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2. 작은 일일수록 신경 써라
3.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4.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라
5.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라
6. “백성의 걱정은 내가 먼저 걱정하고 즐기는 것은 백성들이 즐긴 후에 즐겨라”
7.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기억하라
8. 스스로 철저히 검열하라
9. 먼저 베풀어라
10.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최악을 대비하라
11. 배움에 게으르지 마라
2. 작은 일일수록 신경 써라
3.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4.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라
5.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라
6. “백성의 걱정은 내가 먼저 걱정하고 즐기는 것은 백성들이 즐긴 후에 즐겨라”
7.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기억하라
8. 스스로 철저히 검열하라
9. 먼저 베풀어라
10.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최악을 대비하라
11. 배움에 게으르지 마라
일흔을 바라보는 필자는 평생을 영업 맨으로 살아왔다. 처음엔 전자계산기, 타임리코더와 같은 제품을 들고 가가호호(家家戶戶) 찾아다니며 입이 닳도록 팔았다. ‘실력’이 붙자 ‘파는 것’이라면 품목을 가리지 않고 고객들에게 세일즈했다. 지금은 27년째 설계도면 출력 전문 프린터를 판다. 일본 제품인데 업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필자는 해당 브랜드의 동남아 영업권을 갖고 있다. 동남아와 관련해 건설 현장이 늘면서 제품 시장도 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으로 ‘영업’차 출장을 다녀왔다.
지난 40여 년의 영업 환경이 AI 시대인 현재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기에 이 글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다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의 환경이나 디지털 시대인 지금이나 영업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이 우선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 영리(營利)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 국어사전에 적힌 영업(營業)의 의미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제품을 판매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크든 작든 제품의 판매가 따르면 영업 한 단어로 통용하는 우리와 달리 영미권(英美圈)에서는 그 범위에 따라 ‘세일즈(Sales)’와 ‘비즈니스(Business)’로 구분 짓는데, 대개의 경우 ‘비즈니스’를 더 많이 사용한다. 물론 필자의 이 글 또한 광의(廣義)의 영업인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사회생활은 물론 좁게는 가족 간 관계에서도 ‘비즈니스’가 작동한다고 여긴다. 원만한 사회생활, 행복한 가족관계…. IT, AI 시대의 독자들에게 필자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안 좋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매일매일 대인(對人)관계와 관련해 많은 일을 겪는다. 글을 쓰기에 앞서 본인 앞에 안 좋은 상황이 닥쳤다는 가정을 두겠다. 내가 수세(守勢)에 처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약점(弱點)을 이용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더더욱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전직 어느 검사장이 한 이야기인데, 칼로 상대방을 찌르되 비틀지는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꼭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식들도 성장하다 보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일들이 하나 둘씩 늘어갈 수밖에 없다. 이때 많은 부모가 “내 말을 안 듣더니 이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대뜸 이야기를 꺼낸다. 자식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일을 상기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악이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못 하게끔 했어야 하지 않은가? 필자도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한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시에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올 것이라 예측하여 심적으로 대비해놓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때는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보다는 생각해놓았던 대안(代案)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어른, 리더,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왜 그때 더 강력하게 나를 말리지 않았냐?”고 탓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다. 독자들은 타인의 실패에 있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앞서 말한 타인에게 칼을 꽂고 비트는 것, 자기 자식의 경우라면 내 얼굴에 침 뱉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잘못 온 팩스
필자가 모(某) 회사 영업부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상대방은 그 회사의 약점이 무엇인지 필자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업무가 진행될수록 서로의 간극이 커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에는 모든 절차를 일단 보류(保留)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약 6개월 뒤 일이 성사된 후에 상대방이 필자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다. 그는 “우리 회사의 약점을 이야기했더라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찍 끝났을 텐데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답해주었다. 그 뒤 우리의 관계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약 25년 전 우리 회사는 외국에서 장비와 부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외국 수출회사로부터 팩스를 받았는데 그들의 내부적인 원가(原價)가 적혀 있었다. 발신자가 착각해서 잘못 보낸 것이었다.
그러고 약 3개월 후에 그 회사를 방문, 팩스를 잘못 보냈던 담당자를 포함하여 각 회사에서 3명씩 나와 회의를 했다. 그 미팅에서 필자는 원가를 모르는 척했다. 약간만 돌려서 이야기해도 우리 회사로서는 상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수한 담당자의 얼굴빛은 사색(死色) 그 자체였다.
필자는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회의를 하고 귀국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외국 회사의 담당 직원은 자기의 실수를 알자마자 그 사실을 즉시 필자가 상대하는 임원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약 1년 후 담당 임원이 “당시 그 직원을 보호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필자는 그의 손을 잡으며 미소만 지었다.
