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C레벨(최고경영진) 9명 중 6명이 외국인
포스코·현대차 등은 외국인 임원 한 명도 없어
⊙ SKT·두산·LG전자 인사(HR)책임자에 외국인 임명
⊙ 상위 50대 기업 중 17개사만 외국인 임원 채용
⊙ “한국 영어 수준 캄보디아보다 못해…” 각 기업 통역사 상주
⊙ “한국 기업의 강점은 오너경영에 따른 추진력”
포스코·현대차 등은 외국인 임원 한 명도 없어
⊙ SKT·두산·LG전자 인사(HR)책임자에 외국인 임명
⊙ 상위 50대 기업 중 17개사만 외국인 임원 채용
⊙ “한국 영어 수준 캄보디아보다 못해…” 각 기업 통역사 상주
⊙ “한국 기업의 강점은 오너경영에 따른 추진력”
독일인 이참씨가 지난 8월 초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선시대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이 훈련도감에 근무한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의 공직 진출을 ‘일대 사건’이라 부르는 이도 있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2009년 5월 1일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국내 인구의 2.2%다. 그렇다면 국내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은 얼마나 될까. 月刊朝鮮이 국내 상장기업 중 상위 50대 기업의 2009년 반기보고서를 통해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50개 기업의 총 임원 4370명 중 외국인은 53명(1.2%)이었다. 그러나 그 수는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 중 두산과 에쓰오일의 대표이사(CEO)는 외국인이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CEO는 미국인, 에쓰오일의 아흐메드 알 수베이 CEO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대표는 한국인 2명과 함께 공동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고,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社(사)와 합작사이기 때문에 완전한 ‘한국기업의 외국인 대표이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국기업 외국인 CEO’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는 이미 해외에서 매출의 대부분이 형성되는 글로벌 기업이다. 머지않아 외국인 CEO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분분하다. 일본기업 소니의 회장은 일본인이 아니라 영국인 하워드 스트링거다. 2005년 위기에 빠진 소니를 구할 ‘구원투수’ 格(격)으로 소니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하워드 스트링거는 미국식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단행해 소니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실리적인 미국식 경영행태로 일본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국기업의 외국인 임원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왜 한국에 왔으며,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50대 기업 중 17개사만 외국인 임원 채용
국내 50대 기업 중 외국인 임원을 1명 이상 기용하고 있는 곳은 17개사뿐이다. 외국인 임원이 5명 이상인 곳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외환은행, 에쓰오일 4개사에 불과하다(표 참조).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임원은 대부분 연구직이다. 에쓰오일의 외국인 임원들은 합작사인 아람코 측 임원이다. 그러니 실제로 외국인 임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은 LG전자(13명)가 유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룹 차원이나 全社的(전사적) 차원에서 중요 직책에 유명 외국인을 영입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CEO와 찰스 홀리 인사담당 사장, SK그룹의 린다 마이어스 인사담당 부사장, 기아자동차의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부사장, 제일기획의 글로벌영업 총괄책임자 브루스 헤인즈 부사장 등이 이 같은 경우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독일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자인총괄책임자를 거쳐 2006년 기아차에 영입됐다. 하버드대 석·박사 출신인 린다 마이어스 부사장은 25년간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 등 7개 기업에서 인력관리 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브루스 헤인즈 부사장은 세계적인 광고회사 레오버넷의 前(전) CEO다.
SK텔레콤, “글로벌 인재를 찾아라”
지난해 초 취임한 SK텔레콤 스티븐 프롤리 글로벌인사담당 부사장은 SK텔레콤 내 최초의, 또 유일한 외국인 임원이다. SK텔레콤은 매출의 99%가 국내에서 이뤄지는 내수기업이다. 이런 기업이 인사담당에 외국인을 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미국 GE와 퀘스트커뮤니케이션즈 등에서 인사와 조직개발을 담당했던 인사전문가다.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고 SKT 직원들의 글로벌 교육을 맡고 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외국 근무 경험을 갖고 싶었는데, 헤드헌터가 이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SK라는 기업은 생소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知人(지인)들이 매우 크고 유명한 회사라고 조언해 주어 입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SKT에는 외국인 임원이 한 명도 없고, 또 전형적인 내수기업인데 외국인 임원에다 외국인 인사담당자가 되는 게 부담이 되진 않았습니까.
“SKT가 내수기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중입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인재들을 데려와 활용해야 하고, 기존 직원들을 글로벌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가 저를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현재 업무는 무엇입니까.
“글로벌 HR(인사)팀을 맡고 있고, 사원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제 과업입니다. SK그룹은 崔泰源(최태원) 회장을 위시해 전사적으로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원 한 명 한 명이 세계적인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유일한 외국인 임원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언어문제가 제일 크죠. 전담 통역사가 있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요. 직원들의 농담을 잘 못 알아듣는 것도 괴로운 일이죠.”
―SKT를 비롯한 국내기업의 세계화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고 봅니다. LG전자는 외국인 최고위직이 6명이나 되더군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봐요. SKT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해외 매출 비중을 높여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도 해야 합니다.”
―한국생활이 처음이고 오신 지 1년8개월 됐는데, 지내기는 어떠신지요.
