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린턴,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상이한 전략 구사
⊙ 오바마와 공화당 후보 중 변한 환경에 누가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 오바마와 공화당 후보 중 변한 환경에 누가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 200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클린턴글로벌이니셔티브(Clinton Global Initiative) 행사에서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과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는 클린턴의 대선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2012년 미 대선 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표일을 약 10개월 앞둔 현재 후보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마가 유력시된다.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는 미국. 하지만 초선 대통령의 경우 집권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 관례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져 당선 전망이 어두워질 경우,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이나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 (Lyndon Johnson)의 경우와 같이 출마를 포기하곤 한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혼전 중이다. 1월 12일 현재 연초에 있었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 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석권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대세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릭 샌터럼 전 상원의원 등은 1월 2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대세론을 뒤흔들려 한다. 이같이 극심한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전개할 전략은 윤곽이 잡혔다. 민주, 공화 양당은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의 대선 전략을 추구한다.
놀라운 광경이다. 2008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오바마는 경쟁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지원에 나선 클린턴과 충돌을 거듭했다. 전국에 방송된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전임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 “로널드 레이건”이라고 답해 클린턴의 심기를 긁어 놓았던 오바마. 3월에 행한 경제정책 연설에서는 클린턴의 업적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렸다. 경제위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 단행된 규제완화가 위기의 원인이 된 금융대란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한 발 더 나갔다. 클린턴을 증오했다. 당 소속 의원들은 1994년 8월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화이트워터 (Whitewater) 부동산 부정거래 의혹을 비롯한 클린턴 관련 의혹들을 조사했다. 4년 뒤에는 그를 탄핵하려 했다. 위증과 사법방해죄를 범했다는 이유였다. 일부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탄핵은 무산됐지만 이로 인해 클린턴은 투표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 중 유일하게 하원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처럼 불편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와 공화당 대권 후보들은 클린턴 전략으로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1992년 클린턴－경제 올인 전략
클린턴은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상이한 전략을 구사했다. 1992년에는 ‘경제 올인 전략’을 전개했다. 1991년 초, 민주당에 다음 대선은 이기기 힘든 듯 보였다. 공화당 소속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기의 원인은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걸프전 승리였다. 미국은 전쟁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다. 본격적인 전투를 개시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라크군을 축출했다. 최대 3만5000명에 달하는 이라크군을 사살한 반면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 측의 사상자는 392명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전과(戰果)에 열광했다. “많은 수의 미군이 목숨을 잃은 채 패전의 멍에를 짊어졌던 베트남전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부시의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 공화당의 정권 재창출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이로 인해 출마가 유력시됐던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일제히 몸을 사렸다. 마리오 쿠오모 (Mario Cuomo) 뉴욕 주(州)지사, 테드 케네디 (Ted Kennedy) 상원의원, 그리고 앨 고어 (Al Gore) 상원의원 등 전국적 명성을 누리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출마를 포기했다. 남부 작은 주인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은 예외였다.
제임스 카바일(James Carville)과 폴 베걸라 (Paul Begala), 그리고 조지 스테파노플러스 (George Stephanoplous)가 이끌었던 클린턴 선거팀은 대담한 전략을 택했다. 부시의 강점을 무시하고 약점에 대해 공세를 집중했다. 부시의 경제정책을 맹공격했다. 경제가 난조를 겪으며 여론이 악화됐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와 관련, 미국 경제는 1990년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다. 5% 전후를 유지하던 물가도 급등했다. 1990년 12월 인플레이션은 6.3%에 달했다. 실업률도 크게 올랐다. 집권 첫해 5.3%였던 실업률은 1991년에는 6.8%로 뛰었다.
경제 올인 전략은 1992년 7월 뉴욕시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다. 후보 수락 연설을 위해 연단에 선 클린턴은 열변을 토했다. “부시는 집권 당시 15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지만 백만 개도 못 만들었습니다. 서민층에는 증세 정책을 펼치며 부유층에는 세금을 내렸습니다. 균형재정은 말뿐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였던 임금이 13위로 떨어지는 동안 국가 부채는 두 배가 됐습니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클린턴은 백전노장 부시를 눌렀다. 43%의 득표율을 거뒀다. 대통령 선거인단 기준으로는 370 대 168의 압승이었다.
