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벼우면서도 메탈 소재보다 더 단단한 ‘복합재’
⊙ 수출 앞둔 T–50과 KT–1 국산 항공기 보며 느낀 벅찬 감정
⊙ 美 애리조나 사막에 버려져 있다가 환생한 해상초계기 P–3CK
⊙ AI 기술의 결정체 ‘A350 윙립 제작 스마트 팩토리’
⊙ 수출 앞둔 T–50과 KT–1 국산 항공기 보며 느낀 벅찬 감정
⊙ 美 애리조나 사막에 버려져 있다가 환생한 해상초계기 P–3CK
⊙ AI 기술의 결정체 ‘A350 윙립 제작 스마트 팩토리’
- 2010년 3월 역사적인 수리온 헬기 초도비행 장면. 3월인데도 눈발이 날려 이날은 카이 구성원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고 한다. 사진=KAI 제공
3월 28일 오전 8시 사천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경상남도 사천시는 인근의 진주, 고성, 통영에 비해 시명(市名)부터 다소 낯선 곳이었다. 공군 훈련비행단이 있는 도시, ‘공중부양’으로 유명했던 한 국회의원의 지역구라는 게 기자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낯섦이 주는 긴장은 도로변 곳곳을 장식하고 있던 벚꽃 덕분에 조금 누그러졌다. 동시에 이곳이 서울과 한참 떨어진 남녘땅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재(2019년 2월 28일) 사천시 인구는 11만6648명, 면적은 398.68km2이다. 면적상 경남 18개 시·군 중 16번째인 자그마한 도시다. 사천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면해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농·어업이 고루 발달해 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는 飛車?
사천에는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카이(KAI·Korea Aerospace Industries)다. 카이는 1999년 관(官) 차원의 인위적 구조조정인 ‘빅딜’로 삼성·대우·현대 3사의 항공 부문이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방산업체는 일반 기업과 달리 국내 시장(市場)을 거의 상대하지 않아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게다가 업체 특성상 보안을 강조하는 터라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카이는 국내 방산업체 중 ‘KF-X’ 등 한국형 전투기와 ‘수리온’ 등 헬기 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적 역시 중견 대기업 수준을 웃돈다. 자산 총액(2018년 12월·연결기준) 3조7558억원, 총매출액 2조7860억원에 달한다. 같은 해 14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카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월간조선》은, 국내 항공기 역사를 선도해온 카이의 현주소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꼈다. 항공우주산업이 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카이가 그 ‘청사진’을 어떻게 꾸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천공항을 출발한 지 약 15분쯤 뒤 공단로에 위치한 카이 본사에 다다랐다. 본사에는 본관을 비롯해 여러 부설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다 합하면 대지 면적만 82만m2에 달한다. 4700여 명의 임직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개발지원팀 최홍석 책임연구원의 안내로 가장 먼저 우리나라 항공기 역사관을 둘러봤다. 가장 오래된 비행기는 임진왜란 당시 정평구(鄭平九)가 만든 ‘비차(또는 비거·飛車)’라고 전해진다. 일본 역사서에 비차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아 그 정확한 형체(形體)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비차가 20~30리(8~12km) 거리까지 비행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비차가 존재 여부나 형태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될 경우, 세계 비행기 역사는 다시 써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기를 개발해 비행에 성공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300년 이상 앞서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조선인 조종사 안창남이 일본에서 몰고 온 ‘금강호’를 비롯해 6·25 직후 공군 기술 장교들에 의해 제작된 부활호(1954년),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초의 국산 기본훈련기 ‘KT-1’(1998년),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2006년) 등 국내 항공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복합재의 위력
카이 본사의 공장은 부품동과 조립동, 항공기동, 그리고 항공기 구조물(윙립·wing rib)을 만드는 일명 ‘스마트 팩토리’가 있다. 이 밖에도 개발센터, 복합동, 위성동까지 포함하면 10개 이상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카이의 자(子)회사인 한국항공서비스(캠스·KAEMS)가 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부품동이었다.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등에 쓰이는 부품을 제작하는 곳인데, 그중 핵심은 복합재(composite)였다. 부품동 안내를 맡은 기체생산2팀 안대원 PS(Production Specialist)는 “복합재는 항공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술이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가장 공개를 꺼리는 기술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카본 복합재는 짙은 갈색의 카본 테이프(carbon tape)로 제작된다. 카본 테이프는 닭가슴살처럼 수직 방향으로만 찢어질 뿐, 수평 방향으로는 찢어지지 않는다. 이 카본 테이프를 수백 번 교차해 접착한 뒤 오토클레이브(autoclave)에서 섭씨 300℃가 넘는 고온에 가압(加壓) 처리하면 전투기와 헬기 내장재로 쓰이는 카본 복합재로 탈바꿈한다.
