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제정치-권위주의 전통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이집트는 유사, 현 이집트사태는 톈안먼사태와 흡사
⊙ “정치체제 개혁 없으면 경제개혁 성과 상실”(원자바오 총리)
⊙ 儒家사상 도입, 美공화당-민주당식으로 공산당 분할 등 거론
朴勝俊
⊙ 57세.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베이징특파원 겸 지국장,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저서 : 《등소평 평전》 《<중국이 재미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격동의 외교비록 한국과 중국 100년》.
⊙ “정치체제 개혁 없으면 경제개혁 성과 상실”(원자바오 총리)
⊙ 儒家사상 도입, 美공화당-민주당식으로 공산당 분할 등 거론
朴勝俊
⊙ 57세.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조선일보 홍콩·베이징 특파원, 국제부장, 중국전문기자, 베이징특파원 겸 지국장,
북중전략문제연구소장,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겸임교수 역임.
⊙ 現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저서 : 《등소평 평전》 《<중국이 재미있다》 《중국, 중국인 똑바로 보기》
《격동의 외교비록 한국과 중국 100년》.
- 중국공산당은 지방 단위에서부터 점진적인 정치개혁 실험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작년 9월 항일전쟁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 중국공산당 지도부.
‘이집트 다음은 중국?’
온라인 《월 스트리트 저널》은 1월 31일 중국관련 기사들의 목록을 올리면서 그런 제목을 달았다. 전날 온라인 《포브스》가 〈튀니지 다음은 이집트, 이집트 다음은?〉이라는 제목을 단 고든 창(Gordon G. Chang)의 칼럼을 게재한 데 대한 답이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그러면서 ‘베이징, (이집트의) 항의시위 보도를 차단’이라는 기사를 1월 31일자에 실었다. 기사는 “중국 당국이 트위터와 비슷한 마이크로 블로그(웨이보·微博)의 검색창에서 이집트(아이지·埃及)라는 단어를 차단했다”고 전하고 “중국 지도자들이 이집트에서와 유사한 정치개혁 요구가 중국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고 보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는 제레미 페이지(Jeremy Page) 특파원의 판단을 덧붙였다.
포브스에 〈이집트 다음은?〉이라는 칼럼을 쓴 고든 창은 중국계 미국인 변호사로 상하이(上海)에서 20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에 《중국의 몰락(Coming Collapse of China)》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책은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됐다.
이 책에서 고든 창은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유는 네 가지로, 부패한 공산당과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국영(國營)기업, 부실덩어리 국영기업을 지원하느라 지급불능의 위기에 빠진 은행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 소수(少數)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시위와 테러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의 위기를 들었다.
물론 고든 창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중국의 몰락》을 쓴 지 10년이 지났지만 중국이 망하기는커녕, 더욱 번영하고 있다. 불량채권의 누적으로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은행들의 재무구조는 날로 개선되고 있다. 오히려 2008년 10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해서 전(全)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을 고든 창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집트와 중국의 유사점
그는 1월 30일자 온라인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공산당의 신문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환구시보·環球時報)가 오늘 자에서 전한 것처럼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으로 불안해하는 것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中東)의 독재자들뿐만이 아니며, 베이징의 지도자들도 13억이 궐기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썼다. 1월 30일자 《환구시보》는 1면 머리기사로 “이집트의 혼란(動蕩)이 중동의 변수가 됐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안정 호소 연설로 서방국가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전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 《포브스》가 전하는 것처럼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촉발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스필 오버(Spill over)돼서 빚어진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중국으로 다시 스필 오버될 것인가 하는 점은 중국 안팎의 커다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파라오로 대변되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전제(專制)통치와 황제(皇帝)로 대변되는 중국의 수천 년에 걸친 전제통치는 서로 유사한 정치적인 배경을 공유(共有)하고 있다.
이집트가 1952년 나세르가 주도한 쿠데타로 왕정(王政)을 종식시키고 현재의 공화국 체제를 수립한 이후, 사다트에 이어 무바라크 대통령이 1981년부터 30년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과 중국의 정치 흐름은 너무 닮아 있다.
중국은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하는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혁명의 성공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하는 개혁개방이라는 제2의 혁명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함으로써 중국공산당에 의한 권위적인 통치가 지속되고 있다.
이집트와 중국 두 나라는 미국과 소련이 지배하던 양극화(Bipolar) 바탕의 냉전(冷戰) 시대에는 서로 손을 잡고 제3세계 비동맹(非同盟) 국가들 간의 국제정치를 주도해 왔다.
