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되자마자 사람에게 치명타를 날려 사람이 사망하면 바이러스도 다른 사람에게 감염할 기회조차 잃는다. 이처럼 ‘너죽고 나죽고’ 식 바이러스는 사람 간 빠른 감염 확산은 불가능. 사망률이 매우 낮은 신종플루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잘 적응한 ‘스마트한 바이러스’
⊙ 이번 사태의 교훈은 ‘有備無患’, 지난 7월 준공된 백신 생산시설 없었다면 일대 혼란에 빠졌을 것
⊙ 우리나라의 신종플루 사망률은 0.1%로 이는 계절성 독감 수준.
광우병 촛불사태를 교훈 삼아 과민반응 자제해야
成百麟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 1955년 대전 출생.
⊙ 서울대 약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 석사, MIT 유전공학 박사, 옥스퍼드大 대학원
바이러스학 박사 후 연구원.
⊙ 대한백신학회 이사, 한국산업미생물학회 국제간사, 기술표준원 전문위원 역임.
⊙ 現 유엔 생물무기금지국제협약 정부대표, 영국국제인명기관 부의장, 프로테온 대표이사.
⊙ 상훈: ‘20세기를 빛낸 2000명의 학자’ 수록(미국 인명기관, 1999년),
글로벌 500 수록(Barons Who’s Who, 2000년).
⊙ 이번 사태의 교훈은 ‘有備無患’, 지난 7월 준공된 백신 생산시설 없었다면 일대 혼란에 빠졌을 것
⊙ 우리나라의 신종플루 사망률은 0.1%로 이는 계절성 독감 수준.
광우병 촛불사태를 교훈 삼아 과민반응 자제해야
成百麟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 1955년 대전 출생.
⊙ 서울대 약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공학 석사, MIT 유전공학 박사, 옥스퍼드大 대학원
바이러스학 박사 후 연구원.
⊙ 대한백신학회 이사, 한국산업미생물학회 국제간사, 기술표준원 전문위원 역임.
⊙ 現 유엔 생물무기금지국제협약 정부대표, 영국국제인명기관 부의장, 프로테온 대표이사.
⊙ 상훈: ‘20세기를 빛낸 2000명의 학자’ 수록(미국 인명기관, 1999년),
글로벌 500 수록(Barons Who’s Who, 2000년).
- 수능을 7일 남긴 2009년 11월 5일 인천 남동구보건소에서 수능감독관에 선정된 선생님들이 신종플루 예방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11월 초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가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상향 조정됐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6월 중순에 인플루엔자 유행경보를 최고 단계인 대유행(pandemic) 단계로 상향 조정한 지 4개월여 만의 일이다.
이번 조처로 인해 짧은 기간에 급속히 증가할 감염자와 입원환자, 중증환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강화되게 됐다. 특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됨에 따라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H1N1) 대응을 위해 신속히 의료진이나 의료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특별히 휴교령이나 여행제한 등의 차단조치는 없으며, 우리 일상생활에도 별로 달라진 점은 없다.
그러나 어떤 조치든 순작용과 역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신종플루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뒤늦게 최고 단계 수위조절이 필요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괜스레 필요 이상으로 국민불안의 확산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히 있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 바로 그것이다. 신종플루의 확산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달 말부터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갖춘 독감백신 생산시설을 이용하여 자체 생산된 것이다. 이 생산시설은 2006년 말에 공사를 시작하여 올해 7월 준공한 것이다. 만일 이 백신 생산시설이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엄청난 사회혼란에 처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수반과 담당 장관은 선진국에 발품을 팔면서 백신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자기 나라에 공급할 백신도 모자란다며 콧대를 세웠을 것이고. 高價(고가)로 구입한, 그나마 얼마 안되는 백신을 가지고 서로 접종받으려는 사람들로 인한 사회 혼란은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독감백신 생산시설이 국가 기반시설로 중요하다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백신 생산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는 H5N1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의 인체감염 사건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주도로 100억여 원의 국토균형발전기금과 30억원 정도의 전라남도 지자체 예산을 중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초기에 여러 제약사 간의 컨소시엄으로 진행했다가 현재 (주)녹십자 중심의 공장으로 설립된 것이다. 아이러니일지 모르지만 아직도 AI는 인체 對(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AI가 미적대고 있는 사이에 ‘신종플루’가 치고 나온 것이다. 결국 AI 확산경계로 시작된 국가주도 사업이 당시 전문가들도 전혀 예측을 못했던 신종플루의 확산을 저지하는 백신 생산의 첨병기지가 됐다.