이때 다소 독특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작업대 위에서 두세 사람이 짝을 지어 카본 테이프를 교차 접착하는 모습으로, 카본 테이프를 떼어내 접착면을 계속 덧대며 표면이 울지 않도록 편평하게 미는데, 롤러 같은 기구 없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안대원 PS는 “기계보다는 사람 손이 가장 섬세하기 때문에 대형 복합재를 제외하고는 (교차 접착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이가 영위하는 항공산업의 대부분은 노동집약 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블레이드’ 생산국은 10개국뿐
이렇게 만들어진 카본 복합재는 가벼우면서도 메탈 소재보다 더 단단해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다. 방탄복에도 쓰일 정도다. 기자는 복합재로 제작된 수리온 헬기 문짝 프레임을 손으로 들어봤다. 한 손으로 들었음에도 힘들지 않았다. 실제로 카본 복합재의 무게는 기존 알루미늄 소재 대비 1/4밖에 안 된다고 한다.
로빙 테이프[roving tape·조방사(粗紡絲)]로 만들어진 복합재는 주로 헬기의 로터 블레이드(rotor blade·프로펠러)의 외피(外皮)로 쓰인다. 그 내부는 허니캄(honeycomb)이라는 벌집 모양의 복합재로 채워진다. 로터 블레이드는 분당 수백 회를 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내구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역할을 로빙 테이프와 허니캄이 톡톡히 하는 셈이다. 안대원 PS는 “현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0개국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부품동을 나와 이동한 곳은 조립동이었다. 조립동과 이후 방문한 항공기동은 무주(無柱) 공법으로 지어졌다. 각종 전투기 등 생산 라인(lay out)이 변경될 경우에 대비해 기둥 없이 공장 내부를 설계한 것이다. 부품동에 들어서자 공장 내부에서 ‘딱, 딱’ 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부품동에서 근무하는 조립공정관리팀 이상휘 팀장은 “리벳(rivet) 박는 소리”라고 말해줬다. 이 팀장은 “항공기의 경우 대부분 리벳으로 구조물을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재밌는 ‘리벳’ 작업 이면에는…
리벳을 사용하면 나사나 용접보다 더 강력하게 제품을 고정할 수 있다. 리벳은 나사 모양으로 생긴 공구로, 나사보다는 길이가 짧고, 끄트머리도 뭉툭하다. 전동 드릴같이 생긴 샷건을 이용해 리벳을 쏘면 복합재 패널 반대편에 강력하게 부착된다. 이때 복합재 패널 맞은편으로 나온 리벳 끄트머리가 순간적으로 뭉그러지면서 패널과 리벳이 단단하게 맞물린다.
보통 수리온 헬기 등에 사용되는 리벳의 개수는 수만 개이며, 민항기(民航機)에 들어가는 리벳의 수는 수십만 개를 헤아린다. 이 작은 리벳이 잘못 박히거나 엉뚱한 곳에 들어박히면 항공기는 물론 승객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이상휘 팀장의 안내로 조립에 필요한 리벳, 파스너, 드릴 등 각종 공구가 모여 있는 공구 사무실을 찾았다. 이 팀장은 “보잉사(社), 에어버스사, 국방부 스펙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공구가 다 구비돼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카이가 구비하고 있는 항공기 공구만 수만 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공구 전문가들은 그 수많은 리벳 중 어느 게 어느 회사에 해당하는 스펙인지, 어느 항공기종(航空機種)에 들어가는 리벳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조립동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소형무장헬기(LAH·Light Armed Helicopter)의 시제기(試製機)를 볼 수 있었다. 항공기는 완성이 된 후 바로 양산에 들어갈 수 없다. 양산 전에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 팀장은 “지금 제작하는 LAH 시제기는 구조시험용 시제기로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새와 부딪히는 실험도 하는 등 거의 모든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
항공기동은 조립동에 비해 소음은 적었지만, 바삐 움직이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항공기동에서 만난 고정익(固定翼)생산기술팀 이상동 부장은 “항공기동에서는 조립동에서 제작된 항공기의 동체와 날개를 조립하고 엔진·항공전자 장비 등 주요 구성품을 탑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며 “항공기 내부 와이어(wire·전선) 점검, 유압(油壓) 체크 등 조립단계별로 철저한 검사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동의 각 공정을 거쳐 갈수록 점점 항공기 완제품의 모습을 갖춰갔다. 실제로 보니 항공기 동체 내부에 각종 전선(電線)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동체 하단엔 유압 체크를 위해 덕트(duct)가 장착된 게 보였다. 항공기 한 대마다 서너 명의 작업자가 달라붙어 각각의 기능을 확인하느라 매우 분주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태국 수출을 앞두고 있는 T-50 고등훈련기와 세네갈에 수출할 KT-1 기본훈련기였다. 우리 기술진이 정성을 다해 제작한 이 항공기들이 세계 각국의 영공(領空)을 누빌 것이란 상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이는 지난 2월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 시제기의 주요 부품인 ‘벌크헤드’ 생산에 돌입했다. KF-X는 카이가 야심 차게 벌이는 사업 중 하나다. KF-X 사업은 노후화한 공군 전투기를 대체할 4.5세대급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체계 개발비만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체계 개발이란 실제 양산할 장비에 대해 상세 설계를 마치고, 시제기까지 제작하는 것이다. KF-X 체계 개발 사업에는 국내 대학 16곳, 연구소 11곳, 업체 85곳 등 11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국제공동개발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의 방산 전문회사 PTDI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1월 카이가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체계 개발 분담금 1320억원을 지원받으면서 사업은 더욱 탄력이 붙었다. KF-X는 2021년 4월 시제기 출고를 목표로, 2026년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항공기동은 KF-X 사업을 위한 내부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KF-X가 이 항공기동에서 어떤 모습을 갖춰나갈지 자못 기대가 크다.
