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 백수로 있다가 월급 받아 오니 아내가 좋아해”
⊙ “대통령, ‘국정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달라’고 하셔”
⊙ “노동약자보호법 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퇴직연금 보완에 주력”
⊙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으로 세대 간 상생 필요”
⊙ “민주화운동 보상금 안 받아…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또 국민 세금을 받나”
金文洙
1951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민청학련 관련 제적 /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전노협 지도위원, 국회의원(제15~17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경기도지사(제32·33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역임. 現 고용노동부 장관
⊙ “대통령, ‘국정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달라’고 하셔”
⊙ “노동약자보호법 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퇴직연금 보완에 주력”
⊙ “일률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으로 세대 간 상생 필요”
⊙ “민주화운동 보상금 안 받아…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또 국민 세금을 받나”
金文洙
1951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민청학련 관련 제적 /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서울노동운동연합 지도위원, 전노협 지도위원, 국회의원(제15~17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경기도지사(제32·33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역임. 現 고용노동부 장관
- 사진=조준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의 의미를 열심히 강조하는 김문수 지사를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1980년대에 짱짱했던 노동운동가 김문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북고 재학 시절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던 것을 시작으로 서울대 상대 재학 중 학생시위로 제적당했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를 당했던 학생운동가, 한일공업(도루코) 노조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을 주도했고, 5·3인천사태로 구속돼 2년 6개월 동안 복역했던 노동운동가, 남산 중앙정보부나 보안사 서빙고 분실, 경찰 남영동 분실을 드나들면서 갖은 고문을 이겨냈던 투사…. 젊은 날의 김문수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대한민국 60년의 성취를 긍정하는 경기지사 김문수의 모습은 낯설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가 16년 전인 2008년 《월간조선》 9월호에 쓴 김문수(金文洙·73) 당시 경기도지사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당시 그는 3선 국회의원을 거쳐 경기도지사로 첫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었다. 57세의 한창 나이였고, 일각에서는 그를 2012년 대선(大選)에 나설 잠룡(潛龍) 중 하나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로 재선됐지만, 2014년 지방선거 때는 같은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2016년), 서울시장 선거(2018년) 등에 나섰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거리에서였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 조국(曺國) 규탄 집회 등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있었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기일(忌日)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추도식 행사에서였다. 그때마다 가슴이 짠했다. ‘올곧고 깨끗하고 애국심 강한 정치인이 시대를 만나지 못해 이렇게 잊히나’ 싶어서였다.
김문수가 돌아왔다
그 김문수가 돌아왔다. 지난 7월 31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그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경기도지사를 그만둔 지 12년 만의 공직 복귀였다. 2022년 9월 29일 이후 장관급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일해오기는 했지만, 그 자리는 실제로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 자리로 보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가 고용노동부 장관 의자에 앉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조(元祖) 노동운동가였지만, 그의 한참 후배라고 할 수 있는 민노총이나 시민단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반(反)노동적인 인물’이라며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 거기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 ‘대한민국 건국’ 등에 대한 그의 역사 인식이 시빗거리가 됐다. 우직하다 싶을 정도로 할 말을 다 하는 그를 보면서 한편에서는 “역시 김문수!”라고 박수를 쳤지만, 보수(保守)라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저렇게까지 할 것 있나?”라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는 김문수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논란 속의 인물’은 잡지 기자에게는 ‘만나고 싶은 인물’이다. 카카오톡으로 인터뷰 신청을 했다. 며칠 후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회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조금 조용해지면 만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이런 면에서도 ‘역시 김문수!’였다. 9월 7일 저녁 7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9층에 있는 장관 서울사무실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를 만났다.
― 이렇게 장관실에서 뵙게 되니 참 좋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 젊은 시절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다가 70이 넘은 나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하게 됐는데, 소회가 어떻습니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맡게 됐습니다. 노동운동에서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도지사, 경사노위 위원장을 거치는 동안 노동은 제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을 성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서 성과 내야죠”
― 사모님도 노동운동가 출신인데, 좋아하시던가요?