이 같은 ‘용도변경’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는 신종플루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백신 생산시설과 같은 장기적 기반시설 준비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빨리빨리’ 문화는 성수대교 참사와 삼풍백화점 사고 등 많은 부실과 부작용을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과학자들은 빠른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받는다. 어쩌면 ‘황우석사태’도 이러한 시대적 문화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백신개발처럼 10년여 세월이 요구되는 연구개발 투자와 장기간의 연구가 요구되는 新藥(신약)개발은 애초부터 우리 국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벤처붐은 일었으나 벤처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환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백신, 신약개발 등 고부가가치 생명공학 산업에서 성공하려면 장기간 버티기를 해야 한다. 혹자는 생명공학의 영문 이니셜인 BT가 ‘버티기’의 약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정서에 맞지 않으니 고부가가치 생명공학 백신, 항바이러스 신약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好機(호기)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팬데믹(대유행)을 잡기 위해서는 이의 치료제와 예방백신의 개발과 허가속도가 이에 걸맞게 빨라져야 된다. 즉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오랜 기간을 거친 후 발매를 허락하는 의약품 허가기준을 팬데믹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미국식약청(USFDA)은 2년 전 국가위기 상황에서 국가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의약품을 빠른 기간에 허가하는 신속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의하면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연구 기간을 최소화하여 의약품 개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작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신속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제 10여 년을 투자하면서 기다리지 않더라도 비교적 단시간에 신약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은 감염성 질환 퇴치라는 생명공학 산업에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신약개발과 ‘빨리빨리’ 문화
이런 신속허가 제도를 기반으로 하여 해외에서 단기간 내에 H5N1형 AI 백신이 발매됐다. 사실 H5N1형 바이러스가 인체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환자가 없는 상황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백신 효능을 확인하는 임상실험을 면제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확산되는 신종플루를 따라잡기 위해 백신개발에 요구되는 복잡한 임상연구 규정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신종플루의 치료제로 타미플루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타미플루 耐性(내성) 바이러스 확산이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H5N1형 AI 감염 환자로부터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가 보고됐다.
이미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계절형 독감바이러스 H1N1형에서 내성이 확산되어 90% 이상이 내성바이러스다. 이뿐 아니라 H1N1 신종플루에서도 타미플루에 대한 내성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치료제를 신속하게 허가하여 발매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최근 새로운 독감치료제인 페라미비어 제품이 미국 FDA로부터 발매허가를 받은 것이 좋은 예다.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신속히 국내에 허가를 진행할 예정으로 있다.
타미플루는 일반적인 처방에 의하면 하루 2회, 5일간 복용한다. 몸에 흡수되어 분해되는 속도를 고려할 때 자주 복용해야 한다. 이에 비해 페라미비어는 정맥주사로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일단 주사시 1주일간 효능이 유지된다. 따라서 重症(중증)으로 발전하는 신종플루 환자에 대한 효과가 크다. 이를 개발한 바이오크라이스트라는 회사는 주가가 엄청나게 뛰었다.
이러한 의약품 신속허가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연구개발 정서에도 부합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종플루 사태는 IT산업에 비해 부진했던 BT 신약산업에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분히 백신 연구개발에 투자해 오던 회사에 도약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녹십자는 기존 제약사 매출액 순위 4위에서 단숨에 2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인플루엔자 백신 신약개발 관련 기존 프로젝트를 없애고 연구원을 해고했던 CJ는 도약의 기회를 스스로 없앤 모양새가 됐다.
