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필수 진료’ 의사
⊙ 40년 전에 비해 의사 숫자 3배로 늘었는데, 응급 뇌 수술 못 하는 현실
⊙ 감기 진료에 보험료 지급하는 걸 멈추고 중증 질환·외상 환자 수술비에 집중한다면 필수과 의사들 금방 늘어날 것
⊙ 지방의대 정원 증가?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등 대형병원 전공의들 절반 이상이 지방의대 출신
李相達
1965년생. 고려대 의대 졸업 / 고대병원 외과 전공의,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전임의 역임. 現 엠디외과 원장
⊙ 40년 전에 비해 의사 숫자 3배로 늘었는데, 응급 뇌 수술 못 하는 현실
⊙ 감기 진료에 보험료 지급하는 걸 멈추고 중증 질환·외상 환자 수술비에 집중한다면 필수과 의사들 금방 늘어날 것
⊙ 지방의대 정원 증가?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등 대형병원 전공의들 절반 이상이 지방의대 출신
李相達
1965년생. 고려대 의대 졸업 / 고대병원 외과 전공의,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전임의 역임. 現 엠디외과 원장
-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나온 후인 10월 17일 긴급회의를 열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사진=뉴시스
필자는 1983년에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 동기생은 총 154명, 훗날 이 중 21명이 외과 전문의가 됐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의과대학에서 많은 의대생이 외과에 지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외과 전문의가 해마다 250명가량 배출되었다. 산부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소위 생명과 직결되는 칼 잡는 외과 파트 지원도 많았다. 소아과는 여자 의대생들에게 인기과였다. 요즘 인기 있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영상의학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등과 비교해 경쟁률이 낮지 않았다. 당시에는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필수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없었다.
‘내외산소’ 기피하는 의사들
당시 활동하던 의사는 4만 명가량이었다. 지금 활동 의사는 11만여 명, 그때보다 3배가량 늘었다. 그런데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 심장 수술이 어렵고 뇌신경외과 의사가 없어서 뇌 수술을 하기 어렵단다. 1989년 필자가 인턴 시절 파견 나갔던 평택의 작은 병원에서도 매일 밤 하던 응급 뇌 수술을 요즘은 가장 큰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의사가 없어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소위 ‘내외산소’와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을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라 부른다. 정치인과 의료 행정가들은 ‘필수 의료진’이 부족한 건 우리나라 의사가 모자라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OECD 통계를 거론한다. 혹시 우리보다 의사가 많다는 미국·유럽 등지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의사 진료가 어려워 주기적으로 귀국하여 의료 쇼핑을 하고 심지어 이를 위해 한국에서 건강보험을 유지하는 걸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은 의사가 많다고 하나 우리나라와 비교해 의료비는 비싼데다가 병원 진료 받기도 매우 어렵다. 유럽에서 의료 사회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의료비는 싸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병이 저절로 낫거나 아예 악화된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주의 의료에서 의사는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환자를 많이 보지 않는다. 점심시간, 출퇴근 시간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의사들과 비교해 절반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2년 전 공공의대 논란이 한창일 때도 계속 든 생각은, 그 돈이면 좋은 병원을 몇 개 지을 수 있을 텐데 왜 꼭 의대를 늘리려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증원이 필요한 건 ‘필수 의료’ 의사들이지, 강남에서 피부과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아니다. 진주의료원은 환자가 없어 폐쇄하였지만 그 옆 창원에 있는 삼성병원은 의사도, 환자도 넘쳐난다. 속초의료원에 연봉 4억원을 줘도 의사가 안 온다고 분개하지만, 그 옆 강릉에 있는 아산병원은 20년 이상 양질의 의료진과 많은 환자를 유지하고 있다. 지방의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급여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보다 높지 않으며 이들의 급여는 여타 대기업의 비슷한 나이와 경력의 간부직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의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지방에 갈지라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의사들이 ‘필수 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젊은 세대의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 중시)’ 흐름 탓도 있겠지만 정작 ‘필수 의료’를 전공했다 할지라도 그 분야를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대 외상외과의 이국종 교수가 그 나이에도 병원 의국 간이침대에 몸을 뉘어야 하는 현실,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오는 외상센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의사에게 그런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맘카페에 글 올리는 엄마들
소아과 진료의 예를 보자. 과거에 비해 진료 환경이 달라졌다. 소아과 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출산율이 떨어져 소아 환자는 적은데 우는 아이 얼르고 달래서 진료하려 하면 아이 엄마가 난리를 친단다. 마음에 안 들면 맘카페에 글을 올려 그 동네에서 매장시키려 한다. 소아 환자 한 명 보는 데 어른보다 3~4배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의료 수가(酬價)는 같다. 그러면 수가를 비례해 올려주면 될 텐데 왜 그리하지 않는가? 저출산 대책 자금 수조원은 다 어디에 쓰는지 궁금하다.
