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문화대혁명-産兒제한-실직 등 온갖 풍파 다 겪은 ‘文革세대’
⊙ 정치민주화나 對한반도정책에서는 당분간 보수적 태도 보일 것
⊙ 韓中관계에서는 영토분쟁보다는 역사·문화분쟁이 더 큰 변수
閔貴植
⊙ 46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과 석사·박사 졸업.
⊙ 현대중국학회 총무위원장·학술위원장 역임. 현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저서 : 《중화전통과 현대중국》(공저), 《협상은 문화다》(공저).
⊙ 정치민주화나 對한반도정책에서는 당분간 보수적 태도 보일 것
⊙ 韓中관계에서는 영토분쟁보다는 역사·문화분쟁이 더 큰 변수
閔貴植
⊙ 46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과 석사·박사 졸업.
⊙ 현대중국학회 총무위원장·학술위원장 역임. 현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저서 : 《중화전통과 현대중국》(공저), 《협상은 문화다》(공저).
- 지난 3월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 입장하고 있는 중국 지도부. 제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 총서기와 원자바오 총리, 5세대 지도부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모습이 보인다.
동북아(東北亞) 지역에서 신냉전(新冷戰)이 등장하고 주요 국가의 권력교체가 맞물리면서 영토분쟁을 매개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동북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의 색채의 강화는 단순한 대외(對外)전략 차원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 장기적인 경향성을 보인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경우 장기(長期)불황에 따른 열패감(劣敗感)을 만회하기 위해 우익(右翼)논리가 득세하는 형국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커진 국력을 바탕으로 근대사의 치욕을 씻고 과거의 영화(榮華)를 되찾자는 열정과 자부심을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 정도이다.
따라서 중화(中華)민족주의의 대두는 단순히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쇠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위해 정치공학적(政治工學的)으로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중화민족주의는 범(汎)국민적 현상이다. 이는 중화민족주의가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고(思考)방식을 지배할 문화적 흐름이라는 의미이다. 중화민족주의는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바다와 같아서 중국지도부가 의도하지 않는 영역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에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구성되는 지도부는 ‘문혁(文革)세대’로 지칭되는 제5세대 지도부다. 이와 함께 향후 ‘5세대 지도부’의 뒤를 이어 중국을 이끌어 갈 ‘개혁개방 1세대’인 6세대가 이들을 떠받치게 된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경험과 일반적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지도자라고 해도 자신이 속한 세대의 특수한 경험에서 형성된 인식구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세대’
중국의 정치·경제 특성은 크게 보면 개혁개방을 전후(前後)로 두 세대로 나뉘지만, 정치지도자는 ‘정치세대’별로 세분화된다.
원래 ‘정치세대’라는 학문적인 용어는 없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장쩌민(江澤民)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즉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을 제1세대, 자신을 제2세대, 장쩌민을 제3세대로 규정하여 장쩌민에게 정통성을 부여해 그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후진타오(胡錦濤)를 제4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체제를 제5세대 지도자로 부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제1세대는 1934 ~35년 사이의 대장정(大長征)을 경험한 세대, 제2세대는 1937~45년 사이의 항일(抗日)전쟁과 1945~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 참여한 세대, 제3세대는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입당(入黨)한 세대가 된다. 제4세대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이전 대학을 마친 세대가 주축이다.
제5세대는 문화대혁명을 겪는 동안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문혁세대’를 지칭한다. 그래서 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도 하고, 홍위병(紅衛兵) 활동을 하다 농촌으로 하방(下放)된 ‘지식청년(知靑)세대’라고도 한다. 제5세대는 한국의 ‘4·19세대’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는 이들이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면서도 경제성장 이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앞으로 10년 후 시진핑의 뒤를 이어받을 제6세대는 ‘개혁개방 1세대’로 문혁이 끝나고 정상적인 대학교육 혜택을 받은 소위 ‘78학번’ 이후 세대이다. 6세대는 5세대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고속승진을 한 ‘행운의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 중앙정부나 성(省)정부에서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주요기관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제7세대는 대학생 신분으로 1989년 톈안먼사건을 겪은 세대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들도 이미 40대가 되어 행정의 주요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볼 대상이다.
중국공산당 간부의 임기는 5년이고 연임(連任)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정치세대의 활동주기를 10년으로 본다. 따라서 세대교체 대주기에 해당하는 2012년 제18차 당 대회는 단순히 제5세대 지도부만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진행된 각급 간부교체를 최종 정리하는 행사이다. 왜냐하면 당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2011년 1월부터 1년여에 거쳐 기층(基層)단위인 향진(鄕鎭)에서부터 각급 당 간부를 새로 선발했고, 그 최종적인 결과가 제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와 중앙정치국상무위원 및 정치국원 선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 제18차 당 대회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간부가 30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간부교체라 하겠다. 당 대회에 참석할 2270명의 선발도 마쳤는데, 이들 가운데 성(省)급 상무위원의 29.28%인 118명이 1960년 이후 출생자다.
