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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발굴

친노(親盧)의 성지(聖地)로 변하는 봉하마을 둘러보니…

권양숙, 부지 660평·연면적 153평 저택 신축, 돈 없다던 노건평은 자택 대규모 증·개축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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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양숙, 2013년 사저 기부 밝혔지만… 아직 소유권 안 넘겨
⊙ ‘노무현 아들’과 ‘노무현 스폰서’ 최측근 사이의 땅 거래
⊙ 노건평,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 회삿돈 횡령해 최근 유죄 확정받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전경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이곳엔 그의 생가와 사저, 묘역이 있다. ‘친노’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국립현충원보다 봉하마을의 ‘노무현 묘역’을 더 자주 찾는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소위 ‘노빠’들도 부모 산소를 성묘하듯 한다.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봉하마을은 성지(聖地) 같은 곳이란 얘기다.
 
  노무현재단은 4월 25일 인터넷으로 노 전 대통령 사저 관람 신청을 받았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5월 참가자 모집은 신청자가 많아 곧바로 마감됐다. 사저 공개 전 봉하마을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4월 28일 봉하마을에 갔다.
 
  5년 전 여름 닷새 동안 김해시 진영읍에 머물면서 봉하마을을 오간 적이 있다. 당시엔 마을 초입부터 노 전 대통령 사저 직전까지 이어진 길 양옆으로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들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장사했다. ‘노무현’을 그리워하며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5년 전과 달리 봉하마을의 노점들은 사라졌다. 방문객도 거의 없었다. 평일이란 점을 감안해도 그랬다. 마을 입구에서 방문객과 출입 차량 수를 집계하던 사람도 없었다.
 
  마을 주차장 앞 수퍼에 들어갔다. 가게 안엔 손님 하나 없이 동네 주민 3명이 앉아 과자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방문객 현황을 묻자 “주말에는 좀 오는데, 평일엔 적다”면서도 “사저를 공개하면 예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권양숙, 기존 사저에서 직선거리로 50m 떨어진 곳으로 이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다. 노무현재단은 5월 한 달간 주말마다 노 전 대통령 사저를 공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로 향했다.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퇴임에 맞춰 완공된 사저의 부지 면적은 4262m²(1291평), 지하 1층·지상 1층으로 지은 건물 넓이는 총 803m²(243평)이다. 봉하마을 주민에 따르면 현재 이곳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사저를 개방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이사했다.
 
  권 여사의 집은 마을 입구에서 85m 직진하다 마을 주차장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70m 간 뒤 다시 우회전해서 70m를 더 가야 나온다. 권씨 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의경 2명이 서 있었다. 그 너머로 보니 대문 앞에도 3명이 지키고 있었다. 멀리서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권 여사의 집은 ‘철근콘크리트조’ 3층 주택이다. 지붕은 평평한 슬래브 형태로 처리한 뒤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외벽엔 붉은색 벽돌을 썼고, 건물 모서리와 연결통로는 검은색으로 칠했다. 마당 가장자리엔 수령이 얼마 되지 않은 나무들을, 안쪽엔 3층 집보다 더 높은 침엽수를 심었다. 집 경계엔 돌담을 쌓고 철제 울타리를 설치해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권 여사의 집은 본산리 30-1번지(568m²)와 30-13(1612m²)번지 등 두 개 필지에 걸쳐 있다. 부지 면적은 총 2180m²(660평)이다. 연결 통로가 있는 건물 두 동의 면적은 ▲1층 200.48m² ▲2층 249.79m² ▲3층 55.75m² 등 총 506.02m²(153평)이다.
 
 
  신축 비용 6억1200만~7억6500만원 추정
 
권양숙 여사가 현재 거주하는 ‘철근콘크리트조’ 3층 주택은 부지 면적 660평, 건물 면적 153평에 이르는 ‘저택’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권 여사는 주택 건축비 전액을 자비로 충당했다. 단독주택의 경우 내부 마감재에 따라 단위면적당 건축비가 천차만별이지만, ‘철근콘크리조’의 경우 평당 400만~500만원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권 여사가 집을 짓는 데 쓴 돈은 6억1200만~7억6500만원인 셈이다.
 
  권양숙 여사는 무슨 돈으로 집을 지은 걸까. 2008년 4월 1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07년 12월 말 기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산은 총 9억7224만원이다. 이 중 사저 부지와 건물, 자동차, 아들 건호(43)씨와 손녀의 예금을 빼면 노 전 대통령 부부의 현금성 자산은 1억8720만원이다. 사저를 지을 때 각각 부산은행과 현대캐피탈로부터 빌린 4억원, 6700만원을 고려하면 이들 부부의 재산은 -2억7980만원이다.
 
  대통령 퇴임 다음 달인 2008년 3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받은 연금과 권 여사가 전직 대통령 배우자로서 받은 유족 연금은 총 10억9000만원이다. 이 금액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4조와 5조에 명시된 지급 기준과 2008~2015년 대통령 연봉 총액을 종합해 추산한 것이다.
 