새로운 독감의 등장이 생명공학, 신약개발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우리의 대처전략이 적절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민반응이 문제다
11월 중순부터 국내에 신종플루 백신접종이 시작되면 접종 후 약 한 달이 지나야 예방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만일 12월 말 정도부터 신종플루가 자연적으로 소멸된다면 예방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정란을 이용하는 현재의 독감 백신 생산 방법으로는 이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초기 WHO로부터 백신주를 추천, 분양받고 실제 환자에게 접종될 때까지 약 5~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늑장 대응도 문제이지만 과도한 대응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과도한 신종플루 대책은 막대한 國庫(국고)의 손실로 연결될 수 있다. 또 과도한 불안심리는 사회 불안과 사회구성원 간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타미플루 치료제 사재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선진국에서도 발생됐다. 이는 특정 엘리트 집단, 경제집단과 그 외의 서민집단 간의 소외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지역 계층 간 갈등이 잠재된 우리 사회에서 사망률이 매우 낮은 감염성 질환과 같은 일로 인해 사회 구성원 간 소외감이 발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1년 전 우리나라는 100만명을 촛불시위로 몰고 간 광우병 사태로 사회가 혼란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수입 쇠고기로부터 감염을 우려한 많은 시민 간에 확산된 터무니없는 공포가 엄청난 사회불안과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가능성도 지극히 희박한 일에 대해 과민반응하여 일어난 소동이었다.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대규모 촛불집회’는 영문으로 ‘massive candlelight demonstration’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의 영문 이니셜 MCD는 우연일지는 몰라도 광우병을 지칭하는 ‘mad cow disease’의 그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신종플루와 같은 감염체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술책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H5N1형 AI의 사망률이 60%를 넘을 정도로 독성이 높은 이유는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과민반응에 의한 역기능적 결과다.
아직 H5N1 바이러스에 인체 간 감염이 확산된 적이 없다. 인체가 새로운 침입자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과도한 반응은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폐조직에까지 심한 손상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좀도둑을 강도로 만든 격이다. 집에 좀도둑이 들 경우 기억해야 할 것은 대항해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인기척을 내서 도둑이 알아서 도망가도록 유도해야지, 잡으려 들면 도둑은 죽기살기로 대항한다.
변종 가능성
신종플루를 얕봐서는 안되는 이유는 H5N1형 AI 바이러스와 작금의 H1N1 신종플루 사이에 變種(변종) 바이러스의 발생 우려 때문이다. 현재 신종플루에 의한 사망률은 매우 낮아서 우리나라의 경우 0.1% 미만이다. 이는 계절형 독감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가 지난 6월부터 경보의 수위를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AI가 사망률 60% 이상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으나 사망자가 400여 명에 불과한 것은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H5N1형 바이러스와 H1N1 신종플루 사이에 새로운 변종바이러스가 나온다면? 최악의 경우 신종플루처럼 감염성이 높고 AI처럼 사망률이 높은 바이러스의 발생일 것이다. 이는 1918년 40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또 다른 스페인 독감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이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사람을 적절히 살려둬야 사람이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기회가 생긴다. 바이러스와 사람이 적당히 타협하여 같이 공존하는 이른바 ‘윈-윈’ 작전이다.
만약 감염되자마자 사람에게 치명타를 날려 사람이 사망하면 바이러스도 다른 사람에게 감염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이러한 ‘너죽고 나죽고’ 식 바이러스는 사람 간 빠른 감염 확산은 불가능해진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여 감염자의 80% 이상이 사망한다.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도 전에 사람이 죽어버리므로 확산이 되지 않는 것이다. WHO가 경계하는 시나리오, 즉 사망률과 전파력을 겸비한 변종의 출현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좀도둑에 대비한 보험이 필요
만일 출현한다 해도 우리가 대처를 잘하면 바이러스는 시간을 두고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로 진화할 것이다. 말하자면 사망률이 매우 낮은 신종플루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잘 적응한 ‘스마트한 바이러스’다. 그것이 바로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이번 신종플루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는 좀도둑에 의한 도난에 대비해 손해보험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망률 높은 최악의 상황인 강도발생을 대비해 상해보험도 요구된다.