여러 면에서 친구나 다름없는 이집트가 맞고 있는 정치위기는 중국의 정치위기로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지도자들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中언론, 시위현장 보도 안해
중국에서 뉴스는 중국중앙TV(CCTV)가 전국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서 내보내는 저녁 7시의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시작된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인민들을 상대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선전공작(宣傳工作)도 주로 이 <신원롄보>를 통해 이뤄진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신문이 아니라 당(黨)간부나 당원들을 독자로 하는 신문으로, 가판을 하지 않고 우체국을 통한 정기구독자들에게만 배달된다.
CCTV의 <신원롄보>는 1월 25일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反) 무바라크 ‘분노의 날’ 시위를 전하지 않았다. 1월 29일 저녁에 가서야 무바라크가 내각을 교체한 사실을 전했다. 1월 29일 이후에도 무바라크 정부의 발표 위주로 전하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시위현장 영상은 일절 방영하지 않았다.
국제문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전하면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마음속을 대변한다고 자부하는 《환구시보》 역시 1월 30일 자에 가서야 이집트 사태를 전하면서 사태의 본질보다는 “1979년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을 잘 지켜 온 무바라크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집트와 유사한 정치적 배경을 안고 있고, 유사한 정치적 행로를 걸어왔지만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겪은 점에서는 이집트보다도 선배다. 중국은 22년 전인 1989년 4월에서 6월에 걸친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경험했다. 반부패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지식인과 대학생, 시민들이 참여한 톈안먼사태는 동유럽과 소련으로 스필 오버되어 1990년 말부터 시작된 공산당 주도의 정치체제의 잇단 붕괴로 연결됐다.
하지만 ‘혁명의 수출국’인 중국은 실권자(實權者) 덩샤오핑이 제시한 ‘선(先) 경제발전 후(後) 정치개혁’ 노선에 따라 지금까지 민주화를 목표로 한 정치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경제발전에 주력해 오다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정치위기를 목도(目睹)하기에 이르렀다.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중국 지도자들에게 걱정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은, 필자도 1989년의 톈안먼사태를 《조선일보》 홍콩특파원으로 베이징 현지 취재를 하면서 목격한 것이지만, 2011년 카이로의 타흐리르(Tahrir) 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와 22년 전 베이징 톈안먼광장의 시위 광경이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1989년 중국 군부(軍部)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출동시켰지만, 평소 ‘인민들을 위한 군대’라는 정신교육을 받아 온 인민해방군 탱크병들은 자신들을 환영하면서 손을 흔들고 해치로 기어 올라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면서 즐거워하는 베이징 시민들에 가로막혀 처음에는 톈안먼광장 진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주화 시위 = 혼란’이라는 공식 주입 성공
그러나 덩샤오핑은 6월 4일 톈안먼시위대를 유혈진압했다. 그는 시위대의 정치개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대에 동정적이던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물러나게 했다. 자오의 후임으로는 ‘공인규찰대(工人糾察隊)’란 이름의 노동자 질서유지대를 조직해서 상하이 시내의 시위를 효과적으로 해산시킨 장쩌민(江澤民) 상하이 당서기가 낙점됐다. 덩샤오핑은 권력의 핵심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넘겨주고 은퇴한 후 수렴청정(垂簾聽政)하는 길을 선택했다. 덩샤오핑은 그렇게 톈안먼사태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현재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을 맞아 위기에 몰린 무바라크의 머릿속에도 22년 전 덩샤오핑의 선택이 그려졌는지 모른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流血)진압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대안(代案)을 중국 인민들에게 안겨 주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사태 직후 시위진압을 정당화하는 <폭란(暴亂)의 진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 달에 걸쳐 전국적으로 반복 선전했다. 이 ‘역발상(逆發想)’이 성공했다. 중국공산당은 정치개혁 요구를 잠재우고 지난 20여 년간 경제발전 일변도의 정책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국을 끌어 왔다.
톈안먼광장 시위의 유혈진압에 대한 역선전공으로 인민들의 뇌리에 “민주화 요구 시위 = 혼란”이라는 공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胡錦濤)로 바통을 넘길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체제 개혁 요구에 대해 민주화나 정치개혁이라는 용어 자체를 금기(禁忌)의 영역에 가두어 놓은 채 ‘법치(法治)’ ‘당내 민주화’ ‘중국공산당의 집권당화’ 등의 대속물(代贖物)들을 제시해서 국내 정치의 안정화에 그럭저럭 성공했다.
