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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분석

‘박근혜 키즈’에서 ‘가처분 호소인’까지, 이준석의 ‘좌충우돌 정치 인생 10년’

김종인에게 ‘정치 기술’ 배운 ‘0선 정치 고수’ 성장 전략의 ‘결말’은?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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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씨의 ‘갈등 유발’ ‘말싸움’은 그만의 ‘생존 방식’이고, ‘성장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몸집을 키워온 이씨가 앞으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

⊙ ‘능력주의’ 강조하지만, 이준석의 ‘정계 입문’ 경로 보면 설득력 부족
⊙ ‘청년’ 내세워 정치한 적 없다?… 3년 전 ‘젊은 정치인’ 운운한 이준석은 다른 사람?
⊙ 새누리당 때는 “이정현 사퇴”, 바미당 시절에는 “손학규 사퇴” 외친 ‘대표 사퇴 호소인’
⊙ ‘정치 고수’인 양 ‘대선 후보’ 윤석열 가르치려 들어… ‘비단주머니’ ‘연습문제’ 운운
⊙ 같은 당 대선 후보 측근에게 ‘파리’ ‘하이에나’ 운운했던 ‘어린 김종인’
⊙ 내부 갈등 때는 빛을 발하는 이준석 말싸움… 민주당 상대로는 왜 볼 수 없을까?
⊙ 대선 한창일 때 두 차례 가출해 ‘尹 지지율’ 하락… 그런데 ‘대선 승리 공신’ 자처하는 이준석
⊙ 대선 때는 이재명 향해 ‘羊頭狗肉’… 정권 교체 뒤에는 尹 향해 같은 표현
⊙ 10년 동안 ‘갈등 유발→언쟁 유도→파상공세’ 지속하며 언론 지면 장식하는 이유
사진=뉴시스
  이준석(李俊錫)씨는 국내 정치권 인사 중 화제성 면에서는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다음가는 인물이다. ‘성(性) 상납 의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원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그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은 집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그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을 공격하고, 자기 당의 지도체제 전환을 막고, 장외에서 ‘심판’ 운운하며 ‘죽비로 내려쳐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그런 까닭에 현재 ‘거야(巨野)’를 이끄는지, 아니면 자신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건지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듣는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언론 지면에 언급되는 횟수가 많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기사 검색 시스템 ‘빅카인즈’ 결과(7월 8일~9월 10일)에 따르면 그렇다. 대선 때 ‘0.73%P’ 차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공백기’도 별로 갖지 않고 정치 활동 재개를 한 차기 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기사는 총 1만2196건이다. 이준석씨의 경우에는 그보다 2030건 많은 1만4266건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윤 대통령 관련 보도는 총 3만9085건이다. 그 처신의 적절성과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서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비중만 기준 삼으면 이씨의 ‘지명도’는 대통령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지도 높고, 여당 대표까지 지낼 정도로 ‘위상’이 남다른 정치인이 과거 10년 동안 어떤 언행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워낙 많은 말을 쏟아냈고, 다수 논란을 일으키거나 휘말려 보고, 듣는 이를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월간조선》은 이준석씨가 정계 입문 후 10년 동안 관여했던 사건 또는 그의 언행들을 ‘특징별’로 정리해 ‘정치인 이준석’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됐는지를 확인했다.
 
 
  이준석은 ‘공정경쟁’ 말할 ‘자격’ 있나
 
이준석씨는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집권여당이던 한나라당의 최고위원 격인 ‘비상대책위원’으로 위촉돼 수년 동안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사진=뉴시스
  2020년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이준석씨는 ‘능력주의’ ‘공정 경쟁’을 강조했다. 이는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란 식으로 ‘불평등 계급사회’를 용인하는 듯한 주장을 했던 자가 정권 핵심이 되는 사회에 실망한 청년들에게 주효한 ‘구호’였다. 입으로는 ‘민중’ ‘민주’ ‘평등’을 외치면서 머리로는 부(富)와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데 골몰하는 자들의 ‘위선적’ 행태에 분노한 2030세대는 그 주장에 동조했다. 부모의 ▲자산 ▲인맥 등 소위 ‘부모 찬스’에 의해 출발선을 달리하는 ‘불공정 경쟁’을 혐오하던 그들의 일부는 이씨를 소위 MZ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여겼지만, 익히 아는 것처럼 이씨가 정계에 입문한 ‘배경’은 ‘능력주의’ ‘공정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이씨는 2011년 12월 당시 한나라당(비대위 체제에서 새누리당으로 개칭) 비상대책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6세였다. 그를 집권여당의 최고위원 격인 비대위원으로 위촉한 이는 당시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최소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까지는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물론 이씨는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시점인 2019년 5월 27일, ‘박근혜 키즈’란 평가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저는 하나의 소모품이었다”며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이해관계는 있어도 종속관계는 생기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빠 찬스’로 정계 입문
 