1996년 클린턴－선택적 협력과 공세
한편 1996년 대선에서는 ‘선택적 협력과 공세 전략’을 펼쳤다.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내준 클린턴. 전례를 찾기 힘든 참패였다. 파행적 인사정책을 펴고 군내(軍內) 동성연애자 차별금지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강행하는 등 국민 대다수의 여망과 동떨어진 국정운영을 한 결과였다. 선거 뒤 공화당은 대대적인 대여 공세를 펼쳤다.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을 한번에 무너뜨리려 했다. 예산삭감, 정부기구 축소, 복지개혁, 사법개혁, 그리고 감세정책 등을 추구했다.
공화당의 공세에 맞서 클린턴은 숨 고르기를 했다. 일부 정책에 대해서는 야당과 보조를 맞췄다. 1996년 8월 공화당과 함께 야심찬 복지개혁을 단행했다. “소외계층의 삶이 타격을 받고 빈곤층이 급증할 것”이라는 리버럴 성향의 학자, 노동조합, 그리고 빈민운동가 등 지지층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개인책임 및 취업기회 증진법(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을 통해 복지 혜택의 제공 시한을 대폭 줄였다. 저소득 편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한 아동부양가족지원(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제도를 폐지했다. 복지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공화당에 역공세를 펼쳤다. 민주당이 중시하는 정책들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안이 포함된 예산안을 제출하자 이를 단칼에 비토했다. 저소득층 대상 의료보험 제도와 고령자 대상 의료보험 제도 예산삭감 규모가 과도하다는 이유였다. 환경 보호와 교육 관련 예산 삭감폭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예산 협상 기한을 넘겨 정부 기관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전략은 적중했다. 여론은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승리를 거뒀다. 49.2%의 득표율이었다. 538명의 대통령선거인단 중 379명의 지지를 얻었다.
2010 중간선거 승리한 공화당의 공세
오바마는 클린턴의 1996년 전략을 답습하려 한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오바마는 클린턴의 1994년 중간선거 패배에 버금가는 대패(大敗)를 했다. 63석의 하원 의석을 내줬다. 상원에서도 9석의 의석을 잃었다. 4년 만에 다시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 대한 맹세(Pledge to America)’라는 이름의 공약집을 통해 정부 크기와 역할을 줄이겠다고 다짐했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에릭 캔터 하원 다수당(공화당) 원내총무가 이끄는 차세대 지도부의 진두지휘 아래 새해 벽두부터 오바마를 압박했다.
2011년 1월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백지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방정부가 의료보험 제도를 단독 운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국민의 의료 서비스를 좌지우지할 거대한 관료기구가 등장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의료보험사들이 줄도산을 겪으며 대규모 실업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의원들은 www.repealitnow.org를 통해 모은 50만명의 서명 등을 근거로 개인이 의료보험 제도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조항을 폐지하고 민간 업체들이 의보 제도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이를 통해 오바마 개혁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5월 공개된 고용창출 지원방안(Plan for Job Creators)과 8월 발표된 고용 어젠다(Job Agenda)를 통해 공화당은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세제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법인세를 포함, 기업인이 부담해야 하는 세율을 25%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인의 경우 별도의 우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해외에 거액의 자금을 보유한 기업을 위한 세제 도입을 역설했다. 우호적인 제도가 마련되면 자금을 미국 내로 들여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와 함께 지출 축소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번영으로 가는 길(The Path to Prosperity)’이라는 이름의 2012 회계연도 예산안을 만들었다. 오바마 경제정책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구제금융과 787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남발하는 등 위기 극복을 한다며 과도한 재정지출을 집행한 결과, 재정적자를 14조3000억 달러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추세대로 지출정책이 계속될 경우 10년 뒤에는 국가채무가 현재의 세 배 수준으로 늘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주체할 수 없이 기울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의 클린턴 벤치마킹
