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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亡國病’ 포퓰리즘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생계비로 써도 된다”(고용부)

글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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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 방문해 非정규직 제로 선언… 급식파업·톨게이트 파업으로 이어져
⊙ ‘문재인 케어’로 건보기금은 20조5955억원(2018) → 11조807억원(2013) 감소
⊙ 일자리 예산 54조원 투입하고도 성과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좋은 정치시스템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타락할 여지도 다분하다. 민주주의에선 다수(多數)가 원하면 그것이 정책이 되고,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파(政派)가 집권하게 된다. 정치인들은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적 뇌물’을 일반 대중에게 뿌린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최우선적으로 충족시켜주겠다”는 인기영합의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정책이 지속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당선된 후 고민해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는 인기영합을 지렛대로 한, 유권자에 대한 허구적 충성맹세 경쟁일 뿐이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가장 싼 값에 ‘선거라는 경매(競賣)’에 부쳐지고, 포퓰리즘(populism)은 국가 권력의 값을 떨어뜨린다. 그 끝은 국가 타락이다.
 
  포퓰리즘에는 자기 증식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정치인이 공급자이고 유권자는 수요자다. 소비자는 대가(代價) 없이 또는 비용 이상으로 혜택을 보게 되므로 수요는 한없이 커진다. 그리고 공급자도 자신의 비용 부담으로 시혜(施惠)를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제한 제공 가능하다고 믿는다. 결국 포퓰리즘 공급 곡선은 주어진 가격(세금)에서 무한 탄력적인 수평선이 된다. 포퓰리즘은 더 큰 포퓰리즘을 부른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자원이 뒷받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포퓰리즘 포말(泡沫)은 종국적으로 터지게 돼 있다. 포말이 터지기 전까지 폭탄 돌리기는 계속되고, 포퓰리즘은 여전히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포퓰리즘 배격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다. 누가 먼저 선뜻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재선(再選)과 재집권이라는 공공으로 위장한 ‘사적(私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영혼을 팔기까지 할 태세다. 표를 위해서라면 ‘나라의 미래’와도 바꾸려 한다. 포퓰리즘의 타락에는 끝이 없다. 포퓰리즘의 끝은 ‘국가의 쇠몰(衰沒)’이다. 어느 나라도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국가개입주의
 
  포퓰리즘의 층위(層位)를 달리하면 포퓰리즘은 복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면 이 역시 포퓰리즘이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책임진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각자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고유의 재원을 갖지 않는 ‘무산(無産)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허구이고 포퓰리즘이다.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국가를 선(善)하고 전지(全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국가는 ‘지식의 문제’와 ‘중립적 이해조정 능력의 부재(不在)’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식하면 ‘개입주의’와 ‘설계주의’, 그리고 ‘전체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출범 3년 차를 맞이하는 문재인(文在寅) 정부의 경제성적표가 극히 불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에는 ‘개인과 자유, 그리고 시장’의 개념이 없다. 그 자리를 ‘공동체와 규제, 그리고 인위적(人爲的) 통제’가 메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적 기회는 사전적으로 ‘균등’해야 하며,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 기회가 사전(事前)에 균등하게 주어지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결과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문재인 정부는 좌파 특유의 ‘과다식별(over identification)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결과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사후적(事後的) 소득이 물리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결과적 평등을 위해 ‘국가개입주의와 큰 정부’가 요구되는 것이다.
 
 
  ‘공공부문 非정규직 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했던 그리스의 포퓰리스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번째 행선지는 인천공항공사였다. 2017년 5월 11일 공공부문의 비(非)정규직을 정규직화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첫 방문지에서의 발언은 큰 상징성을 갖는다. 하지만 당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느닷없는 ‘비정규직 제로 선언’은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서 없어져야 할 악(惡)은 아니다. 경제구조가 복잡다기화(複雜多岐化)될수록 근로 형태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는 동태적(動態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온 신참(新參) 근로자에게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일 수 있다. 이 징검다리를 치우면 이미 노동시장에 진입해 있는 근로자들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앞으로 들어올 잠재적 진입자에게는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은 ‘자(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가 비정규직을 직(直)고용하는 것으로 해서 해소됐다. 사실상 달라진 것은 없다. 파견업체 소속에서 자회사로 소속이 바뀌었을 뿐이다. 파견업체는 일종의 노동 중계기관이다. 그 자체가 기형적인 조직은 아니다. 그렇다면 금융 중계기관도 기형적이어야 한다. 파견업체가 없어진다면 파견업체에 고용된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차별해소’와 ‘처우개선’이다. 정부가 개입해 직고용을 명령하는 것이 정책일 순 없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인 것이다.
 
 
  톨게이트·급식 파업
 
지난 6월 30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구조물 위에 올라가 본사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며 “청와대가 책임져라”라고 주장했다. 사진=조선DB
  지난 7월 4일 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조가 도로공사의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6개 차로를 기습 점거해 심각한 교통 정체를 유발했다. 2년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공언했으니 실행하라는 것이다.
 
