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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괴짜 기업] 배짱이들의 天國, 미라이(未來)공업

‘쉬어라! 놀아라! 일하지 마라!’가 社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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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은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쳐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 시장을 장악

⊙ 창업 이래 40여 년 동안 적자 한 번도 내지 않고 경이적인 성장
⊙ “사원들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준다. 사원이 행복하지 않으면 회사가 존재할 가치가 없다”
⊙ 선풍기 바람에 사원 이름 적은 쪽지 날려 과장 뽑고, 구두쇠처럼 아껴서 직원 위해 ‘통 크게’ 쏜다

廉東浩 호세이대 비교경제연구소 겸임연구원
⊙ 1966년 광주 출생.
⊙ 경희대 졸업,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저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괴짜 경영학>.
미라이공업 창업자 야마다 아키오. 현재는 경영진에서 물러나 사원들 상담역으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는 경영자도 株主(주주)도 아닌 사원의 것’ ‘사원에게 감동을’이란 창업 정신을 토대로 4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평균 경상이익률 15%대라는 경이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
 
  70세까지 정년보장, 전 직원 정규직, 3년간 육아 휴직, 5년마다 회사 부담으로 全(전) 직원 해외여행, 출산휴가 3년, 하루 업무 시간 7시간15분, 연간 휴일 140일. 그중 연말연시 휴가 20일, 8월 우란봉(한국의 추석과 같은 명절로 오봉이라고도 함) 휴가 10일 등등 이 회사를 상징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연간 휴일 140일은 일본 상장기업(120일) 가운데 가장 많고, 업무시간 7시간15분은 일본 노동기준법에서 정한 8시간보다 45분이나 짧다. 성과주의도 없고 연공서열이다. 월급도 기후縣(현) 공무원보다 많고, 업계와 지역평균보다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없는 것도 많다. 노조도 없고 노사분규도 없다. 타임 카드도 없고 유니폼도 없다. 사장 명령도 없고 잔업도 없다. 잔업을 하면 전기세를 징수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한다. ‘해고’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도 없다. 이미 그런 어휘는 미라이공업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사라진 死語(사어)다.
 
  경쟁도 없고 명령도 없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사원들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배짱이’ 사원에게는 더 없는 천국이 아닐 수 없다.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미래형 유토피아 기업이 아니다. 일본 기후현에 실존하는 전기설비자재 제조업체 미라이(未來)공업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고도 기업 경영이 가능할까? 이해하기 어려운 경영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1965년 8월 자본금 50만 엔으로 문을 연 미라이공업은 창업 이래 40여 년 동안 1970년대 오일쇼크 때도,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거품경제 붕괴기에도 15%대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2008년 현재 매출액 261억 엔(한화 약 3300억원), 사원 783명의 미라이공업은 1991년 이후 평균 경상이익률이 14.19%(업계평균 7.1%), 당기순이익률 8.9%(업계평균 4.3%)로 업계 평균보다 두 배나 많다.
 
 
  괴짜 경영자 야마다 아키오
 
   미라이공업은 위기에 강했다. 2008년에도 경상이익률 14.8%에 당기순이익률 8.9%라는 경영성과를 기록했다. 최근 10여 년간의 경영 성과를 보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1999년 당시 사원 수는 701명. 매출액은 127억 엔이었다. 그런데 7년 후인 2007년의 사원 수는 783명으로 82명밖에 늘지 않았지만 매출액은 두 배가 넘는 261억 엔으로 배가 성장했다.
 
  이 시기는 일본 경제가 거품이 꺼지고 장기 침체기를 맞은 시기다. 닛산, 마쓰시타, 소니, 도시바 등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수천 명 단위로 정리해고를 하면서 겨우 흑자를 유지했던 시기다. 그런데 미라이공업의 사원 수는 오히려 늘었고, 매출액도 증가했다.
 