悲運의 文革세대
제5세대가 정치지도자에 대한 구분이라면, 동(同) 세대의 일반인은 ‘문혁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당 간부는 이들 문혁세대 가운데서 대학에 입학했거나 권력에 진입한 엘리트이자 행운아들이지만, 보통 인민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겪어 왔다.
첫째, 이들은 2500만명 이상이 아사(餓死)한 대약진운동시기(1958~60년)에 유년기를 보냈다.
둘째, 중·고등학교 때 문화대혁명의 광풍(狂風)이 몰아쳐 교육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1978년 대학에 진학한 소수(少數)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사회엘리트로 성장할 기회를 봉쇄당했다.
셋째, 성년이 되자 한 자녀 출생이 법제화(法制化)되어 자녀 출산의 자유를 제한 받은 첫 세대가 되었다.
넷째, 국유기업 개혁이 단행되자 가장 먼저 방출(放出)대상이 되어 실업자로 전락했다. 앞 세대는 국가의 전적인 보호를 받았고 뒷 세대는 정규교육을 받아 실력을 갖추었으나, 문혁세대는 샌드위치가 되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은 사회보장제도 붕괴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국가의 사회보장 책임이 개인책임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은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자식들의 부양은 기대하기 힘든 첫 세대가 되었다.
결국 이들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개혁개방 성공을 일구어낸 일꾼이었지만, 그 과실(果實)을 누리기보다 개혁의 그늘에 가려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대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에서 최단(最短)시간에 가장 빈부(貧富)격차가 큰 나라로 변했음에도 사회적 집단저항이 약한 것은 어려서부터 인내력으로 단련된 이 문혁세대가 사회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혁세대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성이 갖춰지는 청소년기에 맹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보았거나, 그러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세대이다. 그래서 문혁의 최대 폐해를 ‘도덕의 진공(眞空)’으로 진단하는 학자가 있을 만큼 문혁세대는 거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이들은 ‘사회주의 도덕’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까지도 부정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중화주의 부활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젊은 세대와는 문화적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保守的
제5세대 지도부의 특성을 분석하려면 이들의 성장환경과 정치적 성공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이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청소년기를 이데올로기 광풍 속에 보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경제를 선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적(保守的)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러한 보수성은 집단지도체제에서 더욱 강화되는 일반론에서 본다면, 중국의 정치민주주화는 여전히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들 지도부도 ‘잃어버린 세대’의 일원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최고 지도부에 진입이 예상되는 인사들도 대부분 지위가 올라간 이후에 석·박사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기간 농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제5세대 지도부는 4세대와 함께 외국유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이전 세대는 소련 유학의 기회가 있었고, 6세대는 개혁개방 이후 유학 문턱이 낮아진 반면, 제4·5세대는 이런 기회가 봉쇄되었던 시기를 지나왔던 것이다.
셋째, 제5세대 지도부는 지방에서 행정경험을 쌓고 지방에서 실적을 기반으로 성장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최고지도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방행정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인사원칙을 창출한 세대로도 평가된다. 이들의 실적은 대부분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득증가를 견인한 경제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향후 중국은 여전히 성장을 위주로 한 경제정책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지방행정에서 체험한 대중과의 스킨십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치개혁보다는 행정개혁을 강조하면서 대중의 행정서비스 개선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당 총서기의 영향력 축소
이런 성장배경을 둔 제5세대 지도부가 채택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주요 원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화주의를 앞세우며 국가적 자부심을 충족시켜 달라는 대중의 요구를 받고 있다. 이것은 영토분쟁에서 중국이 강력한 대응을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경제건설을 최우선으로 하고 이를 위해 정치안정과 개혁개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1개 중심(中心) 2개 기본점(基本點)’ 원칙을 전략적으로 견지한다. 이 대원칙 때문에 중국이 ‘힘의 외교’ 행태를 보이지만 평화무드를 깨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핵심이익’ 개념을 강조하면서 자기 목소리와 국가이익을 관철시키겠다(有所作爲)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핵심이익’ 강조는 그동안 중국이 강조해 온 ‘매력 공세(소프트파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동북아의 국제질서를 놓고 미국과 이해충돌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호기로 판단하면서 미국 중심의 동북아질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제한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어 이 문제가 향후 동북아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요인이 될 것이다.
