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한국 軍·정부·국민은 전쟁 준비가 되어 있나?

軍, 유사시에 모든 국민을 다 지킬 순 없다고 고백하는 용기 필요

글 : 조성원  예비역 육군 대위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첨단 무기가 ‘참혹함’이라는 전쟁의 본질 외면하도록 만들어
⊙ 현행 국방혁신, ‘전면전은 없다’는 판단에 기초해 군사력 건설
⊙ 2015년 북한이 도발하자 공터에 포탄 29발 쏘고는 ‘완전작전’이라 자축
⊙ 2010년 연평도 사태 이후 포병 병과는 질 하락… 무의미한 비상 대기로 피로 누적
⊙ 전쟁에서 위험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하는 것
⊙ 북한 무인기에 영공 뚫리자 선배는 후배 탓… 軍內 세대 갈등 심각
⊙ 정치권, 문민통제라는 권한에 걸맞은 실력과 품격 갖춰야

조성원
1987년생. 예비역 대위 / 육사(66기) 졸업,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재학 / 미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 한미연합사단 화력계획장교 / 합참의장 표창
지난 8월 28일 육군 7포병여단 K9A1 자주포가 포탄을 쏘고 있다. 우리 군은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즉각 대기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포병부대가 번갈아가면서 북한 도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포상에서 대기하며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0월 7일 가자지구를 근거지로 삼은 하마스 병력이 백주대낮에 공중·해상·지상 3차원으로 이스라엘 남부에 침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9·11테러에 버금가는 물리적·심리적 타격을 입었다. 10월 10일을 기준으로 이스라엘 국방부는 일시적으로 상실한 영토를 모두 회복했으며 가자지구에 대한 총포위를 명령하고 지상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필자는 지난 《월간조선》 2월호에서 ‘육사 출신 예비역 청년장교가 말하는 국방개혁 4.0’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국방부의 초점 없는 유행 따라잡기식 국방혁신을 비판했다. 그 후 9개월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충돌은 근본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유행을 좇는 주도권 없는 국방혁신이 실전에서 어떤 취약점을 드러내는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국군의 국방혁신을 지적하는 연장선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우리 군(軍)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군의 이스라엘 사랑
 
  한국군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그 근원이나 출발점을 알 순 없다. 현재 장군단의 주류인 장년층 장교와 군(軍) 원로들이 결정하는 정책과 지시 사항에는 유달리 이스라엘군에 대한 동경(憧憬)이 넘쳐난다. 이 동경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적은 없지만 개인 경험에 기초하자면 이렇다.
 
  필자가 위관(尉官)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2015년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이 발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면, 북한의 도발에 수세적(守勢的)인 대응에 그치는 우리 군과는 달리 적(敵)의 도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이스라엘군의 풍토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다. 북한이 도발해도 국제규약 범위 내에서 대응하는 한국군과 달리 이스라엘은 강한 보복 행동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악명 높다. 한국군은 조직 문화상 혈기 왕성한 위관 장교 시절부터 자신의 전술적 행동 능력을 표출하지 못하고 영관(領官) 장교가 된다. 영관 장교가 돼 고급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대학을 수료해도 안정적인 조직 문화를 좇는 ‘모범생’이 되길 강요받는 환경이다. 한국군이 가진 답답함과 이스라엘군의 과감한 행동력이 극명하게 비교돼 한국군의 이스라엘에 대한 동경은 대리만족으로 분출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추론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대한민국 육군에서 기계화부대에 근무하면 사단장이나 군단장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책을 추천도서로 읽도록 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 기갑장교들의 활약상을 담은 책으로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 77전차(戰車)대대장이었던 카할리니 예비역 중령의 회고록이다.
 
  카할리니는 자기 집 지붕을 고치던 중 동원령이 선포되자 골란고원 전장(戰場)으로 영화처럼 달려와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아랍군 기갑부대를 격멸했다. 골란고원 전역은 아랍군 전차의 무덤이 됐다. 이스라엘 전차보다 더 우수한 성능의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아랍군을 제압한 카할리니의 회고록은 장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더구나 한반도라는 좁은 작전 지역에서, 전차가 달릴 만한 충분한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이 회고록은 ‘전차무용론’에 시달리는 기갑장교들에게 충분한 대리만족을 줬다.
 
