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20대와 50대가 생각하는 上命下服 : 월간조선

지난 2013년 10월, 검찰에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정감사장에서 윤석열(尹錫悅) 여주지청장이 조영곤(曺永昆)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上命下服)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일부에서는 윤 여주지청장의 항명으로 검찰 조직이 콩가루가 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사태는 윤 지청장이 징계받고, 조 당시 지검장은 옷을 벗는 것으로 끝났다.

그즈음 기자는 대학교 재학 때 고시에 합격하고, 정부부처에서 사무관으로 있는 28세 A씨를 만났다. 그가 바라보는 검찰 사태는 기자가 이제껏 만나온 사람들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A씨의 얘기다.

“윤석열 지청장이 잘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은 생각은 들어요. 사무관 생활을 해 보니 윗분들이 이해가지 않는 일이 많거든요.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고시 패스했나’ 싶을 정도로 잡무가 많고, 서기관들이 시키는 일엔 토달면 안된다는 식(式)이에요. 제 머릿속으로는 좀 이해가 안 되지만 묻기도 뭣하고 그래요. 윤 지청장도 상사에게 말을 하다하다 안 되니까 저런 돌출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요. 시험 보는 데 자신있었고 공무원이 안정적이다 싶어서 고시까지 봤는데 제가 생각했던 삶은 아니에요.”

A씨의 얘기에 깜짝 놀란 건 그가 여태까지 공무원 조직을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싶어서였다. 공무원은 여느 집단 못지않게 수직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그걸 흔히 관료주의라고 부른다. 관료주의는 상명하복·비능률·보수주의 등과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관심있게 지켜보니 지난 2013년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창조경제시대 기업문화 문제점>이라는 설문조사가 눈에 띄었다. 응답자의 61.8%가 창조경제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상명하복’을 꼽았다. 군대가 가진 대표적 문화인 상명하복의 폐해를 직장인들이 여실히 느끼고 있다고 답한 셈이다. 기성세대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50대(代), 또 사회에 갓 입성한 20대에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명하복 문화에 대해 물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30여 명의 사람들을 세대 표본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풀어 본다.

“여주지청장 행동은 조직원의 기본에 어긋나”(50대)

상명하복의 사전적 의미는 위에서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하(上下) 관계가 분명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대기업 부장 50세 B씨는 검찰 내분 사태에 대해 “윤석열 지청장의 행동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몰상식한 행동”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잘잘못을 떠나서 조직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밖으로 들고 나갈 수 있습니까? 검사로서가 아니라 조직원으로서 기본이 안 된 행동을 한 겁니다. 조직 내 문제를 외부에 떠벌린다는 것은 그 조직을 믿기 어렵다거나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윤 지청장에게 외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하보다 그가 국감장에서 보여준 항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가 평소에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함께 자리한 52세 상무 C씨의 얘기도 비슷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안 된다고 말할 때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오랜 기간의 경험이나, 현재 이슈에 대한 사태파악 같은 거지요. 아랫사람은 아무리 자기 생각이 맞아 보여도 상사가 그런 얘기를 왜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섭섭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사의 얘기가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고집하고,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밖에 호소하는 것은 유아적인 사고일 뿐입니다.”

예비역 중장인 K장군은 “윤석열은 꼬투리를 많이 잡으며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고, 조영곤은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카리스마가 약해 보이더라”며 “어떤 이유에서든 위계질서에 충실해야 하는 검사가 항명 행동을 하는 것을 곤란하다”고 말했다.

50대의 경찰 고위 관계자의 얘기는 이렇다.

“검찰 조직에서조차 윤석열 지청장의 행동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다수 검사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실제로 그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공개적인 석상에서 상사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행동을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조영곤 지검장과의 갈등 때문이라기보다 윤 지청장 본인의 성격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취재차 만난 50대의 거의 대부분은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조영곤 서울고검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명백한 ‘항명’이라고 말했다. 윤 지청장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상사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할 건 해야”(20대)

20대의 대부분은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옹호했다. 사진은 기업체 취업설명회장에 모인 20대들.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20대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20대의 대다수는 “상사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거나 “상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때 리서치 회사에 근무했다는 26세 취업 준비생(여)의 말이다.

“누구를 탓하기 힘들 것 같아요. 서울지검장은 자신의 룰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고, 여주지청장은 시스템(그는 검찰 조직 내 위계질서를 이렇게 표현했다)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요. 둘 다 잘못이죠. 하지만 아무리 어떤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두 그걸 신봉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시스템은 시스템이지만 사람들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여주지청장도 나름 고민을 하긴 했겠죠.”

