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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티 비리

‘로비황제’ 이영복은 누구인가

나이트클럽 웨이터에서 초대형 게이트의 주인공까지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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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도 태생이지만, 6·25 때 부산으로 피란 가 정착
⊙ 가난해 정규 교육 못 받아 … 다방 주방 보조·나이트클럽 웨이터 해
⊙ 1970년대 나이트클럽 인수 … 부산 명소 국제호텔 나이트클럽도 운영
⊙ “이영복은 돈 대고, 부인이 인맥 관리 맡아”
⊙ “이영복, 술자리 분위기 잘 맞추고 돈도 기대 금액의 10배 줘”
⊙ 이영복, 접대용 유흥주점 다수 운영 … 3일에 한 번씩 장부 파기
사진=조선일보
  2016년 11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 엘시티(LCT, Luxury city 또는 Leader's city) 사업 비리 의혹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 사업 비리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조사하라”면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을 지시했다. 자신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 즉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심이 들끓는 와중에 나온 뜻밖의 발언이었다.
 
  부산 엘시티 사업이란, 2008년부터 시작된 해운대 관광리조트 사업이다. 엘시티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들어서는 101층짜리 랜드마크 타워 1개 동과 85층짜리 주거용 아파트 2개 동 등으로 구성된다.
 
  시행사인 엘시티AMC, 주관사인 청안건설의 실소유주 이영복은 현재 사업 인허가, 금융권 대출,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횡령한 회삿돈 705억원 중 상당액을 정·관계 로비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현기환도 이영복으로부터 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엘시티 비리 의혹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이영복에 대해 공개된 건 별로 많지 않다. 그가 1990년대 중반 부산광역시 ‘다대·만덕 지구’ 개발 당시 용지 전환 과정에서 정·관계에 대규모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의리를 지켰다는 얘기 정도다.
 
 
  “부산 폭력조직 비호 받으며 나이트클럽 운영”
 
  최근 《월간조선》은 이영복의 ‘과거’를 아는 인사들을 만났다. 이들에 따르면 이영복은 부산 출신이 아니다. 대기업 건설업체 임원이었던 인사는 “이영복의 고향은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이라며 “이영복이 소유한 청안건설이란 회사의 이름이 고향 지명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부산시 해운대구에서 건설업을 했던 인사는 “이영복의 고향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현 세종시 조치원읍)”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원군과 충남 연기군은 소속된 광역단체는 다르지만, 금강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사실상 같은 고장인 셈이다. 현재 청주시 청원구, 세종시 조치원읍에서는 ‘청안’이란 이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영복은 1950년 5월에 태어났다. 이영복의 가족은 6·25 때 부산으로 피란 가 뿌리를 내렸지만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이영복은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영복은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동 범곡교차로(구 교통부)에 있던 다방 주방에서 보조로 일했다.
 
  그 뒤엔 광복동 소재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생활을 했다. 이영복은 눈치가 빠르고, 언변이 좋아 손님 비위를 잘 맞췄다. 기억력이 비상해 몇 년 전에 한 번 스쳐간 사람들의 이름도 잊지 않는 등 사람을 사귀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춰 다른 사람들보다 수입이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그는 수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자신이 일하던 나이트클럽을 인수했다. 유흥가에서 잔뼈가 굵은 이영복이지만 술 장사를 하는 데는 배경이 필요했다. 이때 그의 뒤를 봐 준 건 부산의 20세기파였다. 이와 관련, 당시 부산 지역 폭력 조직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영복이 나이트클럽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칠성파와 함께 부산의 양대 조직 중 한 곳인 20세기파가 뒷배를 봐줬기 때문이에요. 당시 광복동은 20세기파가 장악하고 있었고, 20세기파 보스는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연예인을 데리고 있었어요. 그는 이영복의 나이트클럽에 전속 연예인을 대거 출연시키면서 뒤를 봐줬죠. 트로트 가수 S씨 등 여러 명이 이영복의 업소에 나갔었죠.”
 
 
  ‘채동욱 내연녀’ 임씨, 이영복 본거지 ‘오션타워’ 20층에서 주점 운영
 
  이후 이영복은 부산시 동구 범일동 소재 국제호텔 나이트클럽도 인수하고, 세 살 연상인 박모씨와 결혼했다. 1947년생인 박씨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복의 지인에 따르면 박씨는 대학 동문인 정·관계 고위 인사의 부인들과 계를 조직해 교류했고 이영복은 돈을 대는 역할에 그쳤다고 한다.
 
  이영복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그의 언니 최순득과 같이 한 ‘청담동 황제계’도 부인이 인맥 관리용으로 들어 놓은 계 중 하나라는 게 지인의 얘기다.
 
  이영복 부부는 1980년대 중반 부동산 시행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당시 개발 기대가 한창이던 충남에서 대단위 아파트를 분양해 성공을 거뒀다. 1989년엔 동방주택이란 회사를 만들고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5643m²(1710평) 부지에 지하 5층·지상 20층 규모의 건물 ‘오션타워’를 세워 오피스텔을 분양했다. 1993년에 준공된 오션타워의 건물 면적은 총 6만9000m²(2만1600평)다.
 
  당시 이 일대엔 오션타워 규모의 건물이 없어 일종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영복의 회사 청안건설과 그 관계사들이 오션타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20층엔 이영복이 정·관계 로비를 위한 접대용으로 운영했다고 알려진 유흥주점들이 있다. 해운대구청에 따르면 오션타워 지하 1층엔 ‘동○○’ ‘인○○’ ‘오션○○’ 등 총 세 곳의 유흥주점이 있다.
 