 
  이스라엘군, 한국에 공산권 장비 제공
 
2022년 9월 21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2022’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현상은 한국군만의 일방적인 이스라엘군에 대한 짝사랑이 아니었다. 한국군이 교육용으로 보유한 공산권 군용 장비에는 불곰사업으로 획득하지 못한 장비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이 아랍권에서 노획한 장비를 우리에게 공여(供與)해준 것이다. 필자도 현역 시절 국외 군사 교육을 받으며 이스라엘군 장교들에게 단지 한국군이라는 이유로 대가성 없는 친절과 순수한 환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상호 간의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우호적인 감정, 한국군이 대리만족재로서 이스라엘군에 갖는 순수한 동경심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비롯한 소위 ‘군사강국’들이 최근 10여 년간 추진한 군사혁신을 단지 동경심 때문에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안 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로부터 수천 발의 로켓 공격을 받고 난 뒤에야 한국은 ‘아이언돔도 뚫렸다는데, 우린 안전한가’라고 부랴부랴 질서 없는 우려만 쏟아내고 있다.
 
  2010년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유의미한지에 대한 논쟁은 논외로 하더라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저마다의 국방혁신 계획을 쏟아냈다. 2020년대에는 이 국방혁신에 대한 강조가 절정에 다다랐다.
 
  나라마다 서로 붙은 이름은 달랐지만 세계적 추세는 명확했다. 바로 ‘더 슬림하게, 더 세련되게, 그리고 국민의 정부 지지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세 도발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였다. 각국은 이 혁신에 자신이 부르고 싶은 대로 그럴듯한 명칭을 부여했다. 이 국방혁신은 전면전을 잊은 채 육중한 군사력을 죄악시했다. 이에 각국 정부는 국방혁신을 명분 삼아 전면전에 대한 비중을 줄이는 것을 합리화했다.
 
 
  ‘스마트전쟁’에 대한 환상
 
  세계 각국은 기술집약적인 방산 아이템들을 선보였다. 제품에는 항상 ‘스마트’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세계의 군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자 전쟁의 본질을 망각하게 됐다. 즉 전면전이 갖는 추악함을 잊게 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가 일으킨 인종청소 사태로 발발한 코소보 사태(1998~1999년)에서 우리는 공군의 정밀 타격 능력은 전쟁을 종결시키기 힘들다는 ‘EBO(Effects Based Operations·효과중심전) 무용론’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20세기 말에 얻은 이 교훈이 무색하게도 20년도 되지 않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그럴듯한 포장과 함께 ‘과거보다 더 진보한 스마트 무기체계라면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됐다.
 
  마치 불필요한 피해는 아예 없는 핀 포인트(Pin point) 타격이 가능할 것 같고, 보병이 투입되기 전에 상당한 수준의 위험 요소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보병마저 스마트한 디지털 장비를 착용해 충분히 안전하게 작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인공지능(AI)이 도입된 무인 차량과 전차 덕분에 국방은 한층 더 스마트해지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내뿜을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이 이미지가 국민에게 가져다주는 효과에 만족스러워했다. 이러한 군인들의 망상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방산(防産) 업계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들을 내놓았다.
 
  최근 방산 박람회는 명품 자동차 업계의 신차 박람회나 IT 업계의 기술 박람회의 행사 방식을 따르며 매년 세련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에게 전쟁에 관한 중요한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의 본질은 바로 ‘전쟁은 추한 것(War is Dirty)’이라는 점이다. 이는 반박할 수 없는 명제다.
 
 
 
‘위험 감수’ 하지 않으려는 한국군 지휘관들

 
  시대가 발전하면 무기체계도 함께 발전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무기체계의 발전이 군인과 정치인들의 오판(誤判)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 오판이 군인과 정치인들의 전략적 사고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부전승(不戰勝)은 가능할지 모르나 한번 전쟁이 일어난 후 무혈(無血) 승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와 사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군인과 군인을 문민통제하는 정치인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결점(無缺點)’ 작전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과거 육군에서 GOP 경계를 맡은 사단에서는 GOP에 투입된 대대가 큰 사고 없이 GOP 경계 임무를 마치고 다음 대대와 임무 교대 후 FEBA(전투지역전단)로 내려오면 이를 ‘완전작전’이라고 자축했다.
 
  2015년 있었던 ‘서부전선 포격 사건’을 육군에서는 ‘8·20 완전작전’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음에도 무결점, 완전작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병적(病的)으로 집착한다. 이는 우리 군의 문화가 이미 전략적 사고에서 오염이 시작됐다는 의미이다.
 