케이블TV에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했고 현재 PD시험을 준비 중인 27세 대학생의 얘기다.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밖으로 들고 나간 건 잘못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여주지청장 지칭)이 이해는 가요. 도저히 내부에서는 일이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까 생각을 하다하다 그런 선택을 한 것 아닐까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S사와의 1년 계약직이 끝난 27세 취업 준비생(남)은 “상사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검사도 사회정의를 위해서 나쁜 건 고발하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선서 같은 거 있지 않나요? 제가 보기에는 여주지청장이 맞다고 봐요. 수사할 건 수사하고, 기소할 건 기소해야죠. 상사가 부하직원을 막는 걸 보니 상사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H엔지니어링 1년차 사원인 27세 남성은 “검찰은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윤석열 여주지청장 행동이 백 번 맞다. 상사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말했다.

L그룹에 입사한 지 2년차인 27세 사원은 “검찰의 문화를 떠나서 여주지청장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 같은 얘기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주지청장의 행동은 위계질서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킨 것이다”고 말했다.

“삼성 김용철, 용기는 있네”(20대)

20대의 대다수는 검찰 내분 사태를 보고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가운데)을 떠올렸다.

취재차 만난 20대의 대부분은 이번 검찰 내 고발을 지켜보면서 김용철(金勇澈) 전(前)삼성그룹 법무팀장을 떠올렸다. 삼성그룹은 검찰처럼 수직체계, 상명하복 관계를 가진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검찰이라는 거대 조직에 반기를 들었고, 또 김용철 전 법무팀장은 삼성이라는 거대 권력에 반기를 든 동일 인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김용철 전 팀장의 삼성그룹 비리 폭로로 넘어갔다. 취업 준비 중인 27세 C씨, H엔지니어링 1년차 D씨, L그룹 2년차 E씨의 대화다.

C: 김용철이 변호사인데 같이 일한 사람들을 배신한 것 같아서 느낌은 좋지 않아. 그래도 뭐 용기는 있네.

D: 어마어마한 용기지. 김용철이 만약에 H그룹 법무팀장이었어 봐라. 쥐도새도 모르게 묻혔을걸.

E: 검찰은 윤석열이 백 번 잘한 거고, 김용철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삼성에 그런 일 있다는 건 대충 예상되는 거 아냐? 그걸 굳이 얘기해서, 그렇게 한다고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마어마한 사건이기는 한데 그래 봐야 안 바뀌는 걸 뭣하러 말했나 싶기는 하고. 하긴 그 위치까지 안 올라갔으면 그 정도 정보를 알았을까 싶기는 한데, 대기업의 문제를 알려준다는 측면에서야 뭐 좋은 계기가 됐고.

C: 돈 받기 전에 나왔어야지, 받을 거 다 받아먹고 나중에 그런 건 좀 아니긴 하다.

D: 불법 봤을 때 바로 고발해야지. 지도 불법에 가담한건데.

E: 검사는 우리나라 정의를 위한 사람이고, 삼성은 사기업 아이가.

현재 C대 4학년생인 27세 K씨는 “김용철은 상명하복을 깬 사람이다. 그것 자체에 의미를 줘야 한다”며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아무도 안 했을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취업 준비 중인 26세 K씨는 “김용철 사건과 관련해 요즘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예전에 삼성 면접에 들어갔을 때 ‘당신이 김용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발견하면 우선 감사팀에 알려서 부당한 대우나 불법적인 행위를 알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부적으로 노력을 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면 김용철 행동처럼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는 외부에 알리기는 할 것 같다고 답했어요. 그때 면접관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꼭 그것 때문에 불합격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까지 그 일이 마음에 남습니다.”

그는 ‘다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이냐’는 물음에 “김용철이 무조건 잘못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라며 웃었다.

PD 지망생 27세 H씨는 “우리나라에 아직 그 집단을 이길 수 있는 세력이 없어서 나라면 김용철처럼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는 김용철 전 팀장이 ‘못한 일을 해 낸 사람’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20대에게 조직이란 개인의 능력을 억압하는 무엇”

20대들은 ‘상명하복’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윗사람 말 안 듣는 것’, ‘시스템’ 등으로 표현했다. 20대의 대다수에게 ‘상명하복’이라는 단어는 부정의 이미지가 강했다.