이러한 공화당의 공세에 대해 오바마는 과거 재선을 앞둔 클린턴이 그랬듯 선택적 타협과 공세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보조를 맞췄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해 국가부채 상한선 재획정 협상과정에서 야당 지도부와 함께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을 제정했다. 10년간 9170억 달러의 지출을 줄이도록 했다. 2012 회계연도 예산부터 210억 달러 지출 축소를 즉각 시행하도록 했다. 2013년부터는 국가안보 및 기타 분야에 걸쳐 1조2000억 달러의 예산을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복지와 감세정책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초당파적 협력을 강조했던 오바마. 하지만 불과 며칠 뒤 행한 연설에서 그는 의보제도 개혁 백지화를 위한 야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혁을 단행한 뒤 무려 3000만명의 국민이 새롭게 의보 혜택을 누리게 됐고, 기존 제도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던 노령자들이 염가로 의약품을 구입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과 함께 도입된 각종 세금과 부담금 수입은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공화당의 감세정책 기조에 반하는 세제개혁안을 내놓았다. 작년 9월 오바마는 연간 소득 100만 달러 이상 납세자들에 대한 최저세율을 인상하도록 했다. 일부 거액 소득자들의 경우 중산층보다 낮은 세율만 납부한다는 이유였다. 해당 납세자는 전체 납세자의 0.3%인 약 45만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에 대한 세율 인상이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하고 중산층에 대한 세금 압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를 통해 오바마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경제에 해를 끼친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자 했다. 클린턴의 1996년 대선 승리를 재연하려 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출마 포기
공화당은 클린턴의 1992년 대선전략을 추구한다. 2011년 5월 공화당은 20년 전 민주당이 처했던 상황에 직면했다. 오바마의 대외정책을 조롱했던 보수진영. 찰스 크러테이머(Charles Krauthammer)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za Rice) 전 국무장관 등은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물론 아랍 민주화 운동에 대해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한다며 개탄했다. ‘뒷짐 리더십’의 전형이라며 부정적인 여론을 선도했다. 하지만 5월 1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이러한 주장은 순식간에 설득력을 잃었다.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가 주도한 9·11 테러 원흉의 사살작전 성공에 일제히 환호했다. 45%를 밑돌았던 국정운영 지지도가 뛰어올랐다. 5월 4일 《뉴욕타임스》와 CBS뉴스가 공동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은 57%에 이르렀다. 1주 뒤 AP통신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GfK의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60%를 기록했다. 2년 만에 최고였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상승세는 두 달 가량 계속됐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져도 외교안보 분야 지지도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국민 절대 다수는 오바마를 신뢰했다. 공화당 잠룡들이 출마를 고사하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인디애나 주지사는 예상을 깨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포기하기로 한 헤일리 바버(Haley Barbour) 미시시피 주지사의 뒤를 따랐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아울러 공화당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도 현직에 머물 것임을 밝혔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 뉴저지 주지사 역시 뜻을 접었다.
한편 대권 도전에 나선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외교안보 문제를 제쳐둔 채 경제 문제에 올인하고 있다. 클린턴의 전례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의 클린턴 벤치마킹
그럴 만도 하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어난 지 3년째. 하지만 2011년 현재 미국 경제는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GDP는 2010년 1분기부터 2011년 1분기 사이 5분기 연속 1%대를 맴도는 저성장을 기록했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임기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택가격은 5년 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 8월에는 신용평가사 S&P가 국가신용등급을 AA좶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민의 과반수는 정부의 경제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롬니는 이러한 국민정서를 십분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다. 경제를 최우선 어젠다로 내세운다. 지난 10월 대외정책 관련 연설을 행한 롬니. 하지만 연설은 “원론의 나열이었을 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는 반대로 경제정책과 관련한 연설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59개 항의 공약을 16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과 함께 공개했다. 11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성장률을 4%로 끌어올리겠다는 등 목표수치까지 밝혔다. 민간기업의 CEO를 지낸 경력을 가진 자신이야말로 시장경제 주도의 경제난 극복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깅리치도 경제문제 해결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5대 핵심공약 중 3개는 경제 관련 공약들이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과감한 투자유인 정책들이다. 그는 오바마가 한시적으로 유지했던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의 감세제도를 영구화시키고 법인세를 12.5%까지 인하하는 한편, 신규시설 투자에 대한 전면 세액공제 제도를 실시할 것을 약속한다. 사베인-옥슬리법(Sarbanes Oxley Act)과 도드 프랭크법 (Dodd Frank Law) 등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친화적 환경정책을 도입할 것을 다짐한다.
