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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젊은층이 뒷받침하는 마크롱의 개혁

후원조직 만들고, 설문조사 통해 정책 개발하는 데 앞장서

글 : 옥승철  AUPL 폴리시 디렉터  

글 : 이재현  FC 로지스틱스 오션 오퍼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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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半세기 동안 지배한 左右派 기성 정당, 경제 위기·노동 개혁·테러 문제 등 놓고 표류
⊙ 마크롱, 싱크탱크 겸 정치운동인 ‘앙 마르슈’ 만들어 기성 정치에 도전
⊙ 젊은이들의 열정에 감동한 원로 정치인들도 마크롱 지지 합류
⊙ 마크롱, ‘기업을 살리는 것이 프랑스를 살리는 길’이라며 강도 높은 개혁 추진

玉承哲
1986년생. 호주 시드니대학 정치경제·국제경영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학 블래바트닉 스쿨 공공정책 석사.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행정학 석사. 現 AUPL 폴리시 디렉터 / 저서 《청년을 위한 대한민국은 있다》(공저)

李宰顯
1987년생. 프랑스 UGA Applied Foreign Languages 학부 졸업. 파리 12 대학 매니지먼트·국제무역 석사 / 前 7 Next (스테이션 F) 크라우드펀딩 플래너. 現 FC 로지스틱스 오션 오퍼레이터(Ocean Operator)
사진=AP/뉴시스
  “마크롱은 젊고, 지적이며, 공화주의자이며, 우리나라와 역사를 사랑합니다. 그는 프랑스의 경제가 회복되길 노력하며 꼭 필요한 개혁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이 설령 다른 진영에서 나왔더라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는 다른 정치인과 다릅니다.”(미셸 샤샹드 바로즈, 프랑스 시민과의 인터뷰에서)
 
  2017년 혜성처럼 나타나 프랑스 대선(大選)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은 프랑스 북부 아미앵에서 의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크롱은 프랑스 최고 명문고등학교인 앙리 4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10대학에서 철학 박사 예비 과정을 수료하고 프랑스의 정치인과 엘리트 관료들을 배출하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다. 마크롱은 국립행정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 입사했다.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면 10년간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일해야 하는 계약을 파기한 대가로 그는 한화(韓貨) 6000만원이 넘는 벌금을 내야 했다. 마크롱은 로스차일드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인수합병전(戰)에서 성과를 냄으로써 로스차일드의 파트너로 승격했고 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어 그는 좌파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 참모로 대선 캠프에 참가, 2012년 대통령실 부실장을 시작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2014년에는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이 됐다. 올랑드 정권하에서 마크롱은 고용과 해고 절차를 쉽게 하는 노동개혁과 ‘마크롱법’이라고 불리는 친(親)시장적인 법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그는 사회당 내부에서 ‘배신자’라는 말을 듣게 됐고, 올랑드와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러면서 마크롱은 병든 프랑스의 개혁을 위해서는 스스로 창당(創黨)하여 정권을 창출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장관 재임 중이던 2016년 그는 고향인 아미앵에서 새로운 싱크탱크이자 정치운동인 ‘앙 마르슈(LREM)’의 출범을 발표했다. 이후 장관직을 사임하고 대선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프랑스의 兩黨정치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샤를 드골을 시작으로 8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 기간 중 프랑스 정치는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이 양분해왔다. 지난 60년간 프랑스 국민들은 좌우 거대 양당을 지지해왔고 이 현상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같이 보였다.
 
  좌우 거대 양당 체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발생한 금융위기로 인해 그리스・이탈리아 등 남유럽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 국가들과 경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던 프랑스 또한 경제위기에 처했다.
 
  2007~2012년 대통령을 지낸 우파 공화당 출신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긴축정책과 강도 높은 노동 개혁 등을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전용기 구입에 약 한화 3800억원을 지출하고 엘리제궁의 하루 식비에만 약 한화 1700만원을 사용하는 등 경제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프랑스 국민들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당시 프랑스는 높은 최저 임금,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규제 및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인해 생산성이 둔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의 주요 산업과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었다. 사르코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사치와 리더십 문제로 인해 실패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공화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으면서 2012년 대선에서는 사회당 출신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승리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부유층에 대한 증세(增稅),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소득분배 형평성 지향 및 이를 통한 경제 성장 등을 어필하면서 국민의 환심을 샀다.
 