당시의 임원은 오래전에 정년퇴임했다. 팩스를 잘못 보냈던 직원은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데 필자를 만날 때마다 인사를 90도로 한다. 눈앞에 보이는 1~2년간의 이익만을 생각해 행동했다면 필자는 이런 인간관계를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2~3년 후부터는 그들이 가격을 인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오히려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
당시의 임원은 감사하게도 동종 업계의 많은 사람에게 필자 칭찬을 해주었다. 이 덕분에 비즈니스를 하면서 매우 큰 회사의 높은 사람들과도 만나게 돼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독자들도 이러한 경험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2. 작은 일일수록 신경 써라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떠한 중대한 사안이 발생해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할 때 “큰일 났다”고 말한다. 필자는 무의식적으로도 이런 말을 안 하고자 나름 공부하면서 주의를 기울여왔다. 왜냐하면 작은 일, 아주 작은 일, 더 작은 일들이 쌓여 큰일이 되는 것이지 갑자기 큰일이 발생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가 간부로 점점 승진하고 업무의 폭이 커질수록 작은 일을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꼈다.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더 작은 일, 아주 작은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건국의 주요 인사였고 지금도 미국 화폐 100달러의 초상으로도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1758년에 쓴 책의 내용을 옮겨본다.
“말굽 못이 없어서 말굽이 떨어졌고, 말굽이 떨어져서 말이 쓰러졌고, 말이 쓰러져 기수(騎手)를 잃었고, 기수가 없어서 전투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고, 전투 정보를 받지 못해 전투에서 패했고, 전투에서 패해 왕국이 멸망했다. 이 모든 것은 말굽의 못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1930년대에 발표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어떠한 사건, 사고 발생에 앞서 해당 사고 관련 징후 29가지가 선행(先行)해서 나타나고 각각의 선행 조건에도 10가지 이상의 또 다른 징조가 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한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나 방치한다면 훗날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가 불시(不時)에 벌어진 게 아닌 예고된 재앙이라는 것이다.
사고는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자가 낸다
필자가 군(軍)에서 선임병이 되었을 때다. 필자가 밑에 있는 후임병들에게 부탁하고 지시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군화를 신을 때는 항상 끈을 조여서 신고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는 모자를 꼭 쓰고 아무리 추워도 군복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잘 지키는 후임병들에게 필자는 천사였고 그러지 않는 후임들에게는 악마였다. 나중에 사고를 치는 후임병들을 보면 필자가 말했던 기본을 지키지 않은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선조로부터 배워서 아주 잘 알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중용(中庸)》 23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에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生育)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하나의 거짓을 이야기하면 그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을 열 개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거짓말은 삶을 피폐하게 함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심지어는 분노를 유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은 선의(善意)의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과 상대방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래전 매우 큰 외국 회사와 이런저런 사업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종적으로 그 회사 관련 부서의 모든 사람과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관점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던 작은 회사에 대한 질문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우리 회사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長點)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인사하는 1분 동안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필자는 ‘처음부터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1시간 넘게 완전히 벌거벗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 회사의 아주 세세한 약점까지 솔직하게 말했다. ‘나의 솔직함이 그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우리의 장점에 대해서는 그들이 질문할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심장박동을 조절하면서 말이다.
필자의 얘기를 다 들은 그들은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이내 몇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자 다른 사람들도 이내 동의를 표했다. 그들은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몇 개월 전부터 한국의 매우 큰 법률회사는 물론 컨설턴트와 은행, 원자재 공급사와 경쟁사, 심지어는 우리 회사의 고객들과도 접촉하여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의 회의는 매우 순조로웠다. 예상대로 그들은 우리 회사의 장점에 대해 질문했다. 거리낌이 없던 필자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질문이라도 주저 없이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질문하려 했던 우리 회사의 약점을 필자가 먼저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만약에 당시 스스로 우리의 약점을 말하지 않고 그들이 질문할 때만 답을 했더라면 필자는 수비에 치중하게 되고 많이 당황했을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을 나왔다. 업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많은 시간을 절약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기 어려운 질문의 답일지라도 먼저 해줘라
우리는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즉 경청(敬聽)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또 성격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가 먼저 옷을 다 벗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약점은 이것이라고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은 우리 회사의 단점 또는 제품의 약점에 대해 분명히 궁금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우리 회사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비즈니스의 성공 확률은 매우 높다. 대우그룹의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안 해주는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건 비즈니스에서뿐만이 아니다. 사회생활에 있어 모든 곳에 적용된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기는 솔직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는 솔직한 답을 원하는 것은 소인배들의 심보라고 생각한다.
4.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라
자신이 권투선수라고 가정해보자. 만일 상대방에게 KO 패를 당한다면 심판의 카운트가 끝나고 조금 있다 일어나기보다 아예 기절한 채 한 5분 또는 10분 후에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후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경우, 상대방의 실력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바닥 밑에 지하실이 또 있는지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이후 더 나은 경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패한다면 자신의 재능은 거기까지인 것으로, 가급적 빨리 인생의 궤도 수정에 나서야 한다. 어떠한 변명 없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지 말아야 한다.
또 믿을 수 있는 다른 이, 자식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냥 묻어두어야 한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피지기까지만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탈이 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5.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라
모든 사안에 대해서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축적해나간다. 배움에 있어서 장소와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꿈에서 또한 배울 수 있다. 《논어》 술이(述而) 편에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이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필자는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누구라도 내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손자라도 그렇다. 해맑게 웃는 모습에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 해맑게 웃으면서 기쁨을 준 적이 있는가’ 반성하게 된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모를 때 잘 아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여 “이러저러해서 잘 모르니 가르쳐주십시오”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준다. 인간의 본성(本性)이다.
