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기술로 만들겠다는 한국형발사체(KSLV-Ⅱ) 계획, 2025년에서 2020년으로 5년 단축
⊙ 김승조 항우연 원장, 연구원 독려하며 조기개발 지휘
⊙ 달탐사 계획 수정에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는 박 대통령 공약이 영향 미쳤나
⊙ 김승조 항우연 원장, 연구원 독려하며 조기개발 지휘
⊙ 달탐사 계획 수정에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는 박 대통령 공약이 영향 미쳤나
- 지난 1월 30일 오후 4시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나로호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끝내 불발탄(不發彈)이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 국민은 둘째치고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을지 모른다. “러시아산(産)을 가져와도 못하느냐”는 말과 함께.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나로호 3차 발사일(2013년 1월 30일)을 앞두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은하 3호’가 우주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작년 12월 12일)이 들려왔다. 허를 찔린 한국 국방부는 물론, 미국 백악관까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명의의 긴급성명을 냈다. 가까운 일본도, 중국도 경악했다.
그즈음, 두 번의 실패(2009년 8월, 2010년 6월)를 지켜보던 국민의 시선도 ‘더는 못 참겠다’는 기류가 넘쳤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는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항우연 간부들은 서랍 속에 사직서를 써 놓았을지 모른다.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 나로호는 전남 고흥 외나로도 앞바다를 박차고 올랐다. 이륙 215초 뒤에 예정대로 페어링(위성덮개·1차 실패는 페어링 미분리가 원인이었다)을 분리했고, 232초 뒤 1단(하단) 로켓이 분리됐으며, 395초쯤에는 2단(상단) 고체연료가 점화돼 그 추진력으로 우주궤도에 진입했다.
궤도에 안착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2단 로켓에 실은 과학위성이 정해진 궤도를 돌아야 성공이라 부를 수 있었다. 31일 새벽 3시27분과 28분4초부터 43분2초까지 14분58초 동안 위성의 전파 비콘(Beacon·응급신호발생기)신호를 수신했다. 그제야 연구원들이 환호했다. 그날 오전 5시11분부터 26분까지 15분간의 2차 교신도 성공이었다.
그리고 300여 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로호의 비상을 지켜보던 절망과 걱정, 기대와 흥분의 시간도 잊혔다. 그동안 항우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자는 10월 7일 항우연이 있던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향했다.
달탐사, 의욕인가 과욕인가
항우연 연구원들은 뜻밖에도 ‘무인(無人) 달탐사’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우리 기술로 로켓(한국형발사체·KSLV-Ⅱ)을 만들어 2020년까지 달탐사선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7년 뒤다. 전체 소요예산은 1조5449억원. 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에는 2025년쯤 달탐사 계획을 세웠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2020년으로 수정됐다. 무려 5년이나 앞당겨졌다. 의욕인지 과욕인지를 두고 과학계 내부에서 논쟁이 붙을 정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출신의 항우연 김승조(金承祚) 원장은 “나로호 만들 당시의 똥오줌 못 가릴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로켓기술은 굉장히 오래된 기술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최고 피크까지 갔던 기술 아닙니까. 액체엔진이라는 것도 60년이나 된 기술입니다. 노력만 하면 짧은 시간 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달 무인탐사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다 머리 안에 들어오는 일입니다. 나로호를 준비하며 손맛을 봤기 때문이죠. 완전히 감을 잡았어요.”
미국은 이미 1961년에 달탐사용 로켓을 보내기 시작했다. 52년 전이다. 우주선이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야 한다. 달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도는 것도 지구 중력 때문이다. 나로호는 중력의 힘을 이기며 초속 8km(시속 2만8800km/h)의 속도로 날아오른다.
그런데 로켓이 우주로 나가는 일보다 탐사선을 달에 보내는 일이 더 힘들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일본, 중국, 인도 등이 ‘달 궤도선’을 쏘아 올리며 ‘달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달을 품으려는 각국의 구애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김 원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달탐사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 했다.
“과거엔 미국이 우리를 상대도 안 해 줬어요. 너희하고 할 게 뭐 있느냐는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일방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무얼 협력합니까.”
지난 10월 8일 달탐사 착수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15개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모여 ‘달탐사협의회’를 구성했다. 우선 각 연구원의 내년 예산을 조금씩 갹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 역량을 공유키로 했다. 그렇게 모은 예산이 77억5000만원.
달탐사에 성공한 나라는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유럽 정도. 엄청난 인프라와 인력, 돈과 기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엊그제 천신만고 끝에 나로호를 쏘아 올렸는데 그런 일정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김 원장의 말이다.
“내부적으로 개발과정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내부 자문단을 만들어 부문별로 조기개발이 가능한지, 예산확보에 어려움은 없는지, 단계별 각 공정이나 부품의 개발 진척이 가능한지 검토할 겁니다. 제가 봐도 단축할 부분이 여럿 보여요.”