이준석씨는 정계 입문 이후 유승민 전 의원과 그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과거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 전 의원과 정치 철학을 공유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씨의 등장 후 당시 정치권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치 경험이 아예 없는 20대를 비대위원으로 앉힌 ‘파격 인선’과 관련해서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이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봉사 모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 박 전 대통령이 방문한 일이 있고, 그 인연에 따라 얼마 뒤 비대위원으로 위촉됐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준석은 유승민 뒷배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씨는 이를 부인하다가 나중에 말을 바꿨다.
 
  이씨 부친 이수월씨와 유승민 전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이며, 이씨는 2004년 6~8월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사실이 밝혀졌다. 정황상 결국 그 ‘인맥’ 또는 ‘아빠 찬스’에 힘입어 정계에 입문했고, 한국 정치사에서 흔치 않은 ‘20대 최고위원’이란 ‘명함’을 손에 쥐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비판에 따르면 이씨는 ‘박근혜 키즈’가 아니라 실상은 ‘아빠 친구 유승민’의 ‘키즈’였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씨는 2015년 12월 31일, “정치 현장에서 뛰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분들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 단박에 큰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또 어떤 불합리한 이득의 영역에서 기인한 것 아니냐고 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떤 노력의 연장선들이었다는 것을 저도 알고, 저를 발탁한 사람도 인정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신은 노력했고, 그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주장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자평하는 일은 순전히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아빠 친구 유승민’이 없었더라도 이준석은 26세에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이 될 수 있었을까?”란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여당 비대위원을 할 당시 이씨는 그 직책과 직무에 대해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이씨가 비대위원이 됐을 당시는 소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때문에 한나라당이 수세에 몰렸던 때다. 한나라당은 비대위 산하에 ‘디도스 사건 검찰 조사 국민검증위원회’를 만들고, 미국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씨에게 위원장직을 맡겼다.
 
  이후 이씨는 해당 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씨에게 문자를 보내 “이준석입니다”라고 하면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을 함께 검증하자”는 제안을 했다. 김씨는 ‘이준석’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후 “이준석이 제안했는데, 김어준이 거절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자, 김씨는 “이준석이 이름만 대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사람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이씨에게 문자를 보내 “어, 그 비대위원이었군. 자기소개부터 하셨어야지. 그대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마땅히 알아야 할 사람은 아니잖아”라고 지적했다.
 
 
  ‘청년 팔이’ 배격하더니…
 
  이준석씨는 9월 4일, 대구 기자회견 당시 ‘청년 정치인’ 관련 질문을 받고 나서 보통 20·30대를 뜻하는 ‘청년’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는 ‘청년’을 자처하지 않으며, 단순히 ‘나이’를 앞세워 ‘청년 정치’를 운운하는 자들을 ‘사기꾼’ 보듯이 한다는 취지의 ‘소신’을 밝혔다. 다음은 당시 그의 발언이다.
 
