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2011년 大사건 그 이후] 스티브 잡스와 ‘제2차 세계 IT 대전’ : 월간조선

세계 최고의 IT기업은 어디일까? 기업공개를 내년으로 미룬 페이스북(Facebook)을 제외하면, 주가총액이나 영향력 기준으로 애플(Apple),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ㆍMS)를 꼽을 수 있다. 세 기업은 21세기 초부터 균형을 이뤄 서로를 견제하며 IT업계의 삼두마차를 형성해 왔다.

이 세계 최고의 IT기업엔 신기한 공통점이 있었다. 각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Jobs), 에릭 슈미트(Schmidt), 빌 게이츠(Gates)가 모두 1955년생이라는 점이다. 이 우연의 일치는 빌 게이츠의 은퇴와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끝나버렸지만, 동갑내기들의 치열한 경쟁과 일화는 마치 중국 위ㆍ촉ㆍ오(魏ㆍ蜀ㆍ吳) 시대의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21세기 첫 IT 전쟁을 마친 이들의 발자취와 향후 권력 구도를 가늠해 봤다.

21세기 첫 IT 戰場, ‘스마트폰’

지난 세기 IT 전쟁의 핵심이 PC였다면, 금세기 IT 전쟁의 격전장은 바로 스마트폰 시장으로 꼽힌다. 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스마트폰의 판매량은 지난해 2억5000만 대를 넘어섰고, 올해는 5억 대 정도가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해 3억 대 팔리는 PC 시장보다 더 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셈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스마트폰은 갑자기 생겨난 기기(device)가 결코 아니다. 스마트폰이 사람들 눈과 귀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캐나다의 통신기기 제조업체 RIM이 2002년에 개발한 블랙베리(Blackberry)라는 휴대전화 덕분이다. PDA 기술에 음성통화 기능을 갖춘 블랙베리는 미국과 캐나다 위주로 비즈니스맨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직장인들은 “블랙베리로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해서 ‘크랙베리’(CrackBerryㆍ크랙은 마약의 일종)란 애칭이 붙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 제품은 프로그램 설치, 삭제가 가능했고, 무선네트워크 환경을 통해 전자메일까지 주고받을 수 있어 오늘날의 스마트폰 정의에 부합하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블랙베리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멋진 아이디어였지만 다소 복잡한 인터페이스와 느린 속도 때문에 대중화에는 시간이 걸렸다.

잡스의 ‘스마트 혁명’

스마트폰의 원조 블랙베리의 초기 모델(위)과 애플 아이폰의 최신 모델(아래).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은 PC 중심의 세계 IT 업계 구도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IT기업의 공룡, MS였다. MS는 PDA용 운영체제인 윈도 모바일(Windows mobile)을 다듬어서 스마트폰 용으로 특화시켰다. MS의 주도하에 HTC, 삼성, 기가바이트 등에서 2006년을 전후해 윈도 모바일을 채택한 스마트폰을 하나 둘 내놓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시작될 찰나였다. 그런데 MS의 빌 게이츠는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스마트폰이 윈도의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를 벗어나고 있고, 윈도 운영체제를 수정해야 한다는 흐름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빌 게이츠는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라 태블릿 PC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빌 게이츠의 오판으로 MS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을 모두 애플에 빼앗기는 우를 범하게 된다. 20세기에 MS에 큰 부와 명성을 안겨준 윈도 운영체제가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 셈이다.

애플은 달랐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기기를 만드는 데 항상 적극적인 그들은 스마트폰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이야말로 애플이라는 회사에 완벽히 부합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고, 스마트폰용 운영체제인 ‘iOS’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2007년 아이폰을 내놓을 때 사명(社名)을 “애플 컴퓨터”에서 “컴퓨터”를 제외한 “애플”로 바꿀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25년간 이어져 온 전통을 바꿀 정도로 큰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승부는 쉽게 갈렸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먼저 제공한 것은 MS였지만, 그들은 불편한 사용법과 느린 인터페이스로 대중화에 실패했다. 뒤늦게 합류한 애플은 쉬운 인터페이스와 빠르고 가벼운 운영체제를 탑재한 아이폰으로 대중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애플의 성공도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아이폰의 성공 뒤에는 스티브 잡스가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치밀했던 스마트폰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이폰의 등장은 2007년이지만 애플은 이미 1993년에 퍼스널 메시징 기기인 ‘뉴턴(Apple Newton)’이란 제품을 내놓은 적이 있다. PDA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이 제품은 훗날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의 기능과 닮은 곳이 많았다. 터치식(touch式) 입력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폰의 아버지와도 같다.

