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의 생산성 提高하고 중소·중견 기업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부품·소재·장비 산업에 집중 투자해 중국시장 공략해야 하며 저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구조개혁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근본 원인은 低출산과 노령화, 혁신 실패, 정치 리더십 不在
⊙ 국내 일자리 감소, 수출 하락, GDP 축소 등 3중 충격 불가피
⊙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패러다임 변화없으면 일본보다 더 힘든 상황 올 것
安玹鎬
⊙ 57세.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 행시 25회,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국장,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산업경제실장·제1차관,
단국대 석좌교수. 현재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한중일 경제삼국지 누가 이길까》 국내판과 중국판 출간.
⊙ 황조근정훈장 수훈.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근본 원인은 低출산과 노령화, 혁신 실패, 정치 리더십 不在
⊙ 국내 일자리 감소, 수출 하락, GDP 축소 등 3중 충격 불가피
⊙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패러다임 변화없으면 일본보다 더 힘든 상황 올 것
安玹鎬
⊙ 57세.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 행시 25회, 산업자원부 산업기술정책국장,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산업경제실장·제1차관,
단국대 석좌교수. 현재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한중일 경제삼국지 누가 이길까》 국내판과 중국판 출간.
⊙ 황조근정훈장 수훈.
- 한국 경제가 급속히 위축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 경제를 닮아가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 한 기업의 공장 내부 전경.
우리 경제는 그간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1980년, 두 번째는 1997년 IMF 외환경제 위기다. 약 20년의 주기로 위기가 찾아왔다. 두 번의 위기 후 대대적인 경제·사회 개혁이 뒤따랐다.
우리 경제가 IMF 위기 후 약 20년 만인 2010년대 후반에 다시 위기를 겪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출 대기업과 여타 부문 간의 불균형, 중산층의 감소와 영세민의 증가, 성장과 고용의 연계성 약화, 국민의 행복지수 저하 및 가계부채 증가 등의 현상이 추세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도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어 대대적이면서도 신속한 경제·사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약 20년마다 경제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한 걸까? 세계 경제사를 보면 한 나라의 경제·사회를 규율하는 제도와 패러다임은 20~30년이 지나면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한계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반드시 이해관계자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뒤따른다. 이러한 저항을 정치적 리더십으로 극복하면서 적기에 개혁을 해내면 그 나라와 사회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고 그러지 못하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선순환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며 그렇지 못한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도 30년간의 고도성장이 한계를 보이면서 경제·사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가 겪은 두 번의 경제위기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지만, 적절한 시기에 내부 개혁을 이루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목전에 닥친 개혁의 시기를 놓친다면 새로운 경제위기에 봉착하거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 저성장 기조에 붙들려 사회가 침체되는 운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근본 원인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에 걸쳐 가계소비, 기업투자 등이 대폭 감소하면서 성장정체는 물론, 사회가 극도로 침체되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했다.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469조 엔에서 2011년 468조 엔으로 축소됐고, 가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가계소비는 2010년 279조 엔으로, 1997년 수준(280조 엔)으로 후퇴했다. 2010년 민간기업의 설비투자는 62조 엔으로, 1991년의 94조 엔에 비해 32조 엔이나 줄었다. 민간 주택투자도 1991년 24조 엔에서 2010년 13조 엔으로, 공공투자는 31조 엔에서 22조 엔으로 감소했다.
장기간의 경제침체는 사회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일본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2005년 미우라 아쓰시(三浦展)가 《하류사회(下流社會):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을 출간한 이후 ‘하류(下流)’는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 특히 일본 젊은 층의 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하류’란 소득이 적을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일할 의욕, 삶에 대한 의욕이 총체적으로 낮은 사람을 지칭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근본 원인은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일본은 전후 베이비붐(團塊·단카이) 세대의 생활양식과 이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경제성과를 결정했다. 단카이 세대가 생산가능인구로 진입했던 196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고도성장기에 돌입하는 소위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 시대’를 맞았다. 이 시기 일본 경제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증가했으며, 특히 고용이 급증했다. 1980년대에 들어 단카이 주니어(단카이 세대 자녀)들이 15세를 넘어서자 생산가능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했고, 일본 경제는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상황이 반전되면서 이 무렵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고령인구 급증현상)’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비도 이 시기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서적, 잡지, 화물 수송량, 주류 판매량, 수도 사용량 등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저출산·고령화는 경제의 공급 측면인 생산 및 연구개발(R&D) 활동도 연쇄적으로 위축시켜 일본 경제를 쇠퇴시키는 한편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기업투자 위축
수요 관점에서 본 일본 경제 장기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다. 특히 기업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소비·투자 같은 수요의 부족이 과거 20년간 지속됐는데 이는 20여 년간의 GDP갭(Gap·현실 GDP에서 잠재 GDP를 뺀 값을 잠재 GDP로 나눈 값)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90년 이후 일본 경제의 GDP갭 추이를 보면 1992년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1997년경과 2006~08년에 약간의 플러스 값을 보인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2% 전후의 마이너스 값을 나타냈다. 결국 일본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GDP 성장률밖에 실현하지 못했는데 이는 소비·투자 같은 수요 부족이 근본 원인이었으며, 주로 기업의 설비투자 부족 때문이었다. 기업의 투자 부족은 고령화와 자본수익률 저하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일본 경제는 1970~80년대 대규모 투자를 한 이후 주력 산업이 성숙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체설비 투자나 R&D 투자 이외에는 설비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고령화로 내수가 정체 내지 감소하고, 임금상승, 법인세 인상, 노동·환경 규제 등으로 사회가 점차 고비용 구조화됨으로써 국내투자 수익률이 급감했다.
