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민주당 2017 정기국회 대비 문건 보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아직도 대북 협상과 지원의 마법을 믿고 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민주당 워크숍 자료 44페이지,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북핵문제 진전 있었다 주장
⊙ 북한 6차 핵실험 다음 날 추미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화’ 강조 … ‘규탄’이란 단어는 한 번만 써
⊙ 페리 프로세스, 북한에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군사동맹 해체의 명분만 준 실패작
⊙ 북한에 9·19 공동성명이란 핵 포기 대가(代價)의 ‘견적서’를 한번 떼본 데 지나지 않아
⊙ 북, 새로울 것도 없는 2·13 합의로 막대한 경제원조와 제재완화 약속을 받아내
⊙ 1994년의 제네바 합의 때부터 도발→제재→협상→합의→지원→파기 행동 반복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넉 달 사이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9월 3일 낮에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한·미·일 측정 규모가 다르지만 대체로 10만t 안팎(히로시마 원폭 3~6배)의 폭발 위력이다. 이는 최소한 증폭 핵분열탄에 해당하며 소규모 수소폭탄일 가능성도 있다. 북은 이날 중대 발표를 통해 “ICBM 장착용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했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보다 수십 수백 배 파괴력을 지닌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의 ‘핵분열’에 수소 원자들의 ‘핵융합’까지 연이어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분석에 따르면 10만t 안팎의 위력이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에 비해 피해 반경은 1.7배가량 넓어진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위력의 핵무기가 서울 상공에서 폭발할 경우 서울 대부분 지역이 파괴될 것”이라며 “폭발이 일어난 곳의 반경 370여m 건물은 증발하고, 2.5km 이내에선 모든 물체가 불이 나거나 녹아 버린다. 생물체는 모두 죽는다”고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9월 4일 ‘미국 내 다수 핵 전문가는 북한이 공개한 핵탄두는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것과 모양은 다르지만, 수소탄의 특징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며 ‘5차 핵실험보다 최소 5배 이상의 폭발력을 보여준 이번 핵실험은 북한 핵 능력의 비약적 발전(quantum leap)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신문은 이어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시험한 것이 북한 주장대로 수소폭탄으로 확인되면 이는 종전과는 차원이 다른 (북한의) 승리이며, 세계 최강의 파괴 무기가 서른세 살 독재자(김정은)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유화 노선으로 회귀하는 패턴 반복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3일 오전 8시30분(한국 시각 밤 9시30분)부터 9분, 7분 간격으로 트위터에 공식 외교 무대에선 좀처럼 쓰지 않는 ‘어피즈먼트(appeasement·유화책)’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사진=트위터 캡처
  최근 몇 달간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악화됐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대북 유화(宥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차 핵실험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對北) 반응 수위는 최고조에 달했다. ‘원유 공급 중단’ ‘북한 노동자 송출 금지’처럼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민감해하는 문제까지 먼저 꺼냈다.
 
  청와대 참모들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 “이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며 바뀐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전했다. 북핵에 최고 수준으로 대응하는 독자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압박 수단을 꺼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북 기류 변화는 한국 정부의 유화 정책이 북핵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한 ‘전술적 일시 후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의 도발 직후에는 강경 노선을 꺼낼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유화 노선으로 돌아가는 그간의 패턴을 반복할 것이란 비판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9월 3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했는데 대화 노선을 계속할지 아니면 대북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북을 향해 ‘분노’ ‘강력한 응징’ 같은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본인이 제시했던 이른바 ‘레드라인(red-line·한계선)’을 넘었는지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고 했다. 북한이 자신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깊숙하게 침범했음에도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통상 ‘레드라인’이란 북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외교적 수단을 접고 비외교적 수단을 택하게 되는 전환점을 말한다. 문 대통령은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3일 오전 8시30분(한국 시각 밤 9시30분)부터 9분, 7분 간격으로 트위터에 공식 외교 무대에선 좀처럼 쓰지 않는 ‘어피즈먼트(appeasement·유화책)’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외교사(史)에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전(前) 총리는 ‘히틀러의 독일’에 타협·양보·협상으로 일관하다 2차 대전의 참화를 부른 인물로 기록돼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외교에서 ‘어피즈먼트’는 기피어가 됐다. 그간 언론과 정치권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대북 유화책’이라고 비판해도 한미 정상 간 대화나 공식 외교 채널에서 이 말이 등장한 적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 정부 여당의 대북 유화론에 불만을 표출한 다음 날인 9월 4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북·미 간 대화를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중재해야 한다. 동시에 끊어진 남북 대화의 채널을 가동시키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날 추 대표의 연설문에는 ‘대화’라는 단어가 12번 등장했지만 ‘규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의 2017년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자료를 보니
 
