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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보호무역주의가 밀려온다 | 현장르포〈1〉

지역 경기 흔들리는 역사와 산업의 항구도시 군산

조선소 폐쇄·GM파동에 고은 악재까지 삼중고(三重苦) 겪는 군산(群山)의 비애

글 : 신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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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자동차, 군산 수출 42.7% 점유
⊙ 상인들 “일반주점 40곳 중 내놓은 데가 절반”
⊙ 술·담배 끊고 외식이나 과일 소비도 줄어
⊙ 모텔·원룸 공실률 70%, 보증금 없이 월세도 낮춰
⊙ 관광객 “고은 시 걸린 쉼터, 없애야 한다”
  ‘먹튀 자본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를 철회하라’
 
  다리 난간에 걸린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다. 노조원들의 시위 천막에는 사람이 없었다. 트럭과 승용차 각 한 대씩만 오갈 뿐 사방이 적막했다. 밖을 나서는 한 남성은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경비원은 입구를 막으며 명함을 요구했다. 그는 “생산이 없으니까 (근로자들이) 출근을 안 한다”며 “희망퇴직 신청 후 3월 말이나 5월 말까지 나오는 사람들도 월차로 근무일수를 채운다”고 말했다. “군산은 일단 막 내린 것이죠. 폐쇄하고 퇴직까지 하는데 다시 뭐 거시기 할 수가 없잖아요. 2~3년 지나 어디서 인수할는지는 몰라도 금방은 어렵죠.”
 
  지난 3월 10일 폐쇄를 앞둔 한국GM 군산공장을 찾았다. 군산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군산국가산업단지로 갔다. 지나쳐온 거리마다 공장 폐쇄 철회를 촉구하는 각종 명의의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었다. 통장단·상공회의소·도민연합회·주민자치위원회·지역교육네트워크 등 지역사회 단체들이 총동원됐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 30대 여성은 자신의 남편이 얼마 전 희망퇴직을 신청한 GM 군산공장 근로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진작에나 (공장을 다른 기업에) 팔았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며 “쉐보레 브랜드 달면서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더라. (본사가) 한국한테만 브랜드값 내라고 하고, 알게 모르게 착취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네다섯 살쯤 돼 보이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혹시라도 진짜 정리해고 대상이 될까 봐 무서운 입장이어서 희망퇴직을 신청했어요. 10년 근속하면서 청춘을 바쳤는데 상심이 크죠. 아직 젊긴 해도 다른 직장 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요즘은 남편에게 아기 좀 봐 주라고 하고 있어요. 아기 보면 정신없고 바쁘니까 (상실감을) 잊으라고 많이 부탁하는 편이에요. 남은 분들이라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1만2000명 근로자 실직 위기
 
한국GM 군산공장 인근 거리에 폐쇄 철회를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사진=신승민
  지난 2월 13일 자동차 제조업체 한국GM이 오는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사측은 군산공장의 최근 3년간 가동률이 약 20%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계속 하락해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 공장 인력 감축도 단행했다. 접수 마감일인 3월 2일까지 총 2400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중 군산공장 인원이 1000여 명이다.
 
  군산공장에는 총 1934명(지난 2월 13일 기준)의 직원이 근무한다. 생산직 1500명, 사무직 200명, 비정규직 200명 정도다. 이 중 비정규직 인원은 2월 말 정리됐다. 희망퇴직 신청 인원을 제외한 잔여 정규직 700명 중 사무직 일부는 부평·창원 등 타 사업장으로 전직 배치를 신청했다. 군산상공회의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실제 남은 인원은 500명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노조 가입자들로 사측에 맞서고 있다.
 