일본의 제조업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조업 혁신에 실패해 조립완성품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제조업 비중이 20% 수준으로 독일과 비슷한데, 독일과 달리 세계 시장에서의 수출 비중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독일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10% 전후를 유지하는 반면, 일본은 1993년에 10%대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2010년에는 4%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일본 제조업이 혁신을 게을리해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제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조립완성품 분야를 중심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업 내부혁신에 실패함으로써 한국 등 신흥국에 추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IT에서 자동차까지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 약화로 후발국에 추월당했거나, 향후 추월당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일본 기업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여러 차례 불황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또한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디지털화, 신흥시장의 부상 등 세계적인 추세에 순응하기보다 독자적인 시스템에 매몰돼 고집을 부리는 과정에서 미국, 한국 등에 비해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말았다.
일본은 입지여건도 악화됐다. 엔고(高), 높은 법인세, 환경·노동 규제, 미흡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일본 사회의 고비용 구조로 인해 일본 기업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경쟁 기업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아울러 새로운 성장 제품 및 산업 창출에도 실패했다. 일본 기업의 혁신의 초점은 생산 공정에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해 신흥국 제품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 인구 고령화는 소비 축소를 불러와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도 악화시켰다.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외 진출의 가속화와 정치적 리더십 부재
일본은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입지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기업의 해외 이전이 시작됐는데 2000년대 들어 그 속도가 빨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급속한 엔고 등으로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69%가 해외 이전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자국(自國)에서 제조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6중고(重苦)’로 불리는 엔고, 높은 법인세, 환경·노동 규제, FTA 체결 지연, 전력수급 불안과 함께 고령화에 따른 내수 부진 등으로 입지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해외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아울러 동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등에 따른 서플라이체인(Supply Chain) 훼손까지 더해져 해외 진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입지 경쟁력이 현저히 약화된 최근에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조립업체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부품·소재 업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집약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R&D, 마케팅 등 본사의 핵심 기능도 이전하고 있으며, 중소·중견 기업 또한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물류비, 관세, 환리스크 등을 감안해 현지조달을 확대하려고 한다. 자국에서 수입하던 소재·부품·장비를 현지 기업을 통해 조달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을 ‘심층(深層)의 현지화(現地化)’라고 한다. 기업 현지화가 고착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일본 내 학계·재계에서 널리 사용한다. ‘심층의 현지화’로 일본 내 부가가치 부분이 현저히 감소했다. 2011년 일본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했고 고용도 감소하는 등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시간을 두고 우리에게도 닥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왜 전반적인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을까?
본질적인 원인은 정치 리더십의 실패에 있다. 일본의 정치·관료 시스템은 경제정책에 리더십을 발휘해 장기적으로 책임을 지고 추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일본 수상은 재임기간이 대체로 1년 안팎이어서 장기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관료조직도 횡적으로 분할,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을 구사하기 쉽게 돼 있다. 게다가 관료의 임기가 1~2년에 불과해 단기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권은 단명(短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신의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인식 탓에 비용 선행(先行)형 정책(비용이 먼저 발생하고 효과는 나중에 나타나는 정책)보다 경기부양 같은 비용 후행(後行)형 정책을 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일본식 ‘잃어버린 20년’ 답습 가능성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를 가능성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황이 일본과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적절한 정책적 대응이 없다면 수년 안에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초기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지적된 ▲저출산·고령화 ▲조립완성품 분야의 쇠퇴기 진입 ▲고비용 사회 ▲정책 실패 ▲기업의 혁신 부족 등이 우리에게 이미 나타났거나 가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이 고성장에서 저성장 단계로 접어든 시기는 1990년대 초이며, 우리나라가 저성장 단계로 진입한 때는 2008년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2010년대 이후라고 판단된다. 이처럼 우리 경제의 모습은 대략 일본을 약 20년의 격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다. 한국은 인구 구조 그리고 이로 인한 고용이나 소비 구조에서 일본을 닮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고령화율을 보면, 2010년 현재 일본은 36%, 한국은 16%다. 2010년의 한국은 일본의 1990년(17%)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중반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고, 우리나라도 2016년경에는 이 단계에 진입해 이때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다.
일본은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2005년에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고령 사회 진입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6년경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선진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속도다. 지금 일본 사회의 무기력한 모습이 약 10년 후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이런 고령화 속도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제조업 시장, 중국에 뺏기는 중
우리는 제조업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산업발전 단계상 일본과 우리가 약 20년, 우리와 중국도 약 20년의 격차가 있다. 일본이 조립완성품 분야의 정점에 있던 때가 1990년대 초반이었으며, 거기서 내려오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후반, 즉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1995~96년경이다.