‘2017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자료 내용.
  김정은이 지금 당장에라도 핵미사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음에도 정부·여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 유화 정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 8월 25일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한 ‘2017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자료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5~26일 양일간 세종시 홍익대학교 국제연수원에서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을 개최했다.
 
  총 46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 44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남북관계·북핵문제 병행 진전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북핵문제에 진전이 있었고, 한반도 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되었음을 인식하고 남북관계·북핵문제의 상호 진전 추진
 
  *△98년 금창리 의혹 발생 시 ‘임동원 프로세스’ 미(美) 전달, ‘페리 프로세스’ 도출 기여
 
  △05년 6자회담 교착 상황에서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9·19 공동성명 채택 유도
 
  △07년 BDA 문제 대두 시 우리 측 평화체제 구상을 미 전달, 2·13 합의 체결 촉진〉
 
  국제사회가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지 않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경제 지원과 평화 협정을 통해 북한을 포용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이 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을 내걸고 북한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을 하던 시기에도 몰래 핵개발을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석 달 간격으로 해치우면서 틀린 게 됐다. 특히 문건에서 예로 든 3가지는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북핵 문제에 진전이 있었고, 한반도 상황도 안정적으로 관리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페리 프로세스 결과적으로 실패
 
  ○98년 금창리 의혹 발생 시 ‘임동원 프로세스’ 미 전달, ‘페리 프로세스’ 도출 기여했다는 것부터 살펴보자.
 
  1998년 8월 17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북한 평안북도 금창리 지역에 대규모 지하 핵시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은 인공위성 사진 등을 제시하며 핵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당시 흘러나온 정보는 ▲40만m²의 대규모 공사 ▲인민군 건설여단 투입 ▲대규모 전기배선공사 ▲원자로 냉각용 저수지 공사로 보이는 댐공사 ▲인근 지역에서의 수차례 고폭 실험 ▲통풍구와 배수로 ▲길이 190m 6층 높이 규모의 지하 시설 등이었다.
 
  북한은 “민간용 시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우리 정부도 “의혹은 있지만, 핵시설이란 확증은 없으며 아직 심각하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미국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북한이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을 건설하는 것으로 확신한 것이다. 핵시설 건설 논란이 한창인 8월 31일 북한은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미·북의 갈등은 고조됐다. 미국은 북한에 금창리 사찰을 요구했다. 북한은 거세게 반발했다.
 
  미국 의회는 1988년 10월 21일 “1999년 5월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며 1994년 미·북 기본합의문에 따른 대북 중유공급에 필요한 예산집행을 거부했다. 미국의 압박에 북한은 기어이 현장조사를 하겠다면 ‘모욕’에 대한 대가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바탕 치열한 신경전 끝에 미·북은 이듬해(1999년) 3월 합의에 이르렀다. 금창리 사찰과 식량 60만t 지원을 교환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99년 5월 18일 미국 실무단은 7박8일 일정으로 금창리를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미국의 의심과는 달리 현장에는 대규모 땅파기 공사가 있을 뿐이었다. 북한은 스웨덴 건설·광산 장비회사인 ‘아틀라스 콥코’의 도움으로 땅을 뚫었다고 했다.
 
