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2011년 大사건 그 이후] 재스민혁명 이후의 中東 : 월간조선

무혈(無血) 쿠데타로 1987년 11월 7일 대통령이 된 벤 알리가 집권 24년째로 막 들어선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 소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서 26살 노점 청과상 모함메드 부아지지가 여경(女警)에게 뺨을 맞고 장사할 물건과 저울을 빼앗겼다. 그는 경찰의 모욕적이고 과도한 단속에 항의하며 압수당한 물품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하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분신했다.

부아지지를 동정한 주변 시민들이 위압적이고 오만한 경찰에 성을 내기 시작했다. 부아지지의 사촌 형제는 시위 모습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를 우연히 발견한 알자지라 위성방송이 보도했다.

부아지지를 사경으로 내몬 경찰은 평소 벤 알리 정권의 시녀(侍女)로 국민들 위에 폭압적으로 군림했다. 튀니지 사람들은 부아지지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경찰이 대변하는 독재정권의 마수에 저항한 것이다.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눈치챈 벤 알리 정권이 분신으로 사경을 헤매던 부아지지에게 최고의 치료와 관련자 문책을 약속하며 민심을 달래려 했지만 올 1월 4일 부아지지가 사망하면서 항의 시위에 불이 붙었다.

벤 알리 정권은 갖은 방법으로 언로(言路)를 차단하며 사태의 확산을 막아보려 했으나 페이스북 차단에 실패했다. 군(軍)은 중립을 고수하며 시위대에 발포하지 않았다. 결국 벤 알리는 1월 14일 하야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을 떠났다. 이를 두고 세계는 튀니지 국화(國花) 이름을 따서 ‘재스민혁명’이라고 명명(命名)했다.

“국민은 顚覆을 원한다!”

마치 오랫동안 응축되어 온 저항의 에너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튀니지의 정치변동은 ‘아랍의 봄’의 서곡(序曲)이었다. 이웃 아랍국가뿐 아니라 중동 역사에서 최초로 1979년 왕정을 시민혁명으로 붕괴시킨 이란까지, 말 그대로 북(北)아프리카-중동 전역이 민주화 열기에 휩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정권의 전복(顚覆)을 원한다!”라는 구호 아래 중동 전역이, 가난한 튀니지에서부터 산유부국(産油富國)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권위주의 공화정, 왕정(王政) 독재에 항거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 시위대의 요구를 종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장기 독재정권 퇴진이다. 튀니지(벤 알리·24년), 이집트(무바라크·30년), 예멘(살레·33년), 시리아(바샤르·11년), 알제리(부테플리카·12년)가 그러한 경우이다. 이라크에서는 무능한 정부는 퇴진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이란 시위대는 2009년 대통령 선거 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고지도자와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둘째, 입헌(立憲)왕정 수립이다. 이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왕정국가에서 터져 나오는 요구이다. 바레인, 오만,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에 해당된다.

바레인에서는 다수(多數)이면서도 정당한 참정권(參政權)을 누리지 못해 온 시아파 무슬림들이 소수(少數) 수니파 왕정에 맞서 민주입헌왕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만에서는 41년째 국왕과 수상을 겸하고 있는 까부스 왕정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요르단에서는 압둘라 국왕의 미진한 정치 개혁에 실망한 국민들이 의회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는 절대왕정에 항의했다. 왕이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 권력을 휘두르는 중동에서 입헌왕정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외침이 울려 퍼진 것이다.

이처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민주화운동이 발발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치적 자유가 절대적으로 결핍된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비밀경찰과 군경(軍警)의 무력을 이용한 1인 중심의 가부장적(家父長的) 철권 장기독재로 민주적 절차, 국민과 소통, 언론의 자유가 부족한 것이 1차적 원인이다.