일본 조립완성품 분야의 쇠퇴는 전기·전자 산업에서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전기·전자 산업의 약화 현상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조립완성품 분야의 대대적인 사업조정 등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도 시차를 두고 경쟁력이 약화됐다.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 우위는 유럽에서 미국,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전했듯이 산업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점차 중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이 예상되는 분야는 IT 산업이다.
중국 IT 산업의 거센 추격은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 생활가전, 디스플레이에 이어 최근에는 특히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의 도전이 다른 산업으로까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산업 주기상 우리 조립완성품 분야는 조만간 성숙기에서 쇠퇴기로 접어든다. 결국 우리는 일본과 유사한 경로를 밟을 전망이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승은 한국 기업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 매출 및 수익률 하락, 국내 조립공장의 해외 이전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비교 우위를 확보한 중국 기업이 자국 시장을 평정한 후 해외로 진출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경쟁력 확보와 함께 시장 개척이 쉬운 지역으로 이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고 해당 품목의 수출 감소와 한국 경제의 GDP 축소라는 3중 충격이 불가피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업이 만드는 스마트폰의 해외 생산 비중이 2010년 15.9%에서 현재 약 80%까지 상승했는데 이는 삼성전자 등이 주력 공장을 베트남, 중국 등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스마트폰 수출액은 계속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지금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제조기지 공동화 현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부산 사상공단의 신발 클러스터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는데, 제2, 제3의 ‘사상공단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고비용 구조에 따른 입지 경쟁력 약화
일본처럼 우리도 이미 고비용 사회에 진입했다. 최근에는 가속도까지 붙고 있는데 입지 경쟁력 또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일본의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였다. 그런데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 경쟁력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효율성이 144개국 중 86위로 평가될 정도로 노동시장 효율성이 매우 낮은 반면, 임금은 경쟁국에 비해 오히려 높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안 중에도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정년연장, 사내 하도급 사용 규제, 정리해고 요건 강화 같은 노동 관련 규제가 늘고 있다. 환경 관련 규제도 우리나라의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환경보호 지출비용(2010년 기준)은 5조6363억원으로, 독일(12조6621억원)을 제외하고 영국(3조6484억원), 스페인(3조2652억원), 네덜란드(1조9102억원)보다 많다. 최근에는 배출권 거래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학물질 관리법, 환경오염 피해배상 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기업 부담이 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과 혁신을 가로막는 복잡한 토지 규제도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복지 요구가 증가할수록 기업의 세금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조치들이 전체적으로 기업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전체적인 부담을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조사·분석하는 곳이 국내 어디에도 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의 해외 이전 상황은 어느 정도일까. 제조업의 해외 투자가 본격화된 시기는 1980년대 말부터이지만 규모가 급증한 것은 대기업의 사업장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이전한 2000년대 이후부터다. 2013년 제조업의 해외 투자액은 9541억 달러로 2000년의 5.9배였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3~12년 중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7.2% 증가한 반면 국내투자는 4% 느는 데 그쳐 해외투자가 국내투자의 4배에 달했다. 2000년대 제조업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수출 대기업의 조립완성품 분야였는데 글로벌 추세에 맞게 생산, 판매의 현지화도 이뤄지고 있다. 물론 임금상승, 높은 지가, 노사갈등, 환경 및 수도권 규제, 내수정체 등으로 입지 경쟁력이 약화돼 국내 생산으로는 수출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나타나는 ‘심층의 현지화’
국내 전자업체들은 조립완성품의 약 80%를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 업계도 현재 계획 중인 해외공장 설립이 마무리되면 이 비중이 거의 60%에 육박할 전망이다. 현재 우리 제조업의 해외투자는 대기업과 이에 동반한 1차 부품업체들이 진출하는 단계로, 일본처럼 ‘심층의 현지화’가 본격화된 수준은 아니다. 핵심 부품·소재 등 대부분의 중간재는 국내에서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심층의 현지화’가 진행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우리 부품·소재 업체들의 해외 진출도 가시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지에 진출한 대기업 조립공장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업체나 현지 기업으로부터 조달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고, 나아가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흔들려 일본처럼 무역적자가 고착화되는 것은 물론, 일본보다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
일본은 ‘심층의 현지화’가 진행되더라도 자국에 남는 부가가치 비중이 20~30% 정도이며, 그 대상은 주로 첨단 소재·장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첨단 소재·장비의 경쟁력이 일본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본격화되는 2016년 이후 내수정체 내지 감소가 본격화되고 입지 경쟁력의 약화와 원화 강세 기조가 지속된다면 지금의 일본처럼 수출 대기업뿐 아니라 내수 대기업, 중소·중견 기업, 부품·소재·장비 기업까지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사업장은 적어도 현상 유지 또는 국내에 최소한의 부가가치가 남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국가적으로도 재앙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민간소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1991~95년 8.1%, 1996~2000년 3.6%, 2001~05년 3.7%, 2006~10년 3.1%, 2011~13년 2.3%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핵심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09년 이후 이런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는 가계소비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1996년 이후 1%대의 증가율을 보일 만큼 새로운 설비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제조업은 미미하게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설업과 서비스업은 외환위기 이후 투자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가계소비가 감소하고 있지만, 설비투자 감소 추이는 일본보다 일찍 시작돼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갭은 2009년 -2.8%, 2010년 -0.7%, 2011년 -1.2%, 2012년 -3.1%, 2013년 -4.4%이다. 2009년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한 이후 최근까지 점차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그 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정책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구조개혁 정책의 추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대응책을 정교하게 마련하는 움직임도 과거에 비해 둔화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 온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상황을 맞는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본보다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다.