뉴턴은 비록 대중화에 실패했지만, 애플 매킨토시의 노하우와 인터페이스가 녹아 있는 제품으로 스티브 잡스가 꿈꾸던 완벽한 PC에 가장 가까운 기기였다. 사실 애플은 ‘컴퓨터’ 기업이 아니라 ‘컴퓨팅’ 기업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그동안 내놓은 제품들을 살펴보면 컴퓨터 산업보다는 스마트폰 산업에 더 적합한 행보를 보여왔다. CEO가 부품의 조립이 아닌 완성품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잡스는 1977년 애플 Ⅱ라는 컴퓨터를 내놓으면서 성공했는데, 지금의 컴퓨터들처럼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본체를 따로 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체형으로 돼 있었다. 소비자가 직접 조립할 필요가 없이 제품을 사서 전원만 꽂으면 되는 형식이었다. 사실 이 콘셉트는 컴퓨터라기보다는 가전제품에 더 가까웠고 이런 잡스의 성향이 훗날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이르러 더 큰 빛을 보게 된다.

애플 컴퓨터는 소비자들에게는 편리함을 줬지만 대신 호환성이 부족했고, 또 운영체제도 꼭 애플이 만든 운영체제만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개발진의 만류에도 잡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런 고집은 애플 컴퓨터가 경영난에 빠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애플 컴퓨터는 컴퓨터 시장에서 도태됐고, 잡스는 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났다. 결과적으론 잡스의 이런 폐쇄성이 오늘날 아이폰의 성공을 이끌어낸 ‘아이러니한 원동력’이다.

또 다른 차고의 기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잡스는 1997년 임시 CEO로 복귀해 아이맥(iMac), 아이북(iBook), 아이팟(iPod)을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그리고 아이팟용 소프트웨어인 아이튠즈(iTunes)와 운영체제인 iOS도 개발했다. 모두 애플 제품에만 최적화된 독자 플랫폼으로, 잡스의 폐쇄성이 잘 드러난 기기들이었다. 잇따른 성공에도 불구, 과거의 교훈대로 애플이 또다시 PC 시장의 실패를 되풀이하리라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잡스는 완벽한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로 사람들을 현혹했고, 자신들의 플랫폼에 사람들을 가두는 데 성공했다. 아이팟으로 천하통일을 이뤄냈을 때, 잡스는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바로 아이폰이다.

잡스는 아이폰을 출시하며 “전화기를 재창조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사명에서 ‘컴퓨터’란 단어를 지울 정도로 기업을 재창조하기에 이른다. 애플이 그동안 개발했던 매킨토시, 뉴턴(PDA), 맥북, 아이팟 등의 하드웨어와 맥OS, 아이튠즈 스토어 등의 소프트웨어는 아이폰을 위한 ‘세례자’였단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

결과는 전문가들은 물론, 애플 자체도 믿지 못할 만큼 대성공이었다. 아이폰은 애플을 MS와 IBM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IT 기업으로 등극하게 했다. 애플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컴퓨터를 좀 더 편하고 쉽게 만든 태블릿 PC, 아이패드가 등장했다. 잡스는 컴퓨터가 더 이상 버튼도, 마우스도, USB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혁신적인 그의 아이디어에 전문가들은 또다시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리고 잡스는 단순한 CEO를 넘어 ‘선지자’, ‘IT 황제’로 불리게 됐다. 애플의 주가는 MS를 뛰어넘었고, 30년간 벌여왔던 라이벌전에서 드디어 애플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애플에도 두 가지 불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하나는 잡스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던 암세포였고, 또 하나는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이었다.

1998년, 빌 게이츠는 “차고(車庫ㆍgarage)에서 시작한 기업이 두렵다”고 밝힌 적이 있다. 잡스가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면서 시작한 애플을 겨냥한 말이었다. 같은 해 우연히도 또 다른 차고에선 래리 페이지(Page)와 세르게이 브린(Brin)이란 대학생이 검색엔진을 만들고 있었다. ‘구글’이란 이름의 ‘작품’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창립 5년 만에 매출 15억 달러를 기록하고 전 세계 검색의 80%를 점유하며 MS 제국을 위협할 기업 규모를 키워냈다. 결과적으로 빌 게이츠의 ‘빗나간’ 예언이 옳았던 셈이다.