케이블방송에서 다수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한 학생은 “‘상명하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개그콘서트에 <편하게 있어>라는 코너가 생각난다. 상사가 말로는 밑의 사람에게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들 전혀 생각해 주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S사 계약직을 마치고 취업 준비중인 K씨는 “단어 느낌 자체가 좋지 않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어감 자체가 싫어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안 되고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느낌이 풍깁니다. 강압적이고, 후배가 하는 게 맞더라도 무조건 상사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선배들이 경험이 많으니까 신입사원한테 뭔가를 가르쳐주고 그런 건 좋은데 상명하복이라고 하면 강압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50대는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잘못’이라고 하고, 20대는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용감’이라고 받아들였다.

김민지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이다.

“50대는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자기들 스스로 함께하는, 또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온 세대입니다. 거기에 30년 넘는 사회생활이 더해지면서 조직생활을 철저하게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반면 완벽하게 민주화된 시대를 살아온 20대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어떤 조직의 일원이었던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20대에게 조직이란 개개인의 능력을 방해하고, 억누르고, 억압하거나 장애물 같은 그 무엇입니다. 이렇다 보니 조직의 질서를 상징하는 위계질서, 상명하복식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죠.”

—조직의 일원이 되어 본 경험 유무(有無)의 문제입니까.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사회의 기성세대가 된 50대는 대부분 위계질서를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리더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리더에게 큰 결격사유가 없다면, 다소 부당한 말을 하는 리더일지라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존중하고 보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주의적인 인권, 세계화라는 단어를 듣고 자라 온 20대는 본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윗사람이라고 해도, 성별이 다르다고 해도, 자신들 역시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사라고 해서 무조건 지시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거죠.”

상명하복이 필요한 이유

군대는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대표적인 곳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들의 대부분은 ‘상명하복’이라는 단어에 ‘군대’를 떠올렸다. 대다수의 기억 속에 군대는 ‘말도 안 되는’ 선임이 후임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지시하는 곳이었다.

예비역 중장 K장군은 “군대는 원래 말도 안 되는 곳으로, 상명하복이 없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곳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전쟁터에 나가라는 것은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이런 비합리한 명령이 일반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군대는 복종 없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의 많은 교육이 상명하복을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제식훈련이 대표적입니다. 제식훈련은 전투장에서 쓰이지 않지만 합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혼쭐이 납니다. 무의식 중에 상관의 얘기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주입하는 겁니다. 상명하복이 엄격해야 군기가 살아납니다.”

K장군은 문득 ‘호랑이떼를 거느린 양과 양떼를 거느린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고 물었다. 답은 “양떼를 거느린 호랑이”란다. K장군은 “얼핏봐서는 호랑이떼를 거느린 양이 이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제 아무리 호랑이떼라도 지휘관이 양이면 말을 듣지 않지만, 호랑이 지휘관을 가진 양떼는 사력을 다해서 싸운다. 군대는 지휘관 의지 하나로 모든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명하복은 군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한 고위 간부에게 ‘경찰조직에 상명하복 문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 간부의 얘기다.

“행정법상 공무원 사회에서 상명하복 원칙은 적법입니다. ‘위법한 지시가 아닌 부당한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얘기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윗사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상명하복 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면요.

“군이나 경찰에서 상명하복이 없다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물론 어떤 일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이해를 구해서 부하직원이 자발적으로 따라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태반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 군, 경찰 모두에 있습니다. 이때는 윗사람이 시키면 토 달지 말고 일단 해야 일이 됩니다. 요즘은 경찰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좀 달라졌더군요. 옛날에는 상명하면 하복했는데, 요즘은 상명하면 복기(復棋)하는 식입니다.”

50대가 털어놓은 ‘요즘 애들’과 일하는 고충

군·경찰은 차치하고라도, 한 정부부처의 50대 국장은 요즘 세대와 일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L국장의 얘기다.

“요즘 애들 개성이 강하다고 하는데, 자기들도 일하기 힘들겠지만 일을 지시하는 우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직접 초년생 사무관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작은 것 시킬 때 눈치가 보입니다. 바로 밑의 직원과 오래 일을 해서 익숙하고 초년생과는 아직 서먹해서가 아니라,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간혹 어떤 일을 시키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럴 때 ‘내가 초년병이었을 때는 하라면 했는데, 저 친구들에게는 내가 업무지시를 왜 시키는 건지 일일이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20대였을 때처럼 ‘국장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라는 식의 업무처리는 요즘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예비역 중장 K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현역에 있는 장성들이 사병들을 보면서 ‘당황스럽다’는 말을 여러 번 합디다. 요즘은 군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이 시시콜콜하게 공개가 돼서 그 부모들이 대번에 안답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플래카드 들고 부대 앞에 와서 시위를 한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한 번은 모 장군과 전방에 갈 일이 있었는데 사병한테 ‘저기, 아가야’ 이렇게 불러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그건 아니지요. ‘아무개 병사’라고 똑똑히 불러야 맞지요.”