  ‘경쟁’과 ‘효율’이 아닌 ‘사원 행복’과 ‘고객 감동’을 경쟁력으로 삼고 있는 미라이공업에는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제품 하나 없다. 그런 지방 기업이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훈련받은 세계적인 기업 마쓰시타 그룹을 상대로 경쟁해 업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치복스(*) 시장 점유율 80%, 케이블 배선용복스 90%, 합성수지 전선관 50%라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헐렁한 경영철학에, 다 퍼주는 듯한 기업이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그 지속적인 성장 배경에는 괴짜 경영자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 상담역과 ‘배짱이’ 사원들이 있다.
 
  창업자이기도 한 야마다 상담역은 “사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당근’을 궁리하는 것이 경영”이라고 말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를 2005년 위대한 名(명)경영자 50인에 선정했다. 일본 언론들은 그에게 ‘명물 경영자’ ‘유토피아 경영을 실현한 경영자’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경영 컨설턴트의 조언을 항상 거꾸로 실행한다 해서 일본 컨설팅 업계에서는 그를 ‘청개구리 경영자’라고도 부른다.
 
  그는 경기가 안 좋다고 사원을 해고하고 임금을 깎는 경영자를 가장 ‘저질 경영자’로 친다. 그는 자본주의니 新(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그런 단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사원이 행복하면 된다.
 
  사원이 의욕을 느낄 수 있도록 무엇을 해 주면 될까? 사원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될까? 그의 머릿속에는 ‘사원의 행복’과 ‘감동’, 두 단어밖에 없다. 그는 사원을 감동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경영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비상식적인 경영자, 유토피아 경영자
 
  사원이 즐거워하는 것이라면 상식과 관행을 깨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1991년 처음으로 상장을 할 때였다. 경리부도 없고 본사 기능이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터라 상장을 위해 부서를 새로 신설해야 했다. 그때 과장 승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는 선풍기 바람에 이름을 적은 쪽지가 가장 멀리 날아간 사원을 과장으로 뽑았다. 남들은 ‘그런 엉터리가?’라고 지적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사원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奇行(기행)이었다. 그의 말이다.
 
  “일 잘하는 사원이나 못하는 사원이나 능력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해요. 과장 시켜 놓으면 과장 하고, 부장 시키면 부장 할 수 있는 게 미라이공업의 사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본 기업의 68%가 적자다. 300만3000개나 되는 일본의 법인 가운데 흑자 기업은 불과 32%(2007년 기준)에 불과하다. 1960년대 적자비율 30%, 1980년 거품경제 시기 적자비율 50%, 1990년대 이후는 70% 전후의 적자 추이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도 그만큼 기업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라는 일본적 경영요소가 일본경제의 장점이라고 자랑했던 일본 경영자들은 한순간에 이를 무너뜨리듯 냉혹하게 감원을 했다.
 
  이들의 변명은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모든 경영자가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구조조정과 성과주의가 사회와 재계의 ‘상식’이 되어버린 시류에 역행하듯 야마다 창업자는 “인간은 코스트가 아니다”라며 “사원이 행복하지 않으면 회사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이색적인 ‘사원 행복론’을 주창했다.
 
  다른 경영자의 시샘과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그는 ‘인본주의 감동경영’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언제나 경영 판단의 한 축을 사원에게 두었고, 사원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며 사원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경영 성과로 나타났다. 이제 경영학자들은 그를 ‘비상식적인 경영자’에서 ‘유토피아 경영자’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5000개가 넘는 기업을 조사해 온 일본의 한 경영학자는 ‘일본이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기업’ 가운데 하나로 미라이공업을 꼽았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일본적이며, 기업의 존재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게 선정 이유였다.
 
 
  회사 국기 게양대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이유
 
미라이공업 본사 앞에 일장기, 社旗(사기)와 함께 게양돼 있는 태극기. 이 회사는 방문하는 손님의 국가 깃발을 게양한다.
  신칸센과 재래선을 갈아타고 기후현 오가키市(시)에 있는 미라이공업 본사로 달려갔다. 오가키驛(역)에서 택시로 한참을 가다 보니 논길 저편에 미라이공업 본사가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국기 게양대에 일장기, 미라이공업 社旗(사기), 그리고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태극기가 왜 걸려 있느냐고 물었다. 안내역을 맡은 사카모토 팀장은 “한국 손님인 선생님을 환영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늘만 특별히 신경 쓴 것이냐”고 물었더니 “일주일에 평균 2~3일은 한국에서 견학 팀이 오고 있고, 한국뿐 아니라 외국 손님이 오면 그때마다 그 나라 국기를 게양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기업이 안 하는 ‘차별화’와 ‘감동’을 위해서란다.
 