먼저 경제 규모와 위상 차이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시작하기 직전과 최근의 경제 위상을 비교해 보면 일본 경제가 곤두박질쳤음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일본 GDP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4년의 18.1%에서 최근에는 8% 초반까지 하락했으며, 세계 무역 비중도 1984년의 최고치인 8.1%에서 2011년에는 4.6%까지 줄어들었다. 1인당 GDP도 1993년 3위에서 2011년 2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를 훨씬 앞서 있다. 경제 규모는 약 5배, 인구 2.6배, 1인당 GDP 약 2배다. 세계 1등 품목도 230개로 우리의 3배 수준이며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수도 우리의 5배가 넘는다. 우리의 경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장기간의 경제침체는 우리를 일본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일본에 비해 우리는 산업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고 확고한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도 적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신흥국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오직 조립완성품 부문뿐이다. 완성차는 아직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이 기술력, 특히 아날로그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며, 1500여 개의 강소·강중 기업(히든챔피언)들은 부품·소재·장비 부문에서 아직까지 확고한 비교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일본 제조업의 핵심 역량이다.
우리나라 조립완성품 분야가 일본을 압도하고 있을 때도 핵심 부품·소재·장비는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등 아직까지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본 조립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신흥국과 차별화되는 사업을 추진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대다수 업체가 해외로 나가더라도 최소한의 산업 기반과 부가가치는 국내에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기술력도 높지 못하고 저변도 넓지 않다. 우리의 유일한 성장동력은 소수 대기업이 생산하는 조립완성품인데 이 역시 중국에 추격을 당해 일본 기업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으며 인재와 돈이 대기업으로만 편중되는 왜곡된 생산요소 시장하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생겨나기도 힘들다.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민족 숙원인 통일은 장기적으로 대박이지만 단기·중기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남북한 통일 시기에 대해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뒤를 그대로 밟아가는 상황에서 준비 없이 통일이 될 경우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현재 유럽의 맹주인 독일도 통일 이후 장기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경험이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로 독일은 당초 예상 금액 4배 이상의 통일 비용을 치르면서 GDP 대비 총 정부 부채 비중이 1991년 39.5%에서 2000년 60%를 초과했다. 결국 통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예산을 절감하면서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정부 및 기업의 투자까지 축소되면서 경제 전반이 위축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의 높은 인건비와 경직된 노동시장, 인력의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준비 없이 통일을 맞이하게 될 경우 단기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고, 더구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리더십이 부재할 경우 우리 경제의 장기적 침체는 고착화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통일이 우리 경제에 호재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통일을 전제로 우리 경제의 도약을 전망하는 기관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적 미래는 지금부터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 경협, 산업 재배치 및 육성 전략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혁신주도 성장을 완성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지느냐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기 전에 선진국에 서둘러 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수립하고 강도 높은 추진력이 절실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모든 면에서 고령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도 2005년 이후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급성에 비해 강도가 약하며, 종합적이지도 못하다. 지금부터라도 정부, 노조, 업계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특히 여성 인력 활성화가 중요하고 외국인 이민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둘째,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계소비의 확대와 기업투자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 특히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 증대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입지 경쟁력 제고로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산업 또는 성장품목의 발굴과 사업화가 활발해져 신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입지여건도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의 국내 사업장 유지 또는 국내 회귀, 외국인투자 유인을 위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및 노동·환경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소비 진작을 위한 통화·재정 확대 정책과 함께 가계부채, 과도한 부담이 되는 사교육비, 주택 관련 비용 등 소비를 저해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젊은 층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단기 체류를 유도하고 ‘요우커(旅客·중국인 관광객)’를 더 많이 유치하도록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의 성장동력인 제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경쟁국, 특히 중국과의 경쟁력 비교, 대기업(조립완성품)과 중소기업(부품·소재·장비)의 경쟁력 상황, 해외 이전 실태, 국내 입지 경쟁력 등에 대한 조사·분석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제조업 경쟁력 및 신성장 산업 촉진방안 등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정책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충격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
넷째, 중소·중견 기업 육성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이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중소·중견 기업군이 추세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중소·중견 기업군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으로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몇 가지 단편적인 지원 프로그램과 생색내기식 예산증액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적어도 인력,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지형변화를 이끌어낼 정도의 파괴력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섯째,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며, 1순위는 부품·소재·장비 분야이다. 과거 우리의 조립완성품이 일본의 부품·소재·장비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키웠듯이, 향후 중국의 조립완성품이 발전할 때 우리가 일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10~20년 동안 중국 경제의 성장과실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점을 감안해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간 영역에서 첨단·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부품·소재·장비 부문의 발전은 우리나라 조립 대기업들이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심층의 현지화’ 단계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무척 중요하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신성장동력을 추가 발굴해 육성해야 하는데 이때는 ‘중국 변수’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여섯째,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경제성장의 보조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부가 서비스 산업은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발전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에 밀려 제조업 기반이 초토화됐지만 IT 혁신과 고부가 서비스 산업 육성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 내지 개선해 적어도 5~10년 동안 국내외 투자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저부가 서비스 분야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다. 국내에는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저부가가치 서비스와 중소·중견 기업이라는 대표적인 저생산성 분야가 존재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변화와 혁신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 특히 저부가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은 중소·중견 기업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데도 단 한 번도 정부정책의 중심에서 다뤄진 적이 없다. 자영업이 건강해야 국민 경제가 건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저생산성 해소뿐 아니라 중산층 복원이나 고루 잘사는 사회 건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국가 차원의 구조개혁 절실
일곱째, 세계 경제는 구매력 있는 10억명 시장에서 신흥국 인구 30억명이 추가되면서 40억명으로 커졌으며, 그 중심에 중국·인도가 있다. 향후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는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다. 따라서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는 14억명의 중국과 인도(12억명), 아세안(6억명)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인식하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 범국가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특히 우리와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중국이 중요하다. 예상되는 중국 경제의 변동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함께 중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긴요하다.