  사측이 폐쇄 결정을 밀어붙이면 결국 나머지 인원도 정리해고될 공산이 크다. 여기에 135개 협력업체 인원만 1만명 정도다. 군산공장에 일감 의존도가 높은 협력업체 몇 곳은 이미 폐업 상태다. 심하게는 총 1만2000여 명의 근로자가 실직 위기에 놓이는 셈이다.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는 군산은 물론 전북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 7월 가동 중단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어 GM공장까지 폐쇄될 경우 군산 지역 총생산액 15.7%가 감소, 국가경제 손실 및 지역경제 파란이 예상된다. 조선·자동차가 군산 수출의 42.7%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동률이 높았던 2011년 당시 GM의 자동차 생산은 군산 수출의 52%를 차지했다. 일감이 줄어 가동률이 낮은 지금도 15.7%다. 또한 지난 1월 한국은행 전북본부가 발간한 〈전북 산업구조 현황과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북 제조업 중 자동차가 출하액(25.4%)과 종사자수(21.3%), 부가가치(24.9%) 면에서 1위였다. 지역민들이 시내 곳곳에 GM 공장 폐쇄에 대한 항의성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청 측과 합세해 상경 집회까지 벌이는 이유다.
 
 
  사측 “개혁해야” vs. 노조 “경영실패”
 
  여느 노사분규처럼 GM파동에는 시각에 따라 두 개의 원인이 있다. 회사 측의 경영 부진과 노조 측의 고임금이다. GM 홍보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사측의 입장은 이렇다. GM은 수익구조가 좋지 않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각국의 사업장을 재편해 왔다.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신사업·미래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GM이라는 큰 그룹이 생존하기 위한 결정이다. 노조가 사측의 구조개혁을 경영진의 실책 탓으로 돌리는 건 무리다. 관계자는 “GM이 유럽·인도·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많은 사업장을 철수했지만 한국은 아직 철수하지 않은 것 아니냐”면서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직원 모두가) 길바닥으로 나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회사의 어려운 재무 상황을 타개하려면 노동조합의 고통 분담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실제 지난 2월 21일 대구경북연구원에서 발간한 〈대경 CEO Briefing〉 보고서에 따르면, GM은 최근 외형 확장에서 내실 경영 체제로 사업 전략을 전환했다. 완성차 판매에서 미국·중국 등 이익이 되는 거대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절감한 비용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신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반면 이범로 GM 군산공장노조 자문위원 말에 따르면 노조 측 입장은 이렇다. 일단 사측의 일방적인 공장 폐쇄 결정부터 철회돼야 한다. 실사를 거쳐 왜 한국GM이 부실화됐는지, 군산공장에 왜 물량이 줄었는지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그 후 군산공장 정상화를 위해 노동조합이 일정 부분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면 임할 준비가 돼 있다. 이와 관련, 이 위원은 “‘저생산 고임금’ 논리는 수뇌부의 경영 실패를 노동자에게 책임 전가하기 위한 프레임이다. 물량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생산을 못했던 것 아닌가”라며 “유럽이든 러시아든 글로벌 GM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서 철수를 한 것 아닌가. 수출 시장이 없으니 생산 물량이 줄어들고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3월 셋째 주 한국GM의 제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한국GM 실사에 돌입, 부실 원인을 파악하고 지원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현재 GM은 정부에 부평과 창원공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 외국인 투자지역이 되면 5년간 법인세가 면제되고 이후 2년간은 절반만 내면 된다. 국내에 신차 2종을 배치하고 10년간 28억 달러(약 3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전제로 GM이 정부에 감세 혜택을 요청한 것이다.
 