다섯째, 당 총서기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축소되고 집단지도체제가 강화되면 대외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 제18차 당 대회는 보시라이(薄熙來) 실각 등 어느 때보다 심각한 권력갈등을 겪고 있다. 또 지도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공청단(共靑團), 태자당(太子黨), 상하이방(上海邦)의 권력분점이 원만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있는 군부(軍部) 강경파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운의 ‘78학번’
제6세대 지도부와 조응하는 일반인은 ‘개혁개방 1세대’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앞 세대가 ‘불운(不運)의 세대’였다면 이들은 반대로 ‘행운의 세대’라 할 만하다.
먼저, 이들은 문화혁명의 짓눌림에서 벗어나려는 분위기가 강한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거나 사회활동을 시작해서 어느 세대도 느끼지 못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보았다. 1989년 톈안먼사태 이전까지가 중국 언론이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시대의 공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78학번’ 프리미엄으로 엘리트계층에 쉽게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계층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78학번 프리미엄’은 정치·행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천카이거(陳凱歌)가 모두 78학번인 것만 보아도 이들의 행운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이들은 젊은 간부 육성정책의 혜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이다. 이들은 문혁 이후 정상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기 때문에 사회 각 분야에서 별다른 경쟁 없이 사회의 리더가 될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유리한 환경은 제6세대 리더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따라서 6세대 이후부터는 시대상황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치적 성장속도가 좌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세대 연령에 속한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 서기는 벌써 제1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상무위원 진입이 점쳐질 정도이고, 1963년 동년배인 순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서기도 동기들보다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이들 제6세대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위가 되는 상황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2020년대 중국이 더욱 강력해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할 때 이들이 바로 정책결정의 키를 쥐고 있을 것이다.
톈안먼사태 이전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았고, 시장경제의 수혜자인 이들 ‘개혁개방 1세대’와 그를 대표하는 제6세대가 맞닥뜨릴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정치민주화 요구에 대한 대응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이 국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으려면 소프트파워를 포함한 ‘종합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구체적인 임무가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결국 이들의 과제는 ‘중국의 가치’와 ‘글로벌 가치’를 얼마나 일치시킬 수 있느냐로 좁혀질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민주화와 직결되는 형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제6세대는 공산당 차원에서 정치민주화를 위한 각종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최초의 지도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韜光養晦로부터의 탈피
동북아 국제질서 변동은 미국과 중국의 사활적(死活的) 이익이 걸린 문제다. 중국은 1990년대까지 미국의 견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외교(도광양회·韜光養晦)를 전개했으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이후 소프트파워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더니,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서 세계적인 차원의 리더로 행동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2009년 ‘경제·전략대화’를 통해 동북아의 가장 주요한 국가임을 확인했고, 2011년 1월 미·중(美中) 정상회담을 통해 세계적인 차원에서 G2국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아전략은 아직까지 방향이 명확하게 수립된 상태는 아니다. 중국이 동북아질서에 균열을 내는 주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질서를 일거에 변화시킬 역량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호주와 뉴질랜드 등이 미국과 동맹을 추진하거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모두 중국의 지역전략이 쉽지 않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중국은 지역문제에 대해 미국과의 강대국 외교를 가장 중시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외교와 지역 내 다자(多者)외교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가 아시아 각국을 미국 편으로 돌리는 우(愚)를 범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동안 주변국과 쌍무(雙務)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다자협력을 주창하는 기존의 방향을 유지할 것이다.
빠링허우의 ‘자긍적 민족주의’
중국 대중의 중화주의는 전통에 대한 재인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주의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 왔으나, 1997년 제15차 당 대회에서 장쩌민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부터 중화민족주의가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은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열망을 다민족(多民族)으로 구성된 국가의 내부통합과 발전 극대화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21세기 중화민족주의의 성격을 보면, ‘자긍적 민족주의(confident nationalism)’로 이전의 ‘상처받은 민족주의’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중화민족주의는 근대사의 수치를 보상받으려는 심리와 결합하면서 주변국에 대한 공격성향을 보인다.