항공기에 새 생명 불어넣는 ‘캠스’
그다음 행선지는 캠스(한국항공서비스)였다. 캠스는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자로 지정한 국내 유일의 항공기 MRO 전문 업체이다. MRO란 ‘Maintenance(유지)’ ‘Repair(수리)’ ‘Overhaul(점검)’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이곳은 기(旣)생산돼 운용 중인 항공기를 입고시켜 정비하고 ‘리뉴얼’하는 곳이다. 즉 새 옷을 입혀 ‘환골탈태’시키고, 비행 안전을 책임지는 게 캠스의 주 업무다. 현재 항공기 MRO 분야는 싱가포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캠스는 매출 1조원을 달성, 항공기 MRO 분야에서 싱가포르를 뒤따라 잡을 계획이다.
캠스는 현재 보잉 737 시리즈와 에어버스 320 계열의 기체 중정비, 외부 재도장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인증을 받은 상태다. 보잉 B737 시리즈와 에어버스 A320 계열에 대한 기체 중정비를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조만간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저가 항공사(LCC)의 확대에 따라 캠스는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기체 중정비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이처럼 캠스는 MRO 분야에서 보폭(步幅)을 더욱 넓혀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캠스 설립의 기반이 된 것은 카이의 ‘성능 개량’과 ‘정비 기술’이다. 가장 눈에 띈 건 카이의 성능 개량으로 재탄생한 해군의 해상초계기 P-3CK였다. 성능개량팀 마정열 부장은 “미군이 쓰다가 애리조나주 사막에 버린 해상초계기 P-3B를 우리가 인수, 성능 개량 작업을 거쳐 P-3CK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처음 P-3B를 인수했을 당시,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한 게 P-3B가 처음 제작된 게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30여 년 넘게 쓰이다 버려진 초계기니 내・외부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카이의 손을 거쳐 탄생한 P-3CK는 어떨까.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렀던 조종석 계기판을 최첨단화했고, 승무원석의 장비를 현대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아울러 중앙 날개(center wing)와 바깥 날개(outer wing)의 수명 연장 작업도 성공리에 마쳤다. 캠스는 이렇게 기골보강(氣骨補强)한 P-3CK를 우리 해군에 인도했다.
카이는 창(廠)정비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창정비란 군수 물자 중, 수리나 재생이 요구되는 완제품 또는 부분품에 대해 ‘창시설’로 후송해 실시하는 정비를 뜻한다. 즉 군수 물자의 수명을 늘리는 작업이다. 이미 미(美) 태평양 7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H-53 헬기 40기에 대한 창정비 사업을 5년여에 걸쳐 시행, 2014년 완료한 바 있다. 현재 카이는 미 F-16에 대한 창정비 작업을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의 결정체: A350 윙립 제작 공장
카이의 자랑 중 또 하나는, 에어버스 A350 날개에 들어가는 갈비뼈 모양의 구조물(윙립·wing rib) 제작 공장이다. 알루미늄-리튬 합금 덩어리를 깎아 만든 윙립 중 크기가 가장 큰 게 가로 5600mm, 세로 1600mm, 높이 170mm이다. 무게는 약 120kg에 달한다. A350 양 날개엔 이러한 윙립 구조물이 33개씩 총 66개가 들어간다. 이 중 28개씩 총 56개의 윙립을 카이에서 제작한다.