—항우연 내부에서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예산상의 뒷받침이에요. 개발을 앞당기면 단기간 내 많은 예산이 드는데 정부가 지원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제 생각은 달라요. 예산에 맞춰 계획을 짜 놨다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정말로 달성을 못 하죠. 그래서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 보자는 겁니다. 정말 단축이 가능한지, 단축이 어렵다면 예산을 더 들여야 하는지 한번 보자는 거예요.”
나로호는 러시아에서 만든 1단(하단) 로켓에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만든 2단 로켓을 얹은 형태다. 2002년부터 추진한 나로호 사업은 2013년에야 완성됐다. 11년이 걸린 셈이다. 그걸 지금부터 7년을 연구해 2020년까지 100% 우리 기술로 달탐사선까지 장착한 KSLV-Ⅱ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
“죽다가 살았다”
—나로호를 만들며 기술력이 얼마나 늘었나요.
처음부터 나로호를 독자개발하지 않고 기술이전도 안 되는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여론이 있었다. 김승조 원장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로호를 만드는 데 8000억원이 들었어요. 그중 3000억원은 우주발사장(나로호우주센터)을 만드는 데 썼으니 내다버린 것이 아니죠. 나머지 5000억원 중 2000억원이 러시아로 갔어요. 그 돈으로 러시아산 로켓 3기를 사왔잖아요. 결국, 두 번 실패하고 두 번 연기 끝에 성공했습니다. 배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최대한 끌어낸 것이죠. 그 속에서 속 터지고 피눈물을 흘렸는데, 마지막까지 성공이 보장됐다면 그렇게 위장병 다 걸리면서까지 노력하진 않았을 겁니다. 뒤돌아보니 형극(荊棘)의 길이나, 주어진 돈으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기술이전이 불가능하지만 러시아가 (두 번의 실패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말 안 해도 될 것까지 말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도 러시아 1단 로켓을 머리 디밀고 다 봤잖아요. 물론 본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죠. 로켓이라는 ‘초정밀 기계 가공품’을 만들려면 손맛을 알아야 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험시설을 만들고, 산업체는 길이 잘 든 손맛을 알아야 로켓을 제작할 수 있어요.”
—또 뭘 배웠나요.
“실패하면 얼마나 혼이 나는지도 배웠어요. 처음 실패할 때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어깨를 토닥이는데, 세월이 지나면 어깨 토닥이는 강도가 달라져요. 갈비뼈가 나갈 정도예요. 어떻게 하겠어요. 잘못(실패)은 했는데….”
—그 와중에 작년 12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까지 성공해서….
“항우연 분위기가 초토화됐어요. 게다가 3차 발사를 앞두고 두 번이나 발사가 연기됐잖아요. 우리가 만든 부품이 나갔으니(고장 났으니) 정말 답답했어요. 또 무슨 부품이 나갈까 생각하니 잠이 안 와요. 벌써 4~5년 전에 만든 것이거든요. 사실, 고장 난 부품이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외국에서 사 온 부품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다 잊고 미래만 생각했어요. 10년 뒤, 20년 뒤 한국형발사체의 비전만 그렸어요.”
그는 “우리의 기술적인 성공을 무인 달탐사로 증명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달탐사에 성공하면 우리 로켓의 가능성과 신뢰를 세상에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술력 못지않게 경제성도 따질 겁니다. 장사가 될 수 있는 로켓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발할 때 돈이 더 들더라도 양산할 때 싸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엔지니어의 덕목은 수익성과 경제성입니다. 엔지니어는 사이언티스트(과학자)가 아닙니다. 엄청난 논문 써서 노벨상이라도 받겠다는 겁니까?”
왜 각국이 신기루 같은 우주사업에 뛰어드는 것일까. 어마어마한 자금과 기술력을 요하는 우주발사체에 목을 매는 걸까. 거듭된 실패에도 우주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국가안보 때문이다. 우주기술은 곧 군사기술이다.
“우주산업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아요. 기계·전기·전자 등 타산업의 신기술이 활용돼야 하는 종합기술산업입니다. 다양한 기술 분야의 시스템을 종합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죠. 무중력, 고진공, 고강도 방사선, 높은 온도 차이, 경량화, 전력 제한 등 특수한 우주 기기의 사용 환경과 조건도 고려해야 하지요. 내열소재, 위성항법장치(GPS), 인공위성,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 타산업으로 파급효과도 큽니다. 세계 우주산업이 현재 새로운 성장기를 맞고 있어요.”
2차 나로호 발사 책임에 대해 할 말 있다!
항우연 건물을 이리저리 한참을 돌아 조광래(趙光來) 연구위원을 만났다. 그는 11년 동안 나로호 개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 온 책임자다. 질타와 찬사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지금은 ‘나로호발사추진단장’에서 물러나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나로호 개발과정에서 극심한 중압감으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현재 나로호 백서(白書) 작업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던데, 살아서 지옥에 가니 생지옥이더군요. 항우연 밖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기술적 논쟁보다는 억지를 부릴 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면 대전 유성의 온천장을 찾아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2010년 6월 2차 실패 이후 원인 규명을 두고 ‘한러공동조사단’이 꾸려졌었다. 이 과정에서 조 위원은 러시아 측의 잘못을 주장했었다.