“백수로 있다가 월급 좀 받아 오게 되었으니, 좋아하더군요. 우리가 재산이 없으니, 늘 ‘빨리 죽지도 못하고 오래 살면 큰일이다’는 얘길 하곤 했는데, 걱정을 좀 덜 하게 됐으니까….”
― 지난 3월 29일 GTX 개통식 때 윤석열 대통령이 ‘GTX는 원래 김문수 지사 아이디어였다’고 언급했던 게 기억납니다. 윤 대통령이 장관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좀 과분할 정도지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할 줄도 몰랐고…. 제가 할 뜻이 있는 것도, 시켜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장관을 하게 되니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 하겠죠.”
― 임명장 받을 적에 윤 대통령이 특별히 말씀하신 게 있습니까.
“비서실장과 사회수석 등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정도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대통령께서 상당히 고심이 많지 않으시겠습니까? 국정(國政)의 난제도 많고, 지지율이 높지도 않고, 야당은 굉장히 의석이 많으니까…. 저는 직언(直言)을 좀 하는 편이기 때문에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 무슨 말씀을 드렸나요.
“기자회견이건 국정 브리핑이건 기자들을 자주 만나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의료대란 상태인데 현장에 많이 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 대통령은 뭐라고 하던가요.
“대통령께서는 노동 개혁의 완수와 노동 시장 약자 보호를 당부하시면서, ‘노동 개혁은 (장관이) 잘해주겠지만, 그 외에 국정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하면 다른 분들이 할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노동 개혁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노동 개혁
― 윤 대통령과 장관님이 생각하는 노동 개혁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궁극적인 목표는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 시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필요한 것은 법치(法治)입니다. 1987년 이후 노동 현장에서 법치가 무너졌어요. 노조원들의 시위 과정에서 경찰관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이건 아니잖아요? 윤 대통령 취임 2년 동안 노동 현장의 법치는 거의 바로잡혔다고 봅니다. 하지만 법치, 공권력(公權力)만으로 노동 현장이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현장의 노동 약자(弱者)들이 우리 대통령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노동 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따뜻한 노동 개혁’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노동 약자 보호, 체불(滯拂) 임금 청산 같은 부분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것도 체불 임금 청산, 노동 약자 보호더군요.
“지금 대기업 노조는 자기 조합원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88%의 노동자들은 누가 챙겨야겠습니까? 우리 고용노동부가 해야죠. 노동 현장을 따뜻하게 만들어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 고용노동부 공무원들한테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잘 챙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무척 강한 반면, 노동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기에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잘하시는 건 정책인데, 정책은 좀 어려워요. 정치는 약간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데…. 이거를 어떻게 쉽게 국민들한테 잘 다가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그래도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의 지지 위에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추진해나가야겠지요. 저부터 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노동약자보호법 추진
― 취임사에서 ‘노동약자보호법’이 올해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노동 약자라는 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애매해서 기존 노동관계법과 제도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플랫폼 종사자(특정인이 아닌 다수에게 일감을 배정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대가나 보수를 받는 이들-기자 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보험설계사, 우체국 보험 모집업자, 건설기계 운전사, 학습지 방문 강사, 골프장 캐디, 택배원,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방문판매원, 가전제품 설치·수리원, 화물차주,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기자 주) 같은 분들이죠. 이런 분들은 일을 해주었다가 돈을 못 받거나, 몸이 아프더라도 대출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 노동약자보호법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갑니까.
“노동 약자들을 위한 표준계약서 마련, 공제회 활성화, 소액대출, 쉼터 설치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무슨 문제만 발생하면 관련 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노동약자보호법이 없었다는 게 의외입니다.
