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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보호무역주의가 밀려온다 | 현장르포〈2〉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거제, 몰락의 늪에서 재기할 수 있을까?

조선업 불황의 직격탄 맞은 거제(巨濟)의 ‘바닥 민심’ 청취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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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도시’에서 ‘유령 도시’로 전락한 거제, 불과 몇 년 만에 180도 바뀐 경제지표
⊙ 택시 기사, 부동산 업자, 자영업자들도 한결같이 “거제 경기는 최악”
⊙ 한 조선소 협력업체 대표는 자살 기도까지
⊙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성토하는 목소리도
⊙ 캐리어와 가방 멘 사람 대부분은 조선소에서 실직한 근로자들
⊙ “장평은 이미 죽은 동네입니더. 거지 동네, 유령 동네…”
⊙ 올해 들어 거제의 양대 조선소 수주 건수 증가… 되살아날 조짐도
  한국GM의 전북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따라 국내 자동차 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와 함께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계도 위기를 맞고 있다. 《월간조선》은 조선업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경남 거제시를 찾았다. 거제 현지에서 조선소 협력업체 관계자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한 ‘바닥 경기(景氣)’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지난 3월 3일 거제에 다다랐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해상 크레인이었다. 순간 남해와 맞닿은 남쪽 땅 끄트머리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남 거제시는 우리에게 ‘거제도’라는 섬으로 더 친숙하다. 거제도는 면적상 우리나라에서 제주도(1845km2) 다음으로 큰 섬이다. 2017년 12월 현재 경남 거제시의 면적은 402.3km2, 인구는 25만4000여 명이다. 거제도는 1971년 거제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육지와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통영을 잇는 신거제대교(1999년),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2010년)가 개통돼 경남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거듭났다.
 
 
  ‘부자 도시’ ‘완전 고용 도시’였던 거제시
 
정문 앞에서 바라본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빨간색 신호등이 우리 조선업계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조선업은 그동안 외화벌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효자 업종이다. 거제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해양조선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거제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조선업 호황이 정점을 찍던 2010년 거제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4146만원 선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2001년 17만8960명이었던 인구는 2007년 20만8208명으로 3만여 명이나 증가했다. 유입 인구의 증가는 곧 일자리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덕에 실업률도 한때 0.4~0.5%로 1%를 밑돌아 사실상 ‘완전 고용을 이룬 도시’라는 평도 들었다. 전적으로 조선업의 호황 덕분이었다.
 
  그런 조선업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조선업의 위기는 2014~2015년경부터 시작돼 2016년 정점을 찍고 현재까지 고전 중이다. 그 바람에 거제 경제에도 멍이 들었다. 거제시에 따르면 2015년 12월 9만2164명(375개 업체)에 달했던 조선업계 근로자 수가 2017년 12월엔 5만4136명(270개)으로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2년 새 4만명 가까운 이들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통계청의 ‘2017년 하반기 시군별 주요고용지표 집계 결과’에 따르면 거제시의 지난해 하반기 실업률은 6.6%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시(市) 지역 평균 실업률 3.5%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거제시의 실업률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2016년 하반기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몇 년 새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180도 바뀐 것이다.
 
  이처럼 조선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운 데에는 대내외적 요인이 혼재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대외적 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의 급격한 감소, 2014년 말부터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해양플랜트(해저에 매장된 석유, 가스 등을 탐사, 시추하는 생산설비) 발주 연기와 취소 등이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높은 인건비가 꼽힌다. 선박 건조 원가에서 인건비는 보통 약 30%를 차지한다. 예컨대 싱가포르가 해양플랜트 강자인 한국 조선소를 제치고 20%나 낮은 가격에 수주한 것은 저렴한 인건비 덕분이었다. 싱가포르 국민소득은 2017년 기준으로 5만3053달러로 한국(2만7097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높지만 조선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저렴한 인건비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한국을 앞서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자살 기도한 조선소 협력업체 대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의 모습. 과거엔 ‘자전거 부대’로 장관을 이뤘지만 지금은 그런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거제의 양대 조선소 관계자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대체로 꺼렸다. 최근 악화된 경영환경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는 듯했다. 한 조선소 홍보팀 관계자는 “최근 구조조정 때문에 회사 안팎이 시끄러운 게 사실”이라며 “당분간 언론 접촉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조선소 협력업체를 수소문해 보았다. 협력업체도 조선소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접근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협력업체 특성상 원청업체인 조선사로부터 일감을 수주받기 때문에 잘못 보일 경우, 자칫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난 조선소 협력업체 간부 A씨는 원래 인천의 한 배관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3년 전부터 거제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조선소에 배관 자재 등을 납품하고 있다.
 