  도로공사는 요금수납원은 언젠가 사라질 자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대신 자회사 정규직으로 소속을 전환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요금수납원 6500명 중 5000명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에 응했다. 그러나 민노총과 한노총 소속 약 1500명은 끝까지 도로공사가 대통령 약속대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민노총이 버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정권을 ‘공동 창출’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소위 촛불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민노총의 투쟁 대상은 논리적으로 사용자인 ‘도로공사’여야 한다. 도로공사와 전혀 관계없는 시민의 출근을 볼모로 잡은 것은 그 자체가 ‘사회적 폭력’이다.
 
  학교 급식 조리원과 돌보미 인력의 파업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교사와 교사 이외의 보조 인력은 수행하는 직무가 다르다. 정규·비정규를 따지기 전에 직무급(職務給)을 주면 된다.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은 ‘차이 인정’으로 차별이 될 수 없다. 이들 보조 인력의 정규직 요구는 지나치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중하지 않은, 시혜를 베푸는 식의 인기영합 발언이 비정규직 문제를 꼬이게 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포퓰리즘
 
  ‘문재인 케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이은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다. 그는 2017년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대표되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환자가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했던 ‘비급여 진료를 급여화’하고, 노인·아동·여성·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에 따라 선택진료비(특진) 폐지, 상급병실(2·3인실) 건강보험 적용, MRI(자기공명영상)·초음파 급여화 등이 순서대로 시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일 ‘문재인 케어’ 시행 2주년을 맞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대(對)국민 성과보고대회에서 “2년간 3600만명이 의료비를 2조2000억원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건강보험(건보) 혜택을 더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내년에는 척추 자기공명영상 검사, 흉부·심장 초음파 검사는 물론 ‘1인 입원실’까지 건보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세계 초유의 낙원국가가 탄생할 것 같다.
 
  장밋빛 미래만 가득할 것 같은 ‘문재인 케어’가 실상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선 절감됐다는 ‘2조2000억원 의료비’부터 정확하게 짚을 필요가 있다. 낭비 요인을 찾아내 절감한 것이 아니다. 환자 부담이 그만큼 경감된 것이다. 보험공단의 부담이 커지고 의료보험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것은 당연하다. 당기수지 적자를 차치하고 환자 부담금 절감만을 얘기하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포퓰리즘이다.
 
  더 큰 문제는 향후 재원 마련이다. ‘문재인 케어’를 위해서는 2023년까지 42조원이 필요하지만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 단체와 건보를 지원하는 예산당국 모두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내년 건강보험 국고 지원 비율을 올해 수준(13.6%) 이상으로 높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복지예산 증액을 따라가기 바쁘기 때문에 건강보험 국고 지원을 늘릴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기획재정부는 보험료 3.49% 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가입자 단체는 정부의 보험료 인상안을 거부하고 국고 지원을 최소 15~16%까지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림〉 건강보험 재정추계
  〈그림〉은 기재부의 국고 지원 비율 13.6% 유지와 건보료 3.49% 인상을 전제로 2023년까지 건강보험 재정을 추계한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건보 적립금은 2018년 20조원에서 2023년 11조원으로 감소한다. 만약 예산당국과 가입자 단체 모두 ‘돈 부담을 더 지기 싫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매년 3조원 이상 재정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현재 20조6000억원에 이르는 건보 적립금은 2023년에 바닥난다. 건강보험 출범 이후 쌓아놓은 적립금이 낭비적 ‘문재인 케어’로 고갈될 처지에 놓여 있다.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겠다는 ‘문재인 케어’ 자체가 무리다. 급여화는 당해 의료서비스가 ‘필수 의료’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충분한 사전 심의 없이 모든 의료 행위를 급여화해 의료 재원을 낭비했다. 향후 ‘1인 입원실’까지 건보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선택진료비(특진비)를 없앤 것도 평등이란 이름으로 ‘합리적 가격차별’을 금지시킨 것이다. 삼선짜장면은 그냥 짜장면보다 값이 비싸야 정상이다.
 
 
  ‘사회적 일자리’는 ‘세금 먹는 하마’
 
  일자리는 일거리에서 나온다. 임금은 노동의 기여분을 사후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이를 시장에 팔아 현금화해야 비로소 일자리 1개가 만들어진다. 일자리는 시장에서 민간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공무원 급여만큼 민간부문에서 세금이 걷혀야 공공부문 일자리 재원이 마련된다. 세율을 10%로 가정하면, 민간 일자리 10개가 만들어질 때 공무원 한 자리를 만들 수 있다. 국가의 기대되는 역할은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지 고용창출이 아니다. 국가가 고용의 주체가 되려면 치안과 국방 등 공공서비스를 시장에 판매해야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2017~2018년간 지출했다는 54조원의 ‘일자리 예산’은 그 자체가 재정낭비다. 민간 기업에 의해 일자리가 창출되면 그만큼 세금에 기여하지만, 정부가 만든 각종 ‘사회적 일자리’는 ‘세금 먹는 하마’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라는 섣부른 선언은 젊은이들을 ‘공시족(公試族)’으로 몰고 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공시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2017)’에 따르면 한국의 공시생은 2011년 약 18만5000명에서 2016년 25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공무원시험 최종 합격률은 2016년 기준으로 1.8%이다. 100명 중 2명만 합격한다. 나머지 98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훌훌 털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자물쇠 효과(lock in)로 공시 준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공시족 양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연간 17조1000억원이다. 일종의 기회손실이다.
 