  미라이공업은 일본에서 도요타자동차 다음으로 견학 팀이 많은 회사다. 이날도 방문 일정이 잡혀 있는 한국의 철강회사, 컨설팅회사, 일본의 투자자문회사의 社名(사명)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필자 이외에도 한국에서 두 팀이 방문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요타자동차와 다른 것은 견학자 한 사람당 2000엔의 견학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안내자의 인건비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도요타자동차가 안 받으니까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차별화 정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무실과 중역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계단 정면과 벽면 곳곳에 ‘항상 생각하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중역실이 있는 2층 복도는 대낮인데도 전등을 다 꺼서 어둑했다. 社內(사내) 모든 전등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각 전등 담당자는 자리를 떠날 때마다 전기를 끄지 않으면 안된다. 창업자인 야마다 상담역은 물론 회장, 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복도를 지나 본사 2층 맨 끝에 자리한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야마다 상담역이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게 편하거든 허허…” 하며 웃는다. 모양새를 갖춘다고 갖췄는데도 행색이 허름하다. 거의 종아리가 다 보이는 반바지인지 긴 바지인지 분간이 안 가는 파자마 비슷한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다.
 
  “난 항상 이래, 추우면 한 겹 더 껴입고, 더우면 벗어. 한국은 예의 없다고 뭐라 한다며. 자연스럽고 좋잖아. 허허….”
 
최근 한국 기업들이 이 회사의 경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많이 방문하고 있다.
 
 
좀스럽게 절약한 돈 아낌없이 쓴다

 
  매출액 261억 엔 기업의 창업자이자 최대 株主(주주), 존경받는 경영자에 現(현) 상공회의소 회두를 지낸 지역 명사에 매월 전국을 누비며 10여 건 가까운 강연을 소화하는, 일본이 주목하는 경영자라는 것을 잊는다면 동내 어귀에서 한가로이 장기나 두는, 말 그대로 괴짜 할아버지다. 환경친화적이고 일하기가 편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실내복 차림으로 업무를 본다고 직원들이 귀띔한다.
 
  복사비도 아깝단다. 그래서 사원식당에서 사용하던 식권도 없앴다. 먹은 만큼 자기 신고를 하고 돈을 내면 된다. 복사기도 380명당 한 대꼴로 본사에 두 대밖에 없다. 서둘러 복사를 해야 할 만큼 급박한 게 없으니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직원에게 연락할 때는 전화요금이 비싼 휴대전화는 쓰지 않는다. 바이어 접대도 사원식당에서 간단하게 처리한다.
 
  정문에 수위실이 있지만 이곳을 지키는 수위는 없다. 경비원을 둘 때 발생하는 비용보다 도둑을 맞아 잃게 될 비용이 더 적다는 것이다. 범죄 경제학의 원칙을 제대로 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구두쇠 스크루지처럼, 좀스럽게(?) 절약한 돈은 모두 사원들을 위해 쓴다. 미라이공업은 전 사원이 1974년 대만 여행을 시작으로 5년마다 해외여행을 하고 있다. 1억5000만 엔에 달하는 여행비용은 모두 회사가 부담한다.
 
  지금이야 여행 기간 중에도 거래처를 위해 영업 창구를 열어 놓고 있지만, 그동안 사원여행 기간에는 회사 문을 닫았다.
 
