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계 이민자의 아들, 苦學으로 대학 마친 서민 정치인
⊙ 보수정치인 자처하면서도 “공화당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비판
尹禎皓
⊙ 1971년 생.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예일대 정치학 석사. 예일대 박사과정 재학 중.
⊙ 저서: <한국경제와 포퓰리즘> (공저)
⊙ 보수정치인 자처하면서도 “공화당은 뇌사상태에 빠졌다”고 비판
尹禎皓
⊙ 1971년 생.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예일대 정치학 석사. 예일대 박사과정 재학 중.
⊙ 저서: <한국경제와 포퓰리즘> (공저)
-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신성(新星)으로 떠오른 마르코 루비오는 뛰어난 연설능력으로 ‘의사소통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친구 의원 보좌관 아냐?” 11월 6일 인터넷을 통해 공화당 주례(週例)연설을 접한 많은 미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중간선거 뒤 처음 있는 연설이었기에 지긋한 나이의 중진(重鎭) 정치인이 연사로 나설 것을 기대했지만 처음 보는 동안(童顔)의 정치인이 등장했다. 그는 긴장한 기색도 없이 달변을 토했다. “그를 발굴한 것이야 말로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는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였다. 그는 이번에 플로리다주(州)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많은 성과를 거뒀다. 우선 의회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공화당은 하원(下院)에서 61석의 의석을 추가하며 다수당(多數黨)으로 도약했다. 상원(上院)에서도 6석의 의석을 더했다.
이 같은 결과는 상당 부분 미국 국민의 이념이 우경화(右傾化)했음을 보여준다. 2006년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大選) 출구(出口)조사에서 각각 32%와 34%만이 “내 이념은 보수적”이라고 답했던 미국 국민들. 이번 선거에서는 무려 41%가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리버럴이라고 한 응답자는 20%에 머물렀다.
이와 함께 공화당은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2008년 선거 패배로 인해 공화당은 남부 주들에서만 강세를 띠는 지역 정당으로 전락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남부에서 강세를 보였다. 131개 하원 선거구 중 94개에서 승리를 거뒀다. 동시에 공화당은 오하이오, 일리노이, 위스콘신 등 최근 열세를 보여 온 중서부 지역에서도 선전(善戰)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뉴욕, 뉴햄프셔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등 민주당의 아성(牙城)인 북동부 지역에서도 당선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공화당은 주 단위 선거에서 쾌승(快勝)을 거뒀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베이런 (Michael Barone)의 집계에 따르면 공화당은 19개의 주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의석 수 기준으로는 주 상원에서 125석을 확보하고 하원에서는 550석을 얻어 총 675석을 더했다. 1928년 이래 최고의 기록이다. 이로써 공화당은 향후 연방 하원 선거에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주 의회들은 조만간 올해 행해진 인구조사에 근거해서 하원 선거구를 다시 그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거둔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앞으로 당을 이끌고 갈 차세대 리더들을 발굴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39세인 루비오는 민주당을 비롯한 리버럴 진영 내에서는 경계 대상 1순위로, 공화당을 포함한 보수진영 내에서는 최고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공화당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젊음 때문만은 아니다. 초선(初選) 상원의원인 루비오는 기성 보수 정치인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네 가지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自力으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 성공
첫째, 루비오는 빼어난 정치역량의 소유자다. 루비오가 플로리다 연방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난해 5월. 그때만 해도 아무도 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루비오가 승리를 거머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민주당은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서 선거운동에 나섰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 당내경선(黨內競選)이었다. 상대는 찰리 크리스트 (Charlie Crist) 주지사였다. 주의회 상원의원과 주교육위원회 위원을 거쳐 2007년 주지사 공관에 입성한 관록의 정치인이었다.
크리스트에 비하면 루비오의 경력은 보잘것없었다. 웨스트 마이애미시(市) 시위원회 위원과 플로리다주 하원의원 및 하원 위원장 경력이 전부였다. 루비오는 정치자금 모금과 지지도 면에서도 크리스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크리스트는 2009년 5월 이후 세 달 동안 430만 달러를 모금했다. 같은 기간 루비오는 고작 34만 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다. 여론조사 결과도 참담했다. 출마 선언 직후 루비오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겨우 3%에 그쳤다.
