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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계화, 代案은 없는가 11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이 희망이다

글 :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글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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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玄鎭
⊙ 62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 한국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 국제개발협력학회장 등 역임.
⊙ 저서: 《지구시대 세계의 변화와 한국의 발전》 《NEW ASIAS》 《글로벌 NGOs》 등.

孔錫己
⊙ 41세. 서울대 사회학과 학사·석사,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글로벌 NGOs》 《인권으로 읽는 동아시아》 등.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벌어졌던 부안의 등용마을에서는 시민발전소 건설을 통한 에너지 자립마을실천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가치’를 먹고 사는 사람들
 
  지난여름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를 다녀왔다. 많은 협동조합을 방문하지는 못하였지만 사람들의 생활현장 곳곳에서 확인한 사회적 협력 분위기는 꼭 시골 마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상호부조의 마을 공동체 문화가 도시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협동조합 기업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경쟁이 아닌 협력하는 분위기, 연대정신, 기업문화,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이윤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때에도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에서는 거의 실직이 없었다. 그것은 협동조합의 가장 큰 목적이 일자리 창출과 안전한 일자리 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동조합 기업이 도산의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도산할 경우 다른 협동조합이 실직자를 고용 승계함으로써 지역 내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내 협동조합 간의 강한 연대정신을 구축하게 된다. 비록 협동조합 기업이 지역 내에서 이윤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도모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조합원, 즉 사람과 그들의 일자리 보장이었다.
 
  이런 기업문화 때문에 이탈리아 협동조합에는 일반 기업에서 협동조합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비록 다른 기업에서 더 많은 연봉을 준다고 하더라도 협동조합으로 이직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이는 일반 기업의 경우 상시적으로 자신을 압박하는 경쟁 분위기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반면에 협동조합 기업은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더욱 더 상호 협력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게 된다. 그 결과 협동조합에 입사하면 이직하는 경우가 줄어들게 된다.
 
 
  “사회적 가치는 급여의 일부”
 
  그렇다면 왜 그들은 협동조합에 열광하는 것일까? 단순한 협력적 분위기와 기업문화로만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 혹은 사회적 협동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먹고 살기에 다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그라나롤로(Granarolo)는 낙농협동조합 그란라테(Granlatte)가 세운 낙농기업으로서 전 지구적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아프리카 밀크 프로젝트’를 전개하였다.
 
  그라나롤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려운 경제여건을 헤쳐나갈 수 있게 했던 낙농업의 소중한 경험을 저개발 국가에도 전수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첫 대상국가로 탄자니아를 선택했다. 지난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탄자니아 농민을 교육해 낙농기술을 전파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탄자니아의 2만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지금 활동중에 있다.
 
  이처럼 자신의 소중한 협동조합 경험을 동원하여 저개발 국가의 취약계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다시 말해 조합원은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참여하였다는 사실에서 협동조합 기업에 애착을 갖고 헌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다른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를 받고 있는 덴마크 협동조합 은행 메르쿠루(Merkur)의 한 직원이 적은 월급에 대해 결코 아쉬워하거나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은행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급여의 일부예요”라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는 것은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협동조합 기업 종사자의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사회적 가치를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구현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급여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의식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즉 재사회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일정 지역 내에서 필요한 삶의 재화나 서비스를 모두 해결하였다. 그러나 세계화가 확대 및 강화될수록 외부의 재화나 서비스 공급이 증가하면서 지역 생산자 및 서비스 공급자와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지역 경제는 위축되고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전 지구적 세계경제 체제로의 편입 과정 맥락에서 지역 공동체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
 
  지역 문화, 사회적 가치, 정치적 연대의식을 존중하며 협동조합의 정신을 발휘하여 지역경제를 지키는 것이 가치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대응방식이다.
 