  2012년 당시 정부의 공공지출이 국내 총생산(GDP)의 56%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랑드는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 부문에서 15만 개, 교육 부문에서만 6만 개의 일자리 창출 등 정부 주도의 공공 일자리 창출, 최저 임금 인상 등 과도한 예산이 드는 공약들을 발표했다. 그는 재원 마련을 위한 부유세(富裕稅)를 도입해 15만 유로 소득자에게는 45%, 100만 유로 이상의 소득자에게는 75%의 과세율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반(反)금융자본주의의 기치 아래 금융산업과 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를 선언했다.
 
 
  실패한 올랑드의 사회주의 정책
 
  올랑드의 공약들은 민간 부문을 개혁해 활성화하지 않고 부유세란 증세를 통해 국가가 공공예산을 투입하는, 정책으로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는 정책들이었지만 프랑스 국민은 올랑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올랑드 정부의 공약들은 국민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제 그의 정책들은 프랑스를 한 단계 후퇴시켰고, 좌파 사회당이 완전히 무너져 마크롱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올랑드가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놓은 고소득자에 대한 75%의 부유세 부과는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Conseil d'État)에서 위법(違法) 판결을 받았다. 최고행정재판소는 개인에게 최대 66.66%의 세율까지만 부과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이에 올랑드 정부는 집권 후 부유세 부과 기준을 변경, 기업의 이익 중 100만 유로 초과 소득에 대해 50%를 조세로 납부하게 했다. 이로 인해 개인과 기업이 외국으로 탈출하고 해외 투자가 급감했다. 투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독일의 절반에 그치는 등 국가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세계 경제 무대에서 프랑스의 경쟁력도 빠르게 잃어갔다.
 

  올랑드 정권하에서 실업률은 10% 이상을 기록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청년 실업률도 상승하여 24%를 넘기게 되었다. 결국 올랑드 정부는 2년 만에 부유세와 법인세 인상을 포기했다. 또 기업의 법인세를 프랑스 GDP의 1%에 달하는 연간 200억 유로 규모를 감면해주기로 함으로써 반시장・반기업 정책을 뒤집어 친시장・친기업 정책으로 전환했다.
 
  올랑드 정부는 더 나아가 근로시간 연장 및 노동 유연화 등의 친기업 정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계와 대학생 등 전통적인 지지층을 잃었다. 결국 그의 우(右)클릭 정책들은 사회당 내외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실패했다. 지속되는 테러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안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 또한 잃었다. 올랑드는 임기 말에 4%의 초라한 지지율을 받으며 재선(再選) 도전을 포기했다.
 
 
  兩大 기성정당의 몰락
 
  우파인 공화당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좌파인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 모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하면서 많은 프랑스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신감을 잃었다. 좌우 거대 양당은 지속되는 경제 불황과 테러 등 안보, 그리고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미래 프랑스에 대한 비전을 국민에게 심어주지 못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의 정치를 양분했던 좌파 성향의 사회당과 우파 성향의 공화당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프랑스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념에 치우친 정치는 진정 프랑스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막고 있었다. 정치가 전혀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경제・노동・불평등・외교・개인의 자유・테러 등의 문제에서 좌우의 깊은 분열이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었다. 또한 미래의 프랑스에 대한 비전을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 앙 마르슈의 청년들과 함께 대선에 나타났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만, 1차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중도 성향의 마크롱이 24.01%, 극우 국민전선의 후보인 마린 르 펜이 21.30%를 얻은 반면 우파 공화당의 후보 프랑수아 피용은 20.01%, 집권당인 좌파 사회당 후보인 브누아 아몽은 6.36%를 얻는 데 그쳤다. 반세기 동안 프랑스 정치를 움직였던 양대 정당 후보들이 3, 4위로 밀리면서 기성(旣成) 양당 지배 체제가 붕괴했다.
 
