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聖煥의 시각] 100년 지속할 100大 기업에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어 : 월간조선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의 한 섹션에서 재미있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캐나다의 경제전문지 <코퍼릿 나이츠>와 미국의 리서치 전문회사 이노베스트가 ‘장기적으로 지속(또는 생존) 가능성이 높은 100大(대) 기업’을 선정한 결과였다. ‘Global 100: Most Sustainable Corporations in the World’라는 영어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향후 100년 이상 생명을 이어가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할 것으로 평가되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명단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마존이나 코카콜라, 아디다스, 인텔, 도요타 등과 같은 기업들도 있지만 아시오나(스페인의 종합건설회사), 센트리카(영국의 전력·가스회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이 더 많이 포함돼 있다.

<코퍼릿 나이츠>와 이노베스트는 全(전) 세계 1800여 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同種(동종) 경쟁업체 중 환경 및 사회적 위험 관리와 기업지배구조 등에서 가장 뛰어난 회사를 선정했다고 한다. 올해의 경우 특히 株主(주주)와 종업원, 고객 등 모든 이해당사자와의 관계를 평가하는 등 보다 종합적인 평가기준을 도입함으로써 이들 100대 기업은 경기급락과 같은 환경변화에도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기업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등 신흥시장국 기업 全無

삼성전자 매장에서 휴대폰을 고르는 터키 젊은이들. 삼성전자는 세계 전자업계의 强者로 떠올랐지만, ‘100년 지속할 100대 기업’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기업들이 선정되고 이들 선정된 기업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국가별로 보면 15개 국만이 명단을 올리고 있다. 미국이 20개 기업으로 가장 많고, 영국(19개), 일본(15개), 프랑스(8개), 독일(7개)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여기에 캐나다(5개)와 이탈리아(2개)를 더하면 선진7개국(G7)에 속하는 기업이 무려 76개로 10개 중 7~8개를 차지하고 있다. 대륙별로 보면 미국(20개)과 일본(15개), 캐나다(5개), 호주(3개)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국가들이어서 유럽 기업들이 100개 중 57개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호주를 제외하면 G7과 유럽국가들의 독차지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아시아의 경우 일본을 제외하고는 중국과 인도 한국 대만 등이 단 한 개의 기업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남미 역시 한 개의 기업도 오르지 못했다. 선정이 시작된 2005년부터 보더라도 2008년에 홍콩의 도시철도회사 MTR이 한 차례 선정됐던 것을 제외하면 신흥시장국 기업 중 글로벌 100대 기업은 全無(전무)한 상황이다.

선정기관의 公信力(공신력)이나 선정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특히 기업지배구조와 환경 등에 비중을 크게 둠으로써 신흥시장국 기업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또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20개 중 3개(도요타, P&G, 골드만삭스),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20개 중 단 한 개(골드만삭스)만이 글로벌 100대 기업에 포함됐다. 존경을 받거나 일하고 싶은 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겠지만, 선정 또는 평가기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글로벌 100대 기업 홈페이지(www. global100.org)’에 들어가 보면 GE,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IBM, 맥도널드, 월마트와 같은 기업들이 포함되지 않은데 대한 코멘트들이 올라와 있다. 또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기업이 하나도 없다거나, 한국의 현대가 빠져있다고 지적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다보스포럼에서 5년 연속 발표된 명단이라면 상당한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정결과를 무시하기보다는 선정된 기업들을 살펴봄으로써 특징과 교훈을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매출액으로만 기준)의 경우 34개 국가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경제규모에 걸맞게 미국이 153개 기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일본(64개), 프랑스(39개), 독일(37개), 영국(34.5개: 합병에 따라 두 개 국가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경우 0.5개로 계산) 등이 따르고 있다. 중국이 29개(6위), 한국이 15개(7위), 캐나다와 스위스 네덜란드가 각각 14개씩(공동 8위)을 명단에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스페인(11개), 이탈리아(10개), 호주(8개) 등이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고, 인도(7개), 대만(6개), 브라질(5개), 러시아(5개)와 같은 신흥시장국들도 적잖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앞서 언급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글로벌 10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34개에 불과하다. 특히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상위 100대 기업 가운데 지속 가능한 글로벌 1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9개뿐이다. ‘大馬不死(대마불사)’라고 하지만 덩치가 크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덩치만으로 보면 신흥시장국 기업들이 대거 상위권에 올라가 있지만, 신흥시장국들에는 아직까지 100년 이상을 이어갈 기업다운 기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자동차업체는 도요타·혼다만 포함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혼다와 함께 ‘100년 지속할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에 자본주의 역사가 시작된 유럽과 미국(캐나다 포함)의 경우 기업 역사도 오래되면서 생존의 법칙을 깨달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선정된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나이는 102년이고, 46개 기업이 100년을 넘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기업은 핀란드의 제지업체 스토라엔소로 1288년에 설립됐다.

오래된 회사만 선정된 것은 아니다. 캐나다의 통신업체 텔러스는 1999년에 설립된 회사지만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것으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업종별로는 어떤 기업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을까. 농업이 1개 기업도 없는 반면, 광업·제조업·건설업·운송업·소매업·금융업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을 만날 수 있다.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이른바 유틸리티 회사(Utilities)와 주택건설 및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회사도 각각 6개씩 포함되어 있다.