여기에다 경제적 빈곤, 부정부패, 경제정의 부재에 대한 불만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 점을 직시해야 한다. 걸프 산유국을 제외하면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30세 이하 인구가 전(全) 국민의 50%에 달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청년백수라는 사실이다. 사회경제적 박탈감에 변혁을 꿈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보의 共有’가 혁명 촉발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는 소식이 나온 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시민이 벤 알리를 히틀러에 비유하는 사진을 들고 나와 축하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의 부모세대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두 세대 간 결정적 차이는 정보력이다. 부모세대는 어려서부터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가공해 내는 언론정보에만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젊은 세대는 인터넷과 휴대폰의 디지털 문화에 눈을 뜨고 이를 활용하는 세대다. 이들은 SNS를 통해 정부 통제를 벗어난 생생한 정보를 공유(共有)하고 여론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부아지지의 분신 항의 시위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를 다시 알자지라 위성방송이 보도한 정보전달 구조를 보면 서슬 퍼런 정부의 언론통제 칼날이 끼어들 구석이 없다. 게다가 때마침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벤 알리 정권의 부도덕함이 손쓸 틈도 없이 곧바로 까발려져 유통됐다.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기운을 절대다수가 공유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 사람 저 사람 입으로만 떠돌다가 정부가 적극 개입하면 더 이상 말이 나갈 구석이 없었는데, SNS로 인해 이러한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SNS가 중동 국가의 국민들을 무지에서 해방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중동에서 SNS는 튀니지 재스민혁명보다 2년여 이른 지난 2009년 6월 이란의 대통령 부정선거 항의 시위 당시 위력을 떨쳤다. 140 단문자로 소통하는 트위터(twitter)가 정부의 감시를 벗어난 정보를 빠르게 소통시키면서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 이란 정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데 애를 먹었다. 튀니지 민주화 열기가 카이로로 옮아가자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제일 먼저 행한 조치가 인터넷과 휴대폰 차단이었던 데에서 볼 수 있듯, 중동에 민주화의 꽃을 틔우는 데 SNS의 공헌은 실로 지대했다.

민주화의 연쇄작용

SNS를 통해 ‘자유의 복음’을 나누면서 무지에서 해방된 튀니지인들은 자신들에게 총부리 겨누는 것을 거부한 군의 도움으로 정권을 무너뜨렸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한마디라도 하면 바로 잡아가던 독재정권의 무시무시한 공포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집트인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면서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의 마술에서 풀려 나기 시작했다.

정보를 나누며 무지(無知)에서 해방되고, 정보 공유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신적 연대를 통해, 그리고 이웃나라의 성공을 목격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공포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연쇄반응이 중동을 민주화 열기로 뒤흔든 것이다.

무지와 공포를 이겨 내고 중동의 민주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튀니지는 부아지지 분신 이후 28일 만에 24년 집권하던 벤 알리가 권좌에서 물러났다. 부아지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집트인 3명이 1월 17, 18일 양일간 잇달아 분신 사망하면서 불붙은 이집트 민주화 시위는 2월 11일 30년 철권통치 무바라크의 하야로 뜻을 관철시켰다.

리비아에서는 2월 15일 동부 벵가지에서 반(反)카다피 시위가 발생했다. 카다피가 강경 살인진압을 자행하자 유엔은 3월 17일 민간인 보호 목적으로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이틀 뒤 나토연합군이 카다피군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공습을 감행하면서 리비아 내전은 국제전으로 비화(飛火)했다. 결국 카다피는 10월 20일 시민군의 손에 잡혀 죽음을 당했고, 반군이 이끄는 과도정부는 3일 후인 10월 23일 리비아 해방 선언을 했다.

벤 알리, 궐석재판에서 31년6개월 선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이 나라 국민들은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긴 하지만, 새로운 정부 수립이 그다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를 소환하여 처벌하는 것이다.

튀니지에서는 국외 망명 중인 벤 알리 전 대통령을 궐석재판에 회부, 재임 중 행한 권력남용에 대해 16년, 불법 무기와 마약 소지에 대해 15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투병 중인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에서는 그가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을 경찰에 내렸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 측에서 채택한 증인이 그런 적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하여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바라크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세 나라 모두 독재자들이 남긴 정치·경제적 부패와 측근 비리를 일소하고,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처리과정을 두고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 애를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튀니지와 이집트는 비록 정권을 끌어내리긴 했지만, 벤 알리와 무바라크 밑에서 일했던 관료, 장성이 여전히 무시 못할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어 과거청산을 둘러싼 논쟁이 불씨로 남아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모두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담은 헌법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동민주화를 선도한 튀니지는 예정보다 3개월 늦은 지난 10월 23일 역사적인 선거를 치렀다.