“2차 나로호가 이륙하고 137초 만에 통신이 두절됐어요. 그 시간대는 러시아가 만든 1단 로켓이 작동하는 구간이었어요. 하지만 잘잘못을 규명할 데이터가 별로 없었어요. 러시아 측에서는 우리가 만든 2단 킥 모터(고체엔진)가 오작동해 폭발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했어요. 당시 로켓 1단과 2단이 연결된 ‘단(段) 연결부’에서 확보한 영상이 있는데, 그게 136초경 ‘번쩍’하는 모습이 나와요. 2단 로켓이 폭발했다고 하기엔 빛의 강도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저는 러시아에서 만든 1단 로켓의 산화제(가스)가 누출돼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했어요. 킥 모터가 오작동했다면 엄청난 화력이 생깁니다. 로켓 내부의 영상처럼 ‘번쩍’하는 모습이 생길 수 없어요. 그해 11월쯤 진위를 가리려고 지상실험까지 했는데, 원래 1.6t의 화약이 들어가는 2단 고체연료에 20kg의 화약만 넣고도 어마어마하게 터졌어요. 우리 쪽 잘못이었다면 두 개의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전문가들이 러시아 쪽 편을 들어 항우연의 잘못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기술이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타당성과 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실패한 사람이니 외부 조사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는 겁니다. 우리의 발언권조차 빼앗았어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술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에 분개했어요. 요즘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를 보면 정치인보다 뺨치는 이가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연구는 안 하고 자꾸 딴짓을 한다고요.”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결국 양쪽 다 가능성이 있다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 러시아 측은 우리가 얘기하면 거세게 말 못합니다. 그런데 국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기술은 기술로 다뤄져야 해요. 곡학아세(曲學阿世), 견강부회(牽强附會), 이런 것은 안 됩니다.”
비교적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달탐사도 해야 하고, KSLV-Ⅱ의 갈 길이 험난(險難)합니다. 나로호보다 더 많은 실패를 해야 해요. 장밋빛으로 봐선 안 됩니다. 내부개발자 입장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발사는 2020년에 원샷(one-shot)으로 성공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합니다. 실패는 필수과정입니다. 실패할 때마다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아요. 입에 단내가 나고, 몸 안의 진을 쪽쪽 빨아내야 하는데, 그것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라면 연구개발 하나 마나입니다.”
“30년 기술자도 50년짜리한테 혼나더라”
—일각에서는 1단 엔진을 러시아 기술로 만들었으니 나로호가 진정한 의미에서 국산(國産)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100% 우리 게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의 반박이 이어졌다.
“1975년 발사했던 일본의 3단 액체엔진 로켓인 N-1이 있어요. 이 로켓은 2단을 제외한 1단과 3단을 미국 로켓 사다 썼어요. 1981년 발사한 N-2는 전부 미국 거예요. 1986년 발사에 성공한 H-1 로켓은 1단과 3단이 미국 겁니다. 단이라는 것을 서브(sub·하위) 시스템으로 보는 겁니다. 본격적인 일본산은 H-2 로켓(첫 발사 1994년)입니다. 그럼, N-1은 일본 로켓이 아니라고 하나요? 마찬가지로 나로호는 러시아 것을 썼지만, 우리 로켓입니다.”
일각에서는 기술이전 없는 러시아와의 계약으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큰돈 들여 발사해 본 경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나로호 개발과 발사과정에서 발사체 시스템 기술, 발사장 구축 및 발사운용 기술 등을 확보했습니다. 설계, 제작, 시험, 조립, 발사운영, 발사 등 발사체 개발과정의 한 사이클을 모두 경험해 발사체 선진국의 운영체계와 경험을 체득할 수 있었어요.”
그는 “발사운영은 발사체, 발사대, 위성추적, 관제, 비행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대규모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복잡한 절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며 “발사운영의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 그런 노하우를 가졌다”고 했다.
“확실히 기술이전이 됐다고 봅니다. 기술이전 자체는 원칙적으론 어렵지만, 장기를 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과 붙으면 하수가 많이 늘게 돼 있어요. 저와 함께 일했던 러시아 측 연구원에게 그동안 발사체를 몇 번 쏘아 봤느냐고 물었더니 ‘1960년부터 했으니 한 300번 쐈다’고 그래요. 경력이 3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더 늙은 연구원이 나무랍니다. ‘경험이 없다’고요. 거의 매일 혼이 나더군요. 그 할아버지 연구원의 경력이 50년이었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기술자의 포스가 느껴졌어요. 그분 말 한마디가 스펙이 되더군요. 나로우주센터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분들의 머릿속에서 해결책이 바로 나옵니다. 참 부러웠어요.”
“2017년쯤 75t 액체엔진 만든다”
나로호체계종합팀의 조인현(曺仁鉉)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나로호 상단(2단)부 추진기관인 킥 모터를 개발하는 일을 맡았다. 액체엔진이 아니라 고체 추진제를 사용하는 킥 모터는 아주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1.6t의 화약을 얇은 복합재 연소관에 담고 노즐을 통해 강력한 연소가스를 분출하는 기구다. 제대로 통제를 못하면 주변 모두를 태워 버린다.