  “저는 청년은 본인이 청년이란 생각 그렇게 안 한다고 본다. 청년은 보통 나이 때문에 짓눌리면서 빨리 나이 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청년이고, 나이가 들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젊은 척하려는 사람이 청년이다. 안 그렇나.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스스로 ‘제가 청년입니다’라는 표현을 써본 기억 없다. (중략) 대한민국 정치에서 적어도 청년이라는 단어가 정치 영역에서는 누군가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저는 절대로 청년이 되고 싶지 않다. (중략) 저는 그 기억을 반추했을 때 절대 청년이라 불리기 싫고 어느 누군가가 자기가 청년이라 주장하며 정치하려 한다면 앞으로 저는 그 사람을 ‘청년 팔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이처럼 소위 ‘청년 팔이’를 배격하는 이씨는 불과 3년 전에 무슨 말을 했을까. 2018년 8월 9일, 당시 이씨는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는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의 바람잡이 연설로 무명 정치인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 연설에서 본인의 경험을 담아 ‘흑인 아이가 책을 들고 있으면 백인 흉내 내려고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깨겠다고 했고 그 말에 미국인들은 열광했습니다. 혹시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젊은 사람이 등장하면 경험과 경륜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찍어 내리거나 그저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략) 오바마가 깨어버린 편견처럼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면 대한민국 젊은 정치의 족쇄가 풀립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정치 행보 속에는 저와 비슷한 시도를 하다가 스러져간 많은 젊은 정치인들의 축적된 염원도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당시 이씨는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젊은 사람 ▲젊은 정치 등을 언급했다. 또 그는 현실 정치에 좌절했던 ‘젊은 정치인’들의 염원을 대변한다고 자처했다. 여기서 말하는 ‘젊은 사람’과 ‘청년’ ‘청년 정치인’과 ‘젊은 정치인’은 같은 표현이다. ‘젊은 정치’와 ‘청년 정치’는 그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는 불과 3년 전 지금 자신이 ‘청년 팔이’라고 규정한 언행을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쉽지 않다.
 
 
  2021년에는 先黨後私 요구하더니…
 
  또한 이준석씨는 2018년 8월 9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청년 정치인’이라고 규정했다. 다음은 인터뷰 중 관련 대목이다.
 
  〈Q: 1970년대 김영삼·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 프랑스를 비롯해 오스트리아·뉴질랜드는 30~40대 젊은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그렇지 못한가?
 
  A: “사람들은 내게 더 배우고 경력을 쌓아서 정치하라고 한다. 이는 조언을 가장해 청년 정치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말이다. 모순적으로 경험을 쌓고 나면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삶의 이력을 강조하는 문화도 강하다. 훌륭한 이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나름의 고유 영역이다. 대표적인 예가 안철수 전 대표다. 다른 영역에서 사회적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정치적 성공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다. 외부에서 성공을 거둬야 정치권에 진입하기 쉽다는 고정관념이 젊은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된다. 이 문화를 타파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은 계속 불리한 전장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를 이끈 YS와 DJ가 젊은 시절부터 전업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씨는 8월 13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임명과 지도부 체제 전환 관련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나서 소위 ‘1차 기자회견’을 할 때 ‘선당후사(先黨後私)’에 대해 언급했다. 당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이씨가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여러 당내 인사는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내분 조장을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에 대해 이씨는 “선당후사라는 을씨년스러운 표현은 사자성어라도 되는 것처럼 마냥 정치권에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근본이 없는 용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2021년 8월 26일,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돼 제명 또는 탈당 요구 조치를 받은 국민의힘 의원 6명에 대해 “선당후사 정신”을 읊어댄 그 당의 대표는 누구인가.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당의 조치에 대해 다소간에 이견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한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 승리를 위해 모두가 합심하는 것이고,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과 1년 전에 ‘선당후사’를 그토록 강조했던 ‘이준석’이란 국민의힘 대표와 지난 8월 국회에서 “선당후사는 근본 없는 용어”라고 주장한 이씨는 서로 다른 인물인가. 물론 이밖에도 이씨가 본인 입으로 ‘선당후사’란 ‘을씨년’스러운 표현을 쓴 경우는 더 있다.
 
 
 
이정현 사퇴 요구 앞장서

 
2016년 11월, 이준석씨를 비롯한 원외 비박계 당협위원장 5명은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사퇴와 지도체제 전환 등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단식 농성’을 했다. 사진=뉴시스
  이준석씨는 명목상 ‘박근혜 키즈’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그가 정치 행보를 같이한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규정한 유승민 전 의원이다. 이씨는 유 전 의원이 만들거나 참여한 당에 함께 옮겨 다녔다. 공교롭게도 그는 그렇게 당적을 바꾸는 과정에서 항상 ‘당대표 사퇴’와 ‘비대위 전환’을 요구하며 당 주류 세력을 공격하다가 결국에는 유승민계와 ‘동반 탈당’해 딴살림을 차렸다.
 