“관련 법안들이 있기는 한데, 법으로 보장해주는 기준이 너무 높은데다가 그걸 이행하지 않으면 강하게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아예 그 분야의 사업을 하려는 사람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지원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틀, 인프라부터 만들고, 법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기법 적용 검토해야”
― 거대 노조의 울타리 안에 있고,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나 급여 수준이 높은 대기업 노조는 과도하게 보호받는 반면, 대다수 노동자는 보호의 사각(死角)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취임사에서 아직도 온전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고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된 것이 1989년입니다. 35년 전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이잖아요? 세계 어느 선진국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달리합니까?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맞게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사정 삼위일체론자’
― 네덜란드나 아일랜드 등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대타협을 해서 경제 개혁, 복지 개혁을 이루어냈죠. 죄송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의 노사정위나 경사노위가 별다른 실적을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예 노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요.
“민노총은 들어오지 않은 지가 25년이 넘었죠. 한국노총은 들락날락하고 있고…. 그래도 일단 같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규제 완화와 노동 개혁을 통해 기업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여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김문수 장관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외국에 나가 보면 경기도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영어로 ‘Gyeonggi-do’라고 하면 발음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경기도에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다’고 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걸 보면서 ‘정말 우리 기업들이 대단하구나’ ‘기업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다.”
― 노동부 장관이라면 당연히 노동자 보호를 우선시해야겠지만, 국무위원으로서는 국가 전체 차원에서 노동과 기업의 조화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노사정(勞使政) 삼위일체론자(三位一體論者)’입니다. 물론 부분적인 갈등은 있겠지요. 과거 운동권에서는 ‘노사는 계급적 이해가 다르다.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죠. 하지만 저는 노사정의 근본이익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회사가 잘돼야 노동자도 월급이나 성과급을 더 받고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고, 그래야 정부도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있지 않겠어요?”
‘CEO 리스크’
― 노동자들의 인명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불의의 사고에도 경영자가 감옥에 가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률이 결국은 ‘좋은 일자리’도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요.
“암참(A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싱가포르에 있는 5000개의 아시아 헤드쿼터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으로 올 가능성이 있지만, ‘CEO 리스크’ 때문에 겁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재용 회장도, 신동빈 회장도 막 잡아넣는데, 그래서야 누가 한국으로 오겠어요? 이런 문제들도 노사 간에 대화를 해서 조정을 해줘야 외국 기업도 들어오고, 국내 기업도 해외로 덜 나가고,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도 가능할 것입니다.”
― 얼마 전 암참 회장도 언급했지만, ‘전투적 노조’도 기업 유치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노동 손실 일수가 전에 비해 약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인천에 있는 GM이 파업을 해서 노동 손실 일수가 조금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종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입니다. 전(前) 정부 시절 대비 굉장히 좋아진 거죠.”
― 고령화(高齡化) 시대에 정년(停年) 연장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지만, 청년들을 생각하면 정답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년 연장을 해버리면 젊은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더 없어지겠죠.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정년에 도달하면 일단 퇴직했다가 대졸(大卒) 초임(初賃) 정도로 ‘재고용’하는 것 같은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생긴 여력(餘力)으로 청년을 좀 더 채용할 수 있겠지요. 이게 세대 간 상생(相生)하는 방법입니다. 경사노위에서도 이런 방안을 논의해보았지만 ‘임금은 깎지 말고 정년만 늘리자’는 거예요. 그럼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기업은 그걸 부담할 수 있나요? 굉장히 어려움이 있어요.”
―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연금(年金) 개혁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에서 챙겨야 할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퇴직연금입니다. 국민연금보다는 관심도가 덜하지만, 우리 부(部)로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가입했지요?”
― 네. 가입되어 있습니다.
“현재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퇴직연금에 의무 가입하게 되어 있지만 처벌 규정은 없어요. 그래도 대부분 가입하고 있어요. 문제는 80~90%를 차지하고 있는 30인 미만 사업장입니다. 이들의 경우 퇴직연금 도입률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분의 1 수준, 노동자 가입률은 2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민연금 위에 퇴직연금을 더해 노후 보장을 촘촘히 하기 위해서는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을 산다든지 결혼을 한다든지 해서 목돈이 필요할 때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장기 저리 융자 같은 걸 해줘야겠지요. 이런 문제들을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 인기가 높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연금 개혁을 들고 나온 후 지지율이 폭락했습니다. 솔직히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건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장래, 젊은이들의 미래에 관련된 문제이니 꼭 하자’는 생각이십니다. 연금 개혁 문제는 향후 정치적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겠지만, 하여튼 우리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월간조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세요.”