또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어떠한 사적(私的)인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업무적으로 잘 대해주는 상사(上司)보다는 혹독하게 대하는 상사에게 배우는 게 좋다. 관심이 있으니 혼내는 것이다. 혹여 그 상사가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기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집살이를 혹독히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 더 혹독하게 며느리를 대한다’는 말도 있긴 하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보았다. 여러 답이 있었다. 아기를 못 낳는 여인, 버림받은 여인,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 등…. 답은 ‘잊힌 여인’이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나를 심하게 대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잔소리도 하고 화도 내는 것이다. 필자가 간부로 있을 때 직원들 사이에서 필자에게 가장 많은 지적을 받고 욕을 들은 직원이 능력이 향상되고 승진도 하더라는 말이 돌았었다. 투명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6. 백성들이 즐긴 후에 즐겨라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중국 3대 누각 중 하나라는 악양루(岳陽樓)에 적혀 있는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글이다. 학자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필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백성의 걱정은 내가 먼저 걱정하고 즐기는 것은 백성이 즐긴 후에 즐겨라.”
특히 세상의 모든 공직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경우인데, 필자는 우리 또한 지켜야 하는 경우라 생각한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백성’을 ‘인민’으로 해석해 통치에 반영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1930년대 초 홍군(紅軍) 수천 명과 함께 장제스(蔣介石) 군에 이리저리 쫓겨 다닐 때였다. 소년 병사들이 어제 전투에서 친구가 죽어 복수를 다지며 내일의 전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마오쩌둥은 어린 소년병들을 움막의 교실에서 공부를 시키면서 위의 글을 먼저 가르쳤다고 한다. ‘내가 혁명에 실패하더라도 너희는 인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여야만 너희 아들 아니 너희 손자가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필자는 이 글귀가 마오쩌둥과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필자는 처음 이 글귀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의 움막, 동굴학교가 중국공산당의 고위 당직자라면 5년에 한 번은 무조건 거쳐야만 하는 지금의 중국공산당 중앙당교(中央黨校)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고위 공직자도 아니고, 그냥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늘 이 글귀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 백성은 가족, 친구, 동료, 회사, 조직, 사회 등이다.
7.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기억하라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우공이라는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남이 보기에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일이라 해도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보면 이 고사성어가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과학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를 잘 저으면 원래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은 포수가 있다면 눈에 띄어 일찍 죽을 수도 있다. 하늘에 구름이 많으면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비가 내리기를 바라면서 구름 하나만 본다면 너무 고집스럽지 아니한가? ‘목재로 쓰기에 좋은 나무는 다 베어 가고 못난 소나무만 남아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잘난 자식들은 다 서울로 가고 못난 자식만 고향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에 빗대 종종 쓰인다. 그러나 평균 강우량보다 많은 폭우가 쏟아진다면? 못난 소나무가 없다면 필시 홍수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스스로가 어떠한 성격인지,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스스로 다른 길을 찾든지 아니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 그때부터가 진짜 우공이산이다. 처음부터 스스로에게 ‘나는 주변 환경도 좋지 않을뿐더러 머리도 나쁘고 끈기도 없다’고 너무 다그치지 말자.
8. 스스로 철저히 검열하라
필자가 중견 간부가 되고 난 후, 위치상 윗분들을 뫼셔야 할 기회가 잦았다. 이때 필자는 전날 저녁에 다음 날 입을 양복, 셔츠, 넥타이는 물론 구두까지 깨끗이 닦아 준비를 했다. 당연히 만나는 목적을 알기에 나름 철저히 자료도 준비했다. 같이 걸어야 할 때도 항시 반보 뒤에서 걷고 절대 앞서 걷지 않았다. 상대방이 생각할 때 필자가 당신을 절대 가벼이 보지 않는다는 어필이었다. 상대측과 면담 시에도 공손한 자세를 유지한 채 경청하고 답을 했다. 필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또 이러한 기본적인 마음과 실천이 따라야만 필자 또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은 당신의 모든 것이다.”
‘듣는 것의 반만 말하라’
물론 필자 또한 해당되고 지금도 스스로 경계하고 있지만 이럼에도 지나고 나면 반복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만 준 것은 ‘듣는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승진하면 할수록 담당하는 직원이 많아지고 회의도 늘어나게 된다. 필자는 지금도 회의를 하기에 앞서 굳게 다짐한다. ‘직원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나는 말을 적게 하자’고. 그러나 끝나고 나면 늘 필자가 말한 게 반이 넘고 심지어는 70% 이상까지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심한 자괴감까지 느끼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반복하게 되고 급기야 자괴감을 넘어 지치고 업무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면서 자책(自責)까지 하게 된다.