A350 윙립 제작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란 점이다. 공장 2층에서 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봤을 때,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공장의 자동화율은 87%에 달한다. 스마트 팩토리의 대명사로 꼽히는 독일 지멘스(Siemens) 공장의 자동화율이 85%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높은 자동화율인 셈이다.
이 공장은 ‘스마트공장추진단’ 분류 기준으로 ‘중간2’에 해당한다. 민관(民官) 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은 스마트공장을 IT 기술 활용 정도와 역량에 따라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등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국내엔 ‘고도화’ 공장은 한 군데도 없다. 즉 카이의 A350 윙립 제작 공장이 가장 높은 수준의 AI 공장인 것이다.
이 공장이 갖추고 있는 AI의 가장 큰 특징은, 알루미늄-리튬 합금 덩어리를 9개의 절삭기에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점이다. 공장 내부의 무인운반차(RGV)가 합금 덩어리를 절삭기에 공평하게 배분함으로써, 작업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일종의 AI를 통한 ‘공정의 최적화’인 셈이다.
가령, 9대의 절삭기 중 2대의 절삭기가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면 무인운반차가 놀고 있는 절삭기에 합금 덩어리를 전달, 작업이 쉬지 않고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하나의 기계에만 일이 쏠려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절삭기 9대가 깎아내는 윙립의 개수는 매월 660개에 달한다.
공장 완공 후 국내 기업은 물론, 각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카이는 모든 공장이 마찬가지지만, 이 ‘스마트 팩토리’만큼은 절대로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카이가 카이스트의 부설 연구소인 줄…”
취재를 마친 뒤, 직원 한 명이 2010년 3월 국산 헬기 ‘수리온’ 초도비행에 얽힌 일화를 담담히 들려줬다. 대강 이런 요지였다.
“원래 사천엔 눈이 잘 안 오는데, 그땐 3월인데도 눈이 왔단 말이야. 천신만고 끝에 만든 수리온 헬기가 눈발을 가르며 날아오르는데…. 그 장면을 보던 구성원들이 눈물을 훔치더라고. 해산(解産)을 한 부모의 심정이었지. 우리한테 수리온 헬기는 그런 존재야. 근데 ‘불량’ 운운하며 언론에서 때리는 걸 보니까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엄연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데….”
다소 감상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해 기자가 농담을 던졌다. “처음 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카이스트(KAIST)의 부설 연구소인 줄 알았다”고 하자 곁에 있던 직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카이에 석・박사 인력이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략 1000여 명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고급 두뇌’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다. 순간 카이를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碩學)이 모인 카이스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애국심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카이는 카이스트를 능가할지 모른다. 실제로 카이의 각 공장에서 태극기를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공장 내부 벽면, 천장엔 으레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조국의 이름에 걸맞게 한 치의 오차 없는 완벽한 제품을 생산하자’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태극기를 게양한 건 아닐까. 그러한 투철한 애국심이 오늘의 카이를, 내일의 카이를 비상(飛上)하게 만드는 진짜 ‘힘’이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인터뷰 |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기획실장 박경은
“카이,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략 파트너로 우뚝 설 것!”
박경은 경영기획실장은 “향후 카이가 민수용 기체 구조물 분야에서 ‘슈퍼 티어 1(Super Tier 1)’ 업체로 우뚝 서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퍼 티어’란 민항기 개발 단계부터 핵심 구조물 설계·제작에 참여하는 최상위 협력 회사를 말한다.
박경은 실장은 또 민항기 시장 성장에 발맞춰, 한국 브랜드의 민수 완제기(完製機)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러한 민수 부문 강화를 통해 2030년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다음은 박 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항공우주산업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전망에 대해 설명해달라.
“그간 우리나라는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산업이 경제의 주(主)성장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주력 산업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 성장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항공우주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융복합된 미래 산업이자 지식·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전문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기도 합니다. 특히 첨단 기술이 집약된 항공전자 분야는 고급 일자리뿐만 아니라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단일 사업 주기가 40~50년간 이어지는 장기적인 사업이기에, 오랜 기간 안정적인 이윤창출과 성장 역시 가능합니다.”
2030년 매출 20조 목표
— 항공우주산업 성장세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엔 무엇이 있나.
“세계 항공우주 시장은 2017년 700조원 규모로, 연 3~4%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경제의 성장과 인구 증가에 따른 여객 수요의 증가 등으로 민항기 시장은 안정적인 발전이 예상됩니다. 항공기 운영대수의 증가로 부품·정비 분야도 확장될 게 현재로선 분명해 보입니다. 우주 분야 또한 달 탐사, 우주여행 등의 수요도 증가할 테고요.