이집트, 민주화는 성공, 軍政종식에는 실패

그 결과 217석의 의석 중 벤 알리 정권하에서 불법 정당으로 강제 해산되었던 온건 이슬람주의 나흐다(부흥)당이 41%의 득표율로 90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다. 새로 구성된 의회는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1959년 제정된 헌법을 대체할 새 헌법을 만들어 총선을 실시할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나흐다당 간누시 대표는 “이미 여러 당과 힘을 합쳐 거국(擧國)내각을 구성하여 과도기를 현명하게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하야 이후 최고군사위원회가 국가를 이끌고 있다. 일단 지난 3월 19일 국민투표를 통해 77.27% 찬성으로 기존 헌법의 대통령 임기 등을 수정하고, 제헌의회를 구성한다는 내용을 첨가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11월 28일부터 3차에 걸쳐(12월 14일, 1월 3일) 498명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 내년 1월 22일, 3월 4일 2차에 걸쳐 270명을 선출하는 상원의원 선거를 실시한다. 내년 3월 완비될 의회에서 위원회가 구성되어 6개월 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데, 이 이후에야 4년 임기의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이는 적어도 내년 9월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최고군사위원장인 탄타위가 실질적인 대통령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이집트 군부(軍部)는 국내 경제의 최소 5%, 최대 40%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고, 정치적 실권(實權)도 챙기기 위해 권력의 민간이양을 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군인 출신 대통령은 몰아냈지만, 1952년 나세르 군사쿠데타 이래 이집트를 통치해 온 군부는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나토의 도움으로 카다피 정부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는 10월 23일 해방 선언을 한 후 지난 9월에 밝힌 정치일정대로 새 정부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8개월 내에 헌법을 만들 위원회 선거를 치르고 이후 12개월 내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한다. 즉, 20개월 이내에 새로운 민주정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40여 년간 민주적인 선거를 치른 경험이 전무(全無)한 리비아인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또 동부 벵가지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가과도위원회가 서부 트리폴리 및 전국 각지에서 치열하게 싸운 반군들과 화합할 수 있는가 역시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카다피 제거 이후 반군들 사이에서 논공행상(論功行賞)을 두고도 다툼이 적지 않다. 이를 보면서 향후 새로운 리비아 건설 과정에서도 정파(政派) 간 갈등이 계속 불거질 것이라는 회의적(懷疑的)인 시각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는 민주화 전개과정에서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튀니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벤 알리를 축출했다. 이 과정에서 중립을 지킨 군부는 시위 이후 과도기적 상황하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 이후 군부가 과도기 상황을 통제 중이다. 리비아는 시위가 내전으로 치달았기에 외세의 개입, 여러 갈래로 나뉜 반군세력 간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반군끼리 싸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 나라의 민주화 시위 전개과정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슬람이 해답이다”라는 구호를 내건 이슬람 정치세력이다.

이슬람 세력의 약진

지난 10월 20일 카다피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리비아 반군들이 환호하고 있다.

1973년 자원민족주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토대를 구축한 중동의 이슬람 정치세력들은 민주화 정치변동을 틈타 약진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미 튀니지의 온건 이슬람 정치세력인 나흐다당은 선거를 통해 제1당이 되었다. 나흐다당은 1981년 무슬림형제단의 영향으로 태어난 이슬람 정당으로 한때 테러활동에도 가담한 적이 있다. 때문에 나이 든 세대는 나흐다당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나흐다당은 1989년 총선에서 17% 득표를 얻은 후 벤 알리 정권에 의해 1991년 불법화되었다가, 민주화 물결을 타고 이번에 재생하여 총선에서 승리했다. 튀니지 과도정부가 7월로 예정됐던 선거를 3개월이나 연기한 이유도 조기(早期) 선거를 실시할 경우, 조직력이 뛰어난 나흐다당이 다른 당을 압도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나흐다당의 응집력은 강하다.

