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셸 오바마, 엘리트면서도 남편의 업무와 거리 둬… “일주일에 2~3일만 퍼스트레이디 업무 하겠다”
⊙ ‘反尹 정서’ 가진 대통령실 출입기자 방치
⊙ 비판자들도 ‘저지른 일보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는 데는 동의
⊙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전이된 측면도 있어
⊙ ‘反尹 정서’ 가진 대통령실 출입기자 방치
⊙ 비판자들도 ‘저지른 일보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는 데는 동의
⊙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전이된 측면도 있어
- 김건희 여사가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마포대교를 찾아 현장 근무자들을 격려했다. 사진=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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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저녁 윤석열 정권 퇴진 시위 행렬이 서울시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
지난 11월 9일 밤 9시 서울 광화문 시청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 중 상당수가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한 말을 외치고 있었다. ‘김건희를 구속하라’… 시청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노래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니 김 여사를 향해 있었다. ‘김건희는 각오해라’… 대통령 퇴진이라고 하지만 결국 공격 목표는 김 여사였다. 김 여사가 왜 싫은지 물었다.
“인생이 사기잖아요.” “쥴리가 국정농단하잖아요.”
거침없는 대답이 쏟아졌다. 안타까웠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윤 대통령 부정평가, ‘김건희 여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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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용산역 주변에 떨어져 있던 북한의 선전물 |
앞서 10월 24일 오전 용산역 일대에는 기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북한이 보낸 삐라가 길바닥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발에 채일 정도였다. 삐라를 살펴보니 역시 거의 모든 문구가 김 여사를 향하고 있었다. ‘건희왕국’ ‘김건희는 현대판 마리앙뚜안네뜨’. 심지어 대통령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는 걸 조롱하는 내용도 있었다. 인격 모독 수준이라 읽는 이가 민망할 정도였다.
정치계 인사들과 대통령실 전·현직 관계자들, 김 여사의 오랜 지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은 하나같이 신원을 밝히지 않을 것을 원했다. 이들에게 김 여사와 국민 사이가 멀어진 계기가 된 결정적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명품백 논란, 대응이 문제
첫째,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다. 거의 모든 이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2022년 9월 김 여사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재미동포 출신이라는 최재영이라는 자에게 300만원 상당의 크리스챤 디올 파우치를 받은 사건이다. 2023년 11월 27일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가 몰카 형식으로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14개월을 묵혀놨다가 공개한 거다. 이미 몰카는 당한 일, 대통령실의 사후 대응이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몰카까지 들고 와서 이런(함정 취재) 것을 했기 때문에 공작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서 이렇게 이걸 터트리는 것 자체가 정치 공작이다. 상대를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A정치평론가의 말이다. “‘명품 가방’이든 ‘조그만 파우치’든 몰카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에게는 대통령 배우자가 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6월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의 배우자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며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실의 여러 허점을 보여준다.
첫째, 전화 사용 문제다. 김 여사는 최재영씨와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당선 후부터는 개인 전화 사용을 자제했어야 했다. 비서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 번호로 통화하는 습관을 유지한 것도 문제고, 도청에 취약한 일반 전화기를 사용한 것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까지는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은 도청 방지 전화기 일명 ‘비화(秘話)폰’을 썼다. 일반인들이 쓰는 전화기가 아닌 보안에 특화된 특수 전화기다. 비화폰은 일반 휴대폰과 달리 도청 및 감청 방지를 위한 특수 암호키가 장착돼 있다. 보안용 특수 소프트웨어(SW)를 탑재했으며, 일반 유심(USIM) 대신 보안SIM을 사용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삼성의 갤럭시 모델을 썼다. 제작은 국가정보원이, 관리·감독은 경호처가 담당했다. 미국 정보 관련 주요 기관 역시 보안폰인 보잉의 ‘블랙’을 도입했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 직원들 전부 비화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확인됐다. 강 의원은 6월 1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비화폰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개인 전화만 갖고 계신다. 대통령실에 공용으로 쓰는 휴대폰이 있지만 사용 안 한다. 저도 공용 휴대폰을 처음 몇 번 사용하다가 (이후) 사용하지 않았다. 제가 수석으로 1년 7개월 있었는데 비화폰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권익위는 종결했지만…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기 전에 썼던 휴대폰을 계속 쓴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역시 재임 시절 개인 전화를 거의 안 썼다고 한다. 통화를 할 일이 있으면 비서관들이 전화를 연결해 주는 식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임 초기 개인 전화를 유지했던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들었다. 밤마다 통화한 지인들과의 대화 내용이 얼마 후 언론에 공개되기 일쑤였다.
