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드라마 〈수리남〉을 계기로 다시 보는 국정원 마약수사실록 : 월간조선

드라마보다 실화가 더 극적인 경우가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요원과 한 민간인이 남미(南美)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한국인 마약 대부(代父)를 검거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인데, 80%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윤종빈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실화가 너무 극적이라 그대로 만들면 오히려 클리셰(Cliche´·진부한 설정)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조금은 덜어냈다”고 했다.

드라마 속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 분)의 실제 인물은 조봉행이다. 극 중에서는 목사로 나오지만, 그는 선박 냉동 기사였다. 이 일을 하며 8년간 수리남에 체류한 적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건설업에 손을 댔다. 1994년 사기로 수배를 받았고, 체류 경험이 있던 수리남으로 도주했다.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했고 생선가공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사업 부진으로 결국 마약 유통에 손을 대게 됐다. 당시 상황을 국정원은 이렇게 기록했다.

“조봉행은 국내에서 건설 사업에 실패한 후, 약 10억원 상당의 사기를 자행(사기 혐의로 7건 지명수배)하고 1994년 5월 해외로 도주했다. 이듬해인 19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한 후 생선가공공장인 ‘SUBIC’사(社)를 운영했으나 유가상승 등으로 조업이 부진해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수리남에서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궁리한 끝에 남미 최대 마약 카르텔과 연계해 조직원 전모(某)씨(수리남 거주)와 본격적인 마약 사업에 착수했다. 2004~2005년 우리 국민들에게 마약 운반을 사주해 코카인을 유럽으로 공급한 혐의로 2005년 인터폴 수배를 받았다.”

수리남 교민회에서 정부에 민원 제기

수리남 내 처지가 어려운 한국인 동포들을 밀매에 끌어들인 거다. 이때 조씨 조직에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 프랑스령 교도소에 수감됐던 주부 장모씨(당시 37세)의 사연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2013)로 제작되기도 했다.

인터폴 수배가 떨어지고 2년 뒤인 2007년 11월.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는 조봉행이 남미 국제 마약조직과 연계해 중국에서 밀반입한 헤로인 30kg을 우리나라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런데 검거는 좀체 쉽지 않았다. 드라마 설정처럼 조봉행이 당시 수리남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취임한 데시 보우테르세 대통령은 군인 시절 마약 밀매를 했었는데, 이때 사용한 선박을 조봉행이 수리해준 게 인연이 됐다. 국정원의 기록이다.

“2007년 11월 첩보 입수 이전부터 수리남 교민회(회장 양○○)에서는 조봉행 때문에 현지 교민들의 피해가 크다며 우리 정부에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했다. 수리남에는 우리 대사관도 없고 범죄인 인도조약도 체결되지 않아 민원 해결은 답보 상태였다. 더욱이 당시 조봉행은 수리남 보우테르세 대통령(2010년 8월~2020년 7월, 마약전과자) 등 고위층과 친분을 맺고 있어 수리남 내에서는 현실적으로 검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러한 난관에도 조봉행으로 인해 자국민들이 해외에서 억울하게 체포돼 옥살이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우리나라로 마약을 밀반입하려는 시도가 포착됨에 따라 사명감을 갖고 검거에 착수했다”고 했다.

극 중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 분)와 함께 전요환 검거에 나서는 민간인 강인구(하정우 분)의 실존 인물은 K씨다.

민간인 K씨와의 共助

넷플릭스 웹드라마 〈수리남〉 속 마약 대부 전요환(황정민 扮)의 실제 인물은 조봉행이다. 극중에서는 목사지만 실제로는 선박냉동기사였다. 사진=넷플릭스

K씨가 국정원 작전에 협조하게 되는 과정도 드라마와 조금 다르다. 극 중 강인구는 전요환에게 속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국정원 요원을 만나게 된다. 실제로는 조봉행으로 인해 사업에 차질이 생긴 K씨가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구한 뒤, 국정원의 협조 요청을 받게 된다. 다시 국정원의 기록이다.