  A씨는 “3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거제는 죽음의 땅”이라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자신의 연봉이 대략 7000만원 안팎이었다고 주장했다. 전문대 졸업이란 학력치고는 꽤 높은 수준이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당 등을 다 합해 봐야 3500만~4000만원 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 정도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다른 협력업체 중 몇 군데는 아예 문을 닫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중 한 협력업체 대표는 2년 전 자살을 기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회사 경영 악화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A씨의 말이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장평동 일대에 위치해 있다. 장평오거리에서 남쪽으로 뻗은 직선 도로 끝에 삼성조선소가 펼쳐져 있다. 조선소의 면적은 400만m2로 ISO9001(품질경영), ISO14001(환경경영), OHSAS18001(안전보건경영) 등 세계가 규정한 3대 국제규격을 공인받은 조선소라고 한다.
 
  과거 TV에서 조선소 근로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땀 냄새 짙게 밴 산업의 역군들이 만드는 장관(壯觀)에 가슴 설렌 적이 있다. 이곳에서 그런 장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소의 위용을 대변할 근로자들의 기개는 고사하고, 주변엔 황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조선소 바로 맞은편 북쪽으로 뻗은 왕복 1차선 도로 양쪽엔 식당과 술집, 상점들이 즐비해 있지만 문을 연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납금 4만원 채우기도 어려운 기라”
 
  어느 지역의 경제 사정을 알려면, 해당 지역 공인중개업소 업자와 택시 기사를 만나면 대강의 윤곽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장평오거리에서 택시 기사 서너 명이 삼삼오오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거제 경기에 대해 묻자 진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이구동성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택시 엄청 안 좋심니더. 말도 하지 마이소. 예전에 경기 좋을 때, 지금 이 시간이면 사납금 15만원 채우는 거 어렵지 않았심더. 근데 지금은 4만원 채우기도 어려운 기라.”
 
  “밑바닥, 최고 밑바닥이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잖은교?”
 
  “조선 경기 좋을 때하고 지금 비교하면 100만~150만원 정도 수입이 줄었심더.”
 
  “택시 기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더.”
 
  이들의 말에 따르면, 거제의 택시는 총 620대 정도 되는데 그들의 벌이 역시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주말이라 사람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기사 중 한 명은 “모르는 소리 말라”며 “주말이면 조선소 근로자들이 떼로 몰려나와 술 한 잔 하는 여유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택시 손님이라는 게 거의 다 밤에 술 한 잔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한 곡씩 부르는 사람들인데, 경기가 안 좋으니 그런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며 혀를 찼다. 또 다른 택시 기사는 “거제의 최고 번화가인 고현동 일대를 제외하곤 택시 손님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개학 초라 학생 손님이 조금 있을 뿐 그 외의 손님은 거의 전무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택시 기사는 “담뱃값, 가스값, 식대도 못 뽑을 정도로 힘들다”며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부동산 거래 사실상 전무… ‘초단기 월세’만
 
  장평동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업소를 찾았다.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오늘은 영업을 안 합니더”라며 짐을 챙기고 있었다. “취재차 왔다”며 잠깐 시간을 내줄 것을 부탁하자 그제야 자리로 안내했다. 장평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한 지 6년 정도 됐다는 B씨는 “삼성조선소와 대우조선소의 상황에 따라 집값이 술렁댄다”며 운을 뗐다. 그는 거제의 양대 조선소의 상황부터 설명해 주었다.
 