“집사람도 힘들었죠”
― 취임한 지 며칠 안 되었는데도 현안들을 빠삭하게 꿰고 있네요.
“청문회도 해야 하고 국회에 나가기도 해야 해서 선생님들(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빡세게 시켜서, 제가 공부를 좀 많이 했습니다.”
― 어제 KBS와 인터뷰하면서 ‘국회만 아니면 장관도 할 만하다’ 해서 언론으로부터 ‘그게 국회의원 세 번이나 한 사람이 할 소리냐’는 비판을 받았더군요.
“오늘도 국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그에 대해 비판을 하기에 ‘인터뷰를 다 읽어보면 그게 국회 경시가 아니라 국회를 너무나 중시하기 때문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사모님께서 ‘인사청문회가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온 걸 봤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힘들었죠. 딸에게까지 이거 내라 저거 내라 하는데, 내라는 게 너무 많더군요. 우린 가진 게 없지만, 가진 게 조금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장관) 안 한다 소리 하겠어요.”
― ‘건국절’이나 ‘일제 시대 국적(國籍)’ 문제와 관련해서는 말을 좀 아끼지 그랬습니까.
“제가 눈치가 없어서…. 눈치가 금방 생기지 않거든요. 눈치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오늘도 국회에서 그것 때문에 또 퇴장하라고 해서, 퇴장당하고 왔습니다.”
― 오늘은 또 왜요?
“일제 시대 때 조선인의 국적이 어디였느냐 하는 그 얘기였죠.”
― 아니 아직도 그걸 가지고 시비입니까.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위원장이 ‘총리가 한 만큼만 하라’고 했는데….”
― 한덕수 총리는 뭐라고 했나요.
“‘일제 시대 때 우리 조상들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뭐. 민주당 의원들은 ‘총리뿐 아니라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 다 그렇게 말했는데, 왜 당신은 안 맞추냐’고 하는데…. 국적이라는 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 일장기 달고 나간 게 본인이 원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저보고 친일파(親日派)라고 하는데, 13대조 할아버지[김연(金演·1552~1592년)]가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우리 집안은 일제 시대에도 협조를 안 했어요. 그런데도 저를 보고 친일파라고 하면 안 되지요.”
“저는 아직 17세”
― 장관님의 고용노동부 장관 임명 소식을 듣고 ‘참 잘됐다’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김문수한테 너무 작은 자리’라는 분들도 있더군요.
“저로서는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죠. 아까 말한 것처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제 아내죠. 월급 타 가는 걸 아주 좋아해요.”
― 경기지사 그만둔 다음에는 여러 해 동안 어떻게 먹고살았습니까.
“유튜브를 좀 하긴 했지만, 뭐 굉장히 어렵게 살았죠. 도지사 할 때 어떤 기업인이 돈 상자를 가져왔기에 바로 쫓아가서 돌려준 적이 있어요. 사는 게 어려우니 집사람이 농담 삼아 ‘그때 그 돈을 돌려주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소리까지 하더군요.”
김 장관은 “저는 돈에 대해서는 정말 완전히 완벽하게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애도 하나밖에 없고, 우리 집사람도 사치를 모르는 사람이어서 돈 쓸 일이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을 다해서 산 겁니다.”
― 지금 사는 집은 자가(自家)입니까.
“네. 봉천동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아파트입니다. 거기로 이사하기 전에는 부천에서 24년 동안 이사를 안 하고 살았어요. 아파트는 낡으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자주 새집으로 옮겨 타야 값이 좀 올라가는데, 저는 공직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민주화운동 보상금 주잖아요? 저도 감옥을 몇 년 갔다 왔으니까 좀 있겠죠. 그것도 안 받았어요.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내가 국민 세금을 또 받으면 되나’고 생각했어요.”