기실 별로 일어나지 않을 사고에 대비해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은 매우 아까운 생각이 든다. 정부가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막대한 국가예산을 사용했다고 하자. 이것이 아까워 질병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해외의 경우 질병 발생을 대비하여 국가 예산 확보는 보험료 계상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즉 독감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나쁜 이웃’으로 보는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公敵(공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
독감은 인류에 가장 잘 적응한 바이러스이며 사회의 일부분이다. 비유컨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도둑이며, 자동차 사고를 유발하는 음주운전자다. 우리는 좀도둑에 과민 대응하여 강도사건으로 몰아가지 말자. 광폭한 음주운전자에 대해 분노를 촉발하여 대형사고로 몰고 가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사고는 발생할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가 보험료를 지불할 태세가 되어 있는가를 묻고 싶다.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제와 예방백신 개발을 위해 국가인프라 구축과 장기적인 국가연구개발 대책마련 태세가 되어 있는가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적정보험료의 산정일 것이다. 사회의 안정과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적정한 국가예산 편성과 의지의 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조처로 인해 짧은 기간에 급속히 증가할 감염자와 입원환자, 중증환자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강화되게 됐다. 특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됨에 따라 신종플루(인플루엔자 A/H1N1) 대응을 위해 신속히 의료진이나 의료자원을 동원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특별히 휴교령이나 여행제한 등의 차단조치는 없으며, 우리 일상생활에도 별로 달라진 점은 없다.
그러나 어떤 조치든 순작용과 역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신종플루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뒤늦게 최고 단계 수위조절이 필요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괜스레 필요 이상으로 국민불안의 확산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분명히 있다. ‘有備無患(유비무환)’이 바로 그것이다. 신종플루의 확산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달 말부터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갖춘 독감백신 생산시설을 이용하여 자체 생산된 것이다. 이 생산시설은 2006년 말에 공사를 시작하여 올해 7월 준공한 것이다. 만일 이 백신 생산시설이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엄청난 사회혼란에 처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수반과 담당 장관은 선진국에 발품을 팔면서 백신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자기 나라에 공급할 백신도 모자란다며 콧대를 세웠을 것이고. 高價(고가)로 구입한, 그나마 얼마 안되는 백신을 가지고 서로 접종받으려는 사람들로 인한 사회 혼란은 불 보듯 뻔할 것이다.
독감백신 생산시설이 국가 기반시설로 중요하다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백신 생산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는 H5N1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의 인체감염 사건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2006년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주도로 100억여 원의 국토균형발전기금과 30억원 정도의 전라남도 지자체 예산을 중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초기에 여러 제약사 간의 컨소시엄으로 진행했다가 현재 (주)녹십자 중심의 공장으로 설립된 것이다. 아이러니일지 모르지만 아직도 AI는 인체 對(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AI가 미적대고 있는 사이에 ‘신종플루’가 치고 나온 것이다. 결국 AI 확산경계로 시작된 국가주도 사업이 당시 전문가들도 전혀 예측을 못했던 신종플루의 확산을 저지하는 백신 생산의 첨병기지가 됐다.
