  ― 배신감이요?
 
  “네. 예컨대,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만 아니었으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했을 겁니다. 미국이 중재에 나섰는데, 사우디는 미국에 이란의 위험에 대비한 철통 같은 안보 조약과 민간 핵개발 규제 완화를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화책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반면, 미국이 사우디에 요구한 건 단 하나였습니다. 중국과 거리를 두라는 것이었지요. 사우디의 국내 정치가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면, 국제적으로는 외교 다변화(多邊化) 정책을 펼쳤습니다. ‘룩 이스트(Look East)’라고 불리는 동방 정책을 추진해나갔지요.”
 
  ― 그런데 중국과 거리를 두라는 미국의 요구가 사우디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인가요.
 
  “사우디 입장에선 동맹은 차치하고라도 이게 우방국에 대한 태도가 맞는지 느낄 만한 포인트가 여러 곳 있었습니다. 시작은 오바마 정부 때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탈(脫)중동 정책을 펴며 외교 초점을 아시아에 맞췄습니다. 사우디 등 일부 동맹국에 ‘무임(無賃)승차자(Free Rider)’라고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정부 때인 2018년에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아람코의 원유 저장고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유전 파괴 이후로 가장 큰 유전 파괴였는데도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요.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대선 후보 시절 사우디를 ‘버림받은 자(Pariah)’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사우디 출신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에 빈 살만이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이 점차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으니 사우디는 ‘외교 정책을 다변화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우디, 무슬림형제단 싫어해”
 
  ― 그럼에도 사우디가 미국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사우디도 미국만 한 파트너를 찾을 순 없습니다. 특히, 사우디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은 안보인데, 이란의 위협이 커지는 지금의 환경에선 미국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사우디의 행보는 일종의 으름장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서방 국가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사우디의 경제적 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서구가 이전과 같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 있을까요.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것이지,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했습니다. 사우디는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이스라엘과 다시 수교협상을 벌일 겁니다. 또 서방 세계 역시 이스라엘을 지지하기보다는 휴전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요구를 듣지 않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모양새입니다.”
 
 
  “네옴 프로젝트, 사우디 왕실 정권 강화에 도움”
 
네옴 프로젝트의 일부인 ‘더 라인(The Line)’ 조감도. 사진=NEOM
  지난 2016년 빈 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그중 하나로 ‘네옴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네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최첨단 신도시 계획으로 투입 비용 1조 달러(한화 약 1300조원), 총 면적 서울의 43배에 달하는 초대형 건설 사업이다. 네옴 프로젝트가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 역시 크다. 사우디는 한국의 전체 해외 건설 수주액의 20% 가까이 차지하는 최대 건설 수주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을 방문해 건설 협력 및 에너지 인프라와 관련한 20여 건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티 사업과 관련해 방한(訪韓)한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네옴시티 건설을 통해 사우디가 꾀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국가의 품격을 올리고 체질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대추야자와 진주를 채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석유가 터져 나와 막대한 부를 쌓았지요. 세금도 걷지 않고 보조금 지급에 집도 무료, 전기도 무료로 제공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석유가 고갈되면 어찌할 거냐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석유 외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제조업을 육성하자니 인구도 적고, 기반 시설도 한참 부족했지요. 결국 찾은 것이 최첨단 도시 계획인 ‘네옴 프로젝트’입니다.”
 
  ― 또 다른 이유는요?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 정권의 생존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빈 살만은 빠른 속도로 권력의 중심에 올라 개혁·개방을 추진했습니다. 국제사회에 나름 신선한 충격을 줬는데, 카슈끄지 암살 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급격하게 추락했습니다. 지금은 사우디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실 유력 멤버들 역시 빈 살만의 개혁·개방이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네옴 프로젝트가 왕실 강화에 도움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UAE를 경쟁자로 봅니다. UAE 역시 왕정이지요. UAE는 첨단 도시인 두바이를 건설하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습니다. 사우디 역시 왕실의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각할 수 있는 방편으로 이 네옴 프로젝트를 내세운 것이라고 봅니다.”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
 
지난 2021년 빈 살만이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구단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에 성공했다. 사우디 전통 복장을 한 현지 팬들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앞에 모여 기뻐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구단 인수나 자국 리그에 대형 축구스타를 영입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사우디는 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관리, 이른바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2021년엔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습니다. 당시 국제사회는 카슈끄지 암살 사건 등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팬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아주 뜨거웠습니다. 팬들은 사우디 국기까지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요. 당장 인수해달라고 말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축구 선수를 자국 리그로 데려온 것도 마찬가지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마구 돈을 쓰는 것 같지만, 자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 원하는 젊은 세대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빈 살만은 ‘이왕 돈을 쓰는데 폼나게 써볼까’라는 고민을 늘 하고 있습니다. 상당한 워커홀릭(workaholic)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그 중심엔 ‘젊은 세대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이 자리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현상을 표면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우디·UAE, 국가 역량 높일 가능성 커”
 
  장지향 박사는 저서 《최소한의 중동 수업》에서 중동 국가들을 ‘법 집행력’과 ‘사회 화답력’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각각 법 집행력과 사회 화답력 모두 높은 ‘제한적 민주주의 국가(이스라엘, 튀니지)’, 법 집행력은 낮지만 사회 화답력은 높은 ‘개방적 왕정 국가(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법 집행력은 높지만 사회 화답력은 낮은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튀르키예, 이란 등)’ 그리고 법 집행력과 화답력 모두 낮은 ‘취약한 독재국가(시리아, 리비아, 예멘)’다.
 