경제 올인 정책은 지지율 3위의 샌터럼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한 그는 동성결혼 반대와 낙태금지 등 이른바 ‘가치 이슈’를 중시하는 사회보수주의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치 이슈를 경제정책과 결부시키고 있다. 빈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결혼을 장려하는 경제, 사회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양부모가 있는 결혼가정의 경우 빈곤율이 8%에 머무는 데 비해 그렇지 않은 경우 빈곤율이 40%에 이른다는 것이다.
美 대선 최대의 승자는 클린턴
11월 6일에 있을 2012년 미 대선은 역사적인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마가 확정될 경우 이번 대선은 미국 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은 오바마가 ‘재선에도 성공한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롬니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면 그는 사상 최초의 모르몬교도 대통령 후보 또는 모르몬교도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선거에서 두 개의 클린턴 전략 중 어떤 것이 주효할지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우선 1996년 전략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16년 전 클린턴이 쾌승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선거 당시 미국 경제가 큰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었다. 실업률은 규제완화와 세계경제 호황, 그리고 본격화된 IT 붐에 힘입어 크게 낮아졌다. 1993년 6.9%에 달했던 실업률은 1996년에는 5.4%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올해 전망은 밝지 않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1월 현재 8.9%에 이르는 실업률이 선거 전까지 현격히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 2차대전 이후 선거 연도 실업률이 7.5%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1992년 대선전략이 먹혀들지도 불확실하다. 공화당 진영 내에는 클린턴과 같이 젊을 뿐 아니라 빼어난 정치역량을 지닌 후보가 없다. 대권 도전 당시 클린턴은 45세였다. 이에 반해 롬니는 65세다. 깅리치와 샌터럼은 각각 69세, 54세다. 게다가 롬니는 클린턴과 달리 유권자들과의 소통능력이 부족하다. 깅리치와 샌터럼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안을 수 있는 흡인력도 떨어진다. 강성 보수 이미지 때문이다. 경제 올인 전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메신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확실한 것은 하나다. 대선의 가장 큰 승자 중 한 명은 클린턴일 공산이 크다. 오뚝이 정치인으로 유명한 클린턴.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마다 재기에 성공했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낙방했지만 4년 뒤 최연소 주지사가 됐다.
한 차례 낙선 이후 10년간 주지사로 활약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전설은 계속됐다.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퇴임 시에는 사상 최고 수준의 지지율을 누렸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와의 날선 공방으로 전직 대통령의 품위에 흠집이 갔지만 정치 천재로서의 그의 면모가 올해 대선을 통해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혼전 중이다. 1월 12일 현재 연초에 있었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 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석권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대세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릭 샌터럼 전 상원의원 등은 1월 2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대세론을 뒤흔들려 한다. 이같이 극심한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전개할 전략은 윤곽이 잡혔다. 민주, 공화 양당은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의 대선 전략을 추구한다.