둘째, 아무나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배우자 손명순 여사는 청와대에 들어가며 ‘영부인 자리에 있을 땐 친구, 형제들을 자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손 여사는 임기 동안 별다른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다. 김 여사의 지인은 이 파우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 여사의 부친이 고려대를 다녔어요. 그런 아버지의 과거를 기억한다는 아버지 지인(최재영)이 나타나자 무척 반가웠던 겁니다. 여사 성격상 선물을 거절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한 거예요.”
셋째, 대통령실에서 먼저 사실을 알리고 수사를 의뢰했다면 어땠을까. 서울의소리 측이 동영상의 존재를 밝히자, 김 여사는 주변 지인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상의했다고 한다. 김 여사의 지인 B씨의 말이다.
“만약 김 여사가 먼저 사과하고, 투명한 수사를 요청했다면 대중의 반응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겁니다.”
권익위는 사건을 종결했지만 국민들 마음에선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마포대교 방문 사진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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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6일 김건희 여사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는 10월 17일 ‘대통령 배우자의 도이치모터스 시세 조종 가담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게 주가 조작 공모, 방조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언론인 C씨의 말이다.
“부적절한 시점에 종결됐습니다. 너무 끌었어요. 문재인 정부 기간에 종결됐어야 합니다. 수사가 길어지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더 확대됐어요. ‘뭐 있는 거 아니야?’ 국민들이 생각하게 된 겁니다.”
숙명여대 석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도 마찬가지다. 표절 여부를 조사한다며 3년 가까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세 번째 결정적인 순간은 ‘9월 10일 마포대교 방문’이다.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방문해 현장 근무자를 격려하는 자리였다. 취지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김 여사는 이전에도 ‘자살 시도자 구조 현장 경찰관 간담회’(‘23.8), ‘괜찮아, 걱정 마 마음건강 대화’(‘23.9), ‘회복과 위로를 위한 대화’(‘24.6) 등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상황은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사진이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사진이 2개 이상 공개됐다. 거기에 복장도 문제였다. 흰색 셔츠에 어두운 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필 남성 정치인이 비슷한 자리에서 입을 법한 차림이었다. 가뜩이나 국정에 관여하는 거 아니냐는 논란이 있는데 남성스러운 복장을 입고 마치 현장에서 지시하는 듯한 포즈의 사진을 내보낸 거다. 만약 김 여사가 단정한 정장을 입었다면 논란이 덜했거나 없지 않았을까.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쓰긴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정부 관계자 D씨는 “사진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데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 김 여사 전속 사진사가 있습니다. 그날 촬영한 사진 중 골라서 언론 보도용 사진을 공개하는데, 허리에 손을 올린 포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김건희 악마화
대중의 시각에서 보자면, 명품 가방을 둘러싼 논란을 채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영부인이 마치 현장 지시를 내리는 듯한 포즈로 나타난 거다. 마침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 더 파급효과가 컸다.
이렇게 된 원인은 뭘까. 기자가 만난 이들은 김 여사가 ‘저지른 일보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김 여사의 잘못이 100이라면, 100만의 비난을 받고 있다.’ 김 여사를 비판하는 이들조차 이 말에 수긍했다.
세 가지 원인을 꼽아볼 수 있다.
첫째, 대선 전부터 시작된 ‘김건희 악마화 프레임’이다. ‘쥴리’ 논란이 대표적이다. 김 여사가 예전에 쥴리라는 이름의 접대부로 일했다는 마타도어다. 민주당 정치인들, 김어준, 극좌 유튜버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쥴리 의혹’ 관련 기사를 게시하며 ‘커튼 뒤에 숨어도 주얼리 시절 목격자가 나타났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 한 행태다. 김어준은 방송에 ‘쥴리’ 목격자라며 나이 많은 어르신을 출연시켰다.
사실 민주당 정치인들이 특정 여성을 찍어 괴롭히는 행태는 김 여사가 처음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도 2차 가해를 당했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세계 여성운동사에 전무후무할 단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좌파 계열의 여성 인권단체들은 피해자의 인권이 억압받고, 이런 우스운 단어가 출현해도 입을 꾹 다물었다.
루머 퍼트린 민주당
정치평론가 E씨의 말이다.
“내가 뭘 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쉬워도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긴 어렵습니다. 개인의 경우로 생각해 봐도 그렇죠. 20년 전 어느 날 내가 어떤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그 말을 안 했다고 증명하는 CCTV 화면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중의 인식을 뒤집는 건 상당히 쉽지 않습니다. 법적 판단과 다른 얘기예요.”
‘쥴리 의혹’을 제기한 정천수 전 열린공감TV 대표와 안해욱 전 대한초등학교태권협회장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10일 공판에 출석한 증인들(해당 나이트클럽 사장)은 ‘쥴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문제는 ‘쥴리’ 루머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 여사에게 비판적인 이들은 물론이고 보수 유권자들에게서도 말이다.