  이씨의 첫 ‘당대표 사퇴’ 요구는 새누리당 시절의 일이다. 2016년 10월, JTBC의 소위 ‘최순실 태블릿’ 보도가 나간 후 박근혜 정부는 국정 운영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여당이던 새누리당도 자중지란을 겪었다. 그 와중에 김무성·유승민 당시 의원이 중심이 된 이른바 ‘비박계’는 ‘친박’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대표는 “거국 중립내각이 출범하면 사퇴한다” “1월 21일에 조기 전당대회를 하도록 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했으나, 비박계는 ‘즉시 사퇴’를 주장했다. 이준석씨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 5명은 2016년 11월 13일, 국회 당대표실을 찾아 당 지도부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뚜렷한 사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이정현 대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준석씨를 비롯한 5명은 대표실 앞 복도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한다고 했지만, 11일째에 중단했다. 그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는 데 가담한 비박계는 그달 27일에 집단 탈당해 소위 ‘개혁보수신당(후일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창당 후 함께했던 비박계 의원들의 두 차례 집단 탈당 후 위기를 맞은, ‘유승민계’의 바른정당은 2018년 2월 13일,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이란 이름으로 합당했다. 바미당 시절 이씨는 ‘손학규 대표 사퇴 호소인’으로 활동한다.
 
 
  손학규 퇴진 요구
 
이준석씨를 비롯한 ‘유승민계’는 바른미래당 시절 손학규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다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집단 탈당’해 ‘새로운 보수당’을 만들었다. 사진=뉴시스
  2018년 9월, 이준석씨는 바른미래당 당대표 선거에 나갔지만 ▲손학규(득표율 27.02%) ▲하태경(22.86%)에 이어서 19.34%를 기록해 ‘3위’에 머물렀다. 당대표 도전은 실패했지만, 최고위원으로 바미당 지도부에 입성한 그는 손학규 대표와 어긋나게 된다. 2019년 4월 3일, 바미당은 노회찬 전 의원의 사망에 따라 열린 경남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4·3 보궐선거 당시 유일하게 후보를 낸 지역에 당력을 집중하겠다면서, 손 대표는 창원시 성산구에 주택을 임차해 상주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득표율 10%가 나오지 않으면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당시 바미당 후보의 득표율은 3.5%에 불과했다.
 
  이에 이준석씨는 선거 다음 날 “제가 손학규 대표님의 거취에 대해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늦지 않은 시점에 거취를 포함한 책임감 있는 입장 표명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튿날에는 “새 지도체제와 새 지도부를 찾아야 한다”며 “지도부가 즉시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거나, 최소한 (당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달 8일, 손 대표가 당내 ‘지도부 총사퇴 요구’에 대해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저놈 바꿔라’ 하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거부했다. 이후 긴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손 대표 측과 충돌했지만, 그 결말은 유승민계의 ‘집단 탈당’ 후 ‘새로운 보수당’ 창당(2020년 1월 5일)이었다.
 
  또한 이준석씨는 바미당 시절에 이미 ‘황핵관’이란 자기만의 신조어로 자유한국당을 공격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13일, 이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미당 의원 사이의 통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황핵관’을 입에 올렸다. 다음은 이를 전하는 당시의 기사다.
 
  〈이 전 최고위원(이준석)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수 통합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통합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없다”면서 유승민 의원과 황교안 대표가 전화 통화한 것도 “전화를 하기는 했지만, 아침에 그냥 짧게 얘기한 거지. 무슨 어떤 합의에 이르고 발표할 내용을 만들어낸 정도의 전화 통화는 아니었다”고 했다. 진행자가 “유승민 의원이 ‘탄핵에 대한 부분은 묻고, 땅에 묻고 일단은 통합하자는 데 합의했다’는 보도가 크게 나왔다”고 하자 이 전 최고위원은 “탄핵 이야기는 없었다(는 것을 유승민 의원이 확인해줬다)”며 “유 의원이 불쾌함을 토로하는 것(원인)이 황교안 대표 측 관계자 이러면서 ‘유승민 의원이나 변혁이 이런 걸 요구했다고 그러는데(라며 하지도 않은 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고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황교안 대표 측 핵심 관계자라는 사람이 오히려 이 판을 깨고자 하는 의도가 강한 것이 아닌가”며 “보통 보면 당·청 관계가 망가지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하면 당핵관(당 핵심 관계자), 청핵관(청와대 핵심 관계자) 이런 사람들끼리 익명 인터뷰를 하면서 판을 깨는 경우가 많다. 황핵관은 뭡니까?”라고 황핵관을 비판했다.〉 —2019년 11월 13일, 《세계일보》
 