이 같은 ‘용도변경’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는 신종플루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백신 생산시설과 같은 장기적 기반시설 준비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빨리빨리’ 문화는 성수대교 참사와 삼풍백화점 사고 등 많은 부실과 부작용을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과학자들은 빠른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받는다. 어쩌면 ‘황우석사태’도 이러한 시대적 문화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
백신개발처럼 10년여 세월이 요구되는 연구개발 투자와 장기간의 연구가 요구되는 新藥(신약)개발은 애초부터 우리 국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벤처붐은 일었으나 벤처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투자환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백신, 신약개발 등 고부가가치 생명공학 산업에서 성공하려면 장기간 버티기를 해야 한다. 혹자는 생명공학의 영문 이니셜인 BT가 ‘버티기’의 약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정서에 맞지 않으니 고부가가치 생명공학 백신, 항바이러스 신약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好機(호기)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팬데믹(대유행)을 잡기 위해서는 이의 치료제와 예방백신의 개발과 허가속도가 이에 걸맞게 빨라져야 된다. 즉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오랜 기간을 거친 후 발매를 허락하는 의약품 허가기준을 팬데믹 상황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미국식약청(USFDA)은 2년 전 국가위기 상황에서 국가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의약품을 빠른 기간에 허가하는 신속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의하면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연구 기간을 최소화하여 의약품 개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작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신속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이제 10여 년을 투자하면서 기다리지 않더라도 비교적 단시간에 신약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은 감염성 질환 퇴치라는 생명공학 산업에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신약개발과 ‘빨리빨리’ 문화
이런 신속허가 제도를 기반으로 하여 해외에서 단기간 내에 H5N1형 AI 백신이 발매됐다. 사실 H5N1형 바이러스가 인체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고, 환자가 없는 상황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백신 효능을 확인하는 임상실험을 면제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확산되는 신종플루를 따라잡기 위해 백신개발에 요구되는 복잡한 임상연구 규정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신종플루의 치료제로 타미플루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타미플루 耐性(내성) 바이러스 확산이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H5N1형 AI 감염 환자로부터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가 보고됐다.
이미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계절형 독감바이러스 H1N1형에서 내성이 확산되어 90% 이상이 내성바이러스다. 이뿐 아니라 H1N1 신종플루에서도 타미플루에 대한 내성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치료제를 신속하게 허가하여 발매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최근 새로운 독감치료제인 페라미비어 제품이 미국 FDA로부터 발매허가를 받은 것이 좋은 예다.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신속히 국내에 허가를 진행할 예정으로 있다.
타미플루는 일반적인 처방에 의하면 하루 2회, 5일간 복용한다. 몸에 흡수되어 분해되는 속도를 고려할 때 자주 복용해야 한다. 이에 비해 페라미비어는 정맥주사로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일단 주사시 1주일간 효능이 유지된다. 따라서 重症(중증)으로 발전하는 신종플루 환자에 대한 효과가 크다. 이를 개발한 바이오크라이스트라는 회사는 주가가 엄청나게 뛰었다.
이러한 의약품 신속허가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연구개발 정서에도 부합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종플루 사태는 IT산업에 비해 부진했던 BT 신약산업에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분히 백신 연구개발에 투자해 오던 회사에 도약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녹십자는 기존 제약사 매출액 순위 4위에서 단숨에 2위로 뛰어올랐다. 반면 인플루엔자 백신 신약개발 관련 기존 프로젝트를 없애고 연구원을 해고했던 CJ는 도약의 기회를 스스로 없앤 모양새가 됐다.
새로운 독감의 등장이 생명공학, 신약개발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우리의 대처전략이 적절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민반응이 문제다
11월 중순부터 국내에 신종플루 백신접종이 시작되면 접종 후 약 한 달이 지나야 예방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만일 12월 말 정도부터 신종플루가 자연적으로 소멸된다면 예방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정란을 이용하는 현재의 독감 백신 생산 방법으로는 이런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초기 WHO로부터 백신주를 추천, 분양받고 실제 환자에게 접종될 때까지 약 5~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늑장 대응도 문제이지만 과도한 대응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과도한 신종플루 대책은 막대한 國庫(국고)의 손실로 연결될 수 있다. 또 과도한 불안심리는 사회 불안과 사회구성원 간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타미플루 치료제 사재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선진국에서도 발생됐다. 이는 특정 엘리트 집단, 경제집단과 그 외의 서민집단 간의 소외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지역 계층 간 갈등이 잠재된 우리 사회에서 사망률이 매우 낮은 감염성 질환과 같은 일로 인해 사회 구성원 간 소외감이 발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1년 전 우리나라는 100만명을 촛불시위로 몰고 간 광우병 사태로 사회가 혼란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수입 쇠고기로부터 감염을 우려한 많은 시민 간에 확산된 터무니없는 공포가 엄청난 사회불안과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가능성도 지극히 희박한 일에 대해 과민반응하여 일어난 소동이었다.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대규모 촛불집회’는 영문으로 ‘massive candlelight demonstration’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의 영문 이니셜 MCD는 우연일지는 몰라도 광우병을 지칭하는 ‘mad cow disease’의 그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신종플루와 같은 감염체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술책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H5N1형 AI의 사망률이 60%를 넘을 정도로 독성이 높은 이유는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과민반응에 의한 역기능적 결과다.