  결선에서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과 맞선 마크롱은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면서 좌우 거대 양당이던 사회당과 공화당이 지지해준 덕분에 66.10%를 얻어 33.90%를 득표한 마린 르 펜을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앙 마르슈’를 만든 청년들
 
2017년 5월 8일 마크롱 당선 소식에 환호하는 청년들. 마크롱은 젊은 지지자들의 헌신으로 당선된 젊은 대통령이었다. 사진=AP/뉴시스
  마크롱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하는 열정적이고 유능한 청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이스마엘 에믈리앙은 1987년생으로 파리정치대학 재학 당시 2006년 사회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 캠프에서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는 싱크탱크, 커뮤니케이션 관련 컨설팅 등 다양한 경험을 한 인재였으며, 앙 마르슈의 전략을 기획한 핵심 참모였다. 그는 2006년 사회당 대선 경선에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후보 캠프에서 함께 일했던 벤자맹 그리보(1977년생), 스타니슬라스 게리니(1982년생), 세드리크 오(1982년생)와 함께 앙 마르슈의 시작을 준비했다.
 
  앙 마르슈의 첫 형태는 당이 아니라 싱크탱크형 청년운동을 표방한 모임이었다. 이들은 프랑스 상경계 그랑제콜 HEC 출신, 정치계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학 출신들로 각자의 일과 후에 모여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기 위한 비전과 전략에 대해 매일 토론하고 준비했다. 앙 마르슈는 청년들의 소모임에서 시작했으며 후에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앙 마르슈는 대선 준비를 위해 두 가지 핵심 전략을 준비했다. 한 가지는 비밀 후원 모금회이며, 다른 한 가지는 ‘그랑드 마르슈(Grande Marche)’로 불리는 풀뿌리 정책 설문조사이다.
 
  2017년 4월 6일 마크롱은 청년들과 그의 고향 아미앵에서 앙 마르슈 출범을 발표한 후, 대선을 위한 후원금 모금을 준비했다. 후원회 모임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비밀리에 소규모 프라이빗 칵테일 모임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모임에는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초대되었다. 앙 마르슈는 이들을 헤드헌터, 변호사, 은행가, 투자가,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기업가, 교육 종사자 등의 세부 직군(職群)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후원회 모임을 진행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현재 프랑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기 위한 개혁’에 동참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매 모임은 1시간30분씩 진행되었는데, 마크롱의 15분 인사말, 20분 연설, 20분 Q&A, 후원자들과 자유대화로 시간이 짜였다. 마크롱은 이 비밀 후원모금회에서 앙 마르슈 멤버 소개, 자신의 정책과 새로운 프랑스에 대한 비전 등을 발표하며 후원을 요청했다. 후원금은 프랑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인 개인당 연(年) 7500유로를 넘지 않는 선에서 모금했다. 한 모임당 많게는 50명이 후원하여 총 22만5000유로가 모였다. 최종적으로 1300만 유로(약 170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시민들을 찾아간 정책 설문조사
 
2019년 12월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발하는 시위가 마르세유를 비롯한 프랑스 전국에서 벌어졌다. 사진=AP/뉴시스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선거정책 중 한 가지는 풀뿌리 정책 설문조사로 불리는 ‘그랑드 마르슈(Grande Marche)’, 한국말로 ‘대행진’ 전략이다. 마크롱과 앙 마르슈 청년들은 프랑스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지지에 기반을 둔 정책을 구성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 프랑스 전역의 국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묻고 듣기로 했다.
 
  그랑드 마르슈 캠페인 전략은 하버드대학과 MIT대학 출신인 1980년대생 청년들이 기획한 것으로 2008년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선 후보팀의 캠페인 방법을 프랑스 선거판에 적용한 것이다.
 
  앙 마르슈는 사회인구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방문 대상자를 정했다. 그 후 앙 마르슈의 청년 자원봉사자 5000명은 프랑스 전역으로 흩어져 각 지역 10만명의 주민에게 설문조사를 했고, 그중 2만5000명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국민 의견을 수집했다.
 