 
 
대선 후보에게 ‘연습문제’ 출제하는 ‘0선 정치 고수’

 
  이준석씨는 ‘0선 중진’ ‘마이너스 삼선 중진(소위 마삼중)’으로 불린다.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 간판을 달고 4년 동안 서울시 노원구 병 지역에 세 차례 도전했으나 결론은 모두 ‘낙선’이었다. 그럼에도 이씨는 ‘정치 고수’를 자처하는 듯한 언행을 그 이전부터 계속해왔다. 심지어 2012년 4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석 달 활동하면서 보고, 겪은 일을 정리했다면서 《어린놈이 정치를?》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이 책에서 ▲정치 ▲문화 ▲사회 ▲언론 ▲교육 등 다방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물론 그해 말로 예정된 대선 판세를 분석했다. 그야말로 ‘온갖 문제 전문가’란 지적을 자초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권 입문 당시부터 ‘정치 전문가’인 양 행동했던 이씨의 ‘척척박사’ 행세는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후 ‘절정’에 다다랐다. 그는 2021년 5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만약 우리 당에 들어와 함께한다면 제가 윤 총장 쪽에 비단주머니 3개를 드리겠다. 급할 때마다 하나씩 열면 된다”며 “더불어민주당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과 장모에 대해 공격하면 충분히 받아치고, 역효과까지 상대 쪽에 넘길 해법이 있다”고 자신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이씨의 정치 경력을 아는 마당에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제갈량처럼 ‘비단주머니’를 말하는 그 ‘자신감’의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그런 전략가는 왜 연거푸 세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민주당 강세 지역, 상대 후보의 인지도 등을 얘기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선거에는 이렇다 할 ‘신묘한 계책’을 선보인 일도 없으면서, 가장 큰 대선을 앞두고서 유력 주자에게 ‘비단주머니’를 운운하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김종인식 벼랑 끝 전술’
 
이준석씨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대단한 전략가라고 치켜세우면서 “정치기술은 김 전 위원장에게 배웠다”고 했다. 사진=뉴시스
  이준석씨의 이 같은 행태는 대선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작년 11월 29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했던 이씨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란 문구를 적고서는 이른바 ‘1차 가출’을 했다. ‘가출’이란 표현에 대해 이씨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과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장에 당대표 직인 날인을 거부하며 자신의 지역구로 내려갔을 때 세간에서는 이를 ‘옥새 들고 나르샤’라고 했다. 당대표 직인이 당사 금고에 있었는데도 그렇게 불렀다. 심지어 총선 당시 김무성 전 대표가 웃으면서 달리는 장면을 연출한 새누리당 광고에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란 문구가 있을 정도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준석씨의 ‘선대위 업무 거부’ 등을 ‘가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김종인’이란 인물을 국내 현존 정치인 중 가장 뛰어난 ‘전략가’란 식으로 치켜세우며 “정치 기술은 김종인에게 배웠다”고 한 이씨는 자기주장이 통하지 않을 때마다 번번이 ‘김종인식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또 ‘정치적 스승’의 화술을 그대로 이어받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근들을 ‘하이에나’ ‘파리떼’라고 조롱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씨의 정치 행태는 사실상 ‘어린 김종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은 한창 ‘컨벤션 효과’를 누려야 할 시기 ‘이준석 1차 가출(11월 29일)’이란 암초를 만났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윤 대통령은 그해 12월 3일, 울산광역시에서 이준석씨를 만나 ‘가출 사태’를 수습했다. 사진=뉴시스
  참고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며 전국구 또는 비례대표 의원만 5선을 했으며 지금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또는 비대위 대표 등을 지낸 전무후무한 ‘정치인’이다. 고령에도 선거철만 되면 다시 전면에 등장해 으레 그 ‘내각제 개헌’과 ‘경제민주화’를 되풀이하는 ‘정치적 열정’을 가진 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처하는 것처럼 대단한 ‘전략가’ ‘정치고수’란 얘기는 아니다.
 