2006년 3월 실험 도중 폭발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물적 피해는 물론, 후유증으로 많은 연구원이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굉음과 폭발 장면이 떠올라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우주환경에서 하는 고공 점화가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았어요. 실험은 했지만, 경험이 전무했거든요. 그러나 2009년 1차 발사로 그런 불안은 해소됐어요. 엉뚱하게도 페어링 분리가 안 돼 실패했으나, 우리가 만든 킥 모터가 완벽하다는 걸 확인하게 됐어요.”
조 연구원은 “러시아 측에서 처음엔 킥 모터 기관을 자신들이 만들어 우리측에 제공하겠다고 하더군요. 킥 모터가 대륙간탄도탄에 들어가는 기술이니까요. 러시아에 맡겼더라면 나로호 상단개발이 손쉬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기술로 하겠다고 설득했고 결국 관철했어요. 만약 러시아 기술로 만들었다면 지금 엄청난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요?”
발사체체계실 박정주(朴政柱) 실장은 처음 러시아와 계약을 할 당시를 떠올렸다.
“협상을 진행하면서 나로호를 두 번 발사키로 했는데, 두 번 모두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대두했어요. 그래서 계약서에 ‘두 번 발사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3번째 발사를 요구할 수 있다’로 명기했어요. 1단 로켓을 만든 러시아의 흐루니체프사(社)는 성공을 확신해서인지 우리 쪽 주장을 수용했어요.
그런 계약이 아니었으면 두 번의 실패로 나로호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을 겁니다. 작년 러시아의 언론이 ‘3번째 발사비용을 안 받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흐루니체프 사장에게 물으니 ‘불행하게도 사실’이라고 답했어요.”
—러시아가 손해를 봤을까요.
박 실장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설우석(薛又碩) 엔진개발실장은 나로호를 만드는 동안 액체엔진 개발에 힘써 왔다. 엔진개발실에는 70명이 넘는 연구원이 있다. 나로호 개발기간 중 이미 30t급 액체엔진에 대한 선행연구와 핵심부품 개발을 완료했고, 현재 KSLV-Ⅱ에 필요한 75t급 엔진을 만들고 있다. 달탐사선을 실을 KSLV-Ⅱ에는 75t급 액체엔진이 4기나 들어간다. 4기를 합치면 로켓 1단의 추력(推力)이 300t급이 된다. 나로호의 2배. 그 위 2단에 75t 액체엔진 1개를, 3단에 7t 액체엔진을 더 얹는다. 설 실장의 말이다.
“지금 계획은 핵심부품을 먼저 테스트해 보는 것인데, 일단 2014년 상반기 정도면 부품실험을 나로우주센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2015년 상반기에는 엔진시스템, 그러니까 부품들을 조립해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2017년 말쯤 75t 액체엔진 하나를 만들어 리액션할 계획이죠.”
과학과 정치
기자가 찾아간 항우연은 벌써 새로운 KSLV-Ⅱ 개발과 달탐사 의지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원장은 발사체 개발기간을 단축하겠다고 연구원들을 압박할 기세였다. 개발스케줄을 펴 놓고 시기를 앞당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김승조 원장은 “국가사업은 늦어지기보다 빨리 가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항우연의 판단에 ‘과학’이 아닌 ‘정치’가 개입돼 있는지 따져야 한다. 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TV토론에서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고 말했고, 인수위 때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는 당초 2025년으로 계획된 무인 달탐사선 발사를 5년 앞당기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항우연은 7년 내 달을 향해 로켓을 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구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다시 신발끈을 죄고 있다.
15개 정부출연연이 일제히 달탐사를 돕겠다며 자신만의 강점기술로 ‘우주화’ 가능성을 타진하겠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나 ‘기획’의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종합발사체 기술은 ‘어려움 종결자’라는 말이 있다. 로켓은 돈과 시간, 인력, 기술력이 종합 체계를 이뤄야 비상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한국사회의 냉혹한 시선이 달라지기 어렵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항우연 조광래 연구위원은 “KSLV-Ⅱ를 발사대에 세우기까지 앞으로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실패를 싫어하는 분위기라면 연구개발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고 말했다.
나로호의 성공으로 항우연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도전은 험난해 보인다. 과학자를 독려하되 정치와 진영(陣營)의 논리를 과학에서 걷어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나로호 3차 발사일(2013년 1월 30일)을 앞두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 ‘은하 3호’가 우주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작년 12월 12일)이 들려왔다. 허를 찔린 한국 국방부는 물론, 미국 백악관까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명의의 긴급성명을 냈다. 가까운 일본도, 중국도 경악했다.
그즈음, 두 번의 실패(2009년 8월, 2010년 6월)를 지켜보던 국민의 시선도 ‘더는 못 참겠다’는 기류가 넘쳤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는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항우연 간부들은 서랍 속에 사직서를 써 놓았을지 모른다.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 나로호는 전남 고흥 외나로도 앞바다를 박차고 올랐다. 이륙 215초 뒤에 예정대로 페어링(위성덮개·1차 실패는 페어링 미분리가 원인이었다)을 분리했고, 232초 뒤 1단(하단) 로켓이 분리됐으며, 395초쯤에는 2단(상단) 고체연료가 점화돼 그 추진력으로 우주궤도에 진입했다.