필자는 젊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마거릿 대처가 한 말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몸에 익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떠한 회의든 그 내용을 철저히 숙지하고 참석하라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직원이 마주한 회의의 중요성을 모른 채 대충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이 질문을 해도 제대로 답도 못 하고 회의 말미에 질문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참석자 대부분이 질문이 없다고 한다. 무슨 공산당 회의인가? ‘질문, 궁금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게 필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윗사람이 신(神)인가? 어찌 사안에 대해 다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이러면서 때로 직원들은 상사와 소통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관으로도 많이 참석했었다.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데, 언젠가부터 자기소개서의 마무리 부분이 국민교육헌장과 비슷하게 천편일률적으로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임을 알고 채용만 해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필자는 이러한 서로 비슷한 자기소개 마무리가 보이면 가차 없이 서류에서부터 탈락시켰다. 아니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해서 회사를 발전시켜야지,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이 열심히 해 회사를 발전시키는데 거기에 그냥 숟가락만 얹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본인이 발전해야 자기의 가정을 풍요롭게, 몸담은 회사를, 사회를, 국가를 더욱 번영시킬 수 있는 게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9. 먼저 베풀어라
배고픈 상황에서 각자 떡 다섯 개가 있다고 생각하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떡을 한 개 주었다. 떡을 준 사람은 한 개를 주었으니 네 개가 남았고, 받은 사람은 여섯 개가 되었다.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떡을 준 이보다 두 개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먼저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대개 쌀 아흔아홉 가마니 가진 사람은 백 가마니를 채우기 위해 한 가마니밖에 없는 사람의 것을 탐낸다. 아니 백 가마니를 채우는 것이 그 사람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백 가마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목표의 숫자일까 아니면 백부터 시작해서 200, 300, 1000까지 이루어지는 첫 번째 정류장일까?
여유가 있을 때는 남을 도울 수도 있겠으나 사람에겐 기다릴 시간과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 또한 많음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여유의 여부를 떠나 그냥 단정 지어 내가 배고프고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안 해주는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짐짓 모르는 척하지는 말자.
필자는 도움을 못 준다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은 물론 필자의 마음도 계속 불편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입만 바라보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내 삶에 업보(業報)만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우리는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여기며 후회하고 분개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자기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 어떠한 형태의 보답을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도울 때는 어떠한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누구는 투자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돕는 것이 아니다. 투자라고 생각했다면 잘못은 투자자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도움을 주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깨끗이 잊어야 한다. 또 어느 순간이라도 그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마음속으로부터 섭섭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생기면서 삶은 삭막해지고 피폐해질 것이다.
조직의 상사나 부하직원은 물론 가족, 특히 자식에게도 이러한 경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해달라는 것 안 해준 것이 없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등등은 자식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이다. 자식에 대한 도움은 대가 없이 투자한 것이며 투자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았으면 한다. 우리 주변 대부분은 믿는 사람에게 발등을 찍힌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믿는 도끼가 없기 때문이다.
10.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최악을 대비하라
필자는 흔히 하는 이야기대로 ‘컵에 아직도 물이 반(半)이나 남아 있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사안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오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준 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늘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겨운데 왜 발생할지조차 불투명한 일을 걱정하면서 사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천성인지 고치려 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어른이고 지도자라면 적어도 마음으로만이라도 균형추(均衡錘)를 최악의 경우의 수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졸면 죽는다. 필자의 개인적인 신념 중 하나다. 주변에서 졸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이렇게 한다면 뭐 별일이야 있겠나!” “잠시 미뤄두었다가 다음에 하자” 하다간 큰 낭패를 겪을지 모른다. “만(萬)에 하나 그럴 일이 내게 있겠어?” 하는데 그게 나한테 오면 만(萬)이 되는 것이다. 자기는 ‘만에 하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출장 중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사소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마흔이 다 된 필자의 큰아들이 중학생일 때로 기억한다. 당시는 중고생들의 본드 흡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때다. 필자는 그러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생각했다.
‘내 아들도 본드를 흡입할 수 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 본드를 흡입하고 내 자식은 안 한다고 볼 수 있나. 그래서 마음속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언젠가 내 아들 이름을 대면서 본드를 흡입하고 공원 의자에 누워 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처였는데, 당연하달지 그런 일은 없었다. 더 심하게는 자식들이 크게 다쳤을 때의 상황에서 내가 취할 행동까지 생각했었다. 솔직히 이건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이기주의일 수도 있다.
지금은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해외출장이 많았을 때라 필자가 출장 중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집사람은 물론 주변을 불안하게 했었다. 그때 필자는 필자의 출장 중에 부모님이 운명(殞命)하시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안치소에 모셨다가 필자가 귀국한 후에 통상적인 관습대로 삼일장을 치르자고 했다. 임종(臨終)을 못 본다는 아픔은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부터 집사람은 안도하게 되었고 필자도 집중해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몸담고 있던 회사의 상황이 걱정이 없을 만큼 좋을 때에도 ‘만약 부도가 난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다듬어 왔다. 이렇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자문(自問)해봤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떠한 일에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나 싶다. 또 ‘나는 가진 게 많다, 가진 게 많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려면 평소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특히 어른이고 리더라면.
11. 배움에 게으르지 마라
필자는 독서를 강조하지만 사실 독서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며칠 전에 읽은 책의 제목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으니…. 한때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의문도 가졌었다. 아니 한때가 아니라 수시로 그랬었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방 안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집이 많았다. 밑이 뚫린 항아리에 물이 빠질 수 있는 얇은 천을 깔고 그 밑에 물받이 통을 놔두었다. 얇은 천 위에 콩을 얹어두고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콩나물이 다 자란다. 물을 줄 때부터 이미 물받이 통으로 다 빠져서 없는데도 말이다.
