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회에 걸친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사업 변경 촉구’ 정기 화요집회
⊙ 문제 제기한 보훈부 장관은 매듭 안 짓고 사퇴… 후임 장관은 무관심?
⊙ ‘정율성 문제’에 소극적인 보훈부… 홈페이지상 ‘정율성 자료’는 단 2건
⊙ 평당 2900만원에 달하는 ‘정율성 생가’ 개축비… 그 ‘효용’ 확인은 쉽지 않아
⊙ “처음 계획대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이란 광주시의회 공개석상 발언
⊙ ‘사업 잠정 보류’라던 광주광역시 담당자가 언급한 ‘한중교류공원’의 실체
⊙ 문제 제기한 보훈부 장관은 매듭 안 짓고 사퇴… 후임 장관은 무관심?
⊙ ‘정율성 문제’에 소극적인 보훈부… 홈페이지상 ‘정율성 자료’는 단 2건
⊙ 평당 2900만원에 달하는 ‘정율성 생가’ 개축비… 그 ‘효용’ 확인은 쉽지 않아
⊙ “처음 계획대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이란 광주시의회 공개석상 발언
⊙ ‘사업 잠정 보류’라던 광주광역시 담당자가 언급한 ‘한중교류공원’의 실체
- 사진=뉴시스
작년 8월 22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이 “48억원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입니까”란 제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추앙’ 행태를 지적했다. 정율성(鄭律成)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소위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으로 번갈아가면서 참전했고, 중국·북한 군가(軍歌)를 다수 작곡한 ‘광주 출신 중국인’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인 광주시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정율성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48억원을 들여 동구 불로동 소재 ‘정율성 생가’ 추정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정율성 국제음악제’ ‘정율성동요제’ 등 온갖 명목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금을 쓰고 있었다. 이는 광주시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역시 또 다른 ‘정율성 생가’ 추정지 인근에 정율성로(路)를 만들고, 정율성 흉상을 해당 거리 초입에 설치했다. 광주 남구, 동구와 함께 또 다른 ‘정율성 고향’인 전남 화순군도 12억원을 들여 ‘정율성 고향집’을 만들고,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능주초에 ‘대형 벽화’와 함께 각종 기념 시설을 조성했다. 이 역시 전부 세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월간조선》은 이와 같은 광주·전남의 ‘정율성 추앙’ 실상을 2012년에 최초 고발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적 행태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자체는 아무런 입장 변화 없이 사업을 추진했고, 오히려 확대해나갔다. 이 와중에 당연하게도 세금은 더 투입됐지만,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의 페이스북 글 게시 이후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정율성의 ‘반(反)국가적’ 실체, 자해적인 정율성 추앙 행태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 국민은 각성하게 됐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 광주시 등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에 ‘사업 중단’ 시정 권고를 했다.
광주에서 살아 있는 정율성
광주시는 반발하면서도 올해 예산에서는 시의회와 논의 끝에 매년 개최해오던 ‘정율성 음악축제’와 ‘정율성 동요제’ 예산을 삭감했다. 광주 남구도 ‘정율성 생가’로 알려진 양림동 소재 주택을 2억5000만원에 사들여 추진하던 ‘정율성 전시관’을 지역 예술인 창작 공간인 ‘양림문학관’으로 변경했다. 전남 화순군에서는 ‘정율성 고향집’ 운영을 중단했고, 능주초 교내 정율성 벽화와 기념 시설들을 철거했다. 이렇게 ‘정율성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광주시가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된 ‘정율성 역사공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로 역시 그대로다. 왜 이런 것일까. 광주에서 ‘반국가 행위자’ 정율성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중·북 남침 나팔수’ 정율성의 실체
정율성은 1914년 당시 전남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소위 ‘혁명음악’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군가를 짓고, 6·25 때는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이후에도 ‘중국공산당’에 적(籍)을 두고 북한에 남아 이른바 ‘창작 활동’을 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공산혁명’의 수단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다.