그러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정치체제의 개혁’을 제시한 것은 톈안먼사태로부터 21년이 흐른 지난해 8월 21일이었다.
정치체제 개혁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톈안먼사태 당시 시위 지도부에 동정적이라는 이유로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에 의해 당총서기직에서 축출당한 자오쯔양 총서기의 비서격으로 당내 행정을 총괄하는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원자바오(溫家寶) 현(現) 총리였다.
원자바오의 정치개혁 요구
원자바오는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特區)로, 지난 30년간 개혁개방 정책의 상징이었던 광둥(廣東)성 선전(深?)시의 특구 선정 30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받을 연설을 했다.
“… 사회주의 제도의 완성을 위해서는 흔들림 없이 개혁개방을 추진해야 합니다. 사상을 해방하고, 시대와 맞게 전진하면서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성숙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치체제의 개혁을 아울러 추진해야 합니다. 정치체제의 개혁에 대한 보장 없이는 경제체제의 개혁의 성과도 상실할 수 있으며, 현대화 건설의 목표도 실현 불가능합니다. …”
중국 안팎을 깜짝 놀라게 한 원자바오의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언급은 미리 충분한 당내 논의과정을 거친 결과인 듯했다. 원자바오는 한 달 뒤인 9월 23일에는 CNN과의 인터뷰에 나섰다. 원자바오의 CNN인터뷰에는 보다 자극적인 용어들이 동원됐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인민들의 바람과 요구는 이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irresistable) 것입니다. … 중국공산당은 헌법과 법률에 맞게 운영돼야 합니다. … 일부의 반대가 있겠지만 나는 내 능력의 범위 내에서 정치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입니다. …”
원자바오의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약속으로 중국 안팎에서는 각종 추측과 논리가 난무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함께 두 번째 5년 임기를 2년 정도 남긴 시점에서 돌연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하고 나선 원자바오가 비교적 보수 좌파 성향의 후진타오와 정치적인 대척점(對蹠點)에 서기 위해 고의로 정치체제 개혁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많았다.
그러나 불과 보름 뒤인 9월 6일 후진타오 역시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했다. 원래 8월인 선전 경제특구 30주년 기념일 공식행사를 다소 늦춰 치르는 자리에 나온 후진타오 주석은 단 한 차례이긴 했지만 정치체제의 개혁의 필요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나섰다.
“… 선전 경제특구가 개혁개방을 심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문화체제, 사회체제의 개혁이 전면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중요한 영역과 부문에서 개혁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전특구의 ‘선행선시(先行先試·먼저 행동하고 먼저 시도하는 것)’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중앙 지도자들의 미래 개혁에 대한 분명한 사고방식입니다. …”
후진타오도 정치개혁 주장
원자바오 총리가 보다 단정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정치체제의 개혁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후진타오의 연설은 단 한 차례,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이뤄질 일임을 한정적으로 표현하기는 했다. 하지만 후진타오의 연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정치체제 개혁에 대해 분명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 연설이었다. 원자바오의 선전 방문 연설을 통해 제시된 정치체제의 개혁 약속이 원자바오 총리만의 구상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당내 흐름은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의 회의 결과 발표문(公報)를 통해 확인됐다.
“…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이 강조됐다. 개혁은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강력한 동력이며, 각 영역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경제체제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정치체제의 개혁은 적극적이되 안정적으로 추진하며, 문화체제와 사회체제의 개혁을 가속화한다. 상층건축(上層建築·정치와 문화등 사회의 상부구조)의 개혁은 경제적 기초의 발전적 변화와 과학발전의 보장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
원자바오와 후진타오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왜 이 시점에 톈안먼사태 이후 20년 동안 금기시되어 오던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하고 나섰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17기 5중전회 20일쯤 뒤인 10월 8일에 발표된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견한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사과와 오렌지’ 논쟁
이에 대해 베이징대학 국제정치학과 81학번 출신으로, 미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하버드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을 맡고있는 정융녠(鄭永年·49) 교수는 10월 11일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현재 중국내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정치개혁 논쟁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양파 간의 투쟁 국면은 덩샤오핑 시대의 남순강화(南巡講話·1992년 경제발전과 시장경제 도입 속도를 놓고 빠른 추진을 지지하는 개혁파와 반대파인 우파 간에 빚어진 갈등 국면에서 덩샤오핑이 중국 동남부의 경제특구를 순회하며 우파의 손을 들어 주는 일련의 연설을 한 사건)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다. …”
그에 따르면,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우파(일명 자유파)와 반대하는 좌파 사이에는 현재 공통된 주장의 폭이 점점 줄어들어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우파의 주장은 “서구식 다당제(多黨制)와 3권분립(分立)을 채택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의 주장은 “민주주의란 서방에는 필요하지만 중국에는 필요가 없는 것으로, 중국이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서방의 ‘대음모(大陰謀)’에 넘어간 결과”라는 주장이다.