독서나 공부도 다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며칠 전에 읽은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도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머리에 남지를 않으니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당시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반짝하면서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또 본인도 모르게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었구나!’라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 이것이 공부의 힘이고 독서의 힘이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다.
공부와 독서를 해야만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 공부는 하지 않고 회사와 사회, 국가에 기생(寄生)해 발전을 누려선 안 될 것이다. 공부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한다면 놀라운 경험들을 맛볼 수 있다. 작게는 자신 가정의 발전, 크게는 회사, 사회, 국가의 발전…. 뿌리를 단단히 내려 무성한 나무가 된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그 나무에서 비바람과 북풍한설을 피할 것이다. 독자들도 몇 번씩의 경험은 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이게 이런 이야기였구나!” “아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스스로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기쁨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를 ‘죽을 때’까지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앎의 기쁨은 어떤 것보다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유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지난 40여 년의 영업 환경이 AI 시대인 현재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기에 이 글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다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의 환경이나 디지털 시대인 지금이나 영업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이 우선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 영리(營利)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 국어사전에 적힌 영업(營業)의 의미다.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제품을 판매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크든 작든 제품의 판매가 따르면 영업 한 단어로 통용하는 우리와 달리 영미권(英美圈)에서는 그 범위에 따라 ‘세일즈(Sales)’와 ‘비즈니스(Business)’로 구분 짓는데, 대개의 경우 ‘비즈니스’를 더 많이 사용한다. 물론 필자의 이 글 또한 광의(廣義)의 영업인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는 사회생활은 물론 좁게는 가족 간 관계에서도 ‘비즈니스’가 작동한다고 여긴다. 원만한 사회생활, 행복한 가족관계…. IT, AI 시대의 독자들에게 필자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안 좋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매일매일 대인(對人)관계와 관련해 많은 일을 겪는다. 글을 쓰기에 앞서 본인 앞에 안 좋은 상황이 닥쳤다는 가정을 두겠다. 내가 수세(守勢)에 처했다고 해서 상대방의 약점(弱點)을 이용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더더욱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전직 어느 검사장이 한 이야기인데, 칼로 상대방을 찌르되 비틀지는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꼭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식들도 성장하다 보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일들이 하나 둘씩 늘어갈 수밖에 없다. 이때 많은 부모가 “내 말을 안 듣더니 이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대뜸 이야기를 꺼낸다. 자식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일을 상기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악이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못 하게끔 했어야 하지 않은가? 필자도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한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시에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올 것이라 예측하여 심적으로 대비해놓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때는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보다는 생각해놓았던 대안(代案)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어른, 리더,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의 경우 “왜 그때 더 강력하게 나를 말리지 않았냐?”고 탓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많다. 독자들은 타인의 실패에 있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앞서 말한 타인에게 칼을 꽂고 비트는 것, 자기 자식의 경우라면 내 얼굴에 침 뱉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잘못 온 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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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영국 출장 중의 필자. |
약 25년 전 우리 회사는 외국에서 장비와 부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외국 수출회사로부터 팩스를 받았는데 그들의 내부적인 원가(原價)가 적혀 있었다. 발신자가 착각해서 잘못 보낸 것이었다.
그러고 약 3개월 후에 그 회사를 방문, 팩스를 잘못 보냈던 담당자를 포함하여 각 회사에서 3명씩 나와 회의를 했다. 그 미팅에서 필자는 원가를 모르는 척했다. 약간만 돌려서 이야기해도 우리 회사로서는 상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수한 담당자의 얼굴빛은 사색(死色) 그 자체였다.
필자는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회의를 하고 귀국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외국 회사의 담당 직원은 자기의 실수를 알자마자 그 사실을 즉시 필자가 상대하는 임원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약 1년 후 담당 임원이 “당시 그 직원을 보호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필자는 그의 손을 잡으며 미소만 지었다.
당시의 임원은 오래전에 정년퇴임했다. 팩스를 잘못 보냈던 직원은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데 필자를 만날 때마다 인사를 90도로 한다. 눈앞에 보이는 1~2년간의 이익만을 생각해 행동했다면 필자는 이런 인간관계를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2~3년 후부터는 그들이 가격을 인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오히려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
당시의 임원은 감사하게도 동종 업계의 많은 사람에게 필자 칭찬을 해주었다. 이 덕분에 비즈니스를 하면서 매우 큰 회사의 높은 사람들과도 만나게 돼 사업 영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독자들도 이러한 경험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2. 작은 일일수록 신경 써라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떠한 중대한 사안이 발생해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할 때 “큰일 났다”고 말한다. 필자는 무의식적으로도 이런 말을 안 하고자 나름 공부하면서 주의를 기울여왔다. 왜냐하면 작은 일, 아주 작은 일, 더 작은 일들이 쌓여 큰일이 되는 것이지 갑자기 큰일이 발생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가 간부로 점점 승진하고 업무의 폭이 커질수록 작은 일을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꼈다.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더 작은 일, 아주 작은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건국의 주요 인사였고 지금도 미국 화폐 100달러의 초상으로도 유명한 계몽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1758년에 쓴 책의 내용을 옮겨본다.