민족주의에 대한 세대별 온도 차이도 존재하는데, 특히 인터넷을 활용한 젊은 세대의 애국심 조장은 주변 국가의 우려를 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 1세대는 경제적 성공과정에 자부심을 갖는 측면이 강하다면, ‘빠링허우(80년 이후 출생자)’는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과거의 영화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도 자부심으로 무장한 특성을 보인다. 최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과정에서 이들은 단순한 민족감정 표출을 넘어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중국 대중의 이런 민족주의는 앞으로 제5·6세대 지도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대외문제를 풀어 갈 때 중화민족주의는 중요한 변수(變數)로 등장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8년 이후 중국의 지도부 가운데 일부는 기존의 ‘발전도상국론’을 뛰어넘어 ‘신흥강대국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았다. 전자(前者)가 경제발전을 위해 분쟁을 최대한 관리하는 전략이라면, 후자(後者)는 분쟁도 마다하지 않고 국가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경향은 제5세대 지도부에서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각 파벌이 영토문제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일본과 극단적 대립을 조장한 것이 그 증거다. 중국 지도부는 2010년 센카쿠 충돌사태 때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함으로써 그동안 쌓아 올린 소프트파워 전략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영토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지도부는 더욱 강경하게 일본을 몰아세웠다. 여기서 우리는 영토분쟁을 이전보다 쉽게 생각하는 제5세대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역사분쟁 해결 쉽지 않아
중국은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던 근대의 기억 때문에 역사나 영토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1960년대 인도, 소련과 영토문제로 무력분쟁을 겪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1990년대는 경제건설이라는 대전략에 부응하기 위해 주변국과 협상을 통해 국경문제를 매듭지어 왔다. 그러던 것이 해양의 전략적(戰略的) 가치가 커지고 에너지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다시 센카쿠(댜오위다오)와 난사(南沙)군도에서 무력을 동반한 강압적인 방법으로 소유권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한·중(韓中) 역사문제 분쟁은 한·일(韓日)의 그것보다 복잡하고 해결도 험난할 것이다. 한국의 역사무대가 중국영토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 충돌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역사를 보는 중국의 관점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과거의 역사는 현재에 복무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서남공정(西南工程·티베트 역사 편입), 서북공정(西北工程·위구르 역사 편입)을 통해 그 지역의 과거까지도 자국(自國)의 역사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중국은 동북지역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과도기적인 방법으로 ‘일사양용(一史兩用)’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중국사이면서 동시에 한국사라는 입장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현재 자국 영토가 과거에는 다른 나라의 영토였던 경우에 그 지역의 역사는 관련국의 역사로 인정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역사까지 바꿔 현재 영토와 과거의 역사를 일치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중국 변경사(邊境史)공정은 대단히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지도부가 교체되어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한·중 역사문제는 언제든지 갈등이 점화할 수 있는 강한 인화성(引火性)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화민족주의가 강화되어도 역사문제와 달리 한·중 양국은 영토문제로 크게 충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국이 비록 서해바다의 배타적 경제수역 획정을 놓고 여전히 이견(異見)을 보이고, 이어도가 2008년 서명된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공동수역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영토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갈등은 ‘역사문제’와 ‘문화종주권’을 둘러싼 문제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2005년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한 이후, 중국은 2011년 아리랑, 씨름, 판소리, 조선족 혼례 등을 ‘제3차 국가 무형유산’으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양국에서 민간차원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결국 한·중 갈등은 인터넷민족주의 확산과 문화주권 논쟁 등 주로 민간영역의 갈등이 국가영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런 갈등은 그 강도가 높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해결 방법이 어렵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
중국의 대북(對北)정책은 양자(兩者)관계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안보프레임을 강화하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한다. 중국은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이 한반도 차원을 뛰어넘은 데다 미사일방어(MD) 정책이 구체화되자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래서 일부 ‘북한 부담론’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중국은 ‘북한 자산론(資産論)’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타이완카드를 가지고 있는 한, 북한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10년 1월 미국이 64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타이완에 판매하기로 발표하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해 6월 타이완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해 ‘차이완(Chiwan, china+taiwan)’ 시대를 열었다. 이는 중국이 ‘정경분리(政經分離)원칙’을 적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양안(兩岸)관계 개선에 따라 미국의 타이완카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의 타이완카드를 명분 삼아 북한카드를 계속 쥐고 있기를 희망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중국의 대(對) 한반도정책은 미·중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한·중관계나 북·중(北中)관계가 하위개념으로 자리매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위상이 강화될수록 이런 위험성은 커진다. 한국의 경제규모와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단순하게 미·중관계 속에서 한반도가 규정될 만큼 작지는 않다. 