 
  “GM 작업복 입은 사람 찾기 힘들어”
 
과거 GM 근로자들이 자주 찾았던 군산 나운동 골목. 거리에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군산 시민들은 4~5년 전부터 지역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그즈음부터 한국GM 군산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GM은 1997년 세워진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을 2002년 인수해 지금까지 ‘쉐보레’ 브랜드의 준중형차 ‘크루즈’, 다목적차량 ‘올란도’를 생산해 왔다. 앞서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생산량이 정점을 찍은 군산공장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1년 26만9000대, 2012년 21만1000대, 2013년 14만5000대를 기록하다가 2014년 8만2000대, 2015년 7만대, 2016년 3만4000대 수준으로 떨어진다. 군산공장 생산모델 노후화 및 2013년 말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시장 철수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대구경북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GM의 누적 적자는 2016년 말 기준 1조9456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후 실제 지역경기는 어떨까. 공장 외곽에서 한 50대 남성을 만났다. 그는 5년 반 동안 군산 나운동 사거리에서 주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GM 이전에 현대(조선소)가 문 닫을 때부터 군산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며 “GM은 재작년부터 (폐쇄) 소문이 많이 돌았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갑자기 딱 닫으니까 군산 시민 전체가 놀랐다”고 말했다. “제가 처음 가게 할 때만 해도 나운동에 삼삼오오 GM 작업복을 입고 (직원들이) 진짜 많이 다녔어요. 위세가 당당했어요. 걔네들이 밤 10시쯤 교대근무 끝나고 나운동으로 술 먹으러 올라오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도 없어요, 한 사람도.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 지금 나운동 일반주점이 한 40곳 정도 있는데 엉망진창이에요. 가게 내놓은 데가 반절이 넘고. 그쪽 가 보면 아마 나보다 더 성토할 겁니다.”
 
  그를 따라 나운동 사거리로 이동했다. 큰길의 3·4층 상가에는 임대 벽보가 걸려 있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모텔·주점·노래방이 즐비했다. 주말임에도 거리는 한산했다. 한가운데 위치한 편의점으로 들어가 주변 사정을 물었다. 16년 동안 편의점을 운영했다는 주인은 “5년 전에는 GM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양푼갈비도 먹고 호프도 한잔했다”며 “지금은 직원들 얘기 들어 보면 한숨만 팍팍 쉬더라”고 말했다. “아침까지도 회식하면서 거하게 즐기던데 지금은 (GM) 옷 자체를 못 봐요. 술·담배도 끊는 상황이에요. 외식할 것도 집에서 간단히 먹고요. 애들 학원도 못 보내는데 어떻게 그걸 하겠어요. 요즘에는 주인들이 가게를 내놔도 안 나가니까 월세를 50만원씩 내립니다. 노는 것보다 차라리 ‘다운’시켜 놓는 게 낫지요. 하청업체 일하시는 분들도 새벽에 인력사무소 나갔다가 불만 쬐다 들어가는 입장이에요.”
 
  편의점 주인은 GM 노조의 기득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운데도 임금 같은 부분을 양보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우선 회사가 살아야 나도 살지 않는가. 회사가 어려우면 타협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왜 자기네 입장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물론 물가도 올라가니까 (임금 줄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데모만 하면 되겠는가. 많은 (시민) 분들이 회사 욕하는 것보다 노조 비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모텔·원룸 비고 저녁이면 인적 끊겨
 
주말 정오 군산 오식도동 원룸촌의 모습. 현대조선소 폐쇄로 거주하던 근로자들이 빠져나가 인적이 드물다.
  사거리를 지나 인근 주거지로 들어섰다. 한 아파트 주민은 “아직은 사람들이 (지역경제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입장”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청과물 가게 주인은 “GM 터지기 전 3~4개월부터 조금씩 매출이 줄어들었다. 자식들이 부모님 용돈을 넉넉히 못 주니까 어머니들도 아껴 쓰는 편”이라며 “특히 과일 소비가 많이 줄었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야채는 나가는 편인데 과일이 안 팔린다”고 말했다.
 