이러한 추세에 걸맞게 카이도 민수 항공 분야에서 보잉·에어버스사(社)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기체(機體) 부품 물량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국내 LCC(저가항공사)들의 성장, 그리고 한반도 평화 및 남북경협 활성화에 따라 신규 완제기 사업 기회가 창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카이가 선점할 수 있도록, 이미 세계 민항기 시장 성장에 기반한 항공우주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 선순환(善循環)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 ‘군수와 민수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항공우주산업 로드맵의 큰 축인 군수 분야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 소형 무장·민수 헬기(LAH·LCH) 사업의 개발과 양산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성능개량 사업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갈 예정입니다.
기체구조물 분야에서는 전문화·특화된 사업물량 수주로 ‘슈퍼 티어 1’ 업체로 우뚝 서,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략 파트너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MRO 분야에서는 자회사인 캠스와 함께 민항기 정비 및 군 정비물량 위탁 확대를 통해 아태 지역 정비 허브로 도약할 계획이고요.
우주 분야에서는 군·민수 위성개발과 한국형 발사체를 양산해 우주개발 시대도 활짝 열어젖히고자 합니다. 현재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항공기 구성품 분야도 국산화를 확대해 국내 개발 역량을 확보토록 할 방침입니다. 그리하여 2030년에는 20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항공우주산업 로드맵들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간다면 2030년에는 1000여 개의 전문화 및 특화된 강소기업 육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17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로 국내 항공산업의 ‘파이’ 역시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 절실
—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공우주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핵심 주력 산업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 걸음마 수준인 국내 항공우주산업은 그 규모가 작고, 기반이 열악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기업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국가 단위의 항공우주산업을 육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그동안 운송, 운항 사업에 치중되었던 국내 항공산업 구조를 제조·정비산업으로 확대·재편하고 정부의 장기적인 육성정책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국내 항공우주업체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윈윈(win win)’하는 새로운 상생(相生) 모델 구축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항공우주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핵심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2019년 2월 28일) 사천시 인구는 11만6648명, 면적은 398.68km2이다. 면적상 경남 18개 시·군 중 16번째인 자그마한 도시다. 사천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면해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농·어업이 고루 발달해 있다.
인류 최초의 비행기는 飛車?
사천에는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카이(KAI·Korea Aerospace Industries)다. 카이는 1999년 관(官) 차원의 인위적 구조조정인 ‘빅딜’로 삼성·대우·현대 3사의 항공 부문이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방산업체는 일반 기업과 달리 국내 시장(市場)을 거의 상대하지 않아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게다가 업체 특성상 보안을 강조하는 터라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도 거의 없다.
카이는 국내 방산업체 중 ‘KF-X’ 등 한국형 전투기와 ‘수리온’ 등 헬기 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적 역시 중견 대기업 수준을 웃돈다. 자산 총액(2018년 12월·연결기준) 3조7558억원, 총매출액 2조7860억원에 달한다. 같은 해 146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카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월간조선》은, 국내 항공기 역사를 선도해온 카이의 현주소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꼈다. 항공우주산업이 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카이가 그 ‘청사진’을 어떻게 꾸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천공항을 출발한 지 약 15분쯤 뒤 공단로에 위치한 카이 본사에 다다랐다. 본사에는 본관을 비롯해 여러 부설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다 합하면 대지 면적만 82만m2에 달한다. 4700여 명의 임직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개발지원팀 최홍석 책임연구원의 안내로 가장 먼저 우리나라 항공기 역사관을 둘러봤다. 가장 오래된 비행기는 임진왜란 당시 정평구(鄭平九)가 만든 ‘비차(또는 비거·飛車)’라고 전해진다. 일본 역사서에 비차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아 그 정확한 형체(形體)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비차가 20~30리(8~12km) 거리까지 비행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비차가 존재 여부나 형태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될 경우, 세계 비행기 역사는 다시 써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동력 비행기를 개발해 비행에 성공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300년 이상 앞서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조선인 조종사 안창남이 일본에서 몰고 온 ‘금강호’를 비롯해 6·25 직후 공군 기술 장교들에 의해 제작된 부활호(1954년),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초의 국산 기본훈련기 ‘KT-1’(1998년),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2006년) 등 국내 항공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복합재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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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항공기동에서 이뤄지는 항공기 최종조립 현장. 사진=KAI 제공 |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부품동이었다.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등에 쓰이는 부품을 제작하는 곳인데, 그중 핵심은 복합재(composite)였다. 부품동 안내를 맡은 기체생산2팀 안대원 PS(Production Specialist)는 “복합재는 항공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술이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가장 공개를 꺼리는 기술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카본 복합재는 짙은 갈색의 카본 테이프(carbon tape)로 제작된다. 카본 테이프는 닭가슴살처럼 수직 방향으로만 찢어질 뿐, 수평 방향으로는 찢어지지 않는다. 이 카본 테이프를 수백 번 교차해 접착한 뒤 오토클레이브(autoclave)에서 섭씨 300℃가 넘는 고온에 가압(加壓) 처리하면 전투기와 헬기 내장재로 쓰이는 카본 복합재로 탈바꿈한다.