“(국정원은)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봉행 때문에 낭패를 본 한국인 K씨에게 조봉행 검거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2008년 1월 미(美) 마약단속국(DEA)과 현지 검거를 위한 비밀공작에 착수했다. 조봉행과 국제 마약조직이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 외곽 민가에 코카인 1.2t을 은닉·보관한 채 우리나라 등지에 판로를 개척 중인 정보를 입수하고 DEA와 공유하며 관련 동향을 파악했다.”

지난 2011년 K씨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친한 친구가 수리남에서 선박용 특수용접봉을 판매하는 사업이 유망하니 같이하자고 권했다”며 “용접봉은 잘 팔렸지만, 그 판매를 중개하던 조봉행이 대금을 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보려 했으나 방도가 없어 주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청하게 됐다”고 했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K씨를 만난 윤종빈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얼굴이 새카맣고 군인 같은, 어디다 떨어뜨려 놔도 생존이 가능할 것 같은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극중 국정원이 전요환을 잡기 위해 수리남 밖으로 유인하는 설정은 실제 작전과 유사하다.

“2008년 11월부터 국정원과 DEA는 K씨를 활용해 조봉행에게 마약 거래를 제안하며 하와이나 괌 또는 우리나라로 유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봉행이 수리남 외부로 나오기를 기피해 검거가 불발됐다. 국정원은 조봉행과 국제 마약조직원을 인접 국가인 브라질(범죄인 인도조약 체결)로 유인해 검거하는 방법으로 공작 계획을 수정, 위장거래를 지속 추진했다. 9개월에 걸친 끈질긴 유인 공작을 전개한 끝에 2009년 7월 조봉행 일당과 브라질 벨렝(수리남 접경지)에서 접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벨렝 역시 수리남 마약조직이 장악한 도시이므로 검거 작전 수행 시 마약조직과 총격전 등 위험 부담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이들 조직을 줄기차게 설득해 거래 장소를 브라질의 상파울루로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긴박했던 검거 순간

“국정원 요원과 K씨는 2009년 7월 23일 오후 5시 조봉행과 상파울루 과룰류스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검거 방법 등을 놓고 브라질 인터폴(연방경찰)과 수차례 작전회의를 거쳐 접선 현장으로 출동했다. 방탄복과 권총으로 중무장한 브라질 인터폴 요원(8명)을 과룰류스공항 내에 분산하여 배치를 완료하고 조봉행과 이들 조직이 나타날 것에 대비해 잠복근무에 돌입했다. 하지만 약속시각인 오후 5시를 넘기고도 조봉행과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탑승자 명단에도 없어 브라질 인터폴이 현장 철수를 강력하게 제의하여 난관에 봉착했다.

국정원 요원과 K씨는 이대로 작전이 끝나면 수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려, 조봉행과 국제통화를 해 약속시각이 미뤄진 척해 브라질 인터폴 요원의 철수를 지연시켰다. 2시간30분이 지날 무렵인 오후 7시30분경 드디어 조봉행과 국제 마약조직원 2명이 공항 출구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인터폴 요원들에게 신호를 보내 검거 작전에 착수했다.

조봉행과 마약조직원들이 K와 위장거래를 위해 투입된 인물을 공항 출구 앞에서 접촉하는 순간, 브라질 인터폴 요원이 급습해 전원 검거에 성공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조봉행 검거 이후 2011년 2월 최종재판에서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조씨는 2011년 5월 26일 국내 송환 이후 대법원에서 2012년 3월 징역 10년을 확정받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는 우리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준 국제 범죄조직에 대해 지구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국내로 송환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라고 했다. 기록된 국정원의 자평이다.

“조봉행이 수리남에 코카인 1.2t을 보관하고 국내 및 아시아에 유통시키려는 것을 사전 차단 및 조직 와해. 남미 최대 국제 마약조직과 연계된 총책 조봉행을 제거함으로써 현지 조직의 국내 침투 활동이 위축. 우리 국민들의 마약운반책으로 이용되어 해외에서 옥살이하는 피해를 예방했고 그동안 남미와 유럽 지역에서 실추된 국가 이미지를 회복했다.”