“아내와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일부러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이나 한남동을 피하다 보니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생겼는데, 정이 많고 친절합니다. 해물탕과 불고기, 낙지볶음 같은 한국음식도 좋아하게 됐어요.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문화도 정겹더군요. 여행도 많이 했는데, 특히 제주도와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그는 “한국기업이 세계화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내 유수 기업인 SK도 해외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해외에서도 통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SK그룹에는 스티븐 프롤리 부사장 외에 외국인 임원으로 SK㈜에 인사담당 린다 마이어스 부사장, SK C&C에 인도 출신의 마니시 프라카시 상무(글로벌사업 추진실장)가 있다.
(주)두산, 대표이사와 HR책임자 외국인
‘푸른 눈의 임원’을 중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두산과 LG전자다. (주)두산은 지난 2006년 제임스 비모스키 前(전) 말레이시아 서던뱅크 수석부행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지난 7월에는 찰스 홀리씨를 인사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다.
두산그룹이 미국회사 밥캣과 밥콕 등을 인수함에 따라 그룹 전 직원의 40% 가량이 외국인이다. 그러니 인사책임자도 외국인으로 영입해 글로벌화를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취재 기간 중 두 외국인 임원이 마침 해외출장 중이어서 대신 (주)두산의 인사(HR)담당 임원 崔盛宇(최성우) 전무를 만나 취재를 했다. 다음은 최 전무와의 대화다.
―110년 역사를 가진 두산에 외국인 CEO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습니다.
“두산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인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에서 일어나고 직원의 40%가 외국인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선진 기업 경영방식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비모스키 부회장을 영입한 것이죠.”
―국내 기업이 외국인을 영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회사의 전략과 비전에 적합한 사람을 영입한다고 보면 됩니다. 많은 기업이 세계화에 나서면서 선진 기업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려 하는데, 글로벌 기업 경력이 풍부한 경력자를 영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죠.”
―두산 인사 담당에 외국인이 선임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산은 오래전부터 외국의 인사전문가들과 함께 두산 글로벌 인사의 틀을 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해외 전문가를 일시적인 協業(협업)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직접 데려와 ‘두산맨’으로 키우려 합니다.”
―외국인 임원 채용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내·외부의 추천을 받는 동시에 세계적인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해요. 두산은 특히 朴容晩(박용만) 인프라코어 회장이 인재 채용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회장이 직접 해외에서 후보자들을 면접하기도 하고, 스카우트하려는 인재를 두산 본사를 직접 방문하도록 해 임원들과 만나 대화하도록 미팅자리도 마련하지요. 후보자가 우리 마음에 든다고 언제든 고용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후보자도 우리 두산이 마음에 들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외부에서 임원 한 명을 영입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립니다.”
―외국인 임원들은 두산의 어떤 면을 보고 끌렸다고 보십니까.
“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너의 열정과 회사의 비전을 느꼈다고 합니다. 미국 유럽의 글로벌 기업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는 상태여서 도전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한국 기업은 계속 세계시장에서 성장 속도가 빨라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외국인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외국인 직원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요.
“역량과 직무 경험, 주어지는 직책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죠. 외국인이 국내생활을 할 때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인 6명 최고경영진에 앉힌 LG전자
LG전자 본사 최고경영진(C레벨) 9명 중 6명이 외국인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 부사장을 비롯해 최고구매책임자(CPO) 토머스 린튼 부사장,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 최고유통채널책임자(CGTMO) 제임스 셰드 부사장, CHO(최고인사책임자)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 CSO(최고전략책임자) 브래들리 갬빌 부사장 등이다. 더모트 보든 부사장은 영국인,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은 스위스 국적이며 그 외는 모두 미국인이다.
더모트 보든 부사장은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7년 12월 입사했다. 토머스 린튼 부사장은 IBM을 거쳐 지난해 1월 영입됐다.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과 제임스 셰드 부사장도 지난해,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과 브래들리 갬빌 부사장은 올해 입사하는 등 모두 최근 2년 사이에 입사했다.
LG전자의 외국인 경영진은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카우트됐다.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더모트 보든 부사장은 필리핀 존슨앤존슨 지사, 화이자에서 한국·중국·일본지역 담당사장을 역임했다.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은 포드에서 인사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 지난 2001년부터 2년간 포드 일본법인에서 근무했다. 토머스 린튼 부사장은 IBM을 비롯해 다양한 글로벌기업에 근무하면서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LG전자는 왜 이토록 많은 외국인 임원을 고위직에 영입한 것일까. LG전자의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 배치, 國籍(국적) 불문’이다. 南鏞(남용) 부회장은 “국적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고 공언해 왔다.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을 만났다. 쉐네보 부사장은 국적은 스위스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나 휴렛팩커드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LG전자에 입사했다.
―원래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일할 생각은 있었는데, 원래 생각했던 곳은 홍콩이나 상하이, 싱가포르 등이었어요. LG전자의 제의를 받았는데, LG전자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훌륭한 회사라고 알고 있었지만 선뜻 한국을 근무지로 택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한국이 외국인에게 선호되는 근무지는 아닌가요?