 
  욜로(YOLO) 정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일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를 가졌다. 사진=뉴시스
  2017년 400조원이던 예산은 2018년에는 428조원으로 전년(前年) 대비 7.3% 증가했다. 2019년에는 470조원으로 전년대비 9.7%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 증가율이 전년 대비 3.7%에 불과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정부 예산을 급팽창시켰다. 만약 예산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실질경제성장률 + 인플레이션율)에 맞추면 중립적인 예산 편성으로 볼 수 있다. 조세 수입은 경상성장률에 연계되어 걷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예산팽창률은 경상성장률의 2배를 넘는다. 예산을 능력 이상으로 급팽창시키면 미래 자원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이다.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다. 2019년 추경예산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한다. ‘차입형 복지 확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현재 지상주의’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현금 살포형 낭비적 재정지출도 크게 늘고 있다. 아동수당이 대표적 사례이다. 저출산(低出産)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보육시설이 갖춰져야 직장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 하지만 가구 소득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아동수당 10만원이 출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난 6월28일자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는 가히 충격적이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받은 청년 중 일부가 구직활동과 무관한 데 지원금을 쓰고 있다”는 비판적 언론 보도에 대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생계비로 써도 된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직활동지원금은 ‘수당’이 되는 것이다. 고용부는 저소득 미취업 청년의 ‘자기주도적’ 구직활동을 돕기 위한 취지이므로 구직활동 범위를 협소하게 판단하거나 사용 내역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정책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고용부 스스로 구직과 상관없는 현금복지임을 인정한 셈이다.
 
  구직활동지원금은 월 50만원씩 총 6개월간 적지 않은 금액이 지급된다. 올해 구직활동지원금 예산은 1582억원에 이른다. 우리는 1600억원을 청년 용돈으로 주는 나라가 됐다.
 
 
  포퓰리즘이 빚은 구조조정 失機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성동조선해양 매각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선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다. 그동안 2018년부터 수주가 끊긴 성동조선을 수천억원을 들여 인수할 투자자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2018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성동조선은 당시 1200명이던 인력을 400명 수준으로 줄이는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김경수 경남지사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과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인력 감축은 800명 선에서 멈췄다.
 
  기업을 매각하려면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수주 잔량이 아예 없는 성동조선을 정규직 직원 800명까지 안아가며 사들일 해외 투자자가 있겠는가. 이번 매각 실패는 노조와 정치권에 휘둘린 ‘인재(人災)’가 아닐 수 없다. 성동조선이 회생(回生) 가능성이 없는데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지원했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2016년을 주목해야 한다. 2016년 이후 신규 선박 수주는 끊어졌으며 수주 잔량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1년 이후 수혈한 4조원의 돈은 오로지 인건비를 주기 위한 용도로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채권단 지원은 국민혈세로 메워야 한다. 노조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사태를 그르친 것이다.
 
 
  ‘용서받지 못할 죄’
 
  국가와 기업은 조직이기 때문에 경영의 기본원리는 다를 수 없다. 피터 드러커의 ‘효과성’과 ‘효율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효과성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이고, 효율성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doing things right)’이다. 효과적이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기업은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도태된다. 하지만 정부는 도산하지도 도태되지도 않는다. 국가를 속으로 골병들게 한다.
 
  정부 정책에서 최악의 조합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비효과적인 것을 앞장서 수행하는 것이다. 인구절벽 상황에서 출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외면한 채 아동수당 등 현금살포형 정책을 대단한 시혜인 양 추진하고 있다. 정부마저도 청년구직활동지원비를 청년수당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는 이탈리아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뜻이다. 기업가들이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과 공직자가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죄다. 우리나라 정치권(위정자)은 3중으로 죄를 짓고 있다. 국가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기업이 이윤을 내기 어려운 척박한 규제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의 함몰이 가장 큰 죄다. “국가가 최대의 고용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정치구호는 듣기에는 달콤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사회적 뇌물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가개입주의와 설계주의’를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국가에 의존하게 하는 것, 국가에의 의존을 타성화시키는 것만큼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것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철학의 빈곤과 포퓰리즘으로 인해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자식세대의 문을 연’ 정부로 기록될 수도 있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일궈낸 3만 달러 국민소득, 인구 5000만의 ‘30・50’ 클럽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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