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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축구선수 호날두, 제대로 알기

스포츠 스타 자선 랭킹 1위에 올라

글 : 장원재  축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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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청소부 어머니, 마약중독자 형을 둔 심장병 환자였던 축구선수 호날두
⊙ MU 퍼거슨 감독의 移籍 제안 전화 받고,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아도 돼요”
⊙ 가난 잊지 않고 성실한 생활, 소말리아 희귀병 아동 돕기, 네팔 지진 피해자 돕기 등에 거액 쾌척

張源宰
⊙ 48세.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런던대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자. 現 배나TV 대표.
⊙ 저서: 《논어를 축구로 풀다》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증언연극사》
    《오태석 연극-실험과 도전의 40년》 등.
호날두는 포르투갈의 섬마을 빈민가 출신으로 세계적인 축구스타가 되었다. 사진은 유로2012 8강전에서 활약하는 모습. 사진=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2003년 여름 한 프로축구단의 해외 전지(轉地)훈련 연습경기. 상대팀인 지역 프로팀의 열일곱 살 소년이 수비진을 초토화한다. 경기 내내 더그아웃에 앉은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우와, 감독님, 쟤 장난 아닌데요.”
 
  경기 후, 프로팀 감독은 “저 아이와 계약할 때까지 이 운동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음 날, 구단은 아예 전세기를 빌린다. 이 소년과 소년의 누나, 어머니 그리고 변호사를 위해서. 이 소년과의 계약은 그렇게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는 실화(實話)다. 이제 배역들의 실명을 거론해 보자.
 
  소년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 프로구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지역 프로팀은 스포르팅 리스본,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라이언 긱스, 퍼디난드, 스콜즈 그리고 네빌이다.
 
  2003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호날두는 6년 후 레알 마드리드로 적(籍)을 옮겼다. 바르셀로나 소속 리오넬 메시와 ‘당대 최고’의 타이틀을 두고 진행하는 스페인 1부리그 라리가에서의 세기의 결투는 아직 진행형이다. 거리에서, 부두에서, 기내에서, 전 세계 축구팬들은 이 둘 가운데 누가 최고냐를 놓고 끊임없이 격돌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메시와 호날두
 
  그런데 이 두 사람,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리오넬 메시는 여덟아홉 살 무렵부터 이미 천재로 주목을 받았지만, 호르몬 이상(異常) 때문에 키가 크지 않는 장애가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150cm 내외의 신장으로는 무엇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바르셀로나 구단은 메시의 놀라운 재능을 아껴 엄청난 모험을 했다. 메시 부모와 식사를 하던 중 낙담한 그들에게 냅킨에 사인한 ‘즉석 계약서’를 건넸다. 바르셀로나 구단이 이후 7~8년간 고액의 호르몬 주사를 투여하며 최선을 다한 끝에 160cm는 넘고 170cm에는 못 미치는 체격으로 메시를 길러낸 건 유명한 전설이다.
 
  그렇다면 호날두는? 그는 빈민가(貧民街)의 외톨이 소년이었다. 그의 고향은 마데이라 섬이다. 포르투갈령(領)이지만, 오히려 아프리카에 가까운 곳이다. 이 섬은 포르투갈에서는 1000여km, 모로코 해안에서는 640km 떨어져 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청소부였다. 어머니의 수입 70만원이 일곱 식구의 한 달 생활비였다고 한다. 아버지에게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형은 10대부터 마약중독자였다. 호날두는 가난이 싫어 가출을 했어도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인근 마을에도 가난한 사람들밖에는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축구가 그에게 말을 걸어 온 건 8할이 우연이다. 호날두는 늘 혼자였다. 가난한 사람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그를 동네 친구들은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초콜릿을 마음껏 먹어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꿈을 꾸던 소년은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다. 그때 호날두는 처음으로 희열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막내 호날두가 생애 처음으로 표현한 희망사항이었다. 그의 자서전은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기가 불가능하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구단은 가난한 소년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소년은 축구연습을 마치면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고 낡은 축구화를 수선해야 했다. 그것이 이 소년이 팀에 기여하고 회비를 내는 방식이었다.
 
 
  김진수 이야기
 
김진수 선수도 호날두처럼 어렵게 자랐지만 축구를 통해 인생을 개척했다.
  독자들이 허락하신다면, 공을 차면서 진정으로 희열을 느꼈다는 또 다른 선수를 소개하고 싶다. 지난 1월 아시안컵 연장전에서 결정적 실수로 결승골 허용의 빌미를 준 김진수 선수의 사연이다. 김진수 선수 아버지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진수가 어려서 집안이 망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나는 운전을, 진수 엄마는 식당 일을 하며 집을 비워야 했다. 동생 돌보기는 오직 진수의 몫이었다.
 