― 연금은 있나요?
“국민연금이 60만원쯤 나오는데, 그거 갖고 살기는 정말 불가능하죠. 공무원연금은 정말 참 잘해놓은 겁니다. 그리고 퇴직연금도 꼭 해야 합니다. 국민연금만 갖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 청문회 하는 거 보고 ‘김문수가 10년만 젊었으면…’ 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트럼프나 바이든보다는 훨씬 젊잖습니까.
“저는 아직 17세입니다. 하하하. 지금 고용노동부 장관 자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자가 16년 전인 2008년 《월간조선》 9월호에 쓴 김문수(金文洙·73) 당시 경기도지사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당시 그는 3선 국회의원을 거쳐 경기도지사로 첫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었다. 57세의 한창 나이였고, 일각에서는 그를 2012년 대선(大選)에 나설 잠룡(潛龍) 중 하나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로 재선됐지만, 2014년 지방선거 때는 같은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 선거(2016년), 서울시장 선거(2018년) 등에 나섰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거리에서였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 조국(曺國) 규탄 집회 등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또 있었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 기일(忌日)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추도식 행사에서였다. 그때마다 가슴이 짠했다. ‘올곧고 깨끗하고 애국심 강한 정치인이 시대를 만나지 못해 이렇게 잊히나’ 싶어서였다.
김문수가 돌아왔다
그 김문수가 돌아왔다. 지난 7월 31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그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경기도지사를 그만둔 지 12년 만의 공직 복귀였다. 2022년 9월 29일 이후 장관급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일해오기는 했지만, 그 자리는 실제로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 자리로 보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가 고용노동부 장관 의자에 앉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조(元祖) 노동운동가였지만, 그의 한참 후배라고 할 수 있는 민노총이나 시민단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반(反)노동적인 인물’이라며 그의 임명에 반대했다. 거기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일제 시대 조선인의 국적’ ‘대한민국 건국’ 등에 대한 그의 역사 인식이 시빗거리가 됐다. 우직하다 싶을 정도로 할 말을 다 하는 그를 보면서 한편에서는 “역시 김문수!”라고 박수를 쳤지만, 보수(保守)라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저렇게까지 할 것 있나?”라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는 김문수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장관으로 임명했다.
‘논란 속의 인물’은 잡지 기자에게는 ‘만나고 싶은 인물’이다. 카카오톡으로 인터뷰 신청을 했다. 며칠 후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회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조금 조용해지면 만나자”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이런 면에서도 ‘역시 김문수!’였다. 9월 7일 저녁 7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9층에 있는 장관 서울사무실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를 만났다.
― 이렇게 장관실에서 뵙게 되니 참 좋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 젊은 시절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했다가 70이 넘은 나이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하게 됐는데, 소회가 어떻습니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맡게 됐습니다. 노동운동에서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도지사, 경사노위 위원장을 거치는 동안 노동은 제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을 성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서 성과 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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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9월 30일 김문수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노동 개혁’을 당부했다. 사진=연합뉴스 |
“백수로 있다가 월급 좀 받아 오게 되었으니, 좋아하더군요. 우리가 재산이 없으니, 늘 ‘빨리 죽지도 못하고 오래 살면 큰일이다’는 얘길 하곤 했는데, 걱정을 좀 덜 하게 됐으니까….”
― 지난 3월 29일 GTX 개통식 때 윤석열 대통령이 ‘GTX는 원래 김문수 지사 아이디어였다’고 언급했던 게 기억납니다. 윤 대통령이 장관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좀 과분할 정도지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할 줄도 몰랐고…. 제가 할 뜻이 있는 것도, 시켜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장관을 하게 되니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 하겠죠.”
― 임명장 받을 적에 윤 대통령이 특별히 말씀하신 게 있습니까.
