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정보] 일관제철소 기공식 첫 삽 뜬 지 5년, 현대제철은 요즘 : 월간조선

현대자동차그룹에 지난 2006년 10월 27일은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일관(一貫)제철소를 짓겠다며 기공식을 열어서다. 일관제철소는 고로에 철광석을 넣어 쇳물을 만들고(제선), 불순물을 제거하고(제강), 쇠판을 뽑아서 압축하는(압연) 세 가지 과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다.

이날의 기공식이 특별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일관제철소를 가진 곳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포스코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독점이었던 국내 철강 시장에 국영(國營)도 아닌, 민간(民間) 재벌그룹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관제철소가 현대가(家) 정씨 일가에 남다른 의미가 있어서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은 철강사업에 관심이 컸다. 1953년 대한중공업공사로 출발한 현대제철(옛 인천제철)은 사실 국내 최초의 철강회사다. 훗날 포스코의 등장으로 철강업계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이 회사는 전기로에 고철을 녹여 제품을 만드는 업체로는 생산 규모에서 세계 2위다. 하지만 전기로는 용광로(고로)를 갖춘 일관제철소에 비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에 한계가 있었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끊임없이 일관제철소를 꿈꿨다.

1977년도에 처음으로 일관제철소 사업을 추진했고, 이후 1994년에 다시 시도를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정 명예회장은 죽는 순간까지 일관제철소를 짓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의 꿈’은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넘어갔고 1996년에 다시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결국 10년 만에 일관제철소를 짓는 첫 삽을 떴으니, 현대차그룹에 어떤 의미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의 도전이자, 재벌그룹의 40여 년 꿈이었던 일관제철소 기공식이 있은 지, 꼭 5년이 지났다. 그동안 현대제철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세계 최초로 제철 원료를 옥내 보관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고로(내부사진)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마친 이후에도 주위의 우려스런 분위기로 인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철강업은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비가 필수이고, 원재료인 철광석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들이었다. 더구나 전기로에 대한 경험은 있지만, 용광로에 박식한 직원들을 모으는 데 대해서도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다. 또 국내에 굳이 두 개의 일관제철소 회사가 필요하냐는 시각도 있었다.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이었다.

오명석 생산관리실장의 얘기다.

“제철소를 건설할 때 우리나라의 철강재 수급 상황은 절대 부족이었습니다. 열연강판, 후판, 슬래브 등을 연간 1000만 톤 이상 수입하고 있었고, 특히 고급 제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철강산업은 대일(對日) 무역적자의 주범이라는 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수입 대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서 제철소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시너지 제고 차원에서도 제철소 건설은 타당성이 높았습니다.”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제철소를 만드는 시점을 두고 보면 우리가 후발주자이지요. 주위에서 우려가 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과거 철강사들이 제철소를 만들 때와 비교해 보면 설비나 조업기술이 벌써 진보된 상태잖습니까. 그리고 다른 제철소에서 있었던 시행착오에 대해서 설비업체나 조업기술자들이 이미 학습하고 있고요. 된다는 확신을 갖고, 우리만의 차별화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제철소를 가동하기 전인 2007년부터 기술연구소를 운영했습니다. 맞춤형 선행(先行) 연구를 했지요. 최신 대형 고로 설비를 도입해서 설비에서 오는 차별성을 확보했습니다. 또 최고의 기술을 가진 독일의 티센크룹스틸과 제철소 운영에 필요한 각 분야에 대해 기술제휴를 하면서 기존 업체들과 기술격차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철소를 지으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기존 제철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환경이었어요. 제철소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원료나 제품 수송이 용이한 바닷가에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강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원료가 흩어져서 주변 환경이 오염되는 것이 골칫거리였습니다. 과거와 같이 개발에 묻혀 환경을 무시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잖습니까. 결국 친(親)환경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세계 철강사 중에서 처음으로 제철 원료를 옥내에 보관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몽구 회장, 광산에 직접 찾아가서 철강업에 의지 보여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고로(항공사진).

―경영진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다면요.

“정몽구 회장께서 자주 당진에 오셨어요. 건설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을 꼼꼼히 살피셨죠. 그때마다 ‘안전’과 ‘친환경’을 주문했습니다. 제철소를 가동한 이후에 모든 경영진의 주문은 품질입니다. 생산기반을 갖춘 후에 따라와야 하는 것은 품질이고, 이를 기반으로 고객들과 동반성장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정몽구 회장의 의지는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규 제철기획실장의 얘기다.

“초반에 철광석을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는 얘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수급이 불가능하고, 세계적으로 철광석의 양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게다가 광산회사들이 철강회사와 대규모로, 장기간 계약을 체결하는 편이어서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바이어(철강회사)의 신용이 참 중요합니다. 정몽구 회장이 직접 광산을 방문하고, 오너들에게 의지를 보여준 점이 우리가 안정적으로 철광석을 수급 받게 된 이유가 됐습니다.

현대제철이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라는 점도 한 몫을 했죠. 오너의 확고한 의지가 광산회사들에 전달됐고, 이로 인해 큰 문제 없이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호주,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지에서 철광석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제철의 직원들은 지난 5년을 얘기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현대제철 자동차 강판 기술기획담당 고향진 부장은 “24시간을 근무했다”고 했다.

“현대제철의 연구소는 현장 밀착형을 지향했습니다. 연구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현장에 나가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제철소는 24시간 가동이 되잖습니까. 연구원들이 조별로 나눠서 24시간 내내 현장을 지키면서 연구를 했습니다.”