이집트에서도 11월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조직한 ‘자유정의당’이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전(善戰)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카다피 집권기 때부터 동부 지역에 알카에다 리비아 지부가 존재해 왔다. 이번 내전에서도 이들이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토가 처음 리비아 개입을 꺼린 것도 카다피를 축출하고 나면 이슬람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을지 모른다는, 즉 “죽 쒀서 개 주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부 반군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탈리아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이 리비아 동부에서 반카다피 세력이 형성되자마자 “리비아에 이슬람 국가가 성립한다면 유럽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이슬람 정당들의 유화 제스처

이슬람 정치세력이란 말 그대로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을 현실의 구체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다. 알라의 말씀 코란과 예언자 무하마드의 언행(言行)을 전범(典範)으로 삼아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려는 이슬람 정치세력이 국가를 운영한다면 비(非)무슬림, 여성, 성적(性的)소수자는 인권을 온전히 보장받기 쉽지 않다. 또한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이슬람 정치세력이 생각하는 정도의 깊은 신앙을 지니지 않는다면 그 또한 삶이 고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튀니지 총선에서 승리한 나흐다당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슬람 신앙을 튀니지가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술, 비키니 등 세속적(世俗的) 관습에 제약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公言)하고 있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역시 자유정의당을 발족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을 강요하면 우리 스스로가 무바라크와 같은 억압정권이 된다”면서 자신들에 쏠린 불편한 눈길을 부드럽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리비아의 경우, 국가과도위원회 압둘 잘릴 위원장이 해방 선언 후 “향후 리비아의 새로운 헌법은 이슬람법 원칙에 근거해 제정될 것”이라고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에 따르면 이슬람법 원칙에 따라 남자가 네 명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고, 은행이 이자놀이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위해 카타르의 지원을 받으며 가칭 ‘자유 정의 개발 국민모임’ 정당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이슬람 정치지도자 알리 앗살라비와 압둘 하킴 벨하지는 “리비아 헌법이 샤리아(이슬람법)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옳은 것이지만, 우리는 무(無)이자 은행을 강요하지 않고 국제 금융시장 원칙에 부합한 기존 은행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들이 만드는 정당이 이슬람과 리비아 문화의 일반적 원리를 존중하지만, 이슬람당이 아니라 국가적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온건한 이슬람 정당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터키의 정의개발당이 모델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이슬람 정치세력 정당이 모범으로 삼아 따르고 있는 모델은 터키의 이슬람 정당인 정의개발당이다.

정의개발당은 자유주의 경제와 이슬람을 표방하면서, 터키의 국부(國父) 케말 파샤가 국시(國是)로 정해 놓은 정교(政敎)분리의 세속주의(世俗主義) 노선을 수정해 터키를 이슬람 국가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의개발당은 눈부신 경제성적표를 바탕으로 2002년 이래 계속 집권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슬람에 원리를 둔 민주정당을 세우려는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정치세력들에게 정의개발당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정치세력이 온건한 정책을 취하는 것에 대해 세속주의자들은 의구심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세속주의자들은 “이슬람 정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이며, 현재 온건노선은 한시적(限時的)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이들은 또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슬람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언제든지 틈만 나면 강경파들이 장악하여 급진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향후 이들 세 나라에서 이슬람 정치세력과 세속주의자들은 종교 내지 종교문화와 정치를 두고 서로 어떤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한다.

아랍연맹, 시리아 회원자격 정지

아버지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1500여 명의 국민들을 죽여 가면서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와 같은 시기에 시작된 예멘과 시리아의 반 장기독재 투쟁은 무수한 사상자를 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멘에서는 지난 1월 27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살레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도 사나와 남부지역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면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

노회한 살레 대통령은 조건부 퇴진 카드와 강경진압을 병행하면서 시위대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6월 3일 대통령궁에 폭탄이 터져 살레가 심각한 전신 화상(火傷)을 입으면서 살레 정권도 끝이 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살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 9월에 귀국, 여전히 권좌를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진압으로 인해 사망한 시위자가 수백 명에 달하고 있다.