외상 환자나 외과 중환자 수술은 할수록 병원에 적자인 경우가 많아 해당 전문의 채용을 기피한다. 그렇게 되면 적은 인원으로 버텨야 하니 일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취직할 곳도 마땅치 않다. 기껏 취직해도 자신이 해왔던 위 수술, 간 수술 등은 고사하고 전공의 1년 차 때도 했던 맹장 수술조차 할 수가 없다. 맹장염이라 진단 내리기가 무섭게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수술을 할수록 병원에 이익이 된다면 병원 입장에선 외과 의사도 많이 뽑고 수술 장비에 많은 투자를 하겠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이러니 필수과를 지원하겠는가?
1977년 직장 의료보험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5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GDP 대비 보험수가나 상대가치를 통한 과별 배분도 거의 달라진 게 없다. 당시에야 직장 의보 대상자가 일부였으니 외과 등 필수과목 의사들은 다른 과에 비해 낮게 형성된 의료 수가에도 버틸 수 있었다. 1991년 전 국민 개보험이 된 후부터는 국민 모두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니 ‘필수 의료’ 기피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개선 요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감기 같은 흔한 질병조차도 언제든지 동네 병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의사가 모자란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감기 진료를 하는 의사가 내과 의사가 아닌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일 수도 있다. 감기 진료에 보험료를 지급하는 것을 멈추고 중증 질환이나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 외상 환자 수술비에 집중한다면 필수과 의사들은 금방 늘어날 것이다.
예전에도 기피 과목에 대한 보상이 컸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명감과 의사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요즘 세대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힘들고 어렵고 지저분한 건 하기 싫어한다. 이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중국, 1만5000등까지 공대 진학
의대를 늘려봐야 결국 카이스트나 서울공대 갈 우수한 아이들을 더욱더 의대로 빨아들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의료 환경하에서 그들은 대부분 편한 진료과를 택하지 ‘내외산소’, 신경외과, 흉부외과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국가 전체의 낭비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서울에서 제주까지 의대 정원을 채우고 난 뒤에 서울공대와 카이스트 정원을 채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1000명을 더 늘린다면 이제 3000등까지가 아닌 4000등까지 의대에 빼앗긴 후 공대생들을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1등부터 1만5000등까지 공대에 간단다. 이런 나라 옆에서 대한민국이 버틸 수 있겠는가.
중요한 건 힘들어도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수술을 기피하고 감기 환자나 보려 하고, 신경외과 의사가 뇌 수술을 기피하고 척추 디스크만 진료하려 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하는 산과는 기피하고 부인과 진료, 비만 진료나 하려는 건 의료 수가는 낮은데 수술 결과에 따른 과도한 소송 남발과 의료 행위를 옥죄는 각종 규제로 보상은 적고 리스크는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내외산소’ 그리고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들이다. 응급 상황이 존재하고 자칫 부주의하면 인간의 생명이 꺼질 수 있는 고난도의 집중과 의료인의 희생이 필요한 전문 분야들이다. 환자를 못 살렸다고 살인범 소리를 듣거나 의사가 수술실에서 범죄 행위를 할지 모른다며 감시용 CCTV를 설치하자고 요구하는 환경 속에선 사명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점점 수술하는 과를 기피하는 현실도 무겁게 바라봐야 한다.
지방 의대 정원 늘려도 서울행
아직까지 대한민국 의사들은 세계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 가장 우수한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가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공부하고 수련을 받는다. 외국처럼 다른 일을 하거나 군 복무하다가 의대에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타고난 손재주는 그냥 부수적인 덤일 뿐이다.
로스쿨 시스템이 적절한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많은 인재가 로스쿨 낭인이 되어 사회적 낭비가 생기고 그렇게 배출된 수많은 변호사는 법률 접근성을 높인다는 장점보다는 소송을 증가시킨 부작용도 존재한다.
‘필수 의료’로 유인할 수 있는 정책 없이 늘어난 의사들 역시 과도한 경쟁으로 불필요한 의료를 권하게 되고 필수 의료 개선보다는 불필요한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공급 과잉은 필연적으로 비용 증가를 낳게 된다. 고령화 사회에 세수는 점차 줄어들 텐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국경 없는 의사회, 무의촌 진료 등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은 의사들도 ‘내외산소’를 기피한다면, 의료 최강국인 대한민국은 미래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는 질환이 암이나 심장 뇌혈관 질환인 중증 질환이다.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미래의 자신을 치료해줄 의사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지금도 많이 늦은 듯해 걱정이다. 그런데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놔두고 15년 뒤에나 써먹을 수 있는 의대 증원이라니….