이때 다소 독특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작업대 위에서 두세 사람이 짝을 지어 카본 테이프를 교차 접착하는 모습으로, 카본 테이프를 떼어내 접착면을 계속 덧대며 표면이 울지 않도록 편평하게 미는데, 롤러 같은 기구 없이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안대원 PS는 “기계보다는 사람 손이 가장 섬세하기 때문에 대형 복합재를 제외하고는 (교차 접착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이가 영위하는 항공산업의 대부분은 노동집약 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블레이드’ 생산국은 10개국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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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품동에서는 복합재 생산을 위해 작업자가 원자재 적층(積層)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KAI 제공 |
로빙 테이프[roving tape·조방사(粗紡絲)]로 만들어진 복합재는 주로 헬기의 로터 블레이드(rotor blade·프로펠러)의 외피(外皮)로 쓰인다. 그 내부는 허니캄(honeycomb)이라는 벌집 모양의 복합재로 채워진다. 로터 블레이드는 분당 수백 회를 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내구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역할을 로빙 테이프와 허니캄이 톡톡히 하는 셈이다. 안대원 PS는 “현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0개국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부품동을 나와 이동한 곳은 조립동이었다. 조립동과 이후 방문한 항공기동은 무주(無柱) 공법으로 지어졌다. 각종 전투기 등 생산 라인(lay out)이 변경될 경우에 대비해 기둥 없이 공장 내부를 설계한 것이다. 부품동에 들어서자 공장 내부에서 ‘딱, 딱’ 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부품동에서 근무하는 조립공정관리팀 이상휘 팀장은 “리벳(rivet) 박는 소리”라고 말해줬다. 이 팀장은 “항공기의 경우 대부분 리벳으로 구조물을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재밌는 ‘리벳’ 작업 이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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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립동에서 이뤄지는 민항기 동체 조립 장면. 사진=KAI 제공 |
보통 수리온 헬기 등에 사용되는 리벳의 개수는 수만 개이며, 민항기(民航機)에 들어가는 리벳의 수는 수십만 개를 헤아린다. 이 작은 리벳이 잘못 박히거나 엉뚱한 곳에 들어박히면 항공기는 물론 승객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이상휘 팀장의 안내로 조립에 필요한 리벳, 파스너, 드릴 등 각종 공구가 모여 있는 공구 사무실을 찾았다. 이 팀장은 “보잉사(社), 에어버스사, 국방부 스펙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공구가 다 구비돼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카이가 구비하고 있는 항공기 공구만 수만 개에 달한다고 하니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공구 전문가들은 그 수많은 리벳 중 어느 게 어느 회사에 해당하는 스펙인지, 어느 항공기종(航空機種)에 들어가는 리벳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조립동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소형무장헬기(LAH·Light Armed Helicopter)의 시제기(試製機)를 볼 수 있었다. 항공기는 완성이 된 후 바로 양산에 들어갈 수 없다. 양산 전에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 팀장은 “지금 제작하는 LAH 시제기는 구조시험용 시제기로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새와 부딪히는 실험도 하는 등 거의 모든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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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기동에서 한창 작업 중인 수리온 헬기 제작 모습. ‘작업자는 무재해, 항공기는 무결함’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사진=KAI 제공 |
항공기동의 각 공정을 거쳐 갈수록 점점 항공기 완제품의 모습을 갖춰갔다. 실제로 보니 항공기 동체 내부에 각종 전선(電線)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동체 하단엔 유압 체크를 위해 덕트(duct)가 장착된 게 보였다. 항공기 한 대마다 서너 명의 작업자가 달라붙어 각각의 기능을 확인하느라 매우 분주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태국 수출을 앞두고 있는 T-50 고등훈련기와 세네갈에 수출할 KT-1 기본훈련기였다. 우리 기술진이 정성을 다해 제작한 이 항공기들이 세계 각국의 영공(領空)을 누빌 것이란 상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이는 지난 2월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KF-X 시제기의 주요 부품인 ‘벌크헤드’ 생산에 돌입했다. KF-X는 카이가 야심 차게 벌이는 사업 중 하나다. KF-X 사업은 노후화한 공군 전투기를 대체할 4.5세대급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체계 개발비만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체계 개발이란 실제 양산할 장비에 대해 상세 설계를 마치고, 시제기까지 제작하는 것이다. KF-X 체계 개발 사업에는 국내 대학 16곳, 연구소 11곳, 업체 85곳 등 11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국제공동개발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의 방산 전문회사 PTDI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1월 카이가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체계 개발 분담금 1320억원을 지원받으면서 사업은 더욱 탄력이 붙었다. KF-X는 2021년 4월 시제기 출고를 목표로, 2026년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항공기동은 KF-X 사업을 위한 내부 정비 작업이 한창이다. KF-X가 이 항공기동에서 어떤 모습을 갖춰나갈지 자못 기대가 크다.