전략적으로도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로 회귀함에 따라 북·중협력 필요성이 커졌고, 한국과도 쌍무적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정책주도권이 분산되면서 민족주의 색체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대외정책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확대되면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흐름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독자적인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한국의 안보와 외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즉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려는 전략을 쓸 때,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협력이나 공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聯美聯中전략 펴야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중국의 부상이 불러올 전략적 딜레마가 한국만큼 큰 나라도 없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중국은 이미 한반도문제에서 미국과 더불어 중요한 이해상관자(stakeholder)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경제교류가 확대되면 양국관계는 평화모드로 전환한다고 말한다. 한·중관계는 경제는 뜨겁지만 외교는 미지근하고 안보는 냉랭한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한·중 간에 한랭(寒冷)전선이 형성된 것은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큰 원인이 있다. 한·중의 거래규모나 지정학적 측면에서 우리의 외교안보가 한·미동맹이라는 양자관계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한·미관계가 오래 전에 복합화되었듯이 한·중관계도 복합화될 수밖에 없다는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한반도의 평화지수를 높이고 안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과 신뢰를 구축하고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의 신뢰관계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에서 보면 한·미동맹 강화가 신뢰구축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대중국 전략카드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이 한반도평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유지에도 공공재(公共財)로 기능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둘째, 우리가 중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 방법은 중·장기적으로는 연미연중(聯美聯中)전략으로 선회해야 하겠지만, 단기전략으로는 연미화중(聯美和中)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연미통중(聯美通中) 단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보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과감하게 관행의 틀을 깨야 할 때이다.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도래한 현실에서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과 신뢰구축을 보다 더 강화하는 양면전략을 써야 한다. 미·중관계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갈등과 협력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중화(中華)민족주의의 대두는 단순히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쇠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위해 정치공학적(政治工學的)으로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중화민족주의는 범(汎)국민적 현상이다. 이는 중화민족주의가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고(思考)방식을 지배할 문화적 흐름이라는 의미이다. 중화민족주의는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바다와 같아서 중국지도부가 의도하지 않는 영역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에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구성되는 지도부는 ‘문혁(文革)세대’로 지칭되는 제5세대 지도부다. 이와 함께 향후 ‘5세대 지도부’의 뒤를 이어 중국을 이끌어 갈 ‘개혁개방 1세대’인 6세대가 이들을 떠받치게 된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경험과 일반적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지도자라고 해도 자신이 속한 세대의 특수한 경험에서 형성된 인식구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세대’
중국의 정치·경제 특성은 크게 보면 개혁개방을 전후(前後)로 두 세대로 나뉘지만, 정치지도자는 ‘정치세대’별로 세분화된다.
원래 ‘정치세대’라는 학문적인 용어는 없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장쩌민(江澤民)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즉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을 제1세대, 자신을 제2세대, 장쩌민을 제3세대로 규정하여 장쩌민에게 정통성을 부여해 그의 부족한 카리스마를 보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후진타오(胡錦濤)를 제4세대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체제를 제5세대 지도자로 부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제1세대는 1934 ~35년 사이의 대장정(大長征)을 경험한 세대, 제2세대는 1937~45년 사이의 항일(抗日)전쟁과 1945~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 참여한 세대, 제3세대는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입당(入黨)한 세대가 된다. 제4세대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이전 대학을 마친 세대가 주축이다.
제5세대는 문화대혁명을 겪는 동안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문혁세대’를 지칭한다. 그래서 이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도 하고, 홍위병(紅衛兵) 활동을 하다 농촌으로 하방(下放)된 ‘지식청년(知靑)세대’라고도 한다. 제5세대는 한국의 ‘4·19세대’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는 이들이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면서도 경제성장 이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앞으로 10년 후 시진핑의 뒤를 이어받을 제6세대는 ‘개혁개방 1세대’로 문혁이 끝나고 정상적인 대학교육 혜택을 받은 소위 ‘78학번’ 이후 세대이다. 6세대는 5세대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고속승진을 한 ‘행운의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아직 중앙정부나 성(省)정부에서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주요기관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제7세대는 대학생 신분으로 1989년 톈안먼사건을 겪은 세대라고 잠정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들도 이미 40대가 되어 행정의 주요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볼 대상이다.
중국공산당 간부의 임기는 5년이고 연임(連任)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정치세대의 활동주기를 10년으로 본다. 따라서 세대교체 대주기에 해당하는 2012년 제18차 당 대회는 단순히 제5세대 지도부만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진행된 각급 간부교체를 최종 정리하는 행사이다. 왜냐하면 당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2011년 1월부터 1년여에 거쳐 기층(基層)단위인 향진(鄕鎭)에서부터 각급 당 간부를 새로 선발했고, 그 최종적인 결과가 제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와 중앙정치국상무위원 및 정치국원 선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 제18차 당 대회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간부가 30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간부교체라 하겠다. 당 대회에 참석할 2270명의 선발도 마쳤는데, 이들 가운데 성(省)급 상무위원의 29.28%인 118명이 1960년 이후 출생자다.