그 일생을 보면, 정율성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고, ‘반국가단체’ 북한 편에서 대한민국에 대항한 ‘적(敵)’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한 ‘북한군’의 일원이었다. 우리의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민족적 비극인 ‘분단’을 고착화한 ‘중공군’ 소속이기도 했다. 이런 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랑스레 내세우거나 우호선린의 상징 또는 매개체로 내세울 만한 인사가 전혀 아니다.
정율성은 평생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면서 팔로군을 위한 군가를 짓고, 소위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45년 12월, 정율성은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뒤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1947년에는 평양에서 조선보안대 구락부 부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곧바로 협주단을 만들어 2년여에 걸쳐 북한 전역 순회공연에 나섰다. 북한 당국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모범 근로자’ 칭호를 내렸다. 1949년에는 평양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기간 그는 북한 군가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6·25 남침 당시 북한군이 불렀던 노래, 월북(越北)시인 박세영(朴世永)의 시에 곡을 붙여 훗날 ‘조선인민해방군가’가 된 ‘조선인민군행진곡’이 바로 정율성의 곡이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다시 중국공산당 당적(黨籍)을 회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완전한 ‘중국인’이 된 정율성은 그해 12월, 소위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다시 참전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중공군과 함께 서울까지 내려왔다. 중공군으로 참전한 그는 약 4개월 동안,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이 강변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수행했다. 이 기간, 그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士氣)를 고취하기 위해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 ‘공화국 기치 휘날린다’ 등을 만들었다.
이런데도 광주시와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전남 화순군은 ‘반(反)대한민국’적 인물인 ‘정율성’을 세금으로 기렸다. 한반도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영토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적화를 시도한 공산 세력에 부역한 정율성을 추앙했다.
40회에 걸친 ‘정율성 공원 반대’ 집회
8월 6일 오전 10시, 광주시 서구 치평동 소재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비교적 고령인 해당 집회 참가자들은 젊은 사람도 힘들 수 있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크게 외쳤다. 이들은 “보훈 가족 피눈물 나게 하는 정율성 기념 공원 당장 중단하라!”란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고, 각자 ▲중국선동꾼 북한선전부장 정율성 공원, 6·25 호국영령들을 모독하지 마라! ▲공산당 군가 작곡한 정율성 공원 만드는 게 정상이냐? 중단하라! ▲공산군 응원대장 정율성! 국가 세금 한 푼도 안 된다! 강기정, 개인 돈으로 해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한 자! 북한으로 추방하자! 등의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이어갔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당일 오전 행정안전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됐다”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건강관리에 유의하라”는 취지의 안전 안내 문자를 보냈다. 광주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기준 광주시에서는 폭염특보가 18일째 이어졌다. 불과 이틀 전 이곳, 광주시 서구에서는 온열질환으로 2명이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시 지부 등 보훈단체와 광주 지역 시민단체가 결성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는 야외 집회를 개최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전 광주 대성여고 교장이 운영위원장인 해당 단체는 지난해 9월 이후 40회에 걸쳐 정기 화요집회를 개최했다.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조성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 나서 이후 눈비 맞고,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반대 집회’를 이어왔다. 이 기간, 이들이 외친 구호는 한결같았다. “광주시민 모욕하는 정율성 공원 조성 사업 중단하라”였다. 하지만 광주시는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고,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계속했다.
문제 제기는 했지만, 소극적인 보훈부
이사이 ‘정율성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식었다.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윤석열(尹錫悅) 정부의 국정 장악력도 위축됐다. 문제를 제기한 정권의 발언권이 약화됐다는 얘기다. 보훈부도 해당 문제와 관련해서 가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기 쉽지 않다. 애초 해당 문제를 제기한 이(박민식)는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오래고, 후임 장관(강정애)은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장관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가 공개적으로 ‘정율성’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또 길게 언급한 건 바로 아래의 발언이다.