궤도에 안착했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2단 로켓에 실은 과학위성이 정해진 궤도를 돌아야 성공이라 부를 수 있었다. 31일 새벽 3시27분과 28분4초부터 43분2초까지 14분58초 동안 위성의 전파 비콘(Beacon·응급신호발생기)신호를 수신했다. 그제야 연구원들이 환호했다. 그날 오전 5시11분부터 26분까지 15분간의 2차 교신도 성공이었다.
그리고 300여 일의 시간이 흘렀다. 나로호의 비상을 지켜보던 절망과 걱정, 기대와 흥분의 시간도 잊혔다. 그동안 항우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자는 10월 7일 항우연이 있던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향했다.
달탐사, 의욕인가 과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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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조 항우연 원장. |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출신의 항우연 김승조(金承祚) 원장은 “나로호 만들 당시의 똥오줌 못 가릴 때와는 다르다”고 했다.
“로켓기술은 굉장히 오래된 기술입니다. 미국과 소련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최고 피크까지 갔던 기술 아닙니까. 액체엔진이라는 것도 60년이나 된 기술입니다. 노력만 하면 짧은 시간 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달 무인탐사도 아주 어렵지는 않아요. 다 머리 안에 들어오는 일입니다. 나로호를 준비하며 손맛을 봤기 때문이죠. 완전히 감을 잡았어요.”
미국은 이미 1961년에 달탐사용 로켓을 보내기 시작했다. 52년 전이다. 우주선이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야 한다. 달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도는 것도 지구 중력 때문이다. 나로호는 중력의 힘을 이기며 초속 8km(시속 2만8800km/h)의 속도로 날아오른다.
그런데 로켓이 우주로 나가는 일보다 탐사선을 달에 보내는 일이 더 힘들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일본, 중국, 인도 등이 ‘달 궤도선’을 쏘아 올리며 ‘달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달을 품으려는 각국의 구애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김 원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달탐사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 했다.
“과거엔 미국이 우리를 상대도 안 해 줬어요. 너희하고 할 게 뭐 있느냐는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일방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무얼 협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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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호 3차 발사를 앞두고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러시아가 만든 1단과 한국이 제작한 2단을 결합, 조립을 모두 끝낸 나로호 모습. |
달탐사에 성공한 나라는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유럽 정도. 엄청난 인프라와 인력, 돈과 기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엊그제 천신만고 끝에 나로호를 쏘아 올렸는데 그런 일정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김 원장의 말이다.
“내부적으로 개발과정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내부 자문단을 만들어 부문별로 조기개발이 가능한지, 예산확보에 어려움은 없는지, 단계별 각 공정이나 부품의 개발 진척이 가능한지 검토할 겁니다. 제가 봐도 단축할 부분이 여럿 보여요.”
—항우연 내부에서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예산상의 뒷받침이에요. 개발을 앞당기면 단기간 내 많은 예산이 드는데 정부가 지원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제 생각은 달라요. 예산에 맞춰 계획을 짜 놨다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정말로 달성을 못 하죠. 그래서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 보자는 겁니다. 정말 단축이 가능한지, 단축이 어렵다면 예산을 더 들여야 하는지 한번 보자는 거예요.”
나로호는 러시아에서 만든 1단(하단) 로켓에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만든 2단 로켓을 얹은 형태다. 2002년부터 추진한 나로호 사업은 2013년에야 완성됐다. 11년이 걸린 셈이다. 그걸 지금부터 7년을 연구해 2020년까지 100% 우리 기술로 달탐사선까지 장착한 KSLV-Ⅱ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
| 나로호 추진 일지 ▲2004년 9월 21일 =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 체결 ▲2004년 10월 26일 = 항우연·러 흐루니체프사 간 기술협력계약 체결 ▲2005년 = 발사체 시스템 설계 검토회의 및 공동상세설계 완료 ▲2006년 10월 17일 =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 체결 및 발효 ▲2007년 11월 = 발사체 시스템 상세설계자료 인수 및 상세설계 양국 전문가 검토 ▲2009년 6월 = 나로우주센터 준공 ▲2009년 8월 25일 = 나로호 1차 발사 실패 ▲2010년 6월 10일 = 나로호 2차 발사 실패 ▲2012년 10월 26일 = 나로호 3차 발사예정 당일 헬륨가스 주입 중 연결부위 결함으로 발사 연기 ▲2012년 11월 29일 오후 3시43분 = 발사 예정시각을 16분52초 앞두고 상단 점검 중 추력 벡터 제어기에서 이상이 감지돼 발사 연기 ▲2013년 1월 30일 = 나로호 3차 발사 |
“죽다가 살았다”
—나로호를 만들며 기술력이 얼마나 늘었나요.