“아무래도 언어장벽이 크다고 봅니다. 영어로 100%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 일본은 영어로 일하기가 아직 힘이 들어요. 중요 업무는 통역을 거쳐야 하고요. 몇 해 전 캄보디아에 머무른 경험이 있는데, 캄보디아가 한국보다 영어구사력이 낫다고 느꼈습니다.”
―LG전자를 왜 선택하셨나요.
“일단 다른 나라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LG전자가 서구 기업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돼 이를 배우고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이전에 있었던 HP 등 다른 글로벌 기업과 비슷하다면 LG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일단 오너가 있는 기업인 만큼 추진력이 있고,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 기업의 장점이지요.”
―한국 기업의 오너 경영에 대해 외국인 기업인들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이 제조업과 건설업 등으로 해외에서 도약한 발판 중 하나가 오너경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지요.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분명히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룹 내 계열사끼리 해결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제 눈엔 그렇지만 그것이 또 다른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아직 전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 기업의 세계화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도 세계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한국은 문호를 개방한 지 몇십 년이 되지 않는 만큼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私見(사견)인데, 외국인 임원이 많지 않으면 아직 그 기업은 세계화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쉐네보 부사장은 “나보다 아내가 한국문화와 한국음식 등 한국 생활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이고, LG전자도 성장속도가 빠른, 비전 있는 기업이어서 당분간은 계속 한국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요직에 외국인 거의 없어
외국인들이 요직에 대거 포진하고 있는 LG전자에 비해 삼성전자의 외국인 임원 수는 ‘의외로’ 적다. 823명의 임원 중 외국인이 1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북미총괄 데이비드 스틸 상무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시아계 연구위원과 전문위원이다. 상무 이상 외국인은 왕통 베이징통신연구소장, 주효양 중국 무선전화기 담당임원, 요한 사업지원팀 담당임원이 전부다. 그 외의 임원은 연구위원 4명(일본인 3명, 미국인 1명)과 전문위원 2명(중국인 2명)이 있다.
데이비드 스틸 북미총괄 상무는 영국인으로 글로벌 컨설팅회사 매킨지에서 근무했다. 그는 삼성전자 내 외국인 인재 조직인 ‘미래전략그룹’의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 지난 2002년 상무보로 승진해 삼성전자 본사 조직의 첫 외국인 임원 배지를 달았고, 2005년 상무로 승진한 이른바 ‘S(Special)급 인재’다.
그는 삼성전자 내에서 글로벌 마케팅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해외 휴대폰 마케팅 업무를 맡다가 지난해부터 북미총괄 상무로 미국에서 근무 중이다. 데이비드 스틸 상무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전자를 평가한다면.
“기업의 문화와 그 안의 사람들만 따질 때 삼성은 아주 매력적인 회사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채용해 왔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회사가 됐어요. 직원들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이고요.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은 삼성전자가 다른 글로벌 기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죠.”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십니까.
“대부분의 대기업이 영어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정보를 공유합니다. 1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죠. 한국 기업에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 기업들의 노력으로 미뤄 볼 때 향후 10년 안에 더 큰 변화가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최초의 외국인 임원인데, 어려웠던 점은?
“2002년 적절한 시점에 제가 임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의 글로벌화가 가시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었죠. 따라서 외국인에 대한 시선도 기대와 관심 등으로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삼성 임원이 해외 체류 또는 유학 경험이 있었고, 저를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습니다.”
‘최고 전문가’ 영입한 기아자동차·제일기획
자동차 업계를 좀 아는 사람들은 지난 2006년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자동차로 온다는 소식에 재계 인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기아차 디자인 총괄로 취임한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디자인 총괄책임을 맡아 성공신화를 보여준, 해외에서 유명한 ‘톱 클래스’ 자동차 디자이너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취임 후 ‘쏘울’, ‘포르테쿱’ 등 기존 국산 자동차와 완전히 차별화되는 디자인을 선보여 기아차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매출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워낙 획기적인 처우로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터라 社內(사내) 반발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던 鄭義宣(정의선) 現(현) 현대차 부회장의 ‘비호’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거액을 들여 외부인을 영입하자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사장의 디자인 개혁 의지가 워낙 확고해 아무도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그 덕에 슈라이어 부사장이 독립적으로 디자인연구에 나설 수 있었고, ‘쏘울’과 ‘포르테쿱’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5월 ‘세계 톱 10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을 주창하며 레오버넷 CEO 출신인 브루스 헤인즈를 영입했다. 브루스 헤인즈는 35년간 피앤지, 맥도날드, 포르쉐,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캠페인을 제작하고 다수의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한 인물이다. 영국광고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브루스 헤인즈의 직책은 글로벌 COO(Chief Operation Officer). 글로벌 경영방식을 도입해 사업을 개편하는 게 주임무다. 또 글로벌 광고주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광고제작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세계 16위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社(사)로, 세계 28개국 35개 해외 지사 및 법인에서 700여 명의 현지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해외 매출비중이 55%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제일기획 金樂會(김낙회) 사장은 전문가 영입에 대해 “외부의 이질적인 것과 내부의 것을 합친 ‘혁신’과 ‘통섭’으로 광고산업을 키운다는 게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제일기획이 레오버넷 전임 사장을 영입하고 인터랙티브 본부를 신설한 것은 경계를 허물어 혁신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거죠. 브루스 헤인즈 외에도 세계적으로 실력을 입증받은 저명한 광고 인재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고, 외부와의 협력도 적극 추진하려고 합니다.”