“비서실장과 사회수석 등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정도 대통령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대통령께서 상당히 고심이 많지 않으시겠습니까? 국정(國政)의 난제도 많고, 지지율이 높지도 않고, 야당은 굉장히 의석이 많으니까…. 저는 직언(直言)을 좀 하는 편이기 때문에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 무슨 말씀을 드렸나요.
“기자회견이건 국정 브리핑이건 기자들을 자주 만나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과 의료대란 상태인데 현장에 많이 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 대통령은 뭐라고 하던가요.
“대통령께서는 노동 개혁의 완수와 노동 시장 약자 보호를 당부하시면서, ‘노동 개혁은 (장관이) 잘해주겠지만, 그 외에 국정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하면 다른 분들이 할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노동 개혁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노동 개혁
― 윤 대통령과 장관님이 생각하는 노동 개혁의 요체는 무엇입니까.
“궁극적인 목표는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 시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필요한 것은 법치(法治)입니다. 1987년 이후 노동 현장에서 법치가 무너졌어요. 노조원들의 시위 과정에서 경찰관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이건 아니잖아요? 윤 대통령 취임 2년 동안 노동 현장의 법치는 거의 바로잡혔다고 봅니다. 하지만 법치, 공권력(公權力)만으로 노동 현장이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현장의 노동 약자(弱者)들이 우리 대통령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노동 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따뜻한 노동 개혁’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노동 약자 보호, 체불(滯拂) 임금 청산 같은 부분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것도 체불 임금 청산, 노동 약자 보호더군요.
“지금 대기업 노조는 자기 조합원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88%의 노동자들은 누가 챙겨야겠습니까? 우리 고용노동부가 해야죠. 노동 현장을 따뜻하게 만들어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 고용노동부 공무원들한테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잘 챙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무척 강한 반면, 노동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기에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잘하시는 건 정책인데, 정책은 좀 어려워요. 정치는 약간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데…. 이거를 어떻게 쉽게 국민들한테 잘 다가갈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그래도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의 지지 위에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추진해나가야겠지요. 저부터 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노동약자보호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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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장관은 9월 5일 ‘임금체불 근절과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한 전국 기관장 회의’를 주재했다. 사진=고용노동부 |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애매해서 기존 노동관계법과 제도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플랫폼 종사자(특정인이 아닌 다수에게 일감을 배정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대가나 보수를 받는 이들-기자 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보험설계사, 우체국 보험 모집업자, 건설기계 운전사, 학습지 방문 강사, 골프장 캐디, 택배원,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방문판매원, 가전제품 설치·수리원, 화물차주,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기자 주) 같은 분들이죠. 이런 분들은 일을 해주었다가 돈을 못 받거나, 몸이 아프더라도 대출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 노동약자보호법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갑니까.
“노동 약자들을 위한 표준계약서 마련, 공제회 활성화, 소액대출, 쉼터 설치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 무슨 문제만 발생하면 관련 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노동약자보호법이 없었다는 게 의외입니다.
“관련 법안들이 있기는 한데, 법으로 보장해주는 기준이 너무 높은데다가 그걸 이행하지 않으면 강하게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아예 그 분야의 사업을 하려는 사람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지원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틀, 인프라부터 만들고, 법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기법 적용 검토해야”
― 거대 노조의 울타리 안에 있고,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나 급여 수준이 높은 대기업 노조는 과도하게 보호받는 반면, 대다수 노동자는 보호의 사각(死角)지대에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취임사에서 아직도 온전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고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된 것이 1989년입니다. 35년 전입니다.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이잖아요? 세계 어느 선진국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달리합니까?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맞게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사정 삼위일체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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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경사노위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당시 김문수 위원장. 김 장관은 ‘대화의 장’으로서 경사노위가 의미 있다고 했다. 사진=조선DB |
“민노총은 들어오지 않은 지가 25년이 넘었죠. 한국노총은 들락날락하고 있고…. 그래도 일단 같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규제 완화와 노동 개혁을 통해 기업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여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김문수 장관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외국에 나가 보면 경기도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영어로 ‘Gyeonggi-do’라고 하면 발음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경기도에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다’고 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그걸 보면서 ‘정말 우리 기업들이 대단하구나’ ‘기업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다.”