처음부터 나로호를 독자개발하지 않고 기술이전도 안 되는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여론이 있었다. 김승조 원장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나로호를 만드는 데 8000억원이 들었어요. 그중 3000억원은 우주발사장(나로호우주센터)을 만드는 데 썼으니 내다버린 것이 아니죠. 나머지 5000억원 중 2000억원이 러시아로 갔어요. 그 돈으로 러시아산 로켓 3기를 사왔잖아요. 결국, 두 번 실패하고 두 번 연기 끝에 성공했습니다. 배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최대한 끌어낸 것이죠. 그 속에서 속 터지고 피눈물을 흘렸는데, 마지막까지 성공이 보장됐다면 그렇게 위장병 다 걸리면서까지 노력하진 않았을 겁니다. 뒤돌아보니 형극(荊棘)의 길이나, 주어진 돈으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간이었어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기술이전이 불가능하지만 러시아가 (두 번의 실패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말 안 해도 될 것까지 말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도 러시아 1단 로켓을 머리 디밀고 다 봤잖아요. 물론 본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죠. 로켓이라는 ‘초정밀 기계 가공품’을 만들려면 손맛을 알아야 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시험시설을 만들고, 산업체는 길이 잘 든 손맛을 알아야 로켓을 제작할 수 있어요.”
—또 뭘 배웠나요.
“실패하면 얼마나 혼이 나는지도 배웠어요. 처음 실패할 때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어깨를 토닥이는데, 세월이 지나면 어깨 토닥이는 강도가 달라져요. 갈비뼈가 나갈 정도예요. 어떻게 하겠어요. 잘못(실패)은 했는데….”
—그 와중에 작년 12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까지 성공해서….
“항우연 분위기가 초토화됐어요. 게다가 3차 발사를 앞두고 두 번이나 발사가 연기됐잖아요. 우리가 만든 부품이 나갔으니(고장 났으니) 정말 답답했어요. 또 무슨 부품이 나갈까 생각하니 잠이 안 와요. 벌써 4~5년 전에 만든 것이거든요. 사실, 고장 난 부품이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외국에서 사 온 부품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다 잊고 미래만 생각했어요. 10년 뒤, 20년 뒤 한국형발사체의 비전만 그렸어요.”
그는 “우리의 기술적인 성공을 무인 달탐사로 증명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달탐사에 성공하면 우리 로켓의 가능성과 신뢰를 세상에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술력 못지않게 경제성도 따질 겁니다. 장사가 될 수 있는 로켓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발할 때 돈이 더 들더라도 양산할 때 싸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엔지니어의 덕목은 수익성과 경제성입니다. 엔지니어는 사이언티스트(과학자)가 아닙니다. 엄청난 논문 써서 노벨상이라도 받겠다는 겁니까?”
왜 각국이 신기루 같은 우주사업에 뛰어드는 것일까. 어마어마한 자금과 기술력을 요하는 우주발사체에 목을 매는 걸까. 거듭된 실패에도 우주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국가안보 때문이다. 우주기술은 곧 군사기술이다.
“우주산업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아요. 기계·전기·전자 등 타산업의 신기술이 활용돼야 하는 종합기술산업입니다. 다양한 기술 분야의 시스템을 종합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죠. 무중력, 고진공, 고강도 방사선, 높은 온도 차이, 경량화, 전력 제한 등 특수한 우주 기기의 사용 환경과 조건도 고려해야 하지요. 내열소재, 위성항법장치(GPS), 인공위성,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 타산업으로 파급효과도 큽니다. 세계 우주산업이 현재 새로운 성장기를 맞고 있어요.”
| 미국의 아폴로 계획 아폴로 계획은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귀환시키는 미국의 우주계획을 말한다. 1961년부터 72년까지 진행됐다. 앞서 1957년 소련의 과학자들이 스푸트니크(러시아말로 ‘지구의 길동무’)라는 최초의 인공위성을 쏜 것이 미국에 충격을 주었다. 아폴로 10호가 달에 갔다온 지 한 달이 지난 1969년 7월 16일. 지구를 떠난 아폴로 11호는 21일(오전 11시56분20초) 달에 도착했다. N. 암스트롱, E. 올드린 2세, M. 콜린스가 탑승하고 있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이라는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콜린스는 사령선을 타고 달을 돌면서 대기궤도상에서 달 표면 사진을 찍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딘 것이다. 첫 발자국이 우주 원년(元年)인 셈이다. 아폴로 계획은 무려 250억 달러라는 거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아폴로 11호에서 17호까지 6차례 걸쳐 인간이 달에 다녀왔다. |
2차 나로호 발사 책임에 대해 할 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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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래 항우연 연구위원. |
“사람들이 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던데, 살아서 지옥에 가니 생지옥이더군요. 항우연 밖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기술적 논쟁보다는 억지를 부릴 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면 대전 유성의 온천장을 찾아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2010년 6월 2차 실패 이후 원인 규명을 두고 ‘한러공동조사단’이 꾸려졌었다. 이 과정에서 조 위원은 러시아 측의 잘못을 주장했었다.