지역 의료를 키우기 위해 지방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시행해온 정책으로 이로 인해 많은 지방의대가 생겼지만 지방의대 졸업생 중 특히 성적 우수자들은 졸업 후 서울의 병원으로 옮긴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또는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병원의 전공의들은 절반 이상이 지방의대 출신들이 차지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또다시 지방의대 정원 증대라는 정책은 과오를 되풀이할 뿐이다.
의료를 정치에 이용 말아야
매번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발표하는데 그걸 체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주변에 의사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소한 감기로도 얼마든지 병원에 가서 싼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천국이 대한민국이다. 의사 부족 얘기는 매스컴에 나오는 응급환자나 중증 외상 환자의 얘기다. 이는 중증 질환에 대한 수가 현실화와 지원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 가능한 문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의료를 이용하는 게 문제다.
수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감기 같은 진료는 의사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지만 보험 적용이 된다. 중증 질환처럼 소수만 이용하는 진료는 정작 많은 비용이 들지만 수가를 낮게 책정해 보험 적용에 한계가 많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감기에 쏟아부을 재원을 중증 질환에 지원하는 게 맞다. 필요하다면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지금 의사가 부족한 분야가 어디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진단하는 것이다.⊙
‘내외산소’ 기피하는 의사들
당시 활동하던 의사는 4만 명가량이었다. 지금 활동 의사는 11만여 명, 그때보다 3배가량 늘었다. 그런데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 심장 수술이 어렵고 뇌신경외과 의사가 없어서 뇌 수술을 하기 어렵단다. 1989년 필자가 인턴 시절 파견 나갔던 평택의 작은 병원에서도 매일 밤 하던 응급 뇌 수술을 요즘은 가장 큰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의사가 없어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소위 ‘내외산소’와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을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라 부른다. 정치인과 의료 행정가들은 ‘필수 의료진’이 부족한 건 우리나라 의사가 모자라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은 OECD 통계를 거론한다. 혹시 우리보다 의사가 많다는 미국·유럽 등지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의사 진료가 어려워 주기적으로 귀국하여 의료 쇼핑을 하고 심지어 이를 위해 한국에서 건강보험을 유지하는 걸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국은 의사가 많다고 하나 우리나라와 비교해 의료비는 비싼데다가 병원 진료 받기도 매우 어렵다. 유럽에서 의료 사회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의료비는 싸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병이 저절로 낫거나 아예 악화된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사회주의 의료에서 의사는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환자를 많이 보지 않는다. 점심시간, 출퇴근 시간 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의사들과 비교해 절반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2년 전 공공의대 논란이 한창일 때도 계속 든 생각은, 그 돈이면 좋은 병원을 몇 개 지을 수 있을 텐데 왜 꼭 의대를 늘리려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증원이 필요한 건 ‘필수 의료’ 의사들이지, 강남에서 피부과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아니다. 진주의료원은 환자가 없어 폐쇄하였지만 그 옆 창원에 있는 삼성병원은 의사도, 환자도 넘쳐난다. 속초의료원에 연봉 4억원을 줘도 의사가 안 온다고 분개하지만, 그 옆 강릉에 있는 아산병원은 20년 이상 양질의 의료진과 많은 환자를 유지하고 있다. 지방의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급여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보다 높지 않으며 이들의 급여는 여타 대기업의 비슷한 나이와 경력의 간부직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의사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지방에 갈지라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의사들이 ‘필수 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젊은 세대의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 중시)’ 흐름 탓도 있겠지만 정작 ‘필수 의료’를 전공했다 할지라도 그 분야를 꾸준히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대 외상외과의 이국종 교수가 그 나이에도 병원 의국 간이침대에 몸을 뉘어야 하는 현실,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오는 외상센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의사에게 그런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다.
맘카페에 글 올리는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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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5월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공공의대 신설 및 의대 정원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
외상 환자나 외과 중환자 수술은 할수록 병원에 적자인 경우가 많아 해당 전문의 채용을 기피한다. 그렇게 되면 적은 인원으로 버텨야 하니 일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취직할 곳도 마땅치 않다. 기껏 취직해도 자신이 해왔던 위 수술, 간 수술 등은 고사하고 전공의 1년 차 때도 했던 맹장 수술조차 할 수가 없다. 맹장염이라 진단 내리기가 무섭게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수술을 할수록 병원에 이익이 된다면 병원 입장에선 외과 의사도 많이 뽑고 수술 장비에 많은 투자를 하겠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간다. 이러니 필수과를 지원하겠는가?
1977년 직장 의료보험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5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GDP 대비 보험수가나 상대가치를 통한 과별 배분도 거의 달라진 게 없다. 당시에야 직장 의보 대상자가 일부였으니 외과 등 필수과목 의사들은 다른 과에 비해 낮게 형성된 의료 수가에도 버틸 수 있었다. 1991년 전 국민 개보험이 된 후부터는 국민 모두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니 ‘필수 의료’ 기피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개선 요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감기 같은 흔한 질병조차도 언제든지 동네 병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의사가 모자란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감기 진료를 하는 의사가 내과 의사가 아닌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일 수도 있다. 감기 진료에 보험료를 지급하는 것을 멈추고 중증 질환이나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 외상 환자 수술비에 집중한다면 필수과 의사들은 금방 늘어날 것이다.