  거리를 살피고 있는데 한 정육점 주인이 나와 산북동·소룡동 취재를 권했다. GM 근로자들이 나운동보다 더 많이 살고 소비하는 곳이라고 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더 늦기 전에 택시를 잡았다. 소룡동으로 차를 몰던 택시기사는 “GM 근로자들이 이쪽 근방에서 다 살았다.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며 “나중에 오식도동으로 한번 가 보라. 현대중공업 빠지고 나서 어둠의 도시처럼 해 떨어지면 사람이 안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는 그의 말을 기억해 다음 날 직접 오식도동을 찾았다.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도로변에 식당가가 조성돼 있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소룡동 인근 주점 주인은 “예전에는 군산 근로자들이 술 먹으려고 나운동·소룡동·수송동을 찾았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며 “지금은 현대가 빠지니까 원룸이 텅텅 비고, GM이 터지니까 사람이 안 돌아다닐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한 중년 행인 또한 “거리가 썰렁하다. 식당들이 임대 간판 붙여서 다 나가려고 한다”며 “요즘엔 하청업체 후배들 보면 안타깝다. 용접하던 친구들도 일이 없어 매일 당구장·오락실이나 다닌다”고 탄식했다.
 
주말 저녁 7시경 군산 소룡동 원룸촌의 모습. 건물 기둥에 임대 벽보가 붙어 있다.
  어둠이 내리자 인적이 끊긴 소룡동 원룸촌은 스산했다. 큼지막한 임대 문구와 소리 없는 네온사인만 선명했다. 인근 치킨집 사장은 “저녁 9시가 되면 차도 사람도 안 다니고 하다못해 배달 오토바이도 안 다닌다”며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집도 자주 문을 닫고 이젠 배달도 안 되더라”고 말했다. “매출 떨어지는 거 보면 알죠. 현대 빠지고 GM이 이렇게 되니까 1년 사이에 완전히 (상권이) 죽은 것 같아요. 호텔에서도 치킨 배달을 시키잖아요. 한참 잘될 때는 외지에서 일하러 오신 분들이 ‘달방’ 얻으면서 꾸준히 주문했죠. 하룻저녁에 10~15세트씩 들어간 적도 있었고. 근데 그게 아예 사라졌어요.”
 
  숙소를 잡기 위해 골목 안쪽의 모텔로 들어섰다. 여주인은 “현대 나간 뒤부터는 그냥 빚내서 장사하고 있다”며 “1년 전에 비해서 한 70% 정도 (방이) 비었다”고 했다. 함께 있던 그의 남편도 거들었다. “맞은편 원룸들도 보증금 없이 그냥 한 달 치(월세)만 주면 ‘달방’처럼 내줘요. 건축비 투자한 게 있으니까 비워 둘 수는 없지요. 지금 위로는 충청권 세력이 더 확장됐어요. 아래 전남 같은 경우는 여수·목포로 어떻게든 생존을 합니다. 말하자면 전북은 ‘낀 세대’예요. 국회의원들이 자리에만 안주하려고 하지, 이 무궁무진한 곳을 발전시키려고 안 해요.”
 
 
  문 닫은 조선소, 낡은 작업화들
 
작년 7월 폐쇄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정문과 담장 아래 버려진 작업화들.
  군산은 GM파동 이전에 현대가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작년 7월 1일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를 폐쇄했다. 기자는 소룡동에서 1박을 한 뒤 비응도동에 위치한 조선소를 찾았다. 버스를 타고 정문 앞에서 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두 대의 유조탱크만 도로를 질주했다. ‘현대중공업’ 문구가 적힌 표지판 기둥 뒤로 전봇대가 쓰러져 있었다. 정문은 철판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담장 아래에는 가시투성이 잡초가 억세게 자라나 길을 막았다. 박카스 상자부터 전선·약봉지·담뱃갑·캔커피에 낡은 운동화·작업화까지 근로자들 것으로 보이는 잡동사니가 남아 있었다.
 