아직 H5N1 바이러스에 인체 간 감염이 확산된 적이 없다. 인체가 새로운 침입자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과도하게 면역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과도한 반응은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폐조직에까지 심한 손상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좀도둑을 강도로 만든 격이다. 집에 좀도둑이 들 경우 기억해야 할 것은 대항해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인기척을 내서 도둑이 알아서 도망가도록 유도해야지, 잡으려 들면 도둑은 죽기살기로 대항한다.
변종 가능성
신종플루를 얕봐서는 안되는 이유는 H5N1형 AI 바이러스와 작금의 H1N1 신종플루 사이에 變種(변종) 바이러스의 발생 우려 때문이다. 현재 신종플루에 의한 사망률은 매우 낮아서 우리나라의 경우 0.1% 미만이다. 이는 계절형 독감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가 지난 6월부터 경보의 수위를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AI가 사망률 60% 이상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으나 사망자가 400여 명에 불과한 것은 인체 대 인체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H5N1형 바이러스와 H1N1 신종플루 사이에 새로운 변종바이러스가 나온다면? 최악의 경우 신종플루처럼 감염성이 높고 AI처럼 사망률이 높은 바이러스의 발생일 것이다. 이는 1918년 40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또 다른 스페인 독감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이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사람을 적절히 살려둬야 사람이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기회가 생긴다. 바이러스와 사람이 적당히 타협하여 같이 공존하는 이른바 ‘윈-윈’ 작전이다.
만약 감염되자마자 사람에게 치명타를 날려 사람이 사망하면 바이러스도 다른 사람에게 감염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 이러한 ‘너죽고 나죽고’ 식 바이러스는 사람 간 빠른 감염 확산은 불가능해진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여 감염자의 80% 이상이 사망한다.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도 전에 사람이 죽어버리므로 확산이 되지 않는 것이다. WHO가 경계하는 시나리오, 즉 사망률과 전파력을 겸비한 변종의 출현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바이러스의 특성상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좀도둑에 대비한 보험이 필요
만일 출현한다 해도 우리가 대처를 잘하면 바이러스는 시간을 두고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로 진화할 것이다. 말하자면 사망률이 매우 낮은 신종플루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잘 적응한 ‘스마트한 바이러스’다. 그것이 바로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이번 신종플루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는 좀도둑에 의한 도난에 대비해 손해보험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망률 높은 최악의 상황인 강도발생을 대비해 상해보험도 요구된다.
기실 별로 일어나지 않을 사고에 대비해 보험료를 지불하는 것은 매우 아까운 생각이 든다. 정부가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막대한 국가예산을 사용했다고 하자. 이것이 아까워 질병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해외의 경우 질병 발생을 대비하여 국가 예산 확보는 보험료 계상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즉 독감은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나쁜 이웃’으로 보는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公敵(공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
독감은 인류에 가장 잘 적응한 바이러스이며 사회의 일부분이다. 비유컨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도둑이며, 자동차 사고를 유발하는 음주운전자다. 우리는 좀도둑에 과민 대응하여 강도사건으로 몰아가지 말자. 광폭한 음주운전자에 대해 분노를 촉발하여 대형사고로 몰고 가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사고는 발생할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가 보험료를 지불할 태세가 되어 있는가를 묻고 싶다. 효과적인 항바이러스 치료제와 예방백신 개발을 위해 국가인프라 구축과 장기적인 국가연구개발 대책마련 태세가 되어 있는가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적정보험료의 산정일 것이다. 사회의 안정과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적정한 국가예산 편성과 의지의 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