항공기에 새 생명 불어넣는 ‘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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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50 국산 항공기의 수평 미익(尾翼)을 제작하기 위해 로봇을 이용해 나사를 박는 RDS(Robot Drilling System) 모습. 사진=KAI 제공 |
캠스는 현재 보잉 737 시리즈와 에어버스 320 계열의 기체 중정비, 외부 재도장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인증을 받은 상태다. 보잉 B737 시리즈와 에어버스 A320 계열에 대한 기체 중정비를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조만간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저가 항공사(LCC)의 확대에 따라 캠스는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기체 중정비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이처럼 캠스는 MRO 분야에서 보폭(步幅)을 더욱 넓혀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캠스 설립의 기반이 된 것은 카이의 ‘성능 개량’과 ‘정비 기술’이다. 가장 눈에 띈 건 카이의 성능 개량으로 재탄생한 해군의 해상초계기 P-3CK였다. 성능개량팀 마정열 부장은 “미군이 쓰다가 애리조나주 사막에 버린 해상초계기 P-3B를 우리가 인수, 성능 개량 작업을 거쳐 P-3CK로 탈바꿈시켰다”고 설명했다. 처음 P-3B를 인수했을 당시,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한 게 P-3B가 처음 제작된 게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30여 년 넘게 쓰이다 버려진 초계기니 내・외부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카이의 손을 거쳐 탄생한 P-3CK는 어떨까.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렀던 조종석 계기판을 최첨단화했고, 승무원석의 장비를 현대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아울러 중앙 날개(center wing)와 바깥 날개(outer wing)의 수명 연장 작업도 성공리에 마쳤다. 캠스는 이렇게 기골보강(氣骨補强)한 P-3CK를 우리 해군에 인도했다.
카이는 창(廠)정비 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창정비란 군수 물자 중, 수리나 재생이 요구되는 완제품 또는 부분품에 대해 ‘창시설’로 후송해 실시하는 정비를 뜻한다. 즉 군수 물자의 수명을 늘리는 작업이다. 이미 미(美) 태평양 7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H-53 헬기 40기에 대한 창정비 사업을 5년여에 걸쳐 시행, 2014년 완료한 바 있다. 현재 카이는 미 F-16에 대한 창정비 작업을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의 결정체: A350 윙립 제작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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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항공서비스(KAEMS)에서 이뤄지는 C-130 성능개량 작업. 사진=KAI 제공 |
A350 윙립 제작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란 점이다. 공장 2층에서 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봤을 때,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공장의 자동화율은 87%에 달한다. 스마트 팩토리의 대명사로 꼽히는 독일 지멘스(Siemens) 공장의 자동화율이 85%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높은 자동화율인 셈이다.
이 공장은 ‘스마트공장추진단’ 분류 기준으로 ‘중간2’에 해당한다. 민관(民官) 합동 스마트공장추진단은 스마트공장을 IT 기술 활용 정도와 역량에 따라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등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국내엔 ‘고도화’ 공장은 한 군데도 없다. 즉 카이의 A350 윙립 제작 공장이 가장 높은 수준의 AI 공장인 것이다.
이 공장이 갖추고 있는 AI의 가장 큰 특징은, 알루미늄-리튬 합금 덩어리를 9개의 절삭기에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점이다. 공장 내부의 무인운반차(RGV)가 합금 덩어리를 절삭기에 공평하게 배분함으로써, 작업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일종의 AI를 통한 ‘공정의 최적화’인 셈이다.
가령, 9대의 절삭기 중 2대의 절삭기가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면 무인운반차가 놀고 있는 절삭기에 합금 덩어리를 전달, 작업이 쉬지 않고 이어지도록 유도한다. 하나의 기계에만 일이 쏠려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절삭기 9대가 깎아내는 윙립의 개수는 매월 660개에 달한다.
공장 완공 후 국내 기업은 물론, 각국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카이는 모든 공장이 마찬가지지만, 이 ‘스마트 팩토리’만큼은 절대로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카이가 카이스트의 부설 연구소인 줄…”
취재를 마친 뒤, 직원 한 명이 2010년 3월 국산 헬기 ‘수리온’ 초도비행에 얽힌 일화를 담담히 들려줬다. 대강 이런 요지였다.