  권 여사가 지금 사는 집을 자비로 지으려면 그동안 받은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놨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 사저를 지을 때 빌린 4억6700만원 때문이다. 대출 조건이 이율 3%·기간 120개월이라고 가정할 경우 한 달에 원리금으로 451만원씩 내야 한다. 2009년 6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권 여사가 받은 유족연금은 월평균 1100만원이다. 매달 소득의 절반 가까이 되는 금액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택 신축비 전액을 낼 만한 여력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재산을 처분해 돈을 마련할 수 있지만 권 여사는 기존 사저를 매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2013년 11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에 사저를 기부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권 여사는 다른 집으로 이사했지만, 아직 기존 사저의 소유권을 재단에 넘기지 않고 있다.
 
 
  검찰, “박연차, 정승영·정상문 통해 권양숙에 100만 달러 제공”
 
2013년 7월 당시의 노건평씨 집이다. 당시 노씨 집은 봉하마을 진입로보다 낮은 지대에 있었다.
사진=네이버지도 캡처
  은행 대출과 같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방법도 권 여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기존 사저 등기부등본엔 금융기관의 근저당권 설정 등 제삼자의 권리 등기 내역이 없다. 은행 돈을 끌어다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러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권 여사 집 신축비는 아들 건호씨와 며느리 배정민(40)씨가 일부 분담했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집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부부가 건물 지분을 1/3씩 나눠 가진 상태다.
 
  권 여사 집이 있는 두 개 필지 중 본산리 30-1번지의 소유권은 며느리 배정민씨에게 있다. 이 땅은 원래 창원에 거주하는 구모씨가 2008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1억9500만원에 판 곳이다. 건평씨는 1년 10개월이 지난 2010년 2월 1일 노 전 대통령의 사돈 배병렬(건호씨 장인)씨에게 2억원을 받고 팔았다. 배씨는 2012년 12월 6일 자신의 딸이자 건호씨 부인이기도 한 정민씨에게 해당 토지를 증여했다.
 
  본산리 30-13번지의 경우 애초에 건호씨가 7년 전 매입해 지난해 2월 모친과 부인에게 일부 지분을 증여했다. 건호씨는 2009년 7월 21일 정승영(66)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했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금고지기’이자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이다.
 
  박 회장은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총선에 출마했을 당시 건평씨 명의의 임야를 사들였다. 2002년 대선 때는 건평씨 명의의 거제도 별장을 매입해 선거자금을 간접 지원하는 등 오랜 기간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과정에서 정승영씨를 통해 권 여사에게 100만 달러를 전달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 보고서다
 
  〈○박연차의 진술에 의하면 2007. 6. 말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에게 100만 달러를 요구한 사실이 인정되고, 박연차, 정승영, 정상문, 권양숙의 진술 등에 의하면 2007. 6. 29. 정상문이 박연차의 부하직원인 정승영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아 권양숙에게 전달한 사실이 인정됨. ※ 권양숙은 100만 달러 수수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용처는 밝히지 않고 있음.〉- 《월간조선》 2013년 2월호 ‘대검 중수부 노무현 수사 문건에서 드러난 노무현 차명계좌의 흔적’ 중
 
2016년 5월 현재 노건평씨의 집이다. 사진 속 버스ㆍ사람과 비교하면 노씨의 집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정승영씨는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10월 사들인 사저 부지의 ‘서류상 주인’이다. 당시 두 사람의 거래를 놓고 박연차 회장이 대리인 정승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가보다 싸게 팔아 사실상 사저 부지를 마련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건호씨 부부는 권 여사 집 근처에 있는 30-14번지, 36번지, 36-8번지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36번지, 36-8번지엔 지상 2층 규모의 노무현재단 건물(212m²)이 있다. 본산리 36번지(291m²)는 건호씨가 정승영씨와 거래하고 나서 4개월이 지난 2009년 11월에 봉하마을 주민 백○○씨에게 5750만원을 주고 산 땅이다. 당시 백씨는 1원의 이윤도 붙이지 않고 자신의 매입원가에 땅을 팔았다.
 
  백씨는 노무현 일가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그는 2003년 한나라당이 “노 전 대통령이 차명으로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 임야 8700평을 차명으로 소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상 소유주다.
 
  백씨는 건평씨 측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는 건평씨가 실소유주였던 ‘정원토건’이란 회사에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또 건평씨의 아들과는 정원토건 이사와 감사로 함께 활동했고, 지금은 권 여사 집 바로 앞에 있는 ‘봉하빵’ 매장의 토지·건물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진 사이다.
 