  어느 날, 모처럼 내 일이 일찍 끝나 진수가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기에 진수를 찾아 나섰는데, 진수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책임감 때문에 굳게 닫혀 있던 진수의 입이 그날은 귀에 걸려 있었다. 매 순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공을 차는 것이었다. 나는 진수가 그렇게 명랑한 아이인 줄 처음 알았다.
 
  조기축구 회원이던 나는 다음 날부터 진수와 틈날 때마다 축구를 하며 부자(父子)의 정(情)을 쌓았다. 지금도 진수는 나를 자기의 베스트 프렌드라고 한다.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한 아비에게는 과분한 칭찬이다.”
 
  실점(失點) 후 경기장에 엎드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김진수를 일으켜 세운 건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였다. 경기는 졌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원 팀’이 거기 있었다. 아시안컵 한국팀의 모든 경기 전 시간을 출전하며 온 몸이 부서져라 내달리던 김진수 선수의 투혼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결승전 실수보다는, 8강전 우즈베키스탄 전 연장전 0-0 상황, 상대 수비수의 살짝 어긋난 움직임을 끝까지 쫓아가며 공을 빼앗고 절친 손흥민의 다이빙 헤딩슛을 어시스트한 집념의 크로스를 더 가슴에 새긴다. 자, 다시 축구를 하며 희열을 느낀 또 다른 소년, 호날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가족들이 힘 모아 심장병 치료
 
호날두를 발굴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
사진=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구단은 호날두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15세 때 검진한 메디컬체크 결과 더 이상은 선수로 키울 수 없다는 뜻을 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는 질병이 호날두의 발목을 잡았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축구를 할 수 없고, 수술을 해도 선수를 계속할 확률은 반반이라는 이야기였다.
 
  수술비를 마련한 건 호날두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가족이다. 술과 마약을 끊고 취직을 했다. 두 누나를 포함, 전 가족이 몇 년간 분투를 한 덕에 가까스로 수술비와 재활비용을 마련했다. 구단에서도 수술비의 일부를 부담하며 호날두를 격려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마다 두려움에 떨던 소년은 수술실로 들어가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없이 울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재활을 마친 호날두는 축구에 몰두했다.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해도, 경기장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다시 그의 자서전을 인용한다.
 
  〈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많은 관중, 서포터스, 스포츠 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 한 통를 받았다. 자신을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를 이적(移籍)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戰慄)을 느꼈다.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바로 최고의 축구감독이라 평가 받는 퍼거슨 감독이었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며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기만 했다. 구멍 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되었다.〉
 
 
  퍼거슨, “내가 감독했던 선수 중 가장 출중한 선수”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내가 감독했던 선수 중 가장 출중한 재능을 지닌 선수이며, 내가 지도했던 다른 모든 위대한 선수들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퍼거슨에 따르면, 호날두는 아무리 형편없는 경기를 하더라도 언제나 세 번의 찬스는 만들어 내는 선수다. 호날두의 플레이를 직접 지켜보았던 운명의 토요일 아침, 퍼거슨은 감독을 하면서 가장 큰 기대와 흥분을 느꼈다고 한다. 보비 찰튼과 조지 베스트와 긱스의 장점을 섞어 놓은 듯한 천재의 출현. 그것은 ‘계시’였다.
 
  이 느낌이 대중에게 확산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3년 8월 16일 볼턴 원더러스와의 홈경기 교체 출전이 호날두의 맨유 데뷔전이다.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끊임없이 득점에 가까운 플레이를 연발하는 그를 두고 관중들은 마치 눈앞에 메시아가 나타난 걸 본 사람들처럼 열광했다. 동료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호날두는 그렇게 인간계를 벗어나 또 다른 경지로 훨훨 날아갔다.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한 지난 12년 동안, 호날두만큼 꾸준하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 경우는 없다.
 
 
  끝없는 선행
 
  가난한 섬마을 소년을 훌륭한 인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의 선행(善行)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에게 유행처럼 번진 문신을 호날두는 일절 하지 않았다. 헌혈(獻血) 때문이다. 문신을 하면 세균감염의 염려가 있어 6개월간 헌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일 년에 두 차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호날두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피’만 기증하는 것이 아니다. 포르투갈 대표팀 동료인 카를로스 마르틴스의 아들이 백혈병을 앓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호날두는 기꺼이 골수도 기증했다. “골수 채취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 다른 종류의 헌혈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간단한 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 이 축구천재의 말이다.
 