한편 조봉행은 지난 2016년 4월 19일 사망했다. 전남 해남교도소 복역 중 고혈압 등 지병이 악화돼서다. 한때 ‘복역을 마치고 수리남으로 돌아가 잘산다’는 풍문도 있었다.

한국, 마약 유통의 블루오션?

해마다 1만 명의 마약사범이 검거된다. 사진은 지난 9월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작곡가 겸 사업가 돈스파이크. 사진=뉴시스

제2, 제3의 조봉행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해마다 1만 명 이상이 마약 투약·유통·공급 혐의로 붙잡힌다. 최근에는 작곡가 겸 사업가 돈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가 메트암페타민(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되며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마약청정국’은 옛말이 됐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마약이 안방까지 침투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한 마약류의 총 중량은 1295kg이다. 2020년 321kg과 비교해 4배에 달한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154kg)과 비교하면 무려 8배가 넘는다. 마약사범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1만 명대를 웃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마약사범 수도 꾸준히 증가세다. 2017년 932명이던 것이 2021년 2339명으로 2.5배 늘었다. 국제우편(EMS)·특송화물을 통한 소규모 마약 밀반입도 급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기준, 전년 대비 283%(건수)·286%(중량)나 증가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선물용품·가공식품은 물론, 땅콩 속에 마약을 숨기는 등 수법도 교묘해졌다”고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살펴보니 마약사범들에게 한국은 꽤 매력적이다. 우선 마약 도매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필로폰의 미국 시세는 1g당 44달러(약 6만원)이고 태국은 13달러(1만8000원)다. 우리나라는 450달러(64만원)다. 태국보다 무려 35배나 높다. 국정원 관계자는 “중국 삼합회, 대만 죽련방, 일본 야쿠자 등 국제 범죄조직들이 한국으로 몰리는 이유”라고 했다.

비교적 ‘마약안전지대’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각국 세관 당국에서 한국발 화물에 대해 높은 신뢰도를 보인다는 점을 악용해 한국을 유통 경유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유지라 해서 마약이 그냥 거쳐가는 게 아니다. 일부 한국 내 유통분을 빼고 호주·일본 등 최종 목적지로 간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처럼 국제 마약조직들이 한국을 마약 경유·소비지로 만들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마약을 은닉한 화물을 정식 수출입으로 위장해 한국으로 밀반입한 다음, 제3국으로 밀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까지 쓰고 있다. 과거 운반책들이 마약을 소지한 후 한국을 거쳐 목적지 국가로 운반하던 수법보다 한 단계 진화한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측은 이에 “경유지 활용 및 해상·항공화물을 이용한 밀반입에 대해서는 경찰은 물론 관세청 등 유관기관과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해외 연계 마약조직 색출을 위해 국제 정보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10대 마약사범도 증가

IT기술의 발달로 접근성이 낮아진 영향도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국제 마약조직원들은 정보통신기술에 상당히 정통하다. 암호화된 통신 수단도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소셜미디어와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필로폰 소매 방식이 크게 변했다”면서 “요즘은 공급책이 다크웹이나 해외 소셜미디어에 공급 게시물을 올리면, 구매자가 보안성 높은 메신저로 구매 의사를 밝힌 후 암호화폐로 지불하는 방식이 흔하다”고 했다. 입금을 확인한 공급책은 다시 소셜미디어로 필로폰 은닉 장소를 알려준다. 이후 구매자가 그곳으로 가 찾으면 거래 완료다.