悲運의 文革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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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표지의《마오쩌둥어록》을 손에 들고 열광하는 젊은 홍위병들. 이들과 같은 세대인 5세대 지도부는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
첫째, 이들은 2500만명 이상이 아사(餓死)한 대약진운동시기(1958~60년)에 유년기를 보냈다.
둘째, 중·고등학교 때 문화대혁명의 광풍(狂風)이 몰아쳐 교육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1978년 대학에 진학한 소수(少數)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사회엘리트로 성장할 기회를 봉쇄당했다.
셋째, 성년이 되자 한 자녀 출생이 법제화(法制化)되어 자녀 출산의 자유를 제한 받은 첫 세대가 되었다.
넷째, 국유기업 개혁이 단행되자 가장 먼저 방출(放出)대상이 되어 실업자로 전락했다. 앞 세대는 국가의 전적인 보호를 받았고 뒷 세대는 정규교육을 받아 실력을 갖추었으나, 문혁세대는 샌드위치가 되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은 사회보장제도 붕괴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국가의 사회보장 책임이 개인책임으로 전환되면서 이들은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자식들의 부양은 기대하기 힘든 첫 세대가 되었다.
결국 이들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개혁개방 성공을 일구어낸 일꾼이었지만, 그 과실(果實)을 누리기보다 개혁의 그늘에 가려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대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에서 최단(最短)시간에 가장 빈부(貧富)격차가 큰 나라로 변했음에도 사회적 집단저항이 약한 것은 어려서부터 인내력으로 단련된 이 문혁세대가 사회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혁세대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인성이 갖춰지는 청소년기에 맹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보았거나, 그러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세대이다. 그래서 문혁의 최대 폐해를 ‘도덕의 진공(眞空)’으로 진단하는 학자가 있을 만큼 문혁세대는 거친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이들은 ‘사회주의 도덕’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전통문화와 미풍양속까지도 부정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중화주의 부활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젊은 세대와는 문화적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保守的
제5세대 지도부의 특성을 분석하려면 이들의 성장환경과 정치적 성공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이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청소년기를 이데올로기 광풍 속에 보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경제를 선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적(保守的)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러한 보수성은 집단지도체제에서 더욱 강화되는 일반론에서 본다면, 중국의 정치민주주화는 여전히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들 지도부도 ‘잃어버린 세대’의 일원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최고 지도부에 진입이 예상되는 인사들도 대부분 지위가 올라간 이후에 석·박사 학위를 받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기간 농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제5세대 지도부는 4세대와 함께 외국유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이전 세대는 소련 유학의 기회가 있었고, 6세대는 개혁개방 이후 유학 문턱이 낮아진 반면, 제4·5세대는 이런 기회가 봉쇄되었던 시기를 지나왔던 것이다.
셋째, 제5세대 지도부는 지방에서 행정경험을 쌓고 지방에서 실적을 기반으로 성장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최고지도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방행정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인사원칙을 창출한 세대로도 평가된다. 이들의 실적은 대부분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득증가를 견인한 경제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향후 중국은 여전히 성장을 위주로 한 경제정책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지방행정에서 체험한 대중과의 스킨십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치개혁보다는 행정개혁을 강조하면서 대중의 행정서비스 개선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당 총서기의 영향력 축소
이런 성장배경을 둔 제5세대 지도부가 채택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주요 원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화주의를 앞세우며 국가적 자부심을 충족시켜 달라는 대중의 요구를 받고 있다. 이것은 영토분쟁에서 중국이 강력한 대응을 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경제건설을 최우선으로 하고 이를 위해 정치안정과 개혁개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1개 중심(中心) 2개 기본점(基本點)’ 원칙을 전략적으로 견지한다. 이 대원칙 때문에 중국이 ‘힘의 외교’ 행태를 보이지만 평화무드를 깨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이 ‘핵심이익’ 개념을 강조하면서 자기 목소리와 국가이익을 관철시키겠다(有所作爲)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핵심이익’ 강조는 그동안 중국이 강조해 온 ‘매력 공세(소프트파워)’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동북아의 국제질서를 놓고 미국과 이해충돌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호기로 판단하면서 미국 중심의 동북아질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제한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어 이 문제가 향후 동북아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요인이 될 것이다.