정치체제 개혁을 둘러싼 중국내 좌·우파의 대립은 사법권(司法權)의 독립과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와 각급 지도자 선출을 위한 선거방식을 놓고도 전개되고 있다. 그 양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대립과 갈등은 이른바 ‘사과와 오렌지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좌파는 “오렌지는 결코 사과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 맞서서 우파는 “오렌지도 궁극적으로는 사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융녠 교수는 그러나 좌파에 속한 중국의 지도자나 지식인 그룹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파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관영매체들도 정치개혁 논쟁에 대해서는 전혀 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혁개방 시대 중국 최고의 경제학자로 인정받는 우징롄(吳敬璉·81) 베이징대학 교수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지지했다는 사실만은 원자바오 총리의 선전특구 방문 연설 직후에 보도했다. 우 교수는 현재도 중국의 거시(巨視)경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현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 지도부의 경제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다.
우징롄 교수는 작년 8월 30일 베이징 근교 순이(順義)에서 열린 ‘시장화 30년 포럼’에 나가서 “정치체제의 개혁은 필히 가속화해야 할 일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관영매체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그의 주장은 “현대 시장경제는 헌법에 의한 정치와 민주, 법치(法治) 등 상부구조의 보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으며 “민주와 헌정(憲政), 법치가 삼위일체가 된 현대적인 정치체제를 갖추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조류(潮流)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체제의 개혁은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의 정치 실험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중국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보스턴 대학의 중국정치 전문가 조셉 퓨스미스(Fewsmith) 교수는 지난 9월의 중국공산당 5중전회 직후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에 관한 논문을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 웹사이트에 올렸다. 퓨스미스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최근 당의 운명을 결정할 큰 틀의 실험은 아니지만 일부의 정치개혁 실험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 실험은 특히 당간부들의 선거제도에 대해 이뤄지고 있으며, 주로 선거인이 200~300명에서 많아야 3000명 정도의 선거에 대해 실시되고 있다. 실험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실시되고 있으며, 입후보자의 공동 추천과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뜻하는 ‘공추공선(公推公選)’과, 입후보자는 공동 추천하되 선거는 직선(直選)으로 실시하는 ‘공추직선(公推直選)’의 두 가지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추(公推)’란 중국공산당 조직이 후보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추공선과 공추직선은 ‘불완전한 경쟁선거’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 불완전 경쟁선거제도를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의 경우 쓰촨(四川)성 내 2000여 개의 마을(鎭)에서 1만6000개의 마을 행정책임자와 부책임자, 당책임자 등 직위를 놓고 실험적인 경쟁선거를 실시했다. 후베이(湖北)성 양지진(楊集鎭) 같은 마을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가운데 18명의 후보가 출마하는 ‘해추(海推·바다와 같이 넓은 범위에서 추천됐다는 뜻)’를 실시해서 7000여 마을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당대표자를 선출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실험은 한마디로 ‘찻잔속의 바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의 톈안먼사태 당시 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장 옌자치(嚴家其)가 외국으로 망명하면서 주장한 삼권분립의 실현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실험은 아직도 너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마르크스주의 대신 儒家사상?