  영업담당 사원은 발을 동동 구르며 거래처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야마다 상담역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창고 열쇠 3000개를 만들어 모든 거래처에 배포했다. 제품을 필요한 만큼 알아서 가져다 쓰라는 것이다. 이 황당한 제안에 거래처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월급은 동업종 타사보다 10% 정도 높은데 하루 노동시간은 7시간15분밖에 안된다. 창업 초기부터 이렇게 휴일이 많고 노동시간이 짧았던 것은 아니다. ‘출근시간을 좀 늦춰 주면 아침 가사가 편해지는데….’ ‘끝나는 시간이 좀 빨라지면 전철이 혼잡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는데…’라는 사원들의 불평을 하나 둘씩 들어주다 보니 작업 시간이 단축되었고 조금씩 휴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주 4일제를 도입하려다 실패한 것도 사원 감동을 위한 것이었다. 일부 사원이 라인 교대가 불편하다는 진정서를 냈다.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 일주일에 3일 쉬면 해결된다는 안이 나왔다. 생산이야 어떻든 시험 삼아 실시에 들어갔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사원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너무 많이 쉬어서 건강 리듬이 깨지고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본 최초의 4일제 근무 시도는 사원들의 반대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것도 충분한 당근이 되었다”고 야마다 창업자는 회술한다.
 
 
  직책 대신 ‘氏’로 호칭
 
  미라이공업의 모든 의사 결정의 최우선 순위는 ‘사원’이다. “사원을 감동시켜라! 그래야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창업정신은 경영의 좌표이자 철학이다.
 
  야마다 창업자는 “고객이 ‘神(신)’이라는 발상은 30년 전의 얘기다. 고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원 만족도”라고 말한다. 자기 회사 사원 하나 감동시키지 못하는 기업이 고객을 감동시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 그래서 ‘노동량 할당 목표’ 등 그 어떤 경영 목표치도 설정하지 않고 성과주의를 철저히 배제한다. 사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도출해 내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직책 대신 ‘氏(씨)’로 부르는 사내 관행이다.
 
  이 회사의 사원 간 호칭은 모두 ‘씨’다. 상사를 부를 때도 ‘○○씨’ 부하를 부를 때도 ‘○○씨’다. 계급의식과 상하종횡의 벽을 없애기 위해서란다. ‘부장’은 부장이라는 업무를 보는 사원이고 ‘사장’은 사장이라는 일을 하는 사원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책상도 의자도 모두 같고 근무 중에 과자를 먹어도 좋고, 휴대전화를 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뭐든지 OK다.
 
  유니폼도 폐지하고 유니폼 수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개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란다. “피부색도 다르고 체형도 다른 사원, 흰색을 좋아하는 사원,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원, 십인십색의 사원에게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히게 되면 개성을 살릴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연구개발 예산은 연평균 2억1600만 엔. 매출액 대비 0.92%로 불과 1%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년 시장에 내놓은 신제품 수는 200에서 300종류에 달한다.
 
  생산하고 있는 2만여 종의 상품 가운데 90%가 특허 및 실용실안 등 아이디어 제품이다. 그것도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이 대부분이란다. 이들 제품의 시장점유율도 압도적이다. 합성수지 전선관 50%, 케이블 배선용복스는 90%나 된다.
 
  이런 제품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독특한 ‘사원제안제도’다. 제안서를 내기만 하면 무조건 500엔에서 3만 엔을 지급하는 ‘사원 제안 제도’를 통해 모집되는 아이디어는 연간 1만여 건. 전 사원이 연구원인 셈이다. 상사 욕만 안 하면 어떤 것이라도 다 받아주기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이디어도 더러 있지만 가끔 대히트 상품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2만 종류에 달하는 상품 가운데 벽 뒤에 장착하는 전기스위치 박스가 있는데, 박스 속 전기 장치가 고장나면 어림잡아 대충 벽을 뚫어서 봐야 했다. 그런데 이 박스에 알루미늄 테이프를 붙여 휴대용 금속탐지기로 위치를 찾아내 정확히 벽을 뚫을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사원을 무한 신뢰

 
  이 제도는 이처럼 아이디어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사원이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내 집 일처럼 개선점을 찾고 제품을 개량하려 하며, 회사의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인식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라이공업은 사원을 철저히 신뢰하고 현장에 결정권을 부여한다. 공장 이곳저곳에 ‘항상 생각하라!’는 社是(사시)가 붙어 있다. 사원 각자가 직접 생각하고 결정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대변하듯 미라이공업에는 ‘호렌소’가 없다. 호렌소란 일본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3요소, ‘호코쿠(報告)’ ‘렌라쿠(連絡)’ ‘소당(相談)’이다. 판단을 구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상사에게 보고하러 가는 것처럼 비경제적인 것이 없다는 게 미라이공업의 생각이다.
 
