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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水爆 실험 그 이후

정치권과 국민의 안보불감증 어디까지

‘큰일 없다’는 안보착시효과와 ‘전쟁 안 난다’는 학습효과 겹쳐 안보 무관심 계속 커져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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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국민청원 1위는 “청소년 보호법 폐지”… 안보·국방문제 거의 없어
⊙ 북한이 “괌 공격하겠다” 해도 괌 여행 취소 전무… 미국과 일본만 긴장
⊙ 유해 생리대와 살충제 계란에는 민심 ‘활활’, 정작 목숨 걸린 안보문제는…
⊙ 북한 6차 핵실험 도발에도 여당은 “북한과 대화하자”, 야당은 의사일정 거부하고 장외투쟁
⊙ 국민 10명 중 6명 “전쟁 안 날 것”… 9월 9일 전쟁설도 농담처럼 여겨
북한은 6차 핵실험 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수소탄 성공 축하연을 열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연일 정부가 ‘안보불감증’에 걸렸다고 비난 중이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지난달 12일 “북한이 10만명이 넘는 군중집회와 군인집회를 열어 우리 국민은 불안감을 느끼는데도 우리 정부만은 당사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평온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 개최 여부를 하루 만에 번복하고 사드 전자파 소음 측정 계획도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안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3일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중대 발표’를 하는 시점까지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 여당은 핵실험 이틀 만인 5일 ‘대화론’을 꺼내들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대화 노력을 중단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과 미국 양국에 특사 파견을 제안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여당 대표가 북한 핵실험 이틀 만에 비현실적인 ‘대화 구걸’을 하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고, 민주당 내에서도 “왜 굳이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주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다.
 
  야당도 안보의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시점에서 자유한국당은 김장겸 MBC 사장의 사전 체포 영장 발부에 항의해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이틀간 장외투쟁에 나섰다. 정기국회는 이틀간 파행됐다. 안보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한국당이 과연 안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당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청와대 청원 1위 “청소년보호법 폐지”… 안보는 어디로?
 
  안보불감증은 정치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민의 안보의식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국민청원 및 제안’(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 코너를 마련했다. 이 중 청원자가 수천여명이 넘는 ‘베스트청원’이 9월 중순 현재 1만8000여 건에 달한다.
 
  현재 청와대 베스트청원 중 27만여명이 청원한 1위 사연은 청소년보호법 폐지 관련 건이다. 청원자는 “청소년이란 이유로 보호법을 악용하는 잔인무도한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어 반드시 청소년보호법은 폐지해야 한다”고 청원 사유를 밝혔다. 부산, 강릉 등에서 일어난 여 중·고생 폭행사건 등에 분노한 시민들이 잇달아 청원에 나선 것이다.
 
  1만명이 넘는 시민이 동참한 베스트청원 중 외교, 국방, 통일과 관련된 건은 단 한 가지다. 청원자는 “남성만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를 이행할 것이 아니라 여성도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2만여명이 동참했다. 이 밖에 청원자 1만명이 넘는 청원은 자유한국당 위헌정당 심판 청구(1만4000여명),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반대(1만1000여명), 시골 남성 매매혼 지원금 금지(1만여명) 등이 전부다. 실제로 국가안보와 국방에 관심을 갖고 청원에 나선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괌 공격하겠다”고 해도 여행 취소 거의 없어
 
지난 8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괌 포위 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10일 북한은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틀 연속으로 미국 기지가 있는 괌을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포위 사격할 것이라 위협했지만 국내 여행·항공업계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시 여행사나 포털사이트의 여행카페 등에는 여행을 가야 할지 고민이라는 글은 많았지만 정작 휴가를 취소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국내 여행사 한 대표 역시 “북한 도발이 괌 여행상품 판매 추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수료 문제도 있지만 여행카페 등의 글을 보면 ‘북한이 괌에 미사일을 쏠 일이 없다’ ‘미국령이라 한국보다 더 안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괌 항공권 취소율은 평상시 수준이었으며, 이후에도 북한 때문에 괌 여행을 취소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긴장감이 한국보다 더했다. 당시 CNN의 괌 특파원은 “북한 미사일 발사 예고 이후 긴장된 상태로 괌 해변을 둘러봤는데, 한국 관광객들만이 여유롭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고 보도했고, “그들은 놀랄 정도로 평화로웠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괌으로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몇 곳의 학교가 수학여행을 취소한 바 있다.
 