잡스의 분노, 안드로이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구글은 2003년 이후로 MS 제국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반란군의 선봉에 섰다. MS의 핫메일(Hotmail)에 대항해 지메일(Gmail)을 만들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Explorer)에 대항해 크롬(Chrome)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이어 개발한 크롬 OS는 윈도와 경쟁하고 있으며, 구글 독스(Docs)로 MS오피스의 수익성까지 저해시킬 정도다.

두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을 때, 마치 삼국지에서 위나라와 오나라가 싸우는 동안 촉나라가 일어난 것처럼 애플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뒀고, 2008년 때마침 빌 게이츠가 공식 은퇴하면서 승부의 추는 애플 쪽으로 완전히 기울고 만다. 하지만 구글의 칼끝은 MS만을 향하지 않았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한때 애플의 사외이사였을 정도로 구글과 애플의 사이는 좋았다. 슈미트는 스마트폰의 미래를 알아보고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를 만들었다. 이후 두 회사의 관계는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

특히 잡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최근 발간된 잡스의 사후(死後) 자서전을 살펴보면 그는 2010년 “나는 내 마지막 목숨과 애플 400억 달러 은행 잔고를 털어서라도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것이며 이를 위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구글과 슈미트를 증오했다. 사실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아이폰은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잡스의 이런 분노는 꽤 이해가 간다. 잡스가 죽는 순간까지 삼성과의 소송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안드로이드에 대한 분노가 더해진 것으로 해석된다.

잡스의 희망과 달리, 구글은 무료로 운영체제를 개방했고, 삼성, LG, HTC,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등 다양한 기업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만들어냈다. 결국 2007년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아이폰은 2010년을 기점으로 독주체제가 꺾였고, 안드로이드폰은 점유율 면에서 아이폰을 앞서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의 활약이 눈부셨다. 삼성은 MS의 운영체제를 탑재했던 옴니아 시리즈를 버리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 연속 히트시켰다.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을 바탕으로 아이폰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애플이 시장을 개척한 태블릿 PC 분야도 갤럭시탭을 내놓으며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블루오션의 최강자’인 애플이 시장을 개척하면 ‘레드오션의 최강자’인 삼성이 시장을 잠식해 가는 새로운 IT 풍속도가 형성된 것이다.

스마트폰이 키운 괴물, SNS

IT산업을 이끄는 세 요소가 있다면 하드웨어(HW), 소프트웨어(SW), 콘텐츠(contents)를 꼽을 수 있다. 먼저 휴대전화란 하드웨어가 발달했고, 뒤를 이어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탄생했으며, 이제 사람들은 제품을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과 SNS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이 있었다.

트위터는 구글의 직원이었던 에반 윌리엄스(Williams)가 창업한 회사다. 트위터의 특징은 한마디로 휴대전화를 위한, 휴대전화에 의한, 휴대전화만의 커뮤니티다. 140자만 쓸 수 있는 이유도 미국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창의 제한이 140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처음 트위터가 나왔을 때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재미는 있지만, 딱히 유용한 점도 없고 활용할 곳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에 CEO 윌리엄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곤 했다.

“아이스크림도 별로 유용하지는 않아요.”

‘별로 필요도 없고 유용하지도 않았던’ 트위터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Obama)가 당선된 일등 공신으로 꼽혔을 정도다. 아이스크림처럼 가볍고 부담 없는 탓에 나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접속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여기에는 고뇌와 해석 대신 속도와 느낌만 남았다. 그러다 보니 더 솔직하고 더 빠르다는 장점이 일반인들에게 크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때 누구보다 빨리 그 사실을 알린 것도 트위터였고,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의 민주화 운동 속보를 먼저 알린 것도 트위터였다. 윌리엄스가 아이스크림이라고 자조했던 트위터가 세상을 바꿔놓았다.

2007년 5월 미국에서 열린 D5 콘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왼쪽)와 빌 게이츠. 1955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PC 시절부터 서로 경쟁하며 세계 IT 흐름을 주도했다.