다섯째, 당 총서기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축소되고 집단지도체제가 강화되면 대외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 제18차 당 대회는 보시라이(薄熙來) 실각 등 어느 때보다 심각한 권력갈등을 겪고 있다. 또 지도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공청단(共靑團), 태자당(太子黨), 상하이방(上海邦)의 권력분점이 원만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있는 군부(軍部) 강경파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운의 ‘7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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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학번’의 세계적 영화감독인 장이머우(왼쪽)와 천카이거. |
먼저, 이들은 문화혁명의 짓눌림에서 벗어나려는 분위기가 강한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거나 사회활동을 시작해서 어느 세대도 느끼지 못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보았다. 1989년 톈안먼사태 이전까지가 중국 언론이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시대의 공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78학번’ 프리미엄으로 엘리트계층에 쉽게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엘리트계층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78학번 프리미엄’은 정치·행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천카이거(陳凱歌)가 모두 78학번인 것만 보아도 이들의 행운을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이들은 젊은 간부 육성정책의 혜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이다. 이들은 문혁 이후 정상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기 때문에 사회 각 분야에서 별다른 경쟁 없이 사회의 리더가 될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유리한 환경은 제6세대 리더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따라서 6세대 이후부터는 시대상황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치적 성장속도가 좌우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세대 연령에 속한 후춘화(胡春華) 네이멍구(內蒙古) 서기는 벌써 제1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상무위원 진입이 점쳐질 정도이고, 1963년 동년배인 순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서기도 동기들보다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이들 제6세대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위가 되는 상황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2020년대 중국이 더욱 강력해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할 때 이들이 바로 정책결정의 키를 쥐고 있을 것이다.
톈안먼사태 이전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보았고, 시장경제의 수혜자인 이들 ‘개혁개방 1세대’와 그를 대표하는 제6세대가 맞닥뜨릴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정치민주화 요구에 대한 대응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이 국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으려면 소프트파워를 포함한 ‘종합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구체적인 임무가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결국 이들의 과제는 ‘중국의 가치’와 ‘글로벌 가치’를 얼마나 일치시킬 수 있느냐로 좁혀질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민주화와 직결되는 형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제6세대는 공산당 차원에서 정치민주화를 위한 각종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최초의 지도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韜光養晦로부터의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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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제6세대 지도부의 선두 주자인 후춘화(왼쪽)와 순정차이(오른쪽). |
따라서 중국은 지역문제에 대해 미국과의 강대국 외교를 가장 중시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외교와 지역 내 다자(多者)외교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가 아시아 각국을 미국 편으로 돌리는 우(愚)를 범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동안 주변국과 쌍무(雙務)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다자협력을 주창하는 기존의 방향을 유지할 것이다.
빠링허우의 ‘자긍적 민족주의’
중국 대중의 중화주의는 전통에 대한 재인식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주의를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 왔으나, 1997년 제15차 당 대회에서 장쩌민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부터 중화민족주의가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은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열망을 다민족(多民族)으로 구성된 국가의 내부통합과 발전 극대화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21세기 중화민족주의의 성격을 보면, ‘자긍적 민족주의(confident nationalism)’로 이전의 ‘상처받은 민족주의’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중화민족주의는 근대사의 수치를 보상받으려는 심리와 결합하면서 주변국에 대한 공격성향을 보인다.
민족주의에 대한 세대별 온도 차이도 존재하는데, 특히 인터넷을 활용한 젊은 세대의 애국심 조장은 주변 국가의 우려를 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개혁개방 1세대는 경제적 성공과정에 자부심을 갖는 측면이 강하다면, ‘빠링허우(80년 이후 출생자)’는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과거의 영화뿐만 아니라 현 상황에도 자부심으로 무장한 특성을 보인다. 최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과정에서 이들은 단순한 민족감정 표출을 넘어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중국 대중의 이런 민족주의는 앞으로 제5·6세대 지도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대외문제를 풀어 갈 때 중화민족주의는 중요한 변수(變數)로 등장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8년 이후 중국의 지도부 가운데 일부는 기존의 ‘발전도상국론’을 뛰어넘어 ‘신흥강대국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았다. 전자(前者)가 경제발전을 위해 분쟁을 최대한 관리하는 전략이라면, 후자(後者)는 분쟁도 마다하지 않고 국가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경향은 제5세대 지도부에서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각 파벌이 영토문제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일본과 극단적 대립을 조장한 것이 그 증거다. 중국 지도부는 2010년 센카쿠 충돌사태 때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함으로써 그동안 쌓아 올린 소프트파워 전략이 한순간에 무너졌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영토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지도부는 더욱 강경하게 일본을 몰아세웠다. 여기서 우리는 영토분쟁을 이전보다 쉽게 생각하는 제5세대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역사분쟁 해결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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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중국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일(反日)시위. 제5~6세대 지도부는 급증하는 민족주의 요구를 잘 다스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
한·중(韓中) 역사문제 분쟁은 한·일(韓日)의 그것보다 복잡하고 해결도 험난할 것이다. 한국의 역사무대가 중국영토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 충돌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역사를 보는 중국의 관점이 우리와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과거의 역사는 현재에 복무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서남공정(西南工程·티베트 역사 편입), 서북공정(西北工程·위구르 역사 편입)을 통해 그 지역의 과거까지도 자국(自國)의 역사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중국은 동북지역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과도기적인 방법으로 ‘일사양용(一史兩用)’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중국사이면서 동시에 한국사라는 입장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현재 자국 영토가 과거에는 다른 나라의 영토였던 경우에 그 지역의 역사는 관련국의 역사로 인정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중국은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의 역사까지 바꿔 현재 영토와 과거의 역사를 일치시키려고 한다.