  ‘1차 가출’ 당시 이준석씨는 소위 ‘윤핵관’이 당대표인 자신을 배제하고, 의견 전달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한창 ‘컨벤션 효과’를 누려야 할 시기의 ‘당대표 가출 사건’은 큰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를 수습하기 위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2월 3일 울산광역시에서 이씨를 만나고 사태를 수습했다.
 
 
  윤석열 후보의 ‘정치 선생’ 행세
 
이준석씨는 작년 12월 21일, ‘2차 가출’을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준석 사퇴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기 위해 올해 1월 6일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금의 윤 대통령은 “모든 게 다 후보인 제 탓”이라고 하면서 다시 이씨를 끌어안았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이준석씨는 12월 21일, 전날 조수진 당시 국민의힘 최고위원과의 ‘설전’ 이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맡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실무형 소규모 선대위’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2차 가출’을 강행했다. 한 차례 당한 바 있는 윤석열 후보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2월 22일 이씨는 “선대위가 개편되더라도 다시 들어갈 일 없다”고 했다. 26일에는 “줄다리기를 하는 게 아니다. 깔끔하게 던졌다. 선대위에서 제 역할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부정당한 상황에서 선대위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28일에는 “후보 측에서 요청이 있으면 (복귀 여부를) 생각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 측은 무대응인데, 혼자서 이랬다 저랬다 했다는 얘기다. 그 와중에 이씨는 윤 후보에게 자신의 복귀 조건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 이준석씨는 윤 후보의 ‘정치 선생’이라도 된 것처럼 ‘연습문제’ 운운하며 “저는 오늘 선거에 있어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다시 움 틔워 볼 수 있는 것들을 상식적인 선에서 소위 연습문제라고 표현한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은 방금 거부되었다. 3월 9일(대선일)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기원하며 무운을 빈다. 당대표로서 당무에는 충실하겠다(1월 5일)”라고 했다.
 
  이씨의 가출 탓에 윤 후보 지지율은 하락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들고일어섰다. ‘이준석 탄핵’이 언급되기도 했다. 1월 6일, ‘이준석 사퇴 촉구 결의안’을 추진하는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씨는 “만약 오늘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의견을 모아서 이준석의 복귀를 명령하신다면 저는 지정해주신 어떤 직위에도 복귀하겠다. 하지만 그 방식으론 대선 승리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젊은 층 지지는 절대 같이 가져가지 못한다”고 했다. 위기를 자초한 이씨를 끌어안은 이는 윤 후보였다. 당시 윤 후보는 “모든 게 다 후보인 제 탓이다. 저와 대표와 여러분 모두 힘 합쳐서 3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자”고 말했다. ‘이준석 사퇴’를 촉구하려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후보의 발언에 박수로 화답했다.
 
 
  자칭 ‘대선 승리 공신’
 
  이준석씨는 8월 13일, 국회 기자회견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한 ‘공신’ 또는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듯한 주장을 했다. 다음은 그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저야말로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선거 과정 중에서 그 자괴감에 몇 번을 뿌리치고 연을 끊고 싶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 중에서 어디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저를 그 새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래도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내가 참아야 한다고 크게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목이 쉬라고 외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중략) 대통령 선거 과정 내내 한쪽으로는 저에 대해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대표로서 열심히 뛰어야 했던 제 쓰린 마음이…(후략)”
 
  앞서 살핀 것처럼 이준석씨는 대선 기간 두 차례 가출했고, 그때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자신이 마치 ‘대선 승리’ 또는 ‘윤석열 집권’ 공신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 실체와 규모를 알 수 없는 ‘이준석 추종자(속칭 대깨준)’들 역시 온라인상에서 “이준석이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식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대선 때 유권자는 후보를 보고 투표하지, 후보가 속한 당의 대표 얼굴을 보거나 그의 주장을 듣고 표심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는 ‘기초 상식’이다.
 
 
  이준석 덕분에 윤석열 승리?
 