 
  협동조합 간 협력활동
 
  개인이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는 가격경쟁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이 협동조합이라면, 개별 협동조합이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을 협동조합끼리 협력해 나가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 간의 협력’인 것이다. 볼로냐 지역의 유치원 운영사업은 대표적인 협동조합 간의 협력활동이다. 예컨대, 볼로냐의 다섯 개의 협동조합-사회적 협동조합이면서 노동자 협동조합인 카디아이(CADIAI), 급식협동조합 캄스트(CAMST), 건축협동조합 치페아(CIPEA)-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열 개의 유치원 카라박(KARABAK)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초국적 기업이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있으며, 지역을 떠나 살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때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수는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바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교육과 일상에서 연관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체득된 지식이 쌓이지 않을 때 사람은 외부의 유혹과 도전에 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볼로냐 지역의 협동조합도 동일한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최근 우리 사회에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몇몇 선도적인 지자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 의지와 참여 속에 마을의 물리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개선하여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바탕을 두곤 한다. 기존의 관(官) 주도 마을개선 사업에서 벗어나 지역주민이 직접 계획을 세우고 마을을 변화시키려는 자발적 참여 과정이 주목된다. 이를 통해 예상되는 주요사업에는 주거환경 및 공공시설의 개선, 마을기업의 육성, 환경보전 및 개선, 마을 자원을 활용한 호혜적 협동조합, 마을 공동체의 복지 증진, 그리고 마을 공동체와 관련된 단체 및 기관의 지원이다.
 
  이에 발맞추어 서울시는 지난 9월 11일 은평구 불광동의 옛 국립보건원 자리에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를 개설하면서 앞으로 ‘주거, 복지, 문화, 경제 공동체’ 등 5대 시책 및 68개 사업에 대해 1340억원을 투입할 것을 약속하였다. 현 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서울시의 골목마다 추억과 삶의 기억이 남아 있는 도시로 만들 것이며, 이를 통해 자살과 범죄, 빈곤, 갈등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이 ‘마을 공동체 복원사업’에 대해 어느 누구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라고 강조한 마하트마 간디의 주장처럼 우리 모두는 마을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을 소망하고 있다.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근대화-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은 이 소중한 마을을 많은 사람이 등지게 만들었고, 이제 다시 그 가치를 확인하고 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민주화를 넘어 1990년대 초 부동산값이 정점에 다다르면서 신도시 중심의 재개발 사업과 최고의 교통사고율을 목도하면서 토건의 도시 개발시대로부터 회귀하여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소수의 지역생활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신자유주의 세계화 광풍이 몰아치면서 전 지구적 차원의 경쟁모드 확산으로 인해 우리 삶이 더욱 피폐해지면서 ‘겉으로는 성장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고통의 상처가 곪아 터질 정도로’ 심각해짐을 자각하는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본격적으로 지역 마을 만들기 운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마을 만들기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전라북도 진안군을 비롯해 광주, 부산, 대구, 수원, 성남, 안산 등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을 만들기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초기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트렌토시의 100여 년간의 지역 공동체 살리기 협동조합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톨릭 전통 위에서 소외지역 및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상호부조의 경험은 최악의 경제상황을 상생적 협력활동을 통해 극복하는 너무나도 소중한 ‘공동의 기억’(collective memory)을 만들었던 것이다. 트렌토 지역이 지역 공동체 발전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사회적 협동조합 경험에 기초한 공동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과거의 공동의 기억에 기초한 상호 신뢰와 협동을 통해 그것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정 과거의 마을 공동체 해체라는 아픈 공동의 기억을 새롭게 대체할 수 있는 ‘공동의 기억’을 만들 수 있는 장기 비전을 갖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 주도의 방식을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라는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이런저런 행정적 혹은 물질적 지원이 개입될 때 부지불식간에 마을 공동체 사업은 또 하나의 전시성 사업으로 전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주민들의 자각에서 시작된 공동의 노력을 통해 마을지역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에 혹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애물을 치워주는 것만으로 지자체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마을 공동체의 자생력과 건강성을 높이는 데 더 바람직한 접근이다.
 