게다가 크리스트는 공화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상원 선거운동을 총괄하는 공화당 상원선거위원회(National Republican Senatorial Committee) 위원장 존 커나인 (John Cornyn),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커널(Mitch McConnell), 2008년 대선 후보 존 매케인 등이 크리스트 지지선언을 했다. 루비오 곁에는 보수 성향의 온라인 미디어 레드스테이트(Red State)의 운영자 에릭 에릭슨(Erick Erickson) 등 극소수의 우파(右派) 운동가뿐이었다. 하지만 루비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자 선거전략을 전환했다.
그는 경선(競選) 캠페인을 전국화(全國化)했다. 크리스트만을 타깃으로 삼는 전략을 버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크리스트가 2009년 2월 오바마의 경기부양 정책홍보 집회에 참석하는 등 오바마 정권에 전폭적으로 협력해 왔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오바마를 공격하면 크리스트의 지지도도 같이 하락할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고공(高空)행진을 계속하자 오바마와 크리스트의 지지도가 함께 추락했다. 루비오의 지지도는 오르고 선거자금이 밀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크리스트가 전략을 바꿨다. 올해 4월, 그는 공화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동시에 그는 전방위(全方位) 비방 공세에 나섰다. 그는 루비오를 극우주의자(極右主義者)로 몰아붙였다.
멕시코만(灣)에서 BP 석유유출 사고가 터지자 그는 사고 해결의 전면에 나서 ‘위기해결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선거자금 모금책들과 보좌관들이 그의 곁을 떠났다. 잠시 상승하는 듯했던 크리스트의 지지율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급락(急落)했다. 루비오는 48.9%를 득표하며 낙승(樂勝), 자력(自力)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를 이룩했다.
쿠바 이민자의 아들 루비오
둘째, 루비오는 서민 정치인이다. 공화당의 치명적 약점(弱點) 중 하나는 히스패닉계(系) 서민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는 것이다. 졸탄 하즈널 (Zoltan Hajnal)이 <불균등 민주주의>
(不均等 民主主義·America’s Unevern Democracy)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히스패닉계는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유권자 그룹이다. 2050년까지 히스패닉계는 200%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화당의 정책과 소속 정치인들은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7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왔다.
루비오는 다르다. 서민층이 대다수인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이 지닌 가치와 인생역정 그리고 정서를 공유(共有)한다. 그는 절대 다수의 히스패닉계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신앙인이다. 루비오는 공석과 사석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강조한다. 그의 연설에서는 놀라우리만큼 자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신앙은 삶의 일부인 것이다. 이와 관련, 루비오는 플로리다주 하원의장 고별사(告別辭)를 신앙고백으로 마무리했다. 격정적인 어조로 자신의 정치관을 논하던 그는 느닷없이 “나는 주님이 살아계심을 의심치 않는다”고 간증을 했다.
루비오의 가족은 고된 인생역정을 경험했다. 그의 부모는 목숨을 걸고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쿠바를 등지고 미국행(行)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4자매를 키우기 위해선 뉴욕과 라스베이거스 등을 전전하며 온갖 궂은 일을 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78세로 은퇴할 때까지 바텐더로 일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갖은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들어간 루비오는 고학(苦學)으로 학업을 마쳤다.
하지만 미국시민이 된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조국에 대해 깊은 자긍심(自矜心)을 공유한다. 자신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기에 루비오의 미국 찬미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루비오는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부모에게 온정을 베풀어 준 수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는 부모의 계층이나 정치 성분에 따라 자식의 인생이 결정되지만 미국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곳”이라고 말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곤 한다.
그 결과 루비오는 주 하원의원으로 봉직하는 동안 서민층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55%가 루비오를 지지했다. 공화당 소속의 히스패닉계 정치인으로 네바다 주지사에 출마한 브라이언 샌도발(Brian Sandoval)은 33%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전국 단위의 출구(出口)조사 결과에 의하면 64%에 달하는 절대 다수의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당당한 보수주의자
셋째, 루비오는 보수성향의 정책을 자신 있게 추구한다. 플로리다는 민주당원의 숫자가 공화당원의 숫자보다 약 60만명이나 많은 곳이다. 그래서 플로리다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보수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꺼린다. 그들의 정책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루비오는 예외였다. 주 하원의원 시절부터 그는 우파적(右派的) 국정운영 비전을 추구했다. 그는 주민들이 제안한 보수 성향의 정책안(政策案)을 모은 <플로리다의 미래를 위한 100대 혁신 아이디어>(100 Innovative Ideas for Florida’s Future)라는 책을 출판, 이를 현실화하려 했다.