잡스 이후의 IT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맺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빌 게이츠에 이은 또 한 명의 하버드대 중퇴생인 마크 주커버그(Zuckerberg)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하버드의 문제아로 유명했는데, 대학의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페이스메시(Facemash)를 만들며 화려하게 IT업계에 발을 디뎠다. 후에 페이스북으로 이름을 바꾼 사이트는 친구맺기와 친구와의 사생활 공유라는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둔다.

페이스북의 확산 속도는 실로 놀랍다. 2011년 9월 기준 가입자가 8억명을 돌파했다. PC를 가진 15억의 인구 중에 절반 정도가 페이스북에 가입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주커버그는 27세의 나이로 이미 세계 100대 갑부에 이름을 올렸고, 웹(web)에서의 영향력이 구글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만약 구글이 검색엔진에만 안주했다면 페이스북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을 것이고, 기업 가치도 크게 낮아졌을 것이다. 다행히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페이스북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에 섰다. 애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안드로이드가 페이스북으로부터 구글을 구원한 셈이다.

세계 IT업계의 2011년은 특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페이스북과 SNS의 확산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 민주화 운동이 촉발됐고, 스마트폰의 보급이 5억 대를 넘어섰으며, 아이패드 등 태블릿 PC가 대중화한 원년이다. 휴대전화를 발명한 모토롤라가 매각됐고, 21세기 첫 번째 IT전쟁의 리더이자 승장(勝將)이었던 잡스가 지난 10월 5일 사망했다.

2012년 이후의 IT업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우선 애플은 향후 5년간의 로드맵을 잡스가 미리 구상해 놓았음을 밝힌 바 있다. 마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라는 삼국지의 얘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혁신의 상징이던 그의 죽음은 애플에 있어 분명히 악재일 수밖에 없다. 경쟁 업체들엔 약진의 기회다. 구글은 모토롤라를 인수하며 휴대전화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고, MS는 윈도폰(Windows Phone)을 본격적으로 내놓으며 스마트폰 전쟁 2라운드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제2차 IT대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11월 9일, 전경련 등이 공동 주최한 CEO 조찬세미나에 참여한 제이 엘리엇(Elliot) 전(前) 애플 수석부사장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강의를 통해 “삼성이나 소니 같은 기업들이 왜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말의 핵심은 IT산업을 이끄는 세 요소 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같이 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하고, 애플이 제품과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며, MS 역시 엑스박스(Xbox)와 킨(Kin) 등 하드웨어를 직접 개발하는 것을 본다면 해답은 더 분명하다.

한국의 길, 삼성의 길

또 하나의 예는 일본이다. 일본은 하드웨어 쪽에만 치중했던 휴대전화 업계(샤프, 후지쓰, 파나소닉 등)와 소프트웨어만 주로 발전시킨 게임업계(닌텐도)를 가지고 있다. 한때는 승승장구했던 일본의 두 산업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적어도 텃밭만큼은 자신 있다고 주장하던 국내 업계는 갤럭시와 아이폰이 점령해 버렸고,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닌텐도는 올해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중 하나만 발전시켜서는 요즘처럼 PC나 휴대폰에 대한 정의가 계속 바뀌는 흐름에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얘기다.

앞으론 TV가 컴퓨터가 되고, 컴퓨터는 모바일 기기와 통신수단이 되고, 휴대전화는 게임기와 PC가 되는 세상이 왔다. 강력해진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만 바꿔주면 어떤 기기로도 변신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잡스가 집착한 컨버전스(융합)의 시대는 이미 열렸다. 하드웨어만 발달시켜서는 이런 빠른 변화와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다행히 삼성은 ‘바다(Bada)’란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이 추세에 어느 정도 준비해 나가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이건희(李健熙) 삼성전자 회장이 최지성(崔志成) 부회장에게 “바다 운영체제를 띄우라”고 직접 지시한 것만 봐도 삼성의 고민과 방향성이 느껴진다.

아직 하드웨어 개발에만 급급한 타업체들엔 이런 주문이 시기상조다. 어쩌면 잡스 이후 ‘제2차 IT대전’을 거친 세상은 과거보다 더 적은 업체만이 살아남는 참혹한 전쟁터가 될 공산이 크다. 잡스가 이미 보여줬듯, 컨버전스의 시대엔 ‘경계를 먼저 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