“말굽 못이 없어서 말굽이 떨어졌고, 말굽이 떨어져서 말이 쓰러졌고, 말이 쓰러져 기수(騎手)를 잃었고, 기수가 없어서 전투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고, 전투 정보를 받지 못해 전투에서 패했고, 전투에서 패해 왕국이 멸망했다. 이 모든 것은 말굽의 못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1930년대에 발표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게 있다. 어떠한 사건, 사고 발생에 앞서 해당 사고 관련 징후 29가지가 선행(先行)해서 나타나고 각각의 선행 조건에도 10가지 이상의 또 다른 징조가 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한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나 방치한다면 훗날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가 불시(不時)에 벌어진 게 아닌 예고된 재앙이라는 것이다.
사고는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자가 낸다
필자가 군(軍)에서 선임병이 되었을 때다. 필자가 밑에 있는 후임병들에게 부탁하고 지시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군화를 신을 때는 항상 끈을 조여서 신고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는 모자를 꼭 쓰고 아무리 추워도 군복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잘 지키는 후임병들에게 필자는 천사였고 그러지 않는 후임들에게는 악마였다. 나중에 사고를 치는 후임병들을 보면 필자가 말했던 기본을 지키지 않은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선조로부터 배워서 아주 잘 알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중용(中庸)》 23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에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生育)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하나의 거짓을 이야기하면 그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을 열 개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거짓말은 삶을 피폐하게 함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심지어는 분노를 유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사람들은 선의(善意)의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과 상대방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래전 매우 큰 외국 회사와 이런저런 사업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종적으로 그 회사 관련 부서의 모든 사람과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의 관점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던 작은 회사에 대한 질문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우리 회사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長點)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인사하는 1분 동안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필자는 ‘처음부터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1시간 넘게 완전히 벌거벗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 회사의 아주 세세한 약점까지 솔직하게 말했다. ‘나의 솔직함이 그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우리의 장점에 대해서는 그들이 질문할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심장박동을 조절하면서 말이다.
필자의 얘기를 다 들은 그들은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이내 몇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자 다른 사람들도 이내 동의를 표했다. 그들은 이미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몇 개월 전부터 한국의 매우 큰 법률회사는 물론 컨설턴트와 은행, 원자재 공급사와 경쟁사, 심지어는 우리 회사의 고객들과도 접촉하여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의 회의는 매우 순조로웠다. 예상대로 그들은 우리 회사의 장점에 대해 질문했다. 거리낌이 없던 필자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질문이라도 주저 없이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질문하려 했던 우리 회사의 약점을 필자가 먼저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만약에 당시 스스로 우리의 약점을 말하지 않고 그들이 질문할 때만 답을 했더라면 필자는 수비에 치중하게 되고 많이 당황했을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을 나왔다. 업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많은 시간을 절약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기 어려운 질문의 답일지라도 먼저 해줘라
우리는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점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즉 경청(敬聽)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또 성격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가 먼저 옷을 다 벗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약점은 이것이라고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은 우리 회사의 단점 또는 제품의 약점에 대해 분명히 궁금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우리 회사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비즈니스의 성공 확률은 매우 높다. 대우그룹의 김우중(金宇中) 회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안 해주는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건 비즈니스에서뿐만이 아니다. 사회생활에 있어 모든 곳에 적용된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기는 솔직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는 솔직한 답을 원하는 것은 소인배들의 심보라고 생각한다.
4.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라
자신이 권투선수라고 가정해보자. 만일 상대방에게 KO 패를 당한다면 심판의 카운트가 끝나고 조금 있다 일어나기보다 아예 기절한 채 한 5분 또는 10분 후에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후회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경우, 상대방의 실력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바닥 밑에 지하실이 또 있는지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이후 더 나은 경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패한다면 자신의 재능은 거기까지인 것으로, 가급적 빨리 인생의 궤도 수정에 나서야 한다. 어떠한 변명 없이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지 말아야 한다.
또 믿을 수 있는 다른 이, 자식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냥 묻어두어야 한다.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고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피지기까지만 맞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탈이 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5.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배워라
모든 사안에 대해서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축적해나간다. 배움에 있어서 장소와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꿈에서 또한 배울 수 있다. 《논어》 술이(述而) 편에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이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필자는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누구라도 내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손자라도 그렇다. 해맑게 웃는 모습에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 해맑게 웃으면서 기쁨을 준 적이 있는가’ 반성하게 된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모를 때 잘 아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여 “이러저러해서 잘 모르니 가르쳐주십시오”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준다. 인간의 본성(本性)이다.
또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어떠한 사적(私的)인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업무적으로 잘 대해주는 상사(上司)보다는 혹독하게 대하는 상사에게 배우는 게 좋다. 관심이 있으니 혼내는 것이다. 혹여 그 상사가 사적인 감정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기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집살이를 혹독히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 더 혹독하게 며느리를 대한다’는 말도 있긴 하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보았다. 여러 답이 있었다. 아기를 못 낳는 여인, 버림받은 여인,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 등…. 답은 ‘잊힌 여인’이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나를 심하게 대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잔소리도 하고 화도 내는 것이다. 필자가 간부로 있을 때 직원들 사이에서 필자에게 가장 많은 지적을 받고 욕을 들은 직원이 능력이 향상되고 승진도 하더라는 말이 돌았었다. 투명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6. 백성들이 즐긴 후에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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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누각 중 하나라는 악양루(岳陽樓)에 적혀 있는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글이다. 학자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필자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백성의 걱정은 내가 먼저 걱정하고 즐기는 것은 백성이 즐긴 후에 즐겨라.”