  “삼성은 2017년 후반기부터 수주량이 없어 회사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대우조선해양은 그 1년 전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금 대우는 2016년 초부터 최악이었다가 지금은 바닥을 치고 상황이 비교적 좋아져 원점을 회복한 추세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덕에 주가도 조금 올랐다고 한다. 반면 삼성은 2017년 후반기부터 상황이 매우 안 좋아진 것으로 안다.”
 
  B씨는 조선소의 생리를 비교적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소들이 대형 배를 수주받으면 설계에만 1~2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동안 근로자들은 그전에 수주받은 배를 건조하는 작업을 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 이전 수주 실적이 낮으면 근로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B씨는 “거제의 부동산 경기도 조선업 불황에 따라 악화일로다. 거제의 집값은 1억~2억 정도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2012년 거제에서는 인기도가 낮은 중대형 아파트까지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될 정도로 부동산 경기가 뜨거웠다. 지금은 그때와는 딴판이다. 그는 “조선소의 일감이 확 줄자 근로자들은 2~3개월짜리 초단기 원룸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평동 일대에는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원룸촌이 형성돼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 경기가 호황이었을 때에는 원룸도 전세가 아닌 거의 다 월세였다고 한다. 그마저도 동이 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젠 월세는 아예 전무하고 전세 물량만 조금 나오고 있다. 거제에서 전세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B씨는 “지금 전세 거래도 거의 없고 초단기 월세 거래만 조금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께서 이 동네에도 오셨으면…”
 
  근로자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 일대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심각하다고 했다. 과거 장사가 잘됐던 음식점, 술집도 지금은 손님이 없어 공인중개업소에 가게를 내놨지만,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B씨는 “권리금 없이 가게를 내놔도 누가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거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거래가 없다 보니 공인중개업소 점주까지도 문을 닫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결국 조선소의 불황으로 근로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장평 인근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 점주 C씨의 설명도 B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C씨는 “그간 언론이 보도한 대로 거제의 부동산 경기는 완전히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도 “초단기 월세 정도의 매물만 있을 뿐”이라며 “조선소 일이라는 게 불확실해져 근로자들이 장기 계약을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C씨는 “아파트의 경우는 비어 있는 곳이 덜하지만, 원룸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룸 건물주의 경우 은행 대출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이자를 내는 것도 버거운 상태라고 말했다.
 
  장평동 아파트 단지 근처의 한 편의점에 들렀다. 카운터를 보는 중년 여성은 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점장도 올해까지만 하고 편의점을 접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통상 본사와 편의점의 계약 기간은 5년인데, 올해가 5년째 되는 해인 데다가 매출도 급감해 매장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있는데 월급은 제때제때 받는가’라고 묻자 “우리 점장은 최저임금이 올랐어도 어기지 않고 꼬박꼬박 잘 챙겨준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대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폐점을 앞둔 점장을 더 걱정하기도 했다. 그 역시 조선소 경기가 최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난 1월 대우조선해양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며 “거제 출신인 대통령께서 장평에도 한 번 들르셨으면 분위기라도 달라졌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약국 매출도 3분의 1 이하로
 
거제시 곳곳엔 ‘임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인적이 끊긴 장평오거리에 때마침 문을 연 약국이 한 군데 보였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약사 D씨는 거제에서 15년간 약국을 운영했다고 한다. D씨는 “이런 불황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D씨의 부인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지금은 늦둥이 셋째(6세)를 돌보느라 일을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약국 영업이 워낙 안 돼 부인도 다시 일을 할까 생각할 정도로 형편이 빠듯하다고 했다.
 
  D씨의 약국에선 삼성조선소 정문 입구가 바라보였다. 그는 “과거에는 조선소 근로자들이 무리를 지어 5시부터 10시까지 퇴근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보였지만, 지금은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몇몇 근로자가 퇴근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 이후엔 인적이 딱 끊긴다”고 했다.
 