  봉하마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도 산다. 그의 집은 마을 어귀에 있다. 봉하마을에 1시간가량 머물다 나가면서 건평씨 집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낯선 집이 있었다. 차에서 내려 대문 앞으로 갔다. 우편함엔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0○ 노건평’이라고 쓰여 있었다. 집을 새로 지은 듯했다. 2014년 3월 《월간조선》이 봉하마을 전경을 찍을 때만 해도 건평씨 집은 예전 그 모습이었다. 2년 사이에 그의 집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낡은 집 바닥은 꺼지고 터진 수도관은 돈 없어 못 고쳐”
 
노건평씨 집은 과거와 달리 붉은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붉은벽돌로 쌓은 담장, 담장을 따라 안팎으로 빽빽하게 심은 나무들이 있다. 예전 집이 있던 공간은 현재 지하실 겸 차고 등으로 이용한다.
  5년 전 봉하마을에 갔을 때 건평씨 집 안에 들어간 일이 있다. 2011년 8월 30일, 건평씨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그가 타고 다니는 은색 체어맨, 노란색 스쿠터는 그대로인데 집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집 앞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자 청바지 차림의 건평씨가 나타났다. 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 옆에 계속 서 있자 건평씨가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기자들 안 만난다. 직무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난 시간도 없고 할 얘기도 없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조용히 사는 사람이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나. 그만 돌아가라.”
 
  이틀이 지난 2011년 9월 1일 오후 1시, 건평씨 집을 다시 찾았다. 현관에는 열쇠가 꽂혀 있었지만 집엔 아무도 없었다. 2시에 갔더니 건평씨가 현관문 사이로 얼굴만 내민 채 “미안하지만 할 얘기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5시에 또 갔다. 건평씨는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 줬다. 그는 “날도 더운데 막내딸(노희정)하고 나이가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이 고생하는 것 같아 들어오라고 한 거지 인터뷰를 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건평씨 집 거실엔 봉하마을 출신이라는 김해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있었다. 그의 발치에 있는 상 위에는 위스키병과 커피잔, 깎은 사과가 놓여 있었다. 형사는 “오늘이 대통령 생일이라 건평이 형님이 울적해서 한잔하시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건평씨는 “나는 원래 기자들 만나는 걸 싫어한다. 너무 악의적이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이미 취기가 오른 듯 그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건평씨가 언론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만큼 구설에 자주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형으로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이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3년 1월 경찰청과 국세청 인사에 개입했다. 2004년 4월엔 남상국 당시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사장직을 연임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수수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8년 12월엔 2006년 1월 세종캐피탈이 농협에 세종증권을 매각하도록 도와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다가 2010년 8월 ‘8·15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고 나왔다.
 
노건평씨가 차고에서 자신의 은색 체어맨을 타고 나오던 중 하차해 통화하고 있다.
  자리에 앉고서 건평씨는 커피잔에 위스키를 가득 따라 기자에게 권했다. 1시간30분 동안 둘이서 위스키 한 병을 비우며 얘기를 나눴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자 건평씨는 “내처럼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노? 40년 된 집은 바닥이 푹푹 꺼지고, 겨울에 터진 수도관은 돈이 없어서 고치지도 못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건평씨 집 내부는 여느 시골집과 다르지 않았다. 집은 단층이고, 면적도 83m²(25평)에 불과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거실 마룻바닥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파를 비롯한 가구들도 낡은 것들뿐이었다.
 
  외관도 마찬가지였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시멘트 블록 담장, 쇠막대를 이어 만든 대문 등 노무현 정부 당시 ‘봉하대군’으로 불린 이가 사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가장 크게 바뀐 건 높이다. 과거 건평씨 집은 봉하마을 진입로보다 낮은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높이가 같다. 성토를 한 듯했다. 집 왼쪽 옆으로 내려가서 확인했다. 흙을 쌓은 게 아니었다. 마당 밑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예전에 집이 있던 공간은 지하실 겸 차고가 됐다. 바꿔 말하면 도로에서 봤을 때는 단층집이지만, 옆에서 보면 지하 1층·지상 1층 주택이란 얘기다. 붉은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붉은벽돌로 쌓은 담장, 담장을 따라 안팎으로 빽빽하게 심은 나무들도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다. 집 뒤쪽 외벽 위엔 태양광 패널들을 올렸다.
 
 
  대법원, 회삿돈 14억원 횡령한 노건평에 유죄 확정
 
  노건평씨는 앞서 밝힌 것처럼 궁핍한 생활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랬던 그가 어디서 마련한 돈으로 집을 사실상 새로 지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확인하긴 어려웠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다음 날 신문엔 대법원이 노건평씨의 유죄를 확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8일 1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74)씨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노씨는 2006년 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그가 회장으로 있던 전기부품 제조업체의 자금 13억8000만원을 처남과 사위 계좌로 빼돌려 개인적인 용도로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전직 대통령의 형으로서 더욱 청렴하게 행동하고 근신해야 할 것임에도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 2016년 4월 29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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