《조선일보》 2021년 7월 10일자에는 김윤덕 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쥴리면 워떻고 캔디면 또 워뗘서?〉. 그중 한 대목이다.
〈최근 만난 70대 여인에게서는 아주 도발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야권 유력 주자의 아내를 둘러싸고 떠도는 루머에 관한 것인데요. “대체 쥴리가 뭐요? 뭔데 그리 난리요?” 묻기에 아는 대로 설명해 드렸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쥴리면 워떻고 캔디면 또 워뗘서? 군대도 안 다녀온 것들이 요즘 군대가 형편없어졌다고 흉보고, 룸살롱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것들이 꼭 도덕군자처럼 굴더라만. 대통령 마누라는 뭐 성녀(聖女)로만 뽑는답디까?”
와르르 폭소가 터졌습니다.〉
이 칼럼에 소위 ‘베스트 댓글’로 이런 댓글이 달렸다.
“과거가 꼭 중요하진 않지요~”
이게 딱 그 당시 보수 유권자들의 심리였다. 이 심리를 정확히 봐야 한다. ‘쥴리 의혹’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과거는 상관없으니 이재명 후보 당선만 막아다오’가 보수층의 심리였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 법이다. 그만큼 프레임 효과가 큰 거다.
전용기 추락 기도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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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박주환 천주교 신부가 페이스북에 올린 합성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는 글과 함께 게시됐다. 사진=박주환 페이스북 캡처 |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캄보디아 방문 중 헤브론 의료원과 로타 소년의 집을 방문한 김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장식품처럼 활용하는 사악함부터 버리기 바랍니다.”
어떤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악마로 규정해 버린 거다. 이건 아무리 냉정하게 봐도 생산적 비평도 뭣도 아니다.
종교인들까지 악마화에 나섰다. 2022년 11월 대한성공회 김규돈 신부는 윤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을 두고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천주교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는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그린 합성 사진과 함께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썼다.
이런 극단주의적 악마화를 막을 동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찍이 이런 행위를 ‘선거의 양념’이라며 합리화해 줬다.
둘째, 이럼에도 대통령실의 대응은 안이했다. 취임을 전후해 영부인의 이미지에 이미 접대부며 사기꾼이라는 밑그림이 깔려 있는 상황이었다. 현실을 파악하고 대응할 계획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일단 제2부속실을 없앤 것부터 문제였다. 조직을 간소화하겠다는 취지였겠지만, 김 여사가 외부 활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활동을 계속하는데 제2부속실을 없앤 건 역효과를 불러왔다. 국민들에게 ‘대통령 배우자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제2부속실이 있었다면 취임 초기 ‘건희사랑’ 논란 같은 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공식 일정을 자제해 온 김건희 여사의 일상이 건희사랑 회장이었던 강신업 변호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번 공개됐다.
특히 반려견과 함께 집무실을 찾은 김 여사의 사진이 강 변호사를 통해 공개되자 논란이 됐다.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을 외부인이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 거냐’ ‘도대체 사진을 어디에서 전달받은 거냐’ 등등 의문이 제기됐다.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에도 스크래치가 누적됐다.
이후 강 변호사는 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컷오프됐다. 그러자 ‘한마디로 X 같은 당이다. 나는 국민의짐을 탈당한다’고 선언했다. 건희사랑 같은 모임은 장려할 게 아니라 대통령실 차원에서 자중을 당부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언론 미공개 사진까지 보내주며 실질적으로 독려한 거다. 강 변호사 사태는 명태균 사태를 암시한 조촐한 서곡이었는지 모른다.
정치 개입 안 한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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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가 쓴 책 《비커밍》. |
그런 미셸도 선거운동 시절 위기를 겪었다. 오바마가 위스콘신 경선에서 승리한 뒤 미셸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조국이 진정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애국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우익 논평가들은 인종 편견적인 발언도 쏟아냈다. 미셸을 ‘사나운 흑인 여성’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언론의 공격도 시작됐다. 오바마 캠프는 얼른 정치 컨설턴트 스테파니 커터를 고용했다. 커터는 어린이 비만을 줄이는 국가적인 운동 ‘몸을 움직이자(Let’s Move)’을 구상하며 미셸의 쾌활하고도 부드러운 퍼스트레이디 이미지를 정립했다.
미셸은 취임 후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만 퍼스트레이디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딸들과 가정을 위해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이것 역시 미셸의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같은 민주당 출신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다. 그럼에도 힐러리와 다른 길을 걸었다. 남편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고 돋보이지 않겠다고 자처해 오히려 돋보였다.
만약 미셸이 대통령실이나 정부 인사, 정책에 약간이라도 개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면 퇴임할 때까지 높은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다.