이렇게 중국 변경사(邊境史)공정은 대단히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지도부가 교체되어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한·중 역사문제는 언제든지 갈등이 점화할 수 있는 강한 인화성(引火性)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화민족주의가 강화되어도 역사문제와 달리 한·중 양국은 영토문제로 크게 충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양국이 비록 서해바다의 배타적 경제수역 획정을 놓고 여전히 이견(異見)을 보이고, 이어도가 2008년 서명된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공동수역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영토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갈등은 ‘역사문제’와 ‘문화종주권’을 둘러싼 문제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2005년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한 이후, 중국은 2011년 아리랑, 씨름, 판소리, 조선족 혼례 등을 ‘제3차 국가 무형유산’으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양국에서 민간차원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결국 한·중 갈등은 인터넷민족주의 확산과 문화주권 논쟁 등 주로 민간영역의 갈등이 국가영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런 갈등은 그 강도가 높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해결 방법이 어렵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
중국의 대북(對北)정책은 양자(兩者)관계보다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안보프레임을 강화하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한다. 중국은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이 한반도 차원을 뛰어넘은 데다 미사일방어(MD) 정책이 구체화되자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래서 일부 ‘북한 부담론’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중국은 ‘북한 자산론(資産論)’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타이완카드를 가지고 있는 한, 북한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10년 1월 미국이 64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타이완에 판매하기로 발표하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해 6월 타이완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해 ‘차이완(Chiwan, china+taiwan)’ 시대를 열었다. 이는 중국이 ‘정경분리(政經分離)원칙’을 적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양안(兩岸)관계 개선에 따라 미국의 타이완카드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의 타이완카드를 명분 삼아 북한카드를 계속 쥐고 있기를 희망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중국의 대(對) 한반도정책은 미·중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한·중관계나 북·중(北中)관계가 하위개념으로 자리매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위상이 강화될수록 이런 위험성은 커진다. 한국의 경제규모와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단순하게 미·중관계 속에서 한반도가 규정될 만큼 작지는 않다. 전략적으로도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로 회귀함에 따라 북·중협력 필요성이 커졌고, 한국과도 쌍무적 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정책주도권이 분산되면서 민족주의 색체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대외정책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확대되면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흐름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독자적인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한국의 안보와 외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즉 북한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려는 전략을 쓸 때,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협력이나 공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聯美聯中전략 펴야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중국의 부상이 불러올 전략적 딜레마가 한국만큼 큰 나라도 없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중국은 이미 한반도문제에서 미국과 더불어 중요한 이해상관자(stakeholder)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경제교류가 확대되면 양국관계는 평화모드로 전환한다고 말한다. 한·중관계는 경제는 뜨겁지만 외교는 미지근하고 안보는 냉랭한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한·중 간에 한랭(寒冷)전선이 형성된 것은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큰 원인이 있다. 한·중의 거래규모나 지정학적 측면에서 우리의 외교안보가 한·미동맹이라는 양자관계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한·미관계가 오래 전에 복합화되었듯이 한·중관계도 복합화될 수밖에 없다는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한반도의 평화지수를 높이고 안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국과 신뢰를 구축하고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의 신뢰관계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에서 보면 한·미동맹 강화가 신뢰구축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대중국 전략카드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이 한반도평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유지에도 공공재(公共財)로 기능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둘째, 우리가 중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 방법은 중·장기적으로는 연미연중(聯美聯中)전략으로 선회해야 하겠지만, 단기전략으로는 연미화중(聯美和中)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연미통중(聯美通中) 단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보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과감하게 관행의 틀을 깨야 할 때이다.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도래한 현실에서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과 신뢰구축을 보다 더 강화하는 양면전략을 써야 한다. 미·중관계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갈등과 협력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