  한국군에서는 그 어떠한 지휘관도 위험 감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휘관들은 체크리스트 내에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을 명시해서 당직 장교들에게 야간 내내 그 모든 것을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심지어 병사가 영내를 걷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발목을 삐는 것도 위험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한 예방 대책을 ‘위험성 체크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중대장들이 작성한다. 또한 이를 육군 인트라넷망 ‘위험성 보고 시스템’에 탑재해야 한다.
 
  전쟁에서 인간이 제거할 수 없는 변수는 ‘우연’과 ‘게임’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지휘관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모든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지휘관의 기동 계획은 그 어느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적이 예측가능한 계획이 된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한민국 육군 포병은 그야말로 사람을 혹사시켜가며 ‘대응도발태세’라는 ‘실체 없는 캐치프레이즈’를 구축했다. 도발 가능성과 그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리스트에 명시된 대로 측정한 다음, 그 수준에 따라서 즉각 대기 ‘A 수준’ ‘B 수준’ ‘C-1 수준’ 등 수준별로 대기해야 할 주요 직위자의 보직과 화포 문수를 지정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창끝부대(일선부대)의 피로도를 조절하면서도 유사시 적의 포격 도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합참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화면에서만 예쁘게 구현된 허수(虛數)였다.
 
  실상은 A 수준이든, B 수준이든, C-1 수준이든 현장에서는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이에 창끝부대 간부들은 대기 발령이 떨어지면 곧장 출근해 막사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주말도 없고 밤낮도 구분이 없었다.
 
  비효율적인 대기 태세는 ‘포병 병과(兵科) 기피 현상’을 야기했다. 사관생도들과 장교 후보생들은 포병 장교로 임관하기를 기피했다. 이에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현재까지 포병장교의 질은 급격히 낮아졌다. 1, 2, 3지망 병과 지원에 모두 탈락한 자원들이 포병으로 흘러들어 갔다. 포병장교들은 ‘병과 존폐의 위기’를 느꼈다.
 
 
  戰力 사용할 전략도, 배짱도 없어
 
  이 비효율적인 대기 태세는 5년 동안 전군(全軍)을 괴롭힌 후 실전(實戰) 데뷔를 했다. 2015년 8월 4일 1사단 수색대대 부사관 2명이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를 밟고 중상을 입었다. 사건 발발 직후 전선의 수많은 군인이 대기 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은 고작 대북심리 방송을 재개하는 것뿐이었다. 목함지뢰 사건이 있고 16일 뒤 북한은 고사총 수 발을 우리 영토로 발사했다. 약 1시간 뒤 26사단 소속의 포병대대가 고폭탄 29발을 임진강변 빈 땅에 쐈다.
 
  이것이 2010년부터 전군을 피로하게 만들고 대화력전의 핵심 병과인 포병 간부의 질을 대폭 하락시킨 ‘대응 태세’와 ‘8·20완전작전’의 실체다. 결국 대부분의 전선에서 창끝부대 병력들이 규정된 시간 안에 사격 준비를 갖췄지만 적을 응징하진 못했다. 영토가 공격당하고 군인이 영구장애 부상을 입었음에도 정치인과 군 수뇌부는 지난 5년간 주야장천 대기한 이 포병 전력(戰力)을 사용할 전략도, 배짱도 없었던 것이었다.
 
  적이 도발할 때마다 군은 ‘동종동량(同種同量)’이나 ‘비례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미 250년 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논할 때 단순히 물리와 계량, 수치와 통계의 영역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전쟁에 관한 논의를 관념과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전쟁론》을 저술했다. 한국군은 이와 같은 전쟁 철학의 발전을 무시하듯 적이 도발할 때마다 ‘발을 맞았으니 우리도 발만 쏴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편협한 사고의 결과물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대응책은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적이 그 이후로 도발을 멈추었는가?
 
 
  장교들의 반감 부른 합참의장의 질책
 
  이러한 관료주의적 병폐는 2022년 말 북한 무인기(無人機)가 영공을 침범한 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문민통제의 상징인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여야(與野) 의원들이 육사 선후배 기수를 따지며 격조 없는 언쟁을 벌이며 한 의원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현역 장성을 앉혀놓고는 고성을 지르고 호통을 쳤다. 문민통제라는 이름으로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수준 낮은 정쟁(政爭)을 보여줬다. 전략적 차원의 비판은 없었다. 그들에게 이 이슈는 단지 먹기 좋은 당쟁(黨爭)의 재료일 뿐이었다.
 