놀라운 광경이다. 2008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오바마는 경쟁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지원에 나선 클린턴과 충돌을 거듭했다. 전국에 방송된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전임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 “로널드 레이건”이라고 답해 클린턴의 심기를 긁어 놓았던 오바마. 3월에 행한 경제정책 연설에서는 클린턴의 업적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렸다. 경제위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기 단행된 규제완화가 위기의 원인이 된 금융대란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한 발 더 나갔다. 클린턴을 증오했다. 당 소속 의원들은 1994년 8월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화이트워터 (Whitewater) 부동산 부정거래 의혹을 비롯한 클린턴 관련 의혹들을 조사했다. 4년 뒤에는 그를 탄핵하려 했다. 위증과 사법방해죄를 범했다는 이유였다. 일부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탄핵은 무산됐지만 이로 인해 클린턴은 투표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 중 유일하게 하원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처럼 불편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와 공화당 대권 후보들은 클린턴 전략으로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1992년 클린턴－경제 올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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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 대선 후보로 유력시되는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 |
미국인들은 전과(戰果)에 열광했다. “많은 수의 미군이 목숨을 잃은 채 패전의 멍에를 짊어졌던 베트남전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부시의 지지율은 90%에 육박했다. 공화당의 정권 재창출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이로 인해 출마가 유력시됐던 민주당 대권주자들은 일제히 몸을 사렸다. 마리오 쿠오모 (Mario Cuomo) 뉴욕 주(州)지사, 테드 케네디 (Ted Kennedy) 상원의원, 그리고 앨 고어 (Al Gore) 상원의원 등 전국적 명성을 누리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출마를 포기했다. 남부 작은 주인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은 예외였다.
제임스 카바일(James Carville)과 폴 베걸라 (Paul Begala), 그리고 조지 스테파노플러스 (George Stephanoplous)가 이끌었던 클린턴 선거팀은 대담한 전략을 택했다. 부시의 강점을 무시하고 약점에 대해 공세를 집중했다. 부시의 경제정책을 맹공격했다. 경제가 난조를 겪으며 여론이 악화됐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와 관련, 미국 경제는 1990년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다. 5% 전후를 유지하던 물가도 급등했다. 1990년 12월 인플레이션은 6.3%에 달했다. 실업률도 크게 올랐다. 집권 첫해 5.3%였던 실업률은 1991년에는 6.8%로 뛰었다.
경제 올인 전략은 1992년 7월 뉴욕시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다. 후보 수락 연설을 위해 연단에 선 클린턴은 열변을 토했다. “부시는 집권 당시 15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지만 백만 개도 못 만들었습니다. 서민층에는 증세 정책을 펼치며 부유층에는 세금을 내렸습니다. 균형재정은 말뿐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였던 임금이 13위로 떨어지는 동안 국가 부채는 두 배가 됐습니다.” 유권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클린턴은 백전노장 부시를 눌렀다. 43%의 득표율을 거뒀다. 대통령 선거인단 기준으로는 370 대 168의 압승이었다.
1996년 클린턴－선택적 협력과 공세
한편 1996년 대선에서는 ‘선택적 협력과 공세 전략’을 펼쳤다. 19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내준 클린턴. 전례를 찾기 힘든 참패였다. 파행적 인사정책을 펴고 군내(軍內) 동성연애자 차별금지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강행하는 등 국민 대다수의 여망과 동떨어진 국정운영을 한 결과였다. 선거 뒤 공화당은 대대적인 대여 공세를 펼쳤다.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을 한번에 무너뜨리려 했다. 예산삭감, 정부기구 축소, 복지개혁, 사법개혁, 그리고 감세정책 등을 추구했다.
공화당의 공세에 맞서 클린턴은 숨 고르기를 했다. 일부 정책에 대해서는 야당과 보조를 맞췄다. 1996년 8월 공화당과 함께 야심찬 복지개혁을 단행했다. “소외계층의 삶이 타격을 받고 빈곤층이 급증할 것”이라는 리버럴 성향의 학자, 노동조합, 그리고 빈민운동가 등 지지층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개인책임 및 취업기회 증진법(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을 통해 복지 혜택의 제공 시한을 대폭 줄였다. 저소득 편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한 아동부양가족지원(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 제도를 폐지했다. 복지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자 했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공화당에 역공세를 펼쳤다. 민주당이 중시하는 정책들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안이 포함된 예산안을 제출하자 이를 단칼에 비토했다. 저소득층 대상 의료보험 제도와 고령자 대상 의료보험 제도 예산삭감 규모가 과도하다는 이유였다. 환경 보호와 교육 관련 예산 삭감폭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예산 협상 기한을 넘겨 정부 기관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전략은 적중했다. 여론은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승리를 거뒀다. 49.2%의 득표율이었다. 538명의 대통령선거인단 중 379명의 지지를 얻었다.