보다 못한 국제사회가 걸프협력회의(GCC)를 중심으로 중재에 나섰으나 거짓말에 능한 ‘양치기’ 살레는 퇴진을 약속했다가 이를 번복하기를 거듭하면서 순순히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예멘보다 더 심각한 곳은 시리아다. 인구 150명당 1명꼴로 비밀경찰이 있어 “개도 국경을 넘어가야만 짖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통제가 엄격한 나라가 바로 시리아다.

지난 3월 남부도시 다라에서 중동 민주화 시위의 인기구호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를 벽에 쓴 10대 15명이 경찰에 잡혀갔다. 이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부모들과 시민들의 시위가 3월 15일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계속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무력진압으로 3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부터 30년간 권좌를 지켰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11년째 집권중인 둘째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물러설 의향이 전혀 없다. 1982년 하마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도시를 한 달간 봉쇄한 채 무려 3만에 가까운 시민을 죽인 아버지보다 덜하다고는 하지만, 바샤르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피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중동 분위기는 바샤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랍연맹은 시리아의 회원자격을 정지시키며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地政學에 발목 잡힌 中東민주화

작년 10월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운데)가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열린 아프리카-아랍 정상회의에서 살레 예멘 대통령(왼쪽),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오른쪽)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포즈를 취했다. 이 중 카다피와 무바라크는 축출됐고, 살레도 실각 위기에 놓여 있다.

리비아가 시위대를 무력진압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자 서방이 중심이 된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를 내리고, 카다피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했다. 그래도 살상을 멈추지 않자 ‘안보리 결의 1973’을 채택, 리비아 정부군의 방공망(防空網)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결국 반군이 카다피를 몰아내고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엔이나 나토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처럼 민주화 시위대를 죽이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두 나라가 부존자원(賦存資源)이 풍부한 리비아와 달리 자원 빈국(貧國)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정학적(地政學的)인 면에서 리비아보다 중동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레, 바샤르를 대체할 강력한 야당 세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들의 퇴진 시 혼란이 더 커질까 보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예멘의 살레 대통령은 “내가 정권을 계속 잡고 있어야 남부에 똬리를 튼 알카에다가 발흥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계속 떠벌리고 있다. 이것이 반드시 틀린 말이 아니기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는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바샤르 정권의 안정을 바라는 입장이기에 겉으로는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을 비난해도 속으로는 개혁을 통해 상황을 진정시켜 주길 내심 고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와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폈던 무바라크 하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이스라엘에 시리아는 강경일변도의 반이스라엘 정책을 유지해 온 악마와 같은 존재이지만, 예측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대화가 되며 내심 잘 아는 악마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시리아 정정(政情)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무척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바샤르가 민주개혁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아랍국가 중 유일하게 친(親)이란 국가인 시리아만 돌아서면 중동의 핵심 반미(反美)국가인 이란을 아랍세계에서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國益 추구의 場이 된 中東

바레인 왕정이 다수 민주화 요구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미국이 양측에 진정할 것을 요구하는 데 그친 것도 바레인 시아파를 통해 걸프지역 정정을 흔들어 보려는 이란의 희망을 완전히 꺾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사람 목숨에 급이 있는 것도, 민주화 시위대의 가치에 경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계경제의 검은 혈액인 원유(原油)가 풍부한 중동이다 보니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자유 요구마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재해석되고 평가받는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바로 국제정치 현실이다.

민주화 시위로 인한 중동 정치변동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국가들은 제각각 국익(國益)을 도모하기 위한 정지(整地)작업에 뛰어든 지 오래다.

전통적으로 중동에 깊숙이 개입해 온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새로운 국제질서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카타르 역시 활발하다. 리비아에서는 벌써부터 이슬람 정치세력을 후원하는 카타르에 대해 반대 정파들의 비난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는 전투기까지 보내면서 후원했지만 바레인 반정부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에는 등을 돌리고 바레인 왕정에 힘을 실어 준 나라가 카타르다.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고 하지만, 그 정권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구호대로 되기도, 안되기도 한다. 엄혹한 현실에 눈을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전 국민이 원하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2011년 중동 민주화 시위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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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2011년 大사건 그 이후

재스민혁명 이후의 中東

권력의 공백 틈타 이슬람 세력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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