중국공산당의 미래 역시 지난 20년간 정치체제의 개혁을 금기시해 온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앞길이 묘연(渺然)한 상황이다. “중국공산당은 그런 고민 끝에 과거 진(秦)이 천하를 통일할 때 채택했던 법가(法家)를 비롯한 유가(儒家)사상을 중국의 미래 정치제도에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중국공산당 당교(黨校) 등 관련 학자들은 전하고 있다. 최근 톈안먼광장에 공자(孔子)의 상을 세운 것도 그런 고민 끝에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內戰)에서 승리한 근본적인 이유는 몇 천년에 걸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전제(專制)군주제가 중국인민들을 소외시킨 결과 중국인민들이 국민당보다는 중국공산당을 더 많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반(反)봉건, 반 제국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민당을 섬으로 패퇴시키고 건설됐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중국(新中國)’이라고 자처해 왔다. 그런 터에 “유교(儒敎)의 복원이라면 ‘낡은 중국(舊中國)’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는 반론(反論)을 설득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양 날개로 하는 현 지도부는 내년 가을과 2013년 봄 사이에 당총서기직과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하는 정치스케줄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의 이집트사태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보통 커다란 고민을 안겨준 사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이번 이집트사태를 보고서야 “정치제도의 개혁이 그동안 잊고 지내 오긴 했지만 결코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도 소홀히 해 온 숙제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당 지도부 내에서는 중국공산당을,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지지를 받는 미국의 공화당과, 상대적으로 서민층을 대변하는 미국의 민주당 형태로 정치집단을 두 개로 쪼개야 한다는 해묵은 논쟁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월 스트리트 저널》은 1월 31일 중국관련 기사들의 목록을 올리면서 그런 제목을 달았다. 전날 온라인 《포브스》가 〈튀니지 다음은 이집트, 이집트 다음은?〉이라는 제목을 단 고든 창(Gordon G. Chang)의 칼럼을 게재한 데 대한 답이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그러면서 ‘베이징, (이집트의) 항의시위 보도를 차단’이라는 기사를 1월 31일자에 실었다. 기사는 “중국 당국이 트위터와 비슷한 마이크로 블로그(웨이보·微博)의 검색창에서 이집트(아이지·埃及)라는 단어를 차단했다”고 전하고 “중국 지도자들이 이집트에서와 유사한 정치개혁 요구가 중국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고 보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는 제레미 페이지(Jeremy Page) 특파원의 판단을 덧붙였다.
포브스에 〈이집트 다음은?〉이라는 칼럼을 쓴 고든 창은 중국계 미국인 변호사로 상하이(上海)에서 20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에 《중국의 몰락(Coming Collapse of China)》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책은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됐다.
이 책에서 고든 창은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유는 네 가지로, 부패한 공산당과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국영(國營)기업, 부실덩어리 국영기업을 지원하느라 지급불능의 위기에 빠진 은행들,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 소수(少數)민족 분리주의자들의 시위와 테러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의 위기를 들었다.
물론 고든 창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중국의 몰락》을 쓴 지 10년이 지났지만 중국이 망하기는커녕, 더욱 번영하고 있다. 불량채권의 누적으로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은행들의 재무구조는 날로 개선되고 있다. 오히려 2008년 10월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해서 전(全)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것을 고든 창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집트와 중국의 유사점
그는 1월 30일자 온라인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공산당의 신문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환구시보·環球時報)가 오늘 자에서 전한 것처럼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으로 불안해하는 것은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中東)의 독재자들뿐만이 아니며, 베이징의 지도자들도 13억이 궐기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썼다. 1월 30일자 《환구시보》는 1면 머리기사로 “이집트의 혼란(動蕩)이 중동의 변수가 됐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안정 호소 연설로 서방국가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전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 《포브스》가 전하는 것처럼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촉발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스필 오버(Spill over)돼서 빚어진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중국으로 다시 스필 오버될 것인가 하는 점은 중국 안팎의 커다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파라오로 대변되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전제(專制)통치와 황제(皇帝)로 대변되는 중국의 수천 년에 걸친 전제통치는 서로 유사한 정치적인 배경을 공유(共有)하고 있다.
이집트가 1952년 나세르가 주도한 쿠데타로 왕정(王政)을 종식시키고 현재의 공화국 체제를 수립한 이후, 사다트에 이어 무바라크 대통령이 1981년부터 30년간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과 중국의 정치 흐름은 너무 닮아 있다.
중국은 194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하는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혁명의 성공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하는 개혁개방이라는 제2의 혁명으로 경제발전에 성공함으로써 중국공산당에 의한 권위적인 통치가 지속되고 있다.
이집트와 중국 두 나라는 미국과 소련이 지배하던 양극화(Bipolar) 바탕의 냉전(冷戰) 시대에는 서로 손을 잡고 제3세계 비동맹(非同盟) 국가들 간의 국제정치를 주도해 왔다.