― 노동부 장관이라면 당연히 노동자 보호를 우선시해야겠지만, 국무위원으로서는 국가 전체 차원에서 노동과 기업의 조화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노사정(勞使政) 삼위일체론자(三位一體論者)’입니다. 물론 부분적인 갈등은 있겠지요. 과거 운동권에서는 ‘노사는 계급적 이해가 다르다.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죠. 하지만 저는 노사정의 근본이익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회사가 잘돼야 노동자도 월급이나 성과급을 더 받고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고, 그래야 정부도 세금을 많이 거둘 수 있지 않겠어요?”
‘CEO 리스크’
― 노동자들의 인명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불의의 사고에도 경영자가 감옥에 가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법률이 결국은 ‘좋은 일자리’도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요.
“암참(A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싱가포르에 있는 5000개의 아시아 헤드쿼터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으로 올 가능성이 있지만, ‘CEO 리스크’ 때문에 겁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재용 회장도, 신동빈 회장도 막 잡아넣는데, 그래서야 누가 한국으로 오겠어요? 이런 문제들도 노사 간에 대화를 해서 조정을 해줘야 외국 기업도 들어오고, 국내 기업도 해외로 덜 나가고,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의 리쇼어링(reshoring)도 가능할 것입니다.”
― 얼마 전 암참 회장도 언급했지만, ‘전투적 노조’도 기업 유치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노동 손실 일수가 전에 비해 약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인천에 있는 GM이 파업을 해서 노동 손실 일수가 조금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종전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입니다. 전(前) 정부 시절 대비 굉장히 좋아진 거죠.”
― 고령화(高齡化) 시대에 정년(停年) 연장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지만, 청년들을 생각하면 정답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년 연장을 해버리면 젊은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더 없어지겠죠.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정년에 도달하면 일단 퇴직했다가 대졸(大卒) 초임(初賃) 정도로 ‘재고용’하는 것 같은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생긴 여력(餘力)으로 청년을 좀 더 채용할 수 있겠지요. 이게 세대 간 상생(相生)하는 방법입니다. 경사노위에서도 이런 방안을 논의해보았지만 ‘임금은 깎지 말고 정년만 늘리자’는 거예요. 그럼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기업은 그걸 부담할 수 있나요? 굉장히 어려움이 있어요.”
―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연금(年金) 개혁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에서 챙겨야 할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퇴직연금입니다. 국민연금보다는 관심도가 덜하지만, 우리 부(部)로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가입했지요?”
― 네. 가입되어 있습니다.
“현재 3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퇴직연금에 의무 가입하게 되어 있지만 처벌 규정은 없어요. 그래도 대부분 가입하고 있어요. 문제는 80~90%를 차지하고 있는 30인 미만 사업장입니다. 이들의 경우 퇴직연금 도입률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분의 1 수준, 노동자 가입률은 2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민연금 위에 퇴직연금을 더해 노후 보장을 촘촘히 하기 위해서는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을 산다든지 결혼을 한다든지 해서 목돈이 필요할 때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장기 저리 융자 같은 걸 해줘야겠지요. 이런 문제들을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 인기가 높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연금 개혁을 들고 나온 후 지지율이 폭락했습니다. 솔직히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왜 이 문제를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건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장래, 젊은이들의 미래에 관련된 문제이니 꼭 하자’는 생각이십니다. 연금 개혁 문제는 향후 정치적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겠지만, 하여튼 우리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월간조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세요.”
“집사람도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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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역사 인식 문제 등에 대한 야당의 문제 제기로 고생했다. 사진=조선DB |
“청문회도 해야 하고 국회에 나가기도 해야 해서 선생님들(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빡세게 시켜서, 제가 공부를 좀 많이 했습니다.”