  무인기 영공 침범의 하이라이트는 합참의장이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일갈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예하 부대와 실무 장교들 사이에서 얼마나 반감이 컸는지 군을 떠난 이들에게도 전파될 정도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사단장, 군단장을 할 때는 방공방어 태세를 이 따위로 허술하게 하지 않았다. 너희가 훈련을 실전적으로 안 한 탓이다. 똑바로 안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합참의장은 중대장 시절 현역 군인 중 유일하게 북한군과 직접 교전(은하계곡전투)을 치러 승리한 인물이다. ‘은하계곡전투의 영웅’이자 4성 장군이 부하에게 공개석상에서 할 말이었을까?
 
  손자(孫子)는 싸움에 능한 자는 세(勢)를 구하지,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故善戰者 求之於勢 不責於人). 실상은 합참의장이 사단장, 군단장일 때 잘됐던 것을 지금 후배들이 망쳐놓은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실체 없이 엉성했던 것을 지휘관인 자신만 잘 돌아가는 줄 착각하고, 현상 개선을 위한 여건 보장도 제대로 못 해준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합참의장이 볼멘소리를 하는 부하들에게 시원하게 일갈해 군의 기강이 잡힌 것처럼 보도를 했는데, 이는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軍內 세대 갈등 심각
 
  이미 군내(軍內) 장교단 사이에선 세대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불신이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섰다. 젊은 장교들은 선배들의 군사정권 시절 과거 타령과 ‘요즘 후배들이 문제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책임 전가에 질려버렸다. 최근 젊은 층의 장교 지원율이 하락한 것과 관련해 언론은 병(兵) 급여 인상을 꼽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이유일 뿐이다.
 
  젊음을 바쳐 군에 헌신하는 후배 장교들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자기 진급을 위해 병사들의 소원수리와 부모들의 민원처리를 최우선 기조로 삼아 젊은 중대장들과 행정보급관들을 끼니마다 도시락 포장요원으로 만든다. 배달 광고업체처럼 부모들에게 보여줄 사진 촬영을 시켜 보고하도록 한 자들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경제적인 요인은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돈 몇십만원에 개인의 신념을 저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인재를 제대로 처우하지 않고 대증요법으로 그때그때 피상적인 정책에 사람을 혹사시키는 문화가 싫은 것이다.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사관생도들이 ‘한국군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어’ 자퇴(自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군 수뇌부는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야전에선 소총으로 드론 잡는 훈련
 
김승겸 합참의장(가운데)이 지난 7월 31일 5사단 GOP관망대를 찾았다. 김 의장은 적이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기껏 합참의장이 젊은 장교들의 지지를 잃어가며 일갈한 결과는 야전 일선 부대에서 ‘소총수가 드론을 소총으로 격추하는 사격술’ 교육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행태인가? 그 훈련을 시키는 교관, 훈련을 받는 병사 모두 얼마나 우습다고 생각했겠는가.
 
  실제 작전에서 항공사진으로 정지 화면을 보듯이 일반 전투원이 육안으로 드론을 관측해 피아를 식별하고 사격까지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렇게 말단의 인력들을 혹사시켜놓고는 ‘무엇 하나라도 얻어 걸리겠지’라는 식의 대응은 2023년 우리 군의 전략적 사고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격 도발을 겪었다고 그 해결책으로 전군의 포병 부대들을 당번 세워가며 즉각 대기를 시키는 것이나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현실성이 전무한 대공사격술을 교육시키는 것은 바로 적이 원하는 수준의 대응이다.
 
  적은 우리의 자원이 그들보다는 많지만 유한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의 특성상 당장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보여주기식 미봉책에 급급하다는 단점도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적은 우리의 방어 태세를 실험하기 위해 유엔 정전 수칙과 여러 국제 제재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가 모든 자원과 정력을 소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통방어’라는 것은 환상 속의 얘기일 뿐 애당초 현실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군 수뇌부와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현재 우리의 기술과 능력으로서는 대규모 화력전 시 국민 모두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해야 한다. 이는 ‘전쟁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기술이 더 발달하더라도 ‘물 샐 틈 없는 방어’는 불가능하다. 피상적인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전략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쟁 3일 만에 이스라엘은 동원령을 통해 30만 명 이상의 예비군을 동원해 기존 영토 내 질서를 회복했다. 현재는 가자지구로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략적 차원에서 하마스가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국민의 머슬 메모리가 과거 4차례의 중동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아 매우 단기간에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외향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러한 내부 심리적인 공세 근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아이언돔이 아니다. 무제한의 폭력을 추구하는 군의 본질과 문민통제의 주체인 민간 정치인들의 전략적 사고다.
 