“정율성이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임이 밝혀진 이래, 정율성 기념사업의 대다수는 폐지 또는 축소되고 있다. 6월 초 준공 예정인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서도 공원 명칭 및 활용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주시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5월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 중)
아무리 장관이 바뀌었다고 해도 보훈부가 이처럼 정율성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까닭은 무엇일까. 애초 ‘정율성 문제’를 촉발한 당시 보훈부 장관 또는 보훈부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정황은 또 있다. 보훈부 홈페이지 검색 결과다. 8월 12일 현재, 보훈부 홈페이지에서 살필 수 있는 정율성 관련 자료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이 중 1건의 경우 생성 시점이 2007년이고, 단순히 ‘정율성’이란 이름만 포함된 문서이므로 관련 자료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상당 기간, 보훈부의 ‘중점 현안’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율성 문제’와 관련한 보훈부의 자료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 정율성 공원 전면 철회 촉구(2023년 8월 28일) ▲보훈부,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및 기존 사업에 대한 시정 권고(2023년 10월 12일) 등 단 2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정율성 기념사업·시설 척결’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대한 보훈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8월 12일, 보훈부에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강행에 대한 보훈부의 입장 ▲시정 권고 이후 ‘정율성 사업 중단’을 위한 보훈부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를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한 향후 조치 등에 대해 물었지만, 이틀이 지날 때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정율성은 적군… 기릴 대상 아니다”
상기한 것처럼, 보훈부는 지난해 10월 12일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및 기존 사업에 대한 시정 권고를 했다. 당시 보훈부의 시정 권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율성’은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군가를 작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남침에 직접 참여한 적군으로 대한민국이 기릴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광주시, 광주시 남구, 광주시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 전라남도 교육청, 전라남도 화순교육지원청은 ‘정율성’ 관련 기념사업을 국민의 세금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사업 추진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훈부는 추진 중인 ‘정율성’ 관련 사업 일체를 중단하고, 이미 조성된 시설에 대해서도 시정 조치를 권고한다.〉
애초부터 ‘정율성 수호’ 의지를 밝혀왔던, 광주시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 당일에 이를 거부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기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자치 사무이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자치 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율성 기념사업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35년간 지속되어온 한중 우호교류 사업으로 위법한 사항이 없습니다. 광주광역시는 정율성 생가 터 복원사업인 역사공원 조성사업 완료 시기에 맞춰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지혜롭게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건물 개축 등에 13억원 들였다는데…
8월 7일, 광주 구(舊) 도심 충장로, 옛 전남도청(현 아시아문화전당)과 지척에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 예정지(광주시 동구 불로동 164-1번지 등)를 찾았다. 이곳은 ‘정율성 생가’ 중 한 곳이라고 추정 또는 주장되는 곳이다. 광주시는 2018년부터 해당 부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기획했다. 광주시의 정식 사업 명칭은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이다. 광주시는 2022년에 기본·실시설계를 마치고, 2023년 1월부터 ‘정율성 생가’ 추정 건물과 ‘주변 환경’ 정비 등의 공사를 개시했다. 광주시는 ‘정율성 생가’ 추정지를 사들이고 정비하는 데 보상비 35억원, 시설비 13억원 등 48억원을 투입했다.
땅값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시설 정비 명목으로 13억원이나 썼는데,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금액의 가치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광주시 문화조성과 담당자가 ‘시설은 완공했고, 내부 콘텐츠 구성만 남았다’고 한 사실, 해당 시설 건축 면적이 약 45평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건축 문외한’이 밖에서 봤을 때 ‘정율성 생가’라 주장한 주택에서는 기와, 문틀, 서까래를 바꾼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예술적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옥 형태 가옥 개축비용으로 평당 약 2900만원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는 적정한 ‘가격’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해당 주택 내부에서 그 ‘가치’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관리자 측에서 문을 걸어 잠근 까닭에 살필 수 없었다.
거부당한 광주시장과의 면담
해당 시설에 대해 고 서정우 하사의 모친인 김오복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불가론’을 강조했다.
“첫 번째, 거기는 정율성 생가가 아닙니다. 두 번째, 정율성은 6·25 때 우리 군인을 죽인 북한과 중공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세 번째,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일을 광주가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민주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얘기합니다.”
— 해당 시설의 명칭, 사업 내용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죠.
“이미 투입한 사업비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 공간에서 정율성의 흔적을 없애고, 광주 근현대역사공원으로 만들어달라고 매주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광주 출신 독립투사, 호국영웅, 민주열사들을 소개하고 광주의 근현대사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시청 담당자 말에 의하면 과장, 국장도 좋다고 했다는데, 강기정 시장은 꿈쩍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주가 발표한 건 딱 한 가지예요. 정율성 공원이란 말을 안 쓰고, 명칭을 바꾸겠다는 거예요.”