2010 중간선거 승리한 공화당의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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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후 존 베이너 하원의장(왼쪽)과 에릭 캔터 공화당 원내총무(오른쪽)는 오바마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
2011년 1월 공화당 의원들은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백지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방정부가 의료보험 제도를 단독 운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국민의 의료 서비스를 좌지우지할 거대한 관료기구가 등장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의료보험사들이 줄도산을 겪으며 대규모 실업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의원들은 www.repealitnow.org를 통해 모은 50만명의 서명 등을 근거로 개인이 의료보험 제도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조항을 폐지하고 민간 업체들이 의보 제도 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이를 통해 오바마 개혁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5월 공개된 고용창출 지원방안(Plan for Job Creators)과 8월 발표된 고용 어젠다(Job Agenda)를 통해 공화당은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세제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법인세를 포함, 기업인이 부담해야 하는 세율을 25% 이하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인의 경우 별도의 우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해외에 거액의 자금을 보유한 기업을 위한 세제 도입을 역설했다. 우호적인 제도가 마련되면 자금을 미국 내로 들여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와 함께 지출 축소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번영으로 가는 길(The Path to Prosperity)’이라는 이름의 2012 회계연도 예산안을 만들었다. 오바마 경제정책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구제금융과 787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남발하는 등 위기 극복을 한다며 과도한 재정지출을 집행한 결과, 재정적자를 14조3000억 달러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추세대로 지출정책이 계속될 경우 10년 뒤에는 국가채무가 현재의 세 배 수준으로 늘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주체할 수 없이 기울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의 클린턴 벤치마킹
이러한 공화당의 공세에 대해 오바마는 과거 재선을 앞둔 클린턴이 그랬듯 선택적 타협과 공세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보조를 맞췄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해 국가부채 상한선 재획정 협상과정에서 야당 지도부와 함께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을 제정했다. 10년간 9170억 달러의 지출을 줄이도록 했다. 2012 회계연도 예산부터 210억 달러 지출 축소를 즉각 시행하도록 했다. 2013년부터는 국가안보 및 기타 분야에 걸쳐 1조2000억 달러의 예산을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복지와 감세정책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1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초당파적 협력을 강조했던 오바마. 하지만 불과 며칠 뒤 행한 연설에서 그는 의보제도 개혁 백지화를 위한 야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개혁을 단행한 뒤 무려 3000만명의 국민이 새롭게 의보 혜택을 누리게 됐고, 기존 제도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던 노령자들이 염가로 의약품을 구입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도 도입과 함께 도입된 각종 세금과 부담금 수입은 재정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공화당의 감세정책 기조에 반하는 세제개혁안을 내놓았다. 작년 9월 오바마는 연간 소득 100만 달러 이상 납세자들에 대한 최저세율을 인상하도록 했다. 일부 거액 소득자들의 경우 중산층보다 낮은 세율만 납부한다는 이유였다. 해당 납세자는 전체 납세자의 0.3%인 약 45만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에 대한 세율 인상이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하고 중산층에 대한 세금 압박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를 통해 오바마는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경제에 해를 끼친다”는 공화당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자 했다. 클린턴의 1996년 대선 승리를 재연하려 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출마 포기
공화당은 클린턴의 1992년 대선전략을 추구한다. 2011년 5월 공화당은 20년 전 민주당이 처했던 상황에 직면했다. 오바마의 대외정책을 조롱했던 보수진영. 찰스 크러테이머(Charles Krauthammer)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za Rice) 전 국무장관 등은 오바마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물론 아랍 민주화 운동에 대해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한다며 개탄했다. ‘뒷짐 리더십’의 전형이라며 부정적인 여론을 선도했다. 하지만 5월 1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이후 이러한 주장은 순식간에 설득력을 잃었다.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가 주도한 9·11 테러 원흉의 사살작전 성공에 일제히 환호했다. 45%를 밑돌았던 국정운영 지지도가 뛰어올랐다. 5월 4일 《뉴욕타임스》와 CBS뉴스가 공동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은 57%에 이르렀다. 1주 뒤 AP통신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GfK의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60%를 기록했다. 2년 만에 최고였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상승세는 두 달 가량 계속됐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져도 외교안보 분야 지지도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국민 절대 다수는 오바마를 신뢰했다. 공화당 잠룡들이 출마를 고사하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미치 대니얼스(Mitch Daniels) 인디애나 주지사는 예상을 깨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포기하기로 한 헤일리 바버(Haley Barbour) 미시시피 주지사의 뒤를 따랐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아울러 공화당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도 현직에 머물 것임을 밝혔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 뉴저지 주지사 역시 뜻을 접었다.