여러 면에서 친구나 다름없는 이집트가 맞고 있는 정치위기는 중국의 정치위기로 수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지도자들이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中언론, 시위현장 보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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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톈안먼사태는 이번 이집트사태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
CCTV의 <신원롄보>는 1월 25일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反) 무바라크 ‘분노의 날’ 시위를 전하지 않았다. 1월 29일 저녁에 가서야 무바라크가 내각을 교체한 사실을 전했다. 1월 29일 이후에도 무바라크 정부의 발표 위주로 전하고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시위현장 영상은 일절 방영하지 않았다.
국제문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전하면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마음속을 대변한다고 자부하는 《환구시보》 역시 1월 30일 자에 가서야 이집트 사태를 전하면서 사태의 본질보다는 “1979년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협정을 잘 지켜 온 무바라크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집트와 유사한 정치적 배경을 안고 있고, 유사한 정치적 행로를 걸어왔지만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를 겪은 점에서는 이집트보다도 선배다. 중국은 22년 전인 1989년 4월에서 6월에 걸친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경험했다. 반부패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지식인과 대학생, 시민들이 참여한 톈안먼사태는 동유럽과 소련으로 스필 오버되어 1990년 말부터 시작된 공산당 주도의 정치체제의 잇단 붕괴로 연결됐다.
하지만 ‘혁명의 수출국’인 중국은 실권자(實權者) 덩샤오핑이 제시한 ‘선(先) 경제발전 후(後) 정치개혁’ 노선에 따라 지금까지 민주화를 목표로 한 정치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경제발전에 주력해 오다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정치위기를 목도(目睹)하기에 이르렀다.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중국 지도자들에게 걱정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은, 필자도 1989년의 톈안먼사태를 《조선일보》 홍콩특파원으로 베이징 현지 취재를 하면서 목격한 것이지만, 2011년 카이로의 타흐리르(Tahrir) 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와 22년 전 베이징 톈안먼광장의 시위 광경이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1989년 중국 군부(軍部)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출동시켰지만, 평소 ‘인민들을 위한 군대’라는 정신교육을 받아 온 인민해방군 탱크병들은 자신들을 환영하면서 손을 흔들고 해치로 기어 올라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면서 즐거워하는 베이징 시민들에 가로막혀 처음에는 톈안먼광장 진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주화 시위 = 혼란’이라는 공식 주입 성공
그러나 덩샤오핑은 6월 4일 톈안먼시위대를 유혈진압했다. 그는 시위대의 정치개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대에 동정적이던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물러나게 했다. 자오의 후임으로는 ‘공인규찰대(工人糾察隊)’란 이름의 노동자 질서유지대를 조직해서 상하이 시내의 시위를 효과적으로 해산시킨 장쩌민(江澤民) 상하이 당서기가 낙점됐다. 덩샤오핑은 권력의 핵심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넘겨주고 은퇴한 후 수렴청정(垂簾聽政)하는 길을 선택했다. 덩샤오핑은 그렇게 톈안먼사태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현재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을 맞아 위기에 몰린 무바라크의 머릿속에도 22년 전 덩샤오핑의 선택이 그려졌는지 모른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流血)진압하고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대안(代案)을 중국 인민들에게 안겨 주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사태 직후 시위진압을 정당화하는 <폭란(暴亂)의 진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한 달에 걸쳐 전국적으로 반복 선전했다. 이 ‘역발상(逆發想)’이 성공했다. 중국공산당은 정치개혁 요구를 잠재우고 지난 20여 년간 경제발전 일변도의 정책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국을 끌어 왔다.
톈안먼광장 시위의 유혈진압에 대한 역선전공으로 인민들의 뇌리에 “민주화 요구 시위 = 혼란”이라는 공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胡錦濤)로 바통을 넘길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민주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체제 개혁 요구에 대해 민주화나 정치개혁이라는 용어 자체를 금기(禁忌)의 영역에 가두어 놓은 채 ‘법치(法治)’ ‘당내 민주화’ ‘중국공산당의 집권당화’ 등의 대속물(代贖物)들을 제시해서 국내 정치의 안정화에 그럭저럭 성공했다.
그러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정치체제의 개혁’을 제시한 것은 톈안먼사태로부터 21년이 흐른 지난해 8월 21일이었다.
정치체제 개혁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톈안먼사태 당시 시위 지도부에 동정적이라는 이유로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에 의해 당총서기직에서 축출당한 자오쯔양 총서기의 비서격으로 당내 행정을 총괄하는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원자바오(溫家寶) 현(現) 총리였다.