“2차 나로호가 이륙하고 137초 만에 통신이 두절됐어요. 그 시간대는 러시아가 만든 1단 로켓이 작동하는 구간이었어요. 하지만 잘잘못을 규명할 데이터가 별로 없었어요. 러시아 측에서는 우리가 만든 2단 킥 모터(고체엔진)가 오작동해 폭발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했어요. 당시 로켓 1단과 2단이 연결된 ‘단(段) 연결부’에서 확보한 영상이 있는데, 그게 136초경 ‘번쩍’하는 모습이 나와요. 2단 로켓이 폭발했다고 하기엔 빛의 강도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저는 러시아에서 만든 1단 로켓의 산화제(가스)가 누출돼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했어요. 킥 모터가 오작동했다면 엄청난 화력이 생깁니다. 로켓 내부의 영상처럼 ‘번쩍’하는 모습이 생길 수 없어요. 그해 11월쯤 진위를 가리려고 지상실험까지 했는데, 원래 1.6t의 화약이 들어가는 2단 고체연료에 20kg의 화약만 넣고도 어마어마하게 터졌어요. 우리 쪽 잘못이었다면 두 개의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전문가들이 러시아 쪽 편을 들어 항우연의 잘못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기술이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 타당성과 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실패한 사람이니 외부 조사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는 겁니다. 우리의 발언권조차 빼앗았어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술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에 분개했어요. 요즘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를 보면 정치인보다 뺨치는 이가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연구는 안 하고 자꾸 딴짓을 한다고요.”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결국 양쪽 다 가능성이 있다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 러시아 측은 우리가 얘기하면 거세게 말 못합니다. 그런데 국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기술은 기술로 다뤄져야 해요. 곡학아세(曲學阿世), 견강부회(牽强附會), 이런 것은 안 됩니다.”
비교적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했다.
“앞으로 달탐사도 해야 하고, KSLV-Ⅱ의 갈 길이 험난(險難)합니다. 나로호보다 더 많은 실패를 해야 해요. 장밋빛으로 봐선 안 됩니다. 내부개발자 입장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발사는 2020년에 원샷(one-shot)으로 성공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합니다. 실패는 필수과정입니다. 실패할 때마다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아요. 입에 단내가 나고, 몸 안의 진을 쪽쪽 빨아내야 하는데, 그것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라면 연구개발 하나 마나입니다.”
“30년 기술자도 50년짜리한테 혼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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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우주연구원이 공개한 나로호 1차 발사때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고 남아있는 페어링 영상. 2단 킥모터가 정상 점화되었다. |
“100% 우리 게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의 반박이 이어졌다.
“1975년 발사했던 일본의 3단 액체엔진 로켓인 N-1이 있어요. 이 로켓은 2단을 제외한 1단과 3단을 미국 로켓 사다 썼어요. 1981년 발사한 N-2는 전부 미국 거예요. 1986년 발사에 성공한 H-1 로켓은 1단과 3단이 미국 겁니다. 단이라는 것을 서브(sub·하위) 시스템으로 보는 겁니다. 본격적인 일본산은 H-2 로켓(첫 발사 1994년)입니다. 그럼, N-1은 일본 로켓이 아니라고 하나요? 마찬가지로 나로호는 러시아 것을 썼지만, 우리 로켓입니다.”
일각에서는 기술이전 없는 러시아와의 계약으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큰돈 들여 발사해 본 경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나로호 개발과 발사과정에서 발사체 시스템 기술, 발사장 구축 및 발사운용 기술 등을 확보했습니다. 설계, 제작, 시험, 조립, 발사운영, 발사 등 발사체 개발과정의 한 사이클을 모두 경험해 발사체 선진국의 운영체계와 경험을 체득할 수 있었어요.”
그는 “발사운영은 발사체, 발사대, 위성추적, 관제, 비행안전 등 다양한 분야의 대규모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복잡한 절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며 “발사운영의 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 그런 노하우를 가졌다”고 했다.
“확실히 기술이전이 됐다고 봅니다. 기술이전 자체는 원칙적으론 어렵지만, 장기를 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과 붙으면 하수가 많이 늘게 돼 있어요. 저와 함께 일했던 러시아 측 연구원에게 그동안 발사체를 몇 번 쏘아 봤느냐고 물었더니 ‘1960년부터 했으니 한 300번 쐈다’고 그래요. 경력이 3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더 늙은 연구원이 나무랍니다. ‘경험이 없다’고요. 거의 매일 혼이 나더군요. 그 할아버지 연구원의 경력이 50년이었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기술자의 포스가 느껴졌어요. 그분 말 한마디가 스펙이 되더군요. 나로우주센터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분들의 머릿속에서 해결책이 바로 나옵니다. 참 부러웠어요.”