이러한 노력들과 함께 통일에 대비해 중간단계로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전체의 전략적 산업 재배치, 남북한 경제통합을 위한 청사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준비는 통일 이후 내수시장 확대, 인력 확보 및 산업 재편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기능 중 국가발전 전략을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수립하는 기능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이라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개혁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없으면 제2의 IMF가 올 것이다.⊙
우리 경제가 IMF 위기 후 약 20년 만인 2010년대 후반에 다시 위기를 겪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출 대기업과 여타 부문 간의 불균형, 중산층의 감소와 영세민의 증가, 성장과 고용의 연계성 약화, 국민의 행복지수 저하 및 가계부채 증가 등의 현상이 추세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도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어 대대적이면서도 신속한 경제·사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약 20년마다 경제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한 걸까? 세계 경제사를 보면 한 나라의 경제·사회를 규율하는 제도와 패러다임은 20~30년이 지나면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한계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개혁을 추진하다 보면 반드시 이해관계자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뒤따른다. 이러한 저항을 정치적 리더십으로 극복하면서 적기에 개혁을 해내면 그 나라와 사회는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고 그러지 못하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선순환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며 그렇지 못한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도 30년간의 고도성장이 한계를 보이면서 경제·사회 개혁이 필요한 시점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가 겪은 두 번의 경제위기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지만, 적절한 시기에 내부 개혁을 이루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목전에 닥친 개혁의 시기를 놓친다면 새로운 경제위기에 봉착하거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 저성장 기조에 붙들려 사회가 침체되는 운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근본 원인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에 걸쳐 가계소비, 기업투자 등이 대폭 감소하면서 성장정체는 물론, 사회가 극도로 침체되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했다.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469조 엔에서 2011년 468조 엔으로 축소됐고, 가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가계소비는 2010년 279조 엔으로, 1997년 수준(280조 엔)으로 후퇴했다. 2010년 민간기업의 설비투자는 62조 엔으로, 1991년의 94조 엔에 비해 32조 엔이나 줄었다. 민간 주택투자도 1991년 24조 엔에서 2010년 13조 엔으로, 공공투자는 31조 엔에서 22조 엔으로 감소했다.
장기간의 경제침체는 사회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일본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2005년 미우라 아쓰시(三浦展)가 《하류사회(下流社會):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을 출간한 이후 ‘하류(下流)’는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 특히 일본 젊은 층의 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됐다. ‘하류’란 소득이 적을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일할 의욕, 삶에 대한 의욕이 총체적으로 낮은 사람을 지칭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근본 원인은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일본은 전후 베이비붐(團塊·단카이) 세대의 생활양식과 이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경제성과를 결정했다. 단카이 세대가 생산가능인구로 진입했던 196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고도성장기에 돌입하는 소위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 시대’를 맞았다. 이 시기 일본 경제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증가했으며, 특히 고용이 급증했다. 1980년대에 들어 단카이 주니어(단카이 세대 자녀)들이 15세를 넘어서자 생산가능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했고, 일본 경제는 최고의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상황이 반전되면서 이 무렵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고령인구 급증현상)’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비도 이 시기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서적, 잡지, 화물 수송량, 주류 판매량, 수도 사용량 등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저출산·고령화는 경제의 공급 측면인 생산 및 연구개발(R&D) 활동도 연쇄적으로 위축시켜 일본 경제를 쇠퇴시키는 한편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기업투자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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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엔低를 통한 ‘아베노믹스’의 역효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국회 해산으로 경제 失政을 덮으려 했으나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이 회복할지는 의문이다. |
게다가 일본 경제는 1970~80년대 대규모 투자를 한 이후 주력 산업이 성숙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체설비 투자나 R&D 투자 이외에는 설비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고령화로 내수가 정체 내지 감소하고, 임금상승, 법인세 인상, 노동·환경 규제 등으로 사회가 점차 고비용 구조화됨으로써 국내투자 수익률이 급감했다.