  15년 전 거제에 처음 왔을 때 놀랐던 건 물가였다고 한다. 물가가 워낙 비싸서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높은 물가에도 호황을 누리던 곳이 바로 거제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는 게 D씨의 말이다. 그는 “작년 3월부터 완전히 바닥을 쳐 임대료도 못 맞출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원래 일요일은 약국 문을 열지 않았지만, 요즘엔 일요일에도 문을 열 정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약국의 평상시 매출이 10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30만원도 안 된다. 그나마 우린 의료기간이라 나은 편이다. 맞은편 편의점은 가장 장사가 잘됐던 곳이다. 아르바이트생이 2~3명은 기본적으로 있었다. 지금 보면 손님이 하나도 없다. (편의점) 사장도 원래 편의점에 잘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보면 사장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아마도 최저임금이 오른 탓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다니…”
 
  그는 기자를 약국 문 앞으로 데려가 맞은편 상점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현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호프집, 바(bar), 음식점 등 대여섯 군데 모두 가게를 내놓은 상태라며 “권리금이 없다고 해도 안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D씨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대통령이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려선 안 됐다. 경제성장률과 소득을 고려했어야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저임금 인상도 최악의 불황에 한몫을 거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내가 계산을 해보니 약국에 여직원을 한 명 둘 경우, 퇴직금과 4대 보험 제하고 임금으로 줘야 할 금액이 한 달에 197만원이었다. (최저임금) 7530원 기준이다. 원래 평균 150만원 수준이었는데 50만원 가까이 오른 것이다. 그럼 퇴직금과 4대 보험 부담도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도 자동으로 약을 조제하는 기계를 들여놨다. 도저히 사람 쓸 형편이 안 된다.”
 
  약국은 그 특성상 매약보다는 처방전이 많아야 매출이 늘어난다. 때문에 인근 병원에 환자가 많아야 한다. D씨는 맞은편 병원을 가리키며 “저 병원에서 원래 처방전이 70건 정도 나왔지만, 지금은 20~30여 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며칠간의 매출 영수증을 보여주었다. D씨는 멋쩍게 웃으며 “이 영수증에서 1만원 이상짜리가 있나 한 번 찾아보라”고 했다. 1만원은 고사하고 5000원짜리 미만의 영수증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약국을 접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D씨의 약국은 조선소 바로 앞에 위치해 조선소 근로자들이 많이 찾는다. 그는 “근로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국의 불황은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D씨는 임금을 300만원 정도 받았던 사람들이 조선소 일감이 끊긴 뒤엔 120만~150만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보통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을 40~50대, 3인 가족이라고 치면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든 액수다. 그럼에도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근로자들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고 D씨는 전했다.
 
 
  한 손엔 캐리어, 등에는 가방 멘 근로자들
 
  그는 “점심시간 때만 해도 약국을 찾는 근로자들이 많았다. 지금은 조선소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이다 뭐다 해 이곳을 떠나니 약국을 찾는 손님이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기자는 이 약국을 3월 4일과 5일 점심시간에 맞춰 두 차례 찾았다. 4일은 한 시간 정도 머물렀고, 월요일인 5일은 30여 분쯤 머물렀다. 일요일엔 손님이 세 명 다녀갔고, 월요일은 단 한 명도 손님을 볼 수 없었다. D씨는 “세 명 정도 왔으면 호황”이라며 머쓱해했다. 그는 “조선소 근로자들을 구분하는 나만의 법칙 같은 게 있다”며 ‘가슴 아픈’ 자신의 목격담도 들려주었다.
 