이처럼 마약 거래에 신(新)기술이 적용되면서 마약사범들도 점차 어려지는 추세다. 경찰청의 ‘최근 5년간 마약류 사범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검거된 마약사범 중 20대와 1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478명(16.6%), 69명(0.8%)이었으나 2021년에는 20대 3507명(33%), 10대 309명(2.9%)으로 5년 새 2~3배나 늘었다.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초범(初犯) 비율도 커졌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마약사범 가운데 초범 비율은 2019년 74%(1751명)에서 2020년 74.6%(1960명), 2021년 75.8%(1962명)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소셜미디어, 다크웹을 통한 신종 마약 유통 수법을 차단하기 위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마약범죄 연루 방지를 위해서는 ▲사소한 물건이라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출입국 세관 및 국내외로 운반해주지 말 것 ▲지인 등의 부탁이라도 택배 물품을 대신 받아주지 말 것 ▲무역화물 운송·보관을 요청하며 지나치게 큰 대금을 약속할 경우에는 마약범죄 가능성을 의심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만일 마약 유통 의심 사례를 발견했다면 신고는 ‘111’로 하면 된다.

탈북민 공급책과 동남아 마약사범

2022년 4월 동남아 마약 밀수입 조직의 총책인 탈북민이 국정원·경찰 공조로 검거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강제송환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돈스파이크가 소지했던 필로폰은 30g이다. 작은 종이컵 하나조차 채 못 채우는 양이다. 하지만 이 분량만으로도 약 1000명이 투약 가능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라면서 “단 한 차례라도 적발에 실패하면 최대 수백만 명분의 필로폰이 유통될 수도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동남아 지역 정보·수사기관들과 공조해 지난 2018년부터 한국인 마약조직 총책 6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이들 중 4명은 검경(檢警)과 협조해 국내로 송환했다. 나머지 2명은 현지 수감 중이다. 이들 가운데는 텔레그램에서 ‘마약왕 전세계’라는 별칭을 썼던 박모씨와 동남아 최대 한인(韓人) 마약조직 총책인 호모씨도 있다. 적발한 대부분의 마약류는 동남아(필로폰·합성대마), 북미(대마·필로폰), 멕시코(필로폰) 등 대표적인 주생산·유통지에서 들어왔다. 국정원 측은 “국내 외국인 마약사범의 절반 이상이 동남아인”이라면서 “동남아에 거점을 두고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하는 한국인 조직들도 지속적으로 적발 중”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금년 4월 적발한 사례를 소개한다.

‘한 탈북민이 동남아에 체류하며 한국에 필로폰을 밀반입·유통시키고 있다.’

2019년 4월 국정원이 입수한 첩보다.

이 탈북민은 한국에서 마약 판매로 한 차례 수감된 이력이 있었다. 이후 2018년 3월 중국으로 출국해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국과 중국, 호주에 마약을 공급했다. 국정원은 그가 캄보디아에 체류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현지 경찰과 공조해 검거에 나섰다. 추적을 자꾸 따돌리는 탓에 녹록지는 않았다. 그러던 2021년 4월, 그가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밀입국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국정원은 태국 수사당국과 공조해 그해 7월 이 탈북민을 검거하고, 인터폴 송환 절차까지 마쳤다. 이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보석 신청을 받아들인 태국 당국이 그를 석방해버린 것. 국정원 관계자는 “이후 그가 보석기간 중 마약을 판매한 정황을 추가로 확인하고, 다시 캄보디아로 도피한 것을 알게 됐다”면서 “앞서 협조관계를 구축해놓은 캄보디아 경찰과 마침내 지난 1월 캄보디아 남부 도시에서 그를 체포했고 4월 국내로 송환했다”고 했다.

1조3000억원어치 필로폰 추적기

2017년 콜롬비아발 한국행 선박에서 코카인 657kg이 나왔다. 국정원은 이 사건의 배후에 D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는 국제 마약유통 혐의로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추적 중인 인물이다. 그는 중남미발 마약을 호주로 밀반입하기 위해 상대적 마약안전지대인 한국을 경유지로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주 동포 E를 포섭해 아시아 총책으로 활용했다. E는 국내에 자신의 하수인 F를 두고 위장업체를 설립했다. 국정원은 이들이 남미에서 대형 기계류에 마약을 숨겨 국내로 수입한 뒤 다시 호주로 수출하는 ‘원산지 세탁 수법’을 사용한 정황을 확인하고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었다. 그러던 중 2021년 5월 호주 당국이 한국발 선적화물(헬리컬기어)에서 필로폰 230kg을 적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정원은 관세청과 협조해 해당 화물의 통관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아직 호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필로폰 은닉 헬리컬기어 9개가 한국에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두 달간의 추적 끝에 2021년 7월, 국정원과 관세청은 필로폰 404kg을 국내에 밀반입해온 F를 검거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가 1조3000억원 상당이며, 무려 1300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국정원은 이후 국내외 정보망을 총동원해 아시아 총책 E의 베트남 은신처 정보를 파악했다. 호주·베트남 수사당국 및 한국 검찰과 긴밀하게 공조해 2022년 2월 E를 현지에서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 조치했다.