제일기획은 브루스 헤인즈 외에 2004년 다국적 광고대행사인 오길비 앤드 매더 공동대표를 지낸 광고전문가 조 맥다나를 영입했다.
이밖에도 외국인 임원 영입에 적극적인 회사가 동부하이텍이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최고기술임원 출신인 루 후터(미국) 부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지난 7월 펠리시아 제임스(미국), 바디 엘 카레(독일), 하워드 테스트(미국), 도시아키 다니구치(일본), 요이치 오쿠무라(일본) 등 5명을 전문위원으로 데려왔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전문위원을 영입해 사업전략, 개발, 영업에 배치했다. 펠리시아 제임스 전문위원은 TI 등에서 24년간 전력관리 반도체와 자동차용 아날로그반도체 등을 개발해 왔다.
바디 엘 카레 전문위원은 1970년부터 IBM, TI, 마이크론 등에서 반도체 설계와 공정기술 개발을 맡았었다. 하워드 테스트 전문위원 역시 공정개발 전문가다. 도시아키 다니구치, 요이치 오쿠무라 전문위원은 일본에서 영업과 기술 마케팅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 회사 권기주 팀장은 “향후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핵심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외국의 관련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고 했다.
국내 상장기업 중에 상근 임원으로 재직 중인 외국인은 대한항공 안전보안실 담당 피터 존 블레이크 상무, 한진해운의 로드니 밀러·윌리엄 루니 상무와 마이클 라닥 상무보, CJ제일제당의 바이오글로벌기술혁신센터장 오오스미 쓰요시 상무가 있다. 국내 상장기업이면서 외국기업과 합작사인 에쓰오일(아람코)과 GS칼텍스(셰브론)에는 합작사에서 파견된 외국인 임원이 각 6명씩 근무 중이다.
외국인 임원의 근무환경은
외국인이 국내 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어떤 처우를 받고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처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내 임원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임기는 대개 2~3년으로 계약을 맺고 온다.
임원급의 외국인은 대부분 거주지(전·월세 아파트 혹은 월세 비용)와 생활비를 별도로 받는다. 기업 측에서는 가족이 함께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외국인 임원들은 자녀들이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도록 하고 배우자와 둘이 사는 경우가 많다. 거주 지역은 한남동이나 성북동 등 외국인이 많이 사는 富村(부촌)이 압도적이다.
국내 외국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과도 처우는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외국기업의 한 외국인 간부는 “국내기업과 외국기업 한국지사 모두에서 제안을 받아봤지만 연봉과 생활비 등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좀 더 모험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고생이 되는 만큼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국인 임원이 근무하는 국내 기업에는 통역사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외국인 임원이 주재·참가하는 회의는 영어로 이뤄지고 보고서도 영어로 작성된다. 그러나 한국인 직원들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을 경우를 위해 통·번역 전문가가 존재한다.
6명의 외국인 최고경영진이 근무하는 LG전자에는 5명의 동시통역사가 상주한다. 이들은 임원들의 간부회의나 인터뷰 등을 지원한다. SK텔레콤에도 스티븐 프롤리 부사장의 전담 통역사가 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비서나 영어에 능숙한 해당 부서 직원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필자의 질문에 LG전자 측은 “업무나 회의석상에서는 언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비슷한 구조(외국인 임원+한국인 직원)를 가진 주한 외국기업들은 통역사를 두지 않고 있다.
정부·공사 요직도 외국인
정부와 공사 요직에도 외국인 수가 늘어가는 추세다. 기상청은 지난 9월 외국인 간부(케니스 크로퍼드)를 영입, 기상선진화추진단장에 앉혔다. 한국석유공사는 연말까지 외국인 전문가를 데려올 예정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석유개발원장과 인사고문 두 자리에 외국인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헤드헌팅 업체와 교섭 중이다.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내년 2월쯤 외국인 간부들이 석유공사에 등장하게 된다. 姜泳元(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기업문화의 변혁과 기술, 인력 흡수를 위해서는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해야 하며, 이를 위해 외국인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외국인 영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외국인 공무원이나 공사 고위직의 처우는 어떤 수준일까. 케니스 크로퍼드 단장은 공무원 1급 처우에 연봉은 3억2500만원(26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 역시 외국인 전문가가 사장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앞으로 영입할 외국인 간부는 기존 보수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개별 계약에 따라 보수가 결정될 것”이라며 “국제 에너지업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공사 내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관공서나 공사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연봉이 높지 않아 우수 외국인 인재를 영입하기 쉽지 않은 만큼 기존 직원임금 체계와 별도로 획기적인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영입=글로벌 경영?
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외국인 임원 영입이 글로벌화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활동임을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윤언철 연구원은 기업이 외국인 CEO나 임원을 데려오는 이유는 ▲강력한 구조개혁 또는 획기적인 변화 ▲기업의 신뢰도와 경영 능력 업그레이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외국인이 더 적합하기 때문 등 세 가지라고 분석했다. 윤 연구원의 설명이다.