  “조선소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예닐곱 명이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등에 가방을 멘 채 건너편 편의점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얼굴에 근심이 짙은 게 한눈에 봐도 조선소에서 실직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편의점에서 술을 사오더니 길거리에 앉아 마시더라. ‘저들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 저 사람은 물론, 가족들은 이제 어떡하나’란 생각이 들더라. 지난 1~2년간 그런 광경을 약국 창문 너머로 자주 봐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장평오거리로 나오니 썰렁한 거리가 유난히 더 을씨년스러웠다. 그 순간 허기가 느껴졌다. 실직한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배고픔을 느끼는 나 자신이 왠지 한심해 보였다. 장평종합시장 인근 고등어추어탕집에 들어갔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에게 거제 경기에 대해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더 물어 뭐하냐’는 투였다.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 묻자 “반토막 났다. 재료값만 겨우 건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한 지 3년 정도 되었다는 그는 과거엔 조선소 근로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 매출을 짭짤하게 올렸지만, 지금은 시장 상인들만을 상대한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 없는 게 아니라 거제에 사람이 없다. 근데 무슨 장사냐”고 반문했다.
 
 
  옥포는 장평보다 그나마 나은 편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거대한 배.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옥포로 향했다. 장평에서 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에 있는 그곳의 상황은 어떨까. 일요일 저녁 땅거미가 질 때쯤 찾은 대우조선소에서는 두 척의 배를 건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490만m2 부지의 조선소 내부 곳곳엔 전등이 켜져 있었다. 장평과 달리 생동감이 느껴졌다.
 
  6시쯤 되자 조선소 내부에서 알람이 울렸다. 퇴근 시각을 알리는 것 같았다. 5분여가 지나자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게 아니라 정문에서 100여m 떨어진 주차장 한 구석에 자전거를 거치하고 제각기 자가용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었다. 걸어서 퇴근하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퇴근길에 나서는 근로자 한 사람에게 조선소 내부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30대 중반인 한 근로자는 “일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돼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른다”면서도 “언론에 나온 대로 많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보다는 아주 조금 나은 상황이다. 우리(대우조선해양)는 올해까지 수주 받은 물량이 있어 그나마 (삼성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어 있는 주차장을 가리키며 “원래 주차장이 꽉 차 있었지만, 보다시피 텅 비어 있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선소로 복귀하는 근로자 세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일감은 많이 줄었심더. 일감이 준 건 확실히 느낍니더. 그래도 대우보다는 삼성이 더 어렵지예. 삼성이 수주받은 배는 있어도 건조하는 배는 아마 아직 없을 깁니더.”
 
  “우리 같은 경우는 특근수당 같은 게 줄어 많이 힘듭니더. 빨리 나아져야 할 텐데….”
 
  “그래도 마 여기(옥포)가 낫지예. 장평은 이미 죽은 동네입니더. 거지 동네, 유령 동네…. 거기는 마 딱해 죽겠심니더.”
 
 
  “조선 경기가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드리겠습니다”
 
한 고깃집에 내걸린 “조선 경기가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드리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
  대우조선해양 정문에서 차로 5분쯤 가면 식당과 유흥업소, 숙박업소 밀집지역이 나온다. 이곳을 거닐다 한 고깃집에 내걸린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조선 경기가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드리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에는 ‘소주 2000원, 맥주 3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 살펴보니 어림잡아 좌석 수가 70~80석은 돼 보였다. 그러나 손님 한 팀(4명)만 눈에 띄었다. 주인에게 물었더니 침체된 조선 경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일요일 저녁에도 손님들로 붐볐다고 했다.
 
  그는 “(가게를) 운영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재작년부터 손님이 확 줄더니 지금은 아예 없다”며 “월급 주고 임차료, 재료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냥 유지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술집에 대해 그는 “보통 매주 주말마다 성황을 이뤘지만, 지금은 주말에 문을 아예 안 열거나 격주로 여는 집이 많다. 바로 옆의 가게도 1년째 공실로 비어 있는 상태”라고도 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이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졌다”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향후 불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줄여 두 사람이 운영하지만 이윤이 안 남는다. 근데 무슨 장사를 하겠나. 미래가 캄캄해 가게를 내놓을 생각이다. 권리금은 꿈도 못 꾼다. (권리금을) 최고 많이 받아야 1억인데 현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나. 권리금 걸면 가게는 절대 안 나간다.”
 