상선 추적으로 韓·日·臺 조직원 일망타진

국정원에 따르면 한국은 필로폰 도매가가 높아 국제범죄조직들에게 고수익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한국에서 일본으로 필로폰을 밀반출하려다 잡힌 야쿠자 조직원. 사진=뉴시스

대만 범죄조직이 태국에서 부산으로 다량의 필로폰을 보낸 것을 적발한 사건도 있다. 2018년은 중국이 국경단속을 강화해 태국·베트남 등지를 경유해 한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할 가능성이 컸던 시기다. 이를 예의 주시하던 국정원은 그해 7월 정보망을 통해 결정적인 거래 단서를 확보했다. 장본인은 대만 죽련방 조직원 A였다. 경찰과 공조해 A의 행방을 쫓는 한편 세관에도 정보를 제공했다. 필로폰 밀반입에 쓴 수입화물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끈질긴 추적을 통해 2018년 8월, 인천공항을 막 빠져나가려던 A를 체포했다. A가 거주하던 서울 소재 임대주택에 있던 필로폰 90kg(시가 3000억원 상당, 300만 명 동시 투약분)도 모두 압수했다. 조사 결과 A가 국내에 밀반입한 필로폰은 총 112kg이었다. 이 중 22kg은 이미 일본 야쿠자 조직을 통해 국내 마약조직에 판매한 뒤였다. 국정원은 다시 경찰과 함께 판매된 필로폰의 유통 경로를 추적했고, 국내 최대 마약조직인 대구 거점 ‘성일파’ 총책 등 9명을 추가 검거했다.

신촌 모텔에 940억원 상당의 필로폰이…

‘대만에서 한국으로 밀반입한 필로폰 수십kg이 일본 야쿠자와 국내 마약조직에 넘어간다.’ 2018년 7월 국정원이 받은 제보다.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이후 관광객으로 가장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대만인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들의 거래 장소는 서울 신촌이었다. 국정원은 검찰·세관과 합동추적팀을 꾸려 긴 잠복에 들어갔다. 그 끝에 신촌 B모텔에서 필로폰 5kg을 밀반출하려던 용의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인근 C모텔에 23.5kg의 필로폰을 숨겨놓은 상태였다. 이날 검거로 총 28.5kg의 필로폰의 거래를 차단한 셈이다. 시가 940억원 상당, 94만 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추후 검찰·세관 수사에서 이들은 필로폰을 기계 속에 숨겨 항공특송으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는 대만 조직원들이 필로폰 수십kg이 든 가방을 들고 서울 도심을 버젓이 활보하고 다녔다는 뜻”이라면서 “한국이 해외 마약조직의 목표 시장이 됐고, 국내에서도 마약범죄가 대형화하고 있다는 경각심을 준 사례”라고 했다.

국제 범죄조직과 연계한 마약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국정원은 해외발 마약류의 국내 유입 차단, 현지 공급조직 추적 등 대응 활동을 한층 강화 중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대규모 마약 밀반입 정보에 대해 신뢰성을 검증한 뒤 수사권을 보유한 검찰과 경찰, 세관과 공조해 국제 마약조직의 국내 침투를 차단하는 데 정보 활동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했다.⊙

상단주메뉴

다큐멘터리

드라마 〈수리남〉을 계기로 다시 보는 국정원 마약수사실록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