50대의 한 대기업 상무는 “20대 신입사원에게 일을 시킬 때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된다. 선의(善意)로 한 충고라고 해도 그들이 왜곡해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 주의한다”고 말했다.

20대가 말하는 ‘50대 상사 다루는 법’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장정들이 제식훈련을 받는 모습. 군은 상명하복이 생명과 같은 조직이다.

20대는 20대대로 ‘상명하복’에 익숙한 50대와 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리서치 회사에 몸담았던 K씨(26세)는 ‘상사의 말은 무조건 들으라’는 식의 회사 분위기가 싫어서 때려치우고 나왔다고 했다. 그의 얘기다.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모 부장이 일 시키는 게 영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리서치 회사니까 숫자로 똑 떨어지고 눈에 딱 보이는 결과가 나오잖아요. 제 생각에는 분명 이쪽 길로 가야 하는데 부장님은 계속 다른 길이 맞다는 식이었어요. 처음에는 ‘이쪽 일을 오래 했으니 맞겠지’ 싶어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하다 보니 제 판단이 틀리고 모 부장이 맞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반대인 경우도 있더라고요.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해’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면담 요청을 했습니다. 그 부장이 제 앞에서는 잘 알겠다고 했는데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회사를 그만뒀죠.”

옆자리에 앉은 PD 지망생 H씨가 말을 받았다.

“인터넷에 보니까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데요. 어디를 가든 또라이가 있기 마련이라는 거죠. 그 꼴 보기 싫으면 내가 그만둬야죠.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말이 안 되게 지시하는 상사가 어디든 있는 거란 소리죠.”

직장을 다니는 20대는 “상사들이 일방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 1~3년차인 20대 3명(1, 2, 3으로 지칭)은 그들 스스로 ‘상사 다루는 법(?)’을 얘기했다. 그들의 얘기다.

1: 부장이 ‘이건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게 있었어. 부장 말대로 하면 일 두 번 해야 되거든. 그래서 설명을 했지. ‘부장님 말씀대로 하면 일을 두 번 해야 하는데, 한 번에 할 수 있는 이런 방법이 있다’고. 부장이 열심히 듣더니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라고 하더라고. 부장이 원래 그런 성격인 거 아니까 우리는 아무 소리 안 했지. 그냥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어.

2: 야, 부장한테 그런 식으로 직접 말하면 안 돼. 말할 때 바로 반박하면 100% 화를 낸다니까. 무슨 얘기 하면 하루 정도 있다가 고민한 척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러면 부장이 그래도 조금은 반영을 해 준다니까.

3: 우리 부장은 별걸 다 시켜. 자기 친구 아들이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내가 시험 통과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이니까 어드바이스를 해 주라는 거야. 비업무적인 상명하복인가? 뭐, 그런데 그런 거 해 주면 어쨌든 내가 업무랑 상관없는 거 하나 해 줬으니까, 생각할 거 아냐.

P그룹 수석 입사한 직원이 몇 달 만에 회사 때려치우고 벤처회사行

경찰 특공대가 테러범 진압과 인질 구출을 위한 테러대응 종합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경찰 역시 상명하복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모 공기업에 다니는 26세 신입사원 C씨(여)는 여차하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C씨의 얘기다.

“옆 부서는 맨날 순댓국이에요. 우리 부서는 양식도 먹고 하는데, 그 부서에 다니는 애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부서 이동을 하면 그만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부서 이동이 원활한 회사가 아니라서 그나마 안심하고 있어요.”

—어렵게 들어간 회사인데 혹 마음에 안 드는 부서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수 있지 않나요.

“일은 괜찮은데 사람 스트레스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전에 SK에서 인턴을 했는데 사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일은 정말 재밌었거든요. 야근하는 날 많고, 회식도 자주 하고요. 밥 안 먹어도 좋으니까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요. 나중에 정직원으로 오퍼를 받았는데 아무 미련 없이 그만두고 나왔어요.”

—주위에서 아깝다고들 했겠네요.