  주요 질문으로는 ▲정치에 바라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 ▲프랑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과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2015년 이후 가장 좋지 않았던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는가?(예: 실업/폐업/학위취득/부동산 구매 등) ▲미래에 대해 가장 염려스러운 것들이 있는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국민의 생각과 의견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은 앙 마르슈는 이를 분석하여 정책의 우선순위를 만들었다. 그랑드 마르슈를 통해 마크롱과 앙 마르슈는 진정으로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은 ‘청렴성’과 ‘투명성’ ‘공약 이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현재 새로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교육 시스템 개혁’ ‘경제와 취업 개선’ ‘정치 개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앙 마르슈는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후에 이러한 대선 공약들을 인터넷에 올려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이행 과정과 이행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결국 마크롱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한 그랑드 마르슈 전략을 통해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을 알았으며, 이를 토대로 프랑스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 준비 과정의 차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아웃사이더였던 마크롱은 한순간에 대통령으로서 가능성과 국민의 기대를 받게 되었다.
 
  마크롱과 앙 마르슈는 청년들로부터 시작되었고, 프랑스 전역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마크롱을 돕기 위해 앙 마르슈 지부를 만들어갔다. 마크롱과 청년들의 이러한 진정한 행동과 노력은 기존 청년들을 그저 아이로 보던 프랑스의 기존 세대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프랑스의 원로 정치인들도 청년들의 노력을 보며 프랑스를 개혁해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으며, 청년들을 돕기 위해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이로써 마크롱은 정치계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원로 정치인들도 마크롱 지지 합류
 
  마크롱 지지를 선언한 대표적인 원로 지식인 중 하나가 약 40년의 정치 경력을 가진 제라르 콜롬브(1947년생) 리옹 시장이다. 리옹 시장을 17년 역임하고, 사회당의 상원의원과 간부, 국회의원을 역임한 그는 사회당 내에서도 우파로 구분되는 인사였다. 그는 마크롱의 추진력을 높이 사면서, 프랑스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회당 내에서도 개혁주의 좌파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는 판단하에 2016년 5월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제라르 콜롬브의 지지는 그의 홈그라운드인 리옹을 마크롱 지지 도시로 바꾸었다.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지역 의원들과 지지자들이 마크롱을 지지하게끔 설득했고, 물리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리옹 지역 기업가들을 초대하여 마크롱과 만남을 주선했다.
 
  제라르 콜롬브의 지지는 리옹 지역의 사회당을 무력화(無力化)시켰다. 그의 마크롱 지지 선언 당일 리옹 지역 50여 명의 사회당 당원은 앙 마르슈의 합류를 선언했다. 리옹 출신의 다비드 키메펠드 사회당 1등 보좌관과 이브 블레인 리옹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들도 마크롱의 앙 마르슈에 합류했다.
 
  마크롱의 승리에는 기존 정치 원로들의 도움 또한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우리나라처럼 정치 원로가 자신의 대권을 위해 청년들을 소모품으로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프랑스를 위해 젊은 청년인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진심으로 도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업을 살리는 일이 프랑스를 살리는 일’
 
  마크롱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프랑스의 체질 개선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했으며, 그 시작은 노동 개혁이었다. 마크롱은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노동 개혁”이라고 하면서 기존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및 경직된 노동법에 손을 댔다.
 
  ‘기업을 살리는 일이 프랑스를 살리는 일’이라 생각한 마크롱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고, 현재 주당 35시간인 노동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기업의 재량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부당 해고 시 해고배상금의 상・하한을 법률에 명시하여 보상 한도를 설정하여 기업이 노동 비용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 대신 마크롱은 저숙련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훈련을 강화하며 노동 인력 고급화 전략으로 기업들의 자발적 고용을 늘려나갔으며,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대폭 감면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3년 이후 10% 이상을 지속하던 실업률은 2019년도에 8%로 한때 25%에 육박했던 청년 실업률은 19%까지 하락했다.
 
  두 번째 중요한 일은 철도 개혁이었다.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는 매년 30억 유로의 적자로 인한 부채 상승으로 부채가 약 466억 유로에 달했다. 기차 지연, 잦은 파업 등으로 서비스 질이 계속 악화했다. 프랑스 대표 강성(强性) 노조로 여겨지는 철도노조원인 직원들은 종신 고용 형태로서 혜택도 많아 체질 개선이 불가피했다. 이에 마크롱은 신입사원부터 복지・연금 혜택을 줄였으며,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운영체계의 개선, 국영철도공사 부채 줄여나가기 등의 개혁안으로 마무리 지었다.
 