“외국인 임원이 성공을 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외국인 경영인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현지어 학습, 현장경영, 강력한 후원자 그룹 존재, 타국문화 이해 등입니다. 이 같은 덕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국인 영입은 毒(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인 임원은 데려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가 더 중요합니다. 든든하게 후원을 해 주고, 중요한 정보가 가감 없이 책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견고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또 한국적 경영 환경의 토양을 잘 이해하도록 현장경영과 언어장벽 해소 등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류구희 한국인재경영연구소장은 “외국인 임원 및 CEO 영입이 글로벌 경영의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며 “글로벌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인 CEO나 임원을 영입하는 것은 세 가지 면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가지란 ▲문화적 차이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차이 ▲기업환경의 이해를 뜻한다. 류 소장은 “같은 경영시스템이라 해도 문화적 차이에 의해 성과를 내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서구경영기법과 문화에 익숙해 있는 인력을 성급하게 영입하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의사결정의 차이’는 국내 대기업의 오너경영에서 그 원인으로 꼽는다. 그는 “오너경영체제에서는 보다 직선적인 의사결정이 주를 이루는데, 서구의 경우처럼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이 차별화되는 경영시스템과는 다른 점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시장이 통합된다 해도 인종과 언어,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각국의 기업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글로벌기업이라 해도 해당 지역의 지사장은 현지인을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글로벌 경영이 외국인 몇 명을 고용하고 외국인 CEO를 영입했다고 정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국내 상위 20개 기업 중 60%인 12개 기업에 외국인 임원이 한 명도 없는지 궁금하다. 취재 중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외국인 임원이 굳이 필요합니까? 위기 탈출이나 다른 분야로의 도약을 위해 영입하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이 회사가 아직 먹고살 만하다는 증거 아닐까요.”⊙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2009년 5월 1일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국내 인구의 2.2%다. 그렇다면 국내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은 얼마나 될까. 月刊朝鮮이 국내 상장기업 중 상위 50대 기업의 2009년 반기보고서를 통해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50개 기업의 총 임원 4370명 중 외국인은 53명(1.2%)이었다. 그러나 그 수는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 중 두산과 에쓰오일의 대표이사(CEO)는 외국인이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CEO는 미국인, 에쓰오일의 아흐메드 알 수베이 CEO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대표는 한국인 2명과 함께 공동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고,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社(사)와 합작사이기 때문에 완전한 ‘한국기업의 외국인 대표이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국기업 외국인 CEO’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는 이미 해외에서 매출의 대부분이 형성되는 글로벌 기업이다. 머지않아 외국인 CEO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분분하다. 일본기업 소니의 회장은 일본인이 아니라 영국인 하워드 스트링거다. 2005년 위기에 빠진 소니를 구할 ‘구원투수’ 格(격)으로 소니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하워드 스트링거는 미국식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단행해 소니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실리적인 미국식 경영행태로 일본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국기업의 외국인 임원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왜 한국에 왔으며,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50대 기업 중 17개사만 외국인 임원 채용
국내 50대 기업 중 외국인 임원을 1명 이상 기용하고 있는 곳은 17개사뿐이다. 외국인 임원이 5명 이상인 곳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외환은행, 에쓰오일 4개사에 불과하다(표 참조).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임원은 대부분 연구직이다. 에쓰오일의 외국인 임원들은 합작사인 아람코 측 임원이다. 그러니 실제로 외국인 임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은 LG전자(13명)가 유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룹 차원이나 全社的(전사적) 차원에서 중요 직책에 유명 외국인을 영입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CEO와 찰스 홀리 인사담당 사장, SK그룹의 린다 마이어스 인사담당 부사장, 기아자동차의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부사장, 제일기획의 글로벌영업 총괄책임자 브루스 헤인즈 부사장 등이 이 같은 경우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독일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자인총괄책임자를 거쳐 2006년 기아차에 영입됐다. 하버드대 석·박사 출신인 린다 마이어스 부사장은 25년간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 등 7개 기업에서 인력관리 업무를 담당한 전문가다. 브루스 헤인즈 부사장은 세계적인 광고회사 레오버넷의 前(전) CEO다.
SK텔레콤, “글로벌 인재를 찾아라”
 |
| SK텔레콤 스티븐 프롤리 부사장 |
그는 미국 GE와 퀘스트커뮤니케이션즈 등에서 인사와 조직개발을 담당했던 인사전문가다.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고 SKT 직원들의 글로벌 교육을 맡고 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외국 근무 경험을 갖고 싶었는데, 헤드헌터가 이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SK라는 기업은 생소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知人(지인)들이 매우 크고 유명한 회사라고 조언해 주어 입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SKT에는 외국인 임원이 한 명도 없고, 또 전형적인 내수기업인데 외국인 임원에다 외국인 인사담당자가 되는 게 부담이 되진 않았습니까.
“SKT가 내수기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중입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인재들을 데려와 활용해야 하고, 기존 직원들을 글로벌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가 저를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현재 업무는 무엇입니까.