  덤불을 헤치고 북문으로 갔다. 철판 고리 부분에 쇠사슬로 묶인 안전모가 매달려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아직도 경영방침과 안전수칙이 붙어 있었다. 지붕과 배기관 위로 비둘기들이 모여들었다. ‘HYUNDAI’ 로고가 찍힌 주황색 크레인이 안갯속에 멈춰 있었다. 옆으로는 풍력발전기만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에 방치된 철궤(鐵櫃)는 녹이 슬어 있었다.
 
  군산조선소에서 7년간 근무했다는 경비원은 “작년 7월에 폐쇄하고부터 더 이상 배를 건조하지 않는다. 직원들도 다 나가서 상주하는 인원은 경비원들뿐”이라며 “5000여 근로자들이 직장을 정리했다. 아직 이렇다 할 (재개) 소식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GM 파동에 앞서 군산조선소 폐쇄는 지역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줬다. 지난 3월 7일 문동신 군산시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소 가동 중단 이후 군산시 고용률은 52.5%로 전국 77개 시 가운데 76위로 떨어졌다. 체불임금도 150억원으로 2013년 대비 122% 증가했다”며 “실제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보다 몇 배 더 어렵고 암울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 조선소와 GM공장 사이에 위치한 오식도동이다. 산업단지 근로자들이 밀집해 생활하던 곳이다. 아파트 주택단지와 상점가, 원룸촌이 조성돼 있다. 기자가 정오에 찾아가 보니 길거리가 한적했다. 원룸 빌딩은 물론 마트와 전봇대에도 임대 벽보가 붙어 있었다. 오식도동에서 7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강모씨는 “(원룸) 공실률이 60~70% 된다. 관리가 안 되고 위치도 안 좋은 곳은 십중팔구 비어 있다”며 “이쪽은 GM보다 현대중공업 (폐쇄) 영향이 더 크다. 수천 명이 살다가 다 빠져나가 버렸다”고 말했다. “요즘 매물을 내놔도 누가 사려는 사람이 있나요. 다들 헐값으로만 사려고 하지. 지금은 (원룸) 보증금 안 받고 월세를 20만원으로 내려도 찾는 사람이 없어요. 새만금이라도 빨리 (활성화) 돼서 조그만 중소기업들이라도 많이 들어오면 훨씬 낫겠는데. GM 타격은 시내 쪽이 클 겁니다. 직업이 안정적이니까 근로자들이 소비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수 자체가 준다고 봐야죠.”
 
  오식도동에서 10년간 마트를 운영한 정모씨는 “조선소 근로자 3000명이 이곳에 살았다”며 “조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현대중공업도 철수한 뒤로는 계속 침체기였다”고 말했다. “조선소가 다시 가동된다는 소문도 있던데 일단 확실히 들어와야 경기가 살죠. 다른 기업이 들어와야 표도 안 나고. 이쪽 바탕을 깐 게 중공업이거든. 우선 큰 회사가 하나 있어야지. 올 12월부터 주문생산한다는 말도 있고 내년에 온다는 소문도 있던데, 실제 와야 오는 것이지. 진짜 올 확률은 반반이야.”
 
  오식도동을 떠나 군산내항으로 가던 중 한 60대 여성을 만났다. 그는 “오식도에서는 방을 얻은 사람이 나가려고 해도 주인이 (사정이 어려워서) 방을 못 빼 주는 경우도 있다더라”며 “아파트도 한 층에 한 가구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거의 빈 도시가 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사 올 사람도 도로 가겠다”며 취재를 나온 기자를 질책하는 택시기사도 있었다. 가뜩이나 안 좋은 군산 경제가 언론사 보도로 인해 더 피폐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민 모두가 절박한 마음이었다.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고은 파문으로 타격
 
군산의 관광명소인 근대문화거리 일부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산업단지 인근 지역이 아닌 시내 경기는 어떨까. 시청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위치한 근대역사문화거리는 군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군산내항을 배경으로 구시청 사거리, 명산 사거리에 일제 강점기 유적들이 자리해 있다. 과거 군산항은 일본이 남도에서 약탈한 곡식과 수산물을 본토로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당시 지어진 관사·청사·은행·적산가옥들이 남아 있다. 일반주택·미술관·박물관으로 개조한 곳도 있다. 일본식 건축구조를 살린 카페·식당·게스트하우스가 장사를 한다. 드라마 〈야인시대〉, 영화 〈타짜〉 〈장군의 아들〉이 이곳 건물들을 무대로 했다.
 