원자바오의 정치개혁 요구
원자바오는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特區)로, 지난 30년간 개혁개방 정책의 상징이었던 광둥(廣東)성 선전(深?)시의 특구 선정 30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받을 연설을 했다.
“… 사회주의 제도의 완성을 위해서는 흔들림 없이 개혁개방을 추진해야 합니다. 사상을 해방하고, 시대와 맞게 전진하면서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성숙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개혁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치체제의 개혁을 아울러 추진해야 합니다. 정치체제의 개혁에 대한 보장 없이는 경제체제의 개혁의 성과도 상실할 수 있으며, 현대화 건설의 목표도 실현 불가능합니다. …”
중국 안팎을 깜짝 놀라게 한 원자바오의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언급은 미리 충분한 당내 논의과정을 거친 결과인 듯했다. 원자바오는 한 달 뒤인 9월 23일에는 CNN과의 인터뷰에 나섰다. 원자바오의 CNN인터뷰에는 보다 자극적인 용어들이 동원됐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인민들의 바람과 요구는 이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irresistable) 것입니다. … 중국공산당은 헌법과 법률에 맞게 운영돼야 합니다. … 일부의 반대가 있겠지만 나는 내 능력의 범위 내에서 정치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입니다. …”
원자바오의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약속으로 중국 안팎에서는 각종 추측과 논리가 난무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함께 두 번째 5년 임기를 2년 정도 남긴 시점에서 돌연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하고 나선 원자바오가 비교적 보수 좌파 성향의 후진타오와 정치적인 대척점(對蹠點)에 서기 위해 고의로 정치체제 개혁을 거론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많았다.
그러나 불과 보름 뒤인 9월 6일 후진타오 역시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했다. 원래 8월인 선전 경제특구 30주년 기념일 공식행사를 다소 늦춰 치르는 자리에 나온 후진타오 주석은 단 한 차례이긴 했지만 정치체제의 개혁의 필요성을 분명히 언급하고 나섰다.
“… 선전 경제특구가 개혁개방을 심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문화체제, 사회체제의 개혁이 전면적으로 추진돼야 하며, 중요한 영역과 부문에서 개혁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전특구의 ‘선행선시(先行先試·먼저 행동하고 먼저 시도하는 것)’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중앙 지도자들의 미래 개혁에 대한 분명한 사고방식입니다. …”
후진타오도 정치개혁 주장
원자바오 총리가 보다 단정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정치체제의 개혁을 제시한 것과는 달리 후진타오의 연설은 단 한 차례,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이뤄질 일임을 한정적으로 표현하기는 했다. 하지만 후진타오의 연설은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정치체제 개혁에 대해 분명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 연설이었다. 원자바오의 선전 방문 연설을 통해 제시된 정치체제의 개혁 약속이 원자바오 총리만의 구상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임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당내 흐름은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의 회의 결과 발표문(公報)를 통해 확인됐다.
“…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이 강조됐다. 개혁은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강력한 동력이며, 각 영역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경제체제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정치체제의 개혁은 적극적이되 안정적으로 추진하며, 문화체제와 사회체제의 개혁을 가속화한다. 상층건축(上層建築·정치와 문화등 사회의 상부구조)의 개혁은 경제적 기초의 발전적 변화와 과학발전의 보장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
원자바오와 후진타오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왜 이 시점에 톈안먼사태 이후 20년 동안 금기시되어 오던 정치체제의 개혁을 언급하고 나섰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17기 5중전회 20일쯤 뒤인 10월 8일에 발표된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예견한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사과와 오렌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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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융녠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장. |
“현재 중국내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정치개혁 논쟁은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으며, 양파 간의 투쟁 국면은 덩샤오핑 시대의 남순강화(南巡講話·1992년 경제발전과 시장경제 도입 속도를 놓고 빠른 추진을 지지하는 개혁파와 반대파인 우파 간에 빚어진 갈등 국면에서 덩샤오핑이 중국 동남부의 경제특구를 순회하며 우파의 손을 들어 주는 일련의 연설을 한 사건)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다. …”
그에 따르면,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우파(일명 자유파)와 반대하는 좌파 사이에는 현재 공통된 주장의 폭이 점점 줄어들어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한다. 우파의 주장은 “서구식 다당제(多黨制)와 3권분립(分立)을 채택하기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의 주장은 “민주주의란 서방에는 필요하지만 중국에는 필요가 없는 것으로, 중국이 민주화를 위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서방의 ‘대음모(大陰謀)’에 넘어간 결과”라는 주장이다.