일본의 제조업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조업 혁신에 실패해 조립완성품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제조업 비중이 20% 수준으로 독일과 비슷한데, 독일과 달리 세계 시장에서의 수출 비중이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독일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10% 전후를 유지하는 반면, 일본은 1993년에 10%대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 2010년에는 4%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일본 제조업이 혁신을 게을리해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제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조립완성품 분야를 중심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업 내부혁신에 실패함으로써 한국 등 신흥국에 추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IT에서 자동차까지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력 약화로 후발국에 추월당했거나, 향후 추월당할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일본 기업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여러 차례 불황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나 형식에 치중하다 보니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또한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화, 디지털화, 신흥시장의 부상 등 세계적인 추세에 순응하기보다 독자적인 시스템에 매몰돼 고집을 부리는 과정에서 미국, 한국 등에 비해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말았다.
일본은 입지여건도 악화됐다. 엔고(高), 높은 법인세, 환경·노동 규제, 미흡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일본 사회의 고비용 구조로 인해 일본 기업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경쟁 기업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아울러 새로운 성장 제품 및 산업 창출에도 실패했다. 일본 기업의 혁신의 초점은 생산 공정에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해 신흥국 제품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 인구 고령화는 소비 축소를 불러와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도 악화시켰다.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해외 진출의 가속화와 정치적 리더십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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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잇따른 화산 폭발로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다. |
입지 경쟁력이 현저히 약화된 최근에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조립업체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부품·소재 업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집약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R&D, 마케팅 등 본사의 핵심 기능도 이전하고 있으며, 중소·중견 기업 또한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일본 기업들은 물류비, 관세, 환리스크 등을 감안해 현지조달을 확대하려고 한다. 자국에서 수입하던 소재·부품·장비를 현지 기업을 통해 조달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을 ‘심층(深層)의 현지화(現地化)’라고 한다. 기업 현지화가 고착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일본 내 학계·재계에서 널리 사용한다. ‘심층의 현지화’로 일본 내 부가가치 부분이 현저히 감소했다. 2011년 일본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했고 고용도 감소하는 등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시간을 두고 우리에게도 닥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왜 전반적인 경제·사회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을까?
본질적인 원인은 정치 리더십의 실패에 있다. 일본의 정치·관료 시스템은 경제정책에 리더십을 발휘해 장기적으로 책임을 지고 추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일본 수상은 재임기간이 대체로 1년 안팎이어서 장기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관료조직도 횡적으로 분할, 자신만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을 구사하기 쉽게 돼 있다. 게다가 관료의 임기가 1~2년에 불과해 단기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권은 단명(短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신의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인식 탓에 비용 선행(先行)형 정책(비용이 먼저 발생하고 효과는 나중에 나타나는 정책)보다 경기부양 같은 비용 후행(後行)형 정책을 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일본식 ‘잃어버린 20년’ 답습 가능성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를 가능성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황이 일본과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적절한 정책적 대응이 없다면 수년 안에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초기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지적된 ▲저출산·고령화 ▲조립완성품 분야의 쇠퇴기 진입 ▲고비용 사회 ▲정책 실패 ▲기업의 혁신 부족 등이 우리에게 이미 나타났거나 가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이 고성장에서 저성장 단계로 접어든 시기는 1990년대 초이며, 우리나라가 저성장 단계로 진입한 때는 2008년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2010년대 이후라고 판단된다. 이처럼 우리 경제의 모습은 대략 일본을 약 20년의 격차를 두고 따라가고 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다. 한국은 인구 구조 그리고 이로 인한 고용이나 소비 구조에서 일본을 닮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나눈 고령화율을 보면, 2010년 현재 일본은 36%, 한국은 16%다. 2010년의 한국은 일본의 1990년(17%)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중반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고, 우리나라도 2016년경에는 이 단계에 진입해 이때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다.
일본은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2005년에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고령 사회 진입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6년경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선진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속도다. 지금 일본 사회의 무기력한 모습이 약 10년 후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이런 고령화 속도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제조업 시장, 중국에 뺏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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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 산업을 비롯한 중국의 제조업 능력 향상은 우리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 다롄 조선소에서 완공을 기다리고 있는 퍼시픽 스피리트호. |
일본 조립완성품 분야의 쇠퇴는 전기·전자 산업에서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전기·전자 산업의 약화 현상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조립완성품 분야의 대대적인 사업조정 등 구조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도 시차를 두고 경쟁력이 약화됐다.
조립완성품 분야의 경쟁 우위는 유럽에서 미국,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전했듯이 산업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점차 중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이 예상되는 분야는 IT 산업이다.