“2017년쯤 75t 액체엔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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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호 개발에 땀 흘렸던 항우연 연구원들. 왼쪽부터 설우석 실장, 박정주 실장, 조인현 책임연구원. |
2006년 3월 실험 도중 폭발사고가 난 적도 있었다. 물적 피해는 물론, 후유증으로 많은 연구원이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굉음과 폭발 장면이 떠올라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우주환경에서 하는 고공 점화가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았어요. 실험은 했지만, 경험이 전무했거든요. 그러나 2009년 1차 발사로 그런 불안은 해소됐어요. 엉뚱하게도 페어링 분리가 안 돼 실패했으나, 우리가 만든 킥 모터가 완벽하다는 걸 확인하게 됐어요.”
조 연구원은 “러시아 측에서 처음엔 킥 모터 기관을 자신들이 만들어 우리측에 제공하겠다고 하더군요. 킥 모터가 대륙간탄도탄에 들어가는 기술이니까요. 러시아에 맡겼더라면 나로호 상단개발이 손쉬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기술로 하겠다고 설득했고 결국 관철했어요. 만약 러시아 기술로 만들었다면 지금 엄청난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요?”
발사체체계실 박정주(朴政柱) 실장은 처음 러시아와 계약을 할 당시를 떠올렸다.
“협상을 진행하면서 나로호를 두 번 발사키로 했는데, 두 번 모두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대두했어요. 그래서 계약서에 ‘두 번 발사 중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3번째 발사를 요구할 수 있다’로 명기했어요. 1단 로켓을 만든 러시아의 흐루니체프사(社)는 성공을 확신해서인지 우리 쪽 주장을 수용했어요.
그런 계약이 아니었으면 두 번의 실패로 나로호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을 겁니다. 작년 러시아의 언론이 ‘3번째 발사비용을 안 받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흐루니체프 사장에게 물으니 ‘불행하게도 사실’이라고 답했어요.”
—러시아가 손해를 봤을까요.
박 실장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설우석(薛又碩) 엔진개발실장은 나로호를 만드는 동안 액체엔진 개발에 힘써 왔다. 엔진개발실에는 70명이 넘는 연구원이 있다. 나로호 개발기간 중 이미 30t급 액체엔진에 대한 선행연구와 핵심부품 개발을 완료했고, 현재 KSLV-Ⅱ에 필요한 75t급 엔진을 만들고 있다. 달탐사선을 실을 KSLV-Ⅱ에는 75t급 액체엔진이 4기나 들어간다. 4기를 합치면 로켓 1단의 추력(推力)이 300t급이 된다. 나로호의 2배. 그 위 2단에 75t 액체엔진 1개를, 3단에 7t 액체엔진을 더 얹는다. 설 실장의 말이다.
“지금 계획은 핵심부품을 먼저 테스트해 보는 것인데, 일단 2014년 상반기 정도면 부품실험을 나로우주센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2015년 상반기에는 엔진시스템, 그러니까 부품들을 조립해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2017년 말쯤 75t 액체엔진 하나를 만들어 리액션할 계획이죠.”
| 한국의 우주개발 기술자립도 항우연은 ‘위성체 분야’의 경우 우주기술 선진국 대비 65~70%의 연구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다. 원격측정 명령계는 80%, 구조계는 95%, 열제어계는 85% 등 일부 분야의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한다. 반면 ‘위성정보 및 임무활용 분야’는 선진국 대비 50~70%로 다소 낮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탑재체(塔載體) 분야’ 역시 우주기술 선진국 대비 50~60% 수준이다. 일정 수준은 유지하고 있으나 위성체, 발사체 중심의 개발투자가 이뤄지면서 상대적으로 이 분야의 기술력이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발사체 분야’는 기술 수준이 선진국 대비 70~85%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구조체 85%, 전자탑재 시스템 85% 등으로 일부 분야의 기술력은 세계 최상위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한다. ‘액체엔진 분야’는 선진국 대비 60~70% 수준. 고에너지, 고밀도 등 우수한 물리적 성질을 갖춘 추진체 기술의 경우 85% 수준, 시동장치 기술은 80% 수준이라고 한다. 역시 일부 분야는 세계적 수준에 근접해 있다. |
과학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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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우연이 자체 기술로 만든 1단 로켓의 연료통. |
그런데 항우연의 판단에 ‘과학’이 아닌 ‘정치’가 개입돼 있는지 따져야 한다. 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TV토론에서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펄럭이게 하겠다”고 말했고, 인수위 때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는 당초 2025년으로 계획된 무인 달탐사선 발사를 5년 앞당기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항우연은 7년 내 달을 향해 로켓을 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구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다시 신발끈을 죄고 있다.
15개 정부출연연이 일제히 달탐사를 돕겠다며 자신만의 강점기술로 ‘우주화’ 가능성을 타진하겠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나 ‘기획’의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종합발사체 기술은 ‘어려움 종결자’라는 말이 있다. 로켓은 돈과 시간, 인력, 기술력이 종합 체계를 이뤄야 비상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한국사회의 냉혹한 시선이 달라지기 어렵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항우연 조광래 연구위원은 “KSLV-Ⅱ를 발사대에 세우기까지 앞으로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실패를 싫어하는 분위기라면 연구개발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고 말했다.
나로호의 성공으로 항우연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도전은 험난해 보인다. 과학자를 독려하되 정치와 진영(陣營)의 논리를 과학에서 걷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