석유·가스회사 6개 중에는 우리가 흔히 들어본 엑손모빌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셸과 같은 회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BG 그룹과 케언 에너지(영국), 엔카나(캐나다), 네스티오일(핀란드) 등과 같은 中(중)규모 회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유전 또는 가스전 탐사부터 정유와 판매를 아우르는 종합에너지업으로 글로벌 경기 또는 국제유가의 등락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업에서는 은행이 3개, 보험이 4개, 종합금융업이 4개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에서는 프랑스의 크레딧 아그리콜, 캐나다의 로열 뱅크 오브 캐나다와 토론토-도미니언 뱅크가 이름을 올렸을 뿐 미국과 유럽의 대형은행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험에서는 스위스재보험(스위스), 프루덴셜(영국), 솜포(損保)재팬(일본), 뮌헨리(독일)가 포함됐다. 종합금융업에서는 도이치 증권거래소(독일), 골드만삭스와 스테이트 스트리트(이상 미국), 런던증권거래소(영국)가 선정됐다. 보험과 종합금융업에서도 역시 초대형사들보다는 그 아래 규모의 회사들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제조업을 세부 업종별로 보면,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가 자동차 회사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내로라하는 자동차 회사들은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스웨덴의 트럭 및 버스 생산회사 스캐니아가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타이어 회사인 프랑스의 미쉐린이 포함돼 있는 것은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 LG, 소니 등은 빠져

화학회사로는 독일의 바스프, 일본의 쿠라레이, 덴마크의 노보자임스가 들어있다. 소비재 및 생활용품 제조회사로는 독일의 아디다스, 미국의 코카콜라와 P&G 나이키, 프랑스의 다농, 영국의 유니레버와 휘트브레드 등이 포함돼 있다.

컴퓨터·전자제품회사로는 델, 휴렛팩커드, 인텔(이상 미국)과 에릭슨(스웨덴), 노키아(핀란드), 리코(일본), 파나소닉(일) 등이 포함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 일본의 소니 등은 빠져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100대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사업지역이 글로벌化(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비재와 생활용품, 컴퓨터와 전자제품처럼 태생적으로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회사는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국내의 내수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가스회사, 부동산회사, 소매유통회사 등도 해외진출을 통한 글로벌화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들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전 세계 10~30개국에 공장 또는 사업장 등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알파벳 순으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스페인의 종합건설회사 아시오나(Acciona)의 경우 5대륙 30개국, 프랑스의 아코르(Accor)는 90여 개국에서 노보텔이나 소피텔과 같은 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5년 연속 선정 기업은 28개

소매유통업체와 전기회사들도 1990년대 이후 해외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의 소매유통업체 이온(Aeon)의 경우 미국 중국 대만 홍콩 등으로 진출해 총매출의 11%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영국의 전기가스회사인 센트리카는 미국 캐나다 유럽대륙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으로 사업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100년을 넘기면서 오래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기업이 태어난 나라와 지역을 떠나 전 세계를 고객으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부분이다.

<코퍼릿 나이츠>와 이노베스트가 글로벌 100대 기업을 선정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 올해까지 총 5번의 명단을 비교해 보면 해마다 변화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매년 30개 안팎의 기업들이 퇴출되고 새로 진입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2008년 명단에서 35개 기업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2005년 이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 기업은 어떤 기업들일까? 모두 9개국 28개 기업이다. 역시 미국이 9개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영국(5개)과 일본(4개), 독일(3개)이 이었다. 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캐나다와 스위스가 1~2개씩의 기업을 포함시켰다.

28개 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컴퓨터 및 전자제품 생산회사가 5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소비재 및 생활용품제조회사(4개), 제약 및 건강관련회사(4개), 유틸리티회사(3개) 순이었다. 광업 부동산 소매유통 건설 등 기타 업종들도 골고루 1~2개씩의 기업을 포함시키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이들 업종이 대부분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이른바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치약과 비누 또는 약과 같은 건강관련 용품과 컴퓨터 등의 전자제품 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필요한 것들이다. 아울러 이들 제품을 최종소비자에게 연결해주는 소매유통업체는 물론이고 주택과 사무실, 이에 공급되는 전기와 가스 등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제품 또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생활필수품의 경우 대부분 內需(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글로벌 100대 기업의 국가별 구성에서 호주(3개)를 제외하면 97개 기업이 G7과 유럽국가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G7은 내수 규모에서 모두 세계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대규모 경제국들이다. 여기다 캐나다는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다. 스위스(3개)와 노르웨이(1개)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무역 및 해외투자 시 거의 차별을 받지 않는다. NAFTA와 EU의 域內(역내)무역 비중은 2007년 기준으로 각각 51%와 68%에 달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내수시장을 엄청나게 넓혀 나가면서 기업들의 활동범위도 글로벌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FTA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이기는 하지만 혼자서도 세계 2위의 경제규모다.

생필품 생산, 큰 내수시장, 글로벌화

좀더 범위를 좁혀서 5년 내리 글로벌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28개 기업의 국적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8개 기업을 배출한 9개국은 G6(이탈리아 제외)와 유럽국가인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로 국한되고 있다. 결국 내수시장의 크기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잣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韓美(한미) FTA는 물론 韓·유럽 FTA를 넘어 韓·中·日 FT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에서 결국 큰 규모의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울러 해마다 30개 안팎의 기업들이 글로벌 100대 기업 명단에서 사라지고 새로 이름을 내민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 현재의 판단기준으로 100년 이상 살아남을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변신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밀려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처럼 컴퓨터와 휴대폰 또는 자동차와 같은 생활필수품 생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기업도 있지만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글로벌화에서 뒤처지면서 글로벌 100대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의 글로벌 100대 기업 명단에는 일본의 파나소닉처럼 4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발표하거나,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기업들이 적잖게 포함돼 있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위기의 여파가 본격화되는 올해의 경우 상당수 기업들이 대규모 赤字(적자)와 減員(감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글로벌 위기를 겪으면서 내년에 발표될 글로벌 100대 기업에는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과 같은 초대형 글로벌 위기를 넘어 살아남는 기업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長壽(장수)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점에서 ‘2010년 글로벌 100개 기업’명단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