중국 IT 산업의 거센 추격은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 생활가전, 디스플레이에 이어 최근에는 특히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위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의 도전이 다른 산업으로까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산업 주기상 우리 조립완성품 분야는 조만간 성숙기에서 쇠퇴기로 접어든다. 결국 우리는 일본과 유사한 경로를 밟을 전망이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승은 한국 기업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 매출 및 수익률 하락, 국내 조립공장의 해외 이전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비교 우위를 확보한 중국 기업이 자국 시장을 평정한 후 해외로 진출할 경우 우리 기업들은 이에 대응해 경쟁력 확보와 함께 시장 개척이 쉬운 지역으로 이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일자리는 그만큼 줄어들고 해당 품목의 수출 감소와 한국 경제의 GDP 축소라는 3중 충격이 불가피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상황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업이 만드는 스마트폰의 해외 생산 비중이 2010년 15.9%에서 현재 약 80%까지 상승했는데 이는 삼성전자 등이 주력 공장을 베트남, 중국 등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스마트폰 수출액은 계속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지금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제조기지 공동화 현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부산 사상공단의 신발 클러스터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는데, 제2, 제3의 ‘사상공단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고비용 구조에 따른 입지 경쟁력 약화
일본처럼 우리도 이미 고비용 사회에 진입했다. 최근에는 가속도까지 붙고 있는데 입지 경쟁력 또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일본의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였다. 그런데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 경쟁력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효율성이 144개국 중 86위로 평가될 정도로 노동시장 효율성이 매우 낮은 반면, 임금은 경쟁국에 비해 오히려 높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안 중에도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정년연장, 사내 하도급 사용 규제, 정리해고 요건 강화 같은 노동 관련 규제가 늘고 있다. 환경 관련 규제도 우리나라의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환경보호 지출비용(2010년 기준)은 5조6363억원으로, 독일(12조6621억원)을 제외하고 영국(3조6484억원), 스페인(3조2652억원), 네덜란드(1조9102억원)보다 많다. 최근에는 배출권 거래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학물질 관리법, 환경오염 피해배상 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기업 부담이 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과 혁신을 가로막는 복잡한 토지 규제도 입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복지 요구가 증가할수록 기업의 세금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러한 조치들이 전체적으로 기업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 전체적인 부담을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조사·분석하는 곳이 국내 어디에도 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의 해외 이전 상황은 어느 정도일까. 제조업의 해외 투자가 본격화된 시기는 1980년대 말부터이지만 규모가 급증한 것은 대기업의 사업장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이전한 2000년대 이후부터다. 2013년 제조업의 해외 투자액은 9541억 달러로 2000년의 5.9배였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03~12년 중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연평균 17.2% 증가한 반면 국내투자는 4% 느는 데 그쳐 해외투자가 국내투자의 4배에 달했다. 2000년대 제조업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수출 대기업의 조립완성품 분야였는데 글로벌 추세에 맞게 생산, 판매의 현지화도 이뤄지고 있다. 물론 임금상승, 높은 지가, 노사갈등, 환경 및 수도권 규제, 내수정체 등으로 입지 경쟁력이 약화돼 국내 생산으로는 수출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나타나는 ‘심층의 현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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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한 기술 인재를 길러내고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LG화학 연구원들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조명 패널을 점검하고 있다. |
일본은 ‘심층의 현지화’가 진행되더라도 자국에 남는 부가가치 비중이 20~30% 정도이며, 그 대상은 주로 첨단 소재·장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첨단 소재·장비의 경쟁력이 일본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본격화되는 2016년 이후 내수정체 내지 감소가 본격화되고 입지 경쟁력의 약화와 원화 강세 기조가 지속된다면 지금의 일본처럼 수출 대기업뿐 아니라 내수 대기업, 중소·중견 기업, 부품·소재·장비 기업까지 해외로 이전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사업장은 적어도 현상 유지 또는 국내에 최소한의 부가가치가 남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국가적으로도 재앙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민간소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1991~95년 8.1%, 1996~2000년 3.6%, 2001~05년 3.7%, 2006~10년 3.1%, 2011~13년 2.3%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핵심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09년 이후 이런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는 가계소비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1996년 이후 1%대의 증가율을 보일 만큼 새로운 설비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제조업은 미미하게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설업과 서비스업은 외환위기 이후 투자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가계소비가 감소하고 있지만, 설비투자 감소 추이는 일본보다 일찍 시작돼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갭은 2009년 -2.8%, 2010년 -0.7%, 2011년 -1.2%, 2012년 -3.1%, 2013년 -4.4%이다. 2009년 ‘마이너스권’으로 진입한 이후 최근까지 점차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그 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정책 실패가 반복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구조개혁 정책의 추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고 대응책을 정교하게 마련하는 움직임도 과거에 비해 둔화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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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일본보다 더 어려운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부품ㆍ소재ㆍ장비 산업에 투자를 더욱 늘리고 중소ㆍ중견 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외곽 친환경복합산업단지. |
먼저 경제 규모와 위상 차이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시작하기 직전과 최근의 경제 위상을 비교해 보면 일본 경제가 곤두박질쳤음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일본 GDP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4년의 18.1%에서 최근에는 8% 초반까지 하락했으며, 세계 무역 비중도 1984년의 최고치인 8.1%에서 2011년에는 4.6%까지 줄어들었다. 1인당 GDP도 1993년 3위에서 2011년 2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를 훨씬 앞서 있다. 경제 규모는 약 5배, 인구 2.6배, 1인당 GDP 약 2배다. 세계 1등 품목도 230개로 우리의 3배 수준이며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 수도 우리의 5배가 넘는다. 우리의 경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장기간의 경제침체는 우리를 일본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일본에 비해 우리는 산업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고 확고한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도 적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신흥국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오직 조립완성품 부문뿐이다. 완성차는 아직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이 기술력, 특히 아날로그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며, 1500여 개의 강소·강중 기업(히든챔피언)들은 부품·소재·장비 부문에서 아직까지 확고한 비교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일본 제조업의 핵심 역량이다.