  금창리 사찰 문제를 두고 미·북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1998년 11월 김대중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임동원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 전략’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임 수석이 보고한 전략은 이러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동기는 한반도 냉전 구조에 기인한다.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려면 남과 북이 화해해야 하며 미국·일본이 북한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이 위협을 느끼는 한 북한은 대량파괴무기 개발의 유혹에서 헤어나기 어렵다.(임동원 《피스 메이커》)〉
 
  그해(1998년) 12월 7일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엄 페리(Perry)가 청와대를 방문했다. 김 대통령은 임 수석의 전략을 한 시간 넘게 설명하며 페리를 설득했지만, 그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속마음을 알 길 없었던 김 대통령은 1999년 1월 임 수석을 특사로 임명해 미국으로 보냈다. 페리와 만난 임 수석은 대북 포용정책을 설명했다.
 
  두 달 뒤인 3월 다시 한번 청와대를 방문한 페리는 ‘포용정책을 위한 포괄적 접근 방안’이라는 제목의 차트를 펼쳐들고 1시간30분 동안 자신의 대북정책 구상을 설명했다. 미국은 포괄적 대화를 북한에 제의해야 하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감소와 함께 대북 경제제재를 풀고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미·북 관계는 포괄적인 협상을 통해 북한에 당근을 제공한다는 ‘페리의 보고서’는 미국 의회에 제출돼 1999년 9월 공개됐다. 이 보고서에 적시된 로드맵이 ‘페리 프로세스’였다. 내용은 사실상 ‘임동원 프로세스’였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과 함께 ‘페리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북한이 ‘페리 프로세스’를 명분으로 선군정치가 요구하는 과잉 안보요구, 즉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군사동맹의 해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성사 직전에 진보 성향인 클린턴 민주 정부에서 보수 성향인 부시 공화당 정부로 정권 이양이 됐기 때문에 ‘페리 프로세스’가 무산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또 미국 사찰단이 금창리에서 핵시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북한 김정일은 미국이 의심할 당시(1998년) 실제 그 일대에 핵실험장을 만들고, 70여 차례 고폭 실험을 했다. 이는 《조선일보》 특종 보도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1998년 11월 23일자 신문 1면에 ‘북(北), 여러 번 고폭(高爆)실험’이란 제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당시 기사의 내용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금창리 지하 핵의혹 시설에서 남동쪽으로 10여km, 영변 핵시설에서 북서쪽으로 30여km 떨어진 평북 구성시 인근 지역에 북한이 핵개발에 필수적인 고폭 실험장을 극비리에 건설, 지금까지 적어도 수차례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당시 정보소식통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이 측근들에게 핵 관련 시설은 금창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고 얘기했다는 첩보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금창리를 지원 받는 지렛대로 이용했고, 이로 인해 탄생한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에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군사동맹 해체의 명분만 준 채 사라진 셈이다.
 
 
  9·19 공동성명 발표
 
  6자회담 교착 상황에서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9·19 공동성명 채택 유도 주장 또한 맞지 않다. 1994년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합의(AF)를 통해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고 핵 사찰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체제 안전 보장과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 준다는 조건으로 핵 문제에 대한 합의를 마쳤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북한 핵 문제 해결 방법을 두고 미국과 북한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미국은 다자회담 형식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지만,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는 국제 규범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평화를 수호하려는 국가의 단합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북한은 핵 문제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미국만이 해결할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당시 조지 워커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은 2002년 1월 29일 연두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발끈한 북한은 2002년 10월 “우리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추진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고 했다. 미국의 제임스 켈리(Kelly)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HEU 의혹을 제기하자 이렇게 답한 것이다. 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중국은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북한은 ‘다자회담 속의 양자회담’이라는 절충안을 받아들였다. 2003년 8월부터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가하는 6자회담이 시작됐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는 북한 핵 문제에 관련이 있는 유관 국가들이 모두 참가한다는 점에서 북한 핵 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보여준 한편, 이 회담 틀 속에서 미·북이 직접 대화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북한의 양자 대화 주장을 부분적으로는 반영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6자회담은 1차(2003년 8월 27일부터 29일), 2차(2004년 2월 25일부터 28일), 3차(2004년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리다 중단됐다. 북한이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을 해서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안에 반발하며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미 핵무기를 만들었다. 북한 핵 문제를 위한 6자회담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했다. 대북 유화정책을 편 노무현 정부의 큰 위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을 특사로 북한에 파견했다. 정 의원은 2005년 6월 17일 김정일과 면담을 했다. 이날 정 의원은 김정일에게 6자회담에 복귀한 뒤 핵폐기 합의문이 발표된다면 200만kW 전력과 식량 50만t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200만kW의 전력을 북한에 직접 송전 방식으로 제공할 경우 변전설비 비용 1조원, 송전선로 건설비용 5000억원, 기타 부대비용 등 모두 2조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했고, 2005년 9월 19일 한반도 비핵화,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목의 이른바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북한 9·19 공동성명 사멸 주장
 