  기자가 직접 거리를 걸어 보니 가족·친구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일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비수기라지만 주말 오후 시간대를 감안한다면 의외였다. 대로변에는 폐업한 의원·가구점이 임대 벽보를 걸어 놓고 있었다. 한 문화해설사는 “GM이 문을 닫으니까 어려움이 많다”며 “8시만 돼도 이 도시 전체가 (인적이 끊겨) 깜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숙박업소 주인 또한 “일요일 기준 22개 방 중에 7개만 차고 나머지는 비어 있다”며 “현대중공업이 철수하기 전인 전년 동월 기준 매출이 반 토막 났다. 경기가 너무 어려워 방송국에 제보까지 하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거리에는 군산 출신 시인 고은의 시편을 새겨 놓은 상점들이 많았다. 시인 고은은 1933년 전북 군산시 미룡동 용둔마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 군산 동국사로 출가했다. 실제 한 커피숍 간판 위에는 고은의 초상과 시편이 입체적으로 조형돼 있었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추문 의혹이 불거진 시인이었기에 매출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싶었다. 해당 커피숍 주인은 “최근 시청으로 민원이 들어와서 어떤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본다”며 “우리가 (작업) 한 게 아니라 시에서 한 것이다. 아직까지 손님들의 직접적인 항의는 없지만, 시청 민원실에 (철거를)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쉼터·아파트 등 근대문화거리에는 고은 시인의 작품을 전시·소개하는 공간이 많다.
  문화거리 안쪽으로 접어들수록 고은의 작품을 활용한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인 ‘아트월’ 작업이었다. 실제 어느 3층 상가 외벽에는 고은의 〈다릿집〉 시구가 원고지 배경으로 부착돼 있었다. 인근 아파트 동에는 고은의 〈군산은 항구다〉 시구가 선박 그림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고층 상가 외벽에는 〈만순이〉 〈그꽃〉 같은 고은의 대표작들이 선명한 글씨로 형상화돼 있었다.
 
  ‘시간여행마을’ 중간에는 ‘고은 시인의 시간’이라는 쉼터가 있었다. 고은의 생애·대표작·작품세계를 사각형 공간에 정리·소개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하자마자 4명의 남녀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앞질러 온 한 남성은 “이거 고은 아니야, 고은? 그거잖아, 성추행”이라며 혀를 찼다. 서울에서 온 이들은 “(고은 기념물을 보니) 기분이 확 나쁘다”며 “미관상 안 좋다. 저건 없애야 된다”고 말했다. 한 문화해설사 말에 따르면, 최근 주민들은 은파호수공원에 세워진 고은의 시비를 철거하라고 군산시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또 다른 문화해설사는 “며칠 전에 동국사를 소개하다 고은 시인 얘기가 나왔는데, 이를 듣던 주민들이 ‘왜 갑자기 고은 얘기를 하느냐’며 항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군산은 성추문 의혹에 휩싸인 고은 시인과 관련한 문화사업을 중단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 군산시는 고은 시인의 모친 가옥과 생가 터를 매입해 문학관과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고은 생가 복원사업’을 중단했다. 오페라·합창공연·시낭송대회·창작음악제 등 ‘고은 문화제’ 행사들 또한 보류됐다.
 
