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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한반도를 살릴 외교의 길

김영호 교수가 바라본 대한민국 외교의 현주소

“현실을 낙관적으로만 보는 사람이 지옥(地獄)을 만든다”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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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에 있어 ‘낭만적 민족주의’의 틀 벗어나야
⊙ 키신저도 후회한 1994년 팀스피릿 훈련 중단, 우리는?
⊙ 미국이 전술핵 배치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김영호
1959년 경남 진주 출생 / 진주고등학교, 서울대 외교학과졸업 /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미국 버지니아대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상임객원연구위원,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 외교부(외교통상부) 인권대사, 현재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1월 9일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였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뜻을 내비침으로써 이러한 기류는 더욱 강해지는 모양새다.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실험으로 인해 취해진 각종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김영호(金暎浩・59) 성신여대 교수는 이러한 기류에 우려를 갖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와 버지니아대에서 각각 국제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영호 교수는 국제정치학의 전문가다. 우리나라 외교 전반을 비롯해 국내외 정세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듣고자 지난 1월 8일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에 위치한 김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문(文) 정부 외교의 맹점은 ‘낭만적 민족주의’
 
  김영호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입안자들의 의식구조를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에 따라 현실주의 외교를 추구하는지, 이상주의 외교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외교정책도 전혀 다르게 구현된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 외교는 ‘낭만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외교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한미일(韓美日)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조보다 남북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민족공조로 기울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외교 전반에 깔려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제동을 건 것도 국제사회에서 보기 힘든 일이다. 문재인 외교가 주창하는 ‘균형외교’라는 건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 ‘낭만적 민족주의’는 냉엄한 현실, 국제공조를 뒤로한 채 미국과 일본엔 감정적으로, 북한엔 온정적으로 대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김 교수는 “균형외교를 하기 위해선 국력을 비롯한 여러 요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매우 고난도의 외교”라고 설명했다. 국제 질서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을 국가적 역량이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아직 부족하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영호 교수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두고 언급한 ‘민족의 대사(大事)’에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이 국제 무대에서 외교력을 발휘해 주도적으로 유치한 것인데, 그게 어떻게 민족의 대사인가. 그동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비롯해 우리를 지속적으로 방해해 온 게 북한 아니냐. 이제와 느닷없이 민족의 대사라며 참가하겠다는데, 나로선 납득하기 어렵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은 민족의 대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사다. 문재인 정부도 (김정은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인 것 같더라.”
 
  김영호 교수는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 낭만적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식민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저항적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과거 독립운동을 할 때에는 그러한 민족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주권국가로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민족주의는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주권국가와 민주공화정을 이뤘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영위하는 체제와 정체성은 우리와 다르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민족주의라는 틀 안에서 풀어나가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민족주의’의 함정
 
  실제로 과거 남북한이 발표한 공동 합의문에는 민족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년),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 10·4 남북공동선언(2007년) 등에는 한결같이 민족이 강조돼 있다. 김 교수는 민족주의에 대한 설명을 하며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의 한 대목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 일부분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입니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입니다.〉
 
  김 교수는 베를린 선언 중 ‘민족공동체’와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통일에 대한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북한은 민족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가 아닌 대한민국이 통일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족공동체라는 건 ‘체제’라는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북한과 통일을 놓고 다툴 때 통일 이후의 체제를 전체주의로 할지, 공산주의로 할지 달리 해석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남북관계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헌법상 ‘사실상의(de facto)’ 나라로 볼 수 있는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체제와 우리의 삶의 양식이 걸린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걸 북한과 민족공동체라는 개념으로 풀어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민족을 강조하면 현실과 체제보다는 감성적인 면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명령하고 있는데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통일을 민족과 영토 개념으로 풀지 말고, 정치체제 문제로 상정한 뒤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민족주의가 아닌 현실주의란 의미였다.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는 일종의 ‘외교 포퓰리즘’
 
2017년 12월 27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가운데). 사진=조선DB
  그런 의미에서 김 교수는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는 정치 양식이 다른데 그걸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 입안자들이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 정치 세계는 한마디로 무정부 상태다. 국제법상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실 힘의 우위에 따라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 국가의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는 그 국제 질서의 ‘소비자’이고 미국이나 일본은 ‘생산자’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생산자의 입장에 따라 국제 질서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 추이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김영호 교수는 현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외교정책을 겨냥해 벌이는 이른바 ‘외교 분야 적폐청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 교수는 “국내 정치의 적폐청산은 가능할지 모르나 외교는 다르다. 외교는 반드시 상대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 하듯이 외교를 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는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했다. 지난해 말 외교부는 박근혜 정부 때 성사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면합의가 있었다’며 위안부 합의를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영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불만족의 균형’을 찾고자 했고, 그 산물이 한일 위안부 합의였다”고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는) 일종의 ‘외교 포퓰리즘’이라고 본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문제가 있다는 국내의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고 해도 그걸 뒤집어선 안 된다. 정부는 시민단체가 아니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다.”
 