  9·19 공동성명의 주된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 경수로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6개국 경제협력과 대북 에너지 지원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의 원칙 등이다. 하지만 북한은 공동성명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북한은 공동성명 다음 날인 2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우리에게 신뢰 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수로 제공 없이는 먼저 핵폐기를 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미 국무부는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적절한 시점이란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 안전조치를 이행하는 때”라고 했다.
 
  북한은 9·19 공동성명 합의 이후 영변 원자로를 가동해 착실하게(?) 핵폭탄을 제조할 준비를 해 왔다. 북한에 9·19 공동성명이란 핵 포기 대가(代價)의 ‘견적서’를 한번 떼본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12년이 지났으나 한반도는 과거보다 훨씬 격렬한 핵무기 경쟁의 장으로 변화했다. 9·19 공동성명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외교 전문가의 이야기다.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한창 진행 중일 무렵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당시 국방부 차관, 루이스 리비 당시 부통령 비서실장, J D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 네오콘과 강경파들이 전화회의를 열어 중국 측이 내놓은 공동성명 초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 시간 후 이 전화 토론에는 당시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베이징에 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참여했다. 힐의 의견을 들은 강경파들은 분기탱천했다는데, 며칠 후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이라는 ‘미숙아’를 낳았다. 힐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막강한 신뢰를 받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힘을 빌려 강경파들의 간섭을 막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북한은 2016년 4월 30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을 통해 9·19 공동성명의 사멸을 주장했다. 이날 북한은 “지구상 어느 핵보유국도 핵을 스스로 포기한 전례가 없고 그렇게 쉽사리 내려놓을 바에는 험난한 핵보유의 길을 걸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핵을 내려놓으라고 강박하는 것은 극도로 후안무치하고 날강도 같은 처사”라며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노골적인 군사적 적대행위, 위협행위에 나섬으로써 9·19 공동성명의 근간을 제 손으로 완전히 깨 버렸다. 적들이 걸어 오는 핵전쟁 위협에 핵 억제력 강화로 대답하는 우리의 기질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 2·13 합의하자마자 BDA 자금을 돌려달라 미국 압박
 
미 재무부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전경.
  ○2007년 BDA 문제 대두 시 우리 측 평화체제 구상을 미(美)에 전달, 2·13 합의 체결 촉진했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미국은 2005년 9월 16일 북한이 이 은행을 통해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하고 마약 등의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하는 등 자금 조달과 융통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 이 은행은 북한의 돈세탁 창구였다. 북한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운영 중이던 골드스타 은행도 업무가 정지됐다. 북한 은행과 거래하면 애국법 311조에 저촉되어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공포심이 확산해 가면서 북한은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의 은행들도 북한 거래를 기피했다. ‘현금거래’가 아니면 무역도 불가능했다. 매년 10억 달러를 위조달러, 위조담배, 마약밀매, 무기수출 등 범죄로 벌어들이던 김정일 정권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위기에 빠진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위력은 1kt으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위력의 16분의 1에 불과했다. 북한은 핵실험 실시 전 중국에 ‘핵실험 위력이 4kt으로 예상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북한의 핵실험은 군사적 필요성 이외에 국제금융 세계에서 미아(迷兒)가 되어 버린 북한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선택한 전술이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북한은 2007년 2·13 합의로 새로울 것도 없는 영변 핵시설 봉인 등 의무이행을 약속하고 막대한 경제원조와 제재완화를 약속받았다.
 