우리나라 조립완성품 분야가 일본을 압도하고 있을 때도 핵심 부품·소재·장비는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등 아직까지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본 조립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신흥국과 차별화되는 사업을 추진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대다수 업체가 해외로 나가더라도 최소한의 산업 기반과 부가가치는 국내에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기술력도 높지 못하고 저변도 넓지 않다. 우리의 유일한 성장동력은 소수 대기업이 생산하는 조립완성품인데 이 역시 중국에 추격을 당해 일본 기업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으며 인재와 돈이 대기업으로만 편중되는 왜곡된 생산요소 시장하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생겨나기도 힘들다.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민족 숙원인 통일은 장기적으로 대박이지만 단기·중기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남북한 통일 시기에 대해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뒤를 그대로 밟아가는 상황에서 준비 없이 통일이 될 경우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현재 유럽의 맹주인 독일도 통일 이후 장기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경험이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로 독일은 당초 예상 금액 4배 이상의 통일 비용을 치르면서 GDP 대비 총 정부 부채 비중이 1991년 39.5%에서 2000년 60%를 초과했다. 결국 통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예산을 절감하면서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정부 및 기업의 투자까지 축소되면서 경제 전반이 위축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의 높은 인건비와 경직된 노동시장, 인력의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준비 없이 통일을 맞이하게 될 경우 단기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고, 더구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리더십이 부재할 경우 우리 경제의 장기적 침체는 고착화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통일이 우리 경제에 호재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통일을 전제로 우리 경제의 도약을 전망하는 기관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적 미래는 지금부터 통일에 대비해 남북한 경협, 산업 재배치 및 육성 전략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혁신주도 성장을 완성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수렁에 빠지느냐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기 전에 선진국에 서둘러 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수립하고 강도 높은 추진력이 절실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모든 면에서 고령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도 2005년 이후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급성에 비해 강도가 약하며, 종합적이지도 못하다. 지금부터라도 정부, 노조, 업계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특히 여성 인력 활성화가 중요하고 외국인 이민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둘째,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계소비의 확대와 기업투자 활성화에 힘써야 한다. 특히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 증대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입지 경쟁력 제고로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산업 또는 성장품목의 발굴과 사업화가 활발해져 신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입지여건도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의 국내 사업장 유지 또는 국내 회귀, 외국인투자 유인을 위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및 노동·환경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소비 진작을 위한 통화·재정 확대 정책과 함께 가계부채, 과도한 부담이 되는 사교육비, 주택 관련 비용 등 소비를 저해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젊은 층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단기 체류를 유도하고 ‘요우커(旅客·중국인 관광객)’를 더 많이 유치하도록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우리의 성장동력인 제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경쟁국, 특히 중국과의 경쟁력 비교, 대기업(조립완성품)과 중소기업(부품·소재·장비)의 경쟁력 상황, 해외 이전 실태, 국내 입지 경쟁력 등에 대한 조사·분석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제조업 경쟁력 및 신성장 산업 촉진방안 등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정책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충격적인 패러다임의 변화 필요
넷째, 중소·중견 기업 육성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이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중소·중견 기업군이 추세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중소·중견 기업군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으로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몇 가지 단편적인 지원 프로그램과 생색내기식 예산증액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적어도 인력,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지형변화를 이끌어낼 정도의 파괴력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섯째,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며, 1순위는 부품·소재·장비 분야이다. 과거 우리의 조립완성품이 일본의 부품·소재·장비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키웠듯이, 향후 중국의 조립완성품이 발전할 때 우리가 일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10~20년 동안 중국 경제의 성장과실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점을 감안해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간 영역에서 첨단·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부품·소재·장비 부문의 발전은 우리나라 조립 대기업들이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심층의 현지화’ 단계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무척 중요하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신성장동력을 추가 발굴해 육성해야 하는데 이때는 ‘중국 변수’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여섯째,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경제성장의 보조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부가 서비스 산업은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발전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에 밀려 제조업 기반이 초토화됐지만 IT 혁신과 고부가 서비스 산업 육성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 내지 개선해 적어도 5~10년 동안 국내외 투자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저부가 서비스 분야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다. 국내에는 자영업으로 대표되는 저부가가치 서비스와 중소·중견 기업이라는 대표적인 저생산성 분야가 존재한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변화와 혁신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 특히 저부가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은 중소·중견 기업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데도 단 한 번도 정부정책의 중심에서 다뤄진 적이 없다. 자영업이 건강해야 국민 경제가 건강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저생산성 해소뿐 아니라 중산층 복원이나 고루 잘사는 사회 건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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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월가가 바라보는 통일한국의 경제 전망. |
국가 차원의 구조개혁 절실
일곱째, 세계 경제는 구매력 있는 10억명 시장에서 신흥국 인구 30억명이 추가되면서 40억명으로 커졌으며, 그 중심에 중국·인도가 있다. 향후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는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다. 따라서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는 14억명의 중국과 인도(12억명), 아세안(6억명)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흥시장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인식하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 범국가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 특히 우리와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중국이 중요하다. 예상되는 중국 경제의 변동성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함께 중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긴요하다.
이러한 노력들과 함께 통일에 대비해 중간단계로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전체의 전략적 산업 재배치, 남북한 경제통합을 위한 청사진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준비는 통일 이후 내수시장 확대, 인력 확보 및 산업 재편 등을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기능 중 국가발전 전략을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수립하는 기능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이라도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개혁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없으면 제2의 IMF가 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