— 그 문제와 관련해서 광주시 관계자와 면담한 일이 있습니까.
“문화체육실장과는 면담했어요. ‘좋은 생각인데, 광주시의 최종결정권자는 시장’이라고 했어요. 저희가 시장 면담을 수십 번 요청했는데, 일정이 안 맞는다고 거부했습니다.”
— 광주시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예상합니까.
“총선에서 민주당이 완전히 승리했잖아요. 시청 담당자는 '사견'을 전제로 그래서 더 정부 말을 안 듣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냥… 나쁘게 말하면 버티는 거죠. 결국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완공되면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김 위원장 설명 중 ‘광주시가 정율성 역사공원 명칭 변경 의사를 밝혔다’는 부분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광주시가 기존과 달리 비판 여론을 감안한 조처가 아니란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역사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1항 3호 가목 규정에 의한 ‘법적 정의’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최종 명칭은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정율성공원 ▲정율성음악공원 ▲율성공원 등으로 바뀔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광주시가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얘기한 것은 당연한 절차를 밝힌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광주시가 일부나마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
그렇다면 광주시의 계획은 무엇일까. 광주시의 ‘속셈’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올해 6월 11일, 김요성 당시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광주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정율성 항일박물관’ 추가 신축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서, 당시 김 실장이 서임석 광주시의원과 나눈 문답이다.
서임석: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 관련된 사업이에요. (중략)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김요성: 정율성 선생의 어떤 이데올로기 관계인데요, 지금 이데올로기가 그때 당시하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지만, 역사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자유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처음의 방침 계획대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서임석: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관리실하고 화장실을 폐지했지 않습니까?
김요성: 예.
서임석: 화장실 같은 경우는 그럼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인근에 호텔 화장실을 공유해서 쓰겠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호텔이 평생 간다고 볼 수도 없고 과연 이게 집행부에서 나오는 제대로 된 답변일까?라는 게 제 물음표였어요.
김요성: 당시에 화장실하고 관리동이 줄어든 이유는 내부, 내부 전시에 대해서 저희들이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공간이 많이 부족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앞으로 전시를 대비해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저희들이 이제 지금 조금 여기서 논외의 이야기인데 아직은 검토 단계거든요. 그 옆에 부지가 또 공간이 민간 영역, 민간 부지인데 그 부지를 또 활용해서 우리 정율성 선생하고 관련된 항일 어떤 박물관 이런 개념도 한번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1단지, 2단지 이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서임석: 그게 지금 구체적으로 논의된 내용인가요?
김요성: 아, 그것은 인자 지금 인제가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보훈부하고 한번 이야기를 좀 같이 해보고는, 그냥 넌지시 이야기는 해둔 상태입니다.
서임석: 구두상으로 조율 중인 내용이군요?
김요성: 예. 그래서 좀, 좀 더 확대해서 박물관 내에다가 관리동도 두고 화장실도 두고 이런 부분부터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잠정 보류’의 이면은?
이에 대해 광주시 문화도시조성과의 ‘정율성 역사공원’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에 따르면 광주시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불과 두 달 전, 광주시의 문화사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실장이 시의회에서 거듭 강조한 ‘원안 추진 의지’와 달리 광주시는 왜 돌연 ‘잠정 보류’를 결정했을까. 담당자에 따르면 그사이 강기정 시장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거나, 이전과 다른 지시를 내렸다거나, 사업을 재검토해야 할 중대변수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광주시가 해당 사업에 대해 대외적으로 ‘잠정 보류’라고 주장하는 건 공감을 받기 쉽지 않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광주시 문화도시조성과 ‘정율성 역사공원’ 담당자와의 문답이다.
— 6월 11일, 당시 김요성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이 시의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요, 광주시의 방침이 맞습니까.
“현재는 (사업이) ‘잠정 보류’ 상태입니다.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언제 개관할지 아직 다 결정 안 된 상태입니다.”