이러한 노력은 이번 선거에서도 계속됐다. 루비오는 교육서비스 제공자인 교사와 교육 소비자인 학생의 권익(權益)을 아우르는 정책을 제시했다. 교사들에게 법률적 보호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의사들이 근거 없는 의료 소송에 시달리듯 교사들이 각종 소송에 골머리를 썩는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학생들의 학습권(學習權)을 보호하겠노라고 했다. 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금 규모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교사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장학금을 신설해서 본인이 원할 경우 저소득층 학생들이 보다 나은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루비오는 부모와 자식 세대 모두를 위한 복지개혁을 단행하고자 했다. 부모 세대를 위해서는 염가(廉價)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소 (Community Health Center)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그는 현행 연금(年金) 및 의료보험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노령층은 급격한 변화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루비오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야심찬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금 제도의 파산을 막기 위해서는 연금수령 시작 나이를 늦추고 수령액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2005년 도입된 의료저축계좌(Health Savings Account)를 늘리는 등 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의료보험제도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그는 솔선수범을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루비오는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그는 낮은 효율성으로 비판을 받아 온 경기부양 예산의 집행을 중단하고 미집행 예산을 국가부채 경감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공약했다. 루비오는 의원들의 선심성 예산편성 관행에 마침표를 찍고 공무원 규모를 2008년 수준으로 줄이는 한편 균형예산 달성을 헌법 수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조치에는 정치인들의 솔선수범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백악관과 의회 예산을 10% 줄이고 의원 임기에 제한을 두겠다고 공약했다.
‘공화당의 오바마’
그러자 보수 진영 내에는 열성 지지자들이 속출했다. 짐 디 민트 (Jim DeMint) 상원의원은 루비오를 “숨은 보석 같은 정치인”이라고 극찬했다. 2008년 대선 레이스에 나섰던 마이크 허커비 (Mike Huckabee) 전(前) 아칸소 주지사는 그를 “공화당의 오바마”라고 치켜세웠다. 마이클 스틸(Michael Steele) 공화당전국위원회(Republican National Committee) 위원장, 존 튠 (John Thune) 상원의원, 루돌프 줄리아니 (Rudolph Giuliani) 전 뉴욕시장, 그리고 미트 롬니 (Mitt Romney)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2012년 대선 주자들도 플로리다까지 내려와 유세에 동참했다.
넷째, 루비오는 소통(疏通)의 달인(達人)이다. TV와 인터넷 정치광고가 보편화하고 텔레프롬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현대 미국 정치에서 대중연설은 대중과의 소통기제(機制)로서 설 땅을 잃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즉흥연설 능력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루비오는 이 같은 추세에 역행(逆行)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탁월한 대중연설가다. 텔레프롬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빠른 어조로 거침없이 연설을 한다. 심각하고 복잡한 주의주장과 농담을 능수능란하게 섞어 낸다. 선동을 하듯 인상을 쓰고 목청을 돋우지 않으면서도 청중을 휘어잡는 능력을 갖췄다. 그뿐이 아니다.
루비오는 정책을 일반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포장해 낸다. 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쿠바를 보라”고 한다. 그는 “쿠바 경제가 무너진 이유는 과도한 정부의 간섭 때문”이라며 “미국도 제2의 쿠바로 전락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Cap-and-Trade)에 대해서는 “이 제도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제3세계 경제’로 만들 것”이라고 비꼬아 폭소를 자아낸다. 규제가 너무 심해지면 산업시설들이 모두 해외로 이전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공화당은 뇌사상태에 빠졌다”
루비오는 정책비판은 하되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는 크리스트 주지사와 날선 공방을 하는 와중에도 인신공격은 자제하면서 크리스트를 “뛰어난 성품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우곤 했다.