  ― 4가지 유형 가운데 어느 쪽이 국가 역량을 가장 빠르게 높일 수 있는 유형입니까.
 
  “법 집행력은 떨어지지만, 사회 화답력이 높은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와 UAE가 있지요. 두 국가 모두 중동-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빨리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 체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개혁 요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지요. 반면, 튀르키예나 이란은 법 진행 능력은 있지만, 사회 화답력은 낮습니다. 국민의 요구와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지요. 따라서 이들 국가보단 사우디나 UAE가 국가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 싶습니다.”
 
  ― 튀르키예나 이란 같은 경우, ‘튀르키예식 민주주의’ ‘이란식 민주주의’라는 말로 정권의 정당성을 찾고 있습니다.
 
  “‘튀르키예식 민주주의’ ‘이란식 민주주의’ ‘이슬람 민주주의’ 같은 말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용어는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다음에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반대 세력을 일방적으로 숙청하거나 언론인을 탄압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나쁜 행태이지요.”
 
 
  “서구식 민주주의, 중동에서도 가능”
 
  ― 앞서 설명하신 것처럼 사우디의 젊은 세대는 개혁·개방을 원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동 내 극단주의 성향 집단을 보면 여전히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중동 내 청년 세대가 이념적으로 ‘양극화(兩極化)’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개혁·개방을 펴는 중동 국가에선 더는 IS(이슬람국가) 같은 극단주의 성향 단체에 가입하는 젊은이는 없습니다. 극단주의 성향 단체의 구성원을 보면 ‘아랍의 봄’ 당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신흥 민주주의 국가 출신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나 요르단, 튀니지 같은 국가 출신의 젊은이들이지요. 이들 국가는 이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가려다 보니 삐걱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혁명에 참여한 시민이 자신의 지분을 과도하게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실질적인 역량은 평균 이하 수준이거든요. 시민 입장에선 목숨 걸고 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위해 애썼는데, 정작 달라진 게 없었던 겁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 괴리감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이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IS 가입 같은 기괴한 대안이었습니다.”
 
  ― 중동-이슬람 세계에서 그나마 서구화 모델을 제시했던 튀르키예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 통치로 일탈하고 있습니다. 이란 역시 신정(神政)독재체제를 공고히 했고요. 중동-이슬람 국가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및 문화종교 다원주의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직 서구식 민주주의가 정착한 사례는 없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동-이슬람 세계 국민에게는 기본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는 폭력적이다’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미국이 힘을 바탕으로 옆 나라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던 사례를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서구식 민주주의가 특별히 대단한 체제일까요? ‘내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다’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중동-이슬람 세계 국민 대다수도 이에 찬성합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신흥 민주주의 국가가 제대로 작동 못 하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IS 같은 기괴한 대안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 일각에선 이슬람 교리 자체에 서구식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가로막는 요소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 작동 여부와 이슬람 교리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슬람 종교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슬람 교리에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와 어긋나는 것은 없다고들 합니다.”
 
  ― 국제정치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중동은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한국엔 중동 전문가가 매우 적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에서 중동 정치는 주류 학문이 아닙니다. 그러니 수요가 적을 수밖에요. 저 역시 미국에서 학위를 딴 뒤 일자리를 구할 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에 들어온 때가 ‘아랍의 봄’ 직후였습니다. 그 시기 한국에서 중동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자리가 생겼지요.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선 중동 정치는 주류 학문이 아니고, 일자리 역시 적은 게 현실입니다.”
 
 
  “韓, 중동서 경제적 실리만 좇지 말아야”
 
  ― 사우디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우디에 있어 한국은 떠오르는 대안입니다. 부담이 없고 매력적인 국가이지요. 과거 후진국이었다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자신들에게 그 ‘레시피(recipe)’를 가르쳐 줄 거라 생각합니다. 또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미국처럼 인권 문제와 같은 잣대를 들이밀지도 않지요. 또 사우디는 한국의 가족 중시 문화를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서구화를 이루고 시장 경제 체제를 구축했지만, 여전히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이는 이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도 상응하는 부분이 많지요. 반면, 사우디는 서구 국가들은 무엇인가를 늘 계산하고 자신들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과 프랑스부터 지금의 미국 모두 마찬가지로요. 동시에 사우디는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소련은 종교는 아편이라고까지 했으니, 이슬람적 가치관과 맞지 않지요. 이 때문에 중국도 꺼림칙하게 보고 있습니다.”
 
  ― 빠르게 변화하는 복잡한 중동 정세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를 찾는 중동 국가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이 지역에 대한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금도 더 늘릴 필요가 있고요. 1990년대 한국은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이라고 불렸습니다. 책임은 다하지 않고 경제적 실리만을 추구한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2018)나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운동 등 우리 사회엔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가 만연합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예민한 문제지만, 이런 사태들이 국제사회에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더욱 현명한 판단과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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