— 광주시가 보훈부의 시정 권고를 거부한 점, 그 뒤 광주시가 명시적으로 ‘사업 보류’를 얘기한 일이 없는 점, 문화체육실장이 두 달 전에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고 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 얘기하는 ‘잠정 보류’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최근 두 달 사이에 ‘잠정 보류’를 할 정도로 특별한 변수가 있었습니까.
“아니, 특별한 사유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 이미 세금 48억원이 들어간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하는 시점조차 ‘미정’이란 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추이를 보고 결정하려고 하거든요.”
— 그 ‘추이’는 뭡니까. 여론의 추이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 공사는 완료됐습니까.
“콘텐츠 구성 같은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지 결정이 안 돼서 못 하는 상태거든요.”
— 문화체육실장의 시의회 발언이 있고 나서, 지난 두 달 사이에 그 윗선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관련 지시를 한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광주시의 선택지에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처럼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도 포함돼 있습니까.
“그렇죠. 그게 아니라 한중(韓中)교류공원으로 갈 것인지, 그런 부분들…. 콘텐츠 구성을 어떻게 할지 안 나왔으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 한중교류공원이요?
“예. 그러니까 지금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계획이 전혀 없고, 그것 때문에 개관도 늦어지는 거고요.”⊙
당시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인 광주시는 대한민국에 항적한 정율성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48억원을 들여 동구 불로동 소재 ‘정율성 생가’ 추정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정율성 국제음악제’ ‘정율성동요제’ 등 온갖 명목으로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세금을 쓰고 있었다. 이는 광주시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역시 또 다른 ‘정율성 생가’ 추정지 인근에 정율성로(路)를 만들고, 정율성 흉상을 해당 거리 초입에 설치했다. 광주 남구, 동구와 함께 또 다른 ‘정율성 고향’인 전남 화순군도 12억원을 들여 ‘정율성 고향집’을 만들고,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능주초에 ‘대형 벽화’와 함께 각종 기념 시설을 조성했다. 이 역시 전부 세금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월간조선》은 이와 같은 광주·전남의 ‘정율성 추앙’ 실상을 2012년에 최초 고발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적 행태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자체는 아무런 입장 변화 없이 사업을 추진했고, 오히려 확대해나갔다. 이 와중에 당연하게도 세금은 더 투입됐지만,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의 페이스북 글 게시 이후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정율성의 ‘반(反)국가적’ 실체, 자해적인 정율성 추앙 행태들이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 국민은 각성하게 됐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 광주시 등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에 ‘사업 중단’ 시정 권고를 했다.
광주에서 살아 있는 정율성
광주시는 반발하면서도 올해 예산에서는 시의회와 논의 끝에 매년 개최해오던 ‘정율성 음악축제’와 ‘정율성 동요제’ 예산을 삭감했다. 광주 남구도 ‘정율성 생가’로 알려진 양림동 소재 주택을 2억5000만원에 사들여 추진하던 ‘정율성 전시관’을 지역 예술인 창작 공간인 ‘양림문학관’으로 변경했다. 전남 화순군에서는 ‘정율성 고향집’ 운영을 중단했고, 능주초 교내 정율성 벽화와 기념 시설들을 철거했다. 이렇게 ‘정율성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광주시가 애초 문제의 발단이 된 ‘정율성 역사공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소재 정율성로 역시 그대로다. 왜 이런 것일까. 광주에서 ‘반국가 행위자’ 정율성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중·북 남침 나팔수’ 정율성의 실체
정율성은 1914년 당시 전남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담해 소위 ‘혁명음악’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군가를 짓고, 6·25 때는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이후에도 ‘중국공산당’에 적(籍)을 두고 북한에 남아 이른바 ‘창작 활동’을 했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공산혁명’의 수단으로 여기다가 눈을 감았다.
그 일생을 보면, 정율성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고, ‘반국가단체’ 북한 편에서 대한민국에 대항한 ‘적(敵)’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을 살상하고, 재산을 파괴한 ‘북한군’의 일원이었다. 우리의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민족적 비극인 ‘분단’을 고착화한 ‘중공군’ 소속이기도 했다. 이런 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랑스레 내세우거나 우호선린의 상징 또는 매개체로 내세울 만한 인사가 전혀 아니다.