 
  군산시 측 “공장 정상 가동만이 원칙”
 
군산 내항 전경. 바닷물이 빠진 갯바닥에 갈매기들이 모여 있다.
  그렇다면 조선소 폐쇄, GM파동, 고은 파문 등 삼중고에 눌린 군산 경기 회복을 위해 관할 당국과 지역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일단 GM 사태를 맞은 군산시에는 긴급자금이 투입됐다. 지난 3월 9일 전라북도는 군산 지역의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84억원의 예산을 군산시에 지원했다. 정부의 특별교부세(65억원)와 전북도의 특별조정교부금(19억원)을 합한 액수다. 앞서 2월 21일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직접 만나 특별교부세 긴급 지원을 건의한 바 있다. 당시 송 지사는 김 장관과의 면담에서 “군산지역 산업 전반이 위기에 봉착해 지역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 5일에는 GM 군산공장·협력업체·지역소상공인을 위한 특별자금 1600억원 투입이 결정됐다.
 
  온승조 군산상공회의소 기업지원팀장은 “GM 군산공장은 1996년 건설돼 사람으로 치면 상당히 젊은 연령”이라며 “공장 자체도 젊고 당시 새로 직원을 뽑았기 때문에 생산성도 좋은 요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어 온 팀장은 GM 군산공장의 정상 가동 촉구와 더불어 군산에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GM 위기 같은 경우 5년 전부터 들려왔고, 현대중공업도 2년 새 폐쇄하니까 작년부터 지금까지 지역 상권에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인력 감축으로 실직자가 늘고 원룸촌마다 공실률도 높고요. 이제는 군산에 다른 먹거리 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판단해 먹거리 산업을 주되, 우선적으로는 새만금에 투자를 해 줘야 합니다. 대규모 복합단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죠. 관광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고용 효과도 있고 지역 개발도 될 수 있는데, 이는 예산이 수반돼야 할 문제입니다. 기초 인프라 조성뿐만 아니라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국내 ‘외투’(외국인 투자) 기업을 찾아서 연결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정부가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계륵(鷄肋) 탈피는 한국GM에 달려 있다”
 
  군산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시의 입장은 군산공장 정상 가동이 원칙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3월 9일 광화문에 가서 시위도 한 것”이라며 “만약 정부가 GM에 지원하려면 군산공장 정상화 방안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군산시를 ‘고용위기·산업위기 특별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합니다. 시에서도 각 부서마다 (실직자들) 교육비 및 수도요금 감면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가족같이 지낸 기업인데 한순간에 폐쇄 결정 나니까 우리 시민들 피눈물 납니다. 저희는 GM이 어려울 때마다 시민·도민들 상대로 ‘사 주기 운동’도 벌이고 대학교 근처에 가서 차종 전시·홍보도 했어요. 지금도 1인 릴레이 시위, 결의대회, 성명서 발표도 하고 있습니다. (공장) 매각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현재로서는 오직 군산공장 정상화만이 원칙입니다.”
 
  전문가들은 군산 경제에 직격탄이 된 GM 사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지난 2월 28일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한국GM과 한국자동차산업에 울리는 비상벨〉이라는 칼럼에서 “한국이 지난 30년, 짧게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해 온 대로 하면 GM은 반드시 철수한다”며 “첨단기술은 밀리고, 생산은 고비용에 경직적이고, 부품과 R&D(연구·개발)마저 그 뒤를 따르면 답은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칼럼의 일부 내용을 옮긴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도, 한국GM 위기(대규모 적자 누적)도, GM의 글로벌 사업 철수(구조조정)도 기본적으로 생산·판매하는 차(브랜드)가 안 팔려서 생긴 문제다. 차가 안 팔리는 것은 제품력(기술력·차종·디자인), 판매력(가격·브랜드·판매망) 등의 총화이다. 동일한 제품력을 가지고도 판매·마케팅력에 따라 실적 차이가 많이 난다. … 한국GM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GM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시한부 삶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륵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계륵을 탈피하는 것은 한국GM 당사자들에게 달려 있다. 몇 년 후에 군산공장 사태가 창원과 부평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혁신을 하면 살길이 왜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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