오바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루비오는 행정부의 정책을 공격하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비난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사지 <휴먼 이벤츠>
(Human Events)와의 인터뷰에서 그랬듯이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루비오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은 매섭게 비판한다. 루비오 연설의 상당 부분은 공화당에 대한 날선 비판에 할애되어 있다. 그는 “공화당이 최근 10여 년간 당의 갈 길을 잃고 방황해 왔다”면서 “공화당은 참신한 정책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채 뇌사(腦死)상태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공화당을 향한 루비오의 비판은 중간선거 뒤에도 계속됐다. 앞서 언급한 주례연설에서 루비오는 “이번 중간선거 승리야말로 유권자들이 준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일지 모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줬던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 때문에 루비오는 공화당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中道)성향의 무당파(無黨派) 유권자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아 왔다. 무당파 유권자의 51%가 루비오에게 투표했다. 이는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들이 무당파 유권자들로부터 받은 평균 지지도보다 4%포인트 낮은 수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거가 공화-민주당의 양당(兩黨) 대결로 벌어진 데 반해 루비오가 치른 선거는 중도 후보를 표방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크리스트를 포함, 3강(强) 구도로 진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 못할 성과다.
루비오의 미래
이렇듯 다채로운 자질을 지녔음에도 루비오가 과연 ‘공화당의 오바마’가 될 수 있을지, 공화당 대권(大權) 후보가 되어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지를 확언하기는 힘들다.
우선 루비오의 지명도가 높아질수록 검증 공세가 거세질 것이다. 이미 루비오는 각종 의혹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마이애미 해럴드지(紙)는 그가 주 하원의장 재직 당시 공화당이 발급한 신용카드를 사적(私的) 용도에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동료 주 하원의원들은 그가 과거 재정건전성 개선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남발했었다고 꼬집었다. 블로거인 에릭 귄타 (Eric Guinta)는 루비오가 가짜 가톨릭 신자라고 주장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루비오가 2008년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설 경우 새라 페일린의 전철(前轍)을 밟을 수 있다. 페일린은 루비오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페일린은 보수 성향뿐 아니라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매케인의 러닝메이트가 된 뒤부터 이 같은 능력은 사라지고 ‘극단적 보수주의자’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미국 선거운동의 특성상 부통령 후보는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지지층의 투표를 독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티파티(Tea Party)운동(감세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미국의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도 난제(難題)다.
루비오의 당선에는 티파티운동 멤버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오는 티파티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등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티파티와 자신이 동일시될 경우 티파티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그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칫 잘못하면 티파티 운동가들이 반(反)루비오 세력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루비오가 한국정치에 주는 교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루비오를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루비오의 부상(浮上)은 한국 보수진영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정치에서 세대교체는 하향식 공천(下向式公薦)이나 깜짝 인사 등 ‘위로부터의 교체’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차세대 주자로 등장한 이들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었다. 서민 보수주의 신성(新星)의 발굴도 지지부진했다. 루비오의 사례가 보여주듯 진정한 의미에서 서민 정치인은 보통 국민과 같은 인생역정을 거쳤을 뿐 아니라 군(軍)복무, 납세, 준법 등 가치와 정서를 공유해야 한다.
게다가 보수주의 국정운영 비전을 자신 있게 추구하는 소장파(少壯派) 정치인은 점점 접하기 힘들어진다. 정계에는 언젠가부터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를 접어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듯하다.
걸출한 언변으로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한국판 오바마’, ‘한국판 루비오’를 육성하려는 시도도 드물다. 대신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스마트폰 등 신기술만 쓰면 국민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그릇된 신기술(新技術) 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루비오의 혜성 같은 등장이 우리나라에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보수 진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 발굴과 육성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많은 성과를 거뒀다. 우선 의회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공화당은 하원(下院)에서 61석의 의석을 추가하며 다수당(多數黨)으로 도약했다. 상원(上院)에서도 6석의 의석을 더했다.
이 같은 결과는 상당 부분 미국 국민의 이념이 우경화(右傾化)했음을 보여준다. 2006년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大選) 출구(出口)조사에서 각각 32%와 34%만이 “내 이념은 보수적”이라고 답했던 미국 국민들. 이번 선거에서는 무려 41%가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리버럴이라고 한 응답자는 20%에 머물렀다.