오랜 지인과 단절한 멜라니아
후임 영부인이었던 멜라니아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멜라니아는 대선 당시 홍역을 치렀다. 모델 시절 찍었던 미공개 전신 누드 사진까지 등장했다(지금도 구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취임 후인 2020년에는 스테파니 윈스턴 월코프 영부인 선임 보좌관이 멜라니아의 실체를 폭로하겠다며 책을 내기도 했다. 월코프는 멜라니아와 친한 15년 지기이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을 도우며 2600만 달러(약 298억4800만원)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백악관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윌코프는 멜라니아가 이때 자신을 공개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월코프에겐 안된 말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멜라니아는 퍼스트레이디의 입장에서 처신을 잘한 거다. 사적인 친분보다 공적인 입장을 우선시했다. 멜라니아가 임기 동안 별다른 논란이 없었던 데에는 이런 처신이 한몫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낙 여러 사건·사고의 중심이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가 채 옮겨질 틈이 없었다는 점, 장녀 이방카 트럼프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는 점도 있다.
취임 초기 기자실과 관계 틀어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세 번째 원인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영부인에게 전가된 것이다.
중도보수층이 윤 대통령에게 표를 준 것은 ‘문재인 정권 시절 일어난 비정상적인 일들을 정상화하겠지’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책임자 처벌, 이재명 대표 법적 처벌이 비정상의 대표적 예다. 두 건 모두 아직 진행 중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2018년 지방선거 전 청와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송철호 전 시장의 당선을 돕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송 전 시장은 2017년 9월 울산지방경찰청장이던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의원) 관련 수사를 청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하명 수사’에 나선 혐의로 기소된 황 의원에게도 3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취임 초기 이미 대통령실과 언론과의 관계가 뒤틀려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전 정부 시절 출입하던 매체와 기자들이 여전히 기자실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정권 출범에 맞춰 출입매체와 기자들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가 최영범 초대 홍보수석에게 올라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0명 넘는 기자 중 대략 80~90%는 반윤(反尹) 정서를 지닌 기자들이었다. ‘걸리기만 해봐라’는 말이 기자실에서 오갔다는 얘기가 들려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대통령 지지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이른바 ‘샤이(shy) 보수’들이 많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네 번째 원인은 영부인에 대한 연구와 역할 정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이 쓴 《영부인론》(2001)이 영부인에 대한 거의 유일한 종합적 연구서다.
역대 정권에서도 영부인의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활동자료집〉을 냈을 뿐이다. 후임자와 학계 연구를 위해 50권만 발행했다.
영부인 연구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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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 청와대에 모인 영부인들. 왼쪽부터 손명순 여사, 이순자 여사, 이희호 여사, 김옥숙 여사. |
한국의 영부인들은 평균 55세에 영부인 자리에 올랐다. 김 여사는 49세에 영부인이 되어 약간 어린 축에 속한다. 영부인이 될 시점 기준 최연소 배우자는 38세에 영부인이 된 육영수 여사다. 이희호 여사는 78세에 영부인이 됐다.
김건희 여사는 당선 직전까지 직업이 있었던 유일한 영부인이기도 하다. 직업을 가져본 적 있는 영부인은 있었다. 공덕귀·육영수·이희호·김정숙 여사다.
공덕귀 여사는 진주 시원여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일본 요코하마 신학교 졸업 후 김천 황금동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광복 후엔 조선신학교 베다니 여자신학부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했다. 육영수 여사는 여고 졸업 후 옥천중학교 가사교사로 2년간 재임했다. 이희호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 회장, 이화여대 강사, 대한YWCA연합회 총무,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 한국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김건희 여사는 자녀가 없는 유일한 영부인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경우 영부인 시절이나 그 후에 입양한 양아들들이 있었다.

‘공식 없는 역할’
함성득 교수는 《영부인론》에서 홍기·손명순 여사를 전통적 내조형으로, 프란체스카·김옥숙 여사를 그림자 내조형으로, 육영수·이순자 여사를 활동적 내조형으로 분류했다. 이희호 여사는 참여형으로 분류했다. 권양숙 여사는 그림자 내조형, 김정숙 여사는 활동적 내조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희호 여사를 제외하면 정치적 전문성 등 전문성이 있다고 분류할 순 없다. 김건희 여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 여사가 일정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대통령실과 여론의 시각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2017년 조지 W. 부시 연구소의 ‘퍼스트레이디 이니셔티브’와 ‘국제 여성 연구 센터’가 보고서를 냈다. 세계의 전·현직 영부인 11명의 인터뷰를 담은 영부인의 영향력과 리더십 연구 보고서다. 제목은 〈공식 없는 역할(A Role without a Rulebook)〉이다. 제목대로 영부인 수행에 정해진 규범은 없다. 시대적 분위기와 자신의 이미지와 역량에 잘 맞는 공식을 찾아내야 한다.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국민들 마음속에 긍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공식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