 
  변산 생활 공동체의 사례
 
마포구 성미산 마을은 도시형 공동체 운동의 모델이 되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과 개입이 없이도 우리 사회에는 자생적으로 이러한 마을 만들기 활동을 시작한 사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윤구병 선생이 1995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서 시작한 ‘변산 생활 공동체’가 있다. 처음에는 유기농 중심의 농사 위주의 공동체 활동에 집중하였지만, 1997년부터는 변산 공동체 학교를 개설하여,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기본지식에 관한 학습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농사일, 집짓기, 음식 만들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살림 공부를 가르쳤다. 변산 생활 공동체는 크게 두 개의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밥상 공동체로 모두 8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50명으로 구성된 20가구의 마을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의 모습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기초생산 공동체를 이루면서 상호 협력하고 공생하는 길을 찾아가는 아주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손색이 없다.
 
  향후 변산 지역 1000가구의 4000~5000명의 사람들이 이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면, 윤구병 선생의 소망처럼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즉 땅과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풍성하게 지속되는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을 공동체가 변두리 시골 지역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도심 속 마을에서 호혜와 연대활동을 통해 따뜻하고 착한 경제활동이 도시 안에서 실천된 곳이 바로 ‘성미산 마을’이다. 이곳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 일대의 지역주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형 공동체로서 도심 속에서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성미산 마을은 1994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2500여 가구가 참여하는 제1호 마을기업인 ‘마포두레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으며, 12년 과정의 대안학교를 개설하였고, 유기농 가게이자 마을 사랑방인 ‘동네부엌’과 마을 카페인 ‘작은나무’, 동네방송국인 ‘마포FM’ 등을 지역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성미산 마을극장은 건물의 지하공간을 극장으로 변환시킨 곳으로 그 공간을 통해 연극, 콘서트, 미술전시, 영화상영, 회의 등을 상시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소위 마을 사람들의 공공영역이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성미산 마을의 10년 경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마을은 어떤 마스터플랜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서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하고, 공감하고, 고민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협력하고, 때로는 공동의 문제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결코 어떤 사명감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에서 채워지지 않는 필요, 즉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였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이후 다양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이어진 것이다.
 
 
  ‘헌신’에서 ‘혁신’의 여정으로 떠나는 사람들
 
  최근 우리 사회에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이 확대되자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소위 ‘생산적 복지모델’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왜 우리 사회가 사회적 기업에 대해 이토록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서구 사회도 어리둥절해 할 정도이다.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법적 개선과 대규모 물적 지원을 추진하는 사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이 올바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 적절한 재정지원 체계, 혁신을 견인하는 시장, 시민사회의 지식공유 네트워크, 상호부조의 전통과 협력 능력, 그리고 정치적 지원 등이 포함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적 기업은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즉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시민사회 운동 전통이 강한 사회이다. 오랜 민주화 운동 경험을 통해 강한 시민사회의 속성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 참여한 시민사회 활동가는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목표 속에 자신의 삶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투입하였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독특하면서도 귀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헌신적인 시민사회 활동가가 대안 경제 모델로서의 사회적 기업을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몇몇 선구적인 활동가는 사회적 기업에 올인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 과제를 위해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의 여정을 떠난 헌신적인 시민사회 운동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이러한 헌신적인 운동가가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는 모습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사실 과거 급진적 운동가에서 점차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하는 것을 단순한 변절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과거 급진적 방식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자 했던 방식을 넘어 이제는 실질적 민주화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자기 변신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적 기업가로의 변신은 헌신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생산적 복지, 지역 공동체 구축, 구성원 간의 신뢰회복을 통한 지역 거버넌스 구축 등과 같은 담론들은 결코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 없으며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헌신을 넘어선 혁신이 반드시 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혁신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지자체의 지원 필요
 
  운동가에서 기업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바로 자기 스스로 혁신의 방법을 발굴하고 이것을 기업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일례로 충북 청원의 한 사회적 기업(플라스틱 페트병 재활용 사업장) 대표의 경우 지역 시민사회 운동 부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사회적 기업에 매력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후,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사업 전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사업장의 혁신을 끊임없이 시도함으로써 보다 큰 이윤을 창출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단순한 헌신만으로는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지자체의 행정적인 지원이 사업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한 운동가가 과거처럼 정부나 지자체와의 거리 두기 경험을 지속한다면 지역 내 공동체 구축과정에 제한적인 역할만을 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 진영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동시에 사회적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다양한 구성원 간의 지속적인 만남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사회적 기업의 토양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경우, 지자체의 제도 및 행정적 지원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이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지역 거버넌스 차원에서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역 내 마을 만들기 사업에 헌신하고 있는 지역공무원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는 시민사회 진영에 기초한 사회적 기업의 초기 성공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부안 등용마을 사람들
 