이와 함께 공화당은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2008년 선거 패배로 인해 공화당은 남부 주들에서만 강세를 띠는 지역 정당으로 전락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남부에서 강세를 보였다. 131개 하원 선거구 중 94개에서 승리를 거뒀다. 동시에 공화당은 오하이오, 일리노이, 위스콘신 등 최근 열세를 보여 온 중서부 지역에서도 선전(善戰)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뉴욕, 뉴햄프셔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등 민주당의 아성(牙城)인 북동부 지역에서도 당선자를 내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공화당은 주 단위 선거에서 쾌승(快勝)을 거뒀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베이런 (Michael Barone)의 집계에 따르면 공화당은 19개의 주 의회 선거에서 승리했다. 의석 수 기준으로는 주 상원에서 125석을 확보하고 하원에서는 550석을 얻어 총 675석을 더했다. 1928년 이래 최고의 기록이다. 이로써 공화당은 향후 연방 하원 선거에서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주 의회들은 조만간 올해 행해진 인구조사에 근거해서 하원 선거구를 다시 그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거둔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앞으로 당을 이끌고 갈 차세대 리더들을 발굴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39세인 루비오는 민주당을 비롯한 리버럴 진영 내에서는 경계 대상 1순위로, 공화당을 포함한 보수진영 내에서는 최고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공화당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젊음 때문만은 아니다. 초선(初選) 상원의원인 루비오는 기성 보수 정치인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네 가지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自力으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 성공
 |
| 플로리다주 하원의장 시절의 마르코 루비오. |
첫째, 루비오는 빼어난 정치역량의 소유자다. 루비오가 플로리다 연방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난해 5월. 그때만 해도 아무도 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루비오가 승리를 거머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민주당은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서 선거운동에 나섰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 당내경선(黨內競選)이었다. 상대는 찰리 크리스트 (Charlie Crist) 주지사였다. 주의회 상원의원과 주교육위원회 위원을 거쳐 2007년 주지사 공관에 입성한 관록의 정치인이었다.
크리스트에 비하면 루비오의 경력은 보잘것없었다. 웨스트 마이애미시(市) 시위원회 위원과 플로리다주 하원의원 및 하원 위원장 경력이 전부였다. 루비오는 정치자금 모금과 지지도 면에서도 크리스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크리스트는 2009년 5월 이후 세 달 동안 430만 달러를 모금했다. 같은 기간 루비오는 고작 34만 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다. 여론조사 결과도 참담했다. 출마 선언 직후 루비오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응답자는 겨우 3%에 그쳤다.
게다가 크리스트는 공화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상원 선거운동을 총괄하는 공화당 상원선거위원회(National Republican Senatorial Committee) 위원장 존 커나인 (John Cornyn),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커널(Mitch McConnell), 2008년 대선 후보 존 매케인 등이 크리스트 지지선언을 했다. 루비오 곁에는 보수 성향의 온라인 미디어 레드스테이트(Red State)의 운영자 에릭 에릭슨(Erick Erickson) 등 극소수의 우파(右派) 운동가뿐이었다. 하지만 루비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자 선거전략을 전환했다.
그는 경선(競選) 캠페인을 전국화(全國化)했다. 크리스트만을 타깃으로 삼는 전략을 버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크리스트가 2009년 2월 오바마의 경기부양 정책홍보 집회에 참석하는 등 오바마 정권에 전폭적으로 협력해 왔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오바마를 공격하면 크리스트의 지지도도 같이 하락할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다.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고공(高空)행진을 계속하자 오바마와 크리스트의 지지도가 함께 추락했다. 루비오의 지지도는 오르고 선거자금이 밀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크리스트가 전략을 바꿨다. 올해 4월, 그는 공화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동시에 그는 전방위(全方位) 비방 공세에 나섰다. 그는 루비오를 극우주의자(極右主義者)로 몰아붙였다.
멕시코만(灣)에서 BP 석유유출 사고가 터지자 그는 사고 해결의 전면에 나서 ‘위기해결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선거자금 모금책들과 보좌관들이 그의 곁을 떠났다. 잠시 상승하는 듯했던 크리스트의 지지율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급락(急落)했다. 루비오는 48.9%를 득표하며 낙승(樂勝), 자력(自力)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대교체’를 이룩했다.
쿠바 이민자의 아들 루비오
 |
| 공화당 연방상원의원 후보로 선출된 뒤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 |
(不均等 民主主義·America’s Unevern Democracy)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히스패닉계는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유권자 그룹이다. 2050년까지 히스패닉계는 200%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화당의 정책과 소속 정치인들은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7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 왔다.
루비오는 다르다. 서민층이 대다수인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이 지닌 가치와 인생역정 그리고 정서를 공유(共有)한다. 그는 절대 다수의 히스패닉계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신앙인이다. 루비오는 공석과 사석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강조한다. 그의 연설에서는 놀라우리만큼 자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신앙은 삶의 일부인 것이다. 이와 관련, 루비오는 플로리다주 하원의장 고별사(告別辭)를 신앙고백으로 마무리했다. 격정적인 어조로 자신의 정치관을 논하던 그는 느닷없이 “나는 주님이 살아계심을 의심치 않는다”고 간증을 했다.