정율성은 평생을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았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면서 팔로군을 위한 군가를 짓고, 소위 ‘혁명 의식’을 고취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45년 12월, 정율성은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뒤 황해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1947년에는 평양에서 조선보안대 구락부 부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곧바로 협주단을 만들어 2년여에 걸쳐 북한 전역 순회공연에 나섰다. 북한 당국은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모범 근로자’ 칭호를 내렸다. 1949년에는 평양음악대학 작곡부 부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기간 그는 북한 군가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6·25 남침 당시 북한군이 불렀던 노래, 월북(越北)시인 박세영(朴世永)의 시에 곡을 붙여 훗날 ‘조선인민해방군가’가 된 ‘조선인민군행진곡’이 바로 정율성의 곡이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돌아간 정율성은 다시 중국공산당 당적(黨籍)을 회복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완전한 ‘중국인’이 된 정율성은 그해 12월, 소위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다시 참전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중공군과 함께 서울까지 내려왔다. 중공군으로 참전한 그는 약 4개월 동안, 북한이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 중국이 강변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을 수행했다. 이 기간, 그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士氣)를 고취하기 위해 ‘조선인민유격대 전가’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 ‘공화국 기치 휘날린다’ 등을 만들었다.
이런데도 광주시와 그 산하 자치구인 남구, 전남 화순군은 ‘반(反)대한민국’적 인물인 ‘정율성’을 세금으로 기렸다. 한반도에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영토를 참절하고, 정부를 참칭하고,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적화를 시도한 공산 세력에 부역한 정율성을 추앙했다.
40회에 걸친 ‘정율성 공원 반대’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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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오전 광주시청 앞에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시 지부 등 보훈단체와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 회원들이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 촉구’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40회에 걸쳐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
당시는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발령된 상황이었다. 당일 오전 행정안전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령됐다”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건강관리에 유의하라”는 취지의 안전 안내 문자를 보냈다. 광주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기준 광주시에서는 폭염특보가 18일째 이어졌다. 불과 이틀 전 이곳, 광주시 서구에서는 온열질환으로 2명이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와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주시 지부 등 보훈단체와 광주 지역 시민단체가 결성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공원 조성 철폐 범시민연대’는 야외 집회를 개최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전 광주 대성여고 교장이 운영위원장인 해당 단체는 지난해 9월 이후 40회에 걸쳐 정기 화요집회를 개최했다.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정율성 공원’을 조성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 나서 이후 눈비 맞고,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반대 집회’를 이어왔다. 이 기간, 이들이 외친 구호는 한결같았다. “광주시민 모욕하는 정율성 공원 조성 사업 중단하라”였다. 하지만 광주시는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고,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계속했다.
문제 제기는 했지만, 소극적인 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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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22일,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추앙’ 행태를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
“정율성이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임이 밝혀진 이래, 정율성 기념사업의 대다수는 폐지 또는 축소되고 있다. 6월 초 준공 예정인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서도 공원 명칭 및 활용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주시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5월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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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현재, 보훈부 홈페이지에서 살필 수 있는 정율성 관련 자료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출처=국가보훈부 |
그렇다면 상당 기간, 보훈부의 ‘중점 현안’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율성 문제’와 관련한 보훈부의 자료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는가에 달려있다”… 정율성 공원 전면 철회 촉구(2023년 8월 28일) ▲보훈부, 광주시 등에 ‘정율성 기념사업’ 중단 및 기존 사업에 대한 시정 권고(2023년 10월 12일) 등 단 2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정율성 기념사업·시설 척결’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대한 보훈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8월 12일, 보훈부에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강행에 대한 보훈부의 입장 ▲시정 권고 이후 ‘정율성 사업 중단’을 위한 보훈부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 ▲‘정율성 사업 중단’ 권고를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한 향후 조치 등에 대해 물었지만, 이틀이 지날 때까지 답을 듣지 못했다.