 
  대한민국 안보의 三位一體
 
  이 글에는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위급할 때 열어보라고 쥐여준 지혜의 주머니와 같은 것은 없다. 안보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신묘한 계책’은 없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해결책이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아직 국가대전략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그 밑바탕이 극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대국(對局)을 논할 환경 자체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다만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부차적 요소로서의 삼위일체의 틀을 빌려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이 조건이 선결되면 비로소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1. 軍은 무자비한 폭력 추구하는 집단
 
  군은 높은 인권 수준이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극단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모순을 내포한 집단이다. 군 수뇌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연금이 ‘안전제일주의’ 처세술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허용된 폭력의 행위자로서 문명인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보상임을 인지해야 한다. 적이 도발하면, 지휘관은 지금처럼 지킬 것들 다 지켜가면서 그 누구의 경력도 다치게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비난받지 않는 ‘빈 땅에 포탄 쏘기’ 조치가 아닌, 누군가는(적이든 아군이든) 생명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입고, 자신은 역사와 대중에게 맹렬히 비난받을 가능성이 큰 과감한 결심을 해야 한다.
 
  높은 확률로 그 결심을 내린 자신과 그 지시를 수행한 일선 간부와 병사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희생 망령의 원한과 저주에 시달릴 것이다. 훈장과 연금, 명예는 국민 대신 이런 전쟁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자는 무인이 아니다.
 
  군 내부의 충언과 직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젊은 장교들은 이미 이 모든 문제를 인지하고 개탄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를 단순히 급여와 같은 1차원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대증요법으로 대충 때우려 해선 안 된다. 그들의 철학, 신념을 존중하는 인사 정책과 조직 내 합리적 소통 문화를 정착시켜 정상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외부의 노이즈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내부의 충신들을 잃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소홀히 생각하면 훗날 현 젊은 세대가 군 수뇌부가 되는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군 리더십 붕괴를 겪을 수 있다.
 
 
  2. 정치, 문민통제할 수 있는 실력 키워야
 
  우리 정치인들은 현재 우리 정치의 수준이 세계 10위권 군사력을 가진 국가의 문민통제 수행자로서 격에 맞지 않음을 반성해야 한다. 안보와 관련된 일련의 정치 활동을 단기 포퓰리즘이 아닌 실제 안보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그 지향점을 맞추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무인기가 영공을 한 번 침범했다고 부랴부랴 드론사령부를 창설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얽혀 있는 국제규약과 각종 조약에 얽매이지 않고 적의 추가 도발 의지를 분쇄하면서도 국가의 경제·통상·외교에 지장을 주지 않는 국가전략 기조를 구축해야 한다. 전쟁지도부의 수장은 국방부 장관이 아닌 대통령임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군 출신 의원들은 현역 후배들을 통해 음성적으로 군 기밀을 획득해서 민간 출신 의원들과의 정보 격차를 이용해 국방위원회를 주도하거나 그것이 대단한 자신만의 지식인 양 후배 장성들을 불러 앉혀다 놓고 호통치는 데 사용해선 안 된다. 전략적 사고 확장을 위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민간 출신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내 군 부지 반환을 통한 지지율 향상처럼 지엽적인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을 대표해서 국가 전략을 위해 국방부에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어떠한 정보를 요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까지는 군 출신 의원의 역할로 여겨지던 국가전략 분야도 공부해야 한다. 민간 출신 의원들이 군 출신 의원들에게 국방위 운영을 맡기면 현재와 같이 군의 갈라파고스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민주주의의 강점인 문민통제는 더욱 요원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3.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안보를 갖는다
 
  삼위일체의 마지막 퍼즐은 국민이다. 나를 대표하는 의원들이 국방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현상을 넘어 본질을 바라봐야 한다. 국군의 날 특전사들의 격파쇼나 보여주기식 화력시범 영상을 보고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식견을 갖고 요구해야 한다. 항공모함과 원자력추진잠수함, 육사와 비육사 등 정치인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만든 이분법적 틀에 갇혀선 안 된다. 중동에서 전쟁이 한 번 일어났다고 언론에서 ‘아이언 돔이 뚫렸다’고 뽑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보고 놀라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현상을 보도하는 언론, 국민 개개인의 정당 선호도를 뛰어넘는 혜안으로 의원들을 통제해야 한다.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인 의원들에게 똑똑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정치인은 국익이 아닌 철저한 당익과 사익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이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인 이기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국민은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는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격언이 유행이다. 안보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그에 걸맞은 안보를 가진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