“글로벌 HR(인사)팀을 맡고 있고, 사원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제 과업입니다. SK그룹은 崔泰源(최태원) 회장을 위시해 전사적으로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원 한 명 한 명이 세계적인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유일한 외국인 임원으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언어문제가 제일 크죠. 전담 통역사가 있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요. 직원들의 농담을 잘 못 알아듣는 것도 괴로운 일이죠.”
―SKT를 비롯한 국내기업의 세계화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고 봅니다. LG전자는 외국인 최고위직이 6명이나 되더군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봐요. SKT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해외 매출 비중을 높여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도 해야 합니다.”
―한국생활이 처음이고 오신 지 1년8개월 됐는데, 지내기는 어떠신지요.
“아내와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일부러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이나 한남동을 피하다 보니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생겼는데, 정이 많고 친절합니다. 해물탕과 불고기, 낙지볶음 같은 한국음식도 좋아하게 됐어요.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문화도 정겹더군요. 여행도 많이 했는데, 특히 제주도와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그는 “한국기업이 세계화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내 유수 기업인 SK도 해외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해외에서도 통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SK그룹에는 스티븐 프롤리 부사장 외에 외국인 임원으로 SK㈜에 인사담당 린다 마이어스 부사장, SK C&C에 인도 출신의 마니시 프라카시 상무(글로벌사업 추진실장)가 있다.
(주)두산, 대표이사와 HR책임자 외국인
 |
| 두산 제임스 비모스키 부회장 |
두산그룹이 미국회사 밥캣과 밥콕 등을 인수함에 따라 그룹 전 직원의 40% 가량이 외국인이다. 그러니 인사책임자도 외국인으로 영입해 글로벌화를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취재 기간 중 두 외국인 임원이 마침 해외출장 중이어서 대신 (주)두산의 인사(HR)담당 임원 崔盛宇(최성우) 전무를 만나 취재를 했다. 다음은 최 전무와의 대화다.
―110년 역사를 가진 두산에 외국인 CEO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습니다.
“두산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인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에서 일어나고 직원의 40%가 외국인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선진 기업 경영방식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비모스키 부회장을 영입한 것이죠.”
―국내 기업이 외국인을 영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회사의 전략과 비전에 적합한 사람을 영입한다고 보면 됩니다. 많은 기업이 세계화에 나서면서 선진 기업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려 하는데, 글로벌 기업 경력이 풍부한 경력자를 영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죠.”
―두산 인사 담당에 외국인이 선임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산은 오래전부터 외국의 인사전문가들과 함께 두산 글로벌 인사의 틀을 짜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제 해외 전문가를 일시적인 協業(협업)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직접 데려와 ‘두산맨’으로 키우려 합니다.”
 |
| 두산 찰스 홀리 사장 |
“내·외부의 추천을 받는 동시에 세계적인 헤드헌팅 업체를 활용해요. 두산은 특히 朴容晩(박용만) 인프라코어 회장이 인재 채용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회장이 직접 해외에서 후보자들을 면접하기도 하고, 스카우트하려는 인재를 두산 본사를 직접 방문하도록 해 임원들과 만나 대화하도록 미팅자리도 마련하지요. 후보자가 우리 마음에 든다고 언제든 고용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후보자도 우리 두산이 마음에 들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외부에서 임원 한 명을 영입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립니다.”
―외국인 임원들은 두산의 어떤 면을 보고 끌렸다고 보십니까.
“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너의 열정과 회사의 비전을 느꼈다고 합니다. 미국 유럽의 글로벌 기업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는 상태여서 도전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한국 기업은 계속 세계시장에서 성장 속도가 빨라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외국인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외국인 직원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요.
“역량과 직무 경험, 주어지는 직책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죠. 외국인이 국내생활을 할 때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인 6명 최고경영진에 앉힌 LG전자
 |
| LG전자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 |
더모트 보든 부사장은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7년 12월 입사했다. 토머스 린튼 부사장은 IBM을 거쳐 지난해 1월 영입됐다. 디디에 쉐네보 부사장과 제임스 셰드 부사장도 지난해,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과 브래들리 갬빌 부사장은 올해 입사하는 등 모두 최근 2년 사이에 입사했다.
 |
| LG전자 브래들리 갬빌 CSO |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은 포드에서 인사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 지난 2001년부터 2년간 포드 일본법인에서 근무했다. 토머스 린튼 부사장은 IBM을 비롯해 다양한 글로벌기업에 근무하면서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LG전자는 왜 이토록 많은 외국인 임원을 고위직에 영입한 것일까. LG전자의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 배치, 國籍(국적) 불문’이다. 南鏞(남용) 부회장은 “국적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고 공언해 왔다.
 |
| LG전자 토머스 린튼 CPO |
―원래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일할 생각은 있었는데, 원래 생각했던 곳은 홍콩이나 상하이, 싱가포르 등이었어요. LG전자의 제의를 받았는데, LG전자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훌륭한 회사라고 알고 있었지만 선뜻 한국을 근무지로 택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한국이 외국인에게 선호되는 근무지는 아닌가요?