― 어제 KBS와 인터뷰하면서 ‘국회만 아니면 장관도 할 만하다’ 해서 언론으로부터 ‘그게 국회의원 세 번이나 한 사람이 할 소리냐’는 비판을 받았더군요.
“오늘도 국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그에 대해 비판을 하기에 ‘인터뷰를 다 읽어보면 그게 국회 경시가 아니라 국회를 너무나 중시하기 때문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사모님께서 ‘인사청문회가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온 걸 봤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힘들었죠. 딸에게까지 이거 내라 저거 내라 하는데, 내라는 게 너무 많더군요. 우린 가진 게 없지만, 가진 게 조금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장관) 안 한다 소리 하겠어요.”
― ‘건국절’이나 ‘일제 시대 국적(國籍)’ 문제와 관련해서는 말을 좀 아끼지 그랬습니까.
“제가 눈치가 없어서…. 눈치가 금방 생기지 않거든요. 눈치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오늘도 국회에서 그것 때문에 또 퇴장하라고 해서, 퇴장당하고 왔습니다.”
― 오늘은 또 왜요?
“일제 시대 때 조선인의 국적이 어디였느냐 하는 그 얘기였죠.”
― 아니 아직도 그걸 가지고 시비입니까.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위원장이 ‘총리가 한 만큼만 하라’고 했는데….”
― 한덕수 총리는 뭐라고 했나요.
“‘일제 시대 때 우리 조상들의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뭐. 민주당 의원들은 ‘총리뿐 아니라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 다 그렇게 말했는데, 왜 당신은 안 맞추냐’고 하는데…. 국적이라는 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 일장기 달고 나간 게 본인이 원해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저보고 친일파(親日派)라고 하는데, 13대조 할아버지[김연(金演·1552~1592년)]가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우리 집안은 일제 시대에도 협조를 안 했어요. 그런데도 저를 보고 친일파라고 하면 안 되지요.”
“저는 아직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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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준우 |
“저로서는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죠. 아까 말한 것처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제 아내죠. 월급 타 가는 걸 아주 좋아해요.”
― 경기지사 그만둔 다음에는 여러 해 동안 어떻게 먹고살았습니까.
“유튜브를 좀 하긴 했지만, 뭐 굉장히 어렵게 살았죠. 도지사 할 때 어떤 기업인이 돈 상자를 가져왔기에 바로 쫓아가서 돌려준 적이 있어요. 사는 게 어려우니 집사람이 농담 삼아 ‘그때 그 돈을 돌려주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소리까지 하더군요.”
김 장관은 “저는 돈에 대해서는 정말 완전히 완벽하게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애도 하나밖에 없고, 우리 집사람도 사치를 모르는 사람이어서 돈 쓸 일이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을 다해서 산 겁니다.”
― 지금 사는 집은 자가(自家)입니까.
“네. 봉천동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아파트입니다. 거기로 이사하기 전에는 부천에서 24년 동안 이사를 안 하고 살았어요. 아파트는 낡으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자주 새집으로 옮겨 타야 값이 좀 올라가는데, 저는 공직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민주화운동 보상금 주잖아요? 저도 감옥을 몇 년 갔다 왔으니까 좀 있겠죠. 그것도 안 받았어요. ‘국회의원 하고 도지사 하고 했으면 됐지, 내가 국민 세금을 또 받으면 되나’고 생각했어요.”
― 연금은 있나요?
“국민연금이 60만원쯤 나오는데, 그거 갖고 살기는 정말 불가능하죠. 공무원연금은 정말 참 잘해놓은 겁니다. 그리고 퇴직연금도 꼭 해야 합니다. 국민연금만 갖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 청문회 하는 거 보고 ‘김문수가 10년만 젊었으면…’ 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트럼프나 바이든보다는 훨씬 젊잖습니까.
“저는 아직 17세입니다. 하하하. 지금 고용노동부 장관 자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