“원래 사천엔 눈이 잘 안 오는데, 그땐 3월인데도 눈이 왔단 말이야. 천신만고 끝에 만든 수리온 헬기가 눈발을 가르며 날아오르는데…. 그 장면을 보던 구성원들이 눈물을 훔치더라고. 해산(解産)을 한 부모의 심정이었지. 우리한테 수리온 헬기는 그런 존재야. 근데 ‘불량’ 운운하며 언론에서 때리는 걸 보니까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엄연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데….”
다소 감상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해 기자가 농담을 던졌다. “처음 카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카이스트(KAIST)의 부설 연구소인 줄 알았다”고 하자 곁에 있던 직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카이에 석・박사 인력이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략 1000여 명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고급 두뇌’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다. 순간 카이를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碩學)이 모인 카이스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애국심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카이는 카이스트를 능가할지 모른다. 실제로 카이의 각 공장에서 태극기를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공장 내부 벽면, 천장엔 으레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조국의 이름에 걸맞게 한 치의 오차 없는 완벽한 제품을 생산하자’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태극기를 게양한 건 아닐까. 그러한 투철한 애국심이 오늘의 카이를, 내일의 카이를 비상(飛上)하게 만드는 진짜 ‘힘’이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인터뷰 |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기획실장 박경은
“카이,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략 파트너로 우뚝 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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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해양대학교 박용(舶用)기계공학과 졸업 / 삼성항공(1990~1999), 한국항공우주산업(1999~) 근무 |
박경은 실장은 또 민항기 시장 성장에 발맞춰, 한국 브랜드의 민수 완제기(完製機)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러한 민수 부문 강화를 통해 2030년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다음은 박 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항공우주산업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전망에 대해 설명해달라.
“그간 우리나라는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산업이 경제의 주(主)성장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주력 산업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 성장동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항공우주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융복합된 미래 산업이자 지식·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전문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기도 합니다. 특히 첨단 기술이 집약된 항공전자 분야는 고급 일자리뿐만 아니라 높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단일 사업 주기가 40~50년간 이어지는 장기적인 사업이기에, 오랜 기간 안정적인 이윤창출과 성장 역시 가능합니다.”
2030년 매출 20조 목표
— 항공우주산업 성장세에 따른 구체적인 전략엔 무엇이 있나.
“세계 항공우주 시장은 2017년 700조원 규모로, 연 3~4%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경제의 성장과 인구 증가에 따른 여객 수요의 증가 등으로 민항기 시장은 안정적인 발전이 예상됩니다. 항공기 운영대수의 증가로 부품·정비 분야도 확장될 게 현재로선 분명해 보입니다. 우주 분야 또한 달 탐사, 우주여행 등의 수요도 증가할 테고요.
이러한 추세에 걸맞게 카이도 민수 항공 분야에서 보잉·에어버스사(社)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기체(機體) 부품 물량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국내 LCC(저가항공사)들의 성장, 그리고 한반도 평화 및 남북경협 활성화에 따라 신규 완제기 사업 기회가 창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카이가 선점할 수 있도록, 이미 세계 민항기 시장 성장에 기반한 항공우주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 선순환(善循環)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 ‘군수와 민수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항공우주산업 로드맵의 큰 축인 군수 분야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 소형 무장·민수 헬기(LAH·LCH) 사업의 개발과 양산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성능개량 사업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갈 예정입니다.
기체구조물 분야에서는 전문화·특화된 사업물량 수주로 ‘슈퍼 티어 1’ 업체로 우뚝 서, 보잉과 에어버스의 전략 파트너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MRO 분야에서는 자회사인 캠스와 함께 민항기 정비 및 군 정비물량 위탁 확대를 통해 아태 지역 정비 허브로 도약할 계획이고요.
우주 분야에서는 군·민수 위성개발과 한국형 발사체를 양산해 우주개발 시대도 활짝 열어젖히고자 합니다. 현재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항공기 구성품 분야도 국산화를 확대해 국내 개발 역량을 확보토록 할 방침입니다. 그리하여 2030년에는 20조원의 매출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항공우주산업 로드맵들을 차질 없이 수행해나간다면 2030년에는 1000여 개의 전문화 및 특화된 강소기업 육성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17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로 국내 항공산업의 ‘파이’ 역시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 절실
—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공우주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핵심 주력 산업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 걸음마 수준인 국내 항공우주산업은 그 규모가 작고, 기반이 열악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기업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국가 단위의 항공우주산업을 육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항공우주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그동안 운송, 운항 사업에 치중되었던 국내 항공산업 구조를 제조·정비산업으로 확대·재편하고 정부의 장기적인 육성정책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국내 항공우주업체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윈윈(win win)’하는 새로운 상생(相生) 모델 구축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항공우주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핵심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