“아무래도 언어장벽이 크다고 봅니다. 영어로 100%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 일본은 영어로 일하기가 아직 힘이 들어요. 중요 업무는 통역을 거쳐야 하고요. 몇 해 전 캄보디아에 머무른 경험이 있는데, 캄보디아가 한국보다 영어구사력이 낫다고 느꼈습니다.”
 |
| LG전자 제임스 셰드 CGTMO |
“일단 다른 나라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LG전자가 서구 기업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돼 이를 배우고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이전에 있었던 HP 등 다른 글로벌 기업과 비슷하다면 LG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일단 오너가 있는 기업인 만큼 추진력이 있고,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 기업의 장점이지요.”
 |
| LG전자 더모트 보든 CMO |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이 제조업과 건설업 등으로 해외에서 도약한 발판 중 하나가 오너경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지요.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분명히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룹 내 계열사끼리 해결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제 눈엔 그렇지만 그것이 또 다른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아직 전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
| LG전자 피터 스티클러 CHO |
“미국이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도 세계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한국은 문호를 개방한 지 몇십 년이 되지 않는 만큼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私見(사견)인데, 외국인 임원이 많지 않으면 아직 그 기업은 세계화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쉐네보 부사장은 “나보다 아내가 한국문화와 한국음식 등 한국 생활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이고, LG전자도 성장속도가 빠른, 비전 있는 기업이어서 당분간은 계속 한국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요직에 외국인 거의 없어
 |
| 삼성전자 데이비드 스틸 전무 |
데이비드 스틸 북미총괄 상무는 영국인으로 글로벌 컨설팅회사 매킨지에서 근무했다. 그는 삼성전자 내 외국인 인재 조직인 ‘미래전략그룹’의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 지난 2002년 상무보로 승진해 삼성전자 본사 조직의 첫 외국인 임원 배지를 달았고, 2005년 상무로 승진한 이른바 ‘S(Special)급 인재’다.
그는 삼성전자 내에서 글로벌 마케팅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해외 휴대폰 마케팅 업무를 맡다가 지난해부터 북미총괄 상무로 미국에서 근무 중이다. 데이비드 스틸 상무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전자를 평가한다면.
“기업의 문화와 그 안의 사람들만 따질 때 삼성은 아주 매력적인 회사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채용해 왔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회사가 됐어요. 직원들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이고요.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은 삼성전자가 다른 글로벌 기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죠.”
 |
| 삼성전자 요한 상무 |
“대부분의 대기업이 영어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정보를 공유합니다. 1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죠. 한국 기업에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 기업들의 노력으로 미뤄 볼 때 향후 10년 안에 더 큰 변화가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최초의 외국인 임원인데, 어려웠던 점은?
“2002년 적절한 시점에 제가 임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의 글로벌화가 가시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었죠. 따라서 외국인에 대한 시선도 기대와 관심 등으로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삼성 임원이 해외 체류 또는 유학 경험이 있었고, 저를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습니다.”
‘최고 전문가’ 영입한 기아자동차·제일기획
 |
| 에쓰오일 아흐메드 알 수베이 대표 |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취임 후 ‘쏘울’, ‘포르테쿱’ 등 기존 국산 자동차와 완전히 차별화되는 디자인을 선보여 기아차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매출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워낙 획기적인 처우로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터라 社內(사내) 반발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이던 鄭義宣(정의선) 現(현) 현대차 부회장의 ‘비호’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거액을 들여 외부인을 영입하자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사장의 디자인 개혁 의지가 워낙 확고해 아무도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그 덕에 슈라이어 부사장이 독립적으로 디자인연구에 나설 수 있었고, ‘쏘울’과 ‘포르테쿱’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
| 기아자동차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 |
브루스 헤인즈의 직책은 글로벌 COO(Chief Operation Officer). 글로벌 경영방식을 도입해 사업을 개편하는 게 주임무다. 또 글로벌 광고주를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광고제작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세계 16위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社(사)로, 세계 28개국 35개 해외 지사 및 법인에서 700여 명의 현지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해외 매출비중이 55%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제일기획 金樂會(김낙회) 사장은 전문가 영입에 대해 “외부의 이질적인 것과 내부의 것을 합친 ‘혁신’과 ‘통섭’으로 광고산업을 키운다는 게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제일기획이 레오버넷 전임 사장을 영입하고 인터랙티브 본부를 신설한 것은 경계를 허물어 혁신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거죠. 브루스 헤인즈 외에도 세계적으로 실력을 입증받은 저명한 광고 인재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고, 외부와의 협력도 적극 추진하려고 합니다.”
 |
| 제일기획 브루스 헤인즈 부사장 |
이밖에도 외국인 임원 영입에 적극적인 회사가 동부하이텍이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최고기술임원 출신인 루 후터(미국) 부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지난 7월 펠리시아 제임스(미국), 바디 엘 카레(독일), 하워드 테스트(미국), 도시아키 다니구치(일본), 요이치 오쿠무라(일본) 등 5명을 전문위원으로 데려왔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전문위원을 영입해 사업전략, 개발, 영업에 배치했다. 펠리시아 제임스 전문위원은 TI 등에서 24년간 전력관리 반도체와 자동차용 아날로그반도체 등을 개발해 왔다.