  “이준석 덕분에 윤석열이 이겼다”는 주장은 “2007년 이명박(李明博)의 정권 교체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의 ‘공(功)’이다” “2012년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당시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덕분이다” “2017년 문재인(文在寅)의 집권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때문에 가능했다”는 궤변과 같다. 만일 이씨가 ‘공신’을 자처하려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과거 다른 당대표들과 달리 특별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고조되는 시기에 당대표가 됐고, 대선 때 그 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이 새끼, 저 새끼 소리를 들으면서도 ‘참을 인’ 자를 새기면서 발이 부르트도록 ‘윤석열 당선’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주장도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주장의 ‘진위’를 살피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은 대통령 선거일 다음 날인 3월 10일, 전국 성인남녀 중 20대 대선 투표자 1002명을 대상으로 ‘이재명·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 ‘이재명·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20대 대통령 선거 사후조사’를 실시했다. ‘자유응답’ 형식으로, 각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에 대해서는 2개까지 응답하도록 허용한 해당 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한 ‘윤석열 당선 요인’과 ‘이준석 기여도’는 다음과 같다.
 

  이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423명이 내세운 이유를 보면 ▲정권 교체 39% ▲상대 후보가 싫어서 또는 그보다 나아서 17% ▲신뢰감 15% ▲공정·정의 13% ▲국민의힘 지지 7% ▲잘할 것으로 기대/정책·공약/새로운 인물 각 6% ▲민주당이 싫어서/인간성/주관·소신 각 5% ▲도덕성/부정부패 척결/부동산 정책 각 4% ▲경제 기대/호감 간다/단일화 각 3% ▲법치 확립/강직함/여가부 폐지/국가안보 각 2% 등이다.
 
  이를 분석하면, ‘윤석열 집권’ ‘문재명 정권 연장 실패’의 제일 요인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다. 그다음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기(신뢰, 공정, 정의)가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이준석씨가 “예스(Yes)냐, 노(No)냐?”란 식으로 강압적으로 ‘합당’을 얘기하고, 대놓고 조롱·멸시했던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역시 ‘승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사감’이 있는 김종인씨와 계속 함께했다면, 그 김씨를 대단한 전략가인 것처럼 추앙하는 이씨의 말을 들었다면, 그 결과 안 후보를 직접 만나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권 종식’ ‘윤석열 정부 출범’은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여가부 폐지’ 주장이 이준석 작품?
 
  한편, 앞서 여론조사 결과 중 굳이 이준석이란 인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은 ‘여가부 폐지(2%)’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해당 조사에서 ‘중복응답’을 허용했으므로, 조사 결과상 2%에 불과한 ‘여가부 폐지’ 공약의 경우에는 그 기여도가 실제로는 더 낮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미미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청년본부장으로 활동했던 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의 최근 주장에 따르면 이마저도 이씨의 ‘공’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8월 18일, 장 이사장은 “여가부 폐지 등 페이스북 한 줄 공약 시리즈와 각종 선거 캠페인은 이준석 전 대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젊은 실무진과 외부 자문그룹의 충언을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고, “나, 공신이오”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자기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과 같은데, 이씨는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했다.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준석씨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나를 들이받으면 지지율이 내려갔고, 나와 (윤석열 당시 후보가) 손잡았을 때는 지지율이 올라갔다. 그게 팩트”라면서 “그런데도 대통령이 아직까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주장 중 지지율 등락 관련 부분은 일견 사실과 같으나, 우리 국민 상당수는 이씨가 ‘윤핵관’ 운운하며 가출을 했을 때 윤석열 당시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윤 후보가 선거 기간 계속 잡음을 내는 이씨를 품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였을 때 지지율이 회복되거나 소폭 상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양두구육’이 단순한 비유가 아닌 명백한 이유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준석씨는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였다”고 주장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의 뜻과 이씨 주장의 맥락을 고려했을 때 이는 윤석열 대통령뿐 아니라 그를 찍은 국민들에 대한 ‘모욕성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이씨는 9월 4일 기자회견에서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 하나에 참지 못해서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은 공부할 만큼 했는데도 지성이 빈곤한 것인가, 아니면 각하가 방귀를 뀌는 때에 맞춰서 시원하시겠다고 심기 경호하는 사람들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대법원에서도 양두구육은 문제없는 표현이라고 적시한 마당에 이것을 문제 삼은 사람들은 지시를 받았다면 사리분별이 안 되는 것이고, 지시도 없었는데 호들갑이면 영혼이 없으므로 배지를 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양두구육’ 발언은 단순한 비유라고 보기 어렵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그가 자청한 기자회견을 앞두고 ‘본심’을 담아 철저하게 준비한 ‘정치적 발언’이 바로 ‘양두구육’이고, 이 표현이 그날 이씨 주장을 관통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이씨가 강조한 것처럼 ‘법적으로 문제없는 표현’이란 사실 또는 윤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분개하는 이들의 주장은 중요하지 않다. 이씨가 대선 때 ‘윤석열’을 찍은 유권자, 지금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의 ‘지능 수준’을 깎아내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쉽지 않은 표현을 썼다는 게 중요하다.
 