  2·13 조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 핵폐기의 초기 이행 조치로서의 폐쇄(Shutdown)
 
  북한은 합의로부터 60일 이내에 핵폐기의 초기이행 조치로 5MW급 원자로를 포함,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을 완전히 폐쇄하고 이를 IAEA에 신고한다. 일본을 제외한 회담 참가 4개국(한, 미, 중, 러)은 IAEA의 검증 작업을 바탕으로 각각 중유 5만t 상당의 지원을 북측에 제공한다. 이 같은 조치는 북한의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 능력을 ‘불능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완전 비핵화(Complete Denuclearisation) 를 위한 단계적 조치
 
  앞에서 언급된 초기 조치에 이어 북한이 △현재 비축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북핵 관련 시설의 목록 제출 △핵 연료봉 생산시설, 핵 재처리 시설, 원자로를 포함한 모든 북핵 시설을 불능화하는 것과 같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완료할 경우 회담 참가 4개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중유 95만t에 해당하는 지원을 북한에 제공한다. 중유 10만t은 현 시세로 약 3억3000만 달러로 환산된다. 한국이 지난 2005년 9월 약속한 200만kW 전력 공급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된 이후 논의된다.
 
  ◇관계개선(Improving Ties)
 
  미국은 60일 이내 별개의 양자 포럼(bilateral forum)을 통해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의 목록에서 제거하기 위한 조치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면제 조처를 한다. 초기이행 조치가 완료될 경우 6자회담 참가국의 외무장관들은 지난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 동북아 안보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가진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당사국들은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별도의 포럼을 개최한다.
 
  ◇5개 워킹그룹(WG) 구성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의장국: 중국) ▲미·북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에너지 경제 지원(의장국: 한국) ▲동북아 안보 협력(의장국: 러시아) 등 5개 워킹그룹을 구성한다. 실무급 회담은 1개월 내 개최한다. 차기 6자회담은 3월 19일 개최한다. 〉
 
 
  북한, 도발→제재→협상→합의→지원→파기 반복
 
  2·13 합의를 하자마자 북한은 “BDA 자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회담에 불참하겠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2007년 6월 BDA는 북한 관련 계좌의 2500만 달러를 동결 해제했다. 미 재무부의 테러금융담당 차관보였던 후안 C. 자라테가 쓴 《재무부의 전쟁(2013년)》이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입장이 뒤바뀌어 미국이 문제아가 됐다. 북한은 프로처럼 교묘하게 상황을 역전시켰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손을 들고 지렛대를 던져 버렸다.〉
 
  북한의 협상 기술을 극찬한 것이다.
 
  돈을 돌려받은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2차 핵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폭발 위력이 최대 6kt으로 추정돼 1차 때보다는 핵기술이 훨씬 진전됐음을 입증했다. 이후 북한은 3차(2013년 2월 12일), 4차(2016년 1월 6일), 5차(2016년 9월 9일), 6차(2017년 9월 3일)까지 핵실험을 이어 오고 있다. 북한은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시작으로 9·19 비핵화 공동성명(2005년), 2·13/10·3 합의(2007년), 2·29 합의(2012년)를 거치며 도발→제재→협상→합의→지원→파기의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에 다소 개방적(liberal) 태도를 보였던 미국의 민주당은 북한 정권의 행동 지침과 존재 이유는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로 귀결됨을 깨달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아직도 대북 협상과 지원의 마법을 믿는 듯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MAGAZINE 인기기사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