특히 세상의 모든 공직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경우인데, 필자는 우리 또한 지켜야 하는 경우라 생각한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백성’을 ‘인민’으로 해석해 통치에 반영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1930년대 초 홍군(紅軍) 수천 명과 함께 장제스(蔣介石) 군에 이리저리 쫓겨 다닐 때였다. 소년 병사들이 어제 전투에서 친구가 죽어 복수를 다지며 내일의 전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마오쩌둥은 어린 소년병들을 움막의 교실에서 공부를 시키면서 위의 글을 먼저 가르쳤다고 한다. ‘내가 혁명에 실패하더라도 너희는 인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여야만 너희 아들 아니 너희 손자가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필자는 이 글귀가 마오쩌둥과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필자는 처음 이 글귀를 접했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당시의 움막, 동굴학교가 중국공산당의 고위 당직자라면 5년에 한 번은 무조건 거쳐야만 하는 지금의 중국공산당 중앙당교(中央黨校)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고위 공직자도 아니고, 그냥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늘 이 글귀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 백성은 가족, 친구, 동료, 회사, 조직, 사회 등이다.
7. 우공이산(愚公移山)을 기억하라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우공이라는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남이 보기에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일이라 해도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보면 이 고사성어가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과학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를 잘 저으면 원래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은 포수가 있다면 눈에 띄어 일찍 죽을 수도 있다. 하늘에 구름이 많으면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 하지만 비가 내리기를 바라면서 구름 하나만 본다면 너무 고집스럽지 아니한가? ‘목재로 쓰기에 좋은 나무는 다 베어 가고 못난 소나무만 남아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잘난 자식들은 다 서울로 가고 못난 자식만 고향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에 빗대 종종 쓰인다. 그러나 평균 강우량보다 많은 폭우가 쏟아진다면? 못난 소나무가 없다면 필시 홍수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스스로가 어떠한 성격인지,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깨끗이 인정하고 스스로 다른 길을 찾든지 아니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 그때부터가 진짜 우공이산이다. 처음부터 스스로에게 ‘나는 주변 환경도 좋지 않을뿐더러 머리도 나쁘고 끈기도 없다’고 너무 다그치지 말자.
8. 스스로 철저히 검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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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전 영국 총리 |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은 당신의 모든 것이다.”
‘듣는 것의 반만 말하라’
물론 필자 또한 해당되고 지금도 스스로 경계하고 있지만 이럼에도 지나고 나면 반복해서 후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귀는 두 개 입은 한 개만 준 것은 ‘듣는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승진하면 할수록 담당하는 직원이 많아지고 회의도 늘어나게 된다. 필자는 지금도 회의를 하기에 앞서 굳게 다짐한다. ‘직원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나는 말을 적게 하자’고. 그러나 끝나고 나면 늘 필자가 말한 게 반이 넘고 심지어는 70% 이상까지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심한 자괴감까지 느끼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반복하게 되고 급기야 자괴감을 넘어 지치고 업무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면서 자책(自責)까지 하게 된다.
필자는 젊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사람의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마거릿 대처가 한 말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몸에 익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떠한 회의든 그 내용을 철저히 숙지하고 참석하라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직원이 마주한 회의의 중요성을 모른 채 대충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윗사람이 질문을 해도 제대로 답도 못 하고 회의 말미에 질문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참석자 대부분이 질문이 없다고 한다. 무슨 공산당 회의인가? ‘질문, 궁금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게 필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윗사람이 신(神)인가? 어찌 사안에 대해 다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귀중한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이러면서 때로 직원들은 상사와 소통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관으로도 많이 참석했었다.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인데, 언젠가부터 자기소개서의 마무리 부분이 국민교육헌장과 비슷하게 천편일률적으로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임을 알고 채용만 해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필자는 이러한 서로 비슷한 자기소개 마무리가 보이면 가차 없이 서류에서부터 탈락시켰다. 아니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해서 회사를 발전시켜야지,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이 열심히 해 회사를 발전시키는데 거기에 그냥 숟가락만 얹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본인이 발전해야 자기의 가정을 풍요롭게, 몸담은 회사를, 사회를, 국가를 더욱 번영시킬 수 있는 게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9. 먼저 베풀어라
배고픈 상황에서 각자 떡 다섯 개가 있다고 생각하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떡을 한 개 주었다. 떡을 준 사람은 한 개를 주었으니 네 개가 남았고, 받은 사람은 여섯 개가 되었다.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떡을 준 이보다 두 개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먼저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대개 쌀 아흔아홉 가마니 가진 사람은 백 가마니를 채우기 위해 한 가마니밖에 없는 사람의 것을 탐낸다. 아니 백 가마니를 채우는 것이 그 사람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백 가마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목표의 숫자일까 아니면 백부터 시작해서 200, 300, 1000까지 이루어지는 첫 번째 정류장일까?