  야마다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장에서 물러나 상담역으로 있지만 상담하러 오는 직원에게는 “상담하러 오면 해고”라며 호통을 쳐서 돌려보낸다. “나보다 더 전문가인 본인이 직접 생각하고 처리하라”는 게 호통의 이유다.
 
  경리사원 1명이 100억 엔이 넘는 청구서를 자신의 판단으로 결제하고, 공장 건설 용지를 선정하고 구입할 때까지 회사 임원에게 단 한 번의 상담도 없이 현장의 영업부장이 결정했다는 일화는 현장중심 경영의 사례로서 회자되고 있다. 야마다 상담역의 이야기다.
 
  “막이 오르면 연기는 배우가 하는 겁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연극은 연기를 하는 측에 감동이 없으면 관객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요. 사원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사원이라는 배우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공연이 시작된 무대 위의 배우에게 밤 놔라 콩 놔라 지시한다면 배우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지시하려는 경영자가 있는데, 이는 말 그대로 3류 경영자입니다.”
 
  미라이공업은 메세나 활동을 통한 지역사회 공헌에도 힘을 기울인다. 1975년에 ‘미라이 커뮤니티 시어터’를 설립한 이후 연극과 러시아 발레, 중국 경극 등 공연을 하고 있다. 매회 수천만 엔을 들여 기획한 이 공연은 지역주민들을 전원 무료로 초대한다. 창업 10주년인 1975년부터 시작한 메세나 활동은 해를 더하면서 지역에 커다란 문화 활동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젊은 시절 연극에 미쳐
 
미라이공업이 생산 판매하는 주력 제품들.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1995년에는 거래처의 채권 1억6000만 엔을 포기하고 같은 전기기기 제조업체에 복구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렇게 전기료를 아끼고 복사비를 줄이며 자린고비 경영을 하면서도 불우한 同業(동업) 타사를 돕고, 거액을 들여 메세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온 미라이공업. 이유는 단 하나 사원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야마다 상담역의 말이다.
 
  “사회공헌 활동이 알려지고 회사의 평판이 좋아지면 사원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지 않겠어요?”
 
  ‘작은 절약, 커다란 낭비’ 전략은 사원을 감동시키려는 괴짜 경영자 나름의 전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와 감동 경영철학은 그의 인생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전기설비 자재를 만드는 회사의 후계자였던 야마다 상담역은 젊은 시절 연극에 푹 빠졌다. 연극에 미쳐 회사일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현 社名(사명)의 유래가 된 미라이좌(未來座)라는 극단까지 만들어 무대감독을 했다. 17년간이나 아버지 회사의 전무로 일했지만 아버지는 장래성이 없다며 절연을 선언했다.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됐다. 생계를 위해 연극을 포기하고 극단 동료와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연극에 미쳐 안정된 후계자의 길을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생계를 위해 연극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동료와 함께 그러모은 돈 50만 엔을 자본금으로 방 두 칸의 세 평짜리 단층집을 빌렸다.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공구를 들였다. 그것이 바로 미라이공업의 시작이었다. 그의 사원 신뢰 경영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연극 무대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쉬어라! 놀아라! 일하지 마라!’가 사시처럼 되어버린 미라이공업. 배짱이 경영자와 사원들로 가득하지만 경영성과와 생산성은 마른 천도 쥐어짜서 그 물로 공장 청소를 한다는 세계의 걸리버 도요타자동차도 고개를 숙인다.
 
  이러한 경영성과가 언론과 일부 경영학자들은 ‘감동’과 ‘유토피아 경영’에서 온 것처럼 말하는데 과연 그런 것일까? 여기에서 철저히 계산된 수익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
 
  1. 작은 본사 기능
 
  미라이공업은 본사 기능이 작고 영업부 비중이 크다. 영업부 258명(33%)에 비해 본사 업무는 경영기획부 4명, 총무부 6명, 경리부 7명 등 전체의 2.8%에 불과한 22명이 해결한다. 본사 업무는 비생산 부문이기 때문에 정예요원으로 가능하다는 것. 대신 현장과 영업소를 중심으로 생산 부문에 비중을 둔다.
 