한편 대권 도전에 나선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외교안보 문제를 제쳐둔 채 경제 문제에 올인하고 있다. 클린턴의 전례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 같은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빼어난 외모와 친화력, 그리고 모르몬교도의 의무 중 하나인 해외 선교사 활동을 통해 얻은 특출난 언변을 무기 삼아 기업의 흥보 담당관과 로비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노조와 관료, 정치인들 사이에 가교를 놓을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 1954년 초대형 자동차 회사인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American Motors Corporation)의 CEO가 됐다. 적자투성이였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1963년에는 미시간주 주지사로 선출됐다. 주 정부의 재정을 개선하고 흑인 인권을 신장시키는 등 업적을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눈부신 업적을 이뤘던 아버지 롬니가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백악관에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1964년 대선에서는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에게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1968년에는 리처드 닉슨에게 대권 도전의 기회를 내줬다. 그렇기에 아들 롬니의 2008년·2012년 대선 출마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와 베인캐피털(Bain Capital)의 CEO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그리고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역임하며 아버지 못지않은 명성을 쌓은 롬니. 사석에서는 물론이고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내 화제가 된 그가 아버지 롬니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공화당의 클린턴 벤치마킹
그럴 만도 하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어난 지 3년째. 하지만 2011년 현재 미국 경제는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GDP는 2010년 1분기부터 2011년 1분기 사이 5분기 연속 1%대를 맴도는 저성장을 기록했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 임기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택가격은 5년 전보다 3분의 1로 줄었다. 8월에는 신용평가사 S&P가 국가신용등급을 AA좶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국민의 과반수는 정부의 경제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롬니는 이러한 국민정서를 십분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다. 경제를 최우선 어젠다로 내세운다. 지난 10월 대외정책 관련 연설을 행한 롬니. 하지만 연설은 “원론의 나열이었을 뿐”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는 반대로 경제정책과 관련한 연설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59개 항의 공약을 16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과 함께 공개했다. 11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간 성장률을 4%로 끌어올리겠다는 등 목표수치까지 밝혔다. 민간기업의 CEO를 지낸 경력을 가진 자신이야말로 시장경제 주도의 경제난 극복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깅리치도 경제문제 해결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5대 핵심공약 중 3개는 경제 관련 공약들이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과감한 투자유인 정책들이다. 그는 오바마가 한시적으로 유지했던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의 감세제도를 영구화시키고 법인세를 12.5%까지 인하하는 한편, 신규시설 투자에 대한 전면 세액공제 제도를 실시할 것을 약속한다. 사베인-옥슬리법(Sarbanes Oxley Act)과 도드 프랭크법 (Dodd Frank Law) 등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친화적 환경정책을 도입할 것을 다짐한다.
경제 올인 정책은 지지율 3위의 샌터럼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한 그는 동성결혼 반대와 낙태금지 등 이른바 ‘가치 이슈’를 중시하는 사회보수주의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가치 이슈를 경제정책과 결부시키고 있다. 빈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결혼을 장려하는 경제, 사회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양부모가 있는 결혼가정의 경우 빈곤율이 8%에 머무는 데 비해 그렇지 않은 경우 빈곤율이 40%에 이른다는 것이다.