  노조 강국인 프랑스에서 마크롱은 노동 개혁과 철도 개혁에 반발한 장기간 파업과 시위를 맞닥뜨렸지만, 노동조합 수장(首長)들을 따로 엘리제궁으로 초대하여 몇백 시간에 걸쳐 협상하며 설득했다.
 
 
  소통을 위한 대국민 토론회
 
자신의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벌어지자 마크롱 대통령은 전국을 돌면서 토론회를 열어 국민을 설득했다. 사진=AP/뉴시스
  그 후 마크롱 정부의 가장 큰 고비였던, 유류세(油類稅)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2018년 11월 시작된다. 초기에는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지만, 마크롱 정부가 유류세 인상을 철회한 후에는 서민경제 개선과 빈부(貧富)격차 문제 등 마크롱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불만을 표출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 당선 초기 62%로 시작했던 마크롱의 지지율은 23%까지 곤두박질쳤다. 마크롱은 위기 타개를 위해 대국민 토론(Grand débat national)을 주최했다.
 
  대국민 토론은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누구나 참여 가능한 무제한 토론이었다. 마크롱은 전국을 직접 돌며 국민과 토론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토론 전 마크롱은 ▲세금과 지출 ▲국가와 공공기관 ▲환경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4가지 테마 35개 세부 이슈를 국민에게 던졌다.
 
  마크롱은 2019년 1월 15일 노르망디에서 지방단체장 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도시와 소도시의 빈부격차’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시작으로, 3월에는 엘리제궁으로 지식인 64명을 초청하여 ‘불평등과 세금’ 등의 주제로 8시간 동안 치열한 토론을 하는 등 총 16회 토론에 직접 참여해 92시간 동안 토론을 펼쳤다.
 
  마크롱의 대토론회 영향으로 전국에 토론회가 만들어졌다. 3개월 동안 107개 도시에서 1만134개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온라인으로도 190만명이 넘는 시민이 개인의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으며, 1만6000건 분량의 요구사항이 나왔다.
 
  토론 시 나온 내용을 분석한 마크롱 정부는 논의를 거쳐 2019년 4월 25일 50억 유로의 소득세 인하, 최저 연금 금액을 1000유로로 설정하는 등 대책안을 내놓았다. 부유세의 경우 현재 부동산만을 과세 범위에 포함시키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동산에도 과세할 경우 국외 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다.
 
  대토론회 이후 마크롱의 저조한 지지율은 회복되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프랑스 정치권은 좌우 양당의 고착화가 진행된 상태였으나 좌우 양당의 사치와 부패, 무능으로 인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게 되었다. 이에 프랑스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적 개혁을 원했고,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프랑스를 현실 그대로 마주 보고 극복하며 미래의 프랑스에 대한 비전이 있는 인물을 원했다. 새로운 시대와 국민적 염원을 읽은 젊은 청년인 마크롱은 기존 정치인들을 먼저 찾아가지 않고, 젊고 유능하고 변화에 잘 대응하는 청년들과 새 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또한 양당이 차례로 집권했지만, 여전히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는 올랑드 정권이 실패로 인정한 좌 성향 정책들을 답습하고 있다. 노동과 각종 규제를 개혁하지 않는 최저 임금 인상, 부유세, 공공일자리 창출은 올랑드 정권이 보여주었듯이 우리나라의 미래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이념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청년 마크롱 같은 인물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 답은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마크롱은 리더로서 스스로 실력을 쌓으며 기회를 만들어갔다.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에게 발탁된 이유도 그가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앙 마르슈를 만든 이스마엘 에믈리앙, 세드리크 오 같은 청년들은 어리지만 실력과 전략을 겸비한 인재들이었다. 그들 누구도 성공을 위해 기존 정치인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실력과 열정에 감동해 후에 기존 정치인들이 마크롱을 지지했으며, 젊은 청년인 마크롱을 대선까지 이끌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좌우 양당에 실망한 중도층이 많아지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실력을 겸비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나온다면 분명 국민들은 그 청년들을 지지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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