“정율성은 적군… 기릴 대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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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0월, 광주시 등 정율성 관련 사업을 진행한 지자체에 ‘사업 중단’ 시정 권고를 했다. 출처=국가보훈부 |
〈‘정율성’은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군가를 작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남침에 직접 참여한 적군으로 대한민국이 기릴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광주시, 광주시 남구, 광주시 동구, 전라남도 화순군, 전라남도 교육청, 전라남도 화순교육지원청은 ‘정율성’ 관련 기념사업을 국민의 세금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사업 추진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그 유가족의 영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훈부는 추진 중인 ‘정율성’ 관련 사업 일체를 중단하고, 이미 조성된 시설에 대해서도 시정 조치를 권고한다.〉
애초부터 ‘정율성 수호’ 의지를 밝혀왔던, 광주시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 당일에 이를 거부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기념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자치 사무이며,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르면 자치 사무는 위법한 경우에만 주무부 장관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율성 기념사업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35년간 지속되어온 한중 우호교류 사업으로 위법한 사항이 없습니다. 광주광역시는 정율성 생가 터 복원사업인 역사공원 조성사업 완료 시기에 맞춰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지혜롭게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건물 개축 등에 13억원 들였다는데…
8월 7일, 광주 구(舊) 도심 충장로, 옛 전남도청(현 아시아문화전당)과 지척에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 예정지(광주시 동구 불로동 164-1번지 등)를 찾았다. 이곳은 ‘정율성 생가’ 중 한 곳이라고 추정 또는 주장되는 곳이다. 광주시는 2018년부터 해당 부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기획했다. 광주시의 정식 사업 명칭은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이다. 광주시는 2022년에 기본·실시설계를 마치고, 2023년 1월부터 ‘정율성 생가’ 추정 건물과 ‘주변 환경’ 정비 등의 공사를 개시했다. 광주시는 ‘정율성 생가’ 추정지를 사들이고 정비하는 데 보상비 35억원, 시설비 13억원 등 48억원을 투입했다.
땅값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시설 정비 명목으로 13억원이나 썼는데,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금액의 가치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광주시 문화조성과 담당자가 ‘시설은 완공했고, 내부 콘텐츠 구성만 남았다’고 한 사실, 해당 시설 건축 면적이 약 45평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건축 문외한’이 밖에서 봤을 때 ‘정율성 생가’라 주장한 주택에서는 기와, 문틀, 서까래를 바꾼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예술적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옥 형태 가옥 개축비용으로 평당 약 2900만원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는 적정한 ‘가격’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해당 주택 내부에서 그 ‘가치’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관리자 측에서 문을 걸어 잠근 까닭에 살필 수 없었다.
거부당한 광주시장과의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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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30일, 12개 보훈단체 회원 1500여 명이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정율성 공원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첫 번째, 거기는 정율성 생가가 아닙니다. 두 번째, 정율성은 6·25 때 우리 군인을 죽인 북한과 중공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세 번째,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일을 광주가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민주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를 해서야 되겠느냐고 얘기합니다.”
— 해당 시설의 명칭, 사업 내용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죠.
“이미 투입한 사업비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 공간에서 정율성의 흔적을 없애고, 광주 근현대역사공원으로 만들어달라고 매주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광주 출신 독립투사, 호국영웅, 민주열사들을 소개하고 광주의 근현대사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시청 담당자 말에 의하면 과장, 국장도 좋다고 했다는데, 강기정 시장은 꿈쩍도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 광주가 발표한 건 딱 한 가지예요. 정율성 공원이란 말을 안 쓰고, 명칭을 바꾸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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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는 ‘정율성 공원’ 조성과 관련한 전몰군경유족회 광주시 지부장의 시장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
“문화체육실장과는 면담했어요. ‘좋은 생각인데, 광주시의 최종결정권자는 시장’이라고 했어요. 저희가 시장 면담을 수십 번 요청했는데, 일정이 안 맞는다고 거부했습니다.”
— 광주시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예상합니까.