예전에도 기피 과목에 대한 보상이 컸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명감과 의사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요즘 세대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힘들고 어렵고 지저분한 건 하기 싫어한다. 이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중국, 1만5000등까지 공대 진학
의대를 늘려봐야 결국 카이스트나 서울공대 갈 우수한 아이들을 더욱더 의대로 빨아들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의료 환경하에서 그들은 대부분 편한 진료과를 택하지 ‘내외산소’, 신경외과, 흉부외과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국가 전체의 낭비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서울에서 제주까지 의대 정원을 채우고 난 뒤에 서울공대와 카이스트 정원을 채운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1000명을 더 늘린다면 이제 3000등까지가 아닌 4000등까지 의대에 빼앗긴 후 공대생들을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1등부터 1만5000등까지 공대에 간단다. 이런 나라 옆에서 대한민국이 버틸 수 있겠는가.
중요한 건 힘들어도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외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수술을 기피하고 감기 환자나 보려 하고, 신경외과 의사가 뇌 수술을 기피하고 척추 디스크만 진료하려 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하는 산과는 기피하고 부인과 진료, 비만 진료나 하려는 건 의료 수가는 낮은데 수술 결과에 따른 과도한 소송 남발과 의료 행위를 옥죄는 각종 규제로 보상은 적고 리스크는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내외산소’ 그리고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은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들이다. 응급 상황이 존재하고 자칫 부주의하면 인간의 생명이 꺼질 수 있는 고난도의 집중과 의료인의 희생이 필요한 전문 분야들이다. 환자를 못 살렸다고 살인범 소리를 듣거나 의사가 수술실에서 범죄 행위를 할지 모른다며 감시용 CCTV를 설치하자고 요구하는 환경 속에선 사명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점점 수술하는 과를 기피하는 현실도 무겁게 바라봐야 한다.
지방 의대 정원 늘려도 서울행
아직까지 대한민국 의사들은 세계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고교 졸업생 중 가장 우수한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가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공부하고 수련을 받는다. 외국처럼 다른 일을 하거나 군 복무하다가 의대에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타고난 손재주는 그냥 부수적인 덤일 뿐이다.
로스쿨 시스템이 적절한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많은 인재가 로스쿨 낭인이 되어 사회적 낭비가 생기고 그렇게 배출된 수많은 변호사는 법률 접근성을 높인다는 장점보다는 소송을 증가시킨 부작용도 존재한다.
‘필수 의료’로 유인할 수 있는 정책 없이 늘어난 의사들 역시 과도한 경쟁으로 불필요한 의료를 권하게 되고 필수 의료 개선보다는 불필요한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공급 과잉은 필연적으로 비용 증가를 낳게 된다. 고령화 사회에 세수는 점차 줄어들 텐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국경 없는 의사회, 무의촌 진료 등 보람된 일을 하고 싶은 의사들도 ‘내외산소’를 기피한다면, 의료 최강국인 대한민국은 미래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는 질환이 암이나 심장 뇌혈관 질환인 중증 질환이다.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미래의 자신을 치료해줄 의사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 지금도 많이 늦은 듯해 걱정이다. 그런데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놔두고 15년 뒤에나 써먹을 수 있는 의대 증원이라니….
지역 의료를 키우기 위해 지방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시행해온 정책으로 이로 인해 많은 지방의대가 생겼지만 지방의대 졸업생 중 특히 성적 우수자들은 졸업 후 서울의 병원으로 옮긴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또는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병원의 전공의들은 절반 이상이 지방의대 출신들이 차지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또다시 지방의대 정원 증대라는 정책은 과오를 되풀이할 뿐이다.
의료를 정치에 이용 말아야
매번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발표하는데 그걸 체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주변에 의사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소한 감기로도 얼마든지 병원에 가서 싼값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천국이 대한민국이다. 의사 부족 얘기는 매스컴에 나오는 응급환자나 중증 외상 환자의 얘기다. 이는 중증 질환에 대한 수가 현실화와 지원으로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 가능한 문제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의료를 이용하는 게 문제다.
수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감기 같은 진료는 의사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지만 보험 적용이 된다. 중증 질환처럼 소수만 이용하는 진료는 정작 많은 비용이 들지만 수가를 낮게 책정해 보험 적용에 한계가 많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감기에 쏟아부을 재원을 중증 질환에 지원하는 게 맞다. 필요하다면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다.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지금 의사가 부족한 분야가 어디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진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