바디 엘 카레 전문위원은 1970년부터 IBM, TI, 마이크론 등에서 반도체 설계와 공정기술 개발을 맡았었다. 하워드 테스트 전문위원 역시 공정개발 전문가다. 도시아키 다니구치, 요이치 오쿠무라 전문위원은 일본에서 영업과 기술 마케팅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 회사 권기주 팀장은 “향후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핵심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외국의 관련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고 했다.
국내 상장기업 중에 상근 임원으로 재직 중인 외국인은 대한항공 안전보안실 담당 피터 존 블레이크 상무, 한진해운의 로드니 밀러·윌리엄 루니 상무와 마이클 라닥 상무보, CJ제일제당의 바이오글로벌기술혁신센터장 오오스미 쓰요시 상무가 있다. 국내 상장기업이면서 외국기업과 합작사인 에쓰오일(아람코)과 GS칼텍스(셰브론)에는 합작사에서 파견된 외국인 임원이 각 6명씩 근무 중이다.
외국인 임원의 근무환경은
외국인이 국내 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어떤 처우를 받고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처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내 임원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임기는 대개 2~3년으로 계약을 맺고 온다.
임원급의 외국인은 대부분 거주지(전·월세 아파트 혹은 월세 비용)와 생활비를 별도로 받는다. 기업 측에서는 가족이 함께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외국인 임원들은 자녀들이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도록 하고 배우자와 둘이 사는 경우가 많다. 거주 지역은 한남동이나 성북동 등 외국인이 많이 사는 富村(부촌)이 압도적이다.
국내 외국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과도 처우는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외국기업의 한 외국인 간부는 “국내기업과 외국기업 한국지사 모두에서 제안을 받아봤지만 연봉과 생활비 등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좀 더 모험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고생이 되는 만큼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국인 임원이 근무하는 국내 기업에는 통역사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외국인 임원이 주재·참가하는 회의는 영어로 이뤄지고 보고서도 영어로 작성된다. 그러나 한국인 직원들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을 경우를 위해 통·번역 전문가가 존재한다.
6명의 외국인 최고경영진이 근무하는 LG전자에는 5명의 동시통역사가 상주한다. 이들은 임원들의 간부회의나 인터뷰 등을 지원한다. SK텔레콤에도 스티븐 프롤리 부사장의 전담 통역사가 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비서나 영어에 능숙한 해당 부서 직원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필자의 질문에 LG전자 측은 “업무나 회의석상에서는 언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비슷한 구조(외국인 임원+한국인 직원)를 가진 주한 외국기업들은 통역사를 두지 않고 있다.
정부·공사 요직도 외국인
 |
| 기상청 케니스 크로퍼드 기상선진화 추진단장 |
한국석유공사는 석유개발원장과 인사고문 두 자리에 외국인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헤드헌팅 업체와 교섭 중이다.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내년 2월쯤 외국인 간부들이 석유공사에 등장하게 된다. 姜泳元(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은 “기업문화의 변혁과 기술, 인력 흡수를 위해서는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해야 하며, 이를 위해 외국인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외국인 영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외국인 공무원이나 공사 고위직의 처우는 어떤 수준일까. 케니스 크로퍼드 단장은 공무원 1급 처우에 연봉은 3억2500만원(26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 역시 외국인 전문가가 사장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앞으로 영입할 외국인 간부는 기존 보수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개별 계약에 따라 보수가 결정될 것”이라며 “국제 에너지업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공사 내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관공서나 공사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연봉이 높지 않아 우수 외국인 인재를 영입하기 쉽지 않은 만큼 기존 직원임금 체계와 별도로 획기적인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영입=글로벌 경영?
 |
| SK 린다 마이어스 부사장 |
LG경제연구원 윤언철 연구원은 기업이 외국인 CEO나 임원을 데려오는 이유는 ▲강력한 구조개혁 또는 획기적인 변화 ▲기업의 신뢰도와 경영 능력 업그레이드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외국인이 더 적합하기 때문 등 세 가지라고 분석했다. 윤 연구원의 설명이다.
“외국인 임원이 성공을 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외국인 경영인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현지어 학습, 현장경영, 강력한 후원자 그룹 존재, 타국문화 이해 등입니다. 이 같은 덕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국인 영입은 毒(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외국인 임원은 데려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가 더 중요합니다. 든든하게 후원을 해 주고, 중요한 정보가 가감 없이 책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견고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또 한국적 경영 환경의 토양을 잘 이해하도록 현장경영과 언어장벽 해소 등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
| 동부하이텍 루 후터 부사장 |
‘의사결정의 차이’는 국내 대기업의 오너경영에서 그 원인으로 꼽는다. 그는 “오너경영체제에서는 보다 직선적인 의사결정이 주를 이루는데, 서구의 경우처럼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이 차별화되는 경영시스템과는 다른 점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시장이 통합된다 해도 인종과 언어,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각국의 기업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글로벌기업이라 해도 해당 지역의 지사장은 현지인을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글로벌 경영이 외국인 몇 명을 고용하고 외국인 CEO를 영입했다고 정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국내 상위 20개 기업 중 60%인 12개 기업에 외국인 임원이 한 명도 없는지 궁금하다. 취재 중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외국인 임원이 굳이 필요합니까? 위기 탈출이나 다른 분야로의 도약을 위해 영입하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이 회사가 아직 먹고살 만하다는 증거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