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거죠?”
지난해 말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박인배(58) 극단 현장 예술감독을 지명(指名)했다. 박 신임 사장은 진보성향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상임이사 출신으로 박 시장 취임 이후 정책자문위원회에서 문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장을 “절차에 따라 코드가 아닌 능력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었다.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 나머지 지원자들은 들러리 선 것 아니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시 출연기관인 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이 논란이 된 것은 사장 공모에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과 신선희 전(前) 국립극장장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은숙씨는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던 문성근씨의 형수이고, 신선희씨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신기남씨의 누나다.
시장이 바뀌자마자 야권 유력정치인 친척들이 시(市)출연기관장을 하겠다고 나서자 주위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주요언론은 이를 비판했고, 그 때문인지 문씨와 신씨는 결국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장 선임 절차가 첩보작전처럼 이뤄지면서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서울시와 시의회는 “세종문화회관이 문화예술의 공익적인 기능을 향상시키고, 재단법인의 설립목적에 맞는 전문성을 가지게 하겠다”며 사장 선임 절차를 개정하는 조례를 지난해 9월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사장 추천 권한은 이사회에서 추천위원회로 넘어갔다. 개정 조례에 따라 박 시장은 위원회가 추천한 3인 가운데 박인배씨를 지명했다. 위원회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3인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선정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 궁금증은 ‘추천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됐는지’와 ‘추천된 3인이 누구인지’에 쏠렸다. 보통의 경우 절차가 마무리되면 공식·비공식적으로 이러한 의문은 풀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 서울시에 선정과정을 알고 싶다고 다각도로 문의했지만 서울시는 최종 추천인 3인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서류·면접 심사를 비공개 장소에서 언론을 따돌리며 첩보작전하듯 진행시킨 세종문화회관 역시 추천위원 명단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후 밝혀졌다.
처음 “추천위원회 위원 전부가 야당인사로 채워졌다”는 제보를 받고 설마 그렇게 했을까 의심했다. 그래도 한두 명은 한나라당 성향 인사가 포함됐을 것이라는 ‘상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제보는 사실이었다. 조례에 따라 추천위는 시장 추천 3명과 서울특별시의회 추천 3명으로 구성해야 한다. 시의회 몫인 3인의 추천권은 민주당 소속의 시의회 의장이 행사했다. 추천 과정에서 시의회에서 세종문화회관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소외됐다. 문체위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맡고 있다.
문체위 관계자는 “누가 보더라도 추천위원 선정이 객관적이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색깔에 따라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례에서 기관장인 시의회 의장이 아닌 기관인 시의회가 3명을 추천하도록 규정한 것은 다수당이 2명을 소수당이 1명을 추천해 결과는 다수당의 의사대로 되더라도 최소한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며 “색깔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정하게 심사를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시의회 운영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관례에 따라 처리했다”는 답이 나왔다. “과거 한나라당이 시의회 의장을 맡았던 시절에도 같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조례와 관례에 따라 최소한 절차상으로는 하자(瑕疵)가 없게 선임됐다. 세종문화회관 사장뿐 아니라 다른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장 역시 절차에 따른 코드 인사가 예상된다. 시장과 생각이 같은 사람이 산하기관장이 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끼리끼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공정했다면서 상대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대한 비리(非理)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가식(假飾)이고 위선(僞善)이다.
총선, 대선이 다가오면 한국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된다. 그 근본 원인은 코드 인사가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대로 인사는 그야말로 적재적소여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다고 해서 ‘좌파’ 예술인들이 완장 차듯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우파를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해 말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박인배(58) 극단 현장 예술감독을 지명(指名)했다. 박 신임 사장은 진보성향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상임이사 출신으로 박 시장 취임 이후 정책자문위원회에서 문화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장을 “절차에 따라 코드가 아닌 능력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었다.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 나머지 지원자들은 들러리 선 것 아니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시 출연기관인 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이 논란이 된 것은 사장 공모에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과 신선희 전(前) 국립극장장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은숙씨는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던 문성근씨의 형수이고, 신선희씨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신기남씨의 누나다.
시장이 바뀌자마자 야권 유력정치인 친척들이 시(市)출연기관장을 하겠다고 나서자 주위의 반응은 곱지 않았다. 주요언론은 이를 비판했고, 그 때문인지 문씨와 신씨는 결국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임명되지 못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장 선임 절차가 첩보작전처럼 이뤄지면서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서울시와 시의회는 “세종문화회관이 문화예술의 공익적인 기능을 향상시키고, 재단법인의 설립목적에 맞는 전문성을 가지게 하겠다”며 사장 선임 절차를 개정하는 조례를 지난해 9월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사장 추천 권한은 이사회에서 추천위원회로 넘어갔다. 개정 조례에 따라 박 시장은 위원회가 추천한 3인 가운데 박인배씨를 지명했다. 위원회는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3인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선정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 궁금증은 ‘추천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됐는지’와 ‘추천된 3인이 누구인지’에 쏠렸다. 보통의 경우 절차가 마무리되면 공식·비공식적으로 이러한 의문은 풀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 서울시에 선정과정을 알고 싶다고 다각도로 문의했지만 서울시는 최종 추천인 3인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서류·면접 심사를 비공개 장소에서 언론을 따돌리며 첩보작전하듯 진행시킨 세종문화회관 역시 추천위원 명단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후 밝혀졌다.
처음 “추천위원회 위원 전부가 야당인사로 채워졌다”는 제보를 받고 설마 그렇게 했을까 의심했다. 그래도 한두 명은 한나라당 성향 인사가 포함됐을 것이라는 ‘상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제보는 사실이었다. 조례에 따라 추천위는 시장 추천 3명과 서울특별시의회 추천 3명으로 구성해야 한다. 시의회 몫인 3인의 추천권은 민주당 소속의 시의회 의장이 행사했다. 추천 과정에서 시의회에서 세종문화회관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는 소외됐다. 문체위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맡고 있다.
문체위 관계자는 “누가 보더라도 추천위원 선정이 객관적이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색깔에 따라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례에서 기관장인 시의회 의장이 아닌 기관인 시의회가 3명을 추천하도록 규정한 것은 다수당이 2명을 소수당이 1명을 추천해 결과는 다수당의 의사대로 되더라도 최소한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며 “색깔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정하게 심사를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시의회 운영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관례에 따라 처리했다”는 답이 나왔다. “과거 한나라당이 시의회 의장을 맡았던 시절에도 같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조례와 관례에 따라 최소한 절차상으로는 하자(瑕疵)가 없게 선임됐다. 세종문화회관 사장뿐 아니라 다른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장 역시 절차에 따른 코드 인사가 예상된다. 시장과 생각이 같은 사람이 산하기관장이 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끼리끼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공정했다면서 상대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대한 비리(非理)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가식(假飾)이고 위선(僞善)이다.
총선, 대선이 다가오면 한국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된다. 그 근본 원인은 코드 인사가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대로 인사는 그야말로 적재적소여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다고 해서 ‘좌파’ 예술인들이 완장 차듯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우파를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채인기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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