리비아 내전 정책과 코소보 내전 정책 오바마와 클린턴은 선거전략뿐 아니라 주요 대외 정책에서도 닮은꼴이다. 오바마의 리비아 내전 정책은 클린턴의 코소보 내전 정책과 세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 첫째,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클린턴은 유엔(UN) 결의안 없이 코소보 내전에 개입했다. 대다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 국가가 군사행동에 동참했지만 이 또한 논란거리였다. 코소보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었고 내전으로 인해 동맹국들의 안위가 위협을 받지 않았다. 리비아 내전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정책이 근거했던 UN 안보리 결의안 1973호는 대단히 모호했다. 이로 인해 대다수 아랍연맹(Arab League) 가입국들이 군사행동에 나서길 꺼렸다.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나토의 핵심 멤버인 독일도 작전에 불참했다. 둘째, 미국 내 반대가 심했다. 코소보 정책은 조지 윌(George Will)과 브렌트 보젤(Brent Bozell) 등 보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등 리버럴 성향 지식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오바마의 리비아 정책도 유사한 반발에 직면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정책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외 군사작전 수행에 있어 의회의 권한을 명시한 전쟁권 결의안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장기간 군사행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셋째, 우여곡절 끝에 정책목적을 달성했다. 약 3 개월 동안 계속된 공습과 러시아와 핀란드의 중재로 코소보 내전은 막을 내렸다. 이듬해에는 내전의 원흉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권력을 잃었다. 지루하게 지속되던 리비아 내전 개입도 의도한 바 목표를 이뤘다. 8월 미국의 지원을 받던 반정부군은 수도 트리폴리를 접수했다. 10월에는 무아마르 카다피를 사살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관심사는 대선을 앞둔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클린턴 대북정책의 궤적을 따를 것인가 여부다.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 시도와 관련, 클린턴 행정부는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검토하는 등 강경 압박 정책을 펼치다 유화 정책으로 급선회한 바 있다. 중국의 묵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과 맞물려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
美 대선 최대의 승자는 클린턴
11월 6일에 있을 2012년 미 대선은 역사적인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마가 확정될 경우 이번 대선은 미국 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은 오바마가 ‘재선에도 성공한 유색인종 대통령’으로 기억되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롬니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면 그는 사상 최초의 모르몬교도 대통령 후보 또는 모르몬교도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선거에서 두 개의 클린턴 전략 중 어떤 것이 주효할지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우선 1996년 전략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16년 전 클린턴이 쾌승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선거 당시 미국 경제가 큰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었다. 실업률은 규제완화와 세계경제 호황, 그리고 본격화된 IT 붐에 힘입어 크게 낮아졌다. 1993년 6.9%에 달했던 실업률은 1996년에는 5.4%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올해 전망은 밝지 않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1월 현재 8.9%에 이르는 실업률이 선거 전까지 현격히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 2차대전 이후 선거 연도 실업률이 7.5%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1992년 대선전략이 먹혀들지도 불확실하다. 공화당 진영 내에는 클린턴과 같이 젊을 뿐 아니라 빼어난 정치역량을 지닌 후보가 없다. 대권 도전 당시 클린턴은 45세였다. 이에 반해 롬니는 65세다. 깅리치와 샌터럼은 각각 69세, 54세다. 게다가 롬니는 클린턴과 달리 유권자들과의 소통능력이 부족하다. 깅리치와 샌터럼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안을 수 있는 흡인력도 떨어진다. 강성 보수 이미지 때문이다. 경제 올인 전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메신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확실한 것은 하나다. 대선의 가장 큰 승자 중 한 명은 클린턴일 공산이 크다. 오뚝이 정치인으로 유명한 클린턴. 그는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마다 재기에 성공했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낙방했지만 4년 뒤 최연소 주지사가 됐다.
한 차례 낙선 이후 10년간 주지사로 활약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전설은 계속됐다. 지지도가 30%대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퇴임 시에는 사상 최고 수준의 지지율을 누렸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와의 날선 공방으로 전직 대통령의 품위에 흠집이 갔지만 정치 천재로서의 그의 면모가 올해 대선을 통해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