 
  유해 생리대와 살충제 계란에는 들끓는 여론
 
9월 5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북핵 관련 긴급 당정청 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8월 한 달간 정치권과 언론을 들끓게 했던 가장 큰 이슈 두 가지는 살충제 계란과 유해 생리대 파동이었다. 양계장에서 산란용 닭에게 뿌린 살충제가 계란에서 검출됐다는 소식은 전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정치권은 원인을 놓고 공방에 나섰다. 여당에서는 지난 보수 정권에서 양계농가와 수집상 그리고 유통 과정에 대해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식약처장의 비전문성을 공격하고 있다.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생리대 사건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지난 정권에서 생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고, 야당은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대해 비난했다. 약 한 달간 전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던 두 사건은 결국 뚜렷한 결론 없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고 있다. 지금도 어떤 계란이 안전한지, 어떤 생리대가 안전한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진주 초등 여교사의 남제자 강간사건, 부산 피투성이 여중생 사건에도 여론이 들끓었고 청소년법을 개정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서울 240번 버스기사가 아이가 내린 후 아이 엄마를 버스에 태운 채 다음 정류장까지 갔다는 사건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전 언론과 네티즌이 흥분해 수천 건이 넘는 기사가 등장했다. 버스기사를 ‘사이코패스’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버스기사를 당장 해고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도 나왔다. 그러나 CCTV 분석 결과 버스기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었음이 하루 만에 알려지면서 흥분했던 언론과 네티즌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자는 “안보나 국방 관련해서는 그렇게 게시판이 뜨거워진 일이 없는데, 먹을거리나 교육, 육아 등 문제가 불거지면 게시판이 불이 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보위기에도 증시 활황 왜
 
지난 8월 북한이 괌 포위 사격을 예고했으나 국내 괌 여행객 중 여행을 취소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9월 3일 북한 6차 핵실험 이후 미국 등 전 세계 증시가 타격을 입었고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증시도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국내 증시는 단기 조정에 그쳤다. 13일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채택으로 다시 회복됐을 정도다. 증시 관계자들은 “북한 리스크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요동치는 경우는 많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안보나 북핵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라고 분석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7년 2분기 증권회사 실적자료에 따르면 2분기 증시 활황으로 53개 국내 증권사들이 약 2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한 애널리스트는 “중국 증시가 북핵을 큰 리스크로 생각하지 않고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데, 국내 증시도 최근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는 편”이라며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국내 증시는 당분간 활황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이 9월 5~7일 전국 1004명을 대상으로 북핵 위협 관련 반응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은 “전쟁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이번 조사에서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없다고 보는지’ 물어본 결과 ‘전쟁 가능성 있다’는 응답은 10명 중 4명정도인 37%, ‘북한 전쟁 도발 가능성이 없다’는 응답은 58%로 나타났다. 북한 핵을 위협적으로 본다는 응답자 중에서도 절반 정도만이 실제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판 본부장은 “현존하는 위협과 비교해 안보불감증은 커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다. “지금은 안보가 잘 보이지 않는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20년 이상 국지전과 교전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도발이 없다 보니 학습효과가 축적된 겁니다. 아무리 남북 간에 위기감이 고조되어도 절대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착각이 생겼죠. 안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지 못하는 상황과 아무 일 없었지 않았느냐는 학습효과가 2중으로 작동한 셈입니다.” 그는 “북한 도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떠들썩한 분위기이고 위기감이 상상 이상으로 고조됐는데 우리 국민들은 매우 차분하다”며 “성급하고 난리법석 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동안 아무런 일 없었다는 안보불감증에 기초한다면 우려되는 상황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국무총리 “안보불안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
 
8월 23일 한 공공기관에서 실시된 ‘2017 을지연습 국가중요시설 실제훈련’에서 연구원들이 긴급 대피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8월 23일 민방위의 날 민방공 대피훈련에 참석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안보불안이 고조되고 북의 군사적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이라며 “안보불안이 상시화, 고조화된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그런 상황에 대해 익숙해지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능숙해져야 옳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안보불감증이 퍼지면 더 큰 위험을 우리가 스스로 불러오는 꼴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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