  이제 보다 구체적인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활동 경험을 통해 대안 세계화의 가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지난 2003년부터 약 10년간 전북 부안 지역 공동체의 아픔과 슬픔의 기억들이 어떻게 새로운 공동의 기억으로 대체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등용마을이 에너지 자립마을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에 우선성을 두게 되었으며, 이것이 향후 어떻게 다양한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등용마을의 시공간적 특성을 부안의 역사, 문화, 사회정치적 갈등 경험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등용마을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며, 변산 바닷가가 마을 서쪽으로 4km만 가면 위치해 있어 산, 바다, 들이 골고루 결합된 마을로 여기에는 30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50년 전 천주교 김대건 신부의 종손이 이 등용마을에 정착하면서 천주교라는 종교적 토양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둘째, 종교, 문화, 역사적 전통 이외에 부안지역이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갈등의 장소로 기억되는 것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대운동이 전개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2003년 ‘위도 방사성 핵폐기물 처분장’ 추진에 반대하며 2년여 동안 치열한 반대투쟁을 전개한 결과, 300여 명이 넘는 지역주민이 구속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는 고통의 결과를 낳았다. 이후 1년이 넘는 촛불집회, 학생등교 거부운동, 고속도로 점거 등 수많은 반대운동과 최초의 독자적 지역주민 투표를 통해 유권자 중 72%의 투표에 92%가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했다. 마침내 2005년 9월에 핵폐기장 건설을 정부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이 갈등의 상처는 너무나 컸고 주민들이 겪는 외상(트라우마)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결과 지역주민 내 불신은 물론 외부 집단-정치, 언론, 심지어 시민사회-에 대한 불신 또한 극에 달했다.
 
 
  핵 폐기장 반대에서 재생에너지운동으로
 
부안 등용마을은 에너지 자립마을 실천운동을 통해 갈라졌던 지역민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셋째, 부안의 놀라운 특성은 지역주민 스스로 이 아픔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이는 ‘주민에 의한’ 에너지 자립마을로 거듭나는 프로젝트였다.
 
  부안 주민들은 초기에 부안에 핵폐기장 건설반대를 외치다가 대한민국 어디에도 핵폐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아갔고, 이후 핵폐기장을 포함한 원자력 발전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였고 종국에는 에너지 정책을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핵폐기장 반대 운동이 정리된 후에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지역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시민발전소 건설이었다.
 
  넷째, 에너지 자립마을 실천운동을 통하여 마을 주민 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궁극적으로는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등용마을 주민들은 에너지 자립을 꾀하기 위하여 2015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절약 및 절전운동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더 나아가 총 사용 에너지의 50% 이상을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의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였다. 2007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으로 끝난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바이오디젤용 유채생산 시범사업’은 논과 밭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에너지 전환과 자립을 구현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경험이었다.
 
 
  에너지 자립마을
 
  마지막으로 부안 등용마을 사람들의 마을 공동체 회복 과정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력을 훼손시킬 수 있는 어떤 사업도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도 정부 지원금의 유혹이 계속되고 있으며, 혹 지원금을 받는 즉시 그동안 소중하게 함께 만들어온 주민의 공동의 기억이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주민들은 에너지 자립 교육과 실천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호 신뢰와 소통의 전통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항상 마을의 공동선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을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으며, 이것은 향후 이 지역 특색에 맞는 새로운 협동조합의 건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등용마을 더 나아가 부안지역 주민들은 과거의 아픈 공동의 기억을 에너지 자립마을이라는 새로운 공동의 기억으로 대체시켰으며, 이 소중한 경험은 궁극적으로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 토양을 만드는 데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고려할 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속도전의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대해서도 보다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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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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