  2. 다품종 소량 생산
 
  미라이공업이 생산하는 제품 수는 2만여 점. 스위치복스를 예로 들면 타사는 4종류를 생산하지만, 미라이공업은 64종류나 생산하고 있다. 월 생산은 400만 개. 이 가운데 주력 4종류를 제외한 60종류는 불과 0.1%인 수천 개에 불과하다. 당연히 주력제품 3~4종류 이외는 모두 적자다. 주력제품이 20%대에서 90%까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함으로써 프라이스 테이커(가격 수용자)의 위치를 확보하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제품이라도 타사보다 30%까지 가격을 높게 책정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부분적 적자라도 종합적으로 흑자를 내면 된다는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독자적인 기술로 실용성을 살린 주력제품이 50%에서 90%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함으로써 프라이스 테이커가 되었다. 가격경쟁이 치열한 제품이라 할지라도 많게는 30%까지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가격 전략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3. 현장과 소통하는 비용 구조
 
  미라이공업의 홈페이지 신제품 코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바뀐다. 제품 시리즈화를 통해 연간 200종류에서 300종류씩 신제품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예산을 늘리지 않는데도 이 페이스는 지속되고 있다. 연평균 연구개발비는 2억1600만 엔. 매출액 대비 0.92%로 불과 1%도 되지 않는다. 전문 연구개발요원도 30명으로 3.8%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쉴 새 없이 다양한 신제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재무제표상의 물류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물류비 비율이 매우 높은데 여기에 타사와 구별되는 연구개발과 마케팅 전략의 비밀이 숨어 있다.
 
  연평균 운임비는 14억2000만 엔. 이는 연구개발비의 6.6배에 달하며 매출액 대비 비율로는 6.06%로 매출액 당기순이익 7.15%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물류 비율이 높은 것은 거래처가 3000社(사)가 넘기 때문. 중견기업의 거래처로서는 타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모두 2차, 3차 도매상이다. 미라이공업은 중간 단계를 모두 배제하고 거의 공사현장 직전 단계에서 직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
 
  영업사원들은 도매상뿐만 아니라 현장을 직접 찾아가 물건을 팔기보다는 현장의 의견을 듣고 매일 영업일지를 작성하는 게 주 업무다. 창업 초기부터 맨발로 전국의 영업망을 구축했던 야마다 창업자는 이 영업일지 작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영업사원들이 작성한 영업일지는 개발부로 보내져 집약되는데, 영업일지를 작성할 때는 절대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많은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얻은 정보나 요구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무심코 낙서한 것까지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수집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얻은 아이디어는 신제품 개발과 제품 개량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2006년 기준 특허 및 실용실안 6112건(특허 1259건, 실용실안 540건, 의장 3787건, 상표 526건)이 말해주고 있다.
 
  4. 철저한 차별화
 
  미라이공업은 창업이래 타사와 같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 회사의 차별화 의식은 견학 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견학자 한 사람당 2000엔씩 견학료를 받는 것도 그렇지만, 견학 룸도 2층에 아담할 정도로 작게 만들어 고객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견학자에게만 공개하는 것도 그렇다.
 
  이유는 단 하나, 다른 회사와 반대로 하기 위해서. 제품 이외의 부분에서도 철저하게 차별화를 해 나가는 습관이 제품 차별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가격경쟁을 하지 않는다
 
  低價(저가) 공세가 능사는 아니다. 적정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이라면 가격을 높게 책정해도 고객은 이해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객이라면 철저하게 이해시키는 것, 그것이 영업사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싸면 잘 팔린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가격경쟁과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도록 하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점심 식사를 끼고 5시간이나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기업 장수의 길을 물었다.
 
  “욕심을 버리면 돼! 회사를 키우려 하지 말고 사원이 고용에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이익을 사원에게 투자하면 牛步(우보)처럼 더딘 걸음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장수할 거야.”
 
  미라이공업에는 200억 엔이 넘는 잉여금이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사원에 대한 최대 의무이자 최우선 과제가 사원이 미래 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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