정치체제 개혁을 둘러싼 중국내 좌·우파의 대립은 사법권(司法權)의 독립과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와 각급 지도자 선출을 위한 선거방식을 놓고도 전개되고 있다. 그 양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대립과 갈등은 이른바 ‘사과와 오렌지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좌파는 “오렌지는 결코 사과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 맞서서 우파는 “오렌지도 궁극적으로는 사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융녠 교수는 그러나 좌파에 속한 중국의 지도자나 지식인 그룹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파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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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징롄 베이징대 교수. |
우징롄 교수는 작년 8월 30일 베이징 근교 순이(順義)에서 열린 ‘시장화 30년 포럼’에 나가서 “정치체제의 개혁은 필히 가속화해야 할 일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관영매체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그의 주장은 “현대 시장경제는 헌법에 의한 정치와 민주, 법치(法治) 등 상부구조의 보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으며 “민주와 헌정(憲政), 법치가 삼위일체가 된 현대적인 정치체제를 갖추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조류(潮流)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체제의 개혁은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당의 정치 실험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중국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보스턴 대학의 중국정치 전문가 조셉 퓨스미스(Fewsmith) 교수는 지난 9월의 중국공산당 5중전회 직후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에 관한 논문을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or) 웹사이트에 올렸다. 퓨스미스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최근 당의 운명을 결정할 큰 틀의 실험은 아니지만 일부의 정치개혁 실험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의 당내 민주화 실험은 특히 당간부들의 선거제도에 대해 이뤄지고 있으며, 주로 선거인이 200~300명에서 많아야 3000명 정도의 선거에 대해 실시되고 있다. 실험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실시되고 있으며, 입후보자의 공동 추천과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뜻하는 ‘공추공선(公推公選)’과, 입후보자는 공동 추천하되 선거는 직선(直選)으로 실시하는 ‘공추직선(公推直選)’의 두 가지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추(公推)’란 중국공산당 조직이 후보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추공선과 공추직선은 ‘불완전한 경쟁선거’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 불완전 경쟁선거제도를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의 경우 쓰촨(四川)성 내 2000여 개의 마을(鎭)에서 1만6000개의 마을 행정책임자와 부책임자, 당책임자 등 직위를 놓고 실험적인 경쟁선거를 실시했다. 후베이(湖北)성 양지진(楊集鎭) 같은 마을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가운데 18명의 후보가 출마하는 ‘해추(海推·바다와 같이 넓은 범위에서 추천됐다는 뜻)’를 실시해서 7000여 마을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당대표자를 선출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실험은 한마디로 ‘찻잔속의 바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의 톈안먼사태 당시 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장 옌자치(嚴家其)가 외국으로 망명하면서 주장한 삼권분립의 실현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실험은 아직도 너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마르크스주의 대신 儒家사상?
중국공산당의 미래 역시 지난 20년간 정치체제의 개혁을 금기시해 온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앞길이 묘연(渺然)한 상황이다. “중국공산당은 그런 고민 끝에 과거 진(秦)이 천하를 통일할 때 채택했던 법가(法家)를 비롯한 유가(儒家)사상을 중국의 미래 정치제도에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중국공산당 당교(黨校) 등 관련 학자들은 전하고 있다. 최근 톈안먼광장에 공자(孔子)의 상을 세운 것도 그런 고민 끝에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內戰)에서 승리한 근본적인 이유는 몇 천년에 걸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전제(專制)군주제가 중국인민들을 소외시킨 결과 중국인민들이 국민당보다는 중국공산당을 더 많이 지지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반(反)봉건, 반 제국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민당을 섬으로 패퇴시키고 건설됐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중국(新中國)’이라고 자처해 왔다. 그런 터에 “유교(儒敎)의 복원이라면 ‘낡은 중국(舊中國)’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냐”는 반론(反論)을 설득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양 날개로 하는 현 지도부는 내년 가을과 2013년 봄 사이에 당총서기직과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하는 정치스케줄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의 이집트사태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보통 커다란 고민을 안겨준 사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이번 이집트사태를 보고서야 “정치제도의 개혁이 그동안 잊고 지내 오긴 했지만 결코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도 소홀히 해 온 숙제였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당 지도부 내에서는 중국공산당을, 상대적으로 부유층의 지지를 받는 미국의 공화당과, 상대적으로 서민층을 대변하는 미국의 민주당 형태로 정치집단을 두 개로 쪼개야 한다는 해묵은 논쟁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