“더 좋은 회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회사는 내 인생 목표랑 맞아야 하고 보람도 있어야 하는 곳이에요. 제 개인 커리어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회식하고 사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20대를 연구하는 신익태 20대연구소 소장에게 ‘그들이 상명하복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신 소장의 얘기다.

“20대는 상사라고 해서 무조건 지시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 위주의 기준과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L그룹에 입사해 신입사원 교육에서 1등을 했던 친구가 몇 달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습니다. P그룹에서 1등으로 입사한 친구는 얼마되지 않아 벤처기업인 N사(社)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국내 10대그룹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다가 자기와 맞지 않아서 그만둔 경우가 저희 데이터로는 20% 이상입니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면 희한한 일이지만, 20대에게 이런 일은 자연스럽습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입니다. ‘내가 저 조직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기성세대처럼 강하지 않습니다.”

황상민(黃相旻)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분석이다.

“20대는 스스로를 정말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 모든 것의 바탕은 ‘정말 소중한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아무런 설명 없이 어떤 일을 일단 하고 보라고 지시하면 ‘내가 왜?’라는 식의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김민지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김 교수는 “20대는 본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은 세대다. 50대는 나이가 들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대는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이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만일 취직을 해서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또는 결혼을 해서 느끼는 행복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IT가 한몫?

IT기술의 발달이 20대가 상명하복 문화를 거부하는데 일조했다는 의견이 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이들의 분석을 듣고 있자면, 오늘날의 20대에게 ‘상명하복’이란 말 그대로 ‘별 세계의 산물’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여 20대의 자의식이 미성숙해서는 아닐까. 이들 역시 기성세대가 된다면 ‘상명하복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윤성이(尹聖理)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의 역할론’을 주장했다.

“IT기술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의식이 크게 변화됐습니다. IT기술은 기본적으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수평적 도구입니다. 조직 내 계급은 IT와 상충됩니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집회의 경우, 나중에는 좌파단체가 개입했지만, 초기에는 각 개인의 IT적 교류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과거에 ‘사회의 대표가 중요한가, 개인이 중요한가’라는 설문을 한 적이 있는데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답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개개인의 자율이 우선시되는 겁니다. 전자를 꼽은 사람은 법에 대해 순응하고, 위계질서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후자는 개인의 자유·권리가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수평도구인 IT는 후자를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50대도 IT에 많이 노출되면 20대처럼 상명하복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사람에 비해 IT기술을 접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명하복에 대한 의식이 더 남아 있다고 봅니다.”

“20대에게는 지시보다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50대의 경찰 고위 간부는 과거 20대의 부하직원을 설득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그의 얘기다.

“부하 직원 중 한 명이 경찰답지 않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직원에게 몇 번 주의를 주라고 했는데 계속 그 모양새였습니다. 경찰 내부 규정 중에는 ‘두발규정’도 있습니다. 머리를 단정히 하라고 하는데도 왜 안 하는가 보니까, 취미로 이종격투기를 한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 부하직원을 불러서 ‘이종격투기 선수 중에 누구를 좋아하느냐’고 했더니 최홍만이라고 하더군요. ‘최홍만이 머리가 너 같더냐’로 시작해서 왜 경찰이 단정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해 줬습니다. 한참을 듣더니 머리를 깎겠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 직원에게 회사 규정에 위배되니까 무조건 자르고 오라고 했으면 말을 듣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의 20대는 어떤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해시켜서 스스로 납득이 가게끔 얘기를 해 줘야 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20대의 대다수 중에서 ‘무조건 상사 얘기는 안 들을 것’이라고 말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이 원하는 방향이 경찰 고위 간부의 얘기와 비슷했다.

현재 P사에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는 한 취업 준비생의 얘기다.

“윗사람 얘기를 무작정 안 듣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급한 경우에는 윗사람이 군대처럼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얘기해도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중에는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상사가 좋은 상사라고 생각합니다.”

예비역 중장 K장군은 “상명하복이 아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K장군은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에서조차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리더십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따뜻하지만 어려운 상사’를 새로운 리더십으로 꼽았다.

“상사가 부하직원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어느 조직이든 말이 안 됩니다. 상사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서, 부하직원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승진 여부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최대한 따뜻하게 대하지만, 부하직원들이 어려워하는 상사가 적절한 관계라고 봅니다.”

20대와 50대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정반대로 해석을 한다. 20대는 50대를 어려워하고, 50대 역시 20대를 어려워한다. 이들의 간격 좁히기에 정답은 없을 듯하다. 확실한 것은 상명하복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