  김 교수는 “국가 간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어느 한쪽이 완전한 만족을 추구해선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 안에서 접점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의 문제만이 아닌, 미국과의 관계도 걸려 있는 문제”라고도 했다. 미국과 일본이 미일동맹으로 엮여 있기에 그 점 역시 고려했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키신저도 후회한 ‘팀스피릿 훈련’ 중단
 
2017년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국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두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 볼 때 북한은 일종의 버퍼존(buffer zone)”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국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중국은) 역(逆)애치슨 라인을 그으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대만의 동쪽, 즉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선언했었다.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됨을 의미했다. 역애치슨 라인은 애치슨 라인과 반대로 한국과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될 수 있음을 뜻한다.
 
  김 교수는 우리 정부가 중국과 약속한 이른바 ‘3불(不)[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사드 추가 배치·한·미·일 3국 군사동맹 등 불가]’과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특히 그는 “한국은 반드시 MD 체계에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북한의 핵미사일을 체계적이고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미·일의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안보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쌍중단 중 한미 군사연합훈련 연기(중단)는 특히 잘못되었다는 게 김영호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과거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1993년 제네바 협정 타결 조건 중 하나로 북한이 내세운 게 팀스피릿 훈련 중단이었다. 나중에 키신저가 자신의 저서 《외교론(Diplomacy)》에 ‘그때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한 건 잘못’이라고 책에 썼더라.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줄 알고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평창올림픽 관련해서도 우리가 북한에 조건으로 내세운 건 하나도 없었다. 일방적인 양보에 불과했다. 그저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할지 여부만 생각해 참가 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선언한 것 아닌가.”
 
  그는 “흔히 말하는 ‘남북교류’에 있어 교류(engagement)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조건부”라며 “조건이 없는 교류는 유화책(appeasement)에 불과하다”고 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소위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를 추구했을 때에도 미국이 중국에 여러 조건을 내걸었던 점을 상기했다.
 
 
  민족 내세우면서 북 인권문제엔 눈감다니…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김영호 교수는 의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1975년 미국 등 동서 유럽국가 사이에 체결된 ‘헬싱키 협약’에 따라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족주의를 누구보다 강조하는 소위 진보 세력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선 눈을 감는 건 모순이자 일종의 ‘정신분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이미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했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공조를 회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헌법 전문(前文)과 제4조에 각각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구한다’에서 ‘자유’를 삭제할 수 있다는 국회 헌법개정특위 권고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헌법에서 척추를 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이 안보 의존도가 높은 이유
 
  김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패권질서하에서 유지된 평화에 젖어 안보의식이 취약하다”고도 했다. 그의 설명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중심의 패권질서, 일제시대에는 일본 중심의 패권질서, 지금은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패권주의 속에서 살아와 전쟁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인식이 한국인들 사이에 팽배하다는 얘기다. 패권주의라는 게 부정적인 게 아닌데 과거의 경험으로 패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패권주의가 만든 질서 속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즉 우리 스스로 전쟁을 통해 평화를 쟁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보 의존도가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 교수는 “일본만 해도 스스로 위기의 돌파구를 만들려고 하는 등 위협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반면 우리는 ‘평화지상주의’만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전술핵 재도입을 망설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술핵 도입이 북핵 억지에 도움은 되지만 전술핵이 북핵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만약 전술핵을 한국에 들여왔을 때 한국인들에게 마치 ‘북핵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인식을 줄까 봐 미국이 망설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들의 안보 의존성을 미국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쟁은 안 된다. 평화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던 그간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근대국가라는 건 한마디로 말해 전쟁국가다. 전쟁을 통해 체제를 수호하고, 평화를 지켜내는 게 국제 정치다. 냉엄하고 비극적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을 너무 낙관하는 사람은 지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너무 평화만 강조하다가 자칫 더 큰 전쟁을 불러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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