“총선에서 민주당이 완전히 승리했잖아요. 시청 담당자는 '사견'을 전제로 그래서 더 정부 말을 안 듣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냥… 나쁘게 말하면 버티는 거죠. 결국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완공되면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김 위원장 설명 중 ‘광주시가 정율성 역사공원 명칭 변경 의사를 밝혔다’는 부분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광주시가 기존과 달리 비판 여론을 감안한 조처가 아니란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역사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1항 3호 가목 규정에 의한 ‘법적 정의’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최종 명칭은 ‘정율성 역사공원’에서 ▲정율성공원 ▲정율성음악공원 ▲율성공원 등으로 바뀔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광주시가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얘기한 것은 당연한 절차를 밝힌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광주시가 일부나마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갈 예정”
그렇다면 광주시의 계획은 무엇일까. 광주시의 ‘속셈’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올해 6월 11일, 김요성 당시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광주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정율성 항일박물관’ 추가 신축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서, 당시 김 실장이 서임석 광주시의원과 나눈 문답이다.
서임석: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 관련된 사업이에요. (중략)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김요성: 정율성 선생의 어떤 이데올로기 관계인데요, 지금 이데올로기가 그때 당시하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지만, 역사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자유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처음의 방침 계획대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정율성 역사공원으로 그대로 갈 예정입니다.
서임석: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관리실하고 화장실을 폐지했지 않습니까?
김요성: 예.
서임석: 화장실 같은 경우는 그럼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인근에 호텔 화장실을 공유해서 쓰겠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호텔이 평생 간다고 볼 수도 없고 과연 이게 집행부에서 나오는 제대로 된 답변일까?라는 게 제 물음표였어요.
김요성: 당시에 화장실하고 관리동이 줄어든 이유는 내부, 내부 전시에 대해서 저희들이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공간이 많이 부족했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앞으로 전시를 대비해서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저희들이 이제 지금 조금 여기서 논외의 이야기인데 아직은 검토 단계거든요. 그 옆에 부지가 또 공간이 민간 영역, 민간 부지인데 그 부지를 또 활용해서 우리 정율성 선생하고 관련된 항일 어떤 박물관 이런 개념도 한번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1단지, 2단지 이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서임석: 그게 지금 구체적으로 논의된 내용인가요?
김요성: 아, 그것은 인자 지금 인제가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보훈부하고 한번 이야기를 좀 같이 해보고는, 그냥 넌지시 이야기는 해둔 상태입니다.
서임석: 구두상으로 조율 중인 내용이군요?
김요성: 예. 그래서 좀, 좀 더 확대해서 박물관 내에다가 관리동도 두고 화장실도 두고 이런 부분부터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잠정 보류’의 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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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개축하고 정비한 ‘정율성 집’이다. 지난 6월 당시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이곳에 ‘정율성 관련 항일박물관 조성’도 구상 중이란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사진=월간조선 |
— 6월 11일, 당시 김요성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이 시의회에서 ‘정율성 역사공원’에 대해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요, 광주시의 방침이 맞습니까.
“현재는 (사업이) ‘잠정 보류’ 상태입니다.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언제 개관할지 아직 다 결정 안 된 상태입니다.”
— 광주시가 보훈부의 시정 권고를 거부한 점, 그 뒤 광주시가 명시적으로 ‘사업 보류’를 얘기한 일이 없는 점, 문화체육실장이 두 달 전에 “처음 계획 그대로 간다”고 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 얘기하는 ‘잠정 보류’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최근 두 달 사이에 ‘잠정 보류’를 할 정도로 특별한 변수가 있었습니까.
“아니, 특별한 사유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 이미 세금 48억원이 들어간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하는 시점조차 ‘미정’이란 게 이해가 안 되네요.
“그 추이를 보고 결정하려고 하거든요.”
— 그 ‘추이’는 뭡니까. 여론의 추이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 공사는 완료됐습니까.
“콘텐츠 구성 같은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할지 결정이 안 돼서 못 하는 상태거든요.”
— 문화체육실장의 시의회 발언이 있고 나서, 지난 두 달 사이에 그 윗선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관련 지시를 한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광주시의 선택지에는 보훈부의 시정 권고처럼 ‘정율성 공원 조성 중단’도 포함돼 있습니까.
“그렇죠. 그게 아니라 한중(韓中)교류공원으로 갈 것인지, 그런 부분들…. 콘텐츠 구성을 어떻게 할지 안 나왔으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 한중교류공원이요?
“예. 그러니까 지금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계획이 전혀 없고, 그것 때문에 개관도 늦어지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