루비오의 가족은 고된 인생역정을 경험했다. 그의 부모는 목숨을 걸고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쿠바를 등지고 미국행(行)을 선택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4자매를 키우기 위해선 뉴욕과 라스베이거스 등을 전전하며 온갖 궂은 일을 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78세로 은퇴할 때까지 바텐더로 일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갖은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들어간 루비오는 고학(苦學)으로 학업을 마쳤다.
하지만 미국시민이 된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조국에 대해 깊은 자긍심(自矜心)을 공유한다. 자신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기에 루비오의 미국 찬미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루비오는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부모에게 온정을 베풀어 준 수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는 부모의 계층이나 정치 성분에 따라 자식의 인생이 결정되지만 미국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는 곳”이라고 말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곤 한다.
그 결과 루비오는 주 하원의원으로 봉직하는 동안 서민층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55%가 루비오를 지지했다. 공화당 소속의 히스패닉계 정치인으로 네바다 주지사에 출마한 브라이언 샌도발(Brian Sandoval)은 33%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전국 단위의 출구(出口)조사 결과에 의하면 64%에 달하는 절대 다수의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당당한 보수주의자
셋째, 루비오는 보수성향의 정책을 자신 있게 추구한다. 플로리다는 민주당원의 숫자가 공화당원의 숫자보다 약 60만명이나 많은 곳이다. 그래서 플로리다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보수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꺼린다. 그들의 정책은 민주당 정치인들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루비오는 예외였다. 주 하원의원 시절부터 그는 우파적(右派的) 국정운영 비전을 추구했다. 그는 주민들이 제안한 보수 성향의 정책안(政策案)을 모은 <플로리다의 미래를 위한 100대 혁신 아이디어>(100 Innovative Ideas for Florida’s Future)라는 책을 출판, 이를 현실화하려 했다.
이러한 노력은 이번 선거에서도 계속됐다. 루비오는 교육서비스 제공자인 교사와 교육 소비자인 학생의 권익(權益)을 아우르는 정책을 제시했다. 교사들에게 법률적 보호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의사들이 근거 없는 의료 소송에 시달리듯 교사들이 각종 소송에 골머리를 썩는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학생들의 학습권(學習權)을 보호하겠노라고 했다. 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금 규모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교사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장학금을 신설해서 본인이 원할 경우 저소득층 학생들이 보다 나은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루비오는 부모와 자식 세대 모두를 위한 복지개혁을 단행하고자 했다. 부모 세대를 위해서는 염가(廉價)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소 (Community Health Center)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그는 현행 연금(年金) 및 의료보험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노령층은 급격한 변화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루비오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야심찬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금 제도의 파산을 막기 위해서는 연금수령 시작 나이를 늦추고 수령액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2005년 도입된 의료저축계좌(Health Savings Account)를 늘리는 등 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의료보험제도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그는 솔선수범을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루비오는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그는 낮은 효율성으로 비판을 받아 온 경기부양 예산의 집행을 중단하고 미집행 예산을 국가부채 경감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공약했다. 루비오는 의원들의 선심성 예산편성 관행에 마침표를 찍고 공무원 규모를 2008년 수준으로 줄이는 한편 균형예산 달성을 헌법 수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조치에는 정치인들의 솔선수범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백악관과 의회 예산을 10% 줄이고 의원 임기에 제한을 두겠다고 공약했다.
‘공화당의 오바마’
 |
| 선거유세 기간 중 지지자들과 함께한 마르코 루비오(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
넷째, 루비오는 소통(疏通)의 달인(達人)이다. TV와 인터넷 정치광고가 보편화하고 텔레프롬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현대 미국 정치에서 대중연설은 대중과의 소통기제(機制)로서 설 땅을 잃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즉흥연설 능력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루비오는 이 같은 추세에 역행(逆行)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탁월한 대중연설가다. 텔레프롬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빠른 어조로 거침없이 연설을 한다. 심각하고 복잡한 주의주장과 농담을 능수능란하게 섞어 낸다. 선동을 하듯 인상을 쓰고 목청을 돋우지 않으면서도 청중을 휘어잡는 능력을 갖췄다. 그뿐이 아니다.