  옥포엔 규모가 제법 큰 호텔이 두 군데 있다. 그중 한 호텔의 위를 올려다보니 거의 모든 객실에 불이 꺼져 있었다. 이 호텔 관계자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는 “작년 6월부터 투숙객이 줄어 지금은 작년에 비해 반 정도 수준”이라고 말했다. 호텔 근처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한 업주도 “주말엔 공실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조선소 근로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원룸이 모자라 모텔 방을 장기 임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 꿈만 같은 얘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과거엔 조선소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가족들이 이곳에 와 많이 묵고 갔었다”고 했다. 1~2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선소를 떠나면서 덩달아 모텔 투숙객도 줄었다는 것이다.
 
 
  적금 해약해 아르바이트생 월급 챙겨주는 편의점
 
  오후 7시 반이 조금 넘자 옥포 인근 술집들의 간판에 조금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술로 목을 축이려는 조선소 근로자 서너 명이 술집을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장평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경한 광경이었지만, 한편으론 잠시 휴식을 갖는 저들의 마음 한편에도 어떤 불안함이 서려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상상해봤다. 자신들의 처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생…. 그런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고자 술로 달래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포 인근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저녁거리로 때울 만한 것들을 사면서 이곳 편의점 동향은 어떤지 점주에게 물어봤다. 50대 중년 여성인 그의 설명에 따르면, 남편은 현재 대우조선해양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3년 전 지금의 편의점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 편의점은 얼핏 보아도 옥포 번화가 삼거리 중심에 위치해 있어 그래도 매출이 꽤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우리 편의점은 그나마 마이너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근 편의점 두어 곳을 가리키며 “저기는 적금까지 해약해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챙겨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나마 본인은 군대에 다녀온 아들이 일을 도와줘 인건비는 많이 절약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세어보니 옥포 번화가에만 편의점이 일고여덟 군데는 돼 보였다. ‘이렇게 많은 편의점 속에서 경쟁이 되냐’고 묻자 “결국 제 살 깎아 먹는 것 아니겠냐”며 웃었다.
 
  점주와 이야기를 하던 중 3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 잔뜩 화가 난 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이 여성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점주가 알아서 담배를 집어 주는 것으로 보아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점주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이 우리 가게에 성인인 것처럼 와 술을 마신 뒤 경찰에 신고해 적발됐다”고 말했다.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영업정지에 벌금까지 물게 생겼다고 한풀이를 해댔다.
 
  술집을 경영하는 이 여성은 “고등학생들이 × 먹으라고 작정하고 달려든 건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게네(고등학생들)도 같이 처벌해야 법이 공평한 거 아니냐”며 성을 냈다. 알고 보니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할 경우 술을 판 업자만 처벌을 한다고 한다. 그는 “가뜩이나 장사도 안 돼 월세도 밀린 마당에 미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은 뒤 점주는 “살기가 이렇게 어려운 깁니더”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거제에 불어닥친 풍파는 비단 조선소만 휘감은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날 조짐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거제의 조선업이 올해 들어 차츰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대우조선해양이 유럽 선주로부터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3척을 수주했고, 삼성중공업도 아시아 지역 선주로부터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주민도 일부 있었다. 조선소 협력업체 관계자 A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나는 조선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한국의 건조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배를 건조하는 기술뿐 아니라 배 안에 들어가는 장비도 우리가 최고라고 믿는다. 원래 조선업이라는 게 한 번 수주를 못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사실이다. 수주만 제때 잘 받으면 다시 무섭게 되살아나는 게 조선업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지 않겠나. 세계 시장이 다시금 우리 조선소의 문을 두드릴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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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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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용근    (2018-04-06)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5
저딴 사투리 극혐..거제사람인데 막장까지는 아니고 거품이 없어진정도라고 봄 쓸데없이 아파트를 겁나지어놨음 남아도는건 어쩔수없음
  황준일    (2018-04-05)     수정   삭제 찬성 : 1   반대 : 3
유령도시 좋아하네
눈으로 직접 봐라
예전과 똑 같다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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