여유가 있을 때는 남을 도울 수도 있겠으나 사람에겐 기다릴 시간과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 또한 많음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여유의 여부를 떠나 그냥 단정 지어 내가 배고프고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안 해주는 사람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짐짓 모르는 척하지는 말자.
필자는 도움을 못 준다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은 물론 필자의 마음도 계속 불편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 입만 바라보게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내 삶에 업보(業報)만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우리는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여기며 후회하고 분개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자기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 어떠한 형태의 보답을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도울 때는 어떠한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누구는 투자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돕는 것이 아니다. 투자라고 생각했다면 잘못은 투자자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도움을 주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깨끗이 잊어야 한다. 또 어느 순간이라도 그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마음속으로부터 섭섭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생기면서 삶은 삭막해지고 피폐해질 것이다.
조직의 상사나 부하직원은 물론 가족, 특히 자식에게도 이러한 경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해달라는 것 안 해준 것이 없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등등은 자식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이다. 자식에 대한 도움은 대가 없이 투자한 것이며 투자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았으면 한다. 우리 주변 대부분은 믿는 사람에게 발등을 찍힌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믿는 도끼가 없기 때문이다.
10.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최악을 대비하라
필자는 흔히 하는 이야기대로 ‘컵에 아직도 물이 반(半)이나 남아 있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사안이라도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오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준 적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늘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겨운데 왜 발생할지조차 불투명한 일을 걱정하면서 사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천성인지 고치려 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믿는다. 어른이고 지도자라면 적어도 마음으로만이라도 균형추(均衡錘)를 최악의 경우의 수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졸면 죽는다. 필자의 개인적인 신념 중 하나다. 주변에서 졸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이렇게 한다면 뭐 별일이야 있겠나!” “잠시 미뤄두었다가 다음에 하자” 하다간 큰 낭패를 겪을지 모른다. “만(萬)에 하나 그럴 일이 내게 있겠어?” 하는데 그게 나한테 오면 만(萬)이 되는 것이다. 자기는 ‘만에 하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출장 중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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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장 중의 필자(왼쪽에서 네 번째). 나이가 들면서는 출장 중 부모님 상을 당할 경우를 준비했다. |
‘내 아들도 본드를 흡입할 수 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 본드를 흡입하고 내 자식은 안 한다고 볼 수 있나. 그래서 마음속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언젠가 내 아들 이름을 대면서 본드를 흡입하고 공원 의자에 누워 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를.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최악의 경우에 대한 대처였는데, 당연하달지 그런 일은 없었다. 더 심하게는 자식들이 크게 다쳤을 때의 상황에서 내가 취할 행동까지 생각했었다. 솔직히 이건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이기주의일 수도 있다.
지금은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해외출장이 많았을 때라 필자가 출장 중에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집사람은 물론 주변을 불안하게 했었다. 그때 필자는 필자의 출장 중에 부모님이 운명(殞命)하시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안치소에 모셨다가 필자가 귀국한 후에 통상적인 관습대로 삼일장을 치르자고 했다. 임종(臨終)을 못 본다는 아픔은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부터 집사람은 안도하게 되었고 필자도 집중해서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몸담고 있던 회사의 상황이 걱정이 없을 만큼 좋을 때에도 ‘만약 부도가 난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다듬어 왔다. 이렇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자문(自問)해봤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떠한 일에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나 싶다. 또 ‘나는 가진 게 많다, 가진 게 많다’는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려면 평소에는 사소하게 여겼던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특히 어른이고 리더라면.
11. 배움에 게으르지 마라
필자는 독서를 강조하지만 사실 독서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불과 며칠 전에 읽은 책의 제목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으니…. 한때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의문도 가졌었다. 아니 한때가 아니라 수시로 그랬었다.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방 안에서 콩나물을 키우는 집이 많았다. 밑이 뚫린 항아리에 물이 빠질 수 있는 얇은 천을 깔고 그 밑에 물받이 통을 놔두었다. 얇은 천 위에 콩을 얹어두고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콩나물이 다 자란다. 물을 줄 때부터 이미 물받이 통으로 다 빠져서 없는데도 말이다.
독서나 공부도 다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며칠 전에 읽은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도 않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머리에 남지를 않으니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러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당시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반짝하면서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또 본인도 모르게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었구나!’라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 이것이 공부의 힘이고 독서의 힘이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다.
공부와 독서를 해야만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 공부는 하지 않고 회사와 사회, 국가에 기생(寄生)해 발전을 누려선 안 될 것이다. 공부를 지속적으로 꾸준히 한다면 놀라운 경험들을 맛볼 수 있다. 작게는 자신 가정의 발전, 크게는 회사, 사회, 국가의 발전…. 뿌리를 단단히 내려 무성한 나무가 된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그 나무에서 비바람과 북풍한설을 피할 것이다. 독자들도 몇 번씩의 경험은 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이게 이런 이야기였구나!” “아니,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스스로 뭔가를 깨달았다는 그 기쁨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독서를 ‘죽을 때’까지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앎의 기쁨은 어떤 것보다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유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