전기로 1200만 t, 고로 800만 t 생산 가능한 철강회사로 우뚝

현대제철은 주위의 우려를 딛고, 기공식을 한 지 39개월 만에 쇳물을 토해냈다.

지난 2010년 1월, 현대제철의 당진공장에서는 제1고로 화입(火入)식이 열렸다. 화입식은 철광석과 코크스가 있는 고로의 하단부에 처음으로 불씨를 넣는 행사다. 불씨가 들어가면 고로가 생명을 얻고, 부글부글 끊기 시작해 약 하루 뒤에 쇳물을 토해내게 된다.

이날 화입식에서 정몽구 회장이 가장 뿌듯하게 생각한 것은 역시 차질없는 진행이었다.

정 회장은 “2006년 10월에 기공식을 한 이후에 일관제철소 건설에만 매진해 왔다. 결과 당초 계획에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공사를 진행하고, 화입식 행사를 거행하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현대제철은 화입식 이후에 운도 좋았다.

김상규 제철기획실장은 “화입식이 이뤄진 다음 날 쇳물이 나온다. 하루 동안 고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쇳물을 뽑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에서는 여러 차례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현대제철은 화입식에서 첫 쇳물을 뽑을 때까지 아주 순탄하게 예정대로 됐다”고 말했다.

이날 쇳물을 토해낸 제1고로의 생산능력은 연간 400만 톤. 제1고로는 석 달 뒤인 지난 2010년 4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현대제철의 낭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11월에 제2고로(연간 생산능력 400만 톤)의 화입식을 하게 된 것이다. 한 해에 조강생산능력이 800만 톤이 늘어난 것은 철강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이 전무(全無)함에도 불구하고 고로 가동까지 계획했던 공사 일정이 오차 없이 진행되고, 한 해에 조강생산능력을 800만 톤 끌어올린 것은 현대제철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自評)했다.

덕분에 현대제철의 전 세계 철강회사 랭킹은 한순간에 껑충 뛰어올랐다.

일관제철소 기공식 당시에 세계 20위였던 현대제철은 전기로 1200만 톤, 고로 800만 톤 등 총 2000만 톤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0위의 철강회사로 도약했다.

더구나 현대제철은 지금 제3고로를 건설 중이다.

이창훈 경영기획담당 부장은 “오는 2013년에는 고로 3기가 완공돼 총 2400만 톤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춘 철강회사가 될 것”이라며 “규모 면에서 세계 1위는 아니지만, 품질만큼은 세계 1위 기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최소 7~10년 걸리는 일을 1년 만에 해내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이다. 현대제철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열연강판(현대제철)-냉연강판(현대하이스코)-완성차(현대차)에 이르는 이른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 계열화를 달성했다.

실제로 현대제철이 올해 생산한 650만 톤의 열연강판 중 250만 톤가량은 자동차용(用) 강판이다.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현재 현대제철 연구소에는 350여 명의 직원이 근무 중인데, 이 중 120명은 자동차 강판 개발 업무만 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연구원 숫자를 5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고향진 연구소 기술기획담당 부장의 설명이다.

“자동차 강판이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제품이어서 후발주자인 현대제철이 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자동차 강판 생산을 위해 그룹이 합심(合心)하고 있습니다. 철강회사가 자동차 회사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현대제철과 현대차는 인적, 기술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제철소 연구원의 절반이 자동차 강판 업무를 전담하고 있고, 현대차 남영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 20여 명이 상시로 철강 연구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연구원이었다가 제철로 옮긴 사람도 20명 정도 됩니다. 현대제철은 기획단계에서 최종 생산단계까지 전 과정에 대해 설비 계획을 세웠습니다. 통상 자동차 강판을 양산(量産)하는 데 7~10년이 걸리지만, 우리는 2010년 쇳물을 생산한 해에 130만 톤, 올해 250만 톤을 생산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현대제철 연구소는 자동차 강판 제조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라는 정몽구 회장의 지침에 따라 일관제철소를 착공하기 이전인 2005년 12월에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2007년 2월에 완공됐고, 이후 4년 동안 꾸준히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만큼 쇳물이 나오기 이전부터 자동차 강판에 대해 연구하고, 준비했다는 얘기입니다. 현대차, 현대하이스코 등과의 협업으로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로의 위상을 만들 계획입니다.”

―현대제철의 물량은 전량 현대차에 납품합니까.

“90% 이상을 현대차로 납품합니다. 자동차 회사마다 요구하는 철판의 특성이 워낙 달라서 현실적으로 다른 회사로 납품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제철에서 만드는 열연의 대부분을 자동차용 강판으로 만든다는 계획은요.

“제철소에서 자동차 강판 비중을 50% 이상 넘기기 어렵습니다. 조업 안정성, 시장 전망, 제철소 운영 경제성 등을 고려해서 결정합니다. 제철소가 전량을 생산할 경우 완성차 업체의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완성차 공장이 함께 가동을 멈춰야 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장 과학적으로 적절한 수준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현대제철은 제1, 2고로를 짓는 데 총 6조3000억원 정도를 투입했다. 제3고로에도 3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투자비이지만, 현대차그룹의 의지는 강해 보인다.

오명석 생산관리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철강업체가 투자를 연기, 포기했을 때에도 현대제철은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투자를 늦추지 않았다”며 “제철소 가동 이전부터 현대차, 현대하이스코 등과 선행 연구를 하고 조업 안정화 기반을 만든 덕분에 제철소가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