  백혈병이라면, 1986년 월드컵 득점왕 잉글랜드의 게리 리네커의 아들도 환자다. 아들뿐 아니라, 소아 환자들을 위해 백혈병 재단을 십여 년간 남모르게 후원해 온 리네커의 선행에 전 세계가 감동했다. 리네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호날두의 선행도 다른 사람을 통해 우연히 세상에 알려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피와 골수뿐 아니라, 호날두는 정기적으로 기부도 한다. 말로만 하는 선행이 아니라, 행동과 돈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다. 고향인 마데이라 섬에 홍수가 나 40여 명이 사망했을 때, 그는 경기복 상의에 ‘마데이라’를 손글씨로 쓰고 골 뒷풀이를 하지 않았다. 경기 후 150억원을 수재의연금으로 냈다. 소말리아 지역의 희귀병 아동들을 위해서는 3000만 달러(360억원)를 기부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계획에도 거액을 내놓았다.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가 자신의 팬이라는 사연을 보내 오자 그 어린이를 경기장으로 불러 직접 만남의 시간을 갖고 아예 치료비 전액을 대기로 했다. 최근 네팔 지진 때는 700만 유로(86억원)를 기꺼이 쾌척했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아동 가운데 유소년 축구선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이 소년이 조난 당시에 입고 있었던 옷이 포르투갈 대표팀 셔츠였다) 유럽으로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자신의 첫 소속팀이던 스포르팅 리스본에 입단하도록 주선했다.
 
 
  어머니, “형을 살린 건 동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날두는 축구장의 모든 스태프와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자주 밥을 사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경기장 관리인들 및 그들의 가족과 겹쳐 보여서란다. 호날두는 미국의 자선재단이 발표한 스포츠스타 기부왕 랭킹 1위를 몇 년째 고수하고 있다. 2015년 랭킹 4위가 대한민국의 김연아다.
 
  이쯤에서, 호날두의 가족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 터이다. 그의 아버지는 52세 때 사망했다. 사인은 알코올중독이다. 아들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꼬박꼬박 챙겨 보며 동네 사람들에게 수줍게 내보이던 이 사나이는 결국 술의 독성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망일이 A매치데이여서 호날두는 라커룸에서 부친의 부고를 들었다. 호날두는 그래서 지금도 술과 담배를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형 휴고는 호날두가 영국에서 보내 오는 돈으로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마약중독에서 벗어났다. 호날두의 어머니는 “형을 살린 것은 동생이다”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두 누나는 맨체스터의 집에 함께 기거하며 호날두의 영국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큰누나 엘마는 디자이너의 재능이 있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그리고 동생 호날두를 위해 자신의 꿈을 접었다. 호날두는 엘마를 위해 ‘CR7’라는 부티크를 차려 주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작은누나 카티야는 호날두의 도움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예명은 호날두의 여성형인 ‘호날다’다. 카티야의 남편 제는 현재 호날두의 매니저다.
 
  맨체스터 시절, 호날두는 어머니와 누이와 매형과 조카 등, 열 네 명이 큰 집에 함께 살았다. 호날두는 말한다.
 
  “고향에서는 어머니는 늘 일을 나가셨고, 아버지는 거리 어딘가에서 술을 드셨다. 나는 늘 가족이 그리웠다. 마데이라 섬에서 리스본으로 가던 날, 비행기 안에서 가족이 보고 싶어 계속 울었다. 맨체스터에서 나는 평생 처음으로 가족과 매일 얼굴을 맞대며 지냈다. 대가족이 한곳에 모여 살았기에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기에 축구에 전념하는 것이 가능했다. 늘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가족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클레멘테에 버금가는 善行王
 
  세계 스포츠계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선행왕(善行王)이 있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로베르토 클레멘테(1934~1972)다. 그의 유니폼은 구단 공식매장에서 아직도 현역선수들의 옷처럼 팔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플레이어, 타격왕 4회,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1966),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1971), 니카라과 난민을 돕기 위해 구호물자를 싣고 가다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선행의 아이콘이다. 1955년 피츠버그에 입단해 계속 한 팀에서 활약한 원 클럽 맨. 피츠버그 팬들에게 그는 영원히 살아 있는 ‘우리 선수, 우리 영웅’이다. 경기장인 PNC 파크로 건너가는 철교의 이름도 로베르토 클레멘테 브리지다. 클레멘테는 야구장 밖에서 메이저리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진정한 영웅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선행을 베푼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수여하는 상이 클레멘테 상이다.
 
  호날두라면 클레멘테에 버금가는 선행왕이 아닐까? 그의 이름을 딴 상이 훗날 하나쯤 생겨도 좋지 않을까?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나눔의 삶’을 실천한 호날두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난 박수를 보낸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 아버지가 되었지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법이 아니던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면, 공을 돋우고 허물은 크게 책하지 않는 것이 미덕일 터이다. 그의 선행이 많은 이들에게 앞으로도 빛으로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호날두는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정말로 훌륭한 인간이다.
 
 
  이 글을 탈고한 지난 9월 12일, 호날두는 스페인리그 라리가 정규리그 3라운드 경기 대 에스파뇰 전에서 홀로 다섯 골을 넣고 도움 하나를 기록하며 팀의 6 대 0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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