  지상 20층엔 1999년 8월 신고 후 계속 영업 중인 206m²(62평) 규모의 ‘시○○’란 유흥주점과 함께 오션스카이라운지란 식당이 있다. 전 검찰총장 채동욱의 내연녀로 알려진 임○○(가명 윤초희)씨도 이곳에서 술집을 운영한 바 있다.
 
 
  이영복, 술 못 마시지만 접대 기술 탁월
 
이영복 지인에 따르면 이영복은 다방 주방 보조,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하다가 부산시 중구 광복동의 나이트클럽을 인수해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조선일보
  과거 오션타워 지하 1층 룸살롱에서 이영복으로부터 수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부산 출신 인사에 따르면 이영복은 부산 지역 정·관계 인사들을 오션타워 룸살롱에 불러다 향응을 제공했다. 술을 마시진 못했지만 술자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말을 계속 이어 갔고 상대방 칭찬을 잘해 기분을 좋게 했다. 접대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에 방 4~5개를 잡고 동시에 손님들을 불렀다고 한다. 이영복은 각 방을 돌아다니며 접대를 하면서도 이를 눈치 채지 않게 했다. 각 방의 퇴실 시각까지 조율해 손님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했다.
 
  금품도 후하게 줬다. 통상 기대하는 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10배를 건넸다고 한다. 50만원을 주겠거니 했는데, 500만원을 주는 식이란 얘기다. 이런 까닭에 부산은 물론 서울에서 힘깨나 쓴다는 이들이 부산에 내려갈 때는 안면이 없더라도 이영복에게 전화해 접대를 요구했다.
 
  이영복은 거북한 기색 없이 극진하게 이들을 대했다. 만날 여유가 없을 때는 자신의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 놓으라고 하고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3일에 한 번씩 룸살롱에 들러 장부를 파기했다고 한다. 이 밖에 이영복은 서울 강남 지역에 3~4개의 유흥주점을 관리·운영하면서 정·관계 인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복 돈은 받아도 뒤탈이 없다”
 
이영복(안경 쓴 남성)은 부산 다대ㆍ만덕 지구 특혜 의혹과 관련해 1998년 10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산광역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사진=조선일보
  1992년 이영복은 ‘다대·만덕 지구’ 사업을 추진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부산 사하구 다대동과 북구 만덕동 일대 임야 42만2000m²를 집중 매수했다. 이 지역은 부산시가 1993년 6월 21일 해안가시권 보호 등을 이유로 택지 개발을 못하게 한 곳인데도 이영복은 아파트 4000세대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 해당 부지는 뚜렷한 이유 없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일반주거용지로 용도 변경됐다.
 
  1994년 4월 부산시는 두 지역을 용도 변경 지역으로 확정하고, 1995년 5월 고시했다. 고도제한 규정도 완화해 줬다. 용도 변경으로 인한 시세차익은 약 1000억원이다.
 
  이영복은 부산시에 아파트 건축허가 신청을 낸 다음 1996년 2월 16일 주택공제조합과 공동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주택공제조합은 주택건설 사업에는 참여할 수 없도록 한 정관을 바꾸고 공식 감정을 거치지 않은 이영복의 땅을 사들여 850억원의 손실을 봤지만 이영복은 10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와 관련, 당시 부산에서는 고위 관료와 정치권 인사들이 이씨에게서 금품을 받고 용도변경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퍼졌다. 1997년 11월 추미애 새정치국민회의 의원(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은 국회 예결위원회에서 동방주택 자금 일부가 이인제의 국민신당에 유입됐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1999년 11월 뒤늦게 검찰이 수배령을 내리자 이영복은 도피했다가 2년 뒤 자수했다. 검찰은 용처가 불분명한 68억원에 대해 추궁했지만 이영복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지역 정·관계에서는 “이영복 돈은 받아도 뒤탈이 없다” “재기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이영복은 배임과 횡령 등 9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2002년 10월 있었던 항소심에서 상당수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부산 몰운대 롯데캐슬 시행으로 재기
 
  이영복은 도피 중이던 2001년 11월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원풍건업’이란 회사를 만들었다. 원풍건업은 설립 5일 후 ‘신부국건업’으로 개명했다. 이영복은 ‘신부국건업’을 통해 재기했다.
 
  신부국건업은 2003년 2월 대한토지신탁으로부터 이영복이 아파트 건설 사업을 추진했던 다대·만덕 지구 부지를 827억원에 사들였다. 40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신부국건업은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지정했다. 롯데건설은 신부국건업이 금융권 대출을 받는 데 지급보증을 하는 걸 조건으로 사업약정을 체결했다. 신부국건업은 이를 바탕으로 하나은행, 한미은행, 농협중앙회로부터 각각 333억원, 321억원, 321억원 등 총 975억원의 사업비를 조달했다.
 
  이후 신부국건업은 롯데건설과 함께 다대·만덕 지구에 4014세대(상가 52세대 포함) 규모의 몰운대 롯데캐슬 아파트를 지었다. 해당 아파트는 2005~2008년 총 7000억원에 분양을 완료했다. 신부국건업이 챙긴 분양 이익은 700억원이었다.
 
  같은 시기 신부국건업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444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총 991억원에 분양해 123억원을 벌었다.
 
  이 밖에 이영복은 2003년 4월 설립한 청안건설과 그 관계사들(그레코스, 제이피홀딩스, 꾸메도시 등)을 통해 사업장을 전국으로 넓혔다. 그 과정에서 청안건설을 주축으로 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2007년 11월 부산도시개발공사의 해운대 관광리조트 사업권을 따냈다. 그후 부산 건설업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듯했지만 20여 년 만에 또다시 초대형 게이트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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