루비오는 정책을 일반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포장해 낸다. 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쿠바를 보라”고 한다. 그는 “쿠바 경제가 무너진 이유는 과도한 정부의 간섭 때문”이라며 “미국도 제2의 쿠바로 전락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Cap-and-Trade)에 대해서는 “이 제도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제3세계 경제’로 만들 것”이라고 비꼬아 폭소를 자아낸다. 규제가 너무 심해지면 산업시설들이 모두 해외로 이전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공화당은 뇌사상태에 빠졌다”
 |
| 이번 플로리다주 연방상원의원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졌다. 왼쪽부터 마르코 루비오, 찰리 크리스트 주지사, 켄드릭 미크. |
오바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루비오는 행정부의 정책을 공격하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비난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사지 <휴먼 이벤츠>
(Human Events)와의 인터뷰에서 그랬듯이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루비오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은 매섭게 비판한다. 루비오 연설의 상당 부분은 공화당에 대한 날선 비판에 할애되어 있다. 그는 “공화당이 최근 10여 년간 당의 갈 길을 잃고 방황해 왔다”면서 “공화당은 참신한 정책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채 뇌사(腦死)상태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공화당을 향한 루비오의 비판은 중간선거 뒤에도 계속됐다. 앞서 언급한 주례연설에서 루비오는 “이번 중간선거 승리야말로 유권자들이 준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일지 모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줬던 과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 때문에 루비오는 공화당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中道)성향의 무당파(無黨派) 유권자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아 왔다. 무당파 유권자의 51%가 루비오에게 투표했다. 이는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들이 무당파 유권자들로부터 받은 평균 지지도보다 4%포인트 낮은 수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거가 공화-민주당의 양당(兩黨) 대결로 벌어진 데 반해 루비오가 치른 선거는 중도 후보를 표방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크리스트를 포함, 3강(强) 구도로 진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 못할 성과다.
루비오의 미래
이렇듯 다채로운 자질을 지녔음에도 루비오가 과연 ‘공화당의 오바마’가 될 수 있을지, 공화당 대권(大權) 후보가 되어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지를 확언하기는 힘들다.
우선 루비오의 지명도가 높아질수록 검증 공세가 거세질 것이다. 이미 루비오는 각종 의혹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마이애미 해럴드지(紙)는 그가 주 하원의장 재직 당시 공화당이 발급한 신용카드를 사적(私的) 용도에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동료 주 하원의원들은 그가 과거 재정건전성 개선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남발했었다고 꼬집었다. 블로거인 에릭 귄타 (Eric Guinta)는 루비오가 가짜 가톨릭 신자라고 주장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루비오가 2008년 대선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설 경우 새라 페일린의 전철(前轍)을 밟을 수 있다. 페일린은 루비오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페일린은 보수 성향뿐 아니라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매케인의 러닝메이트가 된 뒤부터 이 같은 능력은 사라지고 ‘극단적 보수주의자’라는 이미지만 남았다. 미국 선거운동의 특성상 부통령 후보는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지지층의 투표를 독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끝으로 티파티(Tea Party)운동(감세와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미국의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도 난제(難題)다.
루비오의 당선에는 티파티운동 멤버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오는 티파티의 주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등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티파티와 자신이 동일시될 경우 티파티운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그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칫 잘못하면 티파티 운동가들이 반(反)루비오 세력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루비오가 한국정치에 주는 교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루비오를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루비오의 부상(浮上)은 한국 보수진영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정치에서 세대교체는 하향식 공천(下向式公薦)이나 깜짝 인사 등 ‘위로부터의 교체’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차세대 주자로 등장한 이들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었다. 서민 보수주의 신성(新星)의 발굴도 지지부진했다. 루비오의 사례가 보여주듯 진정한 의미에서 서민 정치인은 보통 국민과 같은 인생역정을 거쳤을 뿐 아니라 군(軍)복무, 납세, 준법 등 가치와 정서를 공유해야 한다.
게다가 보수주의 국정운영 비전을 자신 있게 추구하는 소장파(少壯派) 정치인은 점점 접하기 힘들어진다. 정계에는 언젠가부터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를 접어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듯하다.
걸출한 언변으로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한국판 오바마’, ‘한국판 루비오’를 육성하려는 시도도 드물다. 대신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스마트폰 등 신기술만 쓰면 국민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그릇된 신기술(新技術) 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루비오의 혜성 같은 등장이 우리나라에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보수 진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 발굴과 육성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