  ‘양두구육’이란 사자성어의 의미를 고려했을 때 이씨는 윤 대통령을 외양은 그럴싸하지만, 내실은 형편없는 인사라고 규정한 것과 같다. “양 대가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다”는 주장은 자신이 그 ‘세 치 혀’로 ‘선전’ 또는 ‘포장’을 잘해서, 무지몽매한 국민을 속여 넘긴 결과 ‘형편없는 인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맥락 때문에 이씨의 해당 표현은 단순한 비유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이씨가 ‘양두구육’을 지난해 11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 발언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021년 11월 2일, 이재명 후보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 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같은 날, 이준석씨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담은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고 나서 “이재명 후보와 함께하는 사자성어 시간이다. 차베스같이 살아온 사람이 선거가 다가오니까 간판에 박정희 대통령을 걸어놓고 태연하게 말한다. 오늘의 사자성어는 양두구육”이라고 썼다. 분명히 이준석씨는 당시 이재명 후보를 향해 대통령을 네 번 역임하면서 각종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펴 나라를 망국 지경에 이르게 한 차베스와 같다고 규정하고, 그가 ‘근대화·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입에 올리는 행태를 ‘양두구육’이라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이씨가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 또는 윤석열 정권을 향해 내뱉은 ‘양두구육’이란 표현이 갖는 ‘진의’를 짐작할 수 있다.
 
 
  10년 동안 계속된 ‘이준석표 성장 전략’의 ‘끝’은?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이준석씨는 항상 자신이 속한 당에서 갈등의 중심에 있거나, ‘대표 사퇴’를 요구하며 지도체제를 바꾸려 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 대상은 다르지만 대선 때도 사실상 이와 같은 모습을 되풀이했다. 정계 입문 후 10년 동안 그는 항상 누군가와 대립하고, 언쟁했다. 대체 그는 왜 이러는 것일까. 타고난 기질이 그런 것일까. 과거 이씨가 한 매체와 한 인터뷰를 보면 지금 그의 행동은 매우 계산된 전략적 행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2018년 9월 당시, 이준석씨는 “제가 얘기하는 방식을 놓고 ‘어린 애가 왜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을 하느냐’고 하는데, 과거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 당시 국회의원들은 버릇없게 안 보았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이 4선 의원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기 전과 후의 정치적 존재감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결국 잘못된 것을 지적할 때 정치인으로서의 가치가 올라가고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왜 정치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감안하면 결국 듣고, 보는 이를 진저리 치게 할 정도로 지금까지 이어진 이준석씨의 ‘갈등 유발’ ‘말싸움’은 그만의 ‘생존 방식’이고, ‘성장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몸집을 키워온 이씨가 앞으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 그걸 국민의힘 지지층과 국민이 용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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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장    (2022-09-21) 찬성 : 6   반대 : 0
네가지가 없는 놈!
  ggss2657    (2022-09-21) 찬성 : 14   반대 : 0
이 인간 기사는 싣더라도 사진은 싣지 말았으면. 문재인, 이재명 볼 때와 똑 같이 기분 상한다.
  고영수    (2022-09-21) 찬성 : 28   반대 : 0
청년표를 전략적으로 얻기 위해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검증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도입한 결과 정치공학만 배운 악동을 키운셈이다 도리어 자기를 낳아